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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조조 무덤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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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식탐험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댓글 7건 조회 2,064회 작성일 09-12-27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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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로 널리 알려진 삼국시대 조조의 진짜 무덤으로 보이는 유적이 발굴돼 중국 학계가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인민일보 등 중국 언론은 허난성 문물국이 허난성 안양현 안펑향 시가오쉐 촌에 있는 동한 시대 무덤을 발굴하다, 이 무덤이 문헌상으로만 전해 내려오던 위 무왕 조조의 진짜 '고릉'인 것으로 확인했다고 일제히 보도했습니다.

지하 15m에 있는 이 무덤은 갑자 형태 구조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경사진 내부 묘도를 따라 내려가면 앞뒤에 규모가 큰 쌍실과 4개의 측실이 있고 길이 39.5m에 넓이는 9.8m입니다.

이 무덤은 여러 차례 도굴됐지만 금을 비롯한 각종 보석 200여 점이 출토됐고, 특히 '위 무왕이 쓰던 창'과 '위 무왕이 쓰던 돌베개'라고 쓰인 명문이 발견돼, 중국 고고학자들은 이를 근거로 조조의 고릉이라고 결론내렸습니다.

또, 한 남성과 두 여성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도 나왔는데 남성 유골은 60살을 전후해 사망한 것으로 감정돼, 조조가 66살에 숨졌다는 문헌상 기록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조조의 것으로 중국 고고학계는 보고 있습니다.

후한 시대 천하 통일을 놓고 유비, 손권과 겨뤘던 조조는 아들 조비가 위나라를 세우면서 무왕으로 추존됐던 인물로, 죽기 전 자신의 무덤이 도굴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가묘 72개를 만들라고 유언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다양한 학설이 나왔지만, 지금까지 조조의 진짜 무덤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YTN / 김종욱 [jwkim@ytn.co.kr]
http://www.ytn.co.kr/_ln/0104_200912271922194232


<中 "허난서 삼국시대 조조 무덤 발굴">

천하 쟁패를 놓고 유비, 손권과 겨뤘던 삼국시대 조조(曺操.155-220)의 진짜 무덤이 허난(河南)성에서 발굴돼 중국 학계가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허난성 문물국이 허난성 안양(安陽)현 안펑(安豊)향 시가오쉐(西高穴)촌에 있는 동한(東漢)시대 무덤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이 무덤이 문헌상으로만 전해 내려오던 위(魏) 무왕(武王) 조조의 진짜 '고릉(高陵)'인 것으로 확인했다고 인민일보 등 중국 언론이 27일 일제히 보도했다.

지하 15m에 위치한 이 무덤은 갑자(甲字)형태의 구조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경사진 내부 묘도(墓道)를 따라 내려가면 앞뒤에 규모가 큰 쌍실(雙室)과 4개의 측실(側室)을 갖추고 있었으며 길이 39.5m, 넓이 9.8m에 전체 면적이 740㎡로, 그 규모는 비교적 작았다.

수차례 도굴됐음에도 이 무덤에서는 금을 비롯한 각종 보석 200여 점이 출토됐으며 특히 "위 무왕이 사용하던 창'과 '위 무왕이 사용하던 돌베개' 등의 명문(銘文)이 발견됐다.

허난성 문물국과 중국 고고학자들은 이 명문 등을 근거로 이 무덤이 조조의 고릉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특히 이 무덤에서 한 남성과 여성 2명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됐는데 이 남성의 유골은 사망 당시 60세 전후였던 것으로 감정됐다. 이는 조조가 6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는 문헌상의 기록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이 유골이 조조의 것으로 중국 고고학계는 보고 있다.

고고학자들은 "명문이 나왔을 뿐 아니라 출토 유물이 살아생전 조조의 기호와 일치하고 무덤 규모는 장례를 간소하게 치르도록 한 조조의 취향과 맞아떨어진다"며 "의심할 바 없는 조조의 고릉으로, 삼국시대 연구에 일대 전기가 마련됐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후한(後漢) 때 천하통일을 놓고 유비, 손권과 자웅을 겨뤘던 조조는 아들 조비(曹丕)가 위나라를 건립하면서 무왕으로 추존됐던 인물로, 죽기 전 자기의 무덤이 도굴되는 것을 막기 위해 72개의 가묘를 만들라는 유언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탓에 그의 무덤의 위치와 관련, 다양한 학설이 난무했지만 지금껏 그의 진짜 무덤은 발견되지 않았다.

(선양=연합뉴스) 박종국 특파원 pjk@yna.co.kr"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pjk@yna.co.kr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09/12/27/0200000000AKR20091227053800097.HTML?did=1179m

<中, 삼국지 조조 진짜 무덤 찾았다>

사진#02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 조조(·155∼220)의 무덤이 확인됐다고 런민()왕 등 중국 언론이 27일 보도했다.

허난() 성 문물국은 이날 베이징()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허난 성 안양() 현 안펑() 향 시가오쉐(西) 촌의 2호 묘지에서 동한()시대 무덤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문헌상으로만 전해 내려오던 위() 무왕() 조조의 고릉()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쑨잉민() 허난 성 문물국 부국장은 “조조는 가묘가 많아 진짜 능의 위치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했으나 고등학자들에 의해 드디어 확인됐다”며 “고고학상으로 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조조의 진짜 무덤을 추적해 온 ‘조조묘고고발견()’ 팀이 공개한 사진에 의하면 무덤은 여러 차례 도굴당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다행히 조조의 묘임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출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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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15m에 위치한 무덤은 갑자() 형태의 구조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경사진 내부 묘도()를 따라 내려가면 앞뒤에 규모가 큰 쌍실()과 4개의 측실()을 갖추고 있었으며 길이 39.5m, 너비 9.8m에 전체 면적이 740m²가량이다.

발굴팀은 무덤에서 금을 비롯한 각종 보석 200여 점을 발견했으며 ‘위무왕이 사용하던 창’과 ‘위무왕이 사용하던 돌베개’ 등의 명문()도 발견됐다. 허난 성 문물국과 중국 고고학자들은 이 명문과 위무왕 비석 등을 근거로 이 무덤이 조조의 고릉이라고 결론지었다고 런민왕은 전했다. 특히 ‘위무왕()’이라고 선명히 쓰인 돌 위패 등 다수의 돌 위패가 발견돼 조조의 진짜 무덤으로 확인하는 유력한 증거가 됐다고 언론은 전했다.

한편 무덤 속에서는 한 남성과 여성 2명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도 발견됐는데 남성의 유골은 사망 당시 60세 전후였던 것으로 감정됐다. 이는 조조가 6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는 문헌상의 기록과 일치해 이 유골이 조조의 것으로 중국 고고학계는 보고 있다.

고고학자들은 “명문이 나왔을 뿐 아니라 출토 유물이 살아생전 조조의 기호와 일치하고 무덤 규모는 장례를 간소하게 치르도록 한 조조의 취향과 맞아떨어진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고 중국 언론은 전했다. 조조는 자기의 무덤이 도굴되는 것을 막기 위해 72개의 가묘를 만들라고 유언해 진짜 무덤의 위치에 대해서는 학설만이 난무했다.

동아일보 /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http://news.donga.com/Inter/3/02/20091228/25075828/2&top=1


앵커멘트

조조 하면 고대 중국의 천하 통일을 놓고 유비, 손권과 겨뤘던 영웅으로, 삼국지를 통해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데요.
이 조조의 것으로 보이는 무덤이 발굴돼 중국 학계가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김종욱 기자입니다.

리포트

중국 허난성 안양에서 발굴된 유적입니다.
지하 15m에 만들어진 무덤은 길이 39.5m, 넓이 9.8m로, 규모가 큰 쌍실과 4개의 측실을 갖추고 있습니다.
인민일보 등 중국 언론은 이 무덤이 문헌으로만 전해 내려오던 위나라 무왕 조조의 진짜 무덤으로 확인됐다고 일제히 보도했습니다.

중국 고고학자들이 조조의 무덤으로 보는 근거는 먼저, 보석 200여 점과 함께 출토된 명문입니다.
명문에는 위 무왕이 쓰던 창과 위 무왕이 쓰던 돌베개라고 적혀 있습니다.
두 여성의 유골과 함께 발굴된 남성 유골도 조조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망 당시 60살 전후였던 것으로 감정됐는데, 조조가 66살에 세상을 떠났다는 문헌상 기록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인터뷰:판 웬빙, 발굴단장

"조조는 날이 넓은 칼과 짧은 창을 사용했습니다. 무덤에서 이런 유물이 여섯 점 출토됐습니다."
후한 때 천하 통일을 놓고 유비, 손권과 자웅을 겨뤘던 조조는 아들 조비가 위나라를 세우면서 무왕으로 추존됐습니다.
죽기 전 자신의 무덤이 도굴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가묘 72개를 만들라고 유언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무덤 위치를 놓고 여러 학설이 나왔지만 진짜 무덤으로 발표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YTN B1jwkim@ytn.co.kr%EC%9E%85%EB%8B%88%EB%8B%A4"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김종욱jwkim@ytn.co.kr입니다.

http://channel.pandora.tv/channel/video.ptv?ref=na&redirect=prg&ch_userid=ytn_dolbal&prgid=36767921&categid=

<삼국지 유비-손권 무덤도 햇빛 볼까?>

魏 조조 무덤 발굴후 관심집중
蜀 유비, 청두市 등 3개지역說
吳 손권, 비석-인공구조물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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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cs=bz&p=%BB%EF%B1%B9%BD%C3%B4%EB" target="_blank" rel="nofollow noreferrer noopener">삼국시대의 영웅 위나라 조조(曹操·155∼220)의 무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자 그와 함께 천하통일을 다퉜던 촉나라 유비(劉備·161∼223)와 오나라 손권(孫權·182∼252) 등 나머지 두 영웅의 무덤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28일 중국 양쯔(揚子)만보에 따르면 유비와 손권의 무덤은 발굴되지 않았다. 다만 일찍부터 대략적인 위치가 확인돼 왔다. 유비가 묻힌 곳은 △쓰촨(四川) 성 청두(成都) 시 △충칭(重慶) 시 펑제(奉節) 현 △쓰촨 성 펑산(彭山) 현 등 세 개의 설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곳은 청두 시내에 있는 제갈량(諸葛亮)의 사당인 무후사(武侯祠) 안에 있는 혜릉(惠陵)이다. 이 능에 유비가 왕후들과 함께 묻혔다고 역사서 삼국지는 전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시인 겸 사학자인 궈모뤄(郭沫若·1892∼1978)는 다른 주장을 폈다. 그는 1961년 펑제 현에 유비가 묻혔을 가능성을 높게 봤다. 펑제 현에는 유비가 숨진 백제성(白帝城)이 있는 곳이다. 당시 교통조건 등을 고려할 때 유비의 시신을 청두까지 옮기는 게 불가능했다는 것. 실제로 1982년 이 현의 한 곳에서 물리탐사 기술로 무덤으로 보이는 지하공간을 발견하기도 했다. 남송(1127∼1279) 시대 학자 임연(任淵)은 “청두의 유비 무덤은 도굴꾼을 속이기 위한 가묘”라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론 펑산 현의 한 곳에 황제의 무덤이 있다는 전설이 꾸준히 민간에서 내려오고 있다.

손권의 무덤은 장쑤(江蘇) 성 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cs=bz&p=%B3%AD%C2%A1" target="_blank" rel="nofollow noreferrer noopener">난징(南京) 시 메이화(梅花) 산 부근으로 명(1368∼1644) 태조 주원장(朱元璋·1328∼1398)의 효릉(孝陵) 능역 안에 있다. 명 태조는 능 조성공사 도중 손권의 무덤을 발견했으나 그냥 뒀다고 한다. 현재 비석만 남아 있으나 2006년 조사 당시 지하에서 ‘갑(甲)’자 형태의 인공 구조물을 확인했다고 한다. 조조의 무덤도 ‘갑자’ 형태다. 메이화 산은 과거에 ‘오왕 무덤’으로 불렸다.

한편 조조의 무덤은 소박한 게 눈길을 끈다. 조조는 중국 역사상 최초로 박장(薄葬)을 제안했다. 후하게 장사지내지 말라는 뜻이다. 조조는 발구중랑장(發丘中郞將)과 모금교위(摸金校尉)라는 도굴 전문 관직을 두고 고대 황제의 능묘를 전문적으로 파헤쳐 군자금으로 썼다. 그 때문에 후하게 장사지낼 경우 도굴될까 두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 /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57&articleid=2009122903000047410&newssetid=57


<조선일보 [만물상] 조조의 무덤>


조조(曹操)가 어려서 방탕한 짓을 일삼자 삼촌이 조조 아버지 조숭에게 일러바친 일이 있다. 난감해진 조조는 어느 날 삼촌이 보는 앞에서 사지를 버둥거리며 "풍을 맞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동생으로부터 이를 전해 들은 조숭이 놀라 달려와 "풍을 맞았다니 웬일이냐"고 묻자 조조는 "풍이요? 삼촌이 제가 미워 꾸며댄 모양입니다"라며 시치미를 뗐다. 그 후 조숭은 동생의 말을 믿지 않게 됐고, 조조는 더욱 활개를 치고 다녔다.

▶조조가 포악한 동탁의 휘하에서 도망치다 친구 여백사의 집에 묵을 때였다. 밖에서 칼을 가는 듯 이상한 소리가 들리자 조조는 여백사의 아들들이 자기를 죽이려는 줄 알고 칼을 빼 모두 죽여버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들은 조조를 대접하려고 음식을 장만하는 중이었다. 조조는 무안하고 비참한 기분에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남을 배신할지언정 남이 나를 배신하게 하지는 않겠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 그려진 조조는 7척(당시 척도로 161㎝가량) 키에 볼품없는 빈상이다. 8척(184㎝) 유비에 훨씬 못 미치는 풍채다. 게다가 아무도 흉내 못 낼 꾀와 냉혹·비정함을 갖춘 인물이니 어느 모로 보나 소설에서의 인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 조조의 위(魏)나라는 중국 14개 주 중 10개 주(650만명)를 차지해 오나라 3개 주(230만명), 촉나라 1개 주(95만명)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역사의 승자였다. 결국 3국을 통일한 것도 위나라였다.

▶역사 속 조조는 군사전략가나 정치가로서는 유비나 손권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그릇의 인물이었다. 그는 난세에서의 행동과 치세(治世)에서의 행동이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알았다. 난세에선 도덕보다 능력이 중요하다며 인재가 있으면 적과 아군 가리지 않고 골라 썼다. 사람들을 때맞게 칭찬해 감동시킬 줄 알았고, 천하를 도모하려면 사소한 일에 구애받지 않아야 한다며 적은 물론 부하까지 태연히 속였다.

▶중국 허난(河南)성에서 조조의 진짜 무덤이 발굴됐다고 한다. 조조는 죽기 전 자기 무덤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72개 가묘(假墓)를 만들라고 유언해 그동안 진짜 무덤이 어디인지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지략과 임기응변으로 난세의 승자가 됐던 조조다운 마지막이 후세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다가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것 같다.

조선일보 / 김태익 논설위원 tikim@chosun.com"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tikim@chosun.com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2/28/2009122801509.html


<中학자 "조조 무덤 증거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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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中 "허난서 삼국시대 조조 무덤 발굴" (서울=연합뉴스) 박영석 기자 = 허난성 문물국이 허난성 안양(安陽)현 안펑(安豊)향 시가오쉐(西高穴)촌에 있는 동한(東漢)시대 무덤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이 무덤이 문헌상으로만 전해 내려오던 위(魏) 무왕(武王) 조조의 진짜 '고릉(高陵)'인 것으로 확인했다고 인민일보 등 중국 언론이 27일 일제히 보도했다. zeroground@yna.co.kr
무덤 '추정' 두시간만에 '확정'..납득 어려워

중국 허난(河南)성 안양(安陽)현 안펑(安豊)향 시가오쉐(西高穴)촌에서 발굴됐다는 삼국시대 조조(曺操.155-220)의 '무덤'을 진짜로 확정하기에는 아직 증거가 부족하다는 주장이 중국 학자에 의해 제기됐다.

중국 인민대학 국학원 위안지시(遠濟喜) 부원장은 28일 안양현에서 발굴된 '조조 무덤'은 직접적이고 유력한 증거가 없어 이를 진짜로 결론짓는 것은 엄정한 학술정신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고 중국 반관영 통신인 중국신문사가 29일 보도했다.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시대 문학 전문가인 위안 부원장은 특히 이날 오전 10시께 TV 뉴스에서 조조의 것으로 보이는 묘가 발견됐다는 보도가 나온지 2시간만에 별다른 추가 증거도 없이 낮 12시 조조의 무덤이라는 확정적인 뉴스가 나온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문제의 무덤을 조조의 것으로 결정짓는데 가장 큰 증거가 된 '위 무왕(조조)이 사용하던 창'은 진위를 가리기 어렵다고 위안 부원장은 주장했다.

이 무덤은 이미 수차례 도굴이 이뤄졌기 때문의 문제의 창은 누군가가 고의로 무덤 내로 반입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삼국지의 위서(魏書)중 무제(武帝)편을 봐도 이러한 창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다고 위안 부원장은 말했다. 아들 조비(曹丕)가 위나라를 건립하면서 무왕으로 추존된 조조는 의심이 많아 죽기 전 자기의 무덤이 도굴되는 것을 막기 위해 72개의 가묘를 만들라는 유언을 남겼는데 그의 무덤이 안양현에 있다는 한 학자의 주장도 증거가 부족하다고 위안 부원장은 덧붙였다.

위안 부원장은 이미 2천년이 되가는 조조의 위진 시대 무덤을 찾는 것은 결정적인 증거가 없이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하고 학문은 냉정해야지 흥미위주로 요란을 떨어서는 안 된다고 일침했다.

(베이징=연합뉴스) 조성대 특파원 sdcho@yna.co.kr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3047040

<“죽은 조조가 깡촌 살리나…” >

■ 中 무덤 발굴현장 허난성 시가오쉐 마을 가보니
지난해 도굴사건 조사중 발견
금-은 부장품 체로 걸러내 찾아
일부선 “진짜 무덤 아니다” 반론
발굴팀 인골 유전자검사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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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중국 허난() 성의 한 시골마을에서 발견된 삼국지의 영웅 조조의 무덤 발굴현장. 비닐로 덮은 곳 아래에서 발굴팀이 발굴을 계속하고 있다. 안양=이헌진 특파원
“발굴은 한창 진행 중입니다. 무엇이 더 나올지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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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삼국지의 영웅 위() 무왕() 조조(·155∼220·사진)의 무덤 고릉()이 발견된 중국 허난() 성 안양() 현 안펑() 향 시가오쉐(西) 촌을 찾았다. 무덤은 벌판 한가운데 있었다. 발굴 현장 2곳에는 유물 보호를 위해 강철 구조물로 된 지붕이 덮여 있었다. 또 울타리를 쳐 외부인의 접근을 철저히 막았다.

현지 주민들은 흥분해 있었다. 주민 양톈청(·60) 씨는 “농사를 빼곤 마땅히 먹고살 게 없는 곳인데 조조 묘가 관광명소로 개발됐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몇 가구씩 드문드문 모여 있는 마을은 옥수수와 고구마, 보리를 주로 재배하는 전형적인 시골이었다.

이곳에 ‘조조 역사박물관’이 세워지는 것은 시간문제인 듯했다. 쑨잉민() 허난 성 문물국 부국장은 “이미 지방정부가 문물을 전시하고 보호하기 위한 계획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 잇따랐던 증거들…우연한 발견

이곳 지하에 큰 무덤이 있을 가능성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1998년 이 마을에서 345년에 조성된 큰 고분이 발굴됐다. 당시 무덤에서 위 무왕의 무덤 위치를 추정할 수 있는 기록이 나왔다. 그러나 당시에는 예산 문제와 자료의 신빙성 문제 등으로 본격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해 공안이 도굴사건을 조사하다 새 고분의 존재를 확인했다.

실제 안양 현은 조조의 왕도였던 예청(업)과 접하고 있다. 옛 무덤이 곳곳에 산재해 있고 도굴도 성행해 왔다. 현 정부 관계자는 “우리 현은 고분이 밀집해 도굴사건이 많다”며 “공안의 단속으로 도굴사건 4건을 해결하고 20여 명을 적발했다”고 말했다. 2008년 공안은 ‘조조 무덤’에서 훔쳐온 부장품 3건을 회수하기도 했다.

○ 조조의 무덤은 고의로 훼손됐다

전문가들은 조조 무덤의 훼손 흔적과 관련해 물건을 훔칠 목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 보복이나 개인 원한을 갚기 위한 무덤 파괴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훼손은 매장 뒤 얼마 안 돼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류칭주() 전 소장은 “무덤에서 발견된 두개골의 앞면이 고의로 훼손돼 있고 ‘위무왕’이라는 명문이 적힌 것들은 모두 망가져 있었다”고 전했다.

석문의 돌조각은 명문이 있는 경우 어김없이 훼손돼 있었다는 것. 도굴과 관련한 책을 여러 권 저술한 작가 니팡류() 씨는 “조조 무덤의 첫 도굴은 무덤의 맥을 끊어놓기 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에 나온 부장품 200여 건 가운데 목걸이나 옥대 등에 붙이는 금 은 옥 등 작은 것들은 체로 걸러내 찾아낼 수 있었다.

○ 새로운 의문과 반론

일각에서는 이 무덤이 조조의 진짜 무덤으로 단정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런민()대 국학원 위안지시() 부원장 등은 “부장품들이 다른 곳에서 옮겨온 것일 수 있고 가짜 무덤일 수 있다”며 “성급하게 발표했다”고 주장했다. 또 인터넷에서는 △도굴방지 장치가 없고 △조조는 생존했을 때 무왕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72개의 가짜 무덤 중 하나라는 의문들이 떠돌고 있다.

이에 대해 판웨이빈() 발굴팀장은 이날 현장 기자회견에서 “현장을 와 보지도 않고 근거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조조 무덤이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발굴팀은 무덤에서 나온 인골에 대해 유전자 검사를 하면 결론이 날 것으로 보고 있다.

안양=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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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조조가 깡촌 살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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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동아닷컴 특약


동아일보 http://news.donga.com/Society/3/03/20091230/25132863/1&top=1

<무덤 도굴당한 조조, 中 희대의 도굴꾼>

도굴 기구 둬 고분 파헤쳐..확보한 보물 군자금 활용

최근 중국 허난(河南)성에서 발견된 위(魏) 무왕(武王) 조조(曺操.155-220)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의 진위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이는 가운데 이 무덤이 이미 수차례 도굴됐던 것으로 드러나 중국 고고학계의 아쉬움을 사고 있다.

이 무덤이 조조의 진짜 무덤으로 확인된다면, 72개의 가묘(假墓)를 만들라는 유언을 남겨 자신의 무덤이 도굴되는 것을 막으려 했던 천하의 지략가 조조 역시 도굴꾼들의 집요함을 피해갈 수 없었던 것이 된다.

조조는 그러나 자신의 무덤을 파헤쳤던 도굴꾼들을 책망하거나 원망할 처지가 못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조조야말로 중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희대의 도굴꾼이었기 때문이다.

동진(東晋)의 역사학자 손성(孫盛)의 '위씨춘추(魏氏春秋)'를 시작으로 후한(後漢) 건안칠자(建安七子) 가운데 한 명인 진림(陳琳)의 '삼국지 위서(三國志 魏書)', 남조(南朝) 송대(宋代) 학자 배송지(裵松之)가 저술한 '삼국지' 등 중국의 고대 역사서들은 한결같이 조조의 도굴 전력을 상세히 기록해 후세에 전하고 있다.

특히 진림의 삼국지 위서는 조조가 도굴을 위해 '발구중랑장(發丘中郞將)'과 '모금교위(摸金校尉)'라는 중국 역사상 최초의 전문 도굴 기구까지 조직했던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중국 고대 고분 가운데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서한(西漢) 양효왕(梁孝王)의 무덤을 파헤쳐 금과 보물 수만 근을 챙긴 것도 조조였다. 조조는 양효왕의 무덤에서 확보한 보물로 휘하의 군인들을 3년간 먹여 살렸던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그는 현장을 직접 찾아 도굴을 지휘했고 도굴한 무덤은 잔혹할 정도로 철저하게 망가뜨려 흔적을 남기지 않았던 것으로 역사서들은 기록하고 있다.

조조가 군자금 확보를 위해 고분을 파헤쳤다면 춘추시대 합려(闔閭)왕을 도와 오(吳)나라를 강대국으로 키웠던 오자서(吳子胥)는 복수를 위해 파묘(破墓)한 것으로 유명하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따르면 오나라가 초(楚)나라를 함락하자, 그는 평왕(平王)의 무덤을 파헤쳐 그의 시신에 300번의 채찍질을 가하는 것으로, 아버지와 큰 형을 죽인 것을 분풀이했다. '굴묘편시(掘墓鞭屍)'라는 고사성어도 여기서 유래됐다.

한(漢) 고조(高祖) 유방(劉邦)과 천하를 다투다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자살한 항우(項羽)는 진시황(秦始皇) 무덤을 도굴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한(漢)나라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는 유방이 진시황 무덤을 도굴한 항우의 행위를 큰 죄로 간주해 천하에 알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 고고학자들은 진시황 무덤이 훼손된 흔적이 없다는 점을 들어 항우가 유방에 의해 '누명'을 썼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무덤을 파헤친 것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청(淸)의 건륭(乾隆)황제는 명(明)나라 영릉(永陵)을 새로 짓도록 해 능의 규모를 축소했을 뿐 아니라 영릉 전각의 값나가는 대들보들을 확보, 청나라 궁전 건립에 썼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청나라 황제들이 궁전을 지으려고 명나라의 건축물을 훼손한 경우는 있었지만 명조(明朝)의 능에까지 손을 댄 것은 건륭황제가 유일하다고 대명회전(大明會典)은 적고 있다. 민간에서는 이를 두고 '건륭도목(乾隆盜木)'이라 부르고 있다.

(선양=연합뉴스) 박종국 특파원 pjk@yna.co.kr
http://media.daum.net/foreign/view.html?cateid=1026&newsid=20100101150903377&p=yonh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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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탐험자님의 댓글

겨울의달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p>문득 과학이 최첨단에 이른 이 시기에 그간 전설로 내려왔던 그 모든 것이 사실로 확인되고 있지 않나 란 생각을 해 봅니다.</p><p>그 유명한 삼국지연의의 최고간웅이라고 일걷던 조조승상의 무덤 발굴은 삼국지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던 인물이 실존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말하며 겨울의달님 의견같이 적벽대전이란 싸움이 실존했다는 것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겠죠.  </p><p>더우기 론건맨속에 자주 등장하는 예수님의 실존여부도 계속적인 탐구로 조금씩 실체가 드러나고 있으며 전설의 섬인 아틀란티스도 과학자들이 끓임없이 발굴작업과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그 실체가 드러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p><p>아마도 약간의 시간이 지나면 우리가 전설처럼 생각되었던 그 모든 것이 명확관화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라 봅니다.</p>

전갈자리님의 댓글

겨울의달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역시 아니땐 굴뚝에 연기가 날 일이 없군요~ 루머나 전설이 있다는건 실제로 있었던 일일 확률이 높아지네요~ 예를 들어 외계인, 유에프오등과 각종 음모론들 말이죠~

마루이지님의 댓글

겨울의달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10149|1--] <p>조조의 실존여부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 아닌가요?<br />적벽대전 역시 연의에서 그 규모가 부풀려졌을 뿐이지 실제로도 있었던 일입니다.</p><p>전설이라니요...... 예수나 아틀란티스의 그것과는 다른 이야기입니다.<br />지금 이 무덤이 발견되기 전까지 조조라는 인물의 존재가 불분명했던 사람이라면<br />후한 이후 혼란기의 모든 인물의 존재 여부가 불분명해지는 것 아닌가요?</p><p>그리고 여담이지만;;  반증 이란 단어는</p><p>적벽대전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반증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br /><br />라고 사용하는것이 옳은 표현이 아닌가요?<br />저도 국어에 정통하지 않아서 잘모르겠지만</p><p>반증이란 단어의 뜻은<br />어떤 사실을 부인할때 이용하는 증거 아닌가요?</p><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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