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우리 이야기. > 초고대문명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초고대문명

우리가 몰랐던 우리 이야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대동이제국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댓글 3건 조회 992회 작성일 15-07-21 10:21

본문

1. 우리가 배운 역사교과서는 왜(倭)인들이 만든것을 기반으로 하였다 :

일제시대 왜인들은 조선인들이 자신들에게 지배될 수 밖에 없는 열등한 민족이라는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전국에서 부터 고대사와 관련된 역사서 20여만권을 수거하여 상당수는 태워버리고 연구 가치가 있는 일부 서적은 가져가 버렸다.

이후 자신들의 지배 정당성을 뒷바침 하는 사대주의 시각으로 저술된 삼국 사기와 삼국유사만을 남겨두고 이를 기반으로 하여 한국사를 저술하여 교재로 삼았으며, 현재 국내 정규 강단 사학자들은 모두 이를 기반으로 하여 역사를 배운자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배운 역사와 다른 사실이 드러날경우 자신들의 입지가 위태로워지는것을 우려하여 고조선 이전의 역사 관련 자료가 나올경우 후대에 필사본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근대식 수식어 표현 등을 트집잡아 '위서'로 몰아 매장시키고, 자신들과 견해가 다른 역사학자들을 '재야사학자'라고 매도하여 사이비로 몰아가는 만행도 서슴치 않고있다.

3. 동이족의 유래 :

우리민족만이 아니라 현생 인류의 기원을 설명하는 부도지(符都誌)에 따르면, 태초에 마고의 자손인 현생 인류는 본래 반인 반 신의 존재로서 육신을 갖지 않고 있었으나 지상에 내려와 생활 하던 중 지상의 열매를 섭취한 이후로 형질이 변하여 치아가 생겨나고 육신화 되어 인간의 제약을 받게 되었다.

이후 잘못을 속죄하고 육신을 정화하여 다시 선계로 돌아가기 위하여 형질이 변한 인류는 4개 부류로 나누어 지구상의 각지로 흩어지게 되었는데, 이것이 현생인류 인종 분리의 기원이다.

당시 지상에 남은 무리중의 어른이던 황궁(黃穹)씨는 권속을 이끌고 가장 춥고 험한 천산주(天山洲 : 현재의 천산산맥으로 추정됨)로 향했는데 황궁씨 무리가 바로 동이족의 선조다.

부도지 원본 : "황궁씨는 [37]권속을 이끌고 북쪽 사이의 문을 나가 천산주(天山洲)로 가니, 천산주는 매우 춥고, 매우 위험한 땅이었다. 이는 황궁씨가 스스로 떠나 복본(復本)의 고통을 이겨내고자 하는 맹세였다."

이후의 이야기는 우리 고대사에 나오는 내용과 이어진다.
우리가 단군설화에서 배운 환인 (한인 : 한웅의 아버지 - 환인이 아니라 '한인'이며 환웅이 아니라 '한웅'입니다. 소리글자가 없던시절 유사한 발음의 한자를 사용하여 정보가 왜곡되었다. '한인'은 우리말 '한님(크고 높은분 : 하느님)'을 말하는 순 우리말을 한자로 기록하였는데, 뜻글자로 왜곡 해석되어진것입니다)
이 이후의 이야기에 등장한다.

P.S : 당시 인류는 반인 반신이었던 인류의 형질이 변하여 육화 되었으나, 그래도 지금의 인류와는 달랐고 여전히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의사소통이 되고 있었다. 이후 무리는 지구 각지로 흩어져 생활하게 되면서 점차 현생인류의 형질로 변하게 되고, 그들이 다시 마주칠때는 이미 언어가 달라져 있게 된다.
동이족과 한족 역시 이 무렵 분리가 된다.

다음은 원본 내용 :

"황궁씨가 [43]천산주에 도착하여, 해혹(解惑)하여 복본(復本)할 것을 서약하고, 무리에게 수증(修證)하는 일에 근면하도록 고하였다.

곧 장자(長子) 유인(有因)씨에게 명하여, 인세(人世)의 일을 밝히게 하고, 차자(此子) 와 삼자로 하여금 모든 주(洲)를 순행(巡行)하게 하였다.

황궁씨가 곧 천산(天山)에 들어가 돌이 되어, 길게 [44]조음(調音)을 울려, 인세의 혹량을 남김 없이 없앨 것을 도모하고, 기어이 대성 회복의 서약을 성취하였다.

이에 유인씨가 [45]천부삼인(天符三印)을 이어 받으니, 이것은 곧 천지본음(天地本音)의 상(象)으로, 그것은 진실로 근본이 하나임을 알게 하는 것이었다.

유인씨가 사람들이 추위에 떨고, 밤에는 어둠에 시달리는 것을 불쌍하게 여겨, 나무를 뚫어서 마찰을 시켜 불을 일으켜서 밝게 비춰주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또 음식물을 익혀서 먹는 법을 가르치니, 모든 사람들이 대단히 기뻐하였다.

유인씨가 천년을 지내고 나서, 아들 [46]한인(桓因)씨에게 천부를 전하고 곧 산으로 들어가 [47]계불을 전수(專修)하며 나오지 아니하였다.

환인씨가 천부삼인을 이어받아 인세를 증리(證理)하는 일을 크게 밝히니, 이에 햇빛이 고르게 비추고, 기후가 순조로와 생물들이 거의 안도함을 얻게 되었으며, 사람들의 [48]괴상한 모습이 점점 본래의 모습을 찾게 되었다.

이는 3세(황궁, 유인, 환인)가 수증하기 [49]삼천년에 그 공력이 거의 없어질만큼 써버렸기 때문이었다."


당시로부터 천산산맥 이후 동북쪽 지역은 동이족의 무대였고, 대대로 수천년간 동이족이 살아왔으나, 훗날 한족들이 경작할 땅을 찾아 동북 지역으로 올라오면서 동이족과 마주치게 되었다.

동이족은 살 터전을 찾아 온 한족들을 배척하지 않고 그 땅에 살도록 허용하였으나, 이후 한족의 인구가 늘고 점차로 경작지가 늘면서 동이족의 활동 무대와 겹쳐 마찰이 잦아지자 부족간의 전쟁이 시작된다. 이후의 이야기는 우리 동이족의 조상님이신 '치우 천자'님의 활동과 이어진다.

3. 천자, 황제, 왕 :

고대로부터 동이족은 '천손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다. 당연히 '부도지'에서 설명하듯 하늘에서 내려온자들이 지상에 정착하고 대를 이어왔으니 천손이 맞다.

물론, 다른 인류 역시 동일한 기원을 갖고 있으나, 그 정신과 사상을 이어온것은 동이족이 유일하다.
따라서 하늘의 자손은 천손은 동이족을 말하며, 그 어버이인 지도자는 '천자'라 부르는게 맞다.

당시 천자는 지배자와 제사장의 역할을 겸하였다. 실질적으로 부족국가를 관리하는것은 넓은 땅을 동서남북과 중앙으로 나누어 각각의 관리자를 두고, 이를 주역의 5방으로 구분하여 적제, 청제, 백제, 흑제로 명하고 중앙 지역의 관리자를 '황제'라 하였다. 황제는 중앙지역의 관리자인 동시에 5제중 상위 직제이며 천자의 아래 직급이었다.

당시 치우천자 께서는 연일 벌어지는 한족과의 전쟁에서 "한족을 모두 죽일수는 없다" 고 판단 하시고 한족과의 전쟁으로 한족을 점령한 후 그들을 관리할 지도자로 동이족 헌원을 황제로 임명하여 한족들을 관리하고 배달국에 편입시키기로 하였다.

이후 한족들은 자신의 지배자인 헌원을 존경하고 따르며 복종하였으나, 이후 헌원은 한족 지배자로서의 자신의 입지를 이용하여 세력을 키우고 배달국에 반기를 드는 반역을 하게 된다.

당시 대룩의 동서남북의 평원지대는 모두 동이족의 영토였고 중원의 산악지역이 한족들의 무대였다.
수천년간 한족들은 험란한 산악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고립되어 힘든 생활을 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한족들을 교화시키고 단합시켜 동이족과 대결하게 만든 헌원은 현재 한족의 조상으로 숭배되고 있으나, 사실 동이족의 배신자일 따름이다.

4. 대륙의 한족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의 종족은 고대 배달국의 후손인 동이족들이다 :

고대 동북지역은 모두 동이족의 무대였다.
그들은 점차 대륙 전역으로 흩어져 무리를 이루고 살았으며, 각 지역의 특색에 따라 고유의 풍습을 지키고 발전 시켜 왔다.

하지만, 대륙 전역에 흩어졌다 해도 그들은 모두 '배달국' 백성이었으며 천자를 모시고 '사람(하늘에서 내려온 문명인을 지친함)'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고도의 문화를 누리며 번성하였다.

당시 배달국은 강대한 국력과 높은 문화 수준으로 평화를 누리며 살아왔으나 남방에서 진출한 한족들이 중원으로 이주하면서 대륙의 중앙을 차지하고 세력을 키워가게 되었다.

수천년이 지나면서 배달국과 고조선은 점차 노쇠하고 본열되기 시작하였으며 그 틈을 타 한족들은 고대왕국 고조선을 멸망시키고(한족에 의해 군사적으로 무너진게 아니라 내부 분열로 배신자들이 한족과 내통하여 자멸함) 이후 고대 왕국은 사분 오열하여 흩어져 버리게 된다.

현재 우리가 다른 종족으로 알고있는 대륙의 대부분의 종족은 당시 배달국과 고조선의 일파들이며, 안타까운 사실은 한족들이 원하는 바 역시 저들이 우리와 다른 종족인줄 알기를 바라며, 우리 역시 그에 편승하여 놀아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방 유목민 부족인 '흉노'는 당시 강대한 세력으로 일부는 서쪽으로 진출하여 훈제국을 일으켜 로마를 위협하며 결국 로마가 멸망하는 원인을 제공하게 되며, 일부는 동남쪽으로 내려와 신라와 가야를 일으킨다.
사실, 현재 한국인 대다수는 신라계 후손이라고 볼때 대부분의 한국인은 흉노계열이라 보아야 옳을것이다.

그 이름이 주는 어감때문에 불쾌감을 느끼는 '흉노'하는 명칭은 한족들이 임의로 그렇게 붙인것을 우리가 거부감 었이 사용한것 뿐 저들은 스스로를 '훈'이라 불렀고, 그들의 후손이 세운 나라는 '고리'를 붙여 훈고리(헝가리)라 부른다.

흉노는 전한시대 한무제와의 전쟁에서 패하여 휴도왕의 장남이 인질로 잡혀가게 되고, 이후 그는 한왕의 신임을 받아 부마자리에 오르고 김씨성을 받는다. 그가 바로 전세계 김씨의 조상인 김일제가 된다.

이후 한무제 사후 왕자들과의 세력다툼에서 밀려 각지로 흩어지고 일부는 한반도까지 오게되며 일부는 살아남기 위해 성씨를 왕(王)씨로 바꾸게 된다.

현대의 강단사학자x 들은 자의적으로 역사를 왜곡하여 신라김씨와 흉도의 연관성을 부정하고 있으나, 신라와 흉노의 연관성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일 예로 여러해 전 독일의 TV방송에서는 고대 유럽을 점령했던 훈족의 뿌리를 찾아 동쪽으로 거슬러 왔는데, 그들은 결국 한반도 까지 오게 되고, 한반도에서 거병하여 유럽으로 진출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당시 유럽을 점령한 훈족들은 장거리 원정시 말에 솥을 싣고 다녔는데, 국내의 기마형토기가 훈족들의 것과 일치한다는것이다. 사실, 신라와 흉노는 동일한 계열이며 같은 부족인건 맞지만 훈족은 한반도에서 거병한것이 아니라 대륙에서 이동하여 일부는 서쪽으로 일부는 동남쪽으로 이주한것이다. 다만, 대륙에 그 흔적이 남지 않은것 뿐...

5. 한자는 동이족의 글자다 :

중국의 학자 필장복은《중국인종북래설中國人種北來說》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중국문자가 만들어진 것은 필시 중국 중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 계통은 멀리 추운 북방에서 시작된 것을 계승한 것이다」 -中國文字之制作 必非始于中國中原 而係遠始于寒 的北方.

지나의 서량지徐亮之라는 사학자가 쓴《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기록은 우리의 눈길을 끈다.

「세석기細石器문화를 지닌 부족이 최초로 거주한 곳은 지금의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근처이다. 곧 중국의 전설 가운데 등장하는 염제신농 등의 본래 종족이 있던 곳이다」 -細石器文化部族 最初乃居住 今西伯利亞的貝加爾湖附近他 們乃中國傳說中的炎帝神農氏本族

또한 중국의 학자 필장복은《중국인종북래설中國人種北來說》에서 중국의 고대 문헌, 고고학적 유물, 언어적 특성, 인류학적 특성, 민속·문화적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한 뒤 중국 인종의 시원이 북방의 시베리아 일대와 동북아 쪽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서량지《중국사전사화》 「이전부터 은나라와 주나라에 이르기까지 동이족의 활동 범위는 실로 포괄적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지금의 산동성 전부와 하북성의 발해 연안, 하남성의 서북, 안휘성의 중북부 지역, 호북성의 동쪽, 그리고 요동반도(요녕성)와 조선반도 등 광대한 구역이며, 산동반도(산동성)가 그 중심 지역이다」

중국의 학자 왕동령王桐齡이 저술한《중국민족사中國民族史》의 기록을 보자.

「4천년 전 (…) 현재의 호북성·호남성·강서성 등지를 이미 묘족苗族이 점령하고 있었으며, 중국의 한족漢族이 들어오면서 차츰 이들과 접촉하게 되었다. 이 민족의 나라 이름은 구려九麗이며, 군주는 치우蚩尤이다」

묘족苗族은 오늘날 양자강을 중심으로 한 호북·호남성 등지에 분포되어 있는 소수민족이며, 위의 기록에 따르면 이들도 고대에는 동이족의 한 지류였음을 알 수 있다. 구려九麗는 구려九黎·구이九夷를 말하는 것으로, 이 구이의 군주가 치우蚩尤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고사변古史辯》에서 중국의 학자 양관楊寬은, "현조玄鳥는 은나라 사람과 동이의 조상신이다(玄鳥是殷人東夷的祖先神)."하였고, 또 같은 책 상편에서는, "동이는 은나라 사람과 동족이며, 그 신화 역시 뿌리가 같다(東夷與殷人同族 其神話亦同源)."

《고사변》「동이는 은나라 사람과 동족이며, 그 신화 역시 근원이 같다. 태호太 ·제준帝俊·제곡帝 ·제순帝舜·소호小 , 그리고 설契 등이 같다고 하는 것은 근래의 사람들이 이미 명확히 증명하는 바다」


중국의 학자 노간勞幹 「우리들이 동방 사람들을 동이(東夷)라고 부른다. 이(夷)자와 인(仁)자는 통용된다. 인(仁)자와 인(人)자는 또한 한 근원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에 있어서 인(人)자를 일컫는 것은 그 근원이 동방에서 나왔으며, 만약 동이족이 문화적으로 선진이고, 먼저 '인(人)'을 사용하였다고 하면 후대에 와서 서방에서 기원한 부족들이 이를 빌어 전인류의 명사로 쓴 것이다」

오향청언吾鄕淸彦 「사마천의 '사기'(史記) 25권은 단군 조선이 중원 대륙을 지배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거꾸로 뒤집어 가지고, 마치 중국이 단군 조선을 지배한 것처럼 힘겹게 변조 작업을 해 놓은 것이다」

러시아의 역사학자 유 엠 부찐도 그의 저서《고조선古朝鮮》에서 "한대漢代 이전에 현토와 낙랑 지역에 이르렀던 조선의 영역은 한 번도 중국의 제후국이 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연나라나 주나라에 예속된 적이 없다."며, 기자조선설은 주왕周王이 자신의 지배하에 있지 않은 영토를 마치 통치한 것처럼 꾸민 전형적인 예라고 말하고 있다.

또, "중국의 역사가들은 연나라가 중국의 동북쪽 변방에 있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연나라의 역할을 과장해서 표현해 왔다."며, 당시 국력으로 보아 연나라가 조양에서 양평에 이르는 장성을 쌓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서량지《중국사전사화》▶「중국의 책력법은 동이東夷에서 시작되었다. 책력을 만든 사람은 희화자羲和子이다. 그의 혈통은 은나라, 상나라의 동이족 조상이다. 동이가 달력을 만든 사실은 실로 의문의 여지가 없다」

「역법曆法은 사실 동이東夷가 창시자이며, 소호小  이전에 이미 발명되었다」 -曆法實倉始於東夷 而且小 以前便已發明

중국의 학자 필장복은 자신의 저서《중국인종북래설中國人種北來說》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동방 인종의 오행 관념은 원래 동북아에서 창시된 것을 계승한 것이다」 -東方人種之五行觀念 原係創始于東北亞洲

6. 동이의 이(夷)는 '오랑캐이'가 아니다 :
우리말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벌어지는 병폐가 한 두가지가 아니다.
가장 문제가 뜻과 소리가 혼용되어 잘못된 해석을 하게되며, 소리를 표기할때 원칙이 없이 섞어 쓰다보니 한가지에 대해 다른 해석을 하게 된다는것이다.

대표적으로 우리 고유명사의 한자표기를 들을 수 있는데,아래아자를 사용해야하는 '한님(하느님 : 하늘을 뜻하는게 아니라 크고 높은분을 말함, 물론 크고 높은 하늘 역시 같은 말에서 유래함)'을 '환인'으로 표기한것부터,

우리 고대 부족국가인 '쥬신'을 조선, 혹은 숙신으로 표기하거나, 역시 고대 동이계 부족국가인 '고리'를 고려 혹은 구리로 섞어 쓰는 바람에 고리의 경우 모든 고리족을 다른종족으로 인식하는 문제까지 생기게 되었다.

고대 동이족을 칭하는 구이(九夷)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고려와 같은 말이지만 표기가 다를 뿐이다.
구구려(고구리 : 고씨 고리족), 몽골(멍고리 : 몽족 고리), 헝가리(훈고리 : 훈족 고리), 돌궐(돌고리), 말갈(말가리 : 마(馬) 족 고리)등...
시대와 지역은 달라도 모두 고리족의 후손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뭉쳐 살던 부족들이다.
현대 강단 사학자들은 검증된 문서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모두 무시하고 있다.

하지만, 관심을 갖고 찾아보면 엄청난 왜곡과 자기역사 부풀리기의 제왕인 지나 사서 내부에도 단편적으로 우리에 대한 언급이 있으며 그 내용들을 종합하고 분석해 보면 우리 고대역사의 위대함을 단편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강단사학자x들이 자신들의 입지가 불리해지는것을 피하려 의도적으로 우리역사 깎아내리기를 서슴치 않으며 그것이 공정하고 논리적인 관점이라 왜곡한다는것이다.

전쟁과 피지배 등으로 엄청난 규모의 역사서가 사라지고 불타버린 이때 확실한 기록이 남아있을 수 없다.
하지만, 역사서가 남아있는 다른 나라들 역시 승자에 의해 다시쓰여지고 왜곡된 사서이긴 매일반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저들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이야기가 언급될때는 상당부분 축소 폄하되었을것이나 그 존재 사실 자체는 인정 받아야 한다.

그렇게 축소 폄하된 내용조차 조합하면 우리의 역사는 엄청난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게된다.
그런데, 강단 사학자x들은 그렇게 축소 폄하된 우리에 대한 언급조차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거다.

지나의 한족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중화라 칭하며 자기 주변의 모든 국가들을 오랑캐로 취급하였다.
그리하여 동이, 남만, 북적 등으로 불렀는데 동이의 이(夷)자를 '오랑캐'로 해석하지만, 사실 그 글자 자체는 오랑캐와 아무 관련이 없다.

큰 대(大)자와 활 궁(弓)자를 합친 글자로 고대에 큰 활을 지나고 다니며 활을 잘 쏘았던 우리 종족을 칭한것이며, 오히려 산해경 등지에 나온것처럼 어질고 용맹한 민족성으로 인하여 이(夷)자는 종종 어질인(仁)자와 혼용되어 사용되었고, 사실 '어질다'는 뜻으로 사용되는것이 정확한 뜻이다.

저들이 오랑캐라 해석한다 하여 글자가 오랑캐가 되는게 아니다.
추천8 비추천0
Loading...

댓글목록

Total 1,485건 4 페이지
초고대문명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비추천 날짜
1425 허순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8 2 0 12-14
1424 허순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49 2 0 12-12
1423 허순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16 2 0 12-08
1422 허순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14 2 0 12-06
1421 허순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02 2 0 12-01
1420 지구인인데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99 1 0 11-18
1419
카르타고 댓글+ 1
지구인인데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87 0 0 11-14
1418 지구인인데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7 0 0 11-14
1417 지구인인데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93 0 0 11-08
1416 지구인인데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56 2 0 11-08
1415
터키 댓글+ 5
순수꼬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46 2 0 11-04
1414 지구인인데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8 0 0 11-04
1413 지구인인데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7 1 0 11-04
1412 지구인인데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2 1 0 10-31
1411 지구인인데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85 0 0 10-28
1410 지구인인데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14 1 0 10-24
1409 지구인인데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22 1 0 10-24
1408 지구인인데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4 1 0 10-22
1407 지구인인데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8 0 0 10-22
1406 지구인인데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2 1 0 10-22
게시물 검색

회원로그인

구글 OTP 인증 코드 입력

디바이스에 앱에서 OTP 코드를 아래에 입력합니다.

OTP 를 잃어버렸다면 회원정보 찾기시 해지 되거나,
아래 링크를 클릭하여 이메일 인증으로 해지 할수 있습니다.

OTP 해지하기

론건맨 상위 순위 10

  • 1 사라랜스396,241
  • 2 선상반란302,220
  • 3 eggmoney117,537
  • 4 샤논115,847
  • 5 nabool99,640
  • 6 바야바93,966
  • 7 차카누기92,793
  • 8 기루루87,407
  • 9 뾰족이85,875
  • 10 guderian008384,405

설문조사

론건맨 싸이트가 열리는 체감 속도는 어떤가요.?

설문조사

론건맨이 부활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접속자집계

오늘
1,910
어제
1,912
최대
2,420
전체
14,217,109
론건맨 요원은 31,001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