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나들이 구명시식'중 영혼결혼식

【서울=뉴시스】

◇차길진의 마이웨이 <108>

영혼결혼식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 어쩌다 살아서 만나지 못하고 죽어서 만나 부부의 연을 맺게 된 영가들. 누구보다 그들의 인연을 잘 알기에 새롭게 탄생하는 신혼 영가부부를 보면 한없이 뿌듯하고 행복하다. 그러다보니 구명시식 이상으로 영혼결혼식도 많이 올리게 됐다.

법당에는 영혼결혼식을 위해 특별히 준비해 놓은 것이 있다. 바로 한복연구가가 직접 만든 신랑·신부 영가의 예복이다. 종이로 만든 신부의 원삼과 신랑의 사모관대로 지금껏 많은 신랑·신부 영가들이 결혼식을 올렸다. 신랑·신부 영가가 이 옷을 입고 영혼결혼식을 올리는 모습은 정말이지 너무나 아름답다.

의례적인 간단한 예물도 있다. 또 결혼식이니 만큼 신부가 쓰는 족두리, 신랑영가와 신부영가가 부부가 됐음을 알려주는 청실홍실까지 준비했다. 불을 끄고 결혼식을 올리는 것과 기념촬영이 없다는 것만 빼고는 여느 결혼식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만약 영가가 사진에 찍힌다면 기념촬영 순서가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영혼결혼식도 분명 결혼식이다. 영가가 보이지 않는다고 함부로 결혼식을 올려주면 큰 화를 당한다. 영가도 산 사람과 똑같아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결혼은 하고 싶어 하지 않는데 억지로 결혼을 시킨다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리 없다. 이럴 경우 산 사람처럼 영혼도 이혼을 시켜줘야 한다.

한번은 죽은 딸의 영혼결혼식을 올려준 뒤 잠자리가 뒤숭숭해진 중년 부인이 찾아왔다. 아무래도 딸의 결혼생활이 평탄하지 않은 모양이라며 걱정했다. 부인 얘기가 누군가 빨리 딸을 위해 영혼결혼식을 올리지 않으면 집에 화가 닥칠 것이라고 해서 서둘러 신랑감을 찾아 결혼식을 올려주었다고 했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구명시식으로 딸 영가를 초혼했더니 영가는 다짜고짜 화를 내며 이혼시켜달라고 요구했다. 대학을 나온 딸 영가는 다소 공주병 증세가 있는 도도한 여성이었다. 반면, 어머니가 맺어 준 남편 영가는 딸과 학력도 차이가 날 뿐 아니라 딸이 별로 좋아하는 외모도 아니었다. 다만 죽은 시기와 나이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맺어진 커플이었다.

이러다보니 영계에서도 둘은 매일 싸웠고 이혼한 부부와 마찬가지로 만나지도 않았다. 결국 나는 남편과 아내, 두 영가를 불러 이혼을 선언하고 영계에 고함으로써 이혼시켜줬지만 왠지 기분이 찜찜했다. 본의 아니게 영혼의 가정법원 역할을 해준 셈이었다. 이렇듯 영혼부부의 이혼이 늘다보니 나도 영혼결혼식을 올리는 방법을 바꾸게 된다.

체육학과에서 태권도를 전공하던 K군 영가와 여대생 L양 영가는 구명시식으로 만났다. 둘은 각각 다른 이유로 일찍 생을 마감해 가족들이 구명시식을 올려줬는데 이것이 두 사람을 잇는 가교 역할을 했고 이후 계속 부모의 꿈에 나타나 영혼결혼식을 올려달라고 부탁했다. 구명시식으로 만나 영계에서 연애해 부부가 된 1호 커플이었다.

이후 나는 구명시식으로 만난 영가들이 두 사람이 좋다고 하면 부모들 허락 없이 결혼을 시켜주고 있다. 내가 부모들에게 영가가 결혼식을 원한다고 전해주면 꼭 뭔가를 바라는 것처럼 들릴까봐 그냥 내가 알아서 해줬는데 그러면 어떻게 알았는지 부모들이 귀신처럼 법당으로 찾아온다. 자식들이 꿈에 나타나 결혼식을 올렸다고 알리는 모양이다.

언뜻 영혼결혼식은 죽은 자만을 위한 의식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영혼결혼식은 누구보다 산자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또 그들을 맺어주면 내 마음도 편해지는 것을 느낀다. 연극 ‘구명시식’의 하이라이트도 역시 영혼결혼식 장면이다. 연극 중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지만 실제 영혼결혼식은 그보다 더 환상적이다. 내가 맺어준 영가부부들이 내세에도 부부의 연으로 다시 맺어지길 바라며 오늘도 또 다른 영혼 부부의 탄생을 준비한다.

후암미래연구소 대표 www.hoo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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