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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타 카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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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겨울의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댓글 1건 조회 1,348회 작성일 07-08-28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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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01

왕들의 골짜기.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길이 500m, 너비 1㎞인 음산한 골짜기.
이집트 나일강 중류의 룩소르 서쪽에 있는 이 골짜기는 지금으로부터 3천∼4천년 전
이집트를 다스린 파라오(왕)들의 무덤이 들어찬 곳이다.

왜 왕들은 이렇듯 도읍지에서 멀리 떨어진 음산한 골짜기의 벼랑과 바위 틈에 그들의 주검을 숨겼을까.
왕들은 처음에는 자기들이 죽은 뒤에 머무를 곳으로 피라미드를 세웠다. 또 영혼이 다시 찾아들도록 자신들의
시체를 썩지 않는 미라로 만들게 했다.

피라미드는 어떤 침략에도 견디게끔 거대하게 만들고, 도둑질 당하지 않도록 입구를 비밀에 부쳤다.
그러나 왕들의 뜻과 달리 피라미드의 보물은 도둑들에게 번번이 털렸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비밀장소에 무덤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이 아이디어를 처음 낸 왕은 토트메스 1세였다. 그는 오랫동안 적당한 장소를 물색한 끝에
자기 무덤을 이 골짜기의 벼랑 틈에 숨기라고 명령했다. 그
리고 무덤을 만든 장소를 비밀에 부치고자 잔인한 살육극이 벌어졌다.
왕의 신하는 전쟁포로 100여명을 데리고 무덤을 만든 뒤 그들을 모두 죽였고, 그 또한 왕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 뒤로 모든 파라오의 주검은 피라미드가 아니라 ‘왕들의 골짜기’에 숨겨졌다.
그리하여 파라오의 미라들은 약 3천년 동안 편안히 잠들 수 있었다. 이집트 왕가가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믿었던 이 비밀장소는 그러나 안전하지 않았다. ‘왕들의 골짜기’는 1881년 한 미국인 골동품 수집가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가 이집트 골동상인으로부터 몰래 사들인 옛 파피루스가 피라미드시대 이후의 왕이 사용했던 유품으로 밝혀지자 이상하게 여긴 카이로박물관이 조사에 나섰는데, 조사관은 꽤 오랫동안 추적한 끝에 주민 전체가 무덤도둑인 마을을 찾아냈다.

13세기부터 대를 이어가며 옛 무덤을 도둑질하고 살아온 쿠르나 마을.
주민 한 사람이 1875년 우연히 ‘왕들의 골짜기’에서 파라오의 무덤을 발견한 뒤로,
마을사람 전체가 공범이 되어 파라오의 무덤을 파헤치고 살아왔다는 것이다.

1881년 7월5일 조사관이 도둑을 앞세우고 ‘왕들의 골짜기’를 찾았을 때 그 동안 파헤쳐진 무덤 64개에는
옛 유물이 하나도 없었다. 조사관은 도둑의 발길에 마구 짓밟힌 미라들만 박물관으로 옮겼을 뿐이다.



사진#02

1902년 미국인 변호사 시어도어 데이비스가 이집트 정부로부터 ‘왕들의 골짜기’를 발굴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다.
그는 12년 동안 무덤 네 군데를 발굴했으나 다 도굴된 뒤여서 아무 것도 찾지 못했다.
빈털터리가 된 그는 1914년에 발굴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발굴권을 넘겨받은 사람은 영국인 귀족 조지 H 카나번. 백만장자인 그는 스포츠와 모험을 즐겼으며 미술품 수집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자동차 사고로 크게 다친 뒤 요양을 위해 따뜻한 이집트에 갔다가 무덤을 발굴하는 광경을 보았다.
그는 고고학 발굴이야말로 예술품 수집과 모험을 함께 맛볼 수 있는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조사해 보니 ‘왕들의 골짜기’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왕의 무덤이 딱 하나 있었다. 투탕카멘 왕의 무덤.
도둑들도 그때까지 이 왕의 무덤을 찾지 못했으므로,그 무덤의 유물만은 온전히 남아 있으리라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였다. 1906년 카나번이 카이로 박물관을 찾아가자 가스통 마스페로 교수는 발굴을 맡아 일할 사람으로 젊은 영국인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를 소개했다. 그때 카나번의 나이는 마흔,카터는 서른세 살이었다.

1913년 가을 어느 날,카나번과 카터가 높은 곳에서 ‘왕들의 골짜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카터가 골짜기 가운데를 가리켰다.

“저기 보이는 무덤이 람세스 2세, 저쪽이 람세스 6세, 그리고 이쪽이 메르넵타 왕의 무덤입니다.
저 세 무덤을 이어서 만들어지는 세모꼴 안을 파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카나번이 머리를 끄덕였다.

“옳아. 하지만 저곳은 세 무덤을 파낸 흙이 저렇게 산더미처럼 쌓여 있으니 그것부터 치워야 할 걸세.”

카터가 투탕카멘의 무덤이 세모꼴 땅 안에 있다고 믿은 데는 까닭이 있었다.
그는 시어도어 데이비스가 그 근처 바위 밑에서 투탕카멘이라고 새겨진 도자기와 금박 입힌 나무상자를
주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흙을 치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3년을 쉬었다가 1917년부터 다시 시작했지만 2년 동안 흙을 치우고 다시 2년 동안 장소를 옮겨 땅을 팠어도 무덤 입구는 찾을 수 없었다.

“아,투탕카멘의 무덤은 이 골짜기에 없는 것일까!”

카터가 머리를 감싸쥐고 신음했다. 카나번도 지쳤는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진#03

“카나번씨,1년만 더 파게 해주십시오. 꼭 1년만!”

“그렇지만 자네가 말한 세모꼴 안은 이미 다 파보지 않았나?”

카나번이 씁쓸하게 웃었다.

“아닙니다. 아직 한 군데 파지 않은 곳이 있습니다.”


“뭐라고? 그게 어딘가?”

“저기 드러난 오두막 밑입니다. 저 오두막은 람세스 6세의 무덤을 만들 때 일꾼들이 쓴 집인데,
람세스 6세는 투탕카멘보다 훨씬 뒤의 왕이 아닙니까. 그러니 그 밑은 아직 파본 사람이 없을 겁니다.”

1922년 11월3일 카터는 그 오두막을 헐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다음날 아침 일꾼들이 그를 소리쳐 불렀다.

“카터씨,이 바위 밑을 보십시오!”

“뭐가 있습니까?”

카터가 무심코 일꾼들이 가리키는 곳을 들여다보니,거기에 바위를 깎아 만든 돌계단이 드러나 있지 않은가.
누가 보아도 무덤 입구로 가는 층계임이 분명했다.

계단 열여섯 개를 파내자 출입문이 나타났다. 문의 틈새에는 투탕카멘의 도장이 찍힌 종이가 붙여진 채 봉인되어 있었다.
아직 아무도 이곳을 통과한 적이 없는 것이 확실했다. 카터가 구멍을 뚫고 들여다보니,그 안은 돌과 자갈로 꽉 메워져 있었다.

6년이나 기다려온 날. 그러나 그는 서두르지 않고 런던에 가 있는 카나번에게 전보를 쳤다. 11월24일 카나번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두 사람이 다시 봉인을 잘 살펴보니 누군가 뜯었다가 다시 잘 봉인해 놓은 흔적이 있었다.
며칠 걸려 통로의 자갈더미를 치우고 나니 두 번째 문이 열렸다.

방안에 들어선 네 사람(카터, 카나번, 카나번의 딸과 사위) 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황금 옥좌를 비롯한 금붙이들이 방안에 가득 차 있었고, 벽에는 화려한 벽화와 돌조각이 황금빛을 받아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그
것들은 하나하나가 수천년 전 이집트 문화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값진 문화재였다.
여태까지의 이집트 문화사를 다시 쓰게 할 보물들.

그 방에는 미라가 없었다. ‘그렇다면 또 다른 방이 있다는 말인가.’ 그들은 네 군데 벽을 꼼꼼히 더듬어 보았다. 그랬더니 방이 2개 더 있었다. 구멍을 뚫고 한 군데를 들여다보니, 온갖 일용품과 장신구가 꽉 들어차 있었다. 그렇다면 또 한 군데 방에 투탕카멘의 미라가 들어 있음이 틀림없었다.


사진#04

그들은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다. 앞으로 보물이 얼마나 더 쏟아져 나올지 모른다. 그것들이 본디 있었던 자리를 기록하고,목록을 만들고, 부숴지지 않도록 포장하고,연구실도 세워야 한다. 그러려면 전문가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고, 따라서 몇 년이라는 세월이 더 흘러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12월3일 네 사람은 무덤을 다시 메우고 경비원을 세웠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세계 곳곳에서 전문가들이 달려와 12월6일부터 본격적인 발굴이 이루어졌다. 그로부터 다섯달이 지난 1923년 5월13일,1차로 유물을 포장한 상자 34개가 무덤을 떠나 카이로박물관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일찍이 이집트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1924년 2월17일 카터는 두 번째 방을 열었다. 그가 돌을 들어내고 구멍 안으로 플래시를 비추자, 20명 남짓한 전문가들은 그 뒤에서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조바심을 냈다. 안에는 금빛으로 빛나는 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들은 금방 알아차렸다. 그 방이야말로 미라를 안치한 현실(玄室)이었다. 금빛 벽은 미라를 넣어둔 엄청나게 큰 겉관이었는데, 어찌나 큰지, 관과 현실 벽 사이에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틈밖에 없었다.

카터가 그 앞에 서자 너무도 웅장함에 몸이 굳어지는 듯했다. 길이 5m, 너비 3.3m, 높이 2.73m에 이르는 거대한 나무관은 온통 순금으로 입혀져 있었다. 현실을 한 바퀴 둘러보니, 한쪽 벽에 문이 또 하나 있었다. 그 방에는 커다란 금빛 궤짝이 있고 그 둘레에 여신상 4개가 서 있었다. 그곳은 보물을 모아둔 창고였다.

인간의 역사가 기록된 이래 가장 큰 보물 발견이라고 일컬어지는 투탕카멘 왕릉 발굴은 무덤을 찾는 데 6년, 유물을 조사하고 옮기는 데 6년이 걸렸다. 1927년 2월3일,네 겹으로 된 겉관이 열리자, 노란색 석영으로 된 돌관이 나타났다. 550㎏이나 나가는 붉은색 화강암 뚜껑을 들어올리자 마침내 속관이 나타났다. 속관은 주검의 모습을 그대로 본뜬 인형 모양을 하고 있었다.

첫번째 속관의 뚜껑에는 아홉살에 왕이 되어 열여덟살에 죽은 소년 왕의 앳된 초상을 새긴 황금판이 붙어 있었다. 얼굴은 순금, 눈은 흑요석, 눈썹은 푸른 유리로 만들어졌고, 두 손에는 그가 이집트의 왕임을 상징하는 갈고리와 도리깨가 들려 있었다.


사진#05

“그러나 우리를 제일 감동시킨 것은 소년왕의 이마에 놓인 한묶음 꽃이었다. 그것은 나이 어린 왕비가 남편에게 바친 마지막 작별 인사였으리라. 그 꽃다발은 3,000년이라는 세월이 얼마나 짧은지를 가르쳐 주었다. 그렇다. 3,000년은 어제와 오늘에 지나지 않았다. 3,000년 전이 지금 이렇게 우리 앞에 생생히 펼쳐져 있지 않은가. 꽃 한다발이 옛날과 오늘을 하나로 묶어주었다.”

피크리스·팔랑개비국화·노박덩굴·목가지와 만다라 열매들을 소담스럽게 묶은 그 꽃다발은 소년왕이 4월 말∼5월 중순 사이에 묻혔음을 가르쳐 주었다.

두 번째 속관의 뚜껑에는 예복을 입은 소년왕의 초상화가 있었다. 두 번째 속관을 들어냈을 때까지도 남아 있는 관은 아주 무거웠다. 두 번째 속관의 뚜껑을 열고 나서야 그 수수께끼가 풀렸다. 세 번째 속관은 온통 2.5∼3.5㎜ 두께 순금으로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순금 뚜껑을 열자 마침내 미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온몸을 아마포로 칭칭 감은 미라는 얼굴에 눈부시게 빛나는 황금 가면을 쓰고 있었다. 미라를 겹겹이 싼 아마포를 풀어헤쳤더니 그 안에 온갖 귀한 보석이 143개나 들어 있었다. 열여덟살밖에 안 되는 파라오가 하늘나라로 가지고 가려던 황금 보화는 이토록 엄청난 양이었다. 어느 누가 그것을 어림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미라의 머리를 받친 왕관 모양 베개 밑에는 머리받침이 있었는데,합금되지 않은 순수한 철이었다. 이집트에서 처음으로 발굴된 순수한 철제품이었다. 마지막 남은 붕대 한 겹을 벗겨냈을 때 카터가 대한 왕의 얼굴은 ‘평화롭고 온유한 젊은이의 얼굴’이었으며 ‘세련되고 우아했으며, 우수한 골격을 지녔고, 특히 선이 뚜렷한 입술을 갖고 있었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발굴이 한창 무르익던 1923년 4월6일 카나번이 모기에 물려 죽은 것을 시작으로 발굴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갔다. 온세계의 신문들은 그것을 ‘파라오의 저주’ ‘투탕카멘으로부터 저주받은 몇 번째 희생자’ 따위의 제목을 달아 호들갑스럽게 보도했다.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지만 카터는 그런 일에 주눅들지 않았다. 1933년 독일 고고학자 게오르그 슈타인도르프는 신문이 발표한 21명의 죽음을 조사했더니 모두 자연사했거나 발굴과 관계없는 사람의 죽음,또는 우연한 죽음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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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머프빤스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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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시절 소년중앙이라는 잡지 부록 중에 피라미드와 투탕카멘에 대한 소책자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어찌나 신기하던지... ㅎ 기억이 새록 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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