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물자이동 다 지켜보고 있다...

美항구에 우뚝 선 ‘중국의 눈’은

미 “중국산 대형 크레인은 잠재적 스파이 도구”

 ZPMC USA의 홈페이지에 게시된 크레인 사진 

 

미국 국방부 등 국가안보 부처가 미국 전역의 항구에서 흔히 보이는 중국산 대형 크레인을 잠재적 스파이 도구로 여기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5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항구와 선박 사이에서 컨테이너를 옮기는데 쓰이는 대형 크레인에는 컨테이너의 출처와 행방을 등록·추적하는 정교한 센서가 달려 있어, 중국 본사에서 크레인 현황을 모니터링하면서 미군의 해외 작전에 동원되는 물자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가능성이 제기됐다는 것이다. 크레인 운용 프로그램의 사이버 보안이 취약해 중국군이 원격으로 크레인들만 망가뜨리면 해군을 동원하지 않고도 미국 항구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미국 당국이 경계하고 있는 것은 ‘상하이전화(上海振華)중공업’이란 중국 이름을 지닌 회사 ZPMC의 대형 크레인이다. 서방 국가들보다 싼 값에 크레인을 판매하는 ZPMC는 세계 크레인 시장의 약 70%를 점유하고 있다. 미국 항구에서 사용되는 항구와 선박 간 크레인도 거의 80%는 ZPMC가 제조한 것이다. 대개 중국에서 완전히 조립된 채 미국에 양도되는 이 크레인들은 중국에서 만든 소프트웨어를 통해 운용된다. WSJ는 20여년 전 미국에 진출한 ZPMC가 세계 항구 자동화 산업의 주요 기업으로 성장했으며, 장비를 연결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와도 협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2017년 마이크로소프트 홈페이지에 게시된 동영상에서 송하이량 당시 ZPMC 회장은 “상하이의 본사 사무실을 통해 모든 크레인을 모니터할 수 있다”고 말했다.

WSJ에 따르면 미 국방정보국은 지난 2021년 진행한 기밀 평가를 통해 중국이 크레인을 이용해 항구 교통을 틀어 막거나 배로 수송되는 군사 장비에 대한 정보를 모을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ZPMC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주창한 ‘일대일로’ 사업의 주요 계약자인 중국의 국영기업 ‘중국교통건설’의 자회사란 점도 우려를 키우고 있다. 미 정부 당국은 중국교통건설이 중국 정부의 민군(military-civil) 융합 프로그램에 기여하고 있다고 보고, 지난 2020년 이 회사의 일부 부문이 미국 기술을 입수하지 못하도록 제재를 가했다. “일부 국가안보, 국방부 당국자들은 중국에 기반을 둔 ZPMC의 선박과 항구를 잇는 크레인을 ‘트로이의 목마’와 비교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그리스군이 대형 목마를 타고 트로이성에 침투한 것처럼 대형 크레인이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는 취지다. 

이런 가운데 지난 2년 간 버지니아주 노포크,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찰스턴,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등의 항구들이 ZPMC의 새 크레인을 구매하면서 미국 국가안보 커뮤니티와 연방수사국(FBI)의 우려가 커졌다. 모두 인근에 미군 기지가 있어 미군이 자주 이용하는 항구다. 2021년에는 FBI가 볼티모어항으로 ZPMC 크레인을 운반해 온 화물선에 정보 수집 장비가 실려온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주미중국대사관 측은 중국산 크레인에 대한 미국의 우려가 “피해망상에 의한 것”이란 입장을 WSJ에 밝혔다. 하지만 미국은 대응에 나서고 있다. 미 의회는 작년 12월 8500억 달러(약 1101조원) 규모의 국방예산안인 ‘국방수권법(NDAA)’을 통과시키면서 교통부에 ‘국방부, 다른 기관과 의논해 해외에서 제조된 크레인이 미국 항구의 사이버안보와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보고서를 올해 연말까지 만들라’고 요구했다. 공화당 소속의 카를로스 히메네스 연방하원의원은 지난해 미국이 더 이상 중국 크레인을 구입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법안을 제안했다. 이런 분위기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 방첩보안센터 국장을 지낸 빌 에바니나는 WSJ에 “크레인이 새로운 화웨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중국의 스파이 행위에 동원될 것을 우려해 화웨이 통신망을 금지한 것처럼 크레인도 그런 조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2023.03.06

조선일보 워싱턴=김진명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