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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헨지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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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선장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댓글 1건 조회 1,224회 작성일 01-07-04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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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 - 수수께끼의 건조물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영국 남부에 있는 거석 건조물 스톤헨지는 언제, 어떻게,
어떤 목적으로 건설되었는가?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선사 시대의 유적 가운데 가장 유명한 건조물의 하나인
스톤헨지. 영국 남부 솔즈베리 평야에 있는 스톤헨지는 많은 수수께끼로 싸여 있다.
다수의 돌이 쓰러지고 또 사라져 버리기는 하였으나, 영국 남부 특유의 완만한 녹색
구릉 안에 여전히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두려움 같은 것을
갖게 한다.

스톤헨지는 고대 영어로 ‘공중에 걸쳐 있는 돌’이라는 의미이다. 확실히 거대한 돌기둥
위에 수평으로 얹혀 있는 돌은 그렇게 부르기에 합당하다. 스톤헨지는 1000년 이상에
걸쳐 이용되었고, 그 모습도 변화되어 왔다. 최근에 와서 20세기의 스톤헨지의 발굴
성과가 집대성되어, 이제까지 생각되고 있던 건설 순서와 연대에 많은 수정이
가해지게 되었다. 새로운 견해를 바탕으로 스톤헨지 건설의 여러 단계를 추적하면서
그 구조를 알아보자.

스톤헨지는 단번에 세워진 것이 아니었다

스톤헨지 건조의 여러 단계는 크게 3기로 나눌 수 있다. 각각의 특징을 단적으로 나타
내면 제1기는 토조(土造) 건조물이, 제2기는 목조(木造) 건조물이, 제3기는 석조(石造)
건조물이 세워진 시기이다.

제1기가 시작되는 기원전 3000년경에는 지름 약 110m의 고리 모양(환상) 도랑이
패였고, 그 흙을 이용하여 안쪽 둘레를 따라 둑이 만들어졌다. 바깥쪽 가장자리에도
어느 정도의 둑이 만들어지고, 북동쪽에 큰 입구, 남쪽과 남서쪽에 작은 입구가
설치되었다. 둑 안쪽을 따라 ‘오브리 구멍’이라고 불리는 56개의 구멍도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 같다.

도랑에서는 곡괭이 모양의 사슴 뿔과 삽 모양의 황소 어깨뼈(견갑골) 등이 출토되었다.
아마 그것은 흙을 파는 데 이용되었을 것이다. 도랑에서 출토된 동물 뼈 가운데
흥미로운 것으로는 2개의 황소 턱뼈와 1개의 큰사슴 정강이뼈(경골)가 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에 따르면, 이들은 도랑 축조 시기보다 훨씬 오래 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톤헨지 이전의 의례 전통과 어떠한 연관을 시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제2기는 기원전 3000년기 전반에 속한다. 고리 모양 구조의 중앙부, 남쪽 입구로
향하는 구역, 북동부 통로 부근 등에 기둥을 박았던 것으로 보이는 많은 기둥 구멍이
있는데, 여기에 어떠한 목조 건조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동부 입구에서
바깥쪽으로 16m 떨어진 곳에도 4개의 기둥 구멍이 2m 간격으로 늘어서 있었다.
현단계에서 확인된 증거로는 목조 건조물의 형상이 그다지 명확하지 않다. 북동부
통로 부근의 다수의 기둥 구멍은 나무 기둥열을 통하여 몇 개의 좁은 통로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도 있다.

제2기 끝에 걸쳐서 오브리 구멍, 도랑 상부, 거기에 이 건조물 주변과 둑 바로 안쪽
등에 화장된 매장 흔적이 있었다. 오브리 구멍 대부분에서 이러한 매장이 보이는데,
52개의 화장에 의한 매장이 보고되었다. 오브리 구멍의 2차적 이용으로 생각되고
있다.

기원전 3000년기 중반경에는 특징적 청회색을 띤 ‘블루스톤’이라 불리는 돌이 쓰이게
되었다. 제3기의 시작이다. 블루스톤은 Q구멍, R구멍이라 명명된 쌍을 이루는 구멍에
원호 모양의 배열로 배치되었는데 후에 제거되었다.

마침내 ‘사센’이라 불리는 단단하고 거대한 돌을 직사각형으로 정형하여 놀랄 정도의
건축을 완성하게 된다. 30개의 돌기둥이 지름 30m의 원둘레 위에 배치되고, 더욱이
그 꼭대기에 수평으로 문미석(문·창·출입구 등의 윗부분에 가로 댄 나무 구실을 하는
돌. 여기서는 두 기둥 꼭대기에 걸쳐진 가로돌)이 얹혀져서 공중에서 연속하는 둥근
고리 모양을 만들어 냈다. 지상에서 문미석 윗면까지의 높이는 4.8m나 된다.

내부에서는 사센을 이용한 5조의 삼석탑(트리리톤)이 마제형(말굽형)으로 배열되었다.
삼석탑은 북동쪽에서 남서쪽 축으로 대칭으로 배열되고, 그것들이 구성하는 마제형은
북동쪽 입구 방향으로 열려 있다. 열린 부분에서 중앙부를 향하여 높이가 차츰
높아지는 구조로 되어 있다.

아름다움과 눈의 착각을 고려하여 정형된 돌

사센 건조물은 건축학적으로 몇 가지 실로 흥미롭고 세련된 기술을 보여 주고 있다.
문미석은 장부(한쪽끝을 다른 한쪽 구멍에 맞추기 위하여 얼마쯤 가늘게 만든 부분)와
장부 구멍으로 고정되고, 특히 고리 모양 배열 돌기둥 위의 문미석은 서로 은촉이음
(한 쪽에 홈을 파고 다른 한 쪽에 그 홈에 맞도록 돌기부를 만들어 두 돌을 접합하는
방법)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것들은 당시의 목공 기술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고리 모양 배열 위의 문미석은 원둘레와 일치하도록 원호 모양으로 정형되어 있다.
문미석을 지탱하는 돌기둥은 꼭대기를 향하여 약간 좁아져 있다. 조잡하기는 하지만
건조자는 엔타시스(그리스·로마 건축 기술의 일종으로, 기둥 중앙을 부풀게 하는
방식)와 같은 기교를 의식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삼석탑의 문미석은 바닥 부분
보다 꼭대기 쪽이 폭이 넓다. 요컨대 그 단면이 지면을 향하여 약간 경사져 있는
것이다. 아래에서 올려다봤을 때 수직으로 보인다는 눈의 착각을 고려한 것 같다.

그 후 몇 번인가 블루스톤의 배열 이동이 반복되고, 마지막에는 현재처럼 사센의 고리
모양 배열 안쪽과 사센의 마제형 안쪽에 각각 대응하도록 배열되었다. 마제형으로
배열된 블루스톤 안쪽에도 돌이 배열되었다. ‘오르타석’이 그 보기이다. 사센
바깥쪽에는 동심원 모양으로 두 주혈군(柱穴群, Y구멍과 Z구멍)이 패였다. 그 수는
각각 20개씩이고, 블루스톤의 재배열이 계획된 것으로 추측되지만 실행되지는 않은
것 같다.

또 제3기에는 주체부 외에도 배석이 행해졌다. 입구 북동부에 ‘힐스톤’이 있는데,
1979년의 조사에서 그 왼쪽 약간 뒤쪽의 2m 간격 위치에서 돌구멍이 발견되었다.
힐스톤이 이와 쌍을 이루고 있다고 간주하면, 제3기의 축선은 이들 사이를 지난다.
고리 모양 둑 내부에는 직사각형을 형성하는 네 스테이션석이 배치되었다. 그 짧은
변은 축에 병행하고, 긴 변은 축과 직각으로 만난다. 그 후 힐스톤과 두 스테이션석이
고리 모양 도랑으로 둘러싸였다. 또 북동부 입구에서 에이번 강까지 2.8km에 걸쳐서
계속되는 아베뉴(행렬할 수 있을 정도의 넓이를 가지고 입구부터 뻗어 있는 참배길)가
구축되었다. 그 밖에도 입구로 들어가면 바로 가까이에 있는 스로터석과 2개의 큰 돌
구멍, 또 입구 약간 바깥쪽에 있는 돌구멍 등이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여겨지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건설 순서의 최신 견해는 유효하다고 간주된 52점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이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구조에 대하여 연대를 밝힐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반드시 층위학적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예컨대 오브리 구멍이 제1기에
만들어졌다고 추정되고 있지만, 그 중요한 근거는 그것이 고리 모양의 둑이나 도랑과
동심원 모양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또 배석 유구
(配石遺構)는 모두 제3기에 만들어졌다고 여겨지고 있는데, 그 중에는 단순히 이
시기에 돌이 선호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약한 이유에 의한 경우도 있다. 앞으로의
연구로 새로운 수정이 가해질지도 모르지만, 현시점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편년
(編年)일 것이다.

블루스톤은 아주 먼 곳에서 운반되어 왔다

스톤헨지의 주요 석재는 ‘사센스톤’과 ‘블루스톤’의 2종류이다. 최대 50톤이나 되는
사센스톤의 원산지는 스톤헨지 북방 30km에 있는 마르바라 구릉이다. 한편
블루스톤의 원산지는 서쪽 웨일스 남서부에 있는 프레세리 산지로 생각되고 있다.
스톤헨지는 직선 거리로도 200km가 넘는다. 1개의 무게가 4톤이나 되는 돌을 어떻게
스톤헨지까지 운반해 온 것일까?

일설에는 인류가 이 땅에 거대한 건축물을 세우기 훨씬 이전에 빙하에 의해 이
부근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만일 그렇다면 빙하는 다양한 암석 노두 지대를 통과했기
때문에 솔즈베리 평야에서 그 증거가 발견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실제로 솔즈베리
평야에서는 빙하에 의한 암석 퇴적물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역시 인간이 운반해
왔다고 보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실험 결과 썰매와 산륜(굴림대), 배나 뗏목을
이용하면 인력으로 운반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렇게 먼 거리에서 몇십 개나 되는 거석을 운반해 오는 일은 대사업이고, 그것에는
상당한 동기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게 힘들여 블루스톤을 운반해 올 필요가
있었을까?

스톤헨지가 위치하는 웨섹스 지방과 아일랜드와의 교역 루트상에서, 블루스톤의
원산지로 여겨지는 프레세리 구릉의 성스러운 산 칸메이니는 중요한 지표였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성스러운 산에서 운반된 돌을 성스러운 곳인 스톤헨지에
배치함으로써 그 신비로운 힘의 혜택을 입으려고 한 것인지도 모른다.

거석 건조물은 어떻게 세워졌는가?

사센의 거대한 돌기둥을 세우기 위해서는, 앞서 파 놓은 돌구멍 앞쪽에 경사로를
설치하여 거기로 돌기둥을 끌어올리고, 돌기둥 위에 놓여진 돌의 추를 옆으로 밀어
냄으로써 돌기둥 아랫부분이 돌구멍 속으로 떨어지게 한다. 다음에 A자형 나무틀을
이용하여 지레의 원리를 써서 밧줄을 당기면, 돌기둥을 수직으로 세울 수 있다는 것이
실험을 통하여 확인되었다.

문미석을 꼭대기로 올리기 위해서는 흙 또는 나무로 꼭대기까지 경사로를 만들고,
그것을 이용하여 잡아당겨 올리는 방법이 있다. 또는 지레로 문미석 한 쪽을 들어올려
짧은 각재를 끼고, 다른 쪽 끝에서도 마찬가지 작업을 한다. 어느 정도 높이가 되면 긴
목재를 그 밑에 늘어 세워 바닥면을 만든다. 마찬가지 방법을 반복하여 문미석을
꼭대기 높이로 올리는 방법도 생각된다. 실제로 이러한 방법을 이용하여 사센
건조물이 세워졌는지 현재로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석기 시대의 도구와 기술로
가능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볼 수 있다. 사센의 선정·운반·가공·건립 등 완성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집중적으로 작업이 실시되었다면 3년이었을 것이라는 어림도
있으나, 실제로 볼 때 더 긴 세월이 필요했을 것이다.

스톤헨지의 유래를 느끼게 하는 거대 건조물

건조 목적을 유추하기 위하여, 다음으로 영국 여기저기에 존재하는 스톤헨지를 방불케
하는 거대 건조물의 건설 경위를 살펴보자.

그레이트브리튼 섬이 대륙에서 떨어져 나간 것은 그렇게 오래 된 일이 아니고 기원전
6500년경의 일이다. 당시 사람들의 생활은 수렵이나 어로에 기초를 두고 있었는데,
계절적 이동은 별도로 하고 차츰 정주적 경향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원전 5000년기 후반에는 농경과 목축이 시작된다. 이 새로운 생활 형태의 시작으로
그레이트브리튼 섬을 덮고 있던 울창한 낙엽수 삼림이 조금씩 잘려 나간다. 마침내
사람들은 거대한 건조물을 짓기 시작한 것이다.

그레이트브리튼 섬의 신석기 시대 전반의 거대 건조물에 ‘통로가 있는 둘레땅’‘롱배로’
‘거석묘’ 등이 있다. 통로가 있는 둘레땅은 어떤 범위를 두루는 도랑(2중이나 3중의
보기도 있다.)과 거기에서 파 낸 흙을 도랑 안쪽에 쌓아올린 둑 및 도랑이 패여 있지
않은 통로 모양의 부분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종류의 건조물의 기능에 대해서는
방어적 역할을 가지는 거주지나 사체 임시 보관소 등 여러 설이 있는데, 의식 장소로서
이용된 것도 많은 것 같다.

롱배로는 직사각형으로 흙을 쌓아올린 분구(墳丘)를 가리키는데, 주로 그레이트
브리튼 섬 동남부에 분포한다. 통상적으로 한 쪽 끝이 넓고 높아져 있으며, 그 부분에
사체가 매장되어 있다. 매장은 단독이 아니라 신석기 시대에 유럽 서부 연안 지대에서
널리 행해진 이른바 ‘집합 매장’의 일종으로, 노약자나 남녀를 가리지 않고 같은 곳에
매장하고 있다. 롱배로는 부족의 수장 가족이 매장된 장소라는 견해가 있다. 또 백악토
지대에서는 구릉 지구마다 롱배로가 존재하고 있으며, 세력 범위의 지표였다고 하는
생각도 있다.

한편 주로 영국 제도 서부와 북부에서 롱배로와 마찬가지로 집합 매장을 위하여
세워진 건조물이 거석묘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석재가 풍부하였기 때문에 거석묘를
선호한 것 같다. 영국 제도에 잔존하고 있는 거석묘는 2000기가 넘는다. 이처럼 영국
제도에서는 스톤헨지 이전부터 거대 건조물을 세우는 전통이 있었다. 스톤헨지에서
최초로 고리 모양의 도랑을 파기 시작한 무렵에는 이미 통로가 있는 둘레땅은
쇠퇴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 기본적 구조가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롱배로와
거석묘 등의 축조 기술이나 사상 등에 스톤헨지와 공통되는 부분이 있어도 이상할
것은 없다.

스톤헨지의 주요 구조물이 세워진 기원전 3000년기에도 고리 모양의 둑과 도랑
(보통은 도랑이 안쪽)으로 둘러싸인 ‘헨지 모뉴먼트’라고 불리는 건조물과 스톤서클 등
영국 제도에서는 많은 거대 건조물이 세워졌다. 스톤헨지 동쪽 3km 정도인 곳에 있는
‘더린튼 월즈’라고 불리는 헨지(영국 제도에서 볼 수 있는 고리 모양의 둑과 도랑으로
둘러싸인 구조물)는 최대 지름이 520m나 된다. 내부에는 적어도 2기의 고리 모양
목조 건조물이 있었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또 사센의 원산지에서 가까운 ‘에이브베리
서클’은 원둘레의 지름이 427m, 둑의 높이는 본래 7m였다고 생각된다. 도랑 안쪽의
원둘레를 따라 점점이 약 100기의 사센이 배치되고, 더욱이 내부에도 2기의 스톤
서클이 있다.

도랑 안쪽의 원둘레를 따라 거석을 배치한 보기는 훨씬 북쪽에 있는 오크니 섬의
‘링 오브 브로거’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스톤헨지의 오브리 구멍의 용도에 대한
시사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스톤헨지가 천체 관측소였을 가능성

스톤헨지는 이들 영국 제도에 세워져 있는 많은 수수께끼와 같은 거대 건조물 가운데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이다. 건조 목적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유감스럽게도 해답은 얻어
지지 않고 있다. 다만 통로가 있는 둘레땅의 전통을 잇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처음부터 어떠한 의식의 장으로서 세워졌을 가능성이 있다.

또 예전부터 천체의 운동과의 관계가 지적되어 왔다. 이를테면 북동부 입구의 통로
부근에 있는 많은 기둥 구멍에 대하여, 월출의 북쪽 한계 위치 변화(18.6년 주기)를
관측하였다는 설이 있다. 그 때 힐스톤은 그 움직임의 중간점에 위치한다고 한다.

선사 시대 사람들이 달에 관심을 가졌다고 생각되는 예는 그 밖에도 있다. 예컨대
스코틀랜드 북동부에는 ‘리칸벤트 스톤 서클’이라는 독특한 건조물이 있다. 그
리칸벤트(옆을 향한 돌)는 달이 가장 낮게 통과하는 방향에 맞춰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스톤헨지의 경우 그 기둥 구멍의 무리(주혈군)가 실제로 달의 북쪽 한계
위치와 합치하고 있는지 어떤지는, 확실한 것은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통로 부근
의 기둥 구멍 무리의 설명 중 하나로서, 또 그 밖에도 달의 운동과 연결되는 배석이
있다는 점에서 달에 대한 어떠한 신앙이 존재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스톤헨지의 축은 제1·2기와 제3기가 서로 다르다. 고리 모양 도랑의 중간선을
사용하여 얻은 원의 중심점과 북동부 입구 도랑의 양쪽 끝 중점을 이은 선이 제1ㆍ
2기의 축이다. 제3기의 축은 사센의 고리 모양 배열의 중심점에서 아베뉴 양쪽 도랑의
각각의 중간선의 중점을 연결한 것이다. 제3기의 축선이 하지의 태양이 떠오르는
방향과 일치하고 있다는 점으로 봐도 사센의 건조물은 태양을 의식하여 건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제2기 후반에 이 곳에 화장에 의한 매장이 많이 행해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제3기 석조 건조물의 배경에 죽음과 재생의 의례와 태양 신앙이 연결되어
있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 같다. 만일 그렇다면 더 나아가 풍작을 기원하는 의례와도
연결되어 있었을 것이다. 사센의 마제형을 형성하는 돌구멍 중 하나에서 남근(남자
생식기)을 본떴다고 생각되는 백악(석회석의 일종) 조각이 발견된 것은 흥미롭다.
어쨌든 태양이나 달의 움직임의 주기성에 선사 시대 사람들의 관심이 높았다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어쩌면 스톤헨지를 건설한 사람들은 남서 방향으로 지는 동지의 태양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른다. 마제형 배열의 가장 높은 삼석탑은 동지의 태양이 지는
방향에 세워져 있다. 이 방향에 가장 높은 배석이 행해졌다는 것은 마제형 내부에서
실시된 동지의 태양에 대한 의례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동지의 태양이 중요시
되었다면, 스톤헨지의 의례는 아일랜드의 거석묘 뉴그렌지 등과 기본적으로 공통되는
부분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지나칠 정도로 추측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세계 다른 지역과의 비교나 영국
제도 전체의 문화 발전 중에서 고찰함으로써 스톤헨지에 대한 이해도 조금씩 깊어질
것이다. 영원히 수수께끼로 남는 부분도 적지 않게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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