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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우산국이 日 오키나와 670년 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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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식탐험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댓글 14건 조회 2,308회 작성일 07-02-22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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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우산국이 日 오키나와 670년 지배">



`류구국' 건국…`서울ㆍ엄마ㆍ안사람' 오키나와 말과 유사
日 고문헌 분석ㆍ현장 답사 담은 저서 내달 출간


신라시대 우산국(지금의 울릉도) 주민 1천여명이 서기 513-514년께 일본 남단 오키나와 섬에 정착, 12세기 말까지 25대에 걸쳐 왕위를 유지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해 `독도 영토권원 연구' 논문으로 성균관대 박사 학위를 받은 선우영준 수도권대기환경청장은 일본 고문헌 조사와 3차례에 걸친 오키나와 현지 답사를 통해 오키나와의 전신인 류구국(琉球國)이 고대 울릉도 주민들의 이주로 세워진 나라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찾았다고 21일 밝혔다.

저서에 소개된 관련 문헌 등에 따르면 일본 고서인 `류구국구기'(琉球國舊記ㆍ1731년), `고류구'(古琉球ㆍ1890년) 등 수십권의 문헌 분석 결과 우산국은 512년 신라 이사부에 의해 복속된 직후 자원 부족 등 이유로 오키나와(`우루마'국이 전신) 남부 쿠다카 섬 등에 먼 항해 끝에 처음으로 진출했다.

당시 우산국 주민들은 마한과 백제, 고구려 계통으로 추정되는 천손씨(天孫氏)로 불리던 집단으로 울릉도에 풍부했던 느티나무로 만든 선박에 타고 오키나와에 도착한 뒤 전역으로 세력을 뻗쳐 670년간 왕위를 유지했으나 1187년 국왕이 중신에 살해된 뒤 멸망의 길을 걷게 됐다.

이후 내전 등 오랜 혼란기를 겪다 일본 에도막부가 류구국을 침공, 식민지로 만들었는데 막부측은 류구국과 한국과의 관계를 철저히 부정하고 삭제했으며 마치 구주(九州)에서 오키나와 역사가 시작된 것처럼 조작해 왔다고 저서는 주장하고 있다.

일본 학자들이 고문헌을 참조, 주민들의 혈족 계통을 연구한 결과 오키나와 남자 주민의 Y-염색체가 한반도에서 형성된 한국인 특유의 Y-염색체(O2b1a)와 대부분 동일하고 인근 대만 등의 원주민 염색체와는 판이하다는 사실이 적시돼 있어 오키나와가 한국인의 개척으로 이뤄진 나라임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오키나와에서 사용하고 있는 말과 고대 국어(또는 현대 국어)간에 음과 뜻이 유사한 단어들이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오키나와 신가(神歌)에 나오는 `소우루'는 `서울'의 일본 가나식 표기로 추정되고 일본학자들은 신라의 수도 `서벌(徐伐)'을 `쇼-우루'라고 읽고 있다고 보고 있다.

오키나와 치닌 지역 귀족마을에서 쓰이는 `우마니'는 우리말 `어머니'와 뜻이 같고 비슷한 발음을 내고 있으며 치닌 지역 평민 마을에서는 `암마'라고 발음된다.

오키나와 전통 언어인 `안사레'는 우리말 `안사람(안주인)'을 의미하는데 발음이 비슷하고 `바루'는 우리말의 `벌(또는 벌판, 뻘)'과 같은 말이다.

`요나구스쿠'라는 말은 오키나와에서 최초의 명문가 등을 의미하는데 `요나'는 한국어 고어 사전에 `여나'로 표기, `새로 연다'는 뜻을 가지고 있고 `구스쿠'는 한국 고어 `구즉하다'(`우뚝하다'의 의미)의 뜻으로 서로 통한다.

선우 박사는 "지금도 오키나와 곳곳에는 1천500년 전 한국 말과 문화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걸 직접 확인할 수 있다"며 "한국과 오키나와 간의 역사, 언어, 문화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연구가 이뤄진다면 한일 고대 역사의 전면적인 재해석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선우 박사는 3월 중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독도 그리고 우루마국-류구국을 찾아서'(가칭) 제하의 저서 출간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2007-02-22 09:45:23]
(서울=연합뉴스) 김성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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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세이야님의 댓글

세이야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이런거 일본일 인저이나 참 하겠읍니다.
순진들하긴..그래봐야 반한의 빌미일 겁니다.
중국대륙도 우리 것이라고 말도 못하는데, 국력도 스스로 키움도 외면하는 나라가..ㅜ.ㅜ

영상님의 댓글

세이야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역사는 시간이 지남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디인가 반드시 증거와 그시대의 배경을 밝혀 주는 자료는 존재 한다... 시간이 아무리 지난다 해도....

셈수호르님의 댓글

세이야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글쎄요.  전 이런 방식의 접근법은 좀 혐오스럽네요.

일본이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거나  중국이 고구려 역사에 대해 지방정권설을 주장하는 거나

뭐가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남이 하면 불륜이란 식으로 바라보면 역사를 바라보면 늘 비극으로 끝납니다.

그런 극우적 역사관은 늘 전쟁을 잉태하곤 했죠.


그건 그렇고 전 좀 이해가 안되네요.

지증왕때의 신라인구와 우산국 인구를 생각해볼 때 오키나와를 점령할 정도의 세력이 됐을지요.

당시 우산국 인구를 많이 잡아 수천명 정도로 보기로 하죠.

그리고 신라 점령군들이 우산국 인민들이 맘대로 영토를 벗어나도록 놔두지는 않았을 것으로 본다면

당시 탈출이 가능한 백성 수는 기껏해야 수백명 정도에 불과할 것입니다.

(지

첫선택님의 댓글

세이야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제가 아는 어떤 오키나와 본토인이 말 하기를 옛날에는 한국의 지배를 받은 적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본토인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사실 인것 같습니다. 참고로 오키나와는 이차 대전이 끝나고 맥아더 군정당국에 의해 일본령으로 귀속

별님의 댓글

세이야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현 울릉도(우산국) 주민들이 과거에 오키나와를 670년간 지배했다는 이야기는
지리적으로나 현 울릉도의 현실상 비약이 심한편이라 생각되는군요.
오키나와의 언어나 유물들(사실상 많은부분에서 현재 일본인들의 입맛대로 조정이 된 상태지만)이
현 한반도의 그것들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들입니다.
현 한반도 울릉도가 우산국이었다는 부분도 일제시대 일본인들에 의한 조선역사편수 작업의 일환의 결과물이겠지요.

즉, 한반도가 조선이고 열도가 일본이고 나아가서 대륙이 중국이라는 기본법칙을 박으려는 작업.
우산국이 존재했고 오키나와를 지배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친다면..
그러한 우산국은 대륙의 해안가(고대조선과 고구려백제신라 등 동이국가들의 영향이 미치는)지역에
있는 것이 지리와 역사적 상관관계로 볼때에 더 타당하리라 생각되어 집니다.

15C 과거의 울릉도에 몇 백 정도의 인구가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왕조가 존재했고 오키나와 까지 정벌해서 670년간이나 지배를 했다고 하는것은 솔직이 비약이라
아니할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우산국이 현재의 울릉도일 가능성은 거의 제로라고 생각됩니다.
우산국이 존재했다면 그것은 대륙일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혼땅님의 댓글

세이야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역사를 왜곡을 하든, 아니든 뭐 국력이 있어야 뭐라도 주장 하지 않는가? 설령 환단고기같은 책의 내용이 맞다손쳐도 중국이 눈 하나 깜짝하는지...또한 아무리 우리측에서 이런 저런 증거 들이대도 일본애들 그저 비웃는다. 뭐 나라가 잘 살아야지....

박상수님의 댓글

세이야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오키나와가 지배를 받았다면 해상민족이었던 가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야는 그당시 동북아 최대의 무역항인 임나를 가지고 있었고
또 왜 큐슈일대에도 세력을 떨쳤습니다.
가야라면 충분히 오키나와에 세력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산국 멸망시기와 가야국 멸망시기가 비슷합니다.
즉 그 연대로 가야를 껴 맞춰도 별 문제가 없으며 오히려 더 현실성이 높습니다.
우산국은 인구와 그당시 형편상태로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우산국이 대륙이라는 것도 조금은 이상합니다.
그냥 대륙삼국설은 너무 허황된 꿈 같으니 접어두고서 했으면 합니다.

셈수호르님의 댓글

세이야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만약 오키나와가 513년경에 점령당했다면 울릉도는 결코 아닐 것입니다.

차라리 위의 박상수님의 주장처럼 가야가  정복했으리라 생각됩니다.

가야는 상당히 해상세력이 강했던 나라였으니까요.


하지만 전 좀더 가능성이 높은 것은 백제였다고 보여집니다.

왜냐하면 가야도 그 당시엔 신라 세력에 억눌려 해상진출을 활발하게 하기보다는 신라로부터의

공격에서 살아남는게 최우선이었기에 오키나와같은 먼 지역까지 힘을 쏟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반면에 조금 정확도가 떨어지긴 하지만 이 당시라면 백제가 매우 활발히 해상진출을 하고 있던

때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근초고왕으로부터 시작돼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동성왕 때엔 중국의 산동성 이남의  동부 해안지역을

상당히 점령,지배하고 있던 때입니다.

때문에 막강한 백제의 해군력으로 중국 동부로부터 좀더 남쪽으로 위치한 오키나와를 점령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였으리라 생각됩니다.

당시는 왜조차 백제를 모국으로 섬기며 살았고 중국은 통일된 국가를 이루지 못한채 분열돼 있었고

게다가 중국의 중심지가 지금의 서안 지역에 치중돼 있었으므로 백제의 해군세력을 꺽을 세력은

동아시아에선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고 판단합니다.

따라서 오키나와를 한민족이 점령했다면 가장 가능성이 큰 것은 백제였을 거라고 봅니다.


어쨌든 우산국의 유민들이 점령했다는 말은 거의 코미디라고 생각됩니다.

별님의 댓글

세이야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박상수님. 대륙삼국설은 이미 기정사실화가 진행되고 있는 문제입니다.
문제는 대륙조선입니다.고구려백제신라와 고려가 한반도가 아니라 대륙에서 명멸했다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화가 되었다는 것이고 알만한 분들은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 문제입니다.
언급을 드렸지만 문제는 조선인데...조선의 건국과 진행과정 그리고 망하는것 모두가 대륙이냐..
아니면 조선이 망하는 말기에 한반도로 밀려왔는가...가 문제로 대두됩니다.

고구려백제신라 모두 황제국으로 대륙전체를 놓고 자웅을 겨루던 나라들입니다.
고대조선 이후 하 은 주 진 한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일본 제국주의 집단이 조선사와 고대 동이의 역사를 입맛대로 휘둘러 재편했고
그것을 거의 한치도 벗어남이 없이 그대로 해방이후에도 물려받아 가르치고 배우는 틀 안에서
기존의 식민역사체제 범위안의 인식으로 이러한 것들을 받아들임이 힘들다는 것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조금은 여유와 시간을 가지고 하나 둘씩 마음을 비우고 제대로 본다면
기존 인식이 얼마나 허황되고 헛점이 많고 말이되지 않는 소설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될줄 믿습니다.

** 참고로 재야사학자 한 분의 자료를 올립니다 .
이것 또한 수많은 대륙고려 증거물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원문]
賀 朝廷平定雲南 發遣梁王家屬 安置濟州 表                        李崇仁

大春秋之一統. 運啓中中邦. 整雷霆之六師. 威加南極. 捷音遠播. 喜氣旁騰. 竊以虞書書載有苗之征. 漢史記交趾之擊. 盖其執迷而干紀. 故乃聲罪而致誅.  爾雲南. 濱於海 . 妄謂險遠之足悖. 敢肆跳梁而不恭. 爰出睿謀. 偉矣萬全之擧. 克平 俗. 赫然一怒而安. 息馬投戈. 超今邁古. 玆盖重華協德. 光武同符. 告厥成功. 混車書 宇之內. 屈此群醜. 置 虜海島之中. 是宜  之消. 益慰神人之望. 伏念幸逢昭代. 欣聞凱歌. 攝政釐東. 雖阻駿奔之列. 陳詩美上. 聊伸燕賀之誠.


<번역>

고려 조정이 운남(雲南,대륙의 운남성지역)을 평정하고 양왕(梁王)의 가속을 압송하여 제주(濟州)에 안치함을 하례하는 표                                                        리숭인

춘추[春華秋實: 문예(文藝)와 덕행(德行)이 뛰어남]의 일통(一統)을 크게 하여 운(運)을 중국(中國: 中邦)에 열었고, 뇌정벽력(雷霆霹靂: 천둥번개) 같은 육군(六軍: 천자가 통솔한 군사)의 위엄이 남방에 떨치니, 첩보(捷報)가 멀리까지 전해지자, 기쁜 기운이 곳곳에 솟아오릅니다.

그윽히 생각하건대, 우서(虞書)에는 유묘(有苗)의 정벌을 실었고, 한사(漢史)엔 교지(交趾)를 격차했음을 적었으니, 대개 저들이 사리에 어두워 천명(天命)을 항거했으므로, 죄악을 성토받아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저 조그만 운남이 바닷가에 있어, 망령되이 험하고 먼 것을 믿고서 감히 도량(跳梁)하여 불공(不恭)하므로, 위대할손 만전(萬全)의 꾀로써 광속( 俗)을 냅다 평정하고, 벌컥 한번 노(怒)하시어 평화를 회복하였으니, 이는 대개 중화(重華)가 덕을 협찬(協贊)하고, 광무(光武)의 공(功)과 부합됩니다. 그 성공을 보고함에 환우( 宇) 안에 거서(車書)가 통일되고, 이 못된 무리들을 굴복시켜 해도(海島: 제주) 안에 포로를 안치하니, 이로써 요분(妖 )이 마땅히 사라지고, 더욱 신인(神人)의 기대를 위로합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다행히 소대(昭代: 잘 다스려진 세상)를 만나 반가이 개선가를 듣고, 정사를 동방에서 돕는 때문에 준분(駿奔: 썩 빠르게 달림)의 대열에 참가하지는 못하지만, 시(詩)로써 임금님을 찬미하여 애오라지 연하(燕賀)의 정성을 폅니다.

<해설>

이 글의 저자는 리숭인(李崇仁: 1349∼1392년)이다. 고려 삼은(三隱)의 한 사람으로 호는 도은(陶隱)이다. 그는 공민왕(1330∼1374년)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장흥부사(長興府使)를 지냈으며, 우왕(1364∼1398년) 때에 전리총랑(典理摠郞)이 되어 김구용(金九容)·정도전(鄭道傳) 등과 함께 북원(北元)의 사신(使臣)을 돌려보낼 것을 청하다가 한때 유배되었다.

그 뒤 성균관 사성(成均館司成)·밀직제학(密直提學)을 지냈으며, 1386년(우왕 12)에 정조사(正朝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는 간신 리인임(李仁任)의 인족(姻族)이라 하여 통주(通州)에 유배되었다가 풀려 나와 첨서 밀직사사(簽書密直司事)가 되었다. 1389년에 또 정조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 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이 되었다가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가 되었다. 1392년(공양왕 4)에 정몽주가 살해되자, 그 일당으로 몰려 유배되었으며, 조선이 개국되자, 정도전이 보낸 그의 심복 황거정(黃居正)에게 배소에서 살해되었다.

리숭인의 젊은 시절에 주원장이 명나라를 세우던 그런 시기였다. 그 시기에 고려 조정에서는 운남 지방에 전군으로써 평정하였다는 글을 지어 올린 것이다. 그것도 그곳을 다스리던 양왕(梁王) 가속을 붙잡아다 제주(濟州)로 옮겼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고려가 한반도에 있었다면 전혀 불가능한 내용이다. 그러나 고려가 개경(開京)인 하남성 개봉(開封)에서 다스린 나라였다면 아주 쉬운 내용이 되며, 그 해도(海島)라는 제주(濟州)는 산동성 제남(濟南) 지역이 되므로 모두 이해될 수 있는 내용이 된다.

이 글은『고려사』의 1381년(신유, 우왕 8) 7월에 거의 같이 적혀 있다. 다만 맨 앞에 "황제가 운남을 평정하여 양왕(梁王) 가속을 붙잡아다 해도(海島) 제주(濟州)로 옮겼으며, 우왕에게 보내온 밀직사사 류번여(柳藩如)가 개경(開京: 京師)에 축하드리는 표문에 이르기를"이라는 것이 적혀 있고, "致誅"가 "致討"로 적힌 것이 다를 뿐이다. 제주로 옮겨진 사람들은 박박태자(拍拍太子) 및 그 자식들 60명이었다. 이 제주는 한반도 남쪽 바다 가운데 있는 제주도(濟州島)가 아니며, 산동성 제남(濟南)·제녕(濟寧) 지역이다.
리숭인이 지은 이 글의 제목에는 "朝廷"(조정), 곧 "고려"라고 했고,『고려사』속에는 문장 속에 "帝"(제), 곧 "황제"라고 했다. 우리는 통상 황제라면 "명나라"라고 알고 있지만, 이 내용으로 보아 결코 "명나라"라고 볼 수 없으며, 고려의 "우왕"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리숭인이 자신이 소속한 임금인 우왕에게 보낸 글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운남을 평정한 시기가『고려사』대로 따른다면, 앞에서 안남(安南)을 평정한 1371년보다 10년이 지난 1381년임을 알 수 있다. 고려는 10여 년에 걸쳐 남방 지역을 평정한 것이다.
이 시기에『明史』(명사)에 보면, 태조 14년(1381) "9월 1일에 부우덕(傅友德)을 정남장군(征南將軍)으로 삼고, 람옥(藍玉)을 좌부장군(左副將軍), 목영(沐英)을 우부장군(右副將軍)으로 삼아, 군사들이 운남(雲南)을 쳤다. …11월 30일 조용(趙庸)이 광주(廣州)의 해구(海寇)를 토벌하여 크게 깨뜨렸다. 12월 17일에 부우덕은 백석강(白石江: 운남 곡정현 동북 8리)에서 원나라 군사에게 크게 패하여 마침내 운남 곡정현(曲靖縣)으로 내려갔다. 21일에 원나라의 량왕(梁王) 파잡라와이밀(把 刺瓦爾密)이 보녕현[普寧縣: 광서성 용현(容縣)]으로 달아나 자살했다."고 했다.

"파잡라와이밀"은 원나라 세조(世祖: 쿠빌라이)의 다섯째 아들인 운남왕(雲南王) 홀가치(忽哥赤)의 후예로서 량왕(梁王)에 봉해졌던 사람이다.여기서 명나라를 나라[국가]라고 본다면, 이것은 2달의 차이가 나긴 하지만, 같은 지역인 운남을 고려의 군사도 정벌했다는 모순이 발생된다. 결국 명나라란 고려의 제후국이기에 고려·조선의 역사가 성립될 수 있게 된다.

이 운남(雲南)은 어디인가? 지금도 중국 남서부의 맨 끝의 국경 지방이다.
그리고 유묘(有苗)니, 교지(交趾)라는 지명을 보자.
묘(苗)는 묘주(苗州)를 말하며, 묘족(苗族)을 가리킨다. 사천성에서 운남성 지역에 걸쳐 사는 사람들이다.
교지(交趾)는 운남성 서주현(西疇縣) 서남쪽 지방인데, 이곳은 마관현(馬關縣) 땅과 붙어 있고, 동쪽으로는 월남(越南)이다.
그 량왕(梁王)이 다스렸던 터가 바로 이 운남 지역이며, 우왕 8년에 군사를 일으켜 정벌했던 곳이 바로 이곳이었던 것이다.

이곳의 북쪽 사천 지방에 10년 전에 고려의 전군을 보내 평정한 곳이며, 명나라가 세워진 곳이다. 그것은 곧 고려의 제후의 나라다. 어찌 한반도에서 무슨 군사를 그렇게 내었으며, 어느 길로 운남까지 갈 수 있단 말인가! 육로? 해로? 한반도에서는 그 어떤 길로도 불가능하다. 또 량왕 등을 한반도 남쪽 제주도로 어떻게 옮길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이 글은 앞의 리색의 글과 마찬가지의 시기를 말하며, 뒤에 설명되는 1371년 대하(大夏)의 명승(明昇)과 관련된 사건이며, 주원장(朱元璋)과도 관련된 것임에 분명하다.
비록 맨 끝에 "연하(燕賀)"라 하여 "사람이 집을 지으면 제비들이 서로 축하하며 기뻐한다"는 뜻에서 남의 성공 - 명나라 주원장의 일을 축하하는 말로 볼 수 있지만, 이것은 오직 각색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제목에서 그냥 "朝廷"(조정)이라 했으니, 곧 "고려의 조정"이며, 다른 글의 표현에는 "稱賀"(칭하)·"稱慶"(칭경)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저 "慶賀"(경하)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운남 지방에는 지금도 1000년 이상 된 아름드리 차나무가 있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차왕수(茶王樹)"니, "Big Tree"라고 하면서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며, 하나의 관광지로서도 유명하다.



견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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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글 보면 정말 정말 이해가 안돼는것이 정말로 물증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들한테 널리 펴진 이야기도 아니고

vocari님의 댓글

세이야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우리후손들이 다아~ 도로 찾을라면 이런거 잘 보존해야 합니다....언제든지 땅은 돌아올수 있습니다~한반도 통일과 더불어 중국독립신생국가 자잘하게 분리될때쯤....요동벌 한족들이 대한민국 에 다시 돌아올수도 있는일 아니겠습니까??!!!!~

노틸러스님의 댓글

세이야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상식적으로 울릉도 독도가 영역이라고 생각되는 우산국이 중국 남방 오키나와를 지배했다는 것은 도저히 말이 안된다. GPS라도 있었나? 그 먼거리를 왕래하며 지배했다니.. 솔직히 울릉도 독도가 우산국이라고 가르치는 교수가 이해가 안간다. 도대체 머리에 무엇이 들어 있는 거냐?

무채색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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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륙삼국설이라는게 정말 근거 있는겁니까? 왠 국수주의적인 사학자 몇몇 말을 믿고 주장해야하느냐는 거지요... 사료야 뭔 짓을 해서라도 없애고 왜곡할수 있다고 하지만 유물은요? 대륙전체가 백제 고구려 신라로 나누어져 있었다면 그 유물이 만만찬게 나올텐데... 짱깨넘들이 아무리 숨기려고 한다고 해도 그게 숨겨지겠냐는 말입니다. 후삼국이 망할때는 당나라 시대일텐데 그전의 중국왕조들은 중국에서 도대체 뭘하고 있어더레요? 참 우울합니다. 짱깨나 쪽발이나 우리나 그나물에 그밥인것 같아서요... 저도 한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그 대륙설이 사실이었으면 좋겠지만 증거도 별로 없고 증빙이라봐야 몇몇 사학자들의 주장뿐이니 원...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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