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레이스의 지도 > 초고대문명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초고대문명

피리레이스의 지도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바람의호랑…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댓글 2건 조회 2,189회 작성일 06-06-10 23:49

본문

남극 대륙이 얼음으로 뒤덮이지 않은 때는 대략 기원전 1만 3,000년이거나 아니면 기원전 7,000년 경부터 기원전 4,000년 전까지이다. 이는 일리노이 대학교의 Jack Hough박사와 콜로라도 대학교의 John G. Weiphaupt박사의 의견이다. 그렇다면 얼음이 뒤덮이기 전에 남극 대륙의 정확한 지도를 남긴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1513년에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해군 제독이었던 피리 레이스가 베낀 남극지도는 퀸 모드 랜드 지역의 <얼음 아래에 있는 지형>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이 지역의 지형이 알려진 것은 1949년의 일이고 남극대륙이 발견된 것은 1818년이다. 그렇다면 피리 레이스가 그린 지도의 원본은 남극이 얼음으로 완전히 뒤덮이기 전에 작성된 것이 분명하다. 1569년에 메르카토르가 발행한 지도에는 오론테우스 피나에우스의 지도가 포함되어 있고, 남극 대륙을 그린 지도도 있었다.<그림117> 피리 레이스와 마찬가지로 당시에는 알려져 있지 않은 남극 대륙의 해안선만이 정확히 묘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기원전 4,000년경에 작성된 원본 지도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1531년 오론테우스 피나에우스가 그린 세계지도의 남반부에는 완전한 남극 대륙이 묘사되어 있다. 이 지도 역시 내륙에는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남극의 중앙부에서부터 얼음으로 뒤덮이기 시작하는 때에 그려진 지도를 참고했던 것 같다. 이 지도는 피리 레이스나 메르카토르의 지도보다는 오래된 것이다.<그림118> 1737년에 필립 부아슈가 발표한 남극지도는 남극에 얼음이 없었던 때의 남극 대륙의 모습을 그려 놓은 것이다. 부아슈는 기원전 1만 3,000년경에 그려진 지도의 원본을 보았던 것일까?.<그림119>

찰스 햅굿 교수는 이러한 지도들을 연구하고 그의 지각이동 이론에 맞추어 전에는 남극에 위치하지 않았던 남극 대륙이 지구의 맨틀 위를 미끄러지듯이 이동하여 오늘날의 남극 대륙이 되었다고 하였다. 그 전에는 남극 대륙이 현재의 위치에서 북쪽으로 약 3,200㎞정도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가 증거로 내세우는 것은 기원전 9,600년 경에 일어난 기후의 급작스러운 변동과, 농업이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점, 많은 생물종들의 절멸,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인간의 유입 등이다. 남극에서도 공룡의 화석은 발견된다. 한편 랜드 플렘-아스와 로즈 플렘-아스 부부는 그들의 책 문명의 종말에서 햅굿 교수의 이론에 입각하여 아틸란티스 대륙이 남극 대륙이라는 가설을 정립한다. 농업의 발생이 약 12,000년 전이라는 사실과 발생지가 해발 1,500m 이상이라는 점, 그리고 대격변에 대한 신화 등을 구체적으로 연구하여 내린 결론으로 이는 그레이엄 헨콕 자신도 참조한 바 있다. 지각이동 이론은 아인쉬타인도 지지한 학설로 지금부터 12,000년 전에 미국의 중서부 지방을 중심으로 지각이 이동하였다고 한다. 북극은 캐나다에 있었는데 현재의 위치로 이동했고 마찬가지로 남극도 현재의 남극 대륙이 3,200km를 이동하여 오늘날의 남극이 된 것이다. 옛날 지도에는 빙하기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는 것들도 있다. 1559년 하지 아메드에 의해서 편집된 지도에는 알래스카와 시베리아 사이가 띠 모양의 육지로 연결되어 있다. 이른바 베링 육교이다. 빙하기가 끝나면서 해면이 높아져 지금은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다.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가 2세기에 작성한 북방지도에는 빙하가 스페인 남쪽까지 뒤덮여 있다. 프톨레마이오스와 하지 아메드가 참조한 원본지도는 기원전 1만년 경에 작성된 듯하다. 왜냐하면 기원전 1만년 경부터 빙하가 급격하게 녹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487년 이에우디 이븐 벤 자라가 그린 해도 포르톨라노 (Portolano : 중세1300~1500년)에는 스웨덴의 훨씬 남쪽까지 빙하로 덮여 있어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보다도 더 오래된 지도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도의 제작에는 경도-경도는 본초자오선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각각 180°의 각을 가지고 있다. 지구의나 지도상에서 경도상의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극과 극을 연결하는 경선이 표시된다. 경도 1°의 거리는 적도에서는 약 111.32km이지만 극에서는 0이다.-가 상당히 중요하다. 위도는 별자리를 이용해서 구할 수 있지만 경도는 정확한 시계 즉 크로노미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1770년대에 해리슨의 크로노미터가 일반화하면서 지도는 상대적으로 정밀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피리 레이스의 지도나 오론테우스 피나에우스의 세계지도 그리고 이에우디 이븐 벤 자라의 지도 등은 상대적인 경도가 매우 정확하다. 또한 1339년의 둘체르트 포르톨라노와 1380년의 제노 지도 역시 경도가 상당히 정확하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역사에서 사라진 고대의 문명에서 발생한 것일까?. 아니면 외계문명의 유입에서 전달된 것일까?. 중국에서 돌기둥에 그려진 지도를 1137년에 베낀 지도는 경도가 정밀하고 중동이나 유럽의 지도와 차이가 없다. 그 이유는 그 지도들의 원본 즉 원산지가 같다는 사실로 하나의 문명에서 전수되어진 것이다.
사진#01

참고 문헌 및 자료

-신의 지문. 그레이엄 헨콕. 까치.
-메르카토르:지도제작에 큰 혁신을 가져온 인물이다. 후에 '메르카토르 도법'<1569년 메르카토르가 창안한 지도제작법. 원통도법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수학적으로 추론한 것임에 틀림없다. 경선은 간격이 일정하면서 평행한 수직선이고, 위선은 수평으로 평행한 직선으로, 적도에서 거리가 멀어질수록 간격이 더 많이 벌어진다.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그린 지도 위의 모든 직선이 항상 정확한 방위를 표시하므로 항해자들이 직선항로를 잡을 수 있어서 항해도에 널리 쓰인다. 그러나 적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일수록 축척이 왜곡되어 균형에 맞지 않게 크게 표현되므로, 세계지도로서의 실용성은 낮다. 예를 들면 메르카토르 도법에서는 그린란드의 영토가 남아메리카 대륙보다 크게 표현되지만, 그린란드의 실제 면적은 사우디아라비아보다도 작다.>으로 알려진 그의 지도는 위선과 경선이 직선으로 그려져 있어, 어떤 지점에서든지 정확한 위도와 경도의 비율을 알 수 있다. 또한 지도를 모아서 편집하는 '지도서'(atlas) 개념을 최초로 도입했다. 본명은 Gerard de Cremer
-문명의 종말. 넥서스
추천1 비추천0
Loading...

댓글목록

지식탐험자님의 댓글

지식탐험자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바람의 호랑이님의 자세한 설명을 고맙게 읽었습니다.  기재하시느라 힘드셨겠습니다.  고마움의 표시로 추천 버튼 한번 눌러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립니다.

회원로그인

구글 OTP 인증 코드 입력

디바이스에 앱에서 OTP 코드를 아래에 입력합니다.

OTP 를 잃어버렸다면 회원정보 찾기시 해지 되거나,
아래 링크를 클릭하여 이메일 인증으로 해지 할수 있습니다.

OTP 해지하기

론건맨 상위 순위 10

  • 1 사라랜스402,561
  • 2 선상반란302,220
  • 3 eggmoney119,307
  • 4 샤논115,847
  • 5 nabool100,590
  • 6 바야바95,516
  • 7 차카누기93,943
  • 8 기루루88,867
  • 9 뾰족이87,715
  • 10 guderian008386,855

설문조사

론건맨 싸이트가 열리는 체감 속도는 어떤가요.?

설문조사

론건맨이 부활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접속자집계

오늘
2,421
어제
1,625
최대
2,581
전체
14,285,609
론건맨 요원은 31,003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