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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탄생 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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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선장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댓글 0건 조회 915회 작성일 01-03-09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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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 역학과 맥스웰의 전자기학이 지배하던 고전 물리학
19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많은 과학자, 그 중에서도 특히 물리학자들은 행복한 사람들이
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은 17세기 중엽 뉴턴(Sir Isaac
Newton; 1642∼1727)에 의해 발견된 운동 법칙과 역학 이론(고전 역학이라 부름)과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와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
1879)에 의해 확립된 고전 전자기 이론에 의해 설명이 가능한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뉴턴의 운동 법칙과 만유 인력의 법칙은 너무도 정확해서 4000년이나 5000년 전에
이집트에서 일어났을 일식의 장소와 시각까지도 정확히 알아맞힐 수 있었고, 또 그 존
재조차 알려져 있지 않았던 해왕성의 존재를 밝혀 냈을 뿐만 아니라, 그 정확한 위치
까지도 알아맞힐 정도였다.

한편 뉴턴 역학과는 별도로 영국의 패러데이와 맥스웰에 의해 완성된 고전 전자기학은
그때까지 신비에 가득 차 있던 전자기 현상을 파헤쳤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맥스웰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전파(전자기파)란 것이 있어야 한다고 예언했고, 소위 빛도 그런
전자기파의 일종이라는 빛의 전자기파 이론을 제기함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전파 문명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그리고 전자기 이론은 벼락이 왜 떨어지며, 자기 부상 열차가 왜
공중에 뜨는가, 그리고 오늘날 널리 사용되고 있는 모든 전기 제품이 왜 작동하는가 등
등을 설명해 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뉴턴 역학(고전 역학)과 맥스웰 전자기학(고전 전자기학)을 주축으로 하는 고전
물리학이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물질 세계에 대해 고전 물리학자들이 믿고
있었던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1) 우주는 절대적인 시간과 절대적인 공간이라는 틀 짜임 속에서 이루어지는 거대한
기계 장치와도 같다. 아무리 복잡한 운동이라 할지라도 따지고 보면 세부적으로는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기계의 각 부분의 단순한 움직임의 결합에 의해 설명이 가능하다.

(2) 한 마디로 모든 운동이나 현상에는 원인이 있다는 것이 뉴턴의 사상이다. 예컨대 어떤
물체가 운동한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운동을 일으키게 하는 원인이 있다. 즉 인과율이
성립한다.

(3) 임의의 시점에서의 운동 상태, 예컨대 이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분자나 원자 등
궁극적 기본 요소들의 초기 위치와 속도(또는 운동량)를 알 수 있다면, 미래는 물론
이려니와 과거의 어느 시공간 속의 상태도 확고 부동하게 정확히 결정할 수가 있다.
즉이 우주의 모든 현상에는 불확실한 것이란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은 과거로부터 내려온
원인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결과일 뿐이다. 쉽게 말해 운명론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4) 빛에 관한 모든 성질과 현상은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에 의해 완전히 기술될 수 있다.
그리고 빛의 파동성은 1801년 및 1807년 영(Thomas Young; 1773∼1829)의 이중
슬릿을 사용한 간섭 실험으로 확인되었다.

(5) 운동의 에너지를 전달하는 물리적인 모형에는 두 종류만이 있다. 그 하나는 당구공과
같은 탄탄한 알갱이로서의 입자, 다른 하나는 해안으로 밀려오는 파도와도 같은 파동
이다. 이 두 모형은 서로 절대로 양립할 수 없으며, 에너지는 이 둘 중의 어느 하나의
형태로만 구현된다.

(6) 물리계의 성질은 온도나 속도 등 얼마든지 정밀히 측정할 수가 있다. 관측의 정밀도를
높이거나 또는 이론적인 수정만으로 충분하다. 원자도 그 예외는 아니다.

고전 물리학자들은 이 주장들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사실은 의심스럽다는 것이 차차 밝혀지게 되었다.

양대 혁명으로 절대적인 세계관이 무너지다
20세기가 막 시작하려는 1900년 12월에는 플랑크(Max Karl Ernst Ludwig Planck;
1858∼1947)에 의해, 빛이나 전자기파 등 복사 에너지의 방출이 사실은 연속적 실체의
파동으로서가 아니라 양자(quantum)라 불리는 알갱이의 형태로 방출 또는 흡수한다는
것이 밝혀져 플랑크 자신까지도 포함하는 고전 물리학자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또 1905년에는 약관 26세의 청년 과학자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에
의해 특수 상대성 이론이 제안되면서 절대 시공간의 개념이 파기되었고, 빛의 전파를
담당하리라 예상되었던 에테르(ether)라는 매체가 사실은 허깨비 같은 상상의 존재일 뿐
실제로는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고 선언되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그렇게도 굳건히 믿어졌던 고전 물리학은 여지없이 파탄을 일으키게 되었다.
상대성 이론은 고전적 세계관의 인과론을 부인하지 않고, 뮤 중간자의 수명 연장,
에너지(E)와 질량 사이의 E=mc2 관계, 태양열을 통과하는 빛의 휨 현상 등이 그의
이론의 예측과 일치하자, 사람들은 비교적 쉽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양자 역학은 그런
인과론과는 전면적으로 대치되는 확률론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성립되었으므로 좀처럼
수긍되지 않았다. 이처럼 20여 년간 현대 물리학의 두 기둥인 상대론과 양자론이라는
전연 새로운 이론 체계가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졌고 마침내 1927년
10월 24일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서 열린 제4회 솔베이 회의에서는 양자론도 옳다는
것이 거의 판가름이 났다. 공교롭게도 이 두 혁명은 모두가 빛의 기기묘묘한 행동과
성질의 해명 노력으로부터 시작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거시적 세계의 상대성 이론, 미시적 세계의 양자 역학
이 두 혁명적 이론에 의해, 물질의 궁극적 구성 요소인 소립자 사이의 상호 작용에서부터
사람을 포함한 생물의 구조나 진화, 그리고 거시적 세계의 극한인 우주의 창생 등등이
모두 상대성 이론으로 해명되었다. 그뿐이랴, 현대 물리학은 단순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의 인식을 깊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응용함으로써 우리들의 일상
생활이나 인간 사회의 모든 양태까지도 크게 바꾸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일반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들 두 가지 이론 중 양자론은 상대성 이론에
비해 낯설 정도로 친근감이 없어 보인다. 상대성 이론은 아인슈타인이라는 불세출의 천재
단 한사람에 의해 만들어져 인기도 있고, 또 무엇인지 확실히는 모르나 블랙홀(black
hole)이라든가 빅 뱅(big bang) 등 우주 창생과 관련된 흥미진진한 세계를 설명하여
일반 사람들의 관심도 크다.

이에 반해 양자론은 보어(Niels Bohr; 1885∼1962),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 ; 1901∼1976) 등 수없이 많은 노벨상 수상자 수준의 학자들이 서로 협력도
하고, 또 경쟁도 하면서 만든 이론이어서 그 내용도 상대성 이론에 비해 훨씬 힘들고,
그래서 일반인으로부터 경원시되기가 쉽다. 양자론은 확실히 힘들다. 그래서 가능한 대로
쉬운 예와 비유를 들어가면서 양자론이 어떤 과정을 거쳐 태생하게 되었는지 그 역사적
배경을 파헤치고자 한다.

양자는 열복사 이론으로부터 탄생되었다
◎양자 역학의 산모 플랑크
1900년 12월 14일, 즉 19세기의 마지막 해(19세기는 1801년 1월 1일부터 1900년 12월
31일까지임. 알다시피 기원 0년은 없으며 기원 1세기는 기원 1년에서 기원 100년까지
이다)의 마지막 달에 양자는 고고의 소리를 내면서 태어났다. 산모는 당시 42세였던
베를린 대학의 중진 물리학 교수 막스 플랑크.

플랑크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이날 집 근처로 아침 산책에 나섰다. 함박눈이 내리는
금요일 아침이었다. “얘야, 어쩌면 아버지는 뉴턴에도 비길 만한 중요한 발견을 했을지도
모른단다.” 하고 아들에게 얘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오후 크리스마스 파티를 겸한
베를린 물리학회의 연례 강연회에서 그 결과를 발표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양자 물리학이
태어났다. 그러나 이 양자가 추후 100년 동안 즉 20세기의 과학을 이끌어 가는 주역이
되리라고는 발견자인 플랑크 교수를 포함하여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 양자론은 그후 약 26년간의 고생 끝에 여러 노벨상 수상자 출신의 과학자 수십 명의
협력과 경쟁에 의해 완성되기에 이르렀는데, 11월호의 이 글에서는 먼저 (1) 양자란
무엇인가? (2) 양자를 탄생하게 한 빛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는가? (3) 왜 빛의 성질의
규명으로부터 양자란 개념이 태어났는가? (4) 양자 개념은 전자 세계의 현상 설명에
어떻게 사용되었는가? 등의 순서에 따라 양자 개념의 발생 경위, 초기의 양자론 발전사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양자란 무엇인가
양자라 하면 사람들은 먼저 양아들이나, 두 사람 또는 두 사물 중에서 하나를 택한다는
뜻의 양자택일이라는 말을 떠올릴 것이다. 이들 두 가지 뜻 외에는 이렇다 할 다른 뜻이
얼핏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토록 양자란 말은 낯선 말이다.

양자는 quantum이라는 영어(또는 독일어·프랑스어)의 번역어로서, 일정한 크기의
덩어리나 양(量) 같은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무엇의 덩어리냐 하면 양(量, quantity)이
조그마한 덩어리가 되어 그 덩어리가 그 양의 기본 단위를 이루고 있는 것을 뜻한다.
예컨대 마이크로(미시)의 물질이 갖는 에너지의 양(크기)을 에너지 양자라 불리는
조그마한 덩어리라 생각한다는 것이 그 한 예이다.

물론 이렇게 설명해 보았자, 머리에 남는 것은 의문 부호뿐이다. 즉 손쉽게 그 개념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이 글을 읽어 나가는 과정에서 차차 알게 될 것이다.

이 양자란 말은 앞서도 말한 바와 같이 1900년 12월 독일의 베를린 물리학회의 연말
및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파티를 겸한 강연회에서 플랑크가 발표한 에너지 양자 가설
이란 논문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말인데, 이 이론은 물질을 가열했을 때 그 물질의
온도와 그 물질이 방출하는 빛의 스펙트럼 분포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태어난
것이다.

일반적으로 물질이 가열되었을 때 빛을 방출하는 것을 열복사 또는 온도 복사라 한다.
이 온도 복사는 그 물질의 가열 여부에 관계없이, 그 물질이 어떤 온도 상태에 있기만
하면, 그 온도에 적당한 온도 복사를 하게끔 되어 있다. 그리고 이때 방출하는 빛(빛 외에
적외선·자외선·전자기파·X선·감마선 등등을 모두 포함)이 그 색깔이나 종류(파장이나
진동수에 따라 결정됨)에 따라 어떤 세기(강도)의 분포로 나타나는가를 따지는 것을
스펙트럼 분석이라 하며, 이렇게 해서 얻어진 것을 스펙트럼의 복사 공식(radiation
formula)이라 부른다.

이 복사 공식은 여러 사람에 의해 처음에는 실험을 통해서, 그리고 나중에는 이론을
통해서 여러 가지가 제안되었다. 플랑크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그는
그때까지 얻어진 모든 실험 결과를 남김 없이 설명해 줄 수 있는 새로운 복사 공식을 얻어
냈는데, 이 복사 공식을 찾아내는 기본 가정의 하나로서 제안한 것이 에너지 양자란 념
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양자란 개념은 빛의 연구로부터 태어난 셈이다.

그렇다면 이 양자 또는 양자론을 태어나게 한 빛이란 무엇일까? 그 빛의 정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은 사실 뉴턴 이래 200여 년에 걸쳐 여러 학자들에 의해 논쟁이 거듭되어 왔던
것이었다.

알쏭달쏭한 빛의 정체: 입자냐 파동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빛이란 본래 우리들 눈을 자극해서 시각을 발생시키는 가시 광선만을 뜻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가시 광선뿐만 아니라 적외선에서 자외선까지의 전자기파를 총칭해서
빛이라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 또 한걸음 더 나아가 단파장의 끝인 X선이나 γ선까지
포함한 전자기파 전체를 뜻할 때도 있으며, 이런 경우에는 복사란 말로 표시한다.

빛은 인간을 위시해서 모든 생물의 생존에 없어서는 안될 생명의 근원으로서 태양이나
타오르는 불에서 방출되고 있다.

빛의 입자설과 파동설
빛의 본성에 관해서는 예로부터 갖가지 설이 제안되어 왔으며, 크게 나누어 파동설과
입자설로 대별된다. 소리가 공기의 진동에 의해 공기 중을 체적 변화 또는 압력 변화의
파동으로서 전달(전파라고도 함)되듯이, 빛 또한 어떤 매질 속을 전파해 나간다는 생각이
파동설이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
∼322(321?))가 이미 언급하고 있다.

한편 입자설에서는 물체로부터 빛의 입자가 방출된 후 진공 속이나 공기 또는 유리나 물
등 투명한 매체 속을 직진한다고 생각한다. 파동설에서는 매질 입자가 좁은 범위 내에서
진동 운동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반해서, 입자설에서는 빛의 입자가 고속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뉴턴이 프리즘을 사용한 저 유명한 빛의 분산 실험을 통해 백색광이
수없이 많은 무지개 색을 갖는 여러 갈래의 단색광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빛은
이런 여러 가지 색깔을 띤 미립자의 흐름, 좀더 알기 쉬운 현대적 비유를 든다면 기관총
에서 튀어나온 여러 가지 색깔의 총알의 흐름과도 같다는 것이다. 이 입자설 모형을
사용하면 물체에 빛을 쬐어 줄 때 그 배후에 그림자가 생긴다는 사실, 즉 빛의 직진을
쉽게 설명해 줄 수 있다.

그리고 빛을 파동이라 생각한 사람은 뉴턴과 동시대에 활약한 호이헨스(Christiaan
Huygens; 1629∼1695, 호이헨스의 원리로 유명)와 훅(Robert Hooke; 1635∼1703,
탄성에 관한 훅의 법칙으로 유명)이었다. 훅은 비누 방울과 같이 물의 얇은 막이 무지개
색으로 보이는 현상은 입자설로는 설명이 될 수 없다고 판정하고, 빛을 에테르의 진동
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또 호이헨스는 빛의 속도가 무한대가 아니라 유한하다는 사실과 서로 교차하는 두 빛이
서로 상대방의 진로를 방해함이 없이 본래 진행하던 경로를 그대로 직진한다는 사실
(수면파나 음파 등 모두가 그렇다)을 들어 빛의 파동설을 주장했던 것이다(1678). 빛의
속도가 유한하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이보다 3년 앞선 1675년이며, 덴마크의 천문학자
뢰메르(Ole Christensen Rømer, 1644∼1710)에 의해서였으며, 그의 광속 측정치는
22만 km/초였다.

호이헨스의 파동설의 본질은 그가 발견한 호이겐스의 원리에 의해 잘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호이헨스가 1678년에 발표한 빛의 파동설에서 광파의 진행 상태를 작도할 때
적용한 원리였다. 이 원리에 의하면, 어떤 순간에서의 파면이 주어지면, 그 파면상의 모든
점이 제각기 새로운 파원이 되어 사방 팔방으로 제2차 파인 구면파를 방출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다음 번 파면(일정 시간이 경과한 후에 나타나는 파면)은 이들 2차 파의
포락면으로 얻어진다는 것이다.

이 원리를 쓰면 반사의 법칙과 두 매질의 경계 면에서 일어나는 파동의 굴절을 설명할
수가 있다. 또 빛의 직진 문제, 즉 장애물을 지날 때 그림자가 왜 생기는가에 대해서도
장애물의 크기가 빛의 파장보다 엄청나게 크다고 가정하면 어느 정도 설명이 되는 등
뉴턴의 입자설과 충분히 맞겨룰 수 있을 만한 이론이었다. 그러나 당시는 뉴턴의 권위가
전 유럽의 과학계를 지배했던 관계로 입자설 쪽이 주류가 되어버렸다.

파동설의 부활
뉴턴의 권위 밑에 판정패되다시피 한 빛의 파동설은 19세기 접어들어 영(Young)이 행한
이중 슬릿을 사용한 간섭 실험에 의해 다시 부활되었다. 왜냐하면 간섭 현상은 파동만이
갖는 특유한 성질이기 때문이다.

파동의 간섭이란 두 파동의 배와 배, 또는 마루와 마루가 겹쳐지면 파동의 진폭이 서로
중첩되어 배의 높이나 마루의 깊이가 증가하는 보강 간섭과, 반대로 두 파동의 배와
마루가 중첩되면 파동의 진폭은 서로 상쇄되어 파동이 꺼지는 현상인 상쇄 간섭을 통틀어
뜻한다. 영(Young)은 이 간섭 실험을 이중 슬릿 장치를 사용하여 확인시켜 주었던
것이다(1801년 및 1807년).

이중 슬릿 실험이란 그림에서처럼 광원 S와 스크린 사이에 가느다란 슬릿 2개를 열어
놓은 판자를 세울 때 스크린 상에 빛이 어떤 모향으로 투사되는가를 관찰하는 실험이다.
그러면 스크린 상에는 이중 슬릿의 밝은 그림 대신 밝은 줄과 어두운 줄이 교대로 나타
나는 간섭 무늬가 나타난다.

이 간섭 무늬가 생기는 이유는 호이헨스의 원리에 의해 간단히 설명된다. 각각의 슬릿을
지난 빛은 파동적으로 방사상으로 스크린에 도착한다. 이때 광파의 배와 배 또는 마루와
마루가 중첩된 부분에서는 보강 간섭에 의해 파의 진폭이 증가되어 밝은 무늬로 나타난다.
한편 두 광파의 파동의 배와 마루가 겹쳐진 부분에서는 상쇄 간섭에 의해 파동이 소멸
되어 어두운 무늬가 생기게 된다. 이 두 현상이 스크린 상에서 교대로 나타나기 때문에
간섭 특유의 무늬가 생긴다.

빛의 정체가 만일 입자였다면 슬릿을 지난 빛은 그냥 직진해서 스크린에 도달할 것이기
때문에 스크린에는 두 줄의 가느다란 빛줄기가 비추어질 뿐 간섭 무늬는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즉 빛의 입자설로는 간섭 무늬를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빛은 전자기파의 일종이다
그 후에도 프레넬(Augustin Jean Fresnel; 1788∼1827) 등 여러 과학자들에 의해 19
세기 중엽이 되면 빛의 정체가 파동, 그것도 횡파란 사실이 밝혀지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경향에 대해 결정타를 친 것은 영국의 물리학자 맥스웰에 의한 전자기파의 예언과
헤르츠(Heinrich Heatz; 1857~1894)에 의한 그 실험적 확인이었다.

전자기학은 1801년에 볼타(Alessandro Volta; 1745∼1827)가 볼타 전지를 발명함
으로써 누구나 손쉽게 지속적인 전류를 얻을 수 있게 되자, 급속히 연구가 진행되었다.
사실 그 이전에는 전기 현상을 연구하려 해도 정전기밖에는 발생시킬 수가 없었다.

활발한 연구 가운데 맥스웰은 1864년 전기력이 작용하는 공간인 전기장과 자기력이
작용하는 공간인 자기장이 서로 진동을 하면서 공간내를 전파해 나간다는 사실을 예언
했다. 이것이 바로 전기와 자기의 파동인 전자기파이다. 이 전자기파가 공간을 전파해
나가는 속도를 계산해 본 결과 빛의 속도인 초속 30만 km와 완전히 동일하다는 사실로
부터 맥스웰은 빛은 전자기파의 일종이라는 예언을 했던 것이다.

이 전자기파의 존재를 예언한 지 24년 후(맥스웰 서거 9년 후)인 1888년 독일의 물리학자
헤르츠에 의해서 전자기파의 일종인 이 빛은 틀림없이 파동이란 것이 실험적으로 확인
되었다.

이리하여 19세기 말경이 되면 빛의 정체는 틀림없이 파동이란 사실이 굳어져 승부는
역전되어 파동설의 KO승이 판명되었다.

그러나 곧 의문도 생겨났다. 그 하나는 빛의 매질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었고, 빛에 대한
또 하나의 수수께끼는 가열된 물체로부터 방출되는 빛의 여러 성질이었다. 플랑크의
에너지 양자 가설은 바로 이러한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연구로부터 태어났다.

복사 스펙트럼의 분석이 양자 탄생의 직접적인 계기였다
왜 독일에서 고온 복사의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는가
쇠막대나 돌덩어리 등의 고체를 가열시켜 그 온도를 계속 올려가면, 그 고체로부터
나오는 뜨거운 열선(적외선)의 세기가 차츰 강해지고, 이윽고 525。C 전후의 온도가
되면 희미하나마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붉은색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더욱 온도가 올라가
750∼800。C 정도가 되면 불을 붙여 피운 담뱃불 정도의 적색이 나타나고, 힘껏 담배를
빨았을 때처럼 그 온도가 1000。C 수준이 되면 밝은 적색, 1200∼1400。C가 되면
촛불에서와 같은 밝은 빛이 나온다.

그래서 옛날 고온용 온도계가 없었던 시절에는, 철을 달굴 때 철이 내는 빛을 보고 대략
그 온도를 알아맞혔다고 한다. 그러나 색깔만을 보고, 가열된 돌이나 철의 온도를 알아
맞히는 이 방법은 너무도 원시적이며 그 정확성이 떨어진다. 이 때문에 어떻게 하면
가열된 물체의 온도를 방출된 빛 색깔의 스펙트럼(여러 가지 색깔의 밝기 분포)으로부터
알아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철강 산업계에서 큰 숙제의 하나였다.

19세기 후반 플랑크의 모국인 독일에서는 프로이센 왕국을 중심으로 오랜 숙원이었던
독일 통일이 달성되었고, 또 인접국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크게 이겨 막대한 배상금과
함께 알자스·로렌 지역을 할양받기도 하였다. 이 지역은 석탄과 철광석의 산지로서
유명하며, 이들을 원료로 용광로에서 철을 만드는 제철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또 통일 독일의 초대 재상이 된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 1815∼1898)는 독일
경제의 중점을 농업에서 중공업 쪽으로 옮기는 정책을 과감히 진행시켰다. 그 결과
독일에서는 유럽의 다른 여러 나라에 앞서 야금 공업, 가스 공업, 조명 사업 등이 발달
했고, 고온의 온도 복사 문제를 다루는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플랑크는 바로 그런 연구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복사의 스펙트럼 분석
중공업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양질의 철을 만들어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
서는 용광로 안의 철의 온도를 정확히 파악하면서 제어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용융된
철의 색깔만을 보고 검붉은 색이니까 1000。C 정도, 새빨갛게 되었으니까 1800。C,
백열에 가까우니까 더 높은 온도 등등 경험이나 육감을 토대로 판단하고 있었으므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또 철이 새빨간 색으로 보인다고 해서 그 철이 새빨간 색의 빛만을 내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자연계에서 관찰하고 있는 빛깔은 단 한 가지 색깔의 빛(이것을 단
색광이라고 한다)만으로 되어 있는 경우는 드물고 여러 가지 색깔을 포함하고 있다. 그
전형적인 예가 태양광이다.

흰 종이에 쬐었을 때 흰색으로 보이는 이 백색광을 프리즘에 통과시키면, 알다시피
무지개 색의 갖가지 아름다운 색으로 갈라진다. 다만 우리들은 그 여러 색깔 중 가장 밝은
빛의 색을 그 물체의 색이라 인식할 뿐이다. 태양광의 경우에는 노란색 계통의 색깔이
가장 강하기 때문에 태양을 직접 보면 노랗게 보이게 된다.

그런데 빛의 색깔은 빛의 파장에 따라 결정된다. 예컨대 보라색의 파장은 대략 4000Å
(옹스트롬) 또는 400nm(나노미터; 1nm은 10억분의 1m), 즉 4×10-7m 정도 된다.

우리가 보는 보통의 빛에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여러 가지 색의 빛이 섞여 있다.
일반적으로 어떤 빛이 주어졌을 때, 그 빛 속에서 어떤 파장의 빛이 어떤 세기로 섞여
있는가를 조사하는 것을 그 빛의 스펙트럼을 조사한다고 한다. 스펙트럼이란 무엇인가
변동하고 있는 것의 변동 영역을 뜻하며, 좀더 확대 해석을 하면, 여러 가지가 섞여 있는
것 중에서 어떤 기준에 따라 구분을 하거나 골라 내는 것을 뜻한다. 예컨대 age
spectrum이라고 하면 어느 조직체 내에서의 연령층별 인원 분포를 뜻하는 따위이다.

따라서 어떤 온도에서 가열된 물체로부터 나오는 빛 또는 복사(열선·가시광선·자외선등
등의 총칭)의 스펙트럼이란 그 복사 안에 들어있는 여러 색깔의 빛들이 어떤 세기로
분포되어 있는가를 나타내는 것을 뜻한다.

흑체 복사
가열한 물체로부터 나오는 빛의 스펙트럼을 조사할 때 주의해 둘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어떤 특별한 색을 갖는 물체를 조사해 보면 그 물체로부터는 물체 고유의 특별한 파장의
빛만을 방출하고, 또 역으로 특정한 파장의 빛만을 흡수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은 물체의 경우에는 특정한 파장의 빛만을 반사하거나 흡수하는 일은 없고,
모든 크기의 파장의 빛을 방출 또는 흡수한다. 그리고 그 빛의 세기는 오직 그 빛의
파장(또는 진동수)의 크기와 온도의 높낮이에만 좌우되는 분포를 갖는다는 것이 알려
지게 되었다.

그래서 물체의 온도와 빛의 스펙트럼 분포 사이의 기본 관계를 우선 얻어 내려 했던
당시의 학자들은, 검은 물체로부터 방출되는 빛의 스펙트럼만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게
되었다.

그 흑체 복사는 실험적으로 간단히 구현시킬 수가 있다. 예컨데 어떤 체적을 갖는 속이 빈
그릇 안에 니크롬선 같은 것을 넣고 가열하여 일정 온도로 유지시켜 주면서 이 그릇의
한쪽 끝에 매우 작은 구멍을 뚫어 주면 이 조그마한 구멍으로부터 방출되는 복사는
흑체 복사가 된다. 왜냐하면 이 구멍의 크기가 공동의 크기에 비해서 매우 작으면,
이 구멍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 빛은 공동 안쪽의 벽에서 일부 반사와 일부 흡수를 되풀이
하지만, 구멍의 크기가 작아 다시 구멍을 통해 밖으로 나갈 기회가 없으므로, 언젠가는
완전히 흡수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즉 구멍으로 입사한 빛을 그 파장에 관계없이 모두
흡수하여 복사하는 흑체 복사와 같다.

흑체 복사의 스펙트럼
그 흑체 복사의 스펙트럼을 실험적으로 조사하자, 여러 가지 재미 나는 사실이 밝혀지곤
했다. 우선 스펙트럼의 그래프는 왼쪽과 같았다. 이 그래프에서 제일 밑의 곡선은 온도가
904K일 때이고, 위로 올라가는데 따라 온도가 점차 높아져 제일 위의 것은 1646K일 때
흑체가 방출하는 빛의 스펙트럼 분포 곡선이다. 이 그래프에서 가로 좌표는 빛의 파장을
나타내며 세로 좌표는 빛의 밝기를 나타낸다.

어느 온도에서건 분포 곡선은 파장이 작을 때는 거의 0에 가깝다가, 파장이 커지는데
따라 그 밝기가 커지고, 어느 파장에 이르면 최고가 된다. 그리고 그 파장을 넘어서면
다시 수그러져 들어가 점차 0에 접근한다. 904K, 1095K, 1257K, 1445K, 1646K 등
온도가 올라가더라도 곡선 전체의 모습은 대략 비슷하다.

다만 곡선의 꼭대기 부분 즉 최대 밝기에 해당하는 파장의 값은 온도에 역비례하여
작아진다. 즉 고온이 될수록 최대 밝기를 갖는 빛의 파장이 단파장 쪽으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빈(Wilhelm Wien; 1864∼1928)이 1893년에 발견했는데, 이것을 빈의
변위 법칙이라 부르며, 수식적으로는
λmaxT=constant 로 나타난다. λmax는 분포 곡선에서 밝기가 제일 큰 빛의 파장임을 뜻한다.

이렇게 흑체 복사의 스페트럼의 분포 곡선이 실험적으로 얻어지자, 물리학자들은 앞을
다투어 이 분포 곡선을 수식으로 표시함으로써, 스펙트럼 분포와 온도 사이의 법칙을
찾아내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법칙을 나타내는 수식은 좀처럼 얻어지기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빛의 정체를 파동이라 생각했던 당시의 물리학 법칙을 적용한다면,
흑체 복사의 스펙트럼 분포 곡선이 이 실험 곡선과는 전연 닮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용광로에서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
슈테판-볼츠만의 공식
앞서도 말한 바와 같이 열복사에 관한 연구는 19세기 후엽에 들어와 독일 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예컨대 베를린 대학 교수였던 키르히호프(Gustav Robert Kirchhoff;
1824∼1887)는 1859년 흑체의 개념을 도입하고, 흑체가 방출 또는 흡수하는 복사의
복사능과 흡수능의 비는 흑체를 이루고 있는 물체의 성질과는 무관하며, 오직 그 복사의
파장과 온도에만 관계된다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열복사에 관한 키르히호프의 법칙)

또 1879년이 되면 빈 대학 교수인 슈테판(Josef Stefan; 1835∼1893)은 고온체에서
방출되는 복사의 에너지 밀도는 절대 온도(T)의 4제곱에 비례한다는 소위 슈테판-
볼츠만의 법칙을 실험적으로 발견해 냈다.

u=σT4 (σ는 비례 상수로서 슈테판·볼츠만 상수라 불린다)

나중에 빈 대학의 볼츠만(Ludwig Boltzmann; 1844∼1906, 통계 역학의 최고 권위자)은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과 열역학의 이론을 써서 이론적으로 이 법칙을 유도해 냈다.

슈테판-볼츠만의 이 공식은 우리의 일상 경험과도 잘 일치한다. 즉 화롯불이나 모닥불을
피울 때 화로나 모닥불의 온도가 조금만 올라가도 우리는 무척 뜨겁게 느낀다. 그것은
화로의 온도가 배만 올라가도 방출되는 열복사의 세기는 24=16배나 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온도 T는 섭씨 온도가 아니라 절대 온도이긴 하지만, 어쨌든 화로의 온도가
조금만 올라가도 방출되는 열 에너지는 무척이나 크게 늘어나는 것이다.

빈의 변위칙과 복사의 공식
한편 스승인 헬름홀츠가 소장으로 있던 국립물리공업연구소에서 1890년부터 일하고
있던 빈은 조그마한 구멍을 갖는 공동 복사는 흑체 복사와 같다는 것을 밝히기도 했다.
(1895년) 또 그는 열역학적 고찰로부터, 공동 안에 갇힌 복사의 압력 p는 복사 에너지
밀도의 1/3, 즉 p=u/3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이로부터

λmaxT=일정하다는 그의 유명한 변위칙을 증명하는 데 성공했다.(1893년)

이것은 복사가 공동내에서 운동할 때 반사벽에 부딪혀 반사하는 경우, 도플러 법칙에
따라 파장이 변한다는 사실과 열역학적 법칙 두 가지를 사용하여 유도해 낸 것이었다.
더욱이 빈은 1896년에는 흑체로부터의 복사의 스펙트럼 분포를 나타내는 함수 u(ν,T)는
반드시 다음과 같은 형을 갖는다는 것을 증명해 냈다.

u(ν,T) = aν3f(ν/T) (ν는 진동수, T는 절대 온도) 그와 동시에 그는 가능한 f의 하나로서

f(ν/T) = eν/T를 제시했다.

이 관계식을 유도해 내는 데 있어, 빈은 원자론적인 관점과 맥스웰의 속도 분포칙을
적절히 결부시켰는데, 이런 논리 비약적인 결합의 유효성에는 의심점이 많으나, 여하튼
이렇게 해서 얻어진 분포 곡선과 보편 함수 f는 다음과 같이 주어졌다.

u(ν,T) = aν3f(ν/T) = aν3e-b ν/T이 분포 곡선은 그 당시 알려진 실험치와 고진동수
부분에서는 상당히 좋은 일치를 보였다(오른쪽 그래프 참고). 그러나 저진동수 쪽에서는
잘 맞지 않았다.

그래프에서는 가로가 파장이므로 위의 빈의 복사 공식은 그냥 쓸 수가 없다. 진동수 대신
파장을 써서 고쳐야 한다. u(ν,T)dν=u(λ,T)dλ 및 ν=c/λ의 관계식을 써서 위의 식을
파장을 함수로 하는 식으로 바꾸면

u(λ,T) = a(c4/λ5) e-bc/λT가 된다. 이 (6)의 식으로 그린 것이 그래프의 아래쪽에
점선으로 나타낸 곡선으로서, 빈의 복사 공식을 나타낸다. 하여튼 그림을 보면 단파장
쪽에서는 빈의 공식과 실험치가 썩 잘 맞지만, 장파장 쪽에서는 잘 맞질 않는다.

이러던 중 1900년이 되면, 영국의 레일리 경(Lord Rayleigh; 1842∼1919)이 의문을
제기한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만약 고전 전자기학과 고전 통계 역학이 옳다면, 공동
복사의 스펙트럼 분포는 반드시 다음과 같다고 제시했다.

u(ν,T) = aν2kBT이 공식은 1905년 진스(James Jeans; 1877~1946)가 전자기 이론을
써서 엄밀하게 유도해 냈기 때문에 레일리-진스의 복사 공식이라 불리며, 그 정확한
수식은 다음과 같다.

u(ν,T) = 8πν2/c3kBT이 공식을 유도하는 데는 복사의 전자기 이론과 통계 역학에서의
등분배 법칙 등 약간고급한 지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7)의 식이나 (8)의 식은 물론
모두가 빈이 유도해 낸 일반 공식을 만족시킨다.

이것으로 양자가 탄생할 수 있는 무대 준비는 모두 갖추어졌다. 남은 것은 주연 배우
플랑크의 입장과, 위의 두 공식이 옳음을 판가름해 줄 증인격의 실험 측정치들이었다.

빈의 공식인가, 레일리-진스의 공식인가
이 무렵, 1890년대에 들어오자 흑체 복사의 실험은 중공업 지향의 독일 공업계의 요구에
발맞추어 급속한 진전과 정밀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1895년에는 빈과 루머(Otto
Richard Lummer; 1860∼1925)가 키르히호프의 법칙으로부터 공동 복사가 이상적인
흑체로서의 조건을 모두 실현시켜 준다는 것, 그리고 그 이전의 여러 실험들이
흑체란 점에서는 여러 가지로 결함이 많다는 것을 지적했다. 이 후로 흑체 복사의 실험은
확실한 기반을 얻게 되었다.

또 1895년에는 루머와 카를바움(Ferdinand Karlbaum; 1857∼1927)이 흑체 전기로를
완성시키고, 흑체 복사의 절대 측정과 적외 잔류선에 의한 흑체 복사의 측정치를 발표
하였다. 이어 1899년에는 루머 및 프링스하임(Ernst Pringsheim)에 의해, 그리고 같은
해에 파셴(Louis Paschen; 1865∼1947)에 의해서도 각각 흑체 복사의 스펙트럼 분포의
측정치가 발표되었다.

이때부터 플랑크의 활동도 시작된다. 플랑크는 스승인 키르히호프에서 시작된 열복사의
스펙트럼 분포 곡선을 나타내는 보편 함수를 찾기 위해, 빈처럼 아무런 상관성도 없어
보이는 기체 운동론과 같은 논리 비약적 가설을 세우지 않고, 실험치에 충실하려고 했다.

이 점에서 1900년에 발표된 레일리-진스의 복사 공식은 논리 정연해 보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복사 공식은 그래프에서 보듯이 고진동수 쪽에서는 실험치와 잘 맞지
않았다. 즉 파장이 조금이라도 작아지면, 실험치와는 너무도 격차가 많아졌다.

한편 빈의 복사 공식은 그 유도에 있어서 논리 비약적인 가설이 포함되기는 했으나,
고진동수 쪽에서는 실험치와 잘 맞았다. 하지만 저진동수 쪽에서는 장파장인 적외선
부분에서의 공식과 실험치 사이의 차가 눈에 띄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즉 이들 두 복사 분포의 공식은 진동수나 파장의 양극단 값에서는 제각기 실험치와
잘 맞았지만, 서로 상반되는 반대쪽 극한에서는 실험치와 너무도 차이가 심했던 것이다.
빈을 따르자니 레일리-진스가 울고, 레일리-진스를 따르자니 빈이 우는 격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플랑크에게는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들 두 공식을 융합시키려는
생각이었다. 그는 곧 조수와 함께 이 두 공식을 융합시키는 내삽식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양자론의 발견은 시동이 걸린 것이다.

플랑크, 양극단을 절충시키는 복사 공식을 발견하다
빈의 복사 공식의 분석
1900년 10월 당시, 흑체 복사의 스펙트럼 분포에 관해 플랑크가 입수한 정보는 다음과
같았다. 흑체에서 방출되는 복사(기술적으로는 일정 온도로 유지된 전기로에서 방출되는
복사, 즉 공동 복사)의 스펙트럼 분포를 나타내는 곡선(복사 공식이라 부른다)의 성격은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1893년 빈에 의해 다음과 같이 밝혀졌다.

u(ν,T) = aν3 f(ν/T)
이 식의 보편 함수 f(ν/T)는 T/ν=1/(ν/T)라 할 경우 다음과 같이 바로 레일리-진스의 복사
공식이 된다.

uRJ(ν,T) = aν2T = aν3/k(ν/T)
이 공식은 1900년에 레일리에 의해 얻어졌으나, 상수 a의 정확한 값은 1900년 당시에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았고, 5년 후인 1905년에 가서야 진스가 복사론의 전자기 이론을
써서 비로서 a = 8πkB/c3임을 밝혔다.(kB는 볼츠만 상수로서 1.38×10-23J/K)

또 f(ν/T)로서 e-bν/T를 택하면, 빈의 복사 공식 uW(ν,T)=aν3 e-bν/T을 얻게 된다.
이식의 상수 a와 b는 이론적으로는 유도할 수 없기 때문에 실험치와 비교하여 결정해
주어야 한다.

또 복사체가 방출하는 총에너지 u는 (3)의 식을 ν에 관해서 적분해 주면 얻어지는데,
ν/T=x라고 변수 변환을 시키고 적분하면

u = ∫0∞ u(ν,T)dν
= ∫0∞ a(Tx)3f(x)Tdx
= aT4∫0∞ x3f(x)dx
= aIT4
를 얻는다. 여기서 I는 f(x)의 함수형만 알면 계산할 수 있는 정적분의 값으로서 그 값은
상수이다. 따라서 aI=σ(슈테판-볼츠만 상수)라고 하면 위의 식은 u=공동 복사의 총
에너지=σT4로서, 바로 슈테판-볼츠만의 법칙이 된다. 또 u(ν,T)의 최대값을 주는 파장
λmax는 du/dλ=0이라는 조건에 의해 주어진다.

du/dλ=(du/dλ)(dλ/dν)
=(d[aν3f(ν/T)]/dλ)(dλ/dν)
=3f(ν/T)+(ν/T)f、(ν/T)
=0
여기서 ν/T=x라 하면 이 식은 3f(x)+xf、(x)=0이 된다.

이 방정식(초월 방정식)은 반드시 어떤 일정한 크기의 xm를 갖는다. 즉
xm=constant(일정)이다. 그런데 xm=νm/T=c/λT이었으므로, 이로부터 우리는
λmT=일정, 즉 빈의 변위칙을 얻게 된다.

이상의 분석에서 보듯, 플랑크는 빈이 유도해 낸 44쪽의 보편적 복사 공식 (3)의
타당성을 인정할 수 있었다. 다만 보편 함수 f(x)의 함수형으로서 어떤 것을 택할 것인가
하는 것만이 문제로 남아 있었다.

이란성의 쌍둥이 복사 공식을 플랑크가 통합하다
앞에서 우리는 복사의 스펙트럼 분석을 나타내는 복사 공식에 두 가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들 두 복사 공식은 제각기의 존재 이유를 주장하고 있다. 이들 두 공식의
대결 양상을 요약하면

uw(ν,T) = AT3x3e(-x) ---------→ 실험치와 잘 맞음
x--→ ∞
wRJ(ν,T) = AT3x3 (1/x) ---------→ 실험치와 잘 맞음
x--→ 0
라 쓸 수 있다. 즉 두 공식은 모두가 w(ν,T)=AT3x3f(x)(단, x = bν/T)의 공식이고, f(x)가
지수함수 e-x이면 빈의 공식, f(x)가 (1/x)이면 레일리-진스의 공식이 된다. 그리고 x가
무한대로 발산할 경우 빈의 공식이 잘 맞고, x가 0으로 근접할 경우 레일리-진스의
공식이 잘 맞는다는 것이다. 이것을 뒤집어 말하면

uW(ν,T) = limf(x) = e(-x) = fW(x)
x→∞
uRJ(ν,T) = limf(x) = 1/x = fRJ(x)
x→0
란 뜻이 아닐까?

플랑크의 생각이 이 단계에 도달했을 때, 해결의 실마리는 이미 풀린 거나 같았다. 그렇다.
이제 남은 것은 이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는 함수를 찾는 일이었다. 이런 함수를 내삽
함수라 한다. 플랑크는 급히 서둘러 그 내삽 함수를 찾았다. 답은 간단했다. f(x)=1/
(ex -1)이면 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이 함수에서 x→∞의 극한을 취하면 ex>>1이기
때문에, ex에 비해서 1은 무시해도 좋을 만큼 작으므로 사실상

lim(1/(ex -1)) 쨿 e-x 쨿 fW(x)
x→∞
lim(1/(ex -1))=lim(1/(1+x+x2/2+x3/3+…))쨿1/x = fRJ(x)
x→0
가 된다.

이리하여 서로 상반되는 쌍둥이의 두 복사 공식은 대결의 상태에서 융합의 상태로 통합이
가능해졌던 것이다. 그렇다면 실험치와의 일치 여부는? 물론 완전 일치되었다.

이미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1898년과 1899년은 흑체 복사에 관한 스펙트럼 분포의
실험 결과를 보고하는 논문이 유난히도 많이 쏟아져 나온 해들이었다. 루머, 카를바움,
프링스하임 등은 개량된 흑체 전기로와 향상된 적외선 영역에서의 스펙트럼 분석법을
써서 정밀한 측정치를 얻어 냈다. 이들 측정치는 모두 플랑크가 발견한 내삽적 끼워
맞추기 복사 공식과 완전히 일치하였다.

플랑크는 밤잠을 설치다시피 하면서 서둘러 논문을 썼다. 그리하여 다음날 오후, 즉
1900년 10월 19일 금요일, 플랑크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놀랄 만한 발견을 베를린
대학의 물리학 세미나에서 발표했던 것이다.

우연의 발견으로부터 논리 정연한 에너지 양자 가설로(제1혁명)
우연의 발견을 불명예롭게 여긴 플랑크
플랑크의 복사 공식 자체는 확실히 획기적인 것이었다. x=(ν/T)의 양극단치인 x→∞와
x→0에서뿐만 아니라 0그래서 그도 그것을 처음 발견하고 또 발표한 1900년 10월 19일의 시점에서는 크게
흥분도 했고,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그는 고지식한 이론물리학자였다. 이론물리학자는 우연의 발견이라든가 내삽법과
같은 끼워맞추기에 의한 발견 따위는 명예롭게 생각하지 않는다. 필연성에 의해서 귀결
되는 논리 정연한 것이 아니고는 만족할 수가 없다. 따라서 플랭크는 단순히 실험치와
일치하도록 끼워 맞춤으로써 얻은 결과를 만족스럽게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1900년 10월 19일의 첫 발표 이후부터 약 2개월 동안 우연의 발견이란 오명을 씻어
내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다.

그리고 1900년 12월 14일에는 드디어 올바른 이론적 유도에 성공했다.

레일리-진스 복사 공식의 유도
당시 전자기파 이론에 의하면, 열 평형 상태인 용광로, 즉 공동 속에 갇힌 복사 전자
기파는 수학적으로는 단진동자로 대표되며, 공동이 길이 L의 입방체라 한다면, 이 입방체
안에서 정상파를 형성하게 된다. 따라서 그 파장(λ)는 용광로의 크기를 L이라 할 때,
그 최대 파장은 2L이고(기본 진동 파장), 나머지 내진동의 파장은 그 양을 양의 정수
(자연수)로 나눈 2L/n(n =1, 2, 3…)로 주어진다.

또 파장(λ)와 진동수(ν) 사이에는 진공 속에서의 광속을 c라 할 때 νλ=c의 관계를 이루
므로, ν의 값은 nc/2L가 된다. 그 결과 용광로(공동) 내에는 λn=2L/n 또는 ν
n=nc/2L(n=1, 2, 3…) 등 수없이 많은 종류의 파장 또는 진동수를 갖는 복사가 존재한다.
여기서 n은 모드(mode; 진동의 양식)라 부른다.

한편 열역학 이론에는 에너지 등분배 법칙이란 것이 있다. 이에 의하면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시켜 준, 즉 열 평형에 놓여 있는 용광로 안의 빛들은 각 파장(또는 각 진동수)마다
그 파장과 진동수에는 관계없이 언제나 동일량의 에너지 값인 kBT(kB는 볼츠만 상수)가
등분배되도록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런 진동수(또는 파장)의 가짓수, 즉 모드의 수는 얼마가 될까? 예컨대 진동
수가 ν와 이보다 약간 큰 ν+dν 사이에 있는 모드의 수를 ρ(ν,T)dν라 한다면, ρ(ν,T)dν는
n 공간(틈새가 1씩 떨어진 격자 공간)에서 반지름이 n이고 두께가 dn인 구체 껍데기
체적의 1/8과 같다. 즉

ρ(ν,T)dν=(1/8)(4πn2)dn
=(4π/8)(2Lν/c)2d(2Lν/c)
=(4πL3ν2/c3)dν
와 같다. 이 모드수 ρ(ν,T)dν의 유도는 간단한 체적 계산에 불과하지만, 그 개념, 예컨대
n 공간의 개념은 매우 어렵다. 이 계산은 앞서도 말한 바와 같이 레일리에 의해 대략적인
것이 1900년에 발표되었고, 엄격한 계산은 진스가 1905년에 완성시켰다.

한편 전자기파는 횡파(진행 방향에 대해서 수직으로 진동하는 파동으로, 이에 반해 진행
방향으로 진동하는 음파는 종파라 한다)이다. 횡파인 전자기파는 두 방향의 서로 수직한
두 진동 모드(편광)를 갖는다. 따라서 위에서 계산한 모드수에 2를 곱한 것이 공동내
복사의 총모드수로서, ρ(ν,T)dν=(8πL3ν2/c3)dν와 같다. 이들 각각에 kBT란 에너지가
균등히 분배되므로, 그 총에너지

U(ν,T)dν=ρ(ν,T)dνkBT
=(8πL3ν2/c3)dνkBT
와 같다. 이것을 공동의 체적 L3으로 나누면 단위 체적당의 에너지, 즉 에너지 밀도가
다음과 같이 나온다.

u(ν,T)dν=U(ν,T)dν/L3=(8πν2/c3)kBTdν
이것이 바로 유명한 레일리-진스의 복사 공식이다.

플랑크의 개량 노력
플랑크는 빈의 복사 공식이 슈테판-볼츠만의 공식을 무난히 만족시키며(레일리-진스의
공식은 무한대가 되는 난점을 갖는다), 또 넓은 진동수 영역에서 비교적 실험치와 잘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공식을 유도하는 데 사용된 논리 비약적 가설이
억지 같기만 해서 찬동할 수가 없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우연한 발견이나 끼워맞추기
방식에 혐오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레일리-진스의 복사 공식(1900년 당시에는
레일리에 의한 형식만 알려져 있었고 진스에 의한 정확한 표현은 5년 뒤의 일이다)에
더 신빙성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모드당 등분배된다는 평균 에너지 kBT의 계산법을 재검토해 보기로 했다.
보통의 경우 이 평균치는 맥스웰-볼츠만의 분포에 따라 계산된다. 이에 의하면 단진동과
E의 에너지를 가질 확률은 통계 역학적으로 e-E/kBT 인수에 비례한다.

따라서 E의 평균치

<E>=∫0∞Ee-E/kBTdE/∫0∞e-E/kBT
=-dln/d(1/kBT)[-kBTe-E/kBT]0∞
=-dlnkBT/d(1/kBT)
=kBT
가 된다. 이렇게 계산하는 한 평균 에너지는 그때까지 여러 학자가 시도했듯이 kBT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 문제는 커다란 골칫거리였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그는 갑자기
전자기파(복사)를 대표하는 단진동자의 에너지가 혹시나 어떤 기본 단위로의 정수배만을
택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속셈으로 그런 계산을 한 후에 ε의 값을
0으로 가져가면 될 것이 아닌가 생각한 것이다. 우선 계산부터 해 보기로 했다. 즉
단진동자의 에너지가 연속적으로 변한다고 생각하는 대신, 이유는 확실치가 않으나
En=nε(n=0,1,2,3…)처럼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값을 택한다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계산은 즉석에서 시행되었다. 에너지(E) 대신 En=nε를 쓰고 적분 ∫0∞dE 대신 불연속
적인 합인 ∑n=0En을 취하면, E의 평균치

<E> =(∑n=0En e-En/kBT)/(∑n=0e-En/kBT)
=-d(ln∑n=0e-En/kBT)/(d(1/kBT))
=-d(ln∑n=0e-nε/kBT)/(d(1/kBT))
=d(ln(1-e-ε/kBT)/d(1/kBT)
=ε/e-ε/kBT-1
이 된다. 이 평균치를 u(ν,T)에 대입하면, u(ν,T)=(8πν2/c3)ε/(e-ε/kBT-1)를 얻는다.
그런데 빈의 보편적 복사 공식과 일치시키려면 ε은 진동수(ν)에 비례해야 한다. 비례
상수를 h라 한다면 ε=hν가 된다. 그 결과 아래의 복사 공식이 논리 정연하게 유도되었다.

u(ν,T)=(8πν3h/c3)/e-hν/kBT-1
이것은 플랑크 자신이 약 두 달 전인 1900년 10월 19일에 발표한 복사 공식과 완전히
일치한다.

이리하여 에너지 양자 ε=hν가 드디어 태어났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더불어
20세기 물리학을 송두리째 뒤흔들게 되는 양자론이 탄생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날부터 플랑크이 고민은 다시 시작된다. 타고난 성질 때문이랄까, 결백성
때문이랄까, 100% 고전 물리학자였던 탓으로. 스스로가 발견한 혁명적 발상에 미쳐
대응할 줄 몰랐던 것이다.

자신의 혁명적 발상에 고민하는 플랑크
에너지 등분배 법칙을 무너뜨린 에너지 양자 가설
에너지 양자 가설을 쓰면 흑체 복사의 스펙트럼 분포 곡선이 왜 실험 결과와 일치하는
가를 설명할 수 있다. 예컨대 플랑크가 유도해낸 복사 분포 곡선

up(ν,T) = (8πν2/c3)lim(hν/ehν/kT -1)
ν→0
에서 진동수(ν)의 값이 매우 작은, 즉 저진동수(장파장)의 극한 ν→0를 취하면 앞서도
말한 바와 같이

up(ν,T) = (8πν2/c3)lim(hν/ehν/kT -1)
ν→0
= (8πν2/c3)kT
= uRJ(ν,T)
가 되어 저진동수(장파장)일 때 실험값과 잘 맞는 레일리-진스의 공식을 얻게 되고,
고진동수(단파장)의 극한인 ν→∞를 취하면

up(ν,T) = (8πν2/c3)lim(hν/ehν/kT -1) = (8πν2/c3)e-hν/kT
ν→∞
가 되어 고진동수(단파장)일 때 잘 맞는 빈의 공식과 일치한다. 한편 플랑크의 공식은
ν→0 및 ν→∞인 극한일 때뿐만 아니라, 중간 영역, 즉 거의 모든 값에 대해서도 실험값과
잘 일치했던 것이다. (오른쪽 그래프 참조. 점은 실험치를 표시)

그런데 그때까지의 물리학에 의하면, 파동인 빛은 그 진동수의 높고 낮음과는 관계없이
어떤 크기의 에너지라도 가질 수가 있었다. 따라서 앞서도 말한 바와 같이 고전 물리학의
에너지 등분배 법칙에 따라 어떤 크기의 진동수의 빛(복사)에 대해서도 에너지를 균등
하게 배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플랑크는 그의 복사 공식을 유도해내는 데 있어서 진동수가 ν인 빛은 hν라는
크기의 단위로밖에는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경우 진동수 ν의 값이 커지면 hν의 값도 커진다. 그 결과 에너지를 균등하게 배분
하고자 해도, 공동내의 총에너지가 무한대가 아닌 이상, 큰 진동수 ν를 갖는 빛에 대해
서는 에너지를 배분할 수가 없게 된다.

예컨대 술독에 들어 있는 술을 조그마한 잔과 대폿잔을 가진 사람에게 한 잔씩 번갈아
가득 채워서 나누어 준다고 하자. 그러면 처음 몇 차례는 한 잔씩 나누어 줄 수가 있지만,
술독 안의 술이 점점 줄어들어 나머지가 얼마 안 남게 되면, 더 이상의 균등 분배는
불가능해진다. 큰 대폿잔을 가진 사람에게는 술을 가득 채워 주려 해도 술독에 남아 있는
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유한한 크기밖에 갖고 있지 않은 공동내의 총에너지(u=σT4)를 술독의 술의
양으로 비유하고, 빛의 단위(즉 양자)인 hν를 술잔이나 대폿잔으로 비유한 말이다.

이런 식으로 갖가지 크기의 진동수를 지닌 빛에다 한 잔씩(1단위, 즉 hν) 에너지를
배분해 나가려 한다면, 실험 결과처럼 봉우리(최대값)가 있는 곡선이 된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있다.

양자란 한 덩어리의 단위량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플랑크는 빛의 에너지를 hν 단위로 하는 한 덩어리라 생각한다는
가설을 세웠는데, 이 한 덩어리의 단위량이 바로 양자이다. 영어에서는 양을 quantity라
한다. 이 quantity를 한 덩어리 또는 한 단위란 뜻으로 쓰기 위해 만든 새로운 말이 바로
영어(독일어 또는 프랑스어)의 quantum이다. 이 말 역시 1900년 12월 14일에 탄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자(子)가 붙는 말은 원자·분자·중성자·전자 등처럼
조그마한 극미 세계의 입자를 뜻하는 경우가 많지만, 양자의 경우에는 양자라 불리는
명칭을 갖는 특별한 미소 입자가 존재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무엇인가 한 덩어리라
생각되는 조그마한 단위량이 있을 때 이것을 양자라 부르게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빛
에너지의 경우는 hν가 양자, 즉 에너지 양자이다.

플랑크의 에너지 양자 가설에 의하면 진동수가 ν인 빛은 반드시 hν, 2hν, 3hν……등 hν의
배수로만 에너지를 주고 받게 되며, 정수배 이외의 어중간한 크기의 에너지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생각은 그때까지의 물리학에서는 절대로 인정할 수 없는
혁명적인 아이디어였다.

왜냐하면 그때까지의 물리학에서는 모든 양(물리량)은 연속적으로만 변화하는 것이지,
띄엄띄엄 떨어진 값으로 개구리 모양 뛰어넘어면서 변화할 수는 없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즉 자연 현상에 나타나는 모든 양은 연속적으로만 변하는 것이지, 절대로 이산적인 값을
취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믿었던 것이다.

에너지의 불연속성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렇다면 왜 종래의 물리학에서는 물리량이 연속적으로만 변화한다고 생각했을까?
그것은 양자, 즉 에너지의 단위량인 hν란 값만 살펴보아도 곧 알 수 있다. 이 hν란
단위량의 계수인 h는 플랑크의 작용 양자(h는 물리학적 의미로서는 action을 뜻한다.
즉 작용이란 양의 차원이기 때문에 작용 양자라 불린다. 수식으로는 ∫∑pdq로 주어짐)라
불리며, 그 크기는 h=6.626×10-34J·s이다.

한편 이 h와 짝을 이루어 에너지 양자를 구성하는 진동수 ν는 가시 광선의 경우 대략
5×1014Hz의 크기이다. 따라서 hν의 값은 가시 광선 영역에서는 대략
6.626×10-34×5×1014(J·s·Hz)=3×10-19 정도이다. 1J은 0.1kg중의 물체(공책 한 권
정도의 무게)를 1m 높이로 올리는 데 필요한 에너지이다. 쉬운 예를 들자면, 모기 한
마리가 천천히(초속 30cm) 날아다닐 때의 운동 에너지가 대략 10-8J이므로, 10-19J은
이것의 1000억분의 1, 즉 일상 생활 속에서는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 0에 가까운
에너지이다.

그러니까 빛의 에너지가 불연속적으로 변화한다고 하더라도, 그 불연속적인 단차는
10-19J이라는 엄청나게 작은 양이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아무리 위대한 과학자라도
미처 그 단차를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래서 누구나 빛의 에너지는 연속적으로만 변화
하는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이것은 단차가 1mm씩 되어 있는 계단을 만들었다 해도,
우리들에게는 매끈하게 경사진 길로만 보일 뿐, 계단 차가 있다고는 전연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무척이나 작은 계단 차라고는 하지만, 있는 것은 있는 것이다. 우리들에게는
매끈한 비탈일지 몰라도 조그마한 개미에게는 그것이 절벽처럼 생각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개미 정도의 세계가 아니라 개미보다도 1만분의 1이나 더 작은 원자·분자 등
미시 세계에서는 이 계단 차, 즉 hν 수준의 불연속성은 간과할 수 없는 큰 계단 차로서,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 예상된다. 그 결과 종래의 물리학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커다란 변화가 미시 세계에서는 일어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혁명이었다
이렇게 플랑크의 에너지 양자 가설은 물리학에서는 처음으로 이산적인 불연속성을
도입한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따라서 오늘날 플랑크는 양자의 아버지로서 그 위업을
높이 찬양받고 있다.

그러나 플랑크 자신은 어떠했는가 하면, 자신의 이 혁명적 생각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기고, 어떻게 하면 그것이 진리가 아닐 수 있는가, 또는 진리가 아니기를 바란 여러
논문을 쓰기에 골몰한 듯하다. 플랑크는 흑체 복사의 스펙트럼 분포를 설명키 위해서는
빛의 에너지 양이 hν를 단위로 하는 불연속적인 값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아직도 고전 물리학의 완전성에 깊이 심취되어 있었던만큼, 물리량을 불연속적인 것으로
해석하려는 그 자신에 의한 혁명적 생각에는 미처 합류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플랑크는 남은 생애 동안, 자신의 혁명적인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고전 물리학과 혁명적인 양자론을 통합시키고 융합시킬 수 있는가에 힘을 쏟았다.

아인슈타인이 양자 가설을 바탕으로
광양자설을 내놓았다(제2혁명)
구원에 나선 젊은 청년 과학자
플랑크는 그의 에너지 양자 가설을 통해, 빛이 에너지를 어떤 한 덩어리, 즉 hν라는 양자
단위로만 주고받는다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내세우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빛 그 자체가
조그마한 알갱이 모양으로 되어 있다고까지는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플랑크가 빛이
불연속적인 덩어리 형태의 에너지만을 주고받는다는 당시로서는 비상식적인 발상에 몹시
고민하고 있었을 때, 돌연히 혜성처럼 나타나, 플랑크의 양자 가설을 전적으로 받아들
였을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빛이란 hν라는 에너지를 갖는 입자들의 집합체라고
부르짖은 것은 무명의 청년 학자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이었다.
그가 그 유명한 특수 상대성 이론을 제출하기 3개월 전인 1905년의 일이다.

아인슈타인은 그 아이디어를 써서 당시에는 큰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던 광전 효과란
현상을 멋지게 설명해 냈던 것이다. 그리고 이 공로에 의해 그는 1921년도 노벨
물리학상도 받게 된다. 알다시피 아인슈타인 하면 상대성 이론, 상대성 이론 하면
아인슈타인이 연상될 만큼 그의 상대성 이론은 물리학계에서는 천지 개벽 이래 크나
큰 혁명의 하나였지만, 그가 노벨상을 받게 된 업적인 광양자설도 상대성 이론 못지않은
커다란 업적이었다.

광전 효과란 과연 무엇인가
그렇다면 그 광전 효과란 무엇일까? 그것은 자외선이나 파랑색 계통의 단파장(고진동
수)의 빛을 금속 표면에 쬐어 주면 금속 표면으로부터 전자가 방출되는 현상이다.
1887년에 처음으로 헤르츠와 그의 제자에 의해 방전 현상의 연구 중 우연히 발견된
현상이다. 1905년까지 여러 과학자에 의해 자세한 실험이 이루어져 그 결과가 발표되
었는데 그 성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쬐어 주는 빛의 진동수가 높아질수록 금속으로부터 방출되어 나오는 전자(광전자라
한다)의 운동 에너지는 진동수에 비례하여 커진다. 반대로 입사된 빛의 진동수가 낮아
지면, 방출되는 광전자의 운동 에너지는 진동수에 비례하여 작아지다가, 일정한 크기의
진동수(문턱 진동수) 이하가 되면 더 이상 광전자는 튀어 나오지 않는다. 즉 광전 효과는
쬐어 주는 빛의 진동수가 문턱 진동수 이하가 되면 아무리 강한 빛을 오랫동안 비추어도
일어나지 않는다.

(2) 쬐어 주는 빛의 세기를 변화시켜 주어도, 광전자의 운동 에너지의 크기는 변하지
않는다. 다만 그 빛의 세기가 강해지면, 튀어나오는 전자의 갯수는 늘어난다.

(3) 아무리 세기가 약한 빛이라도, 그 진동수가 문턱 진동수보다 크기만 하면, 쬐어 주는
순간에 광전자가 튀어나온다.

아인슈타인의 광양자설
빛을 파동이라 생각하는 한 이 3가지 실험 결과는 설명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파동론에
의하면 빛의 파장이나 진동수는 빛의 종류(모드), 즉 빛의 색깔을 정해줄 뿐 빛의
에너지와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첫째, 쬐어 준 빛의 파장(진동수)에 따라 방출되는 광전자의 운동 에너지가 변한다는 것,
더군다나 진동수(ν)에 비례한다는 사실은 이해할 수가 없다. 또 어떤 진동수(문턱 진동수)
이하의 빛을 아무리 오래 쬐어 주어도, 광전자가 튀어 나오지 않는다는 실험 사실도 이해
불가능하다. 파동론에 의하면, 시간만 충분히 오랫동안 쬐어 줄 경우 에너지가 축적되어,
언젠가는 광전자가 튀어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파동론에 의하면 빛의 에너지는 그 세기에 비례하므로, 쬐어 주는 빛의 세기를
강하게 해주면 방출되는 광전자의 운동 에너지도 커져야 하는데, 실은 그렇지가 않다.

셋째, 파동론에 의하면 약한 빛은 아무리 진동수가 높다 해도 에너지가 작기 때문에,
장시간 쬐어 주어야 비로소 광전자를 방출할 만큼 충분한 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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