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의 신비…한국과학자가 풀었다 > 행 성

태양보다 큰 별이 죽을 때 만들어지는 블랙홀은 빛마저 빨려 들어가는 ‘우주의 무덤’이다. 그러나 3년 전 블랙홀 주위에서 빅 뱅 이후 가장 큰 폭발인 ‘극초신성’이 처음 관측돼 천문학계가 깜짝 놀랐다. 그전까지 과학자들은 블랙홀 주변에서 이런 큰 폭발이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비밀을 한국 과학자가 밝혀냈다.》

서울대의 이창환교수(물리학과·사진)는 23일 “자전 주기가 반나절 정도로 아주 짧고 무거운 별이 블랙홀이 되면 주위에서 극초신성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말했다.

이 연구는 국제 학술지인 미국천문학회지(Astrophysical Journal)에 발표됐다.

별이 연료를 다 태워 죽게 되면 무게에 따라 백색왜성, 중성자별, 블랙홀 등이 된다. 태양과 비슷하거나 8배 정도로 무거운 별은 백색왜성, 8∼20배로 무거운 별은 중성자별, 20배 이상 되는 별은 블랙홀이 된다.

별은 내부에서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 빛을 낸다. 핵융합이 일어날수록 별의 중심부에 있는 수소는 점점 무거운 원소가 되고 핵융합 반응도 줄어든다. 마침내 핵융합 반응이 멈추면 자신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별의 중심부가 압축돼 블랙홀이 된다.

우리 은하 안에서 블랙홀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블랙홀과 다른 별이 짝궁별(쌍성)이 돼 서로 공전하는 경우를 찾는 것이다.

다른 별에서 나온 물질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면서 강한 X선을 내뿜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X선 망원경을 우주에 띄워 블랙홀을 찾는다.

1999년 유럽의 과학자들은 이런 방법으로 전갈자리의 ‘노바스코’ 블랙홀에서 초신성 폭발보다 10배나 큰 극초신성이 폭발했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1000조개가 30조년 동안 매일같이 터진 양에 해당하는 대폭발이다. 많은 과학자들의 연구에도 그 원인은 그동안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이 교수는 “짝궁별 때문에 블랙홀의 자전 주기가 아주 빨라지면 별의 바깥 물질이 바로 빨려 들어가지 못하고 외부에 남아 있다가 블랙홀에서 나온 회전 에너지와 충돌해 극초신성으로 폭발한다”고 설명했다.

자전 주기가 12시간인 큰 별이 나이를 먹어 아주 조그만 블랙홀이 되면 자전 속도가 1초에 1000∼1만번까지 빨라진다. 별의 바깥쪽 물질은 워낙 블랙홀의 자전 속도가 빨라 바로 빨려 가지 않고 회오리바람을 타듯 빙글빙글 돌며 천천히 빨려 들어간다. 물질이 다 빨려 들어가기도 전에 블랙홀의 엄청난 회전에너지와 자기장이 방아쇠를 당겨 블랙홀 주변의 물질들을 폭발시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으로 이를 확인했다.

이 교수는 “외국 관측팀도 비슷한 자전 주기와 질량 조건을 갖춘 또 다른 블랙홀을 조사한 결과 극초신성 폭발의 흔적이 나타난 것을 발견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제리 브라운 미국 뉴욕주립대 교수와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한스 베테 박사와 함께 이번 연구 결과를 포함해 블랙홀의 형성과 진화에 관한 이론을 올해 말 책으로 펴낼 계획이다.

▼재미있는 블랙홀▼

블랙홀은 크게 3가지다.

대부분의 은하 중심에는 블랙홀이 있다. 은하가 클수록 블랙홀도 크다. 우리 은하의 블랙홀은 무게가 태양의 250만배이지만, 거대한 은하의 블랙홀은 태양의 1억 배가 넘는다.

은하 중심의 블랙홀은 너무 커서 별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성단이 합쳐졌거나 블랙홀이 블랙홀을 잡아먹었다는 가설이 있지만 아직 밝혀진 것은 없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

이 교수가 연구한 블랙홀을 비롯해 지금까지 관측된 많은 블랙홀은 별의 시체다. 주로 짝궁별을 이룰 경우에만 발견된다.

이밖에 과학자들은 원자보다 작은 ‘초미니 블랙홀’이 있다는 가설을 주장한다. 초미니 블랙홀은 입자가 서로 충돌해 만들어지는데 만들어지자마자 곧바로 사라진다.

블랙홀의 무게는 거의 무한대다. 지구를 블랙홀로 만든다면 각설탕 속에 지구가 들어간다. 그러나 거대한 은하의 중심 블랙홀은 밀도가 물과 비슷하다. 블랙홀의 중심이 아니라 빛이 빠져나가지 못하는 공간을 모두 포함해서다. 이런 블랙홀은 태양계 만하다.

블랙홀 안에서는 뉴턴 법칙도 상대성 이론도 통하지 않는다. 우리와는 전혀 다른 자연 법칙이 지배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블랙홀이 더 이상 우주의 무덤이 아니라 우주의 에너지 탱크라고 말한다. 블랙홀에서 때로 거대한 에너지가 분출하기 때문이다.


출처 : 동아일보

추천1 비추천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