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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편 수메르인의 '신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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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메리아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댓글 3건 조회 3,224회 작성일 11-02-17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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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인의 '신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

출처 : [수메르, 혹은 신들의 고향] 시친의 지구연대기 1
[서기 1000년의 세계]
[옛날 사람들은 이렇게 살았다]
[초창기 문명의 서사시]
[카이스트 http://www.ndsl.kr/index.do]

고대인들은 시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으며 이떻게 느꼈고 또 어떻게 측정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당시에는 사람들 대다수가 밤낮의 변화라든가 태양의 위치, 계절의 변화와 같은 자연적인 시간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고대인들은 다양한 집단의 사람들이 종교적 시간, 우주론적 시간, 각 왕조에 따른 시간, 원시신화적 시간과 같이 서로 다른 '시간의 코르셋'을 꽉 조여 입기도 했다.

지역에 따라 시간은 서로 상이하게 계산되었는데, 이는 시간과의 연관체계가 지역에 따라 심한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에게는 현대를 사는 우리처럼 한눈에 개관할 수 있는 시간의 체계를 갖지 못한 채 살았던 셈이다.

또 고대에는 공통적으로 널리 알려진 종말론 같은 것도 없었다. 과거 2000년도에 예견된 종말론적 재앙은 일어나지 않았다. 실제로도 2011년 현재까지도 달라진 것은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고대인들의 숫자 체계로 현대의 지구인 모두가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시간에 꿰 맞추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일 수밖에 없다.

목차 : 1. 12번째 행성의 공전주기와 외계인 '네필림'의 왕권 (시친의 책1권)
1-2. 외계인 네필림과 지구인의 결혼

2. '신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 (구경꾼(메리아빠)의 해석)
1. 세상이 창조될 때 '시간'이 생겨났다.
2. 인도의 우주 순환기(칼파)
3. 인도의 유가(Yuga, 시간)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
4. 수메르인들의 시간
5. 중국과 중앙아메리카의 시간
6. 시간을 구분하는 다양한 기준

3. '길가메시'를 통해 '신화'가 만들어지는 과정
1. 역사 인물 '길가메시'를 통해 신화의 탄생 과정을 볼 수 있다.
2. 수메르의 도시들은 주술이 지배하던 세계
3. 시간은 지배자의 것

4. 유전자발현에 의존하지 않는 생체시계

5. 수메르 왕족들은 '원시 아라비아 인종'

게시글 작성자 : 구경꾼(메리아빠)

1. 12번째 행성의 공전주기와 외계인 '네필림'의 왕권

수메르어에서 숫자 3,600은 커다란 원으로 표현된다. 이것은 '샤르(shar, 위대한 지도자)'라는 행성의 형용사로 사용되기도 하고, '완전한 원'을 의미하기도 한다. 물론 동시에 숫자 3,600도 의미한다. 이것은 단순한 우연일 수는 없다.

바빌로니아의 사제인 베로수스(Berossus)는 대홍수 이전에 지구를 다스렸던 10명의 지도자(왕)들에 대해 언급했다. 그들의 통치 기간은 대홍수 때까지 120샤르였다고 말한다.

첫째 기록 : 아리스토 텔레스의 제자였던 아비누스(Abydenus)의 기록에도 홍수이전의 지도자들과 도시가 모두 메소포타미아에 있었다고 말한다.

땅을 다스린 최초의 왕은 아로루스(Alorus)였다고 한다. 그는 10샤르 동안 통치했다.
그 다음에는 아라프루스 (Alaprus)가 3샤르 동안 통치했고,
그의 뒤를 이어 판티비블론(Panti-Biblon)에서 아밀라루스(Amillarus)가 13샤르 동안 통치했다.(...)
그 다음에는 아메논(Ammenon)이 12샤르 동안 통치했고 그의 도시도 판티비블론이었다.
그리고 메갈루루스(Megalurus)가 역시 판티비블론에서 18샤르 동안 통치했다.
그리고 다오스(Daos), 즉 목자(牧者)가 10샤르 동안 통치했다.(...)
다른 모든 통치자들의 뒤를 이어 마지막으로 시시스루스(Sisithrus)가 통치했다.
모두 10명의 왕이 있었으며, 그들의 통치 기간은 120샤르이다.
* 참고 : 1샤르는 3,600년

둘째 기록 : [수메르 왕의 연대기]에는 왕권은 다섯개의 정착지, 혹은 도시들에 있었고 최초의 도시였던 에리두(Eridu)에는 두 명의 왕이 있었다. 그 두 명의 왕의 이름은 모두 '조상'이나 '선각자'라는 뜻의 접두어 '아(A)'로 시작된다.

하늘에서 왕권이 내려왔을 때
처음 왕권은 에리두에 있었다.
에리두에서,
아루림(A.LU.LIM)이 왕이 되어 28,800년 동안 통치했다.
그 다음 아랄가르(A.LAL.GAR)는 36,000년 동안 통치했다.
두 왕은 모두 64,800년 동안 통치했다.

[수메르 왕의 연대기]에는 그 후 왕권은 '엔(En. 주님)'이라는 접두사가 붙은 왕들이 다스리던 다른 도시(바드티비라 Bad-Tibira)로 넘어갔다. 또 그중 한 명은 예외적으로 성스럽다는 뜻의 '딘기르(Dingir)'라는 호칭을 갖고 있었다.

나는 에리두를 버렸다.
에리두위 왕권은 바드티비라로 넘겨졌다.
바드티비라에서
엔멘루안나(EN.MEN.LU.AN.NA)가 43,200년을 통치했다.
엔멘갈안나(EN.MEN.GAL.AN.NA)가 28,800년을 통치했다.
신성한 목자 두무지(DU.MU.ZI)는 36,000년을 통치했다.
세 명의 왕이 모두 108,000년을 통치했다.

[수메르 왕의 연대기]에는 그 뒤를 이은 왕들과 도시 라락(Larak)과 시파르(Sippar)가 등장하고, 마지막 신의 혈통을 지닌 인간이 다스린 슈루팍(Shuruppak)니 나온다. 각각의 왕들이 다스렸던 엄청나게 긴 기간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그 숫자들이 모두 3,600의 배수라는 점이다.

아루림(Alulim) 28,800년(=3,600 x 8)
아랄가르(Alalgar) 36,000년(=3,600 x 10)
엔멘루안나(Enmenluanna) 43,200년(=3,600 x 12)
엔멘갈안나(Enmengalanna) 28,800년(=3,600 x 8)
두무지(Dumuzi) 36,000년(=3,600 x 10)
엔시파지안나(Ensipazianna) 28,800년(=3,600 x 8)
엔멘두르안나(Enmenduranna) 21,600년(=3,600 x 6)
우바르투투(Ubartutu) 18,000년(=3,600 x 5)

신들의 1년
만약 대홍수 이전의 왕들이 실제로 12번째 행성으로부터 지구로 내려온 네필림들이었다면, 그들의 통치 기간이 12번째 행성의 공전주기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사실 전혀 놀라운 일은 아니다. 왕들의 통치 기간은 착륙에서 시작해 이륙 시점에 끝났을 것이며, 새로운 왕이 12번째 행성에서 내려오면서 이전의 왕은 다시 행성으로 올라가는 식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착륙과 이륙은 12번째 행성이 지구에 가장 가까이 접근할 때 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통치 기간도 12번째 행성의 공전주기인 3,600년 단위로 이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1년이란 무엇인가?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사는 생명체는 그 행성의 공전주기에 맞는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만약 12번째 행성의 공전주기가 지구 공전주기의 100배라면 네필림의 1년은 지구인의 100년과 같을 것이다.

그렇다면 수메르의 기록에 나타난 것처럼 12번째 행성의 공전주기가 지구의 햇수로 환산하여 3,600년이라면 어떻게 될까? 지구인의 3,600년은 네필림의 달력에서는 단지 1년에 불과할 것이다. 따라서 수메르인들과 베로수스가 전하는 대홍수 이전의 수메르 왕들의 통치 기간은 결코 신화적이거나 공상적인 것이 아니다.

1-2. 외계인 네필림과 지구인의 결혼

그때 네필림들이 지구에 살고 있었고
그 이후에도 그러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인간의 딸들과 살면서
자식을 낳았다.
그들은 쉠의 사람들, 즉 올람(Olam)의 사람들로
강한 자들이었다.
[성경의 창세기 6:1~2,4]

[구약성서] 구절을 인용하면서, '시친'은 외계인 네필림과 인간이 결혼을 하였고 그 자식들을 낳았다는 주장을 한다.

여기까지가 '시친'의 주장이다. -----------------------------------------------------------------------------





2. '신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

1. 세상이 창조될 때 '시간'이 생겨났다.

인간이 지닌 가장 기본적인 감지능력 가운데 하나는 시간과의 결속감이다. 시간적인 결속감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기원이라든가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공동체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 그 해답을 주는 것은 세상의 기원, 우주와 인간의 탄생과 종말을 다루고 있는 신화들이다.

우주의 기원을 다룸과 동시에 우리가 그때까지 '시간'으로 인식하고 있던 가변성이 이 세상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종교의 신화들을 보면, 그 이전까지 세상을 지배하던 무(無)시간성이 창조의 행위와 함께 사라지면서 비로소 시간이 발생한다.

인도의 칼파(Kalpa, 겁(劫)을 의미) 순환론에서는 실재와 무실재가 교대로 나타난다. 인간의 시간으로 계산하면 43억 2000만 년에 해당하는 브라마(Brahma) 신의 낮(칼파)이 끝나면 세계는 종말을 고하고 다시 브라마로 돌아간다.
그러고 나면 낮만큼 긴 브라마의 밤이 뒤따르고 난 뒤에 다시 도래하는 세계의 여명과 함께 다음 칼파가 시작되는 것이다.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따르면, 시간은 창조의 행위과정에서 생겨난 것으로 되어 있다. "빛ㅇ; 잇으라."라는 말과 함께 신이 어둠의 시간과 빛의 시간을 나누었고, 그렇게 해서 첫째 날이 생겨나게 되었다. 6일동안 일을 하고 하루를 휴식하도록 일주일을 나눈 것은 이처럼 신이 창조한 순환 리듬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다른 신화들 속에서도 시간의 질서를 창조하기 위해 시간을 나누고 주기를 정하는 방법들은 비슷했다. 천상에서의 시간이 의인화된 신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간은 크로노스(Cronos)였는가 하면, 인도에서는 칼라(Kala) 신이 시간을 대표했다. 또한 중앙아메리카인들은 치팍토날(Cipactonal)과 옥소모코(Oxomoco)라는 한 쌍의 신들로 시간을 인격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신화나 철학도 시간의 본질에 대해 이 이상 더 정확하게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시간은 스스로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의 현대적인 세계관에 의해 입증되었다.

이미 고대와 중세의 철학자들은 시간이라는 것이 다만 간접적으로 인식될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 말해 사물의 변화 속에서만 인식될 수 잇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354~430)는 그의 [고백록] 제11권에서 이 문제를 기술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절대적인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사람들이 측정할 수 있는 공간적인 시간이 있을 뿐이다.

2. 인도의 우주 순환기(칼파)

중세의 인도에서는 측정 가능한 결과물로 공간에 확장되어 있는 사실이 곧 시간이라고 이해했다. 시간의 기본 단위는 가장 짧게 지속되는 시간 즉 '순간(moment)' 이었다. 순간은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가장 작은 입자인 원자가 존재하는 공간을 점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다.

인도에서 시간이란 근본적으로 형이상학적인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창조주가 물질과 정신, 공간과 함께 시간을 창조했다고 말하는 철학자들이 있었다. 또, 반대로 시간은 영원한 것이어야 한다는 논리도 있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최초의 시간 앞에 또 다른 어떤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논리적으로 모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힌두교의 시간은 기원전 3104년에 시작되어 총 36만 년 동안 지속될, 네번째에 해당하는 가장 나쁜 시대의 초기에 살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세계가 시작된 이래 서서히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온 가치의 몰락 과정이 인류의 멸망과 함께 끝을 맺는 시대이고, 다시 첫번째 시기가 돌아온다는 것이 힌두교 시간관의 요지이다.

3. 인도의 유가(Yuga, 시간)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

신들의 시간으로 1만 2000년에 해당하는 기간, '차투르유가(Caturyuga)'라고 부르기도 했다.
네 개의 시간들 '크리타(Krita)', '트레타(Treta)', '드바파라(Dvapara)', '칼리(Kali)'를 가리킨다.

즉, 1차투르유가(Caturyuga)는 4유가(하위단위 네 개의 시간)와 각 유가에 선행하는 시간들 '산디야(Sandhya)', 각 유가의 뒤에 오는 시간들 '산디얌샤(Sandhyamsa)'을 모두 더한 시간이다.

신들의 시간 1년은 인간의 시간으로는 360년에 해당한다. 따라서 1만 2000년은 인간의 시간으로는 432만 년에 해당한다.

1000차투르유가는 브라마 신의 하루에 해당하는데 인간의 시간으로는 43억 2000만 년이다. 이 시간을 칼파라고 부른다.
칼파의 긑 혹은 브라마 신의 하루의 끝에서 세계는 종말 즉 프랄라야(Pralaya)를 맞고 다시 브라마로 회귀하게 된다. 그 다음에는 역시 인간의 기준으로 43억 2000만 년에 해당하는 브라마의 밤이 찾아오고,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세계가 탄생하면서 다음 칼파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렇게 브라마의 낮과 밤 30개가 모이면 브라마의 한 달이 만들어진다. 브라마의 1년은 열두 개의 브라마 달(月)로 이루어지고, 브라마의 수명은 100브라마년(年)이다. 인간의 시간으로 계산하면 31,104 x 1,015 이다. 브라마의 수명을 기준으로 보면 지금 세계는 절반을 약간 넘은 지점까지 와 있다고 한다.

4. 수메르인들의 시간

수메르인의 신들은 자연력이나 도시의 의인화로 태어났다. 풍부한 감정과 개성적 특징을 지닌 존재로도 묘사되었다. 궁극적으로 인간과 마찬가지로, 신들도 가족 문제와 세대 갈등으로 고민했다. 이런 신들에 대한 신화는 신들 간의 싸움으로 채워져 있다. 이 싸움은 묵축 경제와 농업 경제의 긴장이나 우기와 건기의 연속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신들의 사회는 인간 사회와 전혀 다르지 않았고, 많은 신화에는 명백한 정치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이러한 신화는 수메르 문화 체계에 매우 중요한 '왕권'과 '신전 제도'에 신성한 정당성을 부여했다.

신전의 사제들은 43만 2000년 전부터의 왕의 리스트를 만들어 놓았다. 43만 2000년이란 시간은 수메르의 사제들이 지배층을 위한 특별한 시간을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수메르 영웅담은 음유시인들이 궁정에서 읊었을 것이다. 가장 오래된 문헌은 기원전 2100년경의 것이다. '수메르 왕명록'에 따르면 왕들은 기원전 26000년 이전에 살았다. 대다수의 문화에는 전설적인 위업으로 경외심과 자부심을 불러 일으키는 영웅들의 시대가 있었다. 수메르도 마찬가지였다.

우르크의 세 왕(엔메르카르, 루갈반다, 길가메시)은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그들의 모험담이 점토판에 기록되어 후세를 위해 보존되었을 때쯤에는 그들의 원래 업적이 몇 세대에 걸친 음유시인들을 통해 실제보다 훨씬 과장된 신화로 변형되어 있었다.

신화에 따르면 엔메르카르는 우루크 최초의 성벽을 세웠고 혼자 힘으로 문자를 만들었다. 그는 힘만이 아니라 뛰어난 창의력을 발휘하여 전투에서 승리하는 교활한 영웅이었고, 신들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엔메르카르의 군대 지휘관으로 전투 기술을 배운 루갈반다도 신들의 총애를 받았다. 그는 신들의 개입 덕분에 산속 불모지에서 보통 사람이라면 죽었을 시련을 견디고 살아남았다.

5. 중국과 중앙아메리카의 시간

중국과 중앙아메리카에서는 우주적인 시간을 올바른 질서 안에서 유지시키는 것이 인간의 의무였고, 중국에서는 특히 황제가 그 역할을 수행했다. 이 세계는 오직 올바른 의식을 통해서만 우주적인 힘과 균형상태에 놓일 수 있었다.

인간의 권역과 우주적인 권역을 동일시했던 중앙아메리카 사람들은 곡물이나 피, 귀중품과 같은 인간세계의 물질들을 올바른 의식들, 이를테면 열여덟 '달' 동안 해당 시기에 열리는 축제들을 진행하는 데 사용했다. 마야의 달력은 1년을 18개월로 나누고 있다. 당시에 사람을 희생물로 바치는 의식이 성행했다. 그들은 제물과 주술을 통해 우주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잇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만사가 형통하도록 적절한 시기에 적합한 의식을 거행했다. 해마다 황제가 손수 쟁기로 고랑을 파는 의식을 거행함으로써 황제는 우주적인 질서 속에서 농사일이 시작되었음을 상징적으로 알리곤 했다.

6. 시간을 구분하는 다양한 기준

어느 문화권에서건 해, 달은 달력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하지만 여러 해를 다시 나누어 더 큰 단위로 묶는 과정에서 각 문화권들은 서로 전혀 다른 역법에 도달했다.

중앙아메리카에서는 52년, 104년과 같은 주기를 얻기 위해 행성들의 주기를 계산하여 이를 사람의 수명과 연관시켜 해석했다.

인도에서는 한 세대의 기간이나 사람의 수명과 관련하여 목성의 운행 주기로부터 12년과 60년이라는 단위를 도출해냈다.

중국에서는 60년이라는 주기와 함께 목성이 태양을 공전하는 데 거의 12년이 걸린다는 사실 역시 알려져 있었으며 고대로부터 다력에도 사용되었다.

기독교 문화권에는 널리 알려져 잇었고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는 100년(Saecula)이나 1000년(Millennia)과 같은 단위들이 동양에서는 아주 드물게 사용되었다.

왕조의 지배 기간을 기준으로 시간을 계산하는 방법도 있었는데, 이 기간은 천문학적 주기에 따라 계산된 것이 아니라 왕이나 특정 가문이 지배한 우연적인 순서에 따라 정해졌다. 이 시간계산법은 지배자가 신하들이나 피정복자들의 시간을 어떻게 지배하고 독점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에 해당한다. 특히 처음부터 시간의 질서를 정할 때 세상을 지배하는 황제를 결부시켰던 중국의 경우를 부면 잘 알 수 있다.


3. '길가메시'

를 통해 신화가 만들어지는 과정

1. 역사 인물 '길가메시'를 통해 신화의 탄생 과정을 볼 수 있다.

마지막 영웅이 셋 가운데 가장 위대한 길가메시였다. 강력한 전사이자 통치자이며 연인이자 '반신반인(1/3은 인간이고, 2/3는 신)'인 길가메시는 중동지역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수십 편의 서사시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바로 신화란 이렇게 진화하는 것이다.

길가메시는 결코 신화적 허구가 아니었다. 서사시의 주인공은 기원전 2600년경에 실제로 우루크를 다스린 왕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그의 용감무쌍한 행위는 시로 씌어지기 전에 수세기 동안 이야기로 유포되었다. '수메르 왕명록'은 그를 우루크 제1왕조의 다섯 번째 통치자로 기록하고, 관례에 따라 그에게 신성한 혈통을 부여했다. 그의 어머니는 '닌순 여신'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신성한 혈통은 왕위를 얻는 데 필수적이었다. 길가메시는 통치자로서 우루크 시의 '엔'이었다. '엔'은 군주로서 제사장을 겸했다. 해마다 '엔'은 인안나 여신과 의례적인 결혼을 했고, 인안나는 우루크를 특별히 보호해주었다.
사진#01

오늘날 이라크 호르사바드에 있는 사르곤 궁전에서 출토된 아시리아의 조각(기원전 800년). 새끼 사자를 움켜쥐고 있는 영웅 길가메시의 당당한 모습이 바위에 돋을새김으로 묘사되어 있다. 신화에서는 길가메시는 '반신반인(1/3은 인간이고, 2/3는 신)' 이지만 실제 조각에서는 역사속의 인물인 인간의 모습이다.

인안나와 '엔'의 혼례는 농경지의 생산력과 여성의 생산력을 확보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어떤 '엔'의 치세에 풍년이 이어지면 그의 치세는 성공적이었다. 성공한 '엔'은 살아 있는 동안 백성의 충성을 기대할 수 있을 뿐더러, 죽은 뒤에도 기도와 제물을 받는 '신적 존재'가 되어 더욱 많은 존경을 받을 수 있었다.
사진#02
길가메시가 사자를 머리 위로 번쩍 치켜들어 전설적인 힘을 과시하고 있다. 아시리아의 원통인장(기원전 1350~1000년).

길가메시의 역할은 종교적인 위치와 한 도시국가의 군사 지도자이기도 했다.
길가메시는 서사시보다 훨씬 오래된 종교적 기록이 그의 신격화를 입증하고 있다. 또한 길가메시는 우루크의 군사력을 다룬 이야기에 자주 주역으로 등장한다. 우르 제3왕조(기원전 2060~1950년)의 왕들은 길가메시의 후손임을 자랑하고 싶어 했다.

길가메시가 우르 시의 성벽을 세운 것으로 이야기에 나오지지만, 사실 성벽은 길가메시가 살았던 시대보다 적어도 천 년 전에 지어졌다.

이렇게 하나의 신화가 만들어지고 다듬어져 내려온다. 그리고 한 인간이었던 영웅에게 신들의 세계에서 내려온 신으로 신격화 되고, 수메르인들이 생각하는 수 천년이라는 영원의 의미를 지니는 시간을 신이 된 영웅에게 부여한다. 신화란 이렇게 형성되어 내려온다.

2. 수메르의 도시들은 주술이 지배하던 세계

도시 생활의 혜택을 누린 최초의 인간들이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번영과 목숨까지도 초자연적인 존재들인 심술궂은 정령이나 주술사, 또는 변덕스러운 신들의 영향력에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수메르인들의 도시주민들은 세련된 기술과 도시를 운영하였지만, 주술에 물든 세계에 살고 있었다.

실제 수메르인들의 주술과 점성술은 사실상 구별되지 않았다. 모든 것에 적절한 주문이있었고, 주문은 대개 먼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전승을 통해 효력을 인정받았다. 가장 오래된 주문은 기원전 2400년경의 것인데, 이 주문이 천 년 뒤에도 여전히 사용되었고 대대로 전해지면서 새로운 의례가 첨가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도 있다.

니푸르(Nippur) 수메르 유적의 바닥까지 이르는 데 22m를 파내려갔었다. 현대도시의 고층빌딩 보다 더 높은 높이이다.

고고학자들은 또 다른 수메르 유적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알아냈다. 펜실베니아 대학교의 E.A. 스파이저(Speiser) 교수는 1927년 모술 북쪽 지대에서 발굴해보니 26개의 지층이 드러났다. 26개의 지층 중 상층부의 6개 층만이 역사시대의 지층이었다. 메소포타미아의 발굴을 통해 4000~5000년에서 6000년 전까지의 과거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모술 남쪽에 자리 잡고 있던 하수나(Hassuna)의 발굴을 통해서는 우리가 선사시대라고 부르는 시기의 까마득한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다. 기원전 4000년 전의 전반기에 해당하는 발굴이었다. 수메르인들의 사상과 행동, 옷차림 등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수메르 신전의 에언하는 사제인 '바루(Baru)'는 미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잇었다. 이 사제들이 3000년 동안 수메르인의 행동을 지배했다. 바루들은 수천 년 동안 여러 세대를 거치며 '양의 간'으로 점을 쳐 그 모양과 상태를 실제 일어나는 일과 비교하는 방법으로 미래를 '정확하게' 내다볼 수 있었다. 결국 수메르인들의 생활은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지배당했다.

그 운명은 신이었다. 즉 도시를 지배하는 것은 신으로, 신은 행복과 축복을 주기도 하고 어려움과 죽음을 가져오기도 했다. 수메르인들은 이러한 신을 굳게 믿고 섬기며 제물을 바쳤다. 신은 자기 도시와 국가를 소유했다. 우르는 한때 중요한 신인 달의 신 '신(Sin)에게 속한 도시였다. 30은 이 신을 나타내는 신성한 숫자였다.

이렇듯이 수메르인들은 외계인들에게서 전수받은 특별한 지식은 없었다. 인간들이 여태까지 세운 학문의 체계안에서 발달해온 하나의 민족이었을 뿐이다.

3. 시간은 지배자의 것

현세에서 사는 동안 시간의 평등이 적용되는 경우는 죽음밖에 없다. 시간을 다루는 방법에는 항상 인간 세상의 삶의 모습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특히 신화속에서 종교적인 의미가 깃들어 있는 시간체계들은 시간도 지배를 위한 도구가 될 수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정치적인 지배자나 종교지도자들은 시간을 관리함으로써, 자신들을 '신격화' 시키고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영원한 시간을 부여받고 정당성을 확신시킨다. 이러한 시간체계로 명령하고 정보를 제공하며 모범이 되고 일을 추진하고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이러한 신격화되고 영원한 시간을 부여받은 지배층은 타인의 시간을 규정하고 통제하여 특권을 누리는 하나의 수단이 되었다. 지배층은 자신들이 지배하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상들과는 다른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바로 영원한 시간 개념이다. 각 문화 집단마다 차이는 있지만 적게는 1000년 단위에서 많게는 수 십억 시간단위로 각 문화권에서 영원한 시간 개념을 가지게 되었다.


4. 유전자발현에 의존하지 않는 생체시계

이제 '시친'이 주장한 신들에게 1년은 인간의 3600년이란 주장을 한번 생각해보자. '수메르 왕명록' 대홍수 이전의 통치자들은 수천년을 왕으로서 통치한 것으로 나온다.
시친은 인간이 수천년을 통치할 수는 없으므로, 외계인 입장에선 지구인의 3600년이 1년밖에 걸리지 않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한가지 제한적 요소가 발생한다. 만약에 외계인이 있다면 그들의 생체 시계는 어떨지 알수는 없지만, 그들도 자신들의 행성에서의 공전과 자전주기에 생체 시계는 맞추어져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지구인 기준으로 공전과 자전이 너무 빠른 행성에서 수백만번의 날이 바뀌는 것을 1년동안 겪을 것이다. 과연 외계인의 생체시계는 괜찮을까?

시친이 언론인이라는것을 우리는 기억하여야할 것이다. 짜임새있는 지식보단 점프해버린 창작에 능한 직업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외계인도 생체시계가 작동하리라는 것을 감안할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해외과학기술동향/2011-02-01
지구가 자전축을 중심으로 하여 회전하는 것은 모든 살아 있는 생물체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세균으로부터 시작하여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물들은 생체시계를 보유하고 있어, 지구의 24시간 주기 밤-낮 사이클에 생물의 생리작용을 동기화시키고 있다. 과학자들은 수십 가지의 생물체와 세포를 대상으로 하여, 수면과 각성, 굶주림, 대사 등의 일주기를 조절하는 일련의 유전자와 단백질을 밝혀내 왔다. 지금까지 발견된 대부분의 유전자와 단백질들은 유전자 전사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즉 세포는 유전자에 저장되어 있는 정보를 이용하여 세포의 생체시계를 구성하는 분자들의 복잡한 피드백 고리를 가동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와 에든버리 대학교의 연구진으로 구성된 두 그룹의 과학자들은 Nature에 기고한 논문에서, "인간과 조류(algae)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유전자의 활동과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진핵세포의 생체시계를 발견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연구진에 의하면 이 생체시계는 인간의 적혈구와 Ostreococcus tauri라는 진핵세포성 조류에 존재한다고 하는데, 이번 연구는 세포가 시간을 조절하는 원시적 방법을 발견한 것으로, 생물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선행연구에서도 일부 생체시계가 유전자 전사와 독립적으로 작동한다는 증거를 제시한 적은 있다. 예컨대, 2005년 과학자들은 시아노박테리아의 생체시계 단백질이 세포핵에서 나오는 신호 없이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Science, 15 April 2005, p. 414). 그러나 진핵세포에도 무전사 생체시계(transcription-free clock)가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이번에 Nature에 발표된 논문들이 처음이다.

일부 과학자들은 "진핵세포의 일주기성이 반드시 유전자 전사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해 왔지만, 이러한 주장을 입증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왜냐하면 이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단백질 합성을 저해하는 화학물질을 사용해야 하는데, 이러한 약품들은 세포에 많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존 오닐 박사(신경과학)와 아킬레시 레디 박사(신경과학)는 "적혈구를 천연 무전사 생체시계의 사례로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인간의 적혈구는 핵이 없어서 새로운 단백질을 만들 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 레디 박사는 선행연구에서 PRX(peroxiredoxin)라는 항산화단백질이 간세포의 생체주기 유지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그는 이번 연구에서 오닐 박사와 함께, 건강한 세 명의 사람으로부터 적혈구를 채취하여 항온이 유지되는 캄캄한 실험실에 60시간 동안 방치하면서, 4시간 간격으로 적혈구 샘플을 채취하여 PRX의 산화상태를 측정해 보았다. 그 결과 PRX는 약 24시간의 산화주기를 나타내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생체시계의 핵심적인 특징은 환경의 자극에 반응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레디 박사와 오닐 박사는 "적혈구를 12시간 주기의 고온-저온 사이클에 노출시킴으로써 적혈구의 생체시계를 가동시킬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들이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적혈구가 인체의 체온변화 주기에 반응할 것이라고 추론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체온은 저녁에 가장 높고 아침에 가장 낮다.) 연구진이 적혈구를 12시간 주기의 고온-저온 사이클에 노출시킨 결과 PRX의 리듬은 온도의 변화에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적혈구의 생체시계(PRX)가 환경의 신호에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오닐 박사는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에, 에든버러 대학 밀러(Millar) 박사의 연구실에서 Ostreococcus를 대상으로 전사와 무관하게 작동하는 생체시계를 연구했었다. Ostreococcus는 조류로서, 무전사 생체시계의 연구에 특히 유용한 특징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것은 며칠 동안 어둠 속에 방치해 두면 단백질 합성을 중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빛을 다시 비출 경우 Ostreococcus는 - 심지어 새로운 단백질이 없더라도 - 생체시계를 다시 가동한다. 지금껏 Ostreococcus가 보유하고 있는 신비의 생체시계를 분자수준에서 해명한 과학자는 없었다. 연구진은 Ostreococcus의 PRX 가 적혈구의 PRX처럼 일주기성을 나타내는지를 밝혀내기로 결정하였다(Ostreococcus의 PRX는 인간의 PRX와 매우 유사하다). 연구진은 12시간 주기 밤-낮 사이클에서 PRX의 산화수준이 24시간 주기로 상승-하락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상승-하락 패턴은 Ostreococcus를 완전한 암흑 속에 두더라도 변하지 않았으며, 단백질합성 차단제를 투여하여 단백질 합성을 차단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이번 연구 결과를 믿을 수 없었다. 우리는 혹시 실수가 발생했을 경우를 가정하여 동일한 실험을 여러 번씩 반복해 보았다."라고 레디 박사는 말했다. 인간과 조류가 유사한 생체시계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사실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유연관계가 없는 생물에서 발견된 생체시계들은 공통점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식물의 생체시계는 동물의 생체시계와 완전히 다르다. "지금까지 이처럼 상이한 생물 사이에서 이러한 유사점이 발견된 사례는 없었다."고 레디 박사는 덧붙였다. PRX가 세포시계의 시간을 말해 줄 수 있는지, 또는 PRX가 생체시계의 가동을 도와 주는 보다 커다란 기구의 일부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노스웨스턴 대학교의 시간생물학자(chronobiologist)인 조지프 베이스 박사는 이번 연구결과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PRX는 세포의 대사와 에너지 사용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는 생체주기의 교란이 대사질환을 초래한다는 최근의 연구 결과와 일맥상통한다."고 그는 말한다.

"PRX 단백질은 과학자들에게 다양한 생물체에 존재하는 생체시계를 연구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네덜란드 그로팅겐대학의 마더 메로우 박사(시간생물학)는 말한다. 레디 박사는 이번 연구가 이스트나 꼬마선충(Caenorhabditis elegans)의 생체시계를 찾아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스트와 꼬마선충은 아직 생체시계 관련 유전자가 발견되지 않은 것들이다.) "세균, 식물, 인간은 완전히 중복되지 않는(completely nonoverlapping) 생체시계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생체시계가 완전히 독립적으로 진화되어 왔다고 가정해 왔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 의하면 모든 생물의 생체시계는 공통의 메커니즘을 통해 모두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레디 박사는 말했다.

참고논문:
1. John S. O’Neill& Akhilesh B. Reddy, "Circadian clocks in human red blood cells", Nature 469, 498?503 (27 January 2011) DOI: 10.1038/nature09702
2. John S. O’Neill, Akhilesh B. Reddy& Andrew J. Millar, "Circadian rhythms persist without transcription in a eukaryote", Nature 469, 554?558 (27 January 2011), DOI: 10.1038/nature09654

출처 : http://www.nature.com/nature/journal/v469/n7331/full/469476a.html


5. 수메르 왕족들은 '원시 아라비아 인종'

언론인인 '시친'은 외계인인 '네필림'이 지구인과 결혼했다고 주장한다. 정말 수메르인 왕족들이 외계인과 지구인의 잡종일까?

바그다드에서 남쪽으로 350km 지점에 우르의 유적이 있다. 울리 교수는 1922년 가을, 이곳에서 왕의 무덤을 발견하고 나중에 유명해진 조수 맬로윈(Mallowan)과 함께 1932년까지 10년에 걸쳐 이 무덤을 발굴했다. 이 발굴을 통해 수메르인들의 정신세계가 처음으로 밝혀졌다.

학자들은 울리 고수가 발굴한 1850기의 무덤에서 나온 부장품을 통해 대부분의 무덤들을 연대순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1850기의 무덤 중 연대를 추정할 만한 부장품이 없는 무덤은 751기뿐이었다. 그중 16기는 부장품도 특별히 많고 구조가 특이할 뿐더러 특수한 방법으로 매장된 무덤으로 드러났다. 이 '왕'의 무덤들에는 60~80명에 이르는 순장자들이 있었다. 울리 교수는 죽은 뒤 순장된 사람은 단 한명이고 나머지는 산채로 순장된 사실을 확인했다. 또한 이들이 강제로 묻힌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순장자는 석실이 있는 무덤에서만 발견되었다. 부장품이 많은 무덤이라고 반드시 순장자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메스 칼람 둑(Mes-Kalam-Dug) 왕자의 무덤은 울리 교수가 'PG-1054'호로 분류한 왕의 무덤보다 훨씬 화려했다. 메스 칼람 둑 왕자의 무덤에는 유골이 없었던 데 반해 PG-1054에서는 6명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울리 교수는 또한 왕비의 무덤도 발견하고 'PG-800'으로 분류했다. 무덤의 주인은 숩아드(Shub-ad)라는 왕비로 확인되었다.

어떻게 이 같은 사실을 알아냈을까?
울리 교수는 왕비의 오른쪽 어깨에서 이름이 새겨진 원통 봉인을 찾아낸 것이다. 왕비의 키는 151cm로 뼈마디가 가늘었다. 손발은 조그맣고, 얼굴은 크고 길었다. 울리 교수는 왕비가 앉을 때는 일본 여인처럼 무릎을 꿇고 앉았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메스 칼람 둑 왕자의 키는 165~167cm 정도였다. 왕자의 두개골을 보고 울리 교수는 왕자가 왼손잡이라고 단정했다. 울리 교수에 따르면 왕비와 왕자는 '원시 아라비아 인종' 이다.

이 무덤들은 4500년 가량 된 것으로 우르 제1왕조 때의 것이었다. 왕비와 왕자는 기원전 2600년경에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울리 교수는 기원전 3400~3100년 사이로 생각했다.

매장은 어떻게 했을까? 그리고 '신의 뜻'
숩 아드 왕비는 똑바로 눕혀져 있었다. 시신은 관 없이 널판지 위에 안치되었다. 머리 옆에는 시중드는 여인이 웅크리고 있었으며, 발치에서 또 다른 시중드는 여인이 발견되었다. 시중드는 여인들은 죽은 왕비와 함께 순장되었던 것이다. 묘실은 굳게 닫혀 있었다.

묘실로 통하는 길을 따라 왕실 관리, 군사 들을 비롯해 시종들과 시녀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시녀들은 형형색색의 옷차림에 황금 머리장식과 귀고리, 목걸이를 하고 갖가지 보석으로 장식한 관을 머리에 쓰고 있었다. 모두 무덤 속 싶숙이 대형을 이루며 들어섰다. 황소와 나귀를 끄는 수레가 길을 메웠다.

남자와 여자 모두 흙이나 돌, 금속으로 만든 그릇을 들고 있었고, 구덩이 한 가운데 독이 담긴 커다란 구리 통이 놓여 있었다. 이곳에서 모두 자기 그릇에 독을 채워 마셨다. 동물들은 다른 방법으로 도살되었다. 그러고 나서 모두 흙으로 묻혔다.

순장자들이 어째서 그처럼 정연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폭력을 쓴 흔적 없이 평온한 인상을 주는지 울리 교수는 이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머리에 쓴 수건이 흐트러진 소녀는 한명도 없었다. 모두가 평온한 가운데 갑자기 죽기로 결심한 것처럼 눕거나 앉은 자세로 죽음을 맞았다. 울리 교수에 따르면 악사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음악을 연주했다.

왕의 무덤마다 시종들은 모두 그릇을 들고 있는 채 발견되었다. 그 밑에는 항상 구리 솥이 있었다. 울리 교수는 궁정관리들이 평온하게 죽음을 맞았을뿐 아니라 자진해서 묵숨을 바쳤다고 확신했다. 또한 짐승들은 몰이꾼들 다음에 죽은 것 같다고 말했다. 짐승들이 죽은 장소도 정확하게 지정된 장소였다.

이 같이 생매장된 사람들은 몇몇 학자들이 추측하듯이 신에게 바치는 새색시는 아니었다. 순장된 사람들은 여성보다 남성이 더 많았다. 신에게 바치기위해 뽑힌 새색시라면 젊고 아름다웠을 것임에 틀림없다. 울리 교수는 숩 아드 왕비가 40세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5000년 동안 묻혀 있던 죽은 사람에게서 이런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울리 교수는 왕족 무덤에서 출토한 물건들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다양했다. 왕과 왕비가 죽었을 때 시중들던 사람들이 모두 충성스럽게 집단 매장에 동참하는 심정은 어던 것일까? 이들은 사후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무덤 속으로 들어가 신과 같은 왕의 곁에서 죽음을 맞이하면서 어둠 속에서도 틀림없이 편안하게 느꼈을 것이다.

기원전 3000년대 초기에 수메르인들이 살던 중심지에 도시국가 라가시(Lagash)가 번성했다. 오늘날의 텔로(Tello)로, 닌기르수(Ningirsu) 신을 섬기는 라가시는 수메르에서 지방 도시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곳에서 점토판이 발견되어 이 도시에 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도시 주민의 언어는 수메르어였으며, 주민들은 가축을 길렀고 어부 아니면 상인, 수공업자였다. 메소포타미아의 도시가 모두 그랬듯이 라가시도 신전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라가시 시민들은 자유를 만끽하고 재산을 소유하는 한편 수호신을 모신 신전에 대해서만 고분고분했다. 그래야만 공식적으로 물을 공급받을 수 있고 하수도를 사용할 수 있는 등 필요한 것들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원전 2500년쯤 라가시에 재앙이 닥쳤다.
많은 사제와 정부관리들이 일반 시민들을 수탈하고, 나라 곳곳에 세금 걷어들이는 사람들이 득실거렸다. 왕궁은 더욱더 풍족해지고 하렘은 살만 쪄갔다. 이처럼 최악의 상황에 처했을 때 라가시에 새로운 지배자가 권력을 잡았다. 그 지배자가 우르카기나(Urukagina)다.

그는 수많은 관직을 폐지하고 빈둥거리면서 국민을 괴롭힌 사제와 관리를 줄였다. 사제는 다시 신을 섬기는 종복으로, '엔시(Ensi)'라 불리던 태수는 도시의 심부름꾼으로 돌아갔다. 이 위대한 개혁자는 국민의 재산과 복지를 보살피고 나이가 들어서 국민에게 자유를 선사했다는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가 통치한 기간은 10년도 되지 않았다.

이웃 국가 움마(Umma)에서 루갈자기시(Lugalzaggisi) 왕이 침략해 라가시를 비롯해 수메르의 여러 도시를 파괴하고 수많은 사람을 살해하는 한편, 신전을 약탈하고 우루크에 새 나라를 세웠다. 그러나 우루크 사람들은 울지도, 비통해하지도 않고 운명을 받아들였다. 모두가 신의 뜻이었다.

현대의 이슬람 문화권에서 받아들여지는 자살테러자들도 모두 '신의 뜻'이라고 한다. 당시 수메르인들의 정신세계의 일면을 옅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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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아빠님의 댓글

메리아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10825|1--] <p>론건멘에 올리는 자료는 직접 작성한 자료들이 대부분이고.</p><p>가끔...<br />사이언스타임스와 <br />과학동아<br />카이스 자료를 올립니다.</p><p>아주가끔<br />일반 신문 기사 올리고요....</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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