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인 홀로코스트,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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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클베리핀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댓글 16건 조회 3,111회 작성일 10-03-18 01:29본문
출처 : http://www.usinlove.net/bbs/board.php?bo_table=z7_10&wr_id=11&cart_id=
1차대전 직후 미국과 유럽에서는 그 진위를 떠나 이 전쟁에 대한 유태인 국제은행가들의 배후 음모설이 무성했다. 서구의 유태계 언론은 이러한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이런 맥락에서 1919년 미국의 유태계 유력지 American Hebrew 에 실렸던 한 기사의 다음과 같은 구절은 눈길을 끈다:
Date | Official sources of information | Figures |
8.000.000
6.000.000
20.04.1978Le Monde (French daily paper)5.000.000
23.01.1995Die Welt (German daily paper)5.000.000
20.04.1989Eugen Kogon, Der SS-Staat (famous book of a holocaust survivor, page 176)4.500.000
31.12.1952Der Neue Herder (Enzyclop., Germany) 7th edition (p. 214)4.500.000
01.10.1946IMT-Document 008-USSR (Nuremberg Military Tribunal)4.000.000
02.05.1997USA-Today (daily paper USA)4.000.000
24.11.1989Chief Prosecutor, Mr. Majorowsky, Wuppertal, Germany (indictment 12 Js 1037/89)4.000.000
26.07.1990Allgem. Judische Wo.Ztg. (Jewish weekly, Bonn)4.000.000
08.10.1993ZDF-Nachrichten (German TV, ZDF-News Magazine)4.000.000
25.01.1995Wetzlarer Neue Zeitung (German daily paper)4.000.000
01.10.1946IMT-Document 3868-PS (Nuremberg Military Tribunal)3.000.000
01.01.1995Damals (official monthly magazine on history, sponsored by the Bonn government)3.000.000
18.07.1990The Peninsula Times (daily paper, S.Francisco, USA)2.000.000
25.07.1990Hamburger Abendblatt (daily paper Germany)2.000.000
27.01.1995Die Welt (German daily paper, quoting Chancellor H. Kohl. Minimum of 2 million)2.000.000
02.05.1997USA-Today (daily paper USA)1.500.000
11.06.1992Allgem. Judische Wo.Ztg (Jewish weekly, Bonn)1.500.000
08.10.1993ZDF-Nachrichten (German TV, ZDF-News Magazine)1.500.000
23.01.1995Die Welt (German daily paper)1.500.000
03.05.2000Die Welt (German daily paper)1.500.000
01.09.1989Le Monde (French daily paper)1.433.000
02.02.1995BUNTE Illustrierte (German weekly magazine)1.400.000
22.01.1995Welt am Sonntag (German daily, Sunday edition)1.200.000
27.01.1995Die Welt (German daily paper)1.100.000
27.01.1995IfZ (Institut for Contemporary History, Munchen, a government institution)1.000.000
03.05.2000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 (reputed German daily)1.000.000
31.12.1989Pressac, Auschwitz, Technique ... (official report on Auschwitz, commissioned by the Jewish Beate Klarsfeld Foundation)928.000
27.09.1993Die Welt (German daily paper)800.000
22.01.1995Welt am Sonntag (German daily, Sunday edition)750.000
01.05.1994Focus (German weekly magazine)700.000
23.01.1995Die Welt (German daily paper)700.000
31.12.1994Pressac, Die Krematorien ... (2nd official report on Auschwitz, commissioned by the Jewish Beate Klarsfeld Foundation)470.000
08.01.1948Welt im Film (British news reel, nbr. 137)300.000
06.01.1990Frankfurter Rundschau (German daily paper)74.000
31.05.1994Hoffmann, Stalins Vernichtungskrieg (Book on Stalin's war by a renowned German historian, p.302 f.)74.000
17.08.1994Intern. Red Cross Arolsen - Department of holocaust investigations (Ref. nbr.: 10824)66.206
- 전후 연합군은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강제수용소들의 운영과 관련된 수만 건의 독일 문서들을 획득했으나 이 가운데 독일 수뇌부가 독가스로 유태인을 대량학살하려 했음을 입증하는 문서는 한 건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유태계 역사가들은 독일이 연합군이 진주하기 전 관련문서들을 소각했거나, 혹은 독일이 모종의 암호 문서를 통해 대량학살을 조직했다고 주장한다. 어쨌든 연합군이 확보한 독일 문서들 가운데 유태인에 대한 인종말살 계획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문건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역사가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 아우슈비츠에서 유태인을 대량 살상하기 위한 독가스실이 가동되었다는 設은 독가스실이나 처형장면을 직접 목격한 적은 없다는 유태인 前수감자들의 증언에 의존한다. 이는 전쟁 중 독일이 탄환 절약을 위해 독가스로 유태인을 대량학살하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사실 연합군은 선전활동의 일환으로 강제수용소들에서 - 딱히 유태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 수감자들이 독가스로 집단 처형되고 있다는 요지의 폴란드어와 독일어로 작성된 전단을 자주 살포했다. 또한 같은 내용은 연합군이 운영하는 단파 라디오를 통해 주기적으로 전 유럽에 방송되었다.
그녀가 쓴 일기로 인해 안네 프랑크는 아마도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었던 유태인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일 것이다. 그러나 수 많은 다른 유태인 수감자들과 마찬가지로 안네와 그녀의 아버지 오토 프랑크도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나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1944년 9월, 15세의 나이로 가족과 함께 네덜란드에서 아우슈비츠에 끌려온 프랑크는 몇 주 뒤 Bergen-Belsen 수용소로 옮겨졌고 이 곳에서 1945년 3월 발진티푸스로 사망했다. 아우슈비츠에 남아 있던 중 발진티푸스에 감염된 오토 프랑크는 수용소 병원에 입원 중 병상에서 아우슈비츠에 진주한 소련군을 맞았다. 그는 1980년 스위스에서 사망했다.
"The Holocaust is something different. It is a singular event. It is not simply one example of genocide but a near successful attempt on the life of God's chosen children and thus, on God Himself. It is an event that is the antithesis of Creation as recorded in the Bible; and like its direct opposite, which is relived weekly with the Sabbath and yearly with Torah, it must be remembered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ADL bulletin - ADL on the Frontline, January 1994)
"Flanked by Holocaust survivors, Los Angeles teens and many of the film's stars, including Ralph Fiennes, Ben Kingsley, Embeth Davidtz and Caroline Goodall, Spielberg said he hoped "Schindler's List" would prove to Holocaust deniers that the murder of 6 million Jews did occur and that it would help educate children to prevent history from repeating itself... "There are Holocaust deniers who are so stuck in their hatred for Jews that neither 'Schindler's List' nor the Shoah Foundation will be able to convince them that 6 million murders actually occurred, but still we must try to convince them," Spielberg said... Survivor Helen Jonas-Rosenzweig told the director, "Schindler saved us, but you gave us our second life." Spielberg said that in the decade since the release of "Schindler's List," the world has become a "very sad place again," which shows that people "don't really learn that much from history, and they need to." (Spielberg: Won't comment on 'Passion', www.CNN.com, March 4, 2004)
"An 800-page compendium of the crimes of Communist regimes worldwide, recorded and analyzed in ghastly detail by a team of scholars. The facts and figures, some of them well known, other newly confirmed in hitherto inaccessible archives, are irrefutable. The myth of the well intentioned founders - the good czar Lenin betrayed by his evil heirs - has been laid to rest for good. No one will any longer be able to claim ignorance or uncertainty about the criminal nature of Communism, and those who had begun to forget will be forced to remember anew." (from the dust jacket of English edition, 1997)
"This was a movement staffed in its upper echelons by Jewish Communists and yet the world is comparatively silent about the holocaust and war crimes this thoroughly kosher system inflicted and the identity of the persons who were its architects. Auschwitz is on the tip of every tongue but who has heard of Kolyma, Magadan, the Solovetsky islands and the other infernal Soviet centers of human destruction in eastern Siberia? Who has seen films and books about the millions of human beings worked, frozen and starved to death in the construction of the White Sea-Baltic Canal, over which stood a triumphant, colossal statue of the Jewish communist mass murderer Genrikh Yagoda? The Jewish-communist epoch of mass murder has disappeared into history in one of the great vanishing acts of all time. Only practiced deceivers, with all the sleight of hand of the most accomplished stage magicians, could pull off such a coup against the rest of humanity. To trick mankind into focusing nearly all expiatory sentiment, monuments and commemoration on Jewish victims and brand the Mark of Cain - the very words war crime and holocaust itself - on Germany and upon Germans alone as their proprietary trademark, must be regarded as one of the most masterful achievements of psychological warfare in the annals of illusion... Israelis and American Jews fully agree that the memory of the Holocaust is an indispensable weapon - one that must be used relentlessly against their common enemy... Jewish organizations and individuals thus labor continuously to remind the world of it. In America, the perpetuation of the Holocaust memory is now a $100-million-a-year enterprise, part of which is government-funded." (Balaam's Curse: How Israel Lost Its Way, and How It Can Find It Again,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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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다크가디안님의 댓글
다크가디안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나치를 옹호할 생각은 없으나, 애시당초 600만명이라는 수치가 말이 안된다는 생각이 들긴 하네요. 유태인이 한군데에서 사는 것도 아닐테고, 그 많은 인원을 모을 수 있다고 생각이 들지는 않네요. 설상 모은다 해도 600만명이라는 수치는 그다시 유태인 인구비로 얼마나 될까? 물론 희생당해 죽어 간자들이 있다는 것은 명백하나? 왠지 숫자노름에 부풀려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지울 수가 없군요.
레바세비님의 댓글
다크가디안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p>간만에 흥미로운 글이 올라와서 리플달아보네요</p><p>일반적인 음모론과 다르게 이거는 한쪽의 잘못만있다는 논리랑은 좀다를밖에 없다고 생각하는게</p><p>학살한 사람수가 적고 많고간에 잘못은 오십보 백보다..이건데..결국 여기서 얻고가는거는 형량을 조금 낮추는거라고할까나 ..</p><p> </p>
우주도령님의 댓글
다크가디안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전쟁중 나치에 의해 유태인이 희생 된 것에 대해서 확실히 밝혀져야합니다. 생명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니까요.
아우슈비츠에서 희생된 유태인의 수가 제가 알고 있던 600만에서
위 자료에 의하면 심한것은 6만6천까지 내려간네요? 6,000,000 VS 66,000 어떤 숫자가 진실에 가까울까요?
유태인에 의해 희생당한 수가 "3~5천만명"
이런 엄청난 얘기는 상식이 부족한 저로서는 처음 접하는 것이라....
심하게 애기하면
지들이 죽인 3~5천만명을 학살한 얘기는 안하고,
6만6천명이 죽은 사건은 600만이라 100배로 뻥쳤다.
놀라웁네요. 역시 이스라엘이야~
로마시대에 유태인40억이 학살당했다는 탈무드기록은..... 짜증이난다.
백상어님의 댓글
다크가디안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역사는 승리자들에 의해 각색 되어진 베스트 셀러......패자는 악인이 될 수밖에......은폐되어 질 수 밖에 없는 모든 야사....양면성....
참숯남자님의 댓글
다크가디안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p>대학까지 16년이 넘게 받은 진실이라고 굳게 믿었던 교육들이 진실이 아니고, 언론에서 보도 되는게 전부 사실은 아니고..근래 들어 기존의 상식을 뒤집어야 하는 일들이 자주생기는 건 인터넷의 급속한 보급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br />종교, 역사, 문화, 사회현상, 과학상식, 심지어 스포츠까지..진실을 갈망하고 알고 싶어 하는 건 인간의 본능인가 봅니다. 기존의 가치관과 신념이 무너지는 게 혼란스러울 때도 있지만 진실에 다가가는 것은 긍정적이라 생각합니다. 진실이 거짓보다 잔인하더라도 말입니다.</p>
로젼님의 댓글
다크가디안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과거 소련의 스탈린에 의해 처형된 사람이 나찌에 의한 유태인 보다 훨씬 많다는 글을 읽은 적 있습니다. 유태인들이 계산하는 식으로 하면 스탈린에 의해 직접적 간접적 희생된 사람들은 2천만 까지 된다고 하든데, 이런 사실은 학교에서도 언론에서도.. 심각하게 문제로 보지 않는 모양입니다.<br />하기사 문제로 지적하는 사람이 눈에 띄게 없다는 것 이겠지요.
아이젠버그님의 댓글
다크가디안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p>어린시절 서부영화보면서 기병대, 백인은 선, 인디언은 악으로 알고 있었는데 나중에 커서 보니 기병대와 백인은 아메리카 대륙의 침략자였고 인디언들은 그 땅의 주인이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헐리웃 영화와 미국 드라마 등 매스미디어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건지.....</p><p>얼마전에도 여기에서 이런 유태인 학살관련 논쟁이 있었는데 저도 처음엔 굉장히 혼란스럽더군요. 진실은 과연...</p>
세이야님의 댓글
다크가디안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애초부터 600만명이 죽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죠..<br />누가 이런 뻔한 거짓말로 이득을 볼려나??
다크가디안님의 댓글
다크가디안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아이젠버그// 님을 말처럼 엄연히 미국이라는 나라는 영국의 부산물들이 인디언을 짚밟고 세운 나라입니다. 그만큼 역사가 짧은 나라도 극히 드물죠. 심지어는 인디언 보호구역을 만들어서 특별 관리 하고 있습니다. 달리 생각하면 강한 민족이 약한 민족을 침략해서 그곳에서 나라를 세운 것과 별반 다를게 없지요. 아직도 강대국은 식민지화된 나라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계중엔 독립된 나라도 더러 있지만, 일부러 식민지를 원하는 나라도 더러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는 제가 생각했을때 강자들의 이야기라고 생각이 됩니다. 강한자는 그만큼 역사를 바꿀 수도 있는 것이지요. 무엇보다 진실을 은폐하거나 조작하거나 아니면 무마시키는 것이 가능한 것이지요. 스탈린 역시 그 만큼 인원을 죽였지만, 연합국이라는 미묘한 베일 아래 숨긴 것도 사실이지요. 그후 coldwar가 있지만, 중요한 사실은 미국과 소련은 같이 손을 잡았던 우방국가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즉 나치를 없애기 위해서는 적대적이념도 필요없었다는 것이니깐요. 한간에 얘기로는 만약 나치가 세상을 점령했다면, 과학기술 만큼은 독보적인 수준으로 올라갔다는 말이 있더군요. 아마 현재로써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인데. 간혹 나치의 새로운 무기라든가 과학기술에 관한 문건에 나올때 놀라움을 금치 못할때가 많습니다. 나치를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결국 근본적으로 연합군이라는 '정의'도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것도 사실이라는 겁니다. 아직도 세계는 강대국 틈속에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고, 평화 아닌 평화가 얼마나 지속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누군가 세계를 바로 봐주길 원하는 것이 역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진정한 역사는 아마 신만이 자신의 기억속에 묻어 둘뿐이겠지만요.<br />
핵보일러님의 댓글
다크가디안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오히려 여러 역사적 사료들을 들춰보면 미국이 악의 축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더군요.<div><br /></div><div>실제 2차대전의 발발원인이 히틀러의 야욕?이라고 하지만 실상 진짜 전쟁원인을 보면 전혀 사실과 다르더군요.</div><div><br /></div><div> 히틀러는 영국이나 프랑스와 전쟁하는 것을 상당히 두려워 하고 있었고... 전쟁을 원치 않았습니다.</div><div>근데 영국이나 프랑스 특히 폴란드가 전쟁 하기를 원했다는 것이 정답에 가깝더군요.</div><div><br /></div><div> 폴란드를 전쟁에 순식간에 밟혀서 웃습게 보지만 실상 당시 대단한 육군 강국으로 프랑스를 넘어서는 육군전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div><div><br /></div><div>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폴란드가 2차대전 발발 얼마전 소련과의 전쟁에서 소련을 굴복시키고 영토를 획득했고 소련은 이 때문에 폴란드에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었죠.</div><div><br /></div><div> 소련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했던 폴란드는 당시 북부지방의 단치히 지방을 탐내기 시작합니다.</div><div>단치히는 당시 자유시지만 실질적으로 독일인이 사는 독일의 영토혔고.. 1차대전 후 승전국이 독일 영토의 1/3을 갈기갈기 찣어놓았기 때문에 생긴 비극의 지방이었죠.</div><div><br /></div><div> 폴란드는 이 단치히 지방을 독일로 부터 정당하게 받아 자국령으로 하고 싶어 무리수를 두죠.</div><div>폴란드는 영국과 프랑스에 뒤를 봐주겠다는 협정도 체결합니다.</div><div> 그리고 독일을 도발하죠. 지속적으로 계속 도발을 합니다. 그 와중 유태인들이 단치히 지방에 독일인들에 대해서 단치히 대학살을 자행합니다. (독일인이 유태인학살했다고 알고 있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죠.)</div><div><br /></div><div> 히틀러는 전쟁을 할 여력이 안되고 영국과 프랑스가 두려웠기 때문에 폴란드의 도발을 최대한 피하려 합니다만 폴란드가 국경지방의 지방방송을 도용해서까지 독일의 전쟁을 도발하죠.</div><div><br /></div><div> 폴란드의 속셈은 독일이 전쟁을 도발하면... 당시 군사력이 형편없다고 소문난 독일을 폴란드가 순식간에 박살내고.. 영국과 프랑스가 도와준다면 독일을 손쉽게 항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고...</div><div> 항복조건으로 단치히를 폴란드령으로 넣고 싶어한 겁니다.</div><div><br /></div><div> 근데 생각과 완전히 다르게 진행된 거죠. 폴란드에서는 독일군이 재건된지 얼마되지 않아 전차도 없고.. 전차들도 모조리 자동차에 캔퍼스를 뒤집어쒸운 가자 전차라는 정보를 믿었었다더군요.</div><div> 막상 전쟁을 해보니 전격적이란 새로운 전략개념으로 폴란드의 기병을 위주로한 군대는 순식간에 발려버리고...</div><div> 프랑스도 독일을 우습게 보다가 순식간에 점령당해버리는.. 뜻밖의 상황이 전개된 것이 바로 2차대전입니다.</div><div><br /></div><div><br /></div><div> 당시 히틀러의 집권과정 그리고 히틀러의 업적을 보면 그 사람이 단순히 악마로 묘사된건 순전히 미국과 영국 즉 연합국의 적국에 대한 비방전의 일환이었을 뿐이죠.</div><div> 히틀러는 전쟁광도 아니고 이성적인 하나의 지도자였을 뿐이죠.</div><div><br /></div><div> 독일민족이 우수하긴 하지만 알고보면 상당히 불쌍한 민족입니다. 독일인들이 일어설라고 하면 주변에서 밟아버리고 또 일어설려고 하면 밟아버리는 희생량과 같은 사람들이었으니까요.</div><div><br /></div>
다크가디안님의 댓글
다크가디안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왠지 어쩔 수 없이 전쟁한거 치곤 잘싸웠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차피 보는 관점에 따라 달리해석이 되는 것이 역사적 견해인거 같군요. 예로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처럼 말이지요. 폴란드가 독일을 우습게 봤다는 것은 우리 선조때부터 일본을 우습게 보아왔던 우리랑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우리는 피해자고 폴란드 역시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이는 어떠한 설명으로 논한다 해도 변하지 않을 진리가 될거 같고요. 전쟁을 누가 먼저 시작했느냐가 중요하다기 보단 누가 이겼냐가 중요한거 같네요. 어차피 그로인해 달리 해석이 되니...개인적으로 히틀러가 그렇게 전쟁을 벌벌떨었던 사람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몇 자 적어 봅니다.
푸콘님의 댓글
다크가디안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p>상당히 많은수의 유태인이 죽은것은 사실 입니다만. 400만, 600만은 과장된 이야기같은 생각이 드네요.<br />그 수치는 어떻게 계산되었냐면 전후 유태인들이 독일 연방정부에의 청구권자를 통해 집계된 수치이니<br />개중에는 받지 말아야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고, 다소 부풀려졌다고 생각이 듭니다.</p>
푸콘님의 댓글
다크가디안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11085|1--] <p>히틀러의 집권과정이요? 확실히 그때가 세계적인 대공황이 일어났던 시대이고 제국주의가 만연했던 제정신이 아닌 시대인건 압니다만.</p><p>파시즘에 의해 성립된 지도자가 이성적인 하나의 지도자라고 전혀 생각이 안듭니다.<br />'이성적'이라는 말은 그런 의미로 쓰이는건 아니라고 봅니다.</p><p> </p>
수메리아님의 댓글
다크가디안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11085|1--] <p> </p><p><br />핵보일러 요원님의 의견에 공감이 갑니다.<br />개인적으로 파악한 시간의 흐름입니다.<br /> </p><p>1939-01-05 히틀러-오베르잘쯔베르그(Obersalzberg)에서 베크 폴란드 외무장관을 영접하다.<br />1939-01-05 히틀러-단치히가 독일 도시임을 주지시키는 <br />1939-01-05 한편 독일-폴란드 관계의 개선을 위한 제안을 내놓았다. <br />1939-01-06 폴란드-이러한 제안들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br />1939-01-30 히틀러-독일제국의회연설 "유태인 문제가 <br />1939-01-30 해결되지 않는 이상 유럽의 평화는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p><p><br />1939-03-21 독일- 폴란드에 그단스크( 폴란드어:<b>Gdansk</b> (독일어:<b>Danzig 단치히</b>) )의 할양을 요구한다.<br />1939-03-26 폴란드- 독일의 그단스크 영토 할양 요구를 거절합니다.<br />1939-03-31 영국(체임버수상)-영국•프랑스의 대 폴란드원조를 보장한다<br />1939-03-31 런던의 전쟁광 써클은 폴란드정부에 그들의 <br />1939-03-31 의지대로 도발을 감행할 수 있는 자유행동권을 선사했다.<br />1939-03-31 런던의 플루토크랫(Plutocrat, 金權정치가)들이 비밀리에 <br />1939-03-31 노렸던 것은 독일과 폴란드의 무력충돌이었다<br />1939-03-31 영국(런던의 일부 일간지들)-독일군대가 폴란드 국경에 집결하고 있다 (거짓보도)</p><p>1939-04-01 폴란드-4월부터 폴란드 국경내에 살고 있는 <br />1939-04-01 독일거류민들에 대한 테러와 가혹행위들이 급증하기 시작했다<br />1939-04-13 폴란드-단치히 국경부근에서 다수의 독일인들이 폭도들에게 살해되는 일이 발생하다. <br />1939-04-13 폴란드-다른 지역으로 급속히 확산되었다<br />1939-04-14 독일 영사관-셀 수도 없이 일어나는 이러한 사건들을 매일같이 베를린에 보고했다<br />1939-04-28 히틀러-영국과의 해군 협정과 폴란드와의 불가침 조약의 무효를 통고한다.<br />1939-04-28 히틀러-독일제국의회연설<br /><br /><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fuchsia; mso-bidi-font-family: 굴림" lang=EN-US><font style="BACKGROUND-COLOR: #ffffff" color=#37b7fe size=2 face=돋움>(1)단치히는 자치도시로서 독일제국에 귀속된다<br />(2)독일은 독일과 단치히를 연결하는 도로와 철도부설권을 얻으며, <br />(3)이들 시설에 대해서는 폴란드 정부가 단치히 통로에 대해 <br />(4)행사하는 것과 동등한 치외법권적 권한을 누린다.</font></span></p><p><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fuchsia; mso-bidi-font-family: 굴림" lang=EN-US><font color=#bbbaef size=2 face=돋움><font color=#fe9739>이에 대해 독일은;<br />(1) 단치히에 대한 폴란드의 모든 경제적 권리를 인정한다.<br />(2) 폴란드가 원하는 목적과 규모의 자유항구를 단치히에 보장한다.<br />(3) 독일과 폴란드의 현재 국경을 받아들이며 최종적인 것으로 간주한다.<br />(4) 본인의 생애를 초월할 유효기간 25년의 불가침 조약을 폴란드와 체결한다.<br />(5) 독일은 폴란드, 헝가리와 공동으로 슬로바키아의 독립을 보장하며 <br />(5) 이 지역에 대한 독일의 일방적 헤게모니를 포기한다.</font><br /></font></span><br />1939-04-29 동아일보(보도)-독일 총통 히틀러 연설<br /></p><p><p><br /> </p><p><img id=Map onclick=Cntr() border=0 name=Map alt="MAP - Click to center" src="http://www.expedia.com/pub/agent.dll?qscr=mrdt&ID=3XNsF.&CenP=53.950244,19.082661&Lang=WLD0409&Alti=1000&Size=448,364&Offs=0,0&MapS=0&Pins=|90ce52|" width=448 height=364 /></p><p>콜버어그<br /><br /><br />1939-05-08 폴란드-300명의 독일주민들이 뉴토미셸에서 강제 추방되었다<br />1939-05-08 폴란드-서부국경이 보이텐(Beuthen).오펠른(Oppeln).브레슬라우((Breslau).<br />1939-05-08 포란드-슈테틴(Stettin), 그리고 콜버어그(Kolberg)를 넘어 <br />1939-05-08 폴란드-독일영토로 확대된 것으로 표시된 지도들이 폴란드 도시들에 배포되었다 .<br />1939-05-09 폴란드-브롬베르크(Bromberg) 소재 독일극장이 강제 패쇄되다. <br />1939-05-15 폴란드-로드시에서 두 명의 독일주민이, 폴란드인들에게 살해당했다<br />1939-05-15 폴란드(카스프리즈키 국방장관)- 비밀회담을 위해 파리를 방문했다 <br />1939-05-17 스웨덴,노르웨이,핀란드-독일의 상호 불가침 조약안을 거부한다<br />1939-05-21 폴란드-칼트호프에서 단치히 시민 1명이 폴란드인들에게 살해당했다<br />1939-05-22 독일-이탈리아군사 동맹이 조인된다. <br />1939-05-23 히틀러-폴란드 공격의 의지를 표명한다<br /></p><p><img src="http://www.jewishgen.org/danzig/map.jpg" /></p><p>단치히 (Danzig)《Gdanńsk의 독일명》</p><p><img style="WIDTH: 584px; HEIGHT: 516px" src="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9/92/Extension_of_Germany_(1935-1939)-fr.svg/659px-Extension_of_Germany_(1935-1939)-fr.svg.png" width=657 height=528 /></p><p>독일 지도(1935~1939)<br /><br /><br />1939-06-01 폴란드-국경침범을 비롯하여 독일주민들에게 테러사건들이 계속 증가했다.(~06/30)<br />1939-06-15 독일대사-히틀러 총통에 대한 모욕적인 언사와 비방에 대한 <br />1939-06-15 독일대사-공식적인 항의서한을 폴란드 정부에 전달합니다.<br />1939-07-01 폴란드-국경침범을 비롯하여 反독일주민 테러사건들이 계속 증가했다(~07/30).<br />1939-08-04 폴란드 중앙정부-단치히에 상주하는 폴란드 세관원들과 관련된, <br />1939-08-04 폴란드 중앙정부-확인되지 않은 낭설에 근거하여 <br />1939-08-04 폴란드 중앙정부-그들의 요구에 불응할시 도시 외부로부터의 <br />1939-08-04 폴란드 중앙정부-식료품에 의존하는 단치히시(市)의 국경을 봉쇄하겠다<br />1939-08-04 폴란드 중앙정부-최후통첩을 단치히 시정부에 전달했다.<br /><font color=#bbbaef>1939-08-07 단치히 시정부-최후통첩을 거부하다.</font> <br />1939-08-09 독일정부-이와 관련하여 폴란드 정부에 우려를 표시합니다.<br />1939-08-10 폴란드 정부-8월 10일 불성실한 답변서를 독일에 보내왔다.<br />1939-08-18 단치히 시정부-단치히 방어를 위해 친위대 방위군에 <br />1939-08-18 단치히 시정부-동원령이 발동되었고 일은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br />1939-08-19 영국의 돈 많은 전쟁광들은 이 모든 일로부터 손을 씻고 무죄를 주장하기위하여 <br />1939-08-20 그들이 원했던 전쟁에 대한 도덕적 알리바이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br />1939-08-24 폴란드 단치히 시정부-세관 문제를 둘러싸고 폴란드 중앙정부와 협상은 <br />1939-08-24 폴란드 정부의 무리한 요구탓으로 아무런 성과없이 결렬되었다.<br /><font color=#f45f00>1939-08-04 의견:폴란드정부가 어떤 요구를 했는지는 모름<br /><font color=#37b7fe>1939-08-23 독일-소련 불가침 조약이 체결됩니다. 발트3국의 소련 편입이 밀약됩니다</font><br /></font>1939-08-24 그러자 폴란드-예비병력에 대한 확대동원령을 발동하고 국경에 대한 도발을 가중시켰다.<br />1939-08-25 폴란드군-국제영공을 비행하고 있는 독일의 각료가 탑승한 비행기에 발포합니다.<br />1939-08-25 영국-폴란드의 원조 조약이 체결됩니다<br />1939-08-25 영국-폴란드 보호동맹에 서명합니다. <br />1939-08-26 폴란드-150만명의 폴란드인들이 징집되었습니다. <br /> </p><p><br />1939-08-27 히틀러-제국의회 연설에서 양국의 평화를 보장하는 선에서 단치히, 단치히 통로, <br />1939-08-27 히틀러-제국의회 연설에서 그리고 폴란드와의 <br />1939-08-27 히틀러-관계개선이라는 3가지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천명합니다.<br /><font color=#26b168>1939-08-28 베를린, 로마, 런던, 파리에서는 분주한 외교적 움직임이 있었다.(~ 31일까지) <br /></font>1939-08-29 히틀러-폴란드 정부로부터 특사의 파견을 기대한다고 발표하다. <br />1939-08-29 히틀러-다시 한번 평화적 해법을 시도했습니다. <br />1939-08-29 독일-영국의 제의에 대하여 단치히의 영토 할양 요구를 반복합니다.<br />1939-08-30 폴란드-이에 대한 응답으로 8월 30일 총동원령을 선포합니다.<br />1939-08-30 스위스-중립을 선언합니다. <br />1939-08-30 히틀러-폴란드 공격명령을 내립니다( 12:40 P.M) [내일 04시 45분 A.M ]<br />1939-08-31 폴란드-8월31일 중대한 국경도발행위를 감행합니다.<br />1939-08-31 독일-폴란드와 국경충돌하다( 21번 )<br /><font color=#f45f00>1939-08-31 폴란드(국영라디오)-양국간의 문제에 대한 독일의 해결책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font>.<br />1939-08-31 히틀러-폴란드 공격을 명령합니다.<br />1939-08-31 독일영사관-8월 25일부터 8월 31일까지 55건의 독일주민들에 <br />1939-08-31 독일영사관-대한 테러행위를 독일 중앙정부에 보고합니다.<br />1939-09-01 독일-폴란드와 전쟁을 시작하다( 04:45 )<br />1939-09-01 히틀러-베를린, 제국의회에서 개전연설하다.<br />1939-09-01 히틀러-제국의회 연설에서 힘에는 힘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선언했다</p><p><br /> </p><p style="LINE-HEIGHT: 12pt; MARGIN: 0cm 0cm 0pt; WORD-BREAK: keep-all; mso-line-height-rule: exactly" class=MsoNormal><font size=2><span style="FONT-FAMILY: 굴림; COLOR: #0d0d0d; mso-bidi-font-family: 'Times New Roman'; mso-themecolor: text1; mso-themetint: 242"><span lang=EN-US><?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span></span></font> <br /> </p></p>
바람의호랑이님의 댓글
다크가디안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기록이죠!<br />패자는 말이 없는 법 입니다.<br />그 이유가 정당하는 정당치 안든.....정의는 없죠!
수메리아님의 댓글
다크가디안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11112|1--] <p> </p><p><br />그렇다고 봅니다.<br />승자가 자기 유리한대로 역사 조작을 <br />해대고있는게 현실이라봅니다.</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