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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용 이전에도 지동설은 있었다(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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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라스푸틴1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81회 작성일 04-12-22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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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제시되었던 우주론 중에서 가장 세련되고 정합적인 것을 들라면 단연 김석문(1658~1735)의 우주론을 들 수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이름이다. 홍대용과 정약용, 최한기 등 실학자들의 이름은 들어봤어도 김석문이란 이름은 매우 낯설 것이다. 김석문은 홍대용 이전에 지동설을 담은 우주론을 펼쳤던 유학자였다.


우리들은 흔히 홍대용이 동양에서는 처음으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는 별개로 독창적으로 지동설을 주장했다고 알고 있다. 과거에 학자들 사이에서는 그러한 홍대용의 독창적 사고가 어떻게 가능했는가에 대해서 논쟁이 붙을 정도였다. 그러나 지동설 이론을 포함하는 김석문의 우주론을 살펴보면 홍대용의 지동설은 아류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김석문은 그의 우주론을 그림으로 그려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우주도 그림만 보아도 김석문이 제시한 대강의 우주 구조를 알 수 있다. 전체 우주의 구조는 당시 유럽에서 정설로 여겨지던 티코 브라헤의 구조를 그대로 수용했음을 알 수 있다. 즉 우주의 중심에 지구가 위치해 있고, 그 주위를 달과 태양이 돌지만, 다른 행성들은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 운동을 하는 구조였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이 가설의 형태로 제시된 이후 지구중심의 구조를 유지하면서 코페르니쿠스 가설의 수학적 효과를 살린 과도기적 우주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석문의 우주론은 이와 같이 티코 브라헤의 우주론을 수용했으면서도, 그것과는 달랐다. 즉 우주의 중심에 위치한 지구에 운동을 부여한 점에서 매우 획기적이었던 것이다. 그동안 홍대용에게 주목했던 눈을 김석문에게 돌린다면 바로 이와 같이 정지해있던 지구가 운동을 하도록 한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필자에게 김석문의 우주론이 더욱 흥미로운 것은 지동설을 주창한 점뿐 아니라, 그러한 지구의 운동이 가능하게 했던 원리였다. 사실 과학적 지식이 기술과 다르다면 자연 현상의 원리를 논리적으로 규명하는 점에 있을 것이다.


김석문이 주장하는 우주의 탄생과 지구 운동의 원리는 이렇다. 태초에 태극(太極)이 있었다. 이 태극천이 우주도에서 보듯이 맨 바깥에 위치한 하늘이다. 이 태극천 안에서 미동하는 태허천이 생겨나 태극천 안에서 아주 느리게 회전운동을 하게 된다. 다시 태허천 안에서 그보다 약간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항성천이 생겨나고, 계속해서 토성천, 목성천 등이 생겨나고 결국 우주의 중심 가까운 곳에서 달이 생겨나 지구 주위를 빠르게 회전한다. 이러한 우주 탄생의 과정에서 맨 마지막으로 생겨난 것이 바로 지구이다. 그것도 천체들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회전운동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태초의 상태인 태극천에서 처음으로 태허천이 생겨나는 원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성리학자들이 중요하게 여기던 ‘태극도설’에 나오는 우주 생성의 원리였다. 결국 모든 천체들의 생성은 물론이고 지구가 생성되고 운동하는 원리가 태극의 원리였던 것이다. 그렇게 생겨난 우주가 바로 우주도에서 그리는 우주였다.


우리들은 실학자들이 지구설이나 지동설을 수용했다고 하면 의례 전통과학을 부정하고 서양과학을 받아들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조선 후기의 유학자들은 지구설과 지동설을 서양인들과는 다른, 우리의 전통적인 인식체계로 이해했다.


〈문중양박사·한국정신문화연구원 연구교수(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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