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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론자들이 바라보는 팔랑케 나즈카 피리레이스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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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혈액형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댓글 7건 조회 2,196회 작성일 02-08-16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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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 우주인 설과 관련된 미스터리들

멕시코 치아파스(Chiapas)주의 유카탄 만에 있는 고대 마야도시 팔렌케
(Palenque)에는 70피트 높이의 피라미드가 서 있는데, 이것을 '비명사원(Temple
of the Inscription)'이라고 부른다. 1949년까지 그 내부는 탐험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그러던 것이 멕시코의 고고학자 루스(Alberto Ruz Lhuillier)가 커다란
바닥 판에 손가락 크기 만한 구멍을 발견하여 돌을 들어올려 숨겨진 계단을 발
견하였다.

1. 팔렌케 우주인

maya2.jpg

그 계단은 돌부스러기와 진흙으로 메워져 있었으므로 루스는 무려 4년간의 작
업 끝에 피라미드의 65피트 밑 지하로 내려갔는데 그곳에는 비밀 무덤이 있었
다. 루스는 이로부터 20년이 지나 자신의 발견이 외계우주인의 증거로 활용이
될 줄은 몰랐다. 문제는 무덤 덮개를 장식한 돌 조각(stone carving) 때문이었다.
폰 데니켄은 1976년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다음과 같이 해설하였다.

"무덤을 덮고 있는 석판 위에는 놀라운 조각된 양각그림이 있다. 내가 보기에
일종의 틀이 있다. 그 틀의 중앙에 앞으로 기울어진 상태로 앉아있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코에 마스크를 하고 있고 두 손을 사용하여 어떤 통제장치를 조작하
고 있다. 그의 왼쪽 발바닥은 다른 조정을 위한 일종의 페달 위에 있다. 뒷부분
은 그와 분리되어 있는데, 그는 복잡한 의자 위에 앉아있으며 이 전 틀의 밖에
는 배기 가스와 같은 작은 불꽃이 보인다."

폰 데니켄은 이와 같이 무덤 덮개의 그림이 외계 우주인을 나타낸다고 말하고
있으나 좀 더 자세히 전체 디자인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를 별개로 조사해보면
외계 우주인일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우선 우주복을 입지 않은 거의 벌거벗은
상태다. 맨발에 장갑도 끼고 있지 않다. 또한 입고 있는 옷과 치장한 보석으로
미루어 그가 기원 700년경 마야 귀족의 특징적인 스타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상 이 무덤은 기원 683년에 사망한 마야 왕 로드-실드 파칼(Lord-Shield
Pacal)의 무덤이다. 파칼 왕조의 역사는 이미 대리석 석판 뚜껑의 틀에 조각된
그림들, 팔렌케 사이트의 다른 사원에서 발견된 다른 그림들을 증거로 하여 이
미 잘 확립되어 있다. 파칼의 출생, 통치, 사망에 관한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있
었다는 것이다.
소위 '팔렌케 우주인(The Palenque astronaut)'의 내용을 좀 더 설명해 보자.
파칼 무덤 덮개를 올바르게, 수평이 아닌 수직으로 놓으면 로켓이라고 한 것은
십자, 두 개의 머리가 달린 뱀, 그리고 커다란 옥수수 잎이 포함된 조합된 예술
의 형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산소 마스크라고 부른 것은 콧구멍과 연결된 것
이 아니라 파칼의 코끝에 닿아 있는 듯이 보이는 장식물이다.
조정간은 손과 관련 있는 것이 아니라 배경에 있는 마야 태양신(Maya Sun
God) 측면 그림에서 나온 요소이다. 우주인의 발에 의해 조정된다고 본 페달은
사망과 관련된 마야인의 심벌인 조개껍질이다. 또한 로켓 분사라고 본 것은 성
스러운, 생명을 지속시켜 준다는 옥수수나무의 뿌리와 같다.
폰 데니켄의 외계 우주인은 이렇게 간단히 허구적인 것으로 밝혀진다. 그가
그저 그럴듯한 예를 찾아 진실인 것처럼 강조, 묘사하여 독자가 믿고, 환상에 빠
지게 하는데 재능을 가진 공상 소설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또한 나즈카
우주비행장(Nazca Spaceport) 설을 유행시켰는데 아래 자세히 설명한다.

2. 나즈카 우주 비행장?

s_nasca07.jpg

리마(Lima) 남동쪽 250마일 떨어진 나즈카(Nazca)와 팔파(Palpa) 마을 사이
에 200 평방 마일의 황무지 평원이 놓여있는데 이곳을 페루 나즈카 평원이라고
부른다. 그곳에는 고대 원주민들이 화판으로 사용하여 그려 넣은, 공중에서만 볼
수 있는 13,000개 이상의 선, 100개이상의 나선형, 사다리꼴, 삼각형 모양 그리고
거의 800개에 달하는 동물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들 그림은 모두가 검은 표면 돌을 제거하여 좀 더 밝은 색깔의 내부 토양을
드러내게 하여 만든 것이다. 대부분의 선들은 4-5개의 별과 같은 중심에서 방사
되어 여러 마일에 걸쳐 연장되어 있었다. 이들 그림은 아마도 4-500년간의 기간
에 걸쳐, 기원전 400년에서 기원 900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폰 데니켄은 < 외계로부터 온 신들 >에서 이 이 나즈카 평원의 그림과 관련
하여 "과거 어느 땐가 알려지지 않은 지적 생명체가 현재 나즈카 마을 근처의
사람이 살지 않는 평원에 내려왔다. 그리고 지구 근처에서 작업하게 되어 있는
우주선을 위한 임시 대용 비행장을 건설하였다"라고 하여 외계인의 '우주 비행장
설'을 퍼뜨렸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우주 비행장' 설은 석연치 않다. 외계인의 우주
선이라면 수직착륙 능력쯤 문제이겠는가? 그런데 수마일 길이의 활주로가 과연
필요하였겠는가? 또한 많은 선들은 그대로 언덕, 산봉우리 그리고 산기슭으로
향해 끝난다. 우주선 활주로라고 수긍할 수 없다. 또한 어떤 무거운 비행물체의
착륙에도 부드러운 모래 많은 토양은 적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점을 지적하
며 나즈카에 관한 세계적인 권위자인 라이헤(Maria Reiche)는 "우주인들이 아
마도 꼼짝달싹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우주 비행장설 추종자는 공중에 나는 우주선으로부터 나온 분사가 모
래를 날려보내 선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 아이디어는 오히
려 비행장 설의 문제를 노출한다. 선을 만든 것은 가벼운 무게의 토양이 아니다.
선의 측면을 따라 선형으로 쌓은 것은 더 무거운 바위들이다. 폰 데니켄의 '우주
비행장' 설이 허황된 것임은 이렇게 분명히 말할 수 있으나 이 엄청난 그림을
그 오래 전에 어째서, 어떻게 만들어 놓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3. 나즈카 그림의 미스터리

s_nasca07.jpg

나즈카 평원의 그림은 오래 전에 알고 있었던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그런
그림이 있다고 알려진 것은 1927년이다. 그로부터 12년 뒤인 1939년 롱아일랜드
대학의 코속(Paul Kosok)이 최초로 그림지도를 만들고 공중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로부터 체계적인 연구가 시작된 것이다. 코속의 가장 중요한 발견은 1941년 6
월 22일 땅에 서서 지는 해를 향해서 선 중의 하나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 나
왔다. 이 때는 남반부에서 지점(solstice, 태양이 적도에서 북으로 또는 남으로
가장 떨어졌을 때)의 날이었다.
그는 분명한 선들의 배열을 보고 이 선들이 '세계에서 가장 큰 천문학 책'일지
모른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는 후에 지점과 분점(equinox, 태양이 적도를
가로지를 때)을 나타내는 12개의 그런 배열을 확인하였는데, 나즈카 평원이 거대
한 천문학 달력과 관측소로 되어 있는 것 같다는 가설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쉽게 말해서 태양과 선들과의 관계로부터 그 날이 춘분, 추분, 동지, 하지 등 어
떤 날인지 알 수 있었다는 등 추정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코속의 이런 발견, 주장에도 많은 의문점이 남아있다. 그림은 그렇다고
해도 나즈카 인이 이 복잡한 선, 그림 가운데 어떤 것이 어떤 때라고 어떻게 알
아내었을까, 의문도 있으나 이보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들은 공중에서만 알아볼
수 있는 선이나 더욱이 동물 그림과 같은 그리기 어려운 그림을 그렸을까? 실
제 이 그림을 볼 수 있는 이상적인 높이는 평원에서 600피트 정도의 공중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헬리콥터가 없이도 이것을 감상할 수 있었단 말인가?
플로리다에 기지를 둔 국제탐험가협회(International Explorers Society)가 시험
해본 바에 의하면 고대인들은 나즈카 위를 날은 초기모형의 연기 열기구를 가졌
으리라고 추정된다. 1977년 < 나즈카: 태양으로의 여행(NAZCA: Journey to the
Sun) >에서 IES회원인 우드먼(Jim Woodman)은 고대 페루인들이 열기구 비행
비밀을 유럽보다 훨씬 전에 알고 있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나즈카 평원을 따라 수많은 고대 무덤 자리가 있는데 그곳에는 세
밀하게 짠 천들이 들어있다. 이 천들은 열기구의 기낭으로 적합한 것이다. 또한
그곳에는 열기구를 만드는데 중요한 꼰 끈도 들어 있었다. 또한 그곳에서 발견
된 도자기 중에 줄로 연결된 열기구를 닮은 모양도 그려져 있었다.
1975년 11월 28일, 우드먼과 영국의 유명한 열기구학자 노트(Julian Nott)는 실
제로 조잡한 열공기 기구를 사용하여 나즈카 평원 위 300피드를 날아 그들의 관
점을 증명하였다. 이들이 사용한 10층 높이의 섬유와 연기로 된 열기구는 고대
나즈카 인이 실제로 가졌던 자원에 기초하여 만든 것이었다. 이것은 '실험에 의
한 고고학'의 유명한 예이며 이들은 우주-신의 설을 사용하지 않고도 고대인의
가능성을 증명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 나즈카 인들이 실제로 이렇게 열기구의 도움으로 그림을 그렸는
지에 대한 증거는 없다. 또한 어째서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에 관해서도 여러 설
이 나와 있다. 앞서 코속이 최초로 발견한대로 그리고 아래 라이헤의 말로 인용
된 것과 같이 천문학적 중요성을 가졌다는 설은 남아 있다. 예를 들어 1978년 <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 >에서 이스벨(William H. Isbell)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오랫동안 라이헤가 지적한대로, 팜파 콜로라다(Pampa Colorada) 선의 어떤
것은 여름과 겨울의 지점의 태양의 위치를 나타내며 그리고 어떤 다른 선들은
달력상의 중요성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호킨스(Hawkins)의 선 배향의 컴퓨터
분석에 의하면 대부분의 선들은 천문학적 중요성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그들 중
에 많은 것들은 우연에 의한 것보다 두 배나 매년 태양과 달의 극단적인 상태와
관계하여 배향된 것임을 나타내었다."

이스벨의 이 언급은 나즈카 그림의 천문학적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라고 생각
되지만 종교적 의식과 관련되었다는 설도 만만치 않다. 이 설도 최초로 코속으
로부터 나온 것으로, 예술 사학자 소여(Alan Sawyer)의 지지를 받았다. 그는 대
부분의 모양들이 서로 교차하지 않는 한 개의 선으로 이뤄졌음을 말하며 이것을
'의식적 미로(ritual maze)'라고 주장하였다. 나즈카 인들은 이 선을 따라 걸으
며 그림이 상징하려는 것이 무엇이든 그 에센스를 흡수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것
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연속적인 선이 아닌 예도 있으며 또한 이 방법이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기법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가설에도 한계가 있다.
나즈카 그림의 이해는 전 세계의 유사한 거대한 그림을 통한 방법도 있으나
간단히 말해서 나즈카와 그들 사이에는 유사성과 비유사성이 있으므로 통일된
해석이 어렵다. 캘리포니아 블라이드(Blythe)나 기타 다른 곳의 그림에는 데니켄
유의 활주로나 공중의 우주선의 도움으로 그렸음을 시사하는 것은 없다. 또한
그들이 선발된 고대의 열기구 조종사에 의해 그려졌다는 가정을 정당화하는 어
떤 것도 없다.
따라서 마지막으로 이러한 선들이 어떻게 계획되어 실제 그려졌는지에 관한
연구가 나즈카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이에 관한 권위자는 라
이헤 이다. 그녀는 < 사막 위의 미스터리(Mystery on the Desert) >에서 나즈
카 예술가가 아마도 예비적으로 작은 6-피트-평방 도면에 그림을 그린 다음에
다시 성분으로 나누어 확대하였을 것이라는 추정을 내 놓았다. 직선은 두 개의
막대에 줄을 늘어뜨려 그리고 원은 바위나 막대에 고정시킨 줄을 돌려 그렸다.
그리고 좀 더 복잡한 커브는 적절한 궁형(arc)을 연결하여 그렸다. 그녀는 이러
한 궁형들의 중심이 된 돌이나 구멍을 나즈카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라이헤는 궁형의 중심이나 직선의 종말점이 된 막대를 어디에 세우는지에 관
해서는 자세한 것을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책에 고대 페루인들은 우리가 현재
모르고 있는 아마도 정복자가 왔을 때 하나의 보물로 여겨 감추어 버린 어떤 장
치를 갖고 있었음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이것은 축척 모델을 말하는 것이나 실
제 나즈카 인들이 그런 모델을 사용했는지, 했다면 구체적으로 어떠한 방법이었
는지에 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현재 간단한 방법으로도 그런 그림을 그
릴 수 있으리라는 것은 입증되었다.
마지막으로 과연 나즈카 그림은 공중에서만 확인될 수 있는 것인지 살펴보자.
그러리라고 하지만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다. 80피트의 물고기 그림과 같이 작
은 것은 분명히 지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언덕 위에서 발견되는 나즈카
그림 이전의 것으로 보이는 그림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이와 같이 확대의 방법
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렸던 나즈카 인들은 자신의 방법에 확신을 갖고 더 큰 그
림도 그렸을 가능성도 있다.
더욱이 커다란 그림도 어느 정도는 지상에서 확인될 수 있다. 그래서 공중에
서 콘도르라고 확인하기 전에도 몸체와 머리, 다리와 발, 그리고 꼬리의 거대한
부채꼴로 미루어 새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외의 그림도 생물학에 정통한 사람은
지상에서 확인할 수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공중에서 지시하여 그림을
그렸다기 보다는 어떤 축척 모델을 사용하여 지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린 것을 시작으로 확대에 자신을 갖고 거대한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지상에서
확인했을 가능성도 크다.

4. 피리 라이스 지도

PiriReis.jpe

그렇다면 수백 피트 상공이 아니라 수백 마일 상공에서나 그릴 수 있었으리라
는 피리 라이스(Piri Re'is) 지도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폰 데니켄은 < 신
의 전차? >에서 피리 라이스 지도는 절대적으로 정확하며 지중해와 사해뿐만
아니라 북미와 남미의 해안선과 남극의 모양까지도 정확히 그려진 것이라고 하
였다. 또한 대륙의 윤곽뿐만 아니라 내부의 지도도 정확히 보여준다고 하였다.
따라서 그 지도가 선사시대 공중 정찰을 한 우주인에 의해서 만들어졌을 가능
성이 있다 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정말로 이 지도가 폰 데니켄이 주장하는 것처럼 정확한 것일까? 실제
로는 그렇지 않다. 1513년에 그려진 이 지도는 1929년에 박물관으로 개조 중이
던 토프카피(Topkapi)의 오래된 궁전에서 발견되었다. 지도 위에 나타난 모든
여백의 노트는 번역되었고 그 기원에 대해 터키 해군제독 피리 라이스(Piri
Re'is)가 그린 것으로 잘 확립되어 있다. 그는 약 20개의 도표를 동일한 축적으
로 하여 한 장의 지도로 만들어내었다. 그렇게 할 때에 오류가 나타났음은 물
론이다.
그 오류는 여러 가지다. 남미해변 900마일이 빠져 있고, 아마존강이 이중으로
되어 있고, 케이브혼(Cape Horn)과 남극반도 사이의 드레이크 항로(Drake
Passage)가 빠져 있다. 또한 남극이 있어야 할 곳의 4,000마일 북쪽에 존재하지
않는 땅덩어리가 그려져 있었는데 이것을 폰 데니켄은 남극이라고 하였다. 이것
을 보아도 지도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 지도는 다
른 16세기 지도작성법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런데 폰 데니켄이 말한 것처럼 이
것을 외계인이 만든 것이라고 믿어야 할 것인가?

출처 : http://www.kopsa.or.kr/ko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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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종태님의 댓글

혈액형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팔란케에 소재해 있는 비명사원의 조각,  나스카 평원의 그림, 피리라이스의 지도가 문명 발전도의 전형에서 벗어나 있는
면이 없지 않아서, 여러가지 미스테리로 윤색되는 경향이 있긴하지만, 위와 같은 회의론이 생기는 것은 '외계 우주인과 관련'
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는, 위의 유적들을  외계인과 관련 짓지 않는 고고학자들도 상당히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비교 관점 역시, 상기한 주장보다는 훨씬 이성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좀 더 일반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학자들의 의견을 정리해보고져 한다.
제론된 내용이 그야말로, 지극히 회의적이고 비판적이므로, 공포와 꿈이 동시에 많은 지극히 인간적인 편에 서서 바라보고져 한다.
 
(비명의 사원 유적)
  팔란케의 우주인은 아무리 편을 들어 주려고 해도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폰 데니켄 외에는 조각 속의 주인공을 외계인으로
  봐주는 사람이 거의 없고, 주변의 장식 역시 복잡한(혹은 우주선 내부와 닮은...) 기계장치라기 보다는 고대 마야의 상징문양과
  신앙의 심벌이 조합된 데코레이션일 가능성이 높다. 독선적인 주장을 펴서 타인의 주목을 받으려는 사람이나,
  그런 주장을 물상화함으로써 실질적인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폰 데니켄의 손을 들어줄 수 없을 것 같다. 

(나스카 평원의 그림)
나스카의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 그림을 누가 그렸냐고 물으면, 반신반인(半神半人)인 비라코차가 만들었다고 말한다.
비라코차는 몇 천년 전에 안데스 산맥 여기저기에 지문을 남겨 놓았다. 나스카에는 비가 거의 오지 않는다. 10년에 한 번 꼴로
30분 정도의 안개비가 내린다. 이곳에 무엇인가를 그리면 그 형태가 그대로 남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므로, 이런 기후적 특성을
잘 아는 예술가가 있다면 이 기묘한 고원을 이상적인 켄버스로 보았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나스카가 얼마나 오래 되었느냐에 대해 의견을 내 놓았다. 기원전 350년에서 600년 사이에 그려졌을 것이라고 했다.
나스카 지상 그림에 묻혀 있던 도기의 파편과 주변의 지하에 남아 있는 유기체의 방사성 탄소를 조사한 결과로
추측한 것인데, 한 가지 직시해야 할 것은 그것은 나스카 자체에 대한 그들의 측정이다.
그림이 얼마나 오래 되었느냐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는 얘기다.
지상의 돌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그린 것이기 때문에 추측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집요한 대중들의 질문에 그들은 이렇게 답변했다. 적어도 1400년 이전에 그려졌을 것이라고...
그러나 이보다 오래 되었을 가능성은 여전히 충분하다. 왜냐하면 주변에서 발견된 공예품 등은 훗날 사람들이 가져온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류가 20세기 전에는 하늘을 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나스카의 그림이 우주인의 작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린 학자들을 과대망상 환자로 매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상당히 로맨틱한 생각인 것은 사실이지만, 회의론자가 아니더라도 그들의 손을 선뜻 들어줄 수는
없을 것 같다.
몇백 광년이나 우주공간을 지나서 온 우주인의 비행선에 활주로가 필요했을까---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의문이다.
지상의 그림 몇게는 활주로처럼 보이지만, 작은 돌더미를 제거한 부분은 깊이가 몇 센티미터에 지나지 않고, 부드러워서
바퀴가 달린 비행체가 착륙할 지면이 못 될 뿐 아니라, 활주로를 우주선이 이용했을 거라는 발상 자체가 성립 안될 것 같다.
그게 우주인이 그린 활주로가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아, 머리에 쥐가 난다. 햇갈린다.
당혹감을 애써 감추고, 나스카의 동물들을 노려보고 있다보면, 그 그림들이 2단계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된다.
동물이나 새의 그림이 활주로의 기하학적 도형보다는 먼저 그려졌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많은 직사각형과 직선들이 복잡한
아래 도형을 지우거나 교차해서 지나가고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이 2단계로 그려진 것은 좋은데, 사람을 피고하게 하는 요소가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먼저 그려진 그림이 나중에 그려진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마치, 이집트 기자의 피라미드 군처럼.)
균형이 잘 맞은 동물 도형을 그리는 것이 단순 도형을 그리는 것보다 어렵다는 걸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최초의 예술가와 나중의 예술가 사이에는 얼마 만큼의 시간이 쌓여 있을까?
그들이 도대체 누군가 라는 질문과 함께 대중의 의문은 해소되고 있지 않지만, 학자들은 대답해주지 않는다.
그저 두 개의 문화를 묶어서 '나스카 문화'라고 부른다.
대중들은 우매하지만, 전문가들을 더 이상 득달하지 않는다. 학자들도 대답을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으므로.
아무튼 그 세련된 예술가 족속들이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유와 방법으로 작품을 남긴 후 홀연히 증발해버렸고,
몇백년이 지난 후 그들의 후예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잉카족이 나타난 것으로 되어있다.

그 옛날에 살던 예술가들은 어는 정도 세련된 문명과 기술을 가지고 있었을까?
외계인인지 내계인인지 하는 그 예술가 족속들이 하늘을 나는 기계를 가지고 있었을까?
우주선이나 비행기는 아니더라도, 열기구 같은 비행선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까?
낙하산 원단에 비견될 만한 조밀한 직물들의 조각들과 장력이 엄청난 끈 몇 조각,
그리고 복잡한 구조물에 휩싸여 있는 나한이 부조되어 있는 조각의 기록들.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날틀 보유자로써의 그들을 증명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들은 날틀을 갖고 있지 않았다고 봐야 하는가?
그 것 역시 속단이다.
그들의 기계적 문명을 짐작할 만한 단초가 나스카 그림 속에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천체 과학자 피틀루거 박사가 나스카 평원에 누워 있는 거미의 몸체를 보고, "저 그림은 거대한 오리온 자리를
지상에 그린 것이다"라고 말할  때만해도 모두들 한숨을 내쉬었다.
'피틀루거도 별수 없군. 또 별자리 타령이야...'
그러나, 그 그림에 연결되어 있는 화살표 표시가 오랜 세월에 걸쳐 변천한 오리온 벨트의 기록이라고 말하자,
박사의 주변을 떠나려던 사람들이 다시 모여 들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들은 정말 뛰어난 천체 관찰자였을 것이다.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자 피틀루거는 모두를 경악하게 할 만한 사실을 발표했다.
그 거미그림은 '리치눌레이'라는 이름을 가진 거미이고, 그 거미는 세계에서 가장 휘귀한 거미로서 아마존 열대우림의
오지에만 살고 있다고...
서둘러 주변의 학자들이 사실을 확인했다. 사실이었다.
리치눌레이는 오른쪽 다리 끝에 생식기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조차 나스카의 거미는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원시적인 나스카의 화가들은 안데스 산맥이라는 거대한 장벽을 넘어 아마존까지 여행해서 거미의 견본을 가져왔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리치눌레이를 그렇게까지 상세하게 그릴 수 있었겠는가?

나스카의 불가사의는 계속 증가하는 추세이다.
콘도르 외외의 그림은 나스카에 어울리지 않는 듯이 보인다. 거미가 그랬드싱 고래나 원숭이가 나스카 평원하고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사람의 그림은 또 어떤가? 인사하듯 오른 손을 들고 있고 무겁고 긴 신발을 신은 채 올빼미 눈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는 저 사람은 도대체 어느 시대의 어떤 문명에 속해 있던 존재인가?
후광이 그려져 있는 사람은 얼핏보면 분명히 지구인이 아닌 듯 보인다.

벌새의 길이는 50미터, 거미는 45미터, 콘도르는 122미터, 도마뱀은 188미터, 그 규모도 엄청나지만, 정밀도 역시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8킬로미터 이상의 직선이 그어져 있는데, 사막을 가로지르는 로마으이 길과 비슷하다. 솟아오른 바위
위로도 계속 그러놓은 이선은 완벽한 직선 그 자체이다.
이와 같은 정밀도를 유지하는 것은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나 동물의 그림은 누가 뭐라고 해도, 보조자든 화가 자신이든 위에서 조감하면서 그리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주변에 높은 산이 없으니까, 누군가는 공중에 어떤 상태로든 떠 있었다고 봐야 하는데...
그 주인공이 외계인인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 지구문명의 일반적인 발전도에서 벗어난 문명기술을 소유하고 있었고,
그는 지극히 예술적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주인공이 외계인이라고 전제하면, 회의적 이견도 있을 수 있지만, 위의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
어떤 경우에든 희망적이된다.

(피리레이스의 지도)

'피리레이스의 지도의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사실과
남극의 위치가 터무니 없이 벗어난 것이 공중에서 조감하며 그리지 않은 증거이다.'
라고 회의론자들의 주장을 정리할 수 있나요?
그러나, 피리레이스의 지도에 대해 외계인을 결부시키는 학자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고,
피리레이스가 현재의 형태를 갖춘 것 자체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학자들도 많이 있고, 그 이유 역시 상당한 논리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통념으로는 남극대륙이 현재처럼 만년설로 덮인 것이 수백만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 이 통념에는 결함이
많이 있다.
피리 레이스 제독이 그린 '퀸 모드 랜드 지역'의 지도는 수백 만 년 전의 지도가 아닌 듯하다.
수백 만년 전이라면 어쩌면 인간이 생기기도 전인데, 누가 이와 같은 지도를 그렸겠는가?
최근의 자료에 의하면, 퀸 모드랜드 지역과 그 부근은 불과 6000년 전에 얼음에 뒤덮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다. 6000년 전이라면 말이 된다. 수백만년 전에 도래한 외계인을 빌려오지 않아도 된다.

우선 피리레이즈의 지도에 얽힌 문제를 풀어나가기 전에 확인 혹은 전제해 둬야 할 사실들이 있다.
1, 피리레이스의 지도는 날조된 것이 아닌 진본이고, 1513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작성되었다.
2, 이 지도는 아프리카 서해안, 남아프리카 동해안, 남극 대륙의 북해 안을 망라하고 있는데, 남극 대륙이 발견된 것이
1818년이므로 피리 레이스는 남극대륙 북해안에 대한 어떤 지리적 정보도 갖고 있지 못했다.
3, 퀸모드 랜드 지역을 얼음 없는 실질지형을  탐사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기원전 4000년 이전에 그 곳을 둘러봐야 했다.
4,지도의 지역이 빙결하지 않았던 기원전 13000년 부터 기원전 4000년 사이에 연안을 조사할 수 있거나, 할 필요가
있었던 문명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1818년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대륙이 1513년에 이미 그려져 있었던 것도  수수께끼지만 누가 6000년 전에 얼지
않은 대륙연안을 그렸는가 하는 것도 수수께끼이다.
수수께끼를 푸는 단초는 지도에 피리레이스가 자필로 써놓은 기록에 있다.
그의 고백에 의하면, 그는 지형을 조사해서 지도를 작성한 것이 아니었고, 지도를 거의 편집하는 형태로 모방했다는 것이다.
그랬으니까, 오류가 있었던 것은 당연한 결과.
참고로 삼았던 몇 개는 남아프리카와 카리브해까지 도달했던 탐험가들(크리스토퍼 컬럼버스를 포함해서)이 작성한 것이었고
다른 몇 개는 기원전 4세기나 아니면 그보다 더 오래 전에 작성된 것이었다고 한다.
제독은 오랜된 지도가 누구에 의해 작성되었는가는 밝혀 놓지 않았다.
이에 대한 학자들의 추론은 일반인 감당하긴 버거울 만큼 엉뚱하다.
기원저 4세기 이전의 지도는 더 이전의 지도를 모사한 것일 거라고 한다.
알려지지 않은 문명에 의해 작성된 지도가 고대의 위대한 항해민족이었던 페니키아인이나 미노아인에게 전해졌을 거란다.
이 지도들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수집되었고, 그 도서관의 지리학자들에 의해 편집되었다는 증거가 있다는 것이다.
이 편집된 지도와 원본 지도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콘스탄티노플을 비롯한 학술 중심지로 송부되었다가, 1204년
제 4차 십자군 원정때 지도가 유럽의 탐험가에게 넘어갔을 거란다.
그런데 문제의 핵심, 누가 그럼 최초의 지도를 그렸을까는 누구도 감히 설명 못하고 있다.
알려지지 않는 문명인들. 그들이 도대체 누굴까?
 

여기까지 오면 중요한 핵심이 해결되기커녕 골치 아픈 문제가 또 다시 파생된다.
왜 남극대륙의 대부분이 기원전 4000년까지 얼음으로 뒤덮여 있지 않았는가,
4000년 전에는 기후가 지금과 달랐는가? 훨씬 더 온난했는가? 아니면, 그런 기후가 전지구적이 아니고 남극만의
문제였는가?
남극만의 문제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이에 대해 세련된 해설이 나와있다.

1, 남극이 계속해서 얼음에 덮여 있었던 것은 아니다. 현재보다 훨씬 더 따뜻한 시기가 있었는데,
  그 이유는 남극이 현재보다 3200킬로미터 북방에 있었기 때문이다.

2,남극이 지금의 위치에 온 것은 지각이동 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프레이트 택토닉스plate-tectonics나 대륙이동설과 혼돈해서는 안된다.)

3,남극이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수천 년 동안 서서히 만년설로 덮이게 되었다.
그러니까, 피리 레이스의 지도는 '지구의 지각이 돌연 남쪽으로 미끌어졌기 때문에 그 때까지 얼음이 아니었던 남극대륙의 일부가
얼음으로 덮이게 되었다'는 증거를 내포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학자들은 이 사실에 논쟁의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그러나 이지도는 기원전 4000년 전에 작성되었으므로 이 지도가 시사하는 인류문명의 역사는 놀라운 것이다.
공식적으로 그때는 문명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피리레이스의 지도가 그 전의 지도를 모사하였고, 그 지도는 다시 그 이전의 지도를 모사했다는 학자들의 주장이 사실일까?
피리레이스에 얽힌 의문을 그 이전으로 전가시키는, 마치 수건 돌리기를 하는 듯한 학자들의 말들을 정말 믿어도 되는 걸까?
현존하는 고지도가 모사된 것이 상당수 있다고 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오론테우스 피나에우스의 지도이다. 이 지도 역시 남극이 얼음이 묻히기 전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역사적으로
생각하면  당시의 지도는 남극의 진상을 볼 수 없는 시기의 것이다.
이뿐아니라, 메르카토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16세기의 저명한 네덜란드 지도제작자 헤라르드 크레메르가 제작한 지도에도 남극은 얼음이 없는 모습이다. 프랑스의 지리학자 필립 부아슈도 섬세한 혈맥이 드러나 있는 남극의 모습을 지도로 펴냈는데, 지형 뿐 아리라, 수로까지 정미하게 묘사되어 있다. 로스해와 웨들 해와 벨링하우제 해를 연결하는 수로는 얼음이 덮이지 않은 모습을 직접 보지 않고 서는 묘사될 수 없는 부분인데, 그는 분명히 그려놓았다.
얼음이 덮이기 아주 오래전에 그린 지도를 모사하거나 참고 했음이 거의 확실하다.
피리레이스, 오론테우스 피나에우스, 메르카토르, 부아슈--- 이 여러 사람이 과거의 지도를 모사했다면,
도대체 남극의 지도를 처음 그린자는 누구일까?
이럴 때, 기준은 피리레이스의 지도가 아니고 부아슈의 지도가 된다.
그의 지도는 얼음이 전혀 없을 때의 모양이므로...
남극에 얼음이 전혀 없는 때는 기원전 13000년 경으로 학자들은 추론한다.
그때, 지구에 어떤 문명이 있어, 그런 일을 했을까?
외계에서 누군가 도래 했거나, 인간의 일반적인 문명사보다 훨씬 앞서나가 지구인이 있어다는 얘긴데...


피리레이스 지도에 외계인의 실루엣을 얹는 사람들을 어리석다고 놀리지는 맙시다.
 

혈액형님의 댓글

혈액형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나스카인들이  열기구를 이용해서 그림을 그렸다는 내용은 일종의

충격인데..  그렇다면  나스카를 그린 사람들.. 즉 선사시대인들이

열기구를 발명해서  공중에서 지휘를 했다는 내용인듯 싶습니다.

간혹 보면 회의론자들도 황당한 주장을 사실로 펼치는 경우가

있어서 짜증이 나기도 한데..

열기구를 이용해서 나스카를 그렸다는 주장 역시 우주인이

나스카 문양을 그렸다는 내용 못지 않게 황당한면이 있는것은

사실입니다..

만약에 정말로 그 그림을 그린 선사시대인들이 열기구를 사용했다면

충격임에는 분명하군요..

왜냐하면 그들은 뜨거운 공기가 차가운 공기보다 가볍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 가벼운 열을 이용해서 열기구를 만들었다는 물리학적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최초로 하늘을 난사람들일수도 있겠군요..

차라리 하늘을 날지 않고서도 지상에서만으로 충분히 그릴수

있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 더 현실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회의론자들의 평소 모습을 볼때..

이택준님의 댓글

혈액형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딴지 거는것은 아니지만 꼭 따뜻한 공기가 차가운 공기보다 가볍다는것을(가벼운게 아니라 열에너지로 인한 분자운동속도의 증가 때문이 아닌가요?)꼭 알아야 열기구를 만들수 잇는것은 아닌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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