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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 티와나쿠의 말없는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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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메리아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댓글 11건 조회 4,845회 작성일 11-01-02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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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스의 신비 티와나쿠의 말없는 돌 - 2편

-시몬 웨이스바르-

안데스의 인적 끊긴 티와나쿠의 건물들 사이로 바람이 아우성치며 휘돌아갈 때면, 이 도시를 거인족이 세웠다는 인디오의 전설이 가슴에 와 닿는다. 15세기에 잉카인들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 이곳에는 이미 장엄한 폐허만이 남아 있을 뿐, 사라진 주민들의 행적을 알 길이 없었다. 오늘날 우리들도 그들보다 더 안다고 할 것이 없다. 다만 티와나쿠에서 다섯 도시들이 융성했다가 멸망했으며, 각각의 도시는 앞서 있었던 도시의 폐허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따름이다. 오직 마지막 도시만이 아직도 찾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다. 신비에 싸인 거대한 건물들을 통해서.....
사진#01
티와나쿠에 있는 태양의 신전, 칼라사사야의 입구.

해발 4000m가 넘는 안데스의 황량한 고원에 까마득히 잊혀진 찬란한 문명의 자취가 남아 있다. 티와나쿠는 지진으로 인해 일부가 파괴된 채, 티티카카호수의 볼리비아 쪽 호반 가까운 황무지 한복판에 바람을 맞으며 서 있다.

누가 이 도시를 세웠을까?
누가 이곳에 살고 다스렸을까? 그리고 언제?
이 도시는 남아메리카대륙에 제국을 건설한 어느 강력한 국가의 정치 행정 및 문화의 본거지였을까?
그것이 아니면, 거룩한 축제 기간에 선물을 든 순례자의 무리들이 찾던 성소였을까?
혹은 고양이나 맹금(猛禽)의 탈을 쓴 점장이들이 이상한 의식을 주재하던 안데스의 신들의 도시였을까?

남아메리카의 일부 고대 문화권과는 달리, 티와나쿠의 백성들은 기록을 남기지 않은 듯하다. 조상(彫像)에 잇는 홈들이 그림문자일 수도 있지만, 아직은 아무도 그것을 판독할 수 없다. 인디언의 전설은 티티카카호수 안의 어느 성스러운 섬에 상징적 기호들이 새겨진 금, 구리 또는 은으로 만든 '성스러운 명판(銘板)'이 숨겨져 잇다고 전한다. 이 죽은 도시에 관한 것은 무엇이나 현실보다도 신화와 전설의 냄새를 더 짙게 풍긴다.
사진#02
이 거대한 석상들은 오래전에 인적이 끊긴 티와나쿠의 터전을 지키며 수백년 동안 서 있다. '주교'라는 별명이 붙은 이 거대한 석상에는 판독할 수 없는 기호가 새겨져 있는데, 어떤 신이나 대사제의 석상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 석상은 약 2000년 전에 꽃피었던 미지의 문명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사진#03
해발 3812m의 티티카카호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도에 위치한, 배가 다닐 수 있는 호수다. 그 안에 흩어진 섬 가운데서 제일 큰 것은 태양의 섬이다. 그 언덕에는 아득한 옛날에 만들어진 계단식 밭이 있다. 호수의 물속에 고대의 궁전이 잠겨 있다는 이야기를 근거로 과학자들은 호수의 물속을 탐사했다. 그들은 물속에서 높은 성벽과 포장된 도로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16세기에 전설의 보물을 찾아 나섰던 스페인 왕 카를로스 1세의 용병들이 이미 사람이 살지 않던 이 도시에 당도했다. 그들은 그 지방에 살며 거대한 기하학적 석상의 발치에 제물을 갖다 바치던 인디언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잉카족이 그들보다 100여년 앞서 그곳에 살았는데, 잉카족도 그 신비로운 도시는 벌써 오래전에 파괴되고 인적이 끊어진 것으로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도시가 언제 세워졌느냐고 스페인 용병들이 묻자, 인디언들은 구전되어 오는 얘기를 전해 주었다. '홍수가 진 뒤에 미지의 거인들이 하룻밤 사이에 티와나쿠를 세웠다. 하지만 그들은 태양이 다가와 그 빛으로 인간의 씨가 마르고, 그들의 궁전은 잿더미가 되리라는 예언을 무시했다...' 이 이야기를 전한 스페인 사람들은 티와나쿠의 폐허가 '인간의 작품이라기보다는 악마의 작품' 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전설의 모호한 내용은 사실을 밝혀주기보다는 역사가들의 호기심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했다.

티와나쿠와 그 기원을 둘러싸고 갖가지 이론이 나왔다.
이 도시의 역사를 아득한 옛날에서 찾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 도시를 아메리카 대륙인의 발상지라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진지한 학자들은 이곳을 잉카제국과 어깨를 겨룰 만한 제국의 수도로 묘사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아틀란티스의 수도, 또는
수백만년 전 우주복을 입은 우주인들이 세운 비너스시(市)로 보기도 했다.

수백년 동안 콜룸부스 이전의 이 수수께끼는 풀 길이 없는 듯했다.
티와나쿠는 무수한 공상과 환상을 불러일으켰다.
이토록 많은 열띤 억측을 일으킨 고고학적 유적은 몇 없을 것이다.
사진#04
전해오는 얘기에 따르면, 한때 티티카카호수의 물결이 티와나쿠의 성벽에 찰랑대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 티와나쿠는 그 물가에서 20km 떨어진 곳에 폐허가 되어 있다. 이 호수의 면적은 8300km² 이지만, 계속 물이 줄어들고 있다. 수백년이 지나는 동안에 수위가 많이 낮아졌다.

1892년에 독일 학자 막스 울레와 알폰스 슈튀벨의 관찰을 바탕으로 티와나쿠 유적을 과학적으로 기술한 최초의 글을 발표했다. 2년 후 울레가 현장을 찾았고, 그 뒤에 안데스의 다른 큰 문화들과 비교하여 티와나쿠 문화를 연구하였다. 울레는 주로 도기의 잔해를 통하여 티와나쿠 양식이 얼마나 널리 영향을 미쳤던가를 추적할 수 있었다.

1903년에는 크레키 드 몽포르 백작이 이끄는 프랑스 과학탐사대가 다시 발굴작업을 시작했다. 이 발굴은 매우 제한된 것이었지만, 작은 신전 같은 것을 발굴해 냈다. 이 건물은 반쯤 지하에 세운 것이었는데, 벽에는 핏빛 사암에 조각한 두상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1932년 미국인 웬덜 C. 베니트가 이끄는 고고학 조사단이 그 신전 경내에서 티와나쿠 최대의 거상(땅밑 3m 에 묻혀 있던 높이 약 7m의 거상)을 발견했다. 높이가 2.5m 쯤 되는 또 다른 거상이 옆에 누워 있었다. 이 역시 빨간 사암으로 조각된 것이었으나, 그 양식은 큰 거상과 전혀 달랐다.

고풍스런 두번째 거상의 미소를 짓는 듯한 얼굴은 그보다 뒤에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되는 티와나쿠의 기하학적 거상들의 근엄함과는 대조를 이룬다. 이 조상(彫像)은 이 지역에 최초로 들어간 스페인 사람들이 전해 준 가장 기묘한 전설들 가운데 하나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 전설은 안데스 세계를 창조한 텁석부리 백색 신(神), 콘 티키 비라코차의 이야기다. 그는 지나는 길에 있던 여러 도시들을 삼켜버린 홍수 뒤에 티와나쿠에 나타났다고 전해 진다.

붉은 돌로 된 그 조상은 접시 모양의 눈을 갖고 잇으며, 그 위에 짙은 눈썹이 한일(一)자로 붙어 있어, 코와는 T자 모양을 이룬다. 그의 짙은 콧수염은 두꺼운 입술을 감싸고는 붓끝처럼 뾰족한 턱수염과 만난다. 아메리카대륙의 원주민들은 거의 수염이 없으므로, 이 형상을 보고 학자들이 어리둥절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작은 우상을 좀더 면밀히 연구한 일부 고고학자들은 보다 그럴듯한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 콧수염과 턱수염으로 보이는 수염이 사실은 '나리구에라(당시의 신관들이 착용하던 황금 얼굴 장식)' 였을까? 나리구에라는 코에 걸고, 얼굴 아래쪽을 덮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얼굴은 나리구에라로 장식되었다고 치더라도, '백색' 신의 신비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는다.
사진#05
1903년 크레키 드 몽포르 백작이 이끄는 프랑스 탐사대가 발굴하고, 1964년 볼리비아의 고고학자들이 복원한 신전. 푹 꺼진 마당 한복판에 조각으로 장식된 3개의 붉은 사암(砂岩) 기둥이 서 있다. 옥외 의식이 여기서 거행되었을 것으로 믿어진다.
사진#06
붉은 사암으로 조각한 기묘한 두상들이 신전 벽에 박혀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발굴과정에서 이러한 두상이 수십게 나왔는데, 높이는 7~36cm. 두상들은 무질서하게 벽을 장식하고 있다.

작은 신전의 안벽에 지금도 붙어 있는 것들과 비슷한 돌로된 두상이 계단식 대지(臺地)에서 붉은 돌로 만든 거상의 발치에묻혀 있다가 발견되었다. 이 두상들은 피비린내 나는 머리사냥 의식을 생각나게 한다. 티와나쿠에 머리모양의 의식용 화병들이 그 의식이 있었음을 드러내는 또 다른 증거이다. 페루의 고분에서 실제로 사람의 머리가 기묘하게 오그라든 상태로, 무덤에 누운 미이라의 허리띠에 한줌의 머리카락에 의해 묶인 채 발견된 일이 잇다. 그리고 티와나쿠는 스페인에 정복될 때까지 페루의 일부였다.
사진#07
남아메리카의 슈아르 인디안 전사들이 전쟁에서 승리하여 적의 머리를 주먹만한 크기로 축소하여 옆구리에 차고 다녔던 것으로 두개골의 머리속 내용물을 모두 빼고 인공적인 방법으로 얼굴을 축소 시켰다고 한다. 어떤 방법으로 작게 만들 수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현재에도 인위적으로 절개하지 않고 축소시키기는 힘들다고 한다.

신전에서는 잔혹한 희생의식이 거행된 것 또한 분명하다. 상아처럼 윤을 낸 목잘린 사람의 두개골이 신전에서 발견되었다. 이 두개골은 옥수수로 빚은 시큼한 술을 담는 술잔으로 쓰였던 듯하다. 옥수수 술은 신들과 그 하인들이 즐기던 술이었던 것으로 믿어진다.

그러나 과학적인 조사를 통해서 이 기괴한 죽음의 도시의 연대를 결정하고 그 기능을 설명하며, 그 흥망을 추적하는 실마리를 잡은 것은 1958년이다.

그 해를 기점으로 하여 볼리비아 고고학자 카를로스 폰세산기네스가 대대적인 발굴작업을 기획하고 수행했다. 그는 이 문명의 주요한 기념물을 가능한 한 성실히 복원하고, 티와나쿠의 잃어버린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해 놓았다.

땅바닥에 500개의 수갱을 뚫어 여러 고고학적 층(層)을 노출시켰으며 항공 사진도 찍었다.
사진#08
엄청난 천재지변으로 땅에 내팽개쳐진 것같이 보이는 돌무더기가 이 도시에서 가장 큰 건물의 하나로 손꼽히는 푸마푼쿠의 잔해다. 궁전이었을까, 아니면 신전이었을까? 어느 쪽이든 웅장한 건물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어떤 돌들은 길이가 8m, 너비가 5m 에 이른다.

티와나쿠 유적의 연대와 이 도시의 존속 기간에 대해서 어느 정도 받아들일 만한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 첫째 과제였다.

탄소-14 연대측정법
탄소-14 연대측정법으로 약 1400년에 걸친 연속적인 문화의 3단계를 구분할 수 있다. 그 기간중에 쇠퇴기와 화려한 부흥기가 번갈아 나타났다.

첫째 단계는 BC 200년 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형성기' 또는 '농민기'라 부른다.
두번째 단계는 서력 기원초에서 시작하여 4세기 후반까지 계속되었다. '도시기'라 부른다.
마지막 단계인 황금시대는 13세기에 끝난 것으로 보이는 팽창기로 이어졌다. '제국기'라 부른다.

잉카족이 15세기에 이 지역을 정복하고 아이마라 인디언들을 굴북시켰을 때 이미 도시는 폐허가 되어 있었다.

다양한 고고학적 층을 관찰한 결과 일련의 화산 폭발과 지진에 뒤이어 먼저 있었던 도시 위에 층층이 세워진 5개 도시의 흔적이 드러났다. 이 다섯 도시들이 서로 뒤엉켜 묻혀 있다는 것과 이 도시들을 설계하고 건설한 건축가들은 천재였다는 것외에는 이 도시들에 관해 알려진 사실이 별로 없다.

최종 단계인 '제국기'
최종 단계인 '제국기'의 어느 시기에 문화적 혁명이 일어나 무질서하게 퍼져 있던 도시가 엄격한 도시계획에 의한 거대 도시로 변모했던 것 같다.

방대한 규모의 장엄한 대건축물들이 세워졌고 석조건축 기술이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시기의 초기 작품들은 훌륭하게 장식되었고, 거대한 석상을 만드는 기술은 완벽의 경지에 도달했다. 조각가들은 거대한 석상들을 기묘한 상징으로 빽빽이 채웠다. 거대한 하나의 돌로 만든 대문들도 세웠다.

그중에 유명한 작품이 '태양의 문'인데 화산에서 나온 안산암 한 덩어리를 깎아 만든 이 대문은 벼락을 맞아 손상되긴 했지만 허공을 향해 입을 벌린 채 여전히 우뚝서서 티와나쿠 문화가 도달한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가장 두드러진 본보기가 되고 있다.

가장 신중한 고고학자들은 티와나쿠 유적의 진정한 의미를 찾으면서 이 지방의 전설을 면밀히 조사하여 그들의 과학적 조사 결과와 비교했다. 귀중한 전설의 가닥들이 전혀 뜻밖의 발견의 실마리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1967년 볼리비아 정부가 인가한 고학탐사대는 전설을 바탕으로 한 그런 발견을 한 좋은 예이다. 학자들은 스페인의 정복을 기록한 사가(史家)들에게 인디언들이 전해 준 홍수 이야기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들은 인디언들이 그 전설은 사실이라고 열띠게 주장하는 데 주목했다. 게다가 그 전설은 티티카카호수의 어민들이 역시 고집스럽게 되풀이하는 이야기와도 아귀가 맞아 들어갔다. 그들의 이야기인즉 안데스의 고원에 긴 건기가 닥쳐 호수의 수면이 줄어들면 물속에 잠긴 궁전의 지붕을 그들이 만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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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들은 이 석상이 성스러운 호수 티티카카에서 나왔다는 전설적인 신비라코차의 석상이라고 말한다. 이 석상은 오늘날 티와나쿠 마을 교회 현관 옆에 서 있다. 티와나쿠 마을은 신전과 궁전에서 뜯어낸 돌로 건설되었다. 라파스시(市)의 건물을 지을 때에도 옛 도시의 잔해들이 사용되었다.

호수 밑바닥에 있는 폐허를 보았다는 인디언 잠수부들의 주장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전문적인 잠수부들이 물속에 들어갈 때까지 억측이 구구했다 높은 고도에서 잠수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잠수부들이 무거운 장비와 산소통을 메고 호수 깊숙히 내려갔다. 그들은 진흙에 덮이고 소금기 있는 물에 삭은 높은 성벽을 발견했다.

이 탐사작업중에 잠수부들은 제2의 발견을 했는데 이것이 더욱 중요한 발견이었다. 이 발견은 전혀 새로운 의문을 제기했다. 물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여러 개의 제방과 포장된 도로가 있었고, 또 정교하게 자른 돌덩이를 호수 바닥에 아주 정확하게 깔아 놓은 조각맞추기 놀이판 같은 것이 있었다.

해와 달을 경배하는 주요 인사들을 호수의 성스러운 섬들로 실어나르던 배들이 전용으로 쓰던 바둑판 모양의 부두였을까? 혹은 장례선들이 이곳으로 와서 고위 인사들의 미이라를 싣고 오래전부터 호수의 물속에 잠긴 어느 거대한 묘지로 갔던 것은 아닐까? 다른 곳에서는 일찍이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없는 고고학자들은 아직도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널리 알려진 한 이론에 다르면 티와나쿠 고원의 성도(聖都)로서, 여러 세대에 걸쳐 순례자들이 찾아와 서서히 쌓아올렸다. 순례자들은 지금은 잊혀진 종교력(宗敎曆)에 따라, 때로는 아주 먼 지방에서 행렬을 이루며 찾아왔다는 것이다. 때로는 커다란 신전들에 수천명의 예배자들이 묵었던 듯하고, 그들은 선물과 제물을 한점씩 지고 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그들은 갖가지 물건들을 남겨 그들이 떠나온 여러 문화의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하지만 고고학자들은 지금까지 그런 다양성을 입증하는 분명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제까지 찾아내서 조사한 물건들은 실용적이든 의식적이든 모두 티와나쿠의 전형적인 양식만을 가리키고 있다. 따라서 수많은 외부문화의 순례자들이 이 도시로 몰려왔다는 주장은 빈약한 증거 때문에 기반을 잃고 있다.

티와나쿠 도시의 주민 생활
사진#10
볼리비아의 고고학자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여 티와나쿠의 일부를 복원했다. 태양의 신전 칼라사사야의 계단도 그들이 복원한 것이다. 계단은 땅바닥에 박힌 커다란 돌덩어리로 되어있다.

다른 고고학자들은 티와나쿠가 순수한 종교 중심지라고 오랫동안 믿어 왔다. 이 도시는 방대한 규모로 높은 명성을 누렸지만 박수, 마술사, 점장이 그리고 거상을 숭배하는 강력한 종교의 예언자들이었던 소수의 대신관들만이 살았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지금의 폐허만으로도 20헥타르가 넘을 정도로 석조 기념물은 크기가 넉넉하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주거터의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 도시를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게 되면서 전혀 다른 의견이 나오고 있다. 티와나쿠는 공공문화 중심지를 교외 지구가 에워싸고 있는 듯 보인다. 도공, 직공, 금세공장인과 그밖의 금속장인, 목축업자, 농민 등 일반 주민들은 그 교외에 살았으리라는 것이다.

이전에는 이 변두리의 교외지대를 못 보고 넘긴 이유는 간단하다. 오늘날까지 눈으로 볼 수 잇는 웅장한 건물들과는 달리 주거지의 집들은 돌로 짓지 않고, 진흙으로 찍어 햇볕에 말린 벽돌로 지었기 때문이었다. 회반죽마저 쓰이지 않아, 일단 도시에서 사람들이 떠나버리자 먼지가 되고 말았다.
여러 세기가 지나면서 지난날 벽돌이었던 흙덩어리는 똑같은 새깔의 흙과 분간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같은 발견은 티와나쿠가 종교 도시일 뿐 아니라 상주 인구가 활발히 움직이던 대규모의 노동 및 주거 도시였음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이 지방의 땅은 기름지다고 할 수는 없고, 돌투성이의 메마른 고원에서는 대규모 농경의 흔적이 아직 발견되지 못했다.

척박한 고지대의 풍토에서 최소한의 생존 수단으로 엄청난 인구를 먹여 살릴 수는 없었으리라는 견해도 있다. 그렇지만 티와나쿠가 번영을 누리던 2000년 동안, 이곳 주민들은 오늘날 이 고장 인디언들처럼 감자, 옥수수, 보리를 경작했으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때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티티카카호수에는 물고기가 많았을 것이다.

티와나쿠 유적의 거대한 돌은 어디에서?
높고 황량한 고원 한복판에 어떻게 이 기묘한 도시를 건설했느냐 하는 것이 가장 까다로운 문제로 남는다. 부근에는 이렇다 할 바위나 채석장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제국기'에 이 도시를 건설하는 데 쓰인 자재의 출처는 어디였을까?
어떤 방법으로 그 거대한 돌을 티와나쿠로 실어 날랐을까?

스페인 사람들이 이 도시를 발견한 직후에 한 예수회 사제는 한껏 비범한 재능을 타고난 어떤 존재가 '티와나쿠에서 볼 수 있는 거대한 돌덩어리들을 나팔소리에 맞춰 공중으로 운반했다'고 적었다. 그 당시에도 마술을 썼다는 설명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과학적으로 조사해 보니 티와나쿠의 대형 건물과 기념물에 사용한 석재는 응회암, 석회암, 붉은 사암, 현무암, 안산암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석재들을 티티카카호수 주변의 볼리비아와 페루 산악지대의 암석표본과 비교해 보았다. 그 결과 고고학자들은 석재를 가져온 채석장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다.
그 위치는 이 도시에서 100~300km 떨어져 있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하나의 무게가 자그마치 100t 또는 그 이상 되는 돌덩어리를 거의 평지가 없는 먼 거리를 어덯게 운반했을까 하는 문제에 부닥쳤다.

고고학자들은 또한 스페인 사람들이 이곳에 오기 오래전에 건설된 옛 도로의 흔적을 발견했다. 자갈로 포장을 한 이 도로들은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티와나쿠와 이웃 도시들을 이어 준다. 그중 몇 가닥은 폐허 가까이에 있는 오늘날의 티와나쿠 마을 장터로 가는 농민들이 지금도 이용하고 있다.

거대한 돌을 나르다
이러한 도로와 비슷한 다른 도로들이 채석장과 티와나쿠를 연결해 주었다고 가정한다 해도 오늘날의 최고 기술자들까지도 그들이 과연 이 도시를 건설하는 데 사용한 거대한 돌덩어리를 잘라 운반할 수 잇을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거대한 돌덩어리들은 마치 다이스를 사용해 자른 듯이 보이는데, 현대 기술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그 일을 해냈다는 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그들은 철과 바퀴를 몰랐던 게 분명하므로, 신비로운 건축가들이 짐승이 끄는 수레를 이용했을 리도없다.

거대한 돌덩어리나 석상을 어떻게 운반했는가를 설명하는 글이나 그림도 전혀 없다. 이것이 티와나쿠의 건축가들이 어떤 기술을 사용했는가를 밝히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먼 거리를 극복하지 못할 장애로 보지는 않았던듯 하다. 아마도 그 비밀은 엄청난 노동력에 있었을 것이다.

공공의 토목공사에 관련되는 모든 문제를 담당했던 일단의 전문가들이 있었을 것이다. 아마 그중 몇 사람은 지형을 고려하여 석재 운반에 필요한 인원수를 계산하는 일을 맡았을 것이다. 돌덩어리를 끌어오는 데 사용할 밧줄을 준비하는 일을 맡은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야마 가죽이나 아주 질긴 식물 섬유로 밧줄을 만들었을테고 운반할 돌덩이에 따라 그 길이와 굵기를 결정했을 것이다.

무거운 돌을 운반할 때에는 땅을 계단식으로 정리하고, 그 위에 비탈길을 만든 다음 물에 이긴 진흙을 그 위에 덮어 포장을 했을 것으로 과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그보다 가벼운 돌은 여러 사람들이 두개의 막대와 질긴 섬유나 가죽으로 만든 들것 비슷한 장치를 사용해서 나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곳에 따라서는 자연적인 장애로 육상 운반이 전혀 불가능했다.
예를 들어 티티카카호수의 반도에 자리잡은 코파카바나에서 나오는 안산암 덩어리를 실어나를 때에는 호수를 이용하는 대안이 사용되어야 했다. 이 수수께끼를 푸는데 여러 달이 걸렸다.
사진#11
오늘날에도 갈대를 여러 겹으로 엮어서 호수에 띄우고 그 위에서 생활을 하는 인디오들이 있다. 이런 갈대 뗏목에 티와나쿠의 거석을 싣고 호수를 건넜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호숫가에 있는 티와나쿠에서 22km 떨어진 이구어구에에서 우연히 그 실마리를 찾았다.
거기에는 폐허의 도시에 있는 것과 똑같은 돌기둥들이 넓고 길다란 도랑에 지금도 누워 있다. 그리고 콜롬부스 이전 시대의 도로 하나가 그리로 나 있다.

계절에 따라 티티카카호수의 수위는 크게 변하기 때문에 이 선착장은 어떤 때는 물 밑에 잠기고, 어떤 때는 물 밖으로 드러난다. 그 돌기둥들은 코파카바나 부근의 물가로 끌려와서 배에 실렸을 것이다. 발사나무로 만든 대형 뗏목이 호수의 수위가 가장 높아지는 우기에 호수를 왕래했을 것이다. 몇 달 뒤에 건기가 찾아와 물이 줄어들어 도랑이 마르면 돌을 꺼내 갈 수 있을 것이다. 거기서부터는 육상으로 돌을 운반했을 것이다.

볼리비아의 과학자들은 실험을 통하여 그들의 가설이 옳다는 것을 입증했다.

먼저 그들은 뗏목과 작은 돌덩어리를 이용하여 교묘한 수상 수송법을 시험해 보았다.
이어 반 톤이 넘는 바위덩어리로 육상 수송법을 실험했다. 6명의 인디언 병사들이 밧줄로 그 돌을 끌었다.
두 가지 실험은 모든 면에서 결정적으로 그들의 가설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신비가 풀리지 않고 있다. 학자들이 근기있게 조사를 했지만 티와나쿠의 주민들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고, 많은 의문이 풀리지 않고 있다.
사진#12
불가사의한 이 형상은 창조의 신 비라코차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티와나쿠에 잇는 태양의 문 가운데 상인방에 조각되어 있다. 푸마의 가면을 쓰고 오그라든 머리로 장식하고 있으며, '콘도르'의 홀을 들고 있다.
사진#13
거대한 태양의 문. 안산암 한 덩어리를 다듬어 만든 이 구조물은 티와나쿠의 동쪽을 향하고 있다. 상인방을 장식하고 있는 조각 가운데 콘 티키비라코차의 상(像)도 들어 있다. 조각들은 티와나쿠의 전형적인 양식으로 되어 있으며, 채색 화병과 피륙에서도 동일한 모티브를 찾아볼 수 있다. 새겨진 기호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역법을 설명하고 잇다고 생각되나 온갖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신비로운 기호들은 판독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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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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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마의 가면을 쓴 브라코차가 양손에 들고 있는것의 의미는 차치하고라도 일단 <br />손가락이 네개... 군요??? <img border=0 align=absMiddle src="http://www.sunjang.com/alditor/emoticons/10.gif" />

메리아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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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730|1--]비라코차를 새긴 그림들을 비교를 해보면 차이를 알겠지요....<br />의문이 들면 다른 곳에 그려진 비라코차 그림들 손가락도 찾아보시면 의문이 해결될듯 싶군요....^^

여로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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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메리아빠님,<br />좋은자료 감사히 잘 봤습니다.</p><p><b>한가지 회원님들과 같이 생각해보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b></p><p><font color=#006bd4>거의 같은 위도상에서 혹은, 섬으로 이루어진곳이나 반도에서<br />상기사진자료중의 석상 "모자형태"가 어김없이 발견되는것이 대단히 놀랍습니다.</font></p><p><b><font color=#fe1100>예를들어 이스터섬 모아이석상의 모자형태,그리고 우리나라 제주도의 돌하루방의 모자형태....</font></b></p><p>제키리아시친이나 데니컨의 저서에서도 비슷한 뉘앙스로 언급한 글이있지만,</p><p><b>제주도의 돌하루방과 모아이석상의 너무나 비슷한 분위기가 꼭 밝혀져야할 <br />연관관계가 이닐까 생각해봅니다.</b></p><p>좋은 의견들 부탁드립니다.<br /></p>

메리아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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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736|1--] <p>남방계 해양문화의 석상 비교 자료를 예전에 보았는데...<br />그 자료를 한번 찾아보아야 겠네요....</p><p>일단 이번 주 주말에는 달 관련해서 지식탐험자님과 의견 교환하는 자료를 만들어야하니 </p><p>이 자료는 시간이 나면 한번 만들어 보겠습니다.</p><p>자룔 좋게 보아주셔셔 감사 합니다.....꾸벅 <img border=0 align=absMiddle src="http://www.sunjang.com/alditor/emoticons/19.gif" /></p>

비슈느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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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메리아빠님 좋은 자료 잘 보았습니다~^^;</p><p>꼭 한번 가보고 싶은곳 이군요..;;</p><p>직접 가서 실제로 접했봤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 합니다.^^;</p>

여로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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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737|2--] <p>예 감사드립니다...</p><p>모쪼록 바쁘시더라도 좋은글 자주 뵙길 바랍니다^^</p>

메리아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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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743|1--]ㅎㅎㅎㅎ....<br />미스터리 관련은 1편, 2편이고<br />정식 역사 연대로 분류되어잇는 정사 부분만 아직 다루지 않았네요....<br />근데 이건 책 몇권 정리를 해야 되서 귀찮아서 그냥 패스하고 싶군요.....^^

신크마리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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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730|1--] <p>손가락 네개부분 검색해보니 저 홀과 화살을 들고있는 부조화에서는 대부분 4개로 표현되어지고 석상이나 다른것을 들고 있을때 드물게 5개의 손가락이 다 나와있네요... 아무래도 긴 물체를 잡으면서 편하게 둘째 손가락을 가리고 있는 모양새로 된게 아닌가 싶네요...특별히 손가락 4개의 신으로 표시되는 신은 아닌듯합니다....</p><p>  검색중에 재밌는게 비라코차를 설명한 외국사이트중에 머리에 태양관을 이스라엘 12지파의 상징 식으로 막 짜맞춰서 성경식으로 표시한게 있네요...저도 기독교(교회에서는 인정못받는..ㅋㅋ) 성향이지만 이런건 좀 아니지 싶어요....십자가들고 가서 그만큼 약탈하고 뿌리를 뽑았으면 됬지 아직 할게 남았나 보네요..에휴</p>

프리티우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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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이 100 톤이 넘는다는데, 반톤이 넘는 돌을 가지고 실험한 걸로 가설을 인정하려고 한다는 것은 좀 아니라 생각되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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