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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운석탐사]과학자·산악인·작가 7인의 드림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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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광석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21회 작성일 07-02-11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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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남극 운석탐사대’는 6명으로 구성됐다. 영하 30도를 밑도는 극한지역이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했다. 과학자 3명, ‘스키 산악인’ 2명, 탐사전문작가 1명 등으로 구성된 배경이다. 과학자 3명은 한국해양연구원 극지연구소 이종익 박사(42)와 서울대 최변각 교수(42·지구과학교육), 김옥주씨(30·서울대 석사과정). 이번 탐사를 가장 먼저 제의한 최교수는 운석 연구자료 수집과 연구계획 수립을 담당했다. 탐사대장인 이박사는 15년간 ‘세종기지’를 드나든 남극 전문가이다. 유일한 여성 탐사대원인 김옥주씨는 각종 준비작업과 탐사 장비 선정, 구입 등을 맡았다.
사진#01
불어닥치는 블리자드 속에서 장비를 챙기는 운석탐사대원들의 모습.
‘스키 산악인’ 유한규(51·대한산악연맹 산악스키위원회장)·장남택(38·강원도산악연맹 이사)씨는 탐사에 자원한 경우. 두 사람은 이번 탐사에서 텐트 설치 등 극한지역 숙박과 눈을 녹여 식수 만들기, 기상과 이동거리 점검 등 중요한 역할을 했다. 탐사전문작가 박종우씨(48·인디비전 PD)는 비디오·사진 촬영과 기록을 담당했다. 남극 현지 사정에 밝은 영국인 사이먼 개로드(43)가 칠레에서 합류해 설상 차량인 ‘스키두’를 몰았다.



[남극 운석탐사]철수 3시간전 “운석이다” 극적발견
우리나라 최초로 남극대륙 운석탐사에 나선 과학자들이 지난달 28일 남극에서 운석 5개를 발견했다. 세계에서 다섯번째다. 체감온도 영하 30도를 밑도는 극한 환경에서 3주간의 탐사작업 끝에 탐사 마지막 날 운석을 발견했다.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가 파견한 제1차 남극대륙 운석탐사대의 극적인 탐사과정을 서울대 최변각 교수의 수기를 통해 재구성한다.

사진#02
설상 차량인 ‘스키두’를 타고 운석을 찾고 있는 대한민국 운석탐사대원들.
#한국 과학자, 남극에 발을 딛다
대한민국의 독자적 남극 운석 탐사라는 내 오랜 꿈이 현실로 바뀐 것은 지난해 초. 우리로서는 최초이지만 일본, 미국, 이탈리아, 중국은 이미 탐사를 했다. 극지연구소 이종익 박사와 의기투합해 한국 최초의 남극대륙 운석 탐사를 추진키로 한 것이다.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탐사팀을 꾸리고, 산악훈련을 받는 동안 1년여가 흘렀다. 드디어 부푼 꿈을 안고 칠레 푼타 아레나스에 도착한 것은 2006년 12월28일. 푼타 아레나스는 지구상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철도역이 있는 곳이자 남극으로 가는 사람들의 전초기지다. 그 곳에서 남극탐사 지원회사 ‘ALE’가 제공하는 비행기를 타고 서남극의 패트리엇힐로 이동할 예정이다.

남극은 한국 과학자의 첫 ‘침입’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패트리엇힐에 태풍급 바람이 닥치는 바람에 22번이나 항공기 출발이 지연됐다. 연말이 가고 해가 바뀌어도 강풍은 멈출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이러다가 운석은커녕 남극도 보지 못하고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운석을 향한 나의 열망이 남극의 바람을 잠재운 것일까. 2007년 1월7일 밤 11시(현지시간) 우리는 대형 수송기 ‘일류신’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3000㎞의 여행 끝에 남극의 빙하를 밟을 수 있었다.

#운석을 찾아서

패트리엇힐에서 맞이하는 세번째 새벽. 탐사대는 ‘트윈 오토’라 불리는 소형 경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발 아래로 멀리 남극의 빙하가 빠르게 지나간다. 남위 82도까지 250㎞를 비행한 뒤 우리는 첫 탐사 지역인 마틴힐 앞 설원에 도착했다. 드넓은 남극의 설원에는 반경 200㎞ 내에 오직 우리 7명의 탐사대만 있을 뿐이다. ‘스키두(Ski-Doo)’라 불리는 소형 설상차를 타고 내쉬힐, 피릿힐을 거쳐 다시 패트리엇힐로 돌아오면서 운석을 찾는 2주간의 외로운 행군이 시작된 것이다.

사진#03
눈보라를 동반한 강한 남극의 바람 ‘블리자드’가 텐트의 통풍구를 타고 들어온다. 아침이면 텐트 안에 눈이 하얗게 쌓여 있다. 체감온도 영하 30도 이하인 추위와 시속 60㎞를 넘나드는 바람과 싸우면서 블루 아이스 위를 찾아 헤매기를 2주. 몸과 마음만 지쳤을 뿐 소득은 없었다. 절망감이 무겁게 대원들의 가슴을 짓누르던 2007년 1월22일 아침 ALE가 새 제안을 해왔다. 티엘산맥 왕복항공편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판에 ‘굵은 동앗줄’이 내려온 것이다. 서둘러 패트리엇힐로 돌아왔지만 다시 한 번 자연의 심술을 맞아야 했다. 티엘산맥에 시속 80㎞의 강풍이 불어 비행기 착륙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엉터리 탐사대에서 드림팀으로

바람이 잦아든 것은 당초 칠레로 철수하기로 예정된 1월27일을 하루 넘긴 28일. 오전 10시 패트리엇힐을 이륙한 트윈 오토는 2시간30분을 날아 남위 85도에 위치한 티엘산맥 블루 아이스 위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주어진 것은 단 6시간. 하지만 첫 2시간 동안 우리는 또다시 절망만을 확인했다. 얼어붙은 샌드위치로 점심을 대신하는 동안 탐사대원들은 굳어진 얼굴로 단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다.

오후 3시 우리는 스키 두에 연결한 썰매를 타고 새로운 장소로 이동했다. 2~3분쯤 되었을까. 스키두를 몰던 영국인 안내원 사이먼이 갑자기 방향을 바꿨다. 순간 모든 대원들의 눈에 돌 하나가 들어왔다. 돌 앞까지 기어간 나는 그만 그 자리에 벌렁 드러눕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돌을 다시 살펴보기 시작한 내게 박종우 대원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운석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런데도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무려 3주간 찾아 헤맨 운석이 드디어 눈 앞에 있다는 사실이 도저히 현실같지 않았다. 이종익 탐사대장은 돌아서서 눈물을 훔쳤다. 차가운 남극의 블루 아이스에 포근한 봄바람이 불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내가 첫 운석의 포장을 채 마치기 전 200m쯤 떨어진 곳에서 유한규 대원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번쩍 들어올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두번째 운석이 발견된 것이다. 이후 저녁 7시 트윈 오토에 몸을 싣기 전까지 우리는 3개의 운석을 더 발견할 수 있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 한 모금씩 나눠 마신 맥주는 생애 최고의 축하주가 되었다. 밤 10시 패트리엇힐의 활주로에는 트윈 오토의 소음을 듣고 달려온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엉터리 탐사대’에서 ‘패트리엇힐의 영웅’으로 우리의 위상이 바뀐 것이다.

1월29일 새벽 1시 우리는 칠레행 수송기에 몸을 싣고 귀환길에 올랐다. 비행기 아래쪽 가장 추운 곳에는 5개의 남극 운석이 아이스박스에 담겨 우리와 함께 가고 있다. 좀더 준비과정이 치밀하고 탐사경비가 충분했다면 더 많은 운석을 찾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첫 단추를 제대로 꿰었다는 기쁨과 마치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이 극적으로 마지막 날 마지막 순간에 운석을 찾은 흥분이 탐사대원들의 검게 탄 얼굴 위에 그득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탐사여행을 함께한 최고의 대원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최변각 서울대 지구과학교육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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