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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피라미드의 건설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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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댓글 2건 조회 1,138회 작성일 06-07-27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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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01

피라미드의 왕묘설은 기원전 5세기에 이집트를 방문한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os: 484?~425? B.C.) 가 서술한 책에 "피라미드 가까이에 있던 장로가 피라미드는 고대 이집트의 왕묘 라고 말하였다" 라고 하는근거와 피라미드에는 석관으로 보이는 돌 상자가 있다. 가 근거가 되어, 오늘날까지 무덤이다 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1. 피라미드는 무덤이다.

일반적으로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거론할 때 대부분 기자에 있는 세 개의 대피라미드를 연상한다. 이들은 이집트의 제4왕조 시대에 세워진 것이다.
그러나 이집트에는 기자의 피라미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집트에는 1백 40여개의 대소 피라미드가 건설됐으며, 현재 그 위치가 확인된 것만도 7,80 여개가 된다.
이집트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 이집트의 특이한 기후의 산물인 미라와 고대 이집트인들의 내세관을 알아야 한다. 고대 초기 이집트에서 사망한 사람을 매장하는 일은 매우 간단했다. 사막 경계지역에서 시체를 약간 깊은 구덩이에 넣고 모래로 덮었을 뿐이다.
건조한 공기와 더운 모래의 접촉을 받은 시신에서 급속한 탈수 현상이 일어났다.이때 수의가 썩기 전에 자연적인 방법으로 미라가 만들어지곤 했다. 이집트인들은 우연히 육신이 보존된 미라를 발견하고 내세에서 생을 영위하기위해 미라처럼 시신이 보존돼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구덩이가 커다란 무덤으로 변하고 관이 사용되자 시신은 모래와 직접 접촉하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인공적으로 미라를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한편, 공들여 미라를 만들어도 끊임없이 불어 닥치는 사막의 바람이 무덤을 흩날려 버리고, 재칼과 같은 동물이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훼손하곤했다. 그러므로 무덤을 안전하게 지키는 방법도 동시에 생각해야했다.

왕조시대로 들어서자 이집트인들은 진흙벽돌로 상부가 편평하고 경사진 무덤" 마스터바"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피라미드의 기원이다."마스타바" 는 죽은 사람이 환생할 때까지 영원한 삶을 누리는 직사각형의 묘다. 마스터바의 지상부나 지하부에는 몇 개의 방이 있는데, 한 방에는 죽은 사람의 미라를 안치하고 다른 방에는 사자를 위한 물건들을 넣었다.

세계최초로 돌을 가공해 만든 피라미드는 사카라 제3왕조 제세르왕 시대에 이루어졌다. 거기에는 묘지는 물론 신전이나 부속 건물을 비롯해 장례와 생활에 관련된 모든 것이 갖춰져 있는구조다.

제4왕조에 이르면 피라미드는 오늘날과 같은 형태를 띠기 시작한다. 계단식 피라미드의 건축술을 숙지한 건축가들은 가장 단순하면서 순수한 형태로 하늘을 직접 향한 모습의 피라미드를 현실화 시킨다. 기자의 대피라미드는 바로 이런 노력의 산물이다. 피라미드 건설은 4~5 왕조에 절정을 이루고13왕조 까지 지속된다. 피라미드의 건설 시기는 이집트가 정치적, 경제적으로 절정기에 달할 때였다. 파라오는 스스로를 신으로 칭하면서 지배력을 유지했고, 중앙 집권체제에서 사회는 안정돼었다.

이 시대가 5백년쯤 계속되다 실직적인 지배자가 파라오에서 지방 제후로 바뀌기 시작했다. 파라오의 권위는 약해지고, 피라미드는 약탈당하고 파괴된다.
심지어 자신이 건설하는 무덤의 부장품을 확보하기위해 파라오 스스로가 선대 피라미드를 공개적으로 파헤치기도 했다. 쿠푸왕의 대피라미드도 당시에 약탈됐을 것으로 추정하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이와같은 폐단을 잘 알고 있는 후대의 파라오들은 대피라미드와 같은 웅장한 건축물을 만들지 않았다.



2. 무덤은 아니다.

헤로도투스의 왕묘 설은 어디까지나 전해들은 이야기 일뿐이다. 자신이 확인한 부분은 아니다. 그리고 돌 상자(석관)에서는 한구의 시신도 발견된적이 없다.

자신이 건설하는 무덤의 부장품을 확보하기위해 ,선대 피라미드를 공개적으로 파헤치기도 했다.는 주장은 말도 않되는 주장이다. 어느누가 자신의 무덤을 건설하기위해 자신의 아버지 무덤을 파헤치는 왕을 받들 것인가. 아무리 왕이라도 그런모습으로 국민을 통제하고 거느릴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대형 피라미드를 만들 수 있는 문명의 수준의 국민들을 ........ 현대에는 TV 뉴스에, 왕의 무덤에 칼을 꼽고, 파헤치고 하는 기사가 나오기도한다. 그러나 , 중세시대, 고대로 올라 갈수록 왕은 왕이 아니라 신격화 되어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갈수록, 조상의 묘, 무덤은 "신성함" 그 자체이다. 외부인이 조상의 무덤 근처에 가면 부정탄다고 얼씬도 못하게 하는존재가 조상의 묘이다. 문명이 시작되기전의 신은 이집트나 그리스에 나오는 그런 환상적이고 대단한 신은 아니지만, 돌, 나무 ,태양, 언덕 ,특정 생물체 , 표범이나,악어 사자. 소, 뱀,등을 섬겼다. 그 어떤 것이던. 신으로 정해지면 그 신에게 음식이나 제물을 바치므로써 , 그들의 안녕을 기원하고 신성시 했다. 그 신성한 동물이나 식물, 특정물질은, 잡지도 못하고 해치지도 못하며 항상 보호해 왔다. 이런 것을 "토템신", "토템문화" 라고한다. 그런동/식물에게도 그런 정성과 신성시 하는데, 위대한 파라오의 무덤을 판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일이다.

왕의 묘가 약탈되어 피라미드의 모든 것이 사라졌다고 해도, 의문점은 더 많아진다.
문자와 숫자. 수학과, 엄청난 규모의 피라미드를 만들 수 있는 공학을 가지고 있는 문명이, 왜? 왕의 묘에는 단 한 자의 글자와 벽화 가 남기지 않았을까? 왕의 업적과 생존했을 때 있었던 사건들을 왜 왕이 잠들어있는 묘실에는 적어놓지 않은 것일까.(참고로 쿠푸왕의 피라미드에는 몇자의 글자가 발견됐다. 하지만, 그건 정식적인 역사적 문자가 아니라. 노동자의 것 으로 보이는 낙서인 것으로 밝혀졌다. )

사진#02
그리고 신적인 존재인 왕의 관이 아무런 장식 없는 소 여물통 같은 곳에 안치되었단 말인가.?
주류학자들은 아직도 이 석관에 왕의 미라가 담겨 있었다고 강조하고 있고, 왕의 시신이 어디로 갔을까 하는데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여러분은 이 석관이 정말 신적인 존재인 왕이 잠들어 있던 "관" 으로 보이는가?.

3. 피라미드를 끝 맺으며..

그럼 피라미드는 무엇인가?
주류학계든 , 비 주류학계든, 할 말 못하고 답답해 할 때, 비 주류계에서 황당할 법한, 논리를 주장한다.



이집트의 지리와 역사

먼저, 잠시만 이집트 지리와 역사에 대해. . . 대피라미드에 대해 알 부분이 많기에.... 이집트에서 지리적으로 거주 가능한 땅은 두 개의 지역으로 나눠진다.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란 곳이다. 상이집트는 나일강의 줄기를 연상하면 되겠고 하이집트는 상이집트와는 대조적인 퇴적층으로 된 평야로 알고 있으면 되겠다. (사진의 부채꼴부분)..자연적인 지역이 생김으로 해서 왕국또한 자연적으로 상,하이집트가 나타나게 되었다고 한다. 초기왕조 이전의 이 두왕조는 상이집트의 강력한 왕 메네스에 의해 최초로 통일되었고(B.C3100) 이 시점을 제1왕조로 해서 이집트 역사의 시작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리고 정치적,종교적으로 다시 상,하이집트로 분열되는걸 제2왕조의 케세케뮈가 다시 제통합시켰다. 그리고 고왕국시대로 나뉘어 질 수 있는 제3왕조가 시작된다. 이집트역사에서 나의 관심을 끄는 시대이다. 제4왕조(기원전 2723-2563년) 초대왕 스네프루의 후계자 쿠프왕이 기자지역에 대피라미드를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그의 아들 카프레도 대피라미드 옆에 피라미드를 하나 세웠다. 멘카우레또한 이시기에 피라미드를 지었고.... 이 두 피라미드는 대피라미드보다 약간 작은 크기로 그 옆에 서 있다. 제4왕조는 고대 이집트 왕국이 정점에 도달한 시기이며, 사람인 동시에 신이기도 했던 왕과 그의 왕권이 문자 그대로 절대적이었던 시기였다고 이집트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그리고 기자의 남쪽 20킬로미터 지점 다슈르에도 피라미드가 2개있고 기자에서 북서쪽으로 6킬로미터 지점에 아부 와쉬르라는 황폐한 지역이 있는데 이곳또한 한때 제4왕조의 피라미드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그자리에 기반과 초석만이 남아있지만.... 고왕조 이후의 왕조는 계속이어져 기원전 30년 로마의 수중에 떨어질 때 클레오파트라를 끝으로 파라오의 왕위계승은 사실상 끝났다고 한다. 대략 이까지가 기자피라미드가 고왕조에 세워졌을 때의 역사이다.

사진#03

역사이전의 부분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현재 이집트 교과서의 이집트 역사는 고대부분이 저렇게 나뉘어져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고대 이집트인들은 그네들의 역사는 더 오래들 되었다고 믿고 있었다고 한다. 마네토의 연대기에는 메네스 왕 이전의 이집트가 세 개의 시대로 뚜렷이 구분되어 있다고 한다. (마네토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때의 토착민이고 고위 신관이다한다) 호루스 왕들이 이어받은 반신반인의 지배가 15150년동안 이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전 왕조왕들의 지배가 13777년간 계속되었다. 이것은 앞에서 보았던 메네스왕 이전에 28927년의 기간이 있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꼭 장난같아 보인다. 그러니까 우리 인류 문명 훨씬 이전에 벌써 사람들이 지구상에 들락날락거렸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마냥 동물처럼 본능적으로 생활했던 것이 아니라 왕이 있고 신이란 존재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또 튜린 파피루스에 적힌 비슷한 내용이 있다. 마네토의 연대기처럼 여기도 메네스의 왕 이전에 세 개의 시대가 있었다고 적혀있으며 메네스 왕앞전의 세 번째 시기의 부분은 알 수 가 없다고 하지만 두시기는 13420년과 23200년으로 총합계는 36620년으로 나와 있다고 한다. 나도 학자들이 이런부분이 실제가 아니다라고 하는 의견에 이해가 간다. 너무 어이없는 숫자이며 확증할 수 있는 유물, 유적들이 없기에.... 하지만,

오늘날의 우리 과학자들은 지구나이가 45억년이고 인류의 조상은 적어도 백만년전이었다라는 사실에 모두 동의하고 있다고 한다. 현대인류의 모델인 크로마뇽인이 약 5만년에서 10만년전에 등장했다고도 알고 있다. 과학적 증거니까. 크로마뇽인의 두뇌는 지금의 우리와 비슷했다고도 말한다. 이것또한 과학적사실. 만약 이걸 근거로 하면 이집트의 역사이전부분 이집트말로 "제프테피"란 기간이 존재했을법도 하다. 시간개념으로 따지면 말이다. 그럼 그 제프테피때의 모든 생활상의 증거들은 다 어디로 갔냐고가 문제가 될 수 있겠다. 여기에 대해서는 따로 내가 읽었던 책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다룰 것인데, 아마도 인류의 대홍수나 혜성과의 충돌로 인한 문명의 파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대홍수란 말을 기독교 성경책에만 나온다고들 알고 있는데 이 물난리는 세계 여러나라 고대 신화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부분이다. 세계적으로 그렇게 공통된 물난리 이야기가 여지껏 내려오고 존재한다는게 말이다. 우린 우리시대 이전에 지구에 대해서 너무나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한 문명이 사라진다는 것이 만약 운이 없으면 너무나도 쉽다는 것을 사람들이 모르는 것 또한... 여기서 운이라하면 미신적인 것이 아닌 과학적인 우주질서안에 불규칙한 것들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하나가 화성에서도 언급할 주기적 혜성에서 떨어져 나오는 그 방향이 일정치 않은 非주기적 혜성이나 태양계주위에 돌아다니지만 우리가 미처 못알아보는 행성들... 이런 것들과의 충돌같은 것들을 들 수 있겠다. 물론 대홍수또한 이런 현상들과 전혀 관계가 없는 것도 아니라는점도 알아야 할 것이고.. ^^;


피라미드 시대

피라미드 시대는 이집트 학자 에드워즈 박사의 말을 빌리자면 '찬란했던 피라미드 시대는 제3왕조에서 제6왕조에 걸친 기간이었다'고 한다. 이 기간동안 (약500년) 3천만톤이 넘는 돌들이 지금의 카이로 근처에 있는 서부 사막으로 옮겨졌다. 여기서 알고 가야 할 것은 피라미드 시대에 피라미드들은 하나 만들고 또만든 것이 아니라 동시에 같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기자, 다슈르, 아부루와쉬, 자왓 알 아리안지역에서 동시에...대피라미드(쿠푸왕의 피라미드)를 비롯해서말이다.... 피라미드 시대에서 제4왕조의 피라미드들을 세우는 데 사용된 돌이 피라미드 시대에 사용되었던 3천만톤의 75%를 넘는다고 한다. 피라미드 시대에 28개피라미드 중에 제4왕조 피라미드 7개를 만드는데 다쓴 것이다. 기자3개, 다슈르2개, 아부루와쉬1개, 자왓 알 아리안1개 ...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대피라미드 하나를 놓고서도 현대의 건축술로도 만들어질까라고들 한다. 하물며 이집트 강을따라 배를 타고 하루정도를 왔다갔다 하는 거리에 몇 개의 피라미드를 그것도 역사책에서 청동기라도 사용했을까 하는 시대에도 들어서지 않았던 구석기인들이 만들어 놓았다. 정말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인원이 동원되었을까? 또 가장 의심스러운 부분인데 이걸 만든 장본인들이 자기가 만들었다고하는 어떤표시가 어느 한곳에서도 확인할 수 가 없다는 것이다. (기자 피라미드에 한해서이다) 우린 학교에서 찰흙으로 조그마하게 뭘 만들어도 이름을 쓰고 63빌딩같이 큰 건물을 만들어도 礎石이라는 것을 먼저 세우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없다. 훗날 어떤이가 어떤 돌에다 카프레왕이라는 낙서같은 이름을 써놨다고 해서 모두들 그 피라미드들이 그들 것이구나하고 믿고 있을 뿐이다. 실제는 체계적으로 계획적으로 이 피라미드가 쿠푸왕의 것인지 누구것인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냥 그렇게 이집트학자들이 맘을 그렇게 받아들였기에 그런 것이다.

그러나 그레이엄 햄콕은 그의 저서 '신의 지문'에서 전통적 학설에 이의를 가하며 많은 부분을 부정한다.

사실, '쿠푸왕 피라미드가 무덤이 맞는가?'라는 의문부터 시작한다.

즉, 쿠푸왕 피라미드에서는 그 누구의 미이라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어느 문헌에도 쿠푸왕의 무덤이라는 이야기가 없다.

현재 조사 결과 대 피라미드 내부에는 지금까지 발견된 것 이외에도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 대 피라미드 남쪽에 '태양의 배'가 매설되어 있다는 것, 대 스핑크스의 왼족 팔꿈치 근처에 공간이 있는데, 그 안에는 금속으로 보이는 물질이 있다는 것등이 차례로 밝혀졌다. 현재는 피라미드는 왕묘라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그러나 대 피라미드의 왕의 방은 지상 50m의 높이에 위치하고 있고, 유체를 땅속에 매장한 고대 이집트의 습관에 영행하고, 그 안에 있던 석관은 뚜껑도 없이 속이 비어 있고, 입구가 중심선에서 동쪽으로 10m가까이 벗어나 있고, 현재 반명되고 있는 방과 통로가 기울어져 있다는 것등의 의문점이 많이 남아 있다.

또 쿠푸왕의 부왕 스네프루 왕처럼 혼자서 4기의 피라미드를 건조하기도 했다는 점에서 피라미드는 묘라는 단순한 목적이 아니라 복수의 역할을 맡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하는 조심스러운 가설을 세울 수도 있다. 그리거 위해서는 쿠푸왕의 진짜 묘를 발견해야만 한다는 점등 풀어야할 수수께끼가 넘쳐난다.

(중복되는 글이지만 다시) 쿠푸의 피라미드의 높이에10억을 곱하면, 지구와 태양사이의 거리(149,504,000km)와 일치하고, 피라미드를 관통하는 자오선이 대륙과 대양을 정확히 절반으로 나눈다, 피라미드 둘레를 "2×높이" 로 나누면 "파이"(3.1416......)가 된다. 또, 지구의 중량에 대한 계산법과 건축물에 놓여진 암석 바닥이 세밀하고도 정확하게, 수평을 이루고 있다. 또, 천문대설을 뒷받침 하는 글은 고대 그리스의 문헌에도, 나와있는데 , 실제로도 그 곳에서 밤하늘의 88%를 관측할 수 있다.

무덤이 이렇게 초정밀로 만들어질 이유가 있는가? 우리모두가 "거대하다" 에는 동조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밀, 그것도 초정밀 해야할까에는 대답할 사람이 없다. 무덤안에 문자나 그림 이 없는 이유가, 만약 무덤안에 현란한 장식과 문자 벽화를 해 놓으면 학자들은 , 그 문양과 문자 , 문장의 해석에 만 의존해 진정한 피라미드의 수학적, 공학적, 그 외의 다른 지식이 묻힐 것을 우려해, 아무장식을 하지 않았던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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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선택님의 댓글

첫선택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측량학 용어 중에 벤치마크라는 용어가 있지요. 피라미드는 벤치마크의 역할을 해왔었지요. 지금도 그 역할을 하고 있지요. 건축자들에 의해서......땅에서나 하늘에서나.....인간의 관점에서는 모양만 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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