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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웰(Roswell)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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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선장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댓글 4건 조회 636회 작성일 15-11-28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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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웰(Roswell) 사건



UFO사건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건. UFO를 세상에 알리는 기폭제 역할을 하기도 했던 로즈웰 사건. 이 사건이 처음 발표했을 때는 비행접시를 회수하였다고 했다가 국방성과 상부기관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비행접시의 회수는 오보이며 그 정체는 단순한 기상 관측용 기구였다고 정정 발표를 했다. 미국의 모든 신문은 정정한 발표를 사실로 받아들여 다음날 일제히 정정 기사를 실었다. 그러나 어떻게 육군 항공대가 관측용 기구를 비행접시로 잘못 판단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예리하게 파고든 것은 오직 그 지방의 로즈웰 레코드와 워싱턴 포스트 두 신문뿐이었다.

1. 사건 경위

1947년 7월 2일 밤 10시경 뉴멕시코 주의 로즈웰 북방과 그곳에서 서쪽으로 약 200km 지점에 있는 샌어거스틴 평원에 UFO 연구사에 아주 중대한 사건이 벌어졌다. 로즈웰에 사는 댄 윌모트 부부는 9시 50분쯤 현관 앞에 있는 안락의자에 앉아 바람을 쐬고 있었다. 갑자기 거대한 발광체가 동남쪽 하늘에 나타나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놀란 부부는 마당으로 내려가서 이 물체가 북서쪽으로 사라질 때까지 지켜 보았다.

이 시각 로즈웰의 북방 약 50km 지점에서는 심한 폭발음이 들렸다. 원반형 물체가 동남 방면에서 비행해 오다가 무슨 원인에서인지 로즈웰 북방에서 폭발, 기체의 잔해 일부를 지상에 떨어뜨린 다음 서쪽으로 방향을 돌려 가까스로 산악지대를 넘다가 샌어거스틴 평원에서 기체 모두가 추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UFO추락 지점 근처에 있는 올드 조프레스라는 목장의 주인 윌리엄 블레젤 씨는 이른 아침 양을 보살피기 위해 차를 타고 방목장으로 나갔다. 축사에서 11~12km정도 떨어진 지점에 이르렀을 때 기체 잔해가 곳곳에 흩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이 조각들은 무엇인가가 북서 방향으로 날면서 흩어놓은 것으로 길이는 1km, 폭은 100m정도에 달했다. 블레젤 씨는 하루 종일 그 곳을 돌아보고 자세히 살폈다. 부근에 있는 풀이 약간 그을린 모습도 보였다.

다음날 오후 블레젤 씨는 일을 보기 위해 코로나 거리에 나갔다가 친구들에게 전날 본 것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의외로 비행접시를 보았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는 주워온 잔해조각을 가지고 보안관 사무소에 신고하였다. 이 일로 그는 죽을 때까지 큰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 그가 신고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기도 전에 육군 항공대 기지에서 군인들이 나와 목장 주위에 있는 잔해들을 모조리 싣고 가 버렸다(트럭 2대 정도 나왔다고 한다). 그는 감금되어 일주일 동안 로즈웰 기지 내에 있는 감방에 갇혀 엄중한 조사를 받았다.

그가 감금되어 있는 동안 사건 현장은 봉쇄되었고 무장 헌병들이 몰려드는 구경꾼을 통제했다. 육군 항공대가 이틀에 걸쳐 현장을 철저하게 수색하여 남은잔해를 하나도 남김없이 회수해갔다. 통행 금지가 해제되고 현장을 살펴 본 시민의 증언에 따르면 수백 평방미터가 부채꼴 모양으로 파헤쳐져 있었고, 특히 부채 손잡이에 해당하는 부분이 심하게 파헤쳐져 있었다고 한다.

가장 먼저 이 사건을 목격한 블레젤 씨는 196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사건에 대해 단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다.

1947년 7월 3일, 뉴 멕시코 주 소콜로에 살고 있는 미국 토양관리국 토목기사인 예비역 장교 글레디 바네트 씨는 막달레나 부근의 측량 작업에 나가기 위해 시외인 샌어거스틴 평원에 이르렀다. 순간 평원 저쪽에서 번쩍거리는 것이 눈에 띄었다. 차를 멈추고 자세히 살펴보니 뭔가 금속성 물체가 아침 햇살에 반사되고 있었다. 바네트 씨는 호기심에 끌려 그 쪽으로 차를 몰았다. 평탄한 사막지대에서 2km쯤 떨어진 곳에 이르러 그는 그 물체를 발견하였다. 그것은 낡은 스테인리스스틸같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지름 7~8m정도의 원반형 물체였다. 이 때 다른 사람들도 다가와서 이상하다는 듯 물체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들은 텍사스 공과대학의 커리 홀덴 박사가 이끄는 고고학 조사단원으로 그 근방에서 인디언 유적을 발굴, 조사하고 있었다. 그들은 처음에 비행기가 추락한 걸로 알고 달려왔다는 것이다.

그 물체는 분명히 비행장치로 보였으며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산산조각이 나 있었고 안에는 몇 명의 승무원이 그대로 엎어져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인간과 비슷했으나 결코 인간은 아니었다. 머리는 둥글고 키는 작았으며 머리털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두 눈 사이는 이상하리 만큼 많이 떨어져 있었다. 인간에 비해 승무원들은 매우 작았으며 몸체에 비해 머리가 유달리 커 보였다. 그들은 죽은 것 같았으며 추락시 충격으로 튕겨 나온 사람도 있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은 모두 위 아래가 붙은 회색형 일체형 옷이었다. 지퍼나 단추, 벨트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바네트 씨의 눈에는 승무원 모두가 남자로 보였고 여자는 없는 것 같았다.

조금 후에 군인들이 탄 차가 왔다. 그들은 현장을 조사하더니 그 곳에 와 있는 사람들에게 100m이상 떨어질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얼마 후 장교 몇 명이 오더니 그 중 한 사람이 바네트 씨를 비롯한 목격자들에게 다가와 한 사람씩 이름과 주소를 묻고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이 물체의 처리는 육군이 맡게 되었으니 여러분은 속히 이곳에서 떠나시오. 이것은 우리나라의 안전에 관한 비밀사항이므로 여기서 본 것에 대해 일체 발설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바로 국민으로서 지켜야 할 의무입니다. 만약 군사기밀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했을 때 어떤 처벌이 내려진다는 것쯤은 여러분도 잘 아실 것입니다."

이 사건이 의외로 중대하다는 것을 알게 된 바네트 씨 일행은 곧 그 자리에서 떠났으며 그 뒤로 더 이상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2. 목격자의 증언

- 목장 주인인 블레젤씨의 막내 딸 베시 슐라이버의 증언(사건 당시 12세, 1979년 증언)

많은 파편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어요. 종이를 양초에 많이 녹여서 바른 것 같은 물체와 알루미늄 필름과 같은 물질이 떨어져 있고 거기에는 뜻을 알 수 없는 글자 같은 게 씌여져 있었어요. 우리들이 알고 있는 숫자와는 판이하게 달랐지만 정연하게 그려져 있는 것이 꼭 숫자 같았어요. 그리고 다른 쪽에 있는 금속성 파편에는 투명 테이프 같은 것이 붙어 있어 불빛에 비추어 보니 꽃모양이 보였어요. 그것은 꼭 테이프처럼 보였는데 아무리 떼려고 해도 떨어지지 않았어요. 부피는 컸지만 무게는 가벼웠어요. 아버지께서는 보안관 사무소로 갔다가 나중에 군부로 이송되었지요. 그런데 다음날 군인들과 보도진이 몰래 찾아와 이 사건에 대해서 일절 말해서는 안 된다고 명령했어요.

- 블레젤씨의 장남인 빌 블레젤의 증언(1979년 증언)

아버지는 제게 잔해가 떨어져 있는 곳을 알려 주었는데 군인들이 뒤져간 뒤라 남은 건 아무 것도 없었어요. 큰 비가 내린 뒤에 그곳을 자세히 살펴보니 그들이 빠뜨린 파편이 몇 개 묻혀 있더군요. 1년쯤 주워 모았더니 하나의 소장품이 되었어요. 모두가 작은 파편들이었지만 무게는 무척 가벼웠어요.

종류도 여러 가지 인데 나무파편은 발사(balsa) 나무 정도의 무게였고, 색깔은 그보다 훨씬 어두운 빛이었는데 매우 단단했어요. 이것은 흠도 나지 않고 부러지지도 않고, 휘어질 뿐이었어요. 또 금속으로 된 물지 같은 게 있었는데 얼핏 보면 얇은 주석판 같아서 잘못하면 금방 찢어질 것 같은데 아무리 찢어 보려고 해도 찢어지지 않고, 또 아주 가벼웠어요. 이것도 유연성이 뛰어나 주름이 가지 않고 구겨 졌다가도 곧 팽팽하게 펴졌어요. 나로서는 이 물질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종의 플라스틱이면서 성질은 금속 같았어요. 그리고 섬유물질도 있었어요. 명주실 같아 보였는데 성질은 명주실이 아니고 역시 강력한 물질로서 끊으려 해도 끊어지지 않았어요. 철사처럼 보이기도 했구요.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합성물질 같은 느낌이에요. 아버지께서 잔해의 한쪽에 도형 같은 것이 있다고 말씀하신게 기억이 납니다.

그 사건이 있고 2년쯤 뒤인 어느날 밤 코로나로 놀러 갔는데 그 날 내가 너무 떠벌렸던 것 같아요. 함구령이 내려져 있었는데 말입니다. 이 수집품에 대해 얘기를 해버렸던 겁니다. 다음날 로즈웰에서 대위와 사병 세 사람이 목장으로 차를 몰고 왔어요. 대위는 수집품을 보여 달라고 하더군요. 할 수 없이 수집품을 내주었더니 그 물건들은 국가의 안전을 위해 매우 중요한 것들이니 헌납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수집품을 헌납하고 나니 이번에는 그 파편을 주웠던 곳까지 안내하라는 거였어요. 그들은 여기저기를 파보기도 하고 샅샅이 뒤졌으나 파편이 더 이상 나오지 않자 포기하더군요. 그리고는 나더러 더 가진 게 없느냐며 누군가 또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느냐고 묻더군요. 혹시 그런 사람이 있으면 곧 자기에게 연락을 하라고 명령을 하고 돌아갔어요. 물론 그 후로는 단 한 개도 발견하지 못했어요.

- 정보장교 마샬 소령의 증언

문제의 잔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산증인은 사건 당시 로즈웰 기지의 참모장교로서 제8공군 제509비행대대의 정보장관인 제시 마샬 소령이다. 그는 신고를 받은 즉시 블레젤 씨의 목장으로 달려가서 잔해의 대부분을 회수, 그것을 텍사스주 포트워스에 있는 제8공군 지역사령관 로저 M. 레미 장군에게 가지고 간 장본인이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기 조종사 및 전투기 조종사로 복무하며 B-24기를 몰고 468시간의 전투비행을 수행하면서 많은 적기를 격추한 공로로 훈장을 받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그는 제509비행대대에서 원폭실험의 기밀유지에 관여하기도 한 소위 엘리트 군인이었다.

'로즈웰 사건' 직후에 그는 중령으로 진급했으며, 곧이어 소련의 원폭실험에 대한 정보를 입수, 분석하는 임무가 부여돼 트루먼 대통령이 '소련은 드디어 원폭실험에 성공했다'는 성명문을 발표할 때 바로 그 문안을 작성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사건이 있는지 40년이 지난 1989년에 로즈웰 사건 잔해는 관측 기구가 아닌 다른 이상한 물질이었다고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내가 본 건 대량의 잔해였지 하나로 만들어진 기계장치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틀림없이 지상에서 멀리 떨어진 공중에서 폭발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파편들은 길이 약 1,200m, 너비 100m의 기다란 지역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블레젤 씨의 신고를 받고 그의 목장으로 가서 돌아올 때는 두 대의 차가 수거한 잔해들로 꽉 차 있었죠. 거듭 말하지만 그 잔해들은 결코 관측용 기구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당시 공중을 나는 것이라면 모두 다 알고 있었습니다. 어떤 타입의 기상 관측 장치나 레이더 추적장치에 대해서도 모두 알고 있었어요. 그것은 분명히 이것도 저것도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주워 온 건 오직 파편뿐이었습니다. 이것들은 내가 그 때까지 전혀 보지 못한 것들이었어요. 물론 확실한 한 가지 사실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잔해는 여러 가지 것이 뒤섞여 있었는데 크기가 1/2인치부터 3/8인치까지 다양하고 상형문자 같은 기호가 새겨져 있는 것도 있었습니다. 이 물질은 발사 나무 같았는데 매우 가벼워서 나무인데도 나무라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구부러지거나 휘어졌지만 매우 단단해서 불에도 타지 않았어요. 거기에도 상형문자 같은 게 씌여져 있었어요. 또 이상한 다갈색 종이 같은 물질이 있었는데 종이와는 달라서 매우 질기고 찢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이 종이 또한 불을 갖다 대도 타지 않고 그을리지도 않았어요.

나는 공학에 흥미가 있었으므로 그러한 기계가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어디에서도 볼 수가 없었어요. 또 다른 대원이 상당히 큰 금속제로 보이는 상자를 발견했는데 이것도 아주 가벼웠으며 역시 관측기기 같지는 않았습니다 .열어볼 수가 없어서 그냥 다른 잔해들과 함께 섞어 놓았지요.

그 밖에도 얇은 주석판 같은 금속도 있었어요. 담배갑 속에 있는 은박지 같은 것이었는데 나중에 이것이 놀라운 성질을 갖는 물질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기지로 돌아오니 한 부하가 찾아와 아무리 접으려 해도 접어지지가 않고 해머로 두들겨도 끄떡없다고 말하더군요. 그 금속판은 길이가 약 60cm, 너비가 거의 30cm였지요. 실질적으로 무게가 전혀 안 나가는 것이 회수된 물질들의 공통점이었지요. 나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것을 접어보려 했지만 접어지지 않을 뿐아니라 찢을 수도 없었습니다. 약 8kg이나 되는 해머로 쳐보았지만 아무 소용 없었습니다.

이 물질은 위 아래로 구부릴 수는 있었지만 완전히 구부려 접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습니다. 흠을 낼 수도 없었지요. 그 물질이 어떤 것인지 지금까지도 알 수 없어요. 플라스틱 성질을 가지고 있는 금속이라고나 할까요? 우리들은 파편들을 이리 저리 맞춰 보았지만 전체적인 윤곽은 추측할 수가 없었어요. 다만 거대한 물체였으리라 짐작할 뿐이었습니다.

두 대의 차에 잔해를 가득 싣고 로즈웰 기지로 돌아왔을 때 이미 우리들의 추락 비행접시 잔해 회수작전이 언론에 누설되어 있었습니다. 기지의 홍보장교는 호된 질책을 받았다고 합니다만, 다음날 오후 우리는 브랜차드 대령의 명령으로 회수물을 모두 B-29에 싣고 포트워스까지 공수했습니다. 당초의 예정은 내가 라이트 기지까지 운반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카즈웰 기지에 도착하자 그 계획이 취소가 되었어요. 이 때 레미 장군의 엄명이 있었는데 무슨 일이 있더라도 기자들과 이야기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서 나 대신 누군가가 회수물을 라이트 기지까지 운반했지요. 분석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 레미 장군이 황급히 기자들에게 잔해를 공개하고 사진을 찍게 했습니다. 그것들은 가짜 잔해로서 서둘러 바꿔치기한 관측기구의 잔해였습니다. 기자들이 그걸 곧이듣고 열심히 사진을 찍는 동안에 진짜 잔해는 이미 특별기에 실려 라이트 기지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방법을 생각해 낸 사람은 물로 레미 장군 자신이었어요. 그리고 그는 기자들에게 단순한 관측용 기구였으므로 라이트 기지까지 가는 건 취소했다고 변명을 했습니다. 그건 거짓말이었던 것입니다.

3. 비행접시 추락과 회수, 관측기구로 정정 발표

최초의 목격자 브레젤 씨가 로즈웰 기지로 연행되던 7월 8일, 이 기지의 공보담당 장교가 다음과 같은 발표를 했다.

뉴멕시코 주 로즈웰 - 육군 항공대 기지(1947년 7월 8일 발표)
일찍이 소문이 자자하던 '하늘을 나는 비행접시'문제가 어제 비로소 현실로 나타났다. 로즈웰 육군 항공대 기지 주둔의 제8공군 제509폭격대대 정보처가 이곳 목장 주인 한 사람과 보안관 사무소의 협조를 얻어 비행접시의 회수에 성공했다. 이 비행물체는 지난주 로즈웰 부근에 있는 목장에 떨어졌는데 전화설비가 없었기 때문에 보안관 사무소에 연락될 때까지 그곳 목장 주인이 비행접시를 보관했으며 보안관은 다시 제509폭격대대 정보처의 제시 마샬 소령에게 통보했다. 통보를 받은 마샬 소령은 지체없이 필요한 조치를 취해 비행접시는 즉각 목장 주인으로부터 회수되었으며 로즈웰 육군 항공대 기지 당국의 점검을 받은 후 다시 상부기관으로 이관되었다.

이런 중대 발표에 매스컴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뉴욕 타임즈, 워싱턴 포스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등 미국의 유력지가 이 발표문의 전문을 대서특필했으며 AP통신사의 해외 특전으로 런던 타임즈를 비롯하여 유럽과 아시아의 각 신문들이 앞다투어 보도했다. 로즈웰을 비롯한 뉴멕시코주의 모든 라디오 방송국은 정규 방송 프로를 중단하고 이 특종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으며 미국 전역이 이 UFO 추락 사건에 점차 휩싸이게 되었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태는 그날로 급반전했다. 국방성과 상부기관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보도 관제의 막을 내리도록 결정한 것이다. 비행접시의 회수는 오보이며 그 정체는 단순한 기상 관측용 기구였다고 정정 발표를 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거의 모든 신문들은 이 새로운 정보를 사실로 받아들여 다음날 신문에 일제히 정정 기사를 실었다.

그 이튿날 제8공군 사령관 로저 M. 레미 준장은 방송국에 특별 출연하여 생방송으로 비행접시의 잔해는 기상 관측용 기구임이 판명되었으며 모든 것이 사실을 오인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몰려든 기자들을 기자 방으로 불러 들여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잔해를 공개했다. 이 때 기상부의 실무자도 나와 기상 관측용 기구라고 증언함으로써 더 이상 의문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공개된 잔해가 바꿔치기한 잔해이고 레미 장군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본인과 몇 사람 외에는 없었다.

4. 조직적인 사건 은폐

미국 국민의 대부분은 언론의 보도에 의해 제1사건현장만을 알고 있을 뿐 제2추락현장은 잘 알지 못한다. 군당국이 제1추락현장의 사건부터 철저하게 은폐공작을 펴왔기 때문이다. 제2추락현장에서는 외계인의 사체까지 회수했다고 한다. 로즈웰 사건이 그 당시 얼마나 중대시되었는가에 대한 증거는 1979년부터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UFO에 대한 비밀정책에 반대하는 시민의 모임인 CAUS(Citizens Against UFO Secrecy)가 미국 정보 당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 승소하여 얻은 연방수사국(FBI) 관련 해금문서 등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 문서는 당시의 FBI 국장 에드가 후버가 미국 전략공군 사령관에게 보낸 것으로 로즈웰 사건에 대해 직접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FBI, 달라스(47-7-8 6-17-PM), 장관 및 SAC 앞, 신시내티발 긴급
하늘을 나는 비행접시 정보에 관하여 ... (검열 삭제) ... 제8공군사령부로부터 본 지부에 통고가 있었음. 하늘을 나는 비행접시 같은 물체를 오늘 뉴멕시코 주 로즈웰 부근에서 회수한 것임 ... (검열 삭제) ... 재차 통고 있었음. 발견 물체는 레이더 반사기가 달린 고공 기상 관측용 기구와 흡사하나 군당국과 라이트 기지 사이의 전화 교신에 의하면 이 추측은 정확한 것이 아니라고 함. 비행접시와 기구는 검사 및 분석을 위해 특별기로 라이트 기지로 후송중임. 사령부에서는 이 정보제공의 이유를 오늘 NBC, AP가 비행접시의 얘기와 장소를 공표하는데 성공할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라 함 ... (검열 삭제) ... 또 통고 있었음. 분석결과를 신시내티 지부에 통지하도록 라이트 기지에 의뢰할 예정이라 함. 이상. -와일리

뉴멕시코 주 앨버커키에 있는 라디오 방송국 KOAT에 근무하고 있는 텔레타이프 오퍼레이터인 리디어 스레피 양과 로즈웰의 자매 방송국인 KSWS의 경영자 겸 방송기자인 조니 맥보일 씨는 다음과 같은 일을 겪게 된다. 사건이 발생한 후 며칠 뒤인 7월 7일 오후 4시경, 맥보일 씨가 리디어 양에게 급히 전화를 걸어서 흥분된 어조로 특종이니 곧 텔레타이프로 쳐서 ABC의 네트워크 계열에 알리라고 요구했다.

"로즈웰 부근에서 비행접시 추락사건이 있었다. 목장 주인이 트랙터로 그 잔해를 축사 밑에서 끄집어 냈다. 육군이 달려와서 가져가려고 한다. 그 근방 일대는 출입금지령이 내려졌다.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거기에는 난쟁이가 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상한 일은 바로 다음에 일어났다. 리디어 양은 맥보일 기자의 얘기에 너무나 당황했지만 수화기를 어깨에 끼고 맥보일 기자의 얘기를 계속 들으며 타이핑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맥보일 기자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텔레타이프가 수신 대신 전문을 받아치기 시작했다. 송신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그 전문은 매우 짧은 것이었다.

"앨버커키에 경고한다. 송신하지 말라! 거듭 경고한다. 이 통보를 송신하지 말라. 통신을 즉각 중지하라."

리디어 양은 깜짝 놀라 전화통에 매달려 맥보일 가지에게 그 전문을 전했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활기있던 맥보일 기자의 목소리가 갑자기 딴판으로 기가 죽어서 "이 얘기는 없었던 걸로 합시다. 당신이나 나는 모두 아무 것도 모릅니다. 누구에게도 이런 내용을 얘기해서는 안됩니다."하고는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제1현장사건의 오보 책임자인 하우트 중위와 브랜차드 대령은 사건 이후 승진을 했다. 만약에 비행접시 잔해라고 발표한 보도문이 잘못되었다면 군당국이 당연히 그 책임자와 당사자를 처벌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오보로 책임을 추궁당한 사람은 없다. 오보 소동의 직접적인 장본인인 하우트 중위는 전역 지원서를 제출했는데도 대위로 진급했고, 브랜차드 대령 역시 나중에 중장까지 진급했다. 최초 UFO 잔해 수거 책임자인 마샬 소령도 뒤에 대령까지 진급하게 된다. 그리고 당시 공보장교 월터 G. 하우트 씨는 현재 로즈웰에서 국제 UFO 박물관을 운영하면서 그 때 그 사건이 사실이었음을 알리고 있다.

1989년 미국의 LBS방송국은 워싱턴과 모스크바를 위성으로 연결, 저명한 UFO연구가와 UFO목격자 등을 출연시켜 그 동안 은폐되어 왔던 UFO 사건의 진상을 재조명했는데, 당시 이 실황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다. 이 날 당시 프로젝트 '블루 북(미국 UFO 조사기구)'의 담당자였던 예비역 대령 윌리엄 콜맨 씨와 밥 프레드 씨 등도 나와 로즈웰 사건을 증언했고, 특히 최초 목격자였던 목장 주인 블레젤 씨의 아들(당시 12세)인 빌 블레젤 박사도 나와 당시를 생생하게 회상했는데 그때 자신이 본 것은 결코 기상관측기구의 잔해가 아니라고 했다.

현재 살아있는 생존자들도 "난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고 있다. 이런 내 행복에 찬물을 끼얹지 말아 달라. 그 사건에 대해서는 일절 말할 수 없다. 다시는 그런 일로 나를 찾지 말아 달라"며 대부분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로즈웰 UFO 추락사건 뒤에 벌어진 위협적이고도 끈질긴 은폐공작은 가장 신속하고 조직적이고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5. 외계인 해부 필름

지난 95년 10월, 미국의 폭스TV가 방송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외계인 사체 해부" 비디오가 사실은 영국의 사기꾼들이 조작해 만든 가짜라는 사실이 밝혀져 파문이 일고 있다. 이같은 사실을 폭로한 것은 다름 아닌 폭스TV. 비디오를 처음 방영했던 방송국 스스로가 의문점을 추적해 진실을 밝혀낸 것이다. 이 비디오는 두 명의 미군 군의관이 수술대에 누워있는 우주인의 사체를 해부하는 장면이 녹화되어 있다. 1947년 로즈웰 사건 당시 추락한 UFO의 우주인을 미국 정부의 감시하에 검시, 해부하던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뉴멕시코의 사막지대에 있는 로즈웰에 47년 UFO가 추락하여 우주인의 사체가 발견되었다고 전해진 로즈웰 사건은 UFO팬들을 매료시켰다. 사건의 내용을 미국 정부가 숨기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당국이 그것을 부정하고 나서는 등 본격적인 UFO논쟁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그런 가운데 폭스TV가 "이것이 로즈웰 사건의 외계인의 사체"라며 비디오를 방영하자 당시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커다란 센세이션을 일으켰었다. 이번에 이 비디오테이프가 완전히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을 폭로한 것은 일류 텔레비전 프로듀서인 로버트 키비어트. 그는 "진실을 밝혀내는데는 몇 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그 테이프는 94년 영국의 한 실업가가 가지고 온 것이었다. 그 실업가는 테이프를 군부대의 카메라맨으로부터 10만달러를 주고 구입했다고 말했었다"라며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테이프 안에는 검시를 하고 있는 의사의 얼굴이 나왔지만 화질이 나빠서 신원을 파악할 수는 없었다. 그 후 그 실업가라는 사람은 UFO추락의 잔해를 촬영했다는 또 다른 테이프와 또 다른 우주인의 시체해부장면이 녹화된 테이프를 가지고 왔었다. 그 테이프 역시 하얀 수술용 커튼이 드리워져 있어서 의사의 얼굴을 알아보기는 불가능했지만 폭스 TV는 거액을 지불하고 테이프를 사들인 후 곧바로 TV에 방영했다.

18분짜리와 5분짜리인 두 편의 필름에서 의사들이 사용한 기구들은 40년대에 사용하던 기구들이었다. 그리고 필름의 제조사인 코닥사에 감정을 의뢰한 결과 필름의 제작시기는 1947년 또는 1967년인 것으로 밝혀져 필름의 신뢰도를 높이는 듯 했다. 하지만 생산년도일 뿐 녹화된 연도는 확인할 수 없었다.

방송이 나간 후 많은 전문가들로부터 의문의 전화가 쇄도했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직감한 키비어트 프로듀서는 곧 조사에 착수했다. 미 항공우주국이 우주에서 촬영한 사진의 화질을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컴퓨터 처리 방법을 통해 첫번째 비디오에 등장하는 두 사람의 의사 중 한 사람의 신원을 밝혀낼 수 있었다. 그 사람은 런던소재의 한 제작회사에서 근무하던 21세의 남성이었다. 그는 94년에 알게 된 영국인 실업가와 우주인 해부조작극을 만들기로 합의를 했다고 실토를 했다. 그 실업가는 정교한 해부비디오를 만들기 위해 다른 회사와도 계약을 맺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모든 비용은 부유한 독일 투자가가 제공했으며 가담자들은 이 기상천외한 비디오로 거액을 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결국 95년 전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던 우주인 해부 비디오는 UFO에 대한 인간의 끊이지 않는 호기심과 흥미를 이용한 몇몇 사람들의 사기극이었던 것이다.

6. 로즈웰 사건의 결론

UFO 단일 사건으로는 최대의 관심을 끌고 있으며 가장 많은 자료들이 보존되어 있는 사건이 바로 로즈웰 사건이다. 로즈웰 사건에 관한 자료만으로도 책 한 권은 충분히 쓸 수 있다. 사실 미국 정부가 사건을 사실로 인정하지만 않았지 대부분의 사람은 이 사건을 실제 있었던 사건으로 보고 있다. 미국 정부의 조직적이고도 신속한 은폐정책의 결과 사건의 진상은 어둠 속에 오랫동안 묻혀져 왔다. 이 사건이 누군가의 개입으로 묵살되지 않고 바로 공개되었더라면 우리 지구의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참고 자료 : 충격 UFO 보고서 (1996년, 허영식 저, 제삼기획, 3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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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베틀이장님의 댓글

베틀이장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로즈웰 사건의 미스터리는 봐도봐도 항상 흥분이 됩니다
뭐...믿을 사람은 모두 믿고있는 사실중 하나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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