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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문명] 초고대문명은 존재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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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겨울의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댓글 5건 조회 1,689회 작성일 08-05-16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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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대문명은 존재했는가?


* 이 글은 '과학동아 1997년 10월호'에 게재되었던 내용입니다. 올해가 2006년인데...오래되었다고요? 초고대 문명을 생각하면 찰라의 순간이죠 ^^;

1003947885.jpg 지금부터 4천년전 현재문명에 버금가는
높은 수준의 초고대문명이 존재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낳은 모체가 과연 존재했을까?

오랫동안 이집트문명에 깊은 관심을 보여온
두 논자의 상반된 주장을 통해 베일에 싸인 고대의 신비를 풀어보자.

let_icon1.gif 1. 대피라미드와 돌항아리의 비밀



대피라미드 건축의 비밀 - 돌의 무게 6백만t 이상


맹성렬 /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박사과정

"찬성"

이집트 나일강 삼각주 정점에 위치한 기자 지역에
세계 최고(最古), 최대 규모이면서 가장 정밀한 석조 건축물이 우뚝 서있다.

주류 고고학계에서도 4천5백여년 전에 건축됐다고 인정하는 이 건축물이 과연 그 옛날 석기와 청동기만을 사용했을 미개인들이 만든 것일까?

많은 고고학자들은 당시가 절대왕권 체제로서 자본과 노동력, 그리고 시간을 무제한으로 투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대피라미드의 건축이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의 요점은 석기와 간단한 청동기 도구로 석회암을 채굴하고, 통나무와 지렛대, 그리고 윤활유를 사용해서 돌을 운반했으며, 완만한 경사로를 피라미드 상부까지 건설해서 돌을 쌓아올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이 언뜻 생각하기에 가능할 것 같아도 건축의 규모를 헤아려보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1003947968.jpg우선 사용된 돌의 양은 상상을 초월한다.

대피라미드를
한변의 길이가 30cm인 정육면체 블록으로 쪼개면
지구 둘레의 3분의 2까지 늘어놓을 수 있다.
무게로 따지면 총 6백만t이 넘는다.

이정도 규모의 토목건축사업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당시에 충분한 사회적 구조가 뒷받침됐음을
의미한다.

토목건축사업은 여러 기술과 산업들이 총집결돼 이루어지는 것으로 건축 당시 과학기술력의 전체적인 수준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건축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오늘날과 같은 초첨단 장비를 동원하지 않고
대피라미드를 건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대피라미드 건축에 적용된 오차의 범위가
오눌날의 건축물에 비해 훨씬 작기 때문이다.

현대 기술 뺨치는 정밀성

예를 들어 오늘날 가장 정밀한 건축물의 대표격인 파리 천문대와 그리니치 천문대는 각각 정확히 자오선(어떤 지점에서 정북과 정남을 따라 천구에 상상으로 그은 선)과 일치하도록 설계됐다.

하지만 실제로 측정한 결과 각 천문대는 자오선 방향에 대해 6호분과 9호분씩 틀어져 있었다.
이에 비해 대피라미드는 3호분 남짓 어긋나 있을 뿐이다. 또 오늘날 레이저빔을 이용한 초정밀 수준기(평면의 수평 정도를 측정하는 기계)로 건설되는 건물의 수준 오차는 전체 규격의 0.2% 남짓인데 비해 대피라미드는 전체 밑면적에서 겨우 0.03% 정도의 오차를 보여준다.

즉 대피라미드 건설에 적용된 기술과 기능이 오늘날보다 월등히 우수한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일부 고고학자들은 당시 이집트인들의 기능적인 능력을 극찬하면서
그들이 초인적인 노력으로 이런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건축의 정밀도가 전적으로 기능에만 의존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보다 당시에 매우 발달한 기술 수준을 반영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즉 그들의 초인적인 기능을 인정하더라도 최소한 대피라미드가 건설될 때 오늘날의 정밀 측정기에 버금가는 기기가 사용됐음에 틀림 없다.

이런 증거는 초고대에 구현된 다른 기술적 업적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까마득한 옛날에 현재와 같은 수준의 문명이 존재했음을 확인시켜준다.

선왕조 시대에 제작된 돌항아리의 신비

대피라미드는 기원전 3천8백년 전에 건설되기 시작됐다고 한다.

즉 상·하 이집트가 통일돼 왕국이 형성되기 이전에 이미 대피라미드와 같은 초거대·초정밀 건축을 할 수 있는 문명이 이집트 땅에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고대 이집트 통일 왕국은 씨족사회와 부족사회, 그리고 다음 단계인 부족 국가 형태를 거치면서 더욱 발달한 국가가 아니라 오히려 찬란한 수준의 고도 산업사회 붕괴 후에 다시 시작한 문명이었음이 명백하다.

1003948045.jpg이런 설명을 지지해주는 또다른 증거가 있다.

대피라미드 건설 수준에 어울리는 정밀가공 기술이 그것이다.
정밀가공 기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증거물은 기원전 4천년 경 선왕조 시대에 발견되는 돌항아리다.

주류 고고학자들은 왕조 형성기 이전이 부족 국가의 신석기 시대였으므로 당시 신석기 항아리가 만들어진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항아리에 적용된 기술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항아리가 미개 문명의 뉘앙스를 풍기는 신석기 시대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의 왕조시대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갈수록 돌항아리들은 현무암, 화강암, 섬록암과 같이 쇠보다 강한 암석을 깎아서 만든 것들이 주종을 이룬다.

일부 고고학자들은 이 돌항아리들이 제례 의식을 위해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특별히 제작한 수공업제품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항아리의 수는 3만여개가 넘는다.
즉 그 옛날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된 것임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서 항아리가 대량으로 만들어진 것일까?

고성능 모터가 동원돼야

돌항아리의 안팎 표면을 자세히 조사한 결과,
항아리를 회전시키며 가공한 것이 틀림없음을 증명해주는 미세한 동심원 모양의 가공 흔적이 발견됐다.

항아리 제작에 선반이 사용됐음을 알려주는 증거다.
이는 우리 인류의 기술사에 일대 지각 변동을 초래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발견이다.

선반 작업은 물체를 고속으로 회전시키면서 절삭 공구로 안팎을 깎아내는 공정이다.
하지만 현무암같이 쇠보다 단단한 돌을 절삭하는 일은 오늘날의 특수한 공구로도 불가능하다.

설령 그런 용도의 절삭 공구가 개발된다고 해도
공구와 물체 사이에 높은 압력을 걸어줘야 한다. 또 물체가 초고속으로 회전해야 한다.

19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이집트학 학자 플린더스 피트리는 이런 가공에 최소한 2t 이상의 압력이 가해져야 한다고 추정했다.

오늘날 석재 가공 전문가들은 이보다 훨씬 큰 압력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압력을 공구로부터 받는 돌덩어리를 과연 초고속으로 회전시킬수 있을까.

이런 조건에 절삭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오늘날 기계 가공에 사용되는 고성능 모터같은 것이 필연적으로 요구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모터는 오늘날처럼 전기에 의해 구동됐을까.

만일 그 옛날 이 모든 조건이 구비됐다면, 당시는 신석기 시대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향유하는 모든 것이 존재한 고도의 산업 사회였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런 고도의 산업 사회를 가정하면,
6백만t의 돌들을 채석하고 운반하고 쌓아올린 기술의 수수께끼도 쉽게 풀린다.



이집트인이 만들었다 - 돌 성질 파악하면 충분히 가능


이종호 / 한국 이동에너지기술연구소 소장

"반대"

피라미드는 어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다.
비록 현대인들에게 거대한 피라미드에 많은 비밀이 간직돼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피라미드는 고대 이집트인들에 의해 당시의 기술로만 건설된 것이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논할 때마다 우선적으로 대두되는 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신석기 후반으로 볼 수 있는 고대 이집트에서 어떻게 커다란 피라미드들을 건설했는가 하는 점이다.

우선 피라미드를 만든 공구와 방법에 대해 살펴보자.

이집트인이 사용한 공구는 단단한 돌덩어리, 나무에 묶는 원형 망치나 도끼류, 날카롭게 갈은 칼과 같은 돌 종류와 동과 같은 금속류로 만든 칼이나 가위다.

구리와 같은 연한 금속의 경우 현재의 합금과 같이 몇가지 불순물을 사용해 강도를 높이는 방법을 알았을 것이라는 가정도 있지만 연장의 대부분이 단단한 석재였다고 추측된다.

일부 사람들은 이런 원시적인 공구로 대형 피라미드를 건설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또 고대 이집트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돌항아리의 숫자와 가공 기술을 근거로 특수 기술을 가진 공구가 사용됐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피라미드의 건설에 사용된 돌덩어리의 거의 대부분이 석회암이라는 점을 간과했다.

석회암은 석회물질이 물밑에 쌓여 굳어진 퇴적암으로, 경도가 가장 무른 활석 다음으로 가공하기 쉬운 재료다.

따라서 고대 이집트인들이 초보적인 연장으로도
능히 자신들이 원하는 규모로 재단하거나 가공할 수 있다. 시카고 대학의 레너 교수는 50명도 채 안되는 인원과 3주일이라는 한정된 시간에 0.75t에서 3t에 달하는 1백86개의 돌로 8층짜리 피라미드를 고대의 연장만으로 건설했다.
즉 고대인들이 충분히 피라미드를 건설할 수 있었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어떤 사람은 피라미드 안에 단단한 화강암이 사용됐는데, 이것을 어떻게 가공했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화강암도 돌의 형태와 결을 잘 알면 쉽게 가공할 수 있다는 것을 석공들은 잘 알고 있다.

화강암이 석회암보다 단단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화강암은 6각의 얇은 판모양의 운모, 기둥 모양의 석영, 두꺼운 판모양의 장석 등 3가지 성분이 비균질적으로 섞여 있다.

그래서 어떤 때는 화강암이 설탕처럼 쉽게 조각으로 부서지기도 한다.

비탈길 타고 돌 운반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돌항아리가 만들어진 것도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특수 기술을 사용해 만들었을 것이라는 돌항아리는 현재도 이집트 일부 지역에서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기법을 그대로 사용해 만들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관광지에서 옛날 수법 그대로 고대 유물을 복제해 판매하는 것과 같이 이집트에서도 단단한 돌항아리의 속을 파내 관광객에게 팔고 있음을 볼 때
특수 기술을 사용했다는 설명은 다소 과장으로 보인다. 대형 돌들을 채석장에서 절단하는 방법론도 논란거리가 되곤 한다.
그러나 채석장에서 돌을 추출할 때 나무 쐐기를 박고 뜨거운 물을 부으면 쐐기의 부피가 증가해 간단하게 절단이 가능하다.

실제로 이집트의 채석장에서 수백t의 대형 돌기둥인 오벨리스크가 미완성인 채 발견됐는데,
이곳에 쐐기를 사용한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1003948155.jpg 그렇다면 대형의 돌은 채석장에서 어떻게 기자 지역으로 옮겨졌을까.

기자의 대피라미드 석재는
기자 지역 외에 2곳의 채석장에서 공급됐다.

피라미드 외벽용으로 사용된 매끄러운 석회석은
기자 지역 근처의 카이로에서 50km 떨어진
투라에서 채석됐다. 그리고 피라미드 내부에 사용된 화강석은 카이로에서 9백km 떨어진 나일강의 첫번째 급류 부근에 있는 아스완에서 가져왔다.
평균중량 2.5t,큰 것은 70t이되는 돌덩어리를 아스완에서 운반하는 작업은 쉬운일이 아니었다.

이 문제는 나일강이 범람하는 시기에 거대한 거룻배로 돌을 운반하고, 항구에서 현장까지 썰매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대피라미드 남쪽에서 발견된 '제1 태양의 배'는 당시 이집트의 건조 능력을 보여준다. 현재 원형이 복원돼 전시되고 있는 이 배는 좌우측에 5명씩, 그리고 배 앞뒤에 1명씩 총 12명의 노젓는 사람에 의해 운행된 것으로 보인다.

배의 규모를 볼 때 총길이 42.3m, 폭 5.6m로서
한번에 약 1백50t의 물건을 운반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피라미드 건설에 대한 가장 큰 논란거리는
어떤 방법을 사용해 원하는 높이까지 거대한 돌을 옮겼냐는 것이다.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비탈길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즉 피라미드 한쪽 옆면에 경사로를 만들고 지레를 설치해 썰매에 얹혀진 돌덩어리를 상부로 끌어당기는 방식이다. 피라미드가 높아질수록 비탈길의 길이가 길어지는데, 이때 비탈길이 주저앉지 않도록 경사각은 항상 거의 10도를 유지했다.
실제로 대피라미드에 대한 근래의 조사에서 이런 증거가 발견됐다.



let_icon1.gif
2. 피라미드에 담긴 수치의 의미



주도면밀하게 작성된 설계도면 - 지구 크기 알고 있었다


맹성렬 /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박사과정

"찬성"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대양 항해를 위해 선원을 모집할 때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선원들이 지구가 편평해서 멀리 나가면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2천년 전 고대 이집트에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상식이었다.

기원전 6세기경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가 이집트를 방문했을 때 이집트 신관으로부터 지구가 마치 둥근 도자기처럼 생겼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어떻게 고대 이집트에 지구 모양에 대한 지식이 전해왔던 것일까.
그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는 대피라미드가 건설되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대피라미드에 적용된 것과 같은 초정밀 측량 기술로만 지구의 구부러진 정도를 감지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실제로 대피라미드 건설 시기에 지구의 형태에 대한 정보가 있었다면,
대피라미드 건축에 적용된 기본 단위가 지구의 크기를 반영하고 있을지 모른다.

대피라미드의 구조가 매우 정밀하다는 것은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주도면밀하게 작도된 설계도면대로 지어졌음을 의미한다.
또 이런 도면을 그리기 위한 측량의 기본 단위가 존재했음을 말해준다.

실제로 이집트 건축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대피라미드 건축에 '로열큐빗'이라는 최소 기본 단위가 적용됐다고 주장한다.

이 설명에 따르면,
대피라미드 밑변 둘레의 길이는 1천7백60로열큐빗이 되도록 설계됐다고 한다.

대피라미드 밑변 둘레는 9백21.46m이다.
이 값으로 1천7백60로열큐빗을 나눈 1로열큐빗은 0.52356m가 된다.
(실제로 고대 이집트에서 평균적으로 사용된 1로열큐빗은 0.5236m이다)

그런데 이 값에 6을 곱하면 3.1413m가 된다.
원주율 3.1416과 불과 0.01%의 차이를 보여주는 값이다.
즉 1로열큐빗은 1m가 지름인 원의 6분의 1, 즉 60도에 해당하는 원주의 길이다. 1004018427.jpg 그렇다면
근대에 프랑스 학자들에 의해 정해진 미터법이
대피라미드 건축과 어떻게 연관된 것일까.

1m는 지구의 극과 적도를 잇는 자오선 길이의 1천만분의 1이다.

이 사실은 대피라미드 설계자들이
지구의 자오선 길이를 매우 정확하게 알고
있었음을 증명해준다.

대피라미드의 설계도면을 살펴보면 또한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대피라미드 설계에는 내부의 주요 시설과 통로의 연결마디를 결정하는데 서로 중심을 지나는 3개의 원이 사용됐다.

그런데 이 원들의 치수에는 고대 이집트에서 사용된 또다른 단위인 '신성한 큐빗'이 적용됐다.
반지름은 60'신성한 큐빗'이다.

'신성한 큐빗'을 로열큐빗에 대응시키면 1백20'신성한 큐빗'이 1백46.182로열큐빗이므로,
1'신성한 큐빗'은 0.63784m다.

이 값은 지구의 적도 반지름의 1천만분의 1인 0.63770m와 0.02%의 차이를 보인다.

즉 고대 이집트인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물론
지구의 매우 구체적인 형태와 규격까지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로열큐빗과 '신성한 큐빗'이 숫자 '60'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60진법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사용됐다.

대피라미드의 설계자들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있었던 것일까?

인류 최초의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은 공통의 뿌리를 갖고 있으며, 이들 두 문명의 모체 문명인 초고대 문명이 존재한 것은 아닐까?



땅 경계 찾기 위해 발달한 기하학 - 경험적 지식에 머물러


이종호 / 한국 이동에너지기술연구소 소장

"반대"

피라미드를 건설할 때 풍부한 기하학적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일부 고고학자들은 기하학의 요람이 이집트임에 동조하고 있다.
이들은 이집트에서 기하학이 발달한 이유의 하나로 나일강의 범람을 제시한다.

범람기가 끝나 물이 모두 빠지면
나일강 연변은 상류에서 흘러 내려온 퇴적물에 의해 더없이 비옥한 땅으로 변한다.

그러나 홍수 때문에 잠겼던 경작지에서 물이 빠지고 나면, 농민들은 예전의 자기 땅을 정확히 되찾는데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물이 휩쓸고 간 탓에 자신의 땅을 알려주는 땅의 경계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집트인들은 경계를 정확히 찾기 위해 측량 기술을 개발했고,
이를 위해 측량술의 기초 학문격인 기하학을 발달시켰다. 하지만 피라미드를 만들 때 이집트인들이 사전에 알고 있던 기하학적 지식을 활용한 것인지,
아니면 우연하게 적용한 결과인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

피라미드의 경사각을 예로 들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이집트에서 건설된 거의 모든 피라미드들의 경사각은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1) tangent α = h/b = 17/18, 7/6, 6/5, 5/4, 14/11, 4/3, 7/5, 3/2, 14/9, 2/1
2) tangent β = h/d = 2/3, 14/17, 6/7, 8/9, 9/10, 1/1

만일 피라미드 건축에 높은 수준의 기하학적 지식이 적용됐다면 이렇게 다양한 경사각이 아니라 일률적인 값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전문가들은 대피라미드 건설 시기에 이집트인들이 알던 기하학은 경험적인 수치 단계를 넘어서지 않았다고 추측한다.

풀어야 할 기술적인 문제가 생기면
가장 적절한 경험상의 지식을 적용하거나 변형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수학 수준에도 불구하고
피라미드와 같은 대건축물을 만들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현상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근거로
피라미드가 특수한 문명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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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초고대지도의 정체



지구 곳곳의 오지 기록 - 남극 대륙 정확히 묘사


맹성렬 /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박사과정

"찬성"

미국 킨 주립대학의 찰스 햅굿 교수는 중세에 만들어진 지도를 연구하다,
지도가 당시의 과학기술 수준에 어울리지 않게 매우 정확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무엇보다 지도가 제작되던 때에는 탐사되지 않았던 오지들이 매우 정확하고 상세하게 묘사됐다는 사실에 그는 주목했다.

대부분의 경우 위도와 경도가 0.5도 이내에서 실제의 위치와 일치했던 것이다.
어떻게 알려져 있지 않은 지역이 지도에 정확히 표시될 수 있을까?

특히 많은 중세 지도에 오늘날에는 수km 두께의 얼음에 파묻힌 남극대륙이 정확히 묘사됐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중세의 지도들은 오래 전부터 전해오는 원본을 베끼고 짜집기해서 제작된 것이 틀림 없었다.

즉 중세의 과학기술 암흑기에 점차 잊혀지던 사실이
그 이전에는 널리 알려져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 시대의 과학기술 수준도 그리 높지 않았기 때문에 햅굿은 그보다 훨씬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원본의 기원을 찾아야 했다.

햅굿이 내린 결론은 지도가 최소한 기원전 4천년 이전 남극의 일부가 얼음에 뒤덮히지 않았던 시기에 제작됐다는 것이다.
특히 '피리 레이스 지도'라는 대표적인 지도는 이집트가 중심이 돼 제작됐음이 밝혀졌다.

또 이 지도에는 8방위 시스템 대신 12방위 시스템이 적용됐다.
12방위 시스템은 원을 30도 단위로 12분할하거나 60도 단위로 6분할하는 방법을 말한다.
햅굿은 이런 방위 시스템이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도 사용됐을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렇다면 이 지도는 고대 이집트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원조격인 초고대 문명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초정밀 측량술이 구현됐다는 점에서
대피라미드와 중세 지도는 상호보완적으로 초고대 문명의 실재를 증명한다고 볼 수 있다.



고대에 남극지도 그릴 수 있다 - 얼음 없던 시기에 탐험


이종호 / 한국 이동에너지기술연구소 소장

"반대"

16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한장의 지도가 많은 화제를 남기고 있다.
이 지도에는 남아메리카의 오지가 그려져 있으며, 현재 얼음에 덮힌 남극 대륙도 그려져 있다.
또 위도와 경도의 위치가 근대에 사용되는 것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16세기는 남극에 대륙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려져 있지 않았을 때인데,
1km도 넘는 얼음 두께 아래의 모습을 어떻게 그릴수 있을까?
과연 누가 그것을 제작했을까?

약 1만년 전까지 지구에는 현재보다 훨씬 넓은 지역에 빙하가 퍼져있었다(뷔름 빙기).

그러나 약 1만년 전부터 얼음이 녹으면서 기온이 상승하기 시작했는데,
약 6천년-5천년 전에 이르러 최고의 온도를 보였다(고온기 또는 기후최적기).
이 시기에 기온은 현재보다 높았다.

남극은 어땠을까?
지질학적 연구에 따르면 기원전 4천년까지 남극의 일부가 얼음에 덮혀 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당시 얼음이 없는 남극을 여행하면서 지도를 제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지도는 고대 메소포타미아나 고대 이집트에서 제작됐을 것으로 생각한다.
당시 지구에서 최고의 문명을 갖고 있던 지역이기 때문이다.

굳이 초문명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았어도 지도 제작이 가능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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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금도금의 수수께끼



섬세하게 금을 입힌 장식물 - 전기 사용 가능성 시사


맹성렬 /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박사과정

"찬성"

19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고고학자 오귀스트 마리에뜨는 이집트 고고국의 초대국장으로
부임해 발굴작업을 지휘하던 중 기자 대피라미드 근처에서 금도금 장식물을 발견했다.

고대 세계에서 제작된 금도금 제품은 자주 발견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도금은 두텁고 불균일해 형편없는 수준을 보인다.
중세 연금술사들이 개발한 대표적인 금도금 방법은 아말감을 이용한 것이다.

금을 수은에 녹여 아말감을 만든 후
이를 주물 표면에 입히고 열로 수은을 증발시켜 금만 남도록 하는 방법이다.
이 경우 아무래도 금박의 두께가 두껍고 균일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정밀분석 결과 대피라미드 근처에서 발견된 금도금 장식물은 전기 도금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는 얇은 두께와 광택을 지닌 것으로 판명됐다.
그렇다면 이집트 구왕국 시대에 이미 전기 도금이 이루어졌다는 말인가?

1004192106.jpg 실제로 그랬을 가능성이
대피라미드의 환기창 안에서 발견된 철제판에서도 확인됐다.

이 철제판 역시 얇은 금도금이 돼있다.

사실 인류가 전기를 처음 사용한 것은 1800년 무렵 이탈리아 과학자 볼타가 전지를
발명하기 훨씬 이전부터였다.

이보다 2천년 전 이라크에서는
연금술사들이 진흙 항아리와 구리편, 철심, 아스팔트 등으로 구성된 간단한 형태의 전지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다.

당시에 전기가 사용됐다면,
이보다 더 이전에 전기가 사용되지 않았으리란 법이 없지 않은가?

실제로 기원전 2천5백년 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만들어진 식기는 오늘날 전기 도금한 것보다 더 얇고 윤기가 나는 금도금이 돼있다.

즉 인류는 문명이 시작되던 초기부터 이미 전기를 사용해 금도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 공통적으로 존재했던 이런 기술은 아마도 이들 두 문명에 영향을 끼치고 역사에서 사라져버린 초고대문명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임에 틀림 없다.



축전지 기술 고대에 존재 - 아이디어 수준에서 그쳐


이종호 / 한국 이동에너지기술연구소 소장

"반대"

금도금 장식물의 예를 들어 대피라미드를 건설할 당시 피라미드 안에서
전기가 사용됐다는 주장이 있다. 물론 가능한 일이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컴컴한 대피라미드 안에서 어떤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횃불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피라미드 안에 횃불에 의한 그을림이 발견되지 않았다.
횃불이 아니라면 전기가 사용됐을 가능성이 크다.

벽에 새겨진 그림 중 전기를 사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도 발견됐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경우 유적지에서 발견된 항아리에
물을 넣고 전구를 접촉시켰더니 불이 들어왔다는 보고도 있다.
현대의 축전지 기술이 고대에도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이런 예는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유럽이 개화되지 않은 시기에
이미 중국에서는 화약과 종이, 그리고 나침반을 갖고 있었다.그렇다고 해서 중국에 초문명이 존재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중국인들은 자신이 발명한 제품의 효용도를
한차원 더 높은 수준으로 올려 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어느 문명의 수준을 특정한 물품으로 평가하려면 적어도 그것이 보편적으로, 그리고 시대를 이어가며 자리를 잡아가는 징후를 보여야 한다.
다빈치가 헬리콥터나 잠수함의 원리를 구상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아이디어를 놓고 중세시대가 현대와 같은 문명을 가졌다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에서
현대인들이 볼 때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수많은 개발품과 역작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만든 어떤 기술도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단절됐다면
그것은 당시의 한 아이디어에 그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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