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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왜 昔씨는 滅門之禍를 당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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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식탐험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댓글 3건 조회 2,775회 작성일 09-05-1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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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昔氏는 稀姓이 되고 말았나?

신라의 3大 성씨가 지금은 1만 명도 되지 않는다. 이 수수께끼에 도전한다.

우리나라의 姓氏 랭킹을 보고 있으면 수수께끼 같은 一点을 발견할 수 있다. 2000년 인구 센서스에서 인구수 1등은 金氏로서 약993만 명이었다. 全인구의 21.6%이다. 2위는 李氏로서 약679만 명. 14.8%이다. 3위는 朴씨로서 약390만 명, 8.5%이다. 金, 李, 朴씨는 王姓이다. 金씨는 신라와 금관가야의 王姓이고, 李씨는 조선, 朴씨는 신라의 王姓이다.
본관별 랭킹은 1위가 金海金氏로서 약412만 명, 2위는 밀양朴氏로 303만 명, 3위는 전주李氏로 260만 명이다. 4위는 경주金氏로서 174만 명이다.
그렇다면 金, 朴씨와 함께 신라의 3大 왕성인 昔氏는 몇등인가? 신라 56代 왕 가운데 朴씨 왕이 6명, 昔씨 왕이 8명, 金씨 왕이 42명이다. 朴씨보다 더 많은 왕을 배출한 昔씨이니 그 후손들도 번창하여 인구가 많아야 될 것이다.
그런데 昔씨는 2000년 인구 센서스에서 110등이었다. 인구가 2907호에 9544명이다. 王姓인 昔씨가 史씨(109등)나 夫씨(111등) 같은 稀姓이 되어버렸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 많던 昔씨는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일본에서 더 유명한 역사학자 朴炳植씨는 미발표 논문 '昔氏王族의 600년 秘史'에서 昔氏 滅門之禍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가고 있다.
朴선생은 이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을 三國史記 문무왕條에서 구했다.
<本彼宮의 財貨(재화), 田莊(전장), 奴僕(노복)을 갈라서 그 半을 김유신과 김인문에게 나누어 주었다>
문무왕 2년(662년) 2월條에 적힌 내용이다. 本彼宮은 최초의 昔氏王인 昔脫解 집안의 근거지 반월성 근방을 가리키거나 昔氏 집안일을 관리했던 관청으로 추정된다. 朴 선생은 문무왕條의 이 문장이 金氏王朝에 의한 昔씨 탄압과 학살, 추방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문무왕이 昔씨 집안의 재산과 땅과 종들까지도 다 압수하여 부하들에게 나눠주었다는 것이다.

昔脫解는 신라系 出雲國 출신

그때는 羅唐 연합군이 백제를 멸망시킨 지 2년이 되는 해였다. 백제 지역에선 부흥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어 羅唐 연합군이 작전을 펴고 있었고, 倭는 백제부흥운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대함대를 준비중이던 시절이다. 국내외 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을 때였다. 왜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신라정권은 昔씨 탄압에 나섰던가?
昔氏族은 170년간 8代의 왕을 배출하면서 신라를 다스리다가 4세기 초 金氏族에게 王權을 빼앗긴 뒤 일부는 지금의 일본 시마네 지방에 있던 이즈모(出雲)國으로 돌아갔다는 설이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昔脫解는 '倭의 東北 1천리에 있는 花夏國 출신'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倭는 지금의 北규슈에 있었다. 이즈모는 北규슈로부터 東北쪽 해안(일본 서해안)지방에 있다.
지금의 시마네, 돗도리 지역엔 辰韓(나중에 신라) 사람들이 많이 건너갔다. 弁韓(나중엔 가야) 사람들은 北규슈로 많이 건너갔다. 시마네 지역엔 신라系 왕국이, 北규슈 지역엔 가야系 왕국이 세워졌다. 北규슈의 가야系 왕국은 倭로 불렸다. 4세기부터 이 두 지역의 세력이 지금의 나라, 교토 지역으로 진출한다. 고대 일본의 심장부가 되는 이곳에서 두 세력은 각축전을 벌여 가야系 北규슈 세력이 주도세력이 되고 통일국가인 야마토(大和. 나중에 日本으로 改名), 즉 지금의 일본을 세운다. 따라서 일본의 天皇家는 가야系이고, 姓은 없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가야金氏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그럴 듯하다.
1915년 조선총독부는 유독 金海金氏의 족보 발간을 금지시키는 명령을 내린 적이 있다. 이는 天皇家와의 연관성을 은폐하기 위함이란 추리를 한 사람이 언어적 관점에서 일본 고대사에 대해 독특한 시각을 전개한 朴炳植 선생이다.

7세기의 보트 피플

昔脫解 집안은 원래 신라 지역에 살다가 바다를 건너 이즈모로 가서 세력을 이루었다. 이 세력은 일시 귀국하여 신라를 다스리다가 권력투쟁에서 金氏族에게 패배하자 일부가 이즈모로 돌아갔다. 그 중 일부 昔氏族이 다시 신라로 건너와서 王權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昔씨는 백제, 가야, 왜와 내통하여 신라의 지배층을 괴롭혔다고 한다. 金氏王權은 왕족인 昔氏 세력을 언젠가는 제거해야 한다고 벼르고 있다가 羅唐 연합군이 백제를 멸망시킨 2년 뒤 행동을 개시하여 昔氏族을 전국적으로 학살, 추방했다고 朴炳植씨는 주장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일본측의 기록이 있다고 한다.

17세기의 고문서 穩座拔記(온좌발기)는 "天武天皇 시절(서기 672-686년)에 일본과 한국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였고, 한국 사람으로서 일본으로 귀화해오는 수효가 매우 많아서, 일년에 수백, 수천명이나 바다에서 조난하였고, 오키섬(隱岐島)에 표착하는 사람도 아주 많았다" 적고 있다.
오키섬은 독도문제와 관련하여 자주 등장하는 시마네縣 소속의 섬이다. 신라로부터의 보트 피플이 일본으로 몰려가고 있는 듯한 느낌의 기술이다. 朴炳植 선생은 이 기술이 박해를 피해서 昔씨들이 일본 서해안으로 탈출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추정한다.
재미 있는 것은 이때의 천황 天武가 신라系인 이즈모 세력 출신이란 점이다. 그는 일본내 신라 도래인 세력의 결정적 도움을 받고 쿠데타(임신의 亂)를 일으켜 집권한 다음에는 親新羅-反唐 정책을 썼다. 그때 신라는 對唐결전일 벌이고 있을 때였다. 天武천황은 대규모 사절단을 신라에 보내 통일국가를 이룩한 선진국의 제도를 배워가서 일본의 古代국가를 완성한다. 이 약30년이 韓日 두 나라가 가장 사이 좋을 때였다. 신라에 남아 있던 昔氏族은 金氏王權으로부터 탄압을 받다가 同族출신이 일본의 천황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일본으로 대거 탈출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昔氏姓은 稀姓이 되고 말았다는 이야기이다.

최근 일본에서도 이런 추리와 맥을 같이 하는 연구가 많이 진행되어 고대의 韓日관계에 대한 시각을 새롭게 하고 있다. 그 핵심은 가야 신라 세력이 대거 일본으로 건너가 여러 나라들을 세웠고, 이 세력들이 나라 지방으로 모여 고대통일국가를 만들었으며 가야系가 집권한 뒤엔 한반도에 남은 가야세력 및 백제와 손잡고 反신라 정책을 펴면서 한반도에 出兵해왔다는 점이다. 일본은 우방국인 가야, 백제가 잇따라 신라 손에 망한 뒤엔 마지막으로 서기 663년에 3만 명의 대함대를 보내 백제부흥운동을 지원하려다가 白村江 해전에서 전멸한 뒤부터 한반도 개입의 야망을 포기했다.
신라한테 망한 백제의 지식인들이 대거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을 정신적으로 지도하는데 특히 일본의 첫 正史인 日本書記 편찬에 참여한다. 日本書記는 신라를 매도하기 위하여 쓰여진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이 일본인의 한반도에 대한 시각의 틀을 결정했다. 신라와 백제 감정이 신라와 일본의 감정으로 변하고 이것이 오늘날 韓日감정의 뿌리가 되는데 이에 대해선 다음 기회에 설명하기로 한다.


출처 : 조갑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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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지식탐험자님의 댓글

지식탐험자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p>일본인들의 끝없는 한반도에 대한 욕심과 좋지않은 감정에는 기저에는 한반도 고대국가 시절 지배세력들과 그를 추종하던 집단이 기득권을 상실하고 이땅을 자의반 타의반 떠났것에 근거한다고 학계에서는 연구되고 있습니다.</p><p>특히 백제멸망시 백제의 왕족과 백제민의 일부가 일본에 건너가 일본국의 국가의 중추세력이 되었으며 그 집단에서 현재 일본의 천왕가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일본인들도 인정하기 싫은 사실이죠.</p><p>일본에서는 고고학이 약합니다.  얼마전 어떤 일본교수가 일본의 고고학의 중흥을 부르짓으며 과감하게 일본의 고대분묘 및 일본고대사를 독자적인 역사라고 주장하며 활동하다가 밤에 몰래 발굴현장에 유물을 묻다가 몰래카메라에 걸려들어 대망신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p><p>그 일본 교수는 어찌보면 상당히 일본 보수우익에 속한 자로써 일본 역사가 반도역사와 달리 독창적으로 형성된 문화라는 것을 강조했지만 결국 역사위조 현장이 걸려들어 망신을 당했고 그 교수 이전과 이후에도 일본 역사학자들은 참으로 조심스러운 역사해석의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상당히 편협스럽고 소심하게 일본역사를 해석합니다.</p><p>그 이유는 간단하지요.  앞서 말한 글이나 윗자료에 나왔듯이 모든 것이 반도에서 넘어간 것이 연구하면 할 수록 더더욱 명확해지니 자국의 고대사를 과감하게 열지 못하는 것입니다.  </p><p>일례로 최근에 일본에서 옛날  고분들이 많이 발견됨니다.  하지만 결코 그들은 그 옛 고분들을 앞서 전술한 역사위조한 교수처럼 열지 못합니다.  고분을 열지 못하고 연구만 하죠.  심지어 고분을 열지못하고 그 고분속에 내시경을 집어넣고서 연구를 합니다.  </p><p>고분을 과감하게 열었을 경우 언론에서 집중 취재를 할 것이고 그 고분속에서 나오는 최고 문화재급 유물들이 죄다 반도에서 넘어오거나 반도문화재가 나오면 일본역사계에서 그간 쌓아놓은 독자적인 일본역사학이 완전 뒤집어 질 것을 우려해서 아주 몰래 그것도 언론에 주목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내시경으로 몰래 고분을 살펴보고 그 안에 반도에서 온 유물이 없으면 여는 것입니다.</p><p>연구하자니 연결점과 역사적 인과관계가 너무 명확하고 연구를 하지 않자니 독자적인 국가형성에 뼈대를 세울 수 없고...  이것이 일본 역사학계 학자들이 처한 상황입니다.</p><p>과감하게 결론을 내면 될것을...  참으로 편협한 일본국민들입니다.  </p>

도훈님의 댓글

지식탐험자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p>참 공감가는군요.</p><p>삼국시대에 일본을 지배했던것에대한 분노가 그배후가 되는것이라고 저도 생각했지만 그럴만한<br />이야기를 보니 더욱 확고해지는군요.</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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