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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심벨, 사막의 끝에 핀 인류 문명의 금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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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순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댓글 1건 조회 806회 작성일 15-05-25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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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아부심벨 관광은 하루 두 차례로 제한되고 있다. 지난 1997년 룩소르 하트셉수트 신전(神殿)에서 62명의 관광객이 테러집단에 의해서 희생된 사건 이후 아스완, 아부심벨 구간은 지금까지도 관광객이 탄 차량의 앞뒤에서 경찰의 호위를 받아야만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부심벨은 수단과의 국경지역으로 수백㎡나 되는 사막을 거쳐 가야 하기 때문에 테러리스트가 마음만 먹으면 그곳을 오가는 관광객을 표적으로 삼을 수 있다. 새벽 4시와 11시 두 차례 차량들이 출발하고 있다. 아스완에서 아부심벨까지는 280㎞로 대략 3시간 소요된다. 나와 아내는 새벽 3시 호텔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승용차를 타고 두 번의 검문을 받으면서 집결지에 도착했다. 출발시간이 가까워지자 대형버스, 승합차, 승용차 등이 집결하기 시작해 40여 대가 넘게 보였다. 선두차량의 호위 하에 길게 늘어서 사막을 달리는 모습이 장관(壯觀)이다.

시야를 뿌옇게 흐려 놓았던 새벽녘의 안개가 연기처럼 흩어지면서 벌써 동이 트기 시작한다. 잠시 후 사막의 지평선을 가르면서 붉게 물든 동녘하늘을 뚫고 솟구쳐 오르는 장대한 일출을 볼 수 있었다. 새벽에만 볼 수 있는 사막여행의 또 다른 백미(白眉)였다. 사막의 아침은 짧았다. 사막은 단 한 번의 기지개로 태양을 품속으로 받아들였다. 아부심벨 가는 도로변에는 화장실이나 편의시설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용무는 봐야 하니까 나는 중간쯤 가다가 차를 세우고 오줌줄기를 날림으로써 사막과 첫 대면을 했다. 바람이 심하게 불었으나 모래먼지는 날리지 않는다. 승용차가 가끔씩 버스에 추월당하는 이유가 바로 바람 때문에 몸집 큰 버스보다 속력을 더 낼 수 없기 때문임을 알았다. 사막은 누런 황토 빛 바탕에 검게 탄 듯한 봉우리가 점점이 흩어져 있어 신화적 상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공기는 청량하고 시야는 넓어서 상쾌한 기분이 든다.

하이댐 완공으로 생겨난 거대한 사막의 호수

오전 7시20분경 아부심벨에 도착하자 먼저 마주한 것은 아스완 하이댐 완공으로 사막에 거대한 푸른 담수호(淡水湖)가 끝없이 이어지는 장관이었다. 수단 국경까지 이어지는 사막의 호수는 나일강을 끼고 5000년간 이어져 오던 문명의 풍토와 역사를 바꿔놓고 있다고 한다. 거대한 자연을 인위적으로 변화시켜 도전한 대역사(大役事)에 앞으로 신(하늘)은 어떤 인과응보를 내릴지 자못 두려움이 앞선다.

이집트 왕국 3000년 역사상 가장 번영한 시대를 이끌었던 람세스2세는 태양신 아몬(라), 창조신 프타 그리고 자신을 위해 거대한 신전을 건립했다. 이곳 아부심벨에는 람세스2세 신전으로 불리는 아부심벨 대신전(大神殿)과 그가 가장 사랑했던 부인 네페르타리를 위한 신전인 하트로 신전이 나란히 나일강을 바라보며 서 있다. 아부심벨 대신전 앞에는 20m 높이로 우뚝 서 있는 4개의 람세스2세의 거상(巨像)이 있다. 그의 두 다리 사이에는 그의 딸의 상(像)이 발가락을 딛고 미소 짓고 있다. 신전 내부에는 오시리스 신의 모습으로 형상화된 람세스2세의 8개의 입상(立像)이 서 있고 기원전 1275년 시리아의 카데쉬에서 벌어진 히타이트와의 대규모 전투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고통스러워하는 병사들의 표정이나 내뿜는 힘의 열기가 대열주실(大列柱室)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람세스는 자신의 위대한 업적을 신전에 새김으로써 누구도 이곳을 지나 쳐들어올 생각 말라는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웃에 있는 왕비의 신전은 람세스의 그것에 비해 규모가 작고 소담스럽지만 건강미와 세련미가 돋보였다.


- 아부심벨에는 람세스2세 신전으로 불리는 아부심벨 대신전(大神殿)과 그가 가장 사랑했던 부인 네페르타리를 위한 신전이 나란히 나일강을 바라보며 서 있다.


아부심벨 신전, 수몰 막기 위해 통째로 자리 옮겨
우리가 아부심벨 신전에 더 애착이 가는 것은 물속에 잠겨 있어야 할 위대한 인류의 축조물이 지상에 남아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1959년 이집트 정부가 관개수로를 통한 농업혁명을 내세우며 아스완댐을 건설한다고 발표했을 때, 아부심벨도 나일강가에 있는 무수한 신전과 함께 수몰(水沒)될 운명에 처했다. 그러나 유네스코를 중심으로 하는 문명세계는 이 위대한 문화유산을 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인류사회는 막대한 돈을 들여 두 신전을 1000여개 조각으로 나누어, 1967년 9월 드디어 원래의 위치보다 210m 뒤쪽, 63m 위쪽으로 통째로 옮겨놓는 데 성공했다. 이전(移轉)기금을 댄 50개국 중에는 한국도 포함된다. 당시 우리는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하지 못했지만 크리스마스 실(seal)을 판매한 수익금을 보냈다고 한다.

신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잘랐다 이어붙인 자국을 수없이 볼 수 있다. 조각조각 잘린 람세스의 근엄한 얼굴에는 현대인의 무지를 꾸짖는 뼈아픈 충고가 서려 있는 듯하다. 아무튼 아부심벨 이전공사는 인류 역사상 유례(類例)를 찾아볼 수 없는 사건으로, 아부심벨이 고대 이집트의 문화유산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유산임을 세계인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양 신전의 관람을 마치고 소나무 수십 그루가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는 돌벤치에 앉아 멀리 사막 가운데로 파랗게 펼쳐져 있는 아스완댐이 만든 나일호수를 바라보면서 끝없는 상념의 나래를 펼쳤다. 나일강은 저 사막을 가로질러 흘러오는데 나그네의 발길은 이제 아부심벨에서 끝나야 하는가! 여기서 50㎞만 가면 검은 아프리카 왕국 누비아 땅이었던 수단 국경이라는데. 나는 아프리카 내지(內地)로 향하는 사막의 소실점(消失點)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저 신기루가 어른거리는 사막의 바다도 사람이 가면 길이 되고, 그 길은 결국 사람과 해후하고 다시 나그네에게 영감과 상상력과 밝은 시정(詩情)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불현듯 나는 모든 것을 벗어 던지고 저 사막 깊은 곳을 향하여 훨훨 날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새로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하듯이 시간과 공간이 바뀐 낯선 세계의 풍경 속으로 때론 돈키호테처럼, 때론 고독과 절망을 벗삼아 내 안에 숨겨진 낯선 또 하나의 나의 세계, 저 ‘아브락사스(Abraxas)’를 향하여….

문득 눈을 돌려 벤치 앞을 보니 10여 마리의 개들이 떼거리로 몰려와 관광객이 던져준 음식을 받아먹는다. 나한테도 보시(布施)를 바라고 있다. 개들마저도 ‘원달러, 원달러’ 하는 듯이 보였다. 가이드가 나의 사색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는 듯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추가설명을 한다. 이번 가이드는 가장 마음에 들었다. 진솔하기도 하였지만 그는 미리 준비해온 메모지와 사진첩을 보이면서 연대와 중요사건, 숫자 등을 적어 보이기도 하고 중요사항은 제스처 섞어 강조하기도 하는 등으로 성의를 다하여 설명해줘 놓치는 것이 거의 없었다. 헤어질 때 팁을 더 얹어주었다.

두고 떠나기 아쉬운 마음에 몇 번이고 뒤돌아보는 심정으로 아부심벨을 뒤로 하고 11시에 아스완으로 향했다. 오는 도중 잠을 못 잔데다 피로가 겹치고 긴장의 이완으로 앉은 채로 눈을 붙이려 해도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아내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발을 뒷좌석 의자에 올리고 1시간가량 자는 둥 마는 둥 휴식을 취하고 나니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다.
멀리 바다에 푸른 물결이 일렁이고 푸른 산맥이 연이어 있는 풍광이 계속되고 있었다. 가이드가 저것이 바로 신기루(Mirage)라고 했다. 아무리 봐도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듯한 광경이었다. 사막에서 길을 잃고 그곳을 향하여 기진맥진 가다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래 속에 묻혔는가.

아스완 시내로 들어오면서 구(舊)아스완댐(일명 브리티시댐) 위에서 차를 세웠다. 나세르 대통령이 이 댐 바로 상류에 아스완 하이댐을 건설함으로써 이 댐의 역할은 크게 줄었지만 이집트를 식민지로 관리했던 영국인들의 저력을 아직도 느끼기에 충분할 정도로 견고하고 당차보였다. 아스완은 이집트가 끝나고 누비아가 시작되는 지점으로, 많은 유적지와 사연이 산재(散在)해 있다. 아스완의 고대유적인 신전과 카르낙 유적지 및 세계 최고(最古)의 화강석 채석장 등을 차 안에서 상견했다.

- 아부심벨 신전 앞에는 20m 높이로 우뚝 서 있는 4개의 람세스2세의 거상(巨像)이 있다. 두 다리 사이에는 그의 딸의 상(像)이 미소 짓고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나일살인사건 집필한 호텔에 묵어
시내에 당도하자마자 곧바로 나는 오늘 묵기로 한 호텔을 포기하고 올드 카트락트(The Old Catract) 호텔로 옮겼다. 이 호텔은 내가 원래 머물고 싶은 호텔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가 머물면서 영화로도 만들어진 <나일살인사건(Death on the Nile)>을 집필한 곳으로, 역시 그녀가 <오리엔탈 특급살인사건>을 집필한 이스탄불 탁심 지구에 있는 패라팔레스 호텔과 더불어 이번 여정의 주요 탐사포인트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올드 카트락트는 과거 롬멜 원수, 처칠 수상 등이 휴식을 취한 바 있는, 100년이 넘은 이집트를 대표하는 유서 깊은 호텔이다. 내부 정원과 실내 장식, 주변 위치가 최상급이었다. 신관 내에는 최고의 스파시설과 각종 여가시설이 갖춰져 완벽한 휴양지로서 손색이 없었다. 객실 역시 가격에 비해 최고의 안락함과 최상의 전망을 자랑하고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나일강의 정경은 꿈속의, 아니 천국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 아늑함에 빠져들게 한다. 아스완은 나일강의 최고 풍경을 자랑하며 그 중에서도 이곳 올드 카트락트 호텔에서 보는 나일강과 석양의 노을은 으뜸이란다.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이었다.

아내는 어젯밤 열차 안의 충격을 떠올리면서 하루 만에 지옥에서 천국으로 온 경험이라고 흡족해한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이 들면서 결혼 30주년 기념여행이기도 한 이번 여정의 과정에서 어느 정도 체면이 선 것 같기도 했다. 호텔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때우려다가 대신 아내가 준비해온 컵라면에 김치, 마늘장아찌, 볶은 멸치, 고추장 등을 곁들여 호텔 객실에서 맛있게 포식했다. 식사 후 직원의 안내를 받아 애거서 크리스티가 <나일살인사건>을 집필한 방을 찾았다. 구관 2층(1201호실)에 있는 방의 거실, 집필실, 침실 등을 보면서 그녀의 작품 집필의 고뇌와 희열을 느끼려 하였다. 집필 의자에 직접 앉아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녀가 사용했던 방은 현재도 스위트룸으로 손님을 받고 있다. 하루 방값은 7000달러(약 800만원) 정도라고 한다.

1928년 크리스티는 첫 남편과 이혼하고 14세 연하의 옥스퍼드대학 출신의 고고학자와 결혼한다. 그녀는 해마다 남편과 함께 이라크, 시리아, 이집트로 몇 개월씩 탐사여행을 떠났다. 소설로 번 돈을 고고학에 투자했다. 탐사여행은 그녀가 68세였던 1958년까지 계속 되었으며 남편인 맥스 멜로원은 우르, 니네베, 님루드 발굴에 큰 업적을 남겼다. 부부는 금슬이 좋았다. 탐사여행의 추억은 크리스티 소설의 배경으로 활용되었으며, <나일살인사건> 역시 그 여행의 산물이었다. 크리스티는 매우 내성적인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 일화 하나, 1962년 고급호텔에서 개최된 <쥐덫>(1952년 막을 올린 이래 지금까지도 상연되고 있는 그녀가 쓴 희곡) 상연(上演) 10주년 행사에 온 크리스티를 현관안내인이 알아보지 못하고 입장을 막았다. “내가 행사의 주인공이요” 하면 될 것을 그녀는 아무 말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울었다고 한다.

이어 석양이 내리는 나일강가에서 예약해둔 페루카(손으로 노를 저으면서 바람의 힘으로 나가는 작은 돛단배)를 타고 편안한 마음으로 한가하게 아스완 시내를 끼고 흐르는 나일강변을 감상했다. 강 중간지점에서 돌아오는데 바람이 불지 않아 페루카가 움직이지 않는다. 손으로 노를 젓다가 여의치 않아 작은 모터선을 불러 옮겨타고 호텔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객실에 도착하니 두 아들에게서 안부전화가 왔다. 오늘이 어버이날임을 축하드리며 행복하고 건강한 여정이 되라는 말에 가슴이 뿌듯하고 고마웠다. 객실의 테라스에서 나일강의 밤풍경을 바라보면서 담소하다 꿈나라에 빠져 푹 자고 나니 피곤함과 찌뿌둥한 몸 상태가 완전히 풀리고 활력이 찾아왔다. 이집트 여행의 정수이자 생의 보람과 환희를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것이 인생의 참멋과 삶의 희열이 아닐는지!

오늘은 카이로를 거쳐 터키 이스탄불로 간다. 아침 6시55분 카이로행 항공기를 타기 위해 새벽 5시30분 호텔을 출발했다. 호텔에서 맛있는 아침식사를 하면서 좀 더 여유로운 시간을 못 가진 것이 못내 아쉽고 서운했지만 언제 올지 모를 후일을 기약했다. 비행기는 정시에 출발, 아침 8시20분 카이로 신공항에 착륙했다. 카이로 신공항은 넓고 쾌적했으며 그렇게 붐비지도 않았다. 예정했던 이집트 맞춤여행을 주선한 현지여행사 사장이 초대한 아침식사를 취소하고 공항 구내에서 이집트 여행을 정리하는 글을 쓸 시간을 갖기로 하였다. 공항식당에서 샌드위치와 빵으로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고 드넓은 공항을 바라보면서 이 글을 쓰다 보니 벌써 터키항공 탑승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 아부심벨 신전
출처 | 이코노미조선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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