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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링의 형태와 종류에 따른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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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인드뱅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댓글 1건 조회 1,269회 작성일 12-01-15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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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채널링에 대한 형태와 종류의 분석
필명: 유전 (마인드뱅크)
2011.06.06 15:03:37


도교에서 장자에 대한 다음과 같은 내용을 한번 일독한 이후에, 불교와 도교와 "신과 나눈 이야기" 등에서 이야기가 되고 있는 채널링의 내용이나 형태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 그중 방편에 대한 설명이 많은 불교의 용어를 대표적으로 먼저 사용하면서 그것과 비슷하지만 다른 방편에 해당되는 비교를 하겠습니다.

--- 펌 ---

<莊子 나면 죽고 죽으면 태어난다> 송지영. 신원문화사. 1996
장자는 꿈 이야기를 즐겨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눈을 돌려 꿈의 세계로 도피하려고
한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의 꿈 이야기 속에는 잠을 깬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냉철한 통찰이 담겨져 있어 인간의 지와 사물과의 관계를 추론하고 있다.
'지적인 인식은 대상을 얻은 다음에 비로소 확정되는 것이나, 대상이 되는 사물 자
체는 끊임없는 변화 속에 있다.'(대종사)
장자는 현상계의 본질을 변화 가운데서 추구한다. 만물은 한순간도 그칠 사이 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면서 변화한다. 장자는 모든 변화의 근원인 동시에 일체의 변화
를 지배하는 근본 원리를 상정하여 '도'라고 이름 붙였다.
'도는.... 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으로, 마음으로 느껴 얻을 수는 있어도 감
각으로 확인할 수는 없다. 다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것으로, 천지 개
벽에 앞서 존재했다. 귀신도 상제도 하늘도 땅도 그 연원은 모두 도이다.'(대종사)
도는 사물을 떠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사물에 내재하는 것이다. 이 도를
가지고 사물을 보면 일체의 사물에 구별이 없어진다. 도는 원래 무한정한 것이므로 사
물의 구별도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자연의 진정한 모습이다.
그러나 인간의 지는 무한정한 자연을 한정지으려 한다. 사물을 대비하고 분별하여
질서를 세우려 하는 것이 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인간은 어떻게 사물을 분별해야 할
까?
'모든 존재는 저것과 이것으로 구분되나, 저것 쪽에서 말한다면 이것은 저것이고 저
것은 이것이 된다. 즉 저것이라는 개념은 이것이라는 개념과의 대비에서 비로소 성립
되며, 이것이란 개념은 저것이란 개념과의 대비에서 비로소 성립된다.....'(제물론)
인간의 판단은 항상 상대적인 것이며, 절대적인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도 인간
은 지에 의지해 자기의 판단만이 옳다고 서로 맞서 싸운다. 이것이 지적 동물인 인간
의 비극의 뿌리이다. 그러나 인간이 지를 버리지 않는 한 이 비극의 뿌리는 없어지지
않는다. 인간은 지의 한계를 자각하고 지를 넘어서야 한다. 그러려면 사물의 차별상에
사로잡히지 말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길밖에 없다.
'진인은.... 만사를 있는 그대로 내맡길 뿐, 작위하려 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해서 기뻐할 것도 없고,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해서 슬퍼할 것도 없다.
자기 자신도 하나의 자연 현상으로 보고, 죽음으로 인해 마음을 괴롭히지 않는다. 지
에 의해 도를 해치지 않고, 인위로써 자연을 해치지 않는 생활 방식이란 바로 이것이
다.'(대종사)
자연 그대로의 인간인 진인은 장자가 그린 인간의 궁극적인 이상상이다. 사물을 차
별하지 않고,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생성 변화하는 외계의 사상에 무한으로
순응해가는 자유로운 정신이 바로 진지인 것이다. 지에 구속되어 자연에서 점점 멀어
져가고 있는 인간이 진인의 자재로운 경지에 도달하려면 자기 자신의 자연을 되찾지
않으면 안 된다. '도와 일체화한다.'는 말은 완전한 무아의 상태로 돌아가, 일체를 있
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무한한 자유를 누리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장자에게 자유란 인간이 자기의 속박에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을 뜻한다. 도를
체득함으로써 현상계의 차별과 대립의 상에 사로잡히지 않는 인간, 즉 '주어진 현실
속에 살면서도 그 현실에 구애받지 않는 자재로운 정신의 소유자'만이 참으로 자유로
운 인간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쓸모없는 것일수록 인위와의 관계는 멀어져서 자연이 그대로 보존된다. 인간이 그
어떤 것의 도구도 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위해 살 수 있어야만 천수를 제대로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육체가 쓸모없다는 것 하나만으로 편안한 생애를 보낼 수 있다. 하물며 재덕이
쓸모없는 인간이 천수를 제대로 누리지 못할 까닭이 어디 있겠는가?'(인간세)

---펌 끝---


위의 장자 해석에 관하여 오류를 지적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대표적인 오류를 말해 본다면,

"(道는) 천지 개벽에 앞서 존재했다. 귀신도 상제도 하늘도 땅도 그 연원은 모두 도이다" 이 구절은 위 펌글의 내용 그대로인데, 이 글에서와 마찬가지로 노자 또한 장자와 같이 천지 개벽에 앞서 도가 존재 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연구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펌글의 뒤에 나오는 내용과 같이 "무위자연"을 주장하면서 천지가 개벽하여 나온 자연에 대한 완전한 동화를 도의 최고 경지로 잘못 인식하며 글을 쓴다는 것입니다. 도가 먼저 있었다고 하면서 도의 최고 경지를 무위자연 이라고 하거나 물아일체(物我一體)를 주장하면서 그것만 강조하는 오류는 거의 모든 학자들의 공통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만연한 내용입니다.

특히나 영적인 체험이 없는 학자일 수록 그러한 세계에 대하여 막연하기 때문에 도를 학문으로 연구를 하지만 전적인 신뢰라고 하는 믿음은 부족하여 자연현상이나 제법(諸法 모든 현상의 법칙이랄 수 있는 "매트릭스") 자체를 도라고 생각하거나 우주 자체를 최상의 부처님 또는 창조주로 인식하는 오류가 항상 존재하여 왔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자연숭배 사상인 애니미즘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스스로 깨달았다고 하거나 영적인 체험을 통하여 창조주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도 매 순간 순간 마다 착각을 하게 하는 원력(사탄)이 따로 있기 때문에 그러한 좋지 않은 원력이 찾아 올 때 그러한 자연숭배 사상을 얼마나 잘 그리고 빠르게 부술 수 있는지에 대한 능력도 갖추어야 하는 것으로 외우고 외워서, 또 익히고 익혀서 철저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한시라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귀신도 상제도 하늘도 땅도 그 연원이 모두 도인 것은 맞지만, 도덕경 1장 첫구절 처럼 "도가도 비상도"로써, 도를 도라고 말하면 이미 도가 아닌 것으로 자연을 도라고 하면 이미 도가 아니며 도는 자연 이전에 이미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이해의 바탕에서 불교의 용어를 대표로, 채널링의 형태를 그 종류별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학승(學乘) - 교학(敎學)을 통하여 진리를 추구하는 방편
불교 경전과 그에 따른 여러가지 이론서들의 내용을 바탕으로 학문적인 연구를 하는 과정으로, 진정한 깨달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막연하지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하나씩의 발견 그 자체를 이루어 나가는 과정 또한 채널링의 한 단면으로 자신의 내면에서 상상 공상 망상 중에 자신이 추구하는 진리가 치열하게 싸우는 현상을 겪고 난 이후의 선택에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던 그 부분이 후에 진리가 아닌 거짓으로 스스로 인정을 하게 된다면 이것은 마왕(魔王 , 이름은 "파순")이 이긴 경우에 해당 되며 이것 자체로 마왕에게 속은 채널링에 의한 결과로 판단합니다.
학승으로는 마왕은 커녕 그의 권속도 이겨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며, 그러한 이유 때문에 대부분의 일반인들에게 "거짓 나" "아트만"을 소멸 시켜야 하는 수행이 필요하고, 대부분 자신의 에고가 진정한 에고가 아님을 강조하는 설법이 불교 경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매트릭스라고 하는 시스템 또한 제법무아이기 때문에 모든 법상의 시스템을 자신의 에고와 동일시 하는 법아일체(法我一體)는 공사상의 대표적 폐해라 하겠습니다. 제법(인과율 시스템 또는 불법 그 자체)에는 진정한 나(我)라고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2. 성문승(聲聞乘)

성문-승(聲聞乘) 명사 <불교> 삼승(三乘)의 하나. 부처의 설법을 듣고 아라한의 깨달음을 얻게 하는 교법을 이른다.(국어사전)
불교 교학으로 편찬된 사전에는 위와 같이 설명되어 있지만, 이러한 사실 또한 교학으로 인하여 대표적인 착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석존 당시에는 석존의 직접 제자로 그 인연이 있기 때문에 석존으로 부터 당시에 아라한과를 직접 수기받아 증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방식이기는 하지만 소리를 듣는 채널링을 통하여 그 상대가 석존인지 거짓 석존인지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는 아라한 과의 증득이 어렵다고 하겠습니다. 진리 판별에 대한 힘을 먼저 길러야 합니다.
불설중아함경
[제1분(分)] ①
1. 대본경(大本經)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舍衛國)의 기수(祇樹) 화림굴(花林窟)에서 큰 비구(比丘) 대중 1,250명과 함께 계셨다.
(중략)
“여러 비구들아, 너희들은 여기 모여 무슨 논의들을 하고 있었는가?”
비구들은 있었던 일들을 낱낱이 말씀드렸다.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너희들은 평등한 믿음을 가지고 집을 떠나 수도(修道)하고 있다. 대개 행해야 할 일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모든 성현(聖賢)들이 법을 강(講)하신 일이요, 둘째는 그 분들이 침묵하신 일이다. 너희들이 논의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것이어야 한다. 여래의 신통과 위력은 넓고 커서 전생의 무수한 겁(劫) 동안의 일들을 아느니라. 그것은 법성을 잘 이해하기 때문에 아는 것이기도 하고, 또 모든 천인들이 와서 말해주기 때문에 아는 것이기도 하다.” (경전 인용 끝)


위 중아함경에서 처음 설법의 주제가 여래의 신통과 위력이라는 권능의 근본에 대한 논의 부터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그에 대한 석존의 답은 "모든 천인들이 와서 말해(성문) 주기 때문이다" 입니다.

이렇게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 이외의 다른 존재들로 부터 소리(聲 소리 성)를 듣고(聞 들을 문) 배움(學)을 통한 깨달음으로 나가는 방편만을 채널링이라 지칭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일반적이라는 단어가 뜻하는 바와 같이 영적인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체험이 없는 일반인들의 경우에 해당이 되고 이러한 채널링을 직접 행하게 되는 당사자가 되거나 영적인 특별한 체험을 하여 깊이 있게 접근 된다면 세상에 대한 이해나 깨달음이 영적인 부분을 통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일이 아에 없음을 대부분 인정하게 되며,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들어서 알고 있을 것입니다.
소리를 듣는 방식도 크게 세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첫째, 채널러가 자신의 목소리와 구분되기 어렵게, 마치 내면 깊은 곳에서 나오는 자신의 소리라 인정할 수 있도록 속임수를 쓰는 방식. 학승의 경우에 대부분 해당 됨.
둘째, 채널러가 자신의 목소리와 구분되는 타자(他者)의 목소리라는 사실을 확실히 인지하며 듣는 방식. 진리 판별이 중요.
셋째, 채널러가 자신의 내면에서 울리는 소리와 구분하는 것이 어렵지만 여러가지 정황으로 타자(他者)의 메시지가 숨어 있다고 느낄 수 있는 방식.
위 세번째 방식 부터가 연각승, 독각승, 벽지불로 각각 다르게 부르지만 그 경지가 같은 경우에 해당되는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찾아 갈 수 있는 방식으로 가아(假我), 아트만, 거짓 나, 종으로만 살고 잇는 철저한 아바타와 구분 되기가 쉬운 깨달음의 시기가 되겠습니다.


3. 연각승

--- 아래 사전인용 ---
오승(五乘): 해탈(解脫)의 지경(地境)에 이르게 하는 다섯 가지 교법. 인승(人乘), 천승(天乘), 성문승(聲聞乘), 연각승(緣覺乘), 보살승(菩薩乘)
연각(緣覺): 부처의 교화(敎化)에 의(依)하지 않고 홀로 불생(不生) 불멸(不滅)의 진리(眞理)를 깨달은 성자. 그 지위(地位)는 보살(菩薩) 아래, 성문(聲聞)의 위. 연각승(緣覺乘)의 준말

독각승(獨覺乘): [명사] [불교] 삼승(三乘)의 하나. 홀로 수행하여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교법을 이른다.

벽지불(辟支佛): [명사] [불교] 같은 말 : 연각2(緣覺)(부처의 가르침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도를 깨달은 성자(聖者)).

--- 사전인용 끝 ---

위와 같이 연각승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연(緣)법을 깨닫는(覺) 단계이며 말이나 글로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지 않지만 세속에서 알기 어려운 배움을 자신만의 깨달음이라는 독각의 방편을 위주로 하며 보살의 밑에 성자(聖者)의 지위에 들어갈 수 있는 최소한의 방편에 해당됩니다. 성문승의 채널러는 메시지를 전달받아 다시 전달하는 메시야가 될 수 있을지언정 아직 성자의 반열에 오르기 어렵지만 연각승의 경지에서 부터는 그것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연각승의 초입에 들었다고 해서 모두가 성자로 인정 받는 것은 아닙니다. 망상만을 깨닫다가 한평생이 끝나거나 아에 마왕의 권속이 된 줄도 모르고 사이비 교주로 지내다가 그것이 진리인양 살다가 저 세상으로 가게 되어서야 모든 것에 속았음을 알게 될 수도 있습니다.

현생에 나오기 이전에는 마왕 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었다가, 그러한 자신의 위신력과 지혜를 뽐내면서 마왕 정도는 언제든 이겨낼 수 있다는 아상에만 빠져 인세에 들어 올 때의 규칙인 모든 기억을 지운 상태로 지구를 선택하여 인간으로 태어 났지만, 그동안 마왕이 공성(空性)을 획득하여 권능이 높아지고 그로 인한 속임수에 마왕과 인연을 짓게 된다면 그 해당 원력만큼 마왕에게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신과 나눈 이야기" 책 내용에서 말하는 신성한 이분법이 아닌, 영혼의 강제적인 이분법이 시행될 수 있는데 이것은 모두 자신의 욕심에 의한 결과에 해당 됩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다시 때가 되면 그러한 분리가 강제된 것이기 때문에 원래의 영혼이 다시 합쳐지려는 작용 또한 강하여 영원한 분리는 아닙니다. 다만 그만큼 저질렀던 욕심에 대한 고생을 하게 되리라 판단합니다.

장자에 관한 내용에서 "(道는) 천지 개벽에 앞서 존재했다. 귀신도 상제도 하늘도 땅도 그 연원은 모두 도이다" 라는 내용에서 보듯이 또 역사적 자료들을 통하여 옥황상제에 대하여서는 아시아 지역에 오래 전 부터 잘 알려져 왔었는데, 불교 경전에서 서술된 내용에 따라 교학으로 연원을 따라가면 원래 요순 시대 이전 부터 있었던 옥황상제가 인도로 들어가 "인드라" 라는 神으로 불리게 되었고 그 인드라가 다시 불교 경전 번역시 한자로 변환되어 환인, 즉 제석천의 제석환인으로 원래 인간세계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하여 인간세의 하늘을 관장하는 신이 되어 있었음을 석존의 설법 내용에 따라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인도에 다시 석존이 현세에 출현하면서 제석환인의 권유를 받아 보리수 밑에 앉게 되고 깨달음을 얻어 "붓다"라는 이름이 처음 나오게 되었습니다. 붓다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해서 神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붓다 또한 또 다른 신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만, 그러한 기존의 신들과는 다른 격(格)을 갖고자 붓다 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으로 석존의 전생에 수 많은 깨달음과 부처의 수기를 준 모든 인연 있는 신(神)들을 모두 부처님이라는 지위로 함께 높여서 기존의 신들과는 다르게 부르도록 작용한 것입니다.

다시 정리해서 말해 보면, 모든 천계에 즉 삼천대천 세계에 원래 도라고 부르든 도라고 부르지 않든 이름할 수 없는 존재들이 수 없이 많았는데, 그들을 모두 묶어서 신이라고 규정 짓고 인간세에서 불리다가 석존을 내세운, 각각의 갈래 길에 있지만 모두가 연결되어 있는 높은 신들이 석존에 의하여 과거세 부처님들로 추앙하여 받들어 지고 자신은 그 당시 현세를 주관하는 새로운 대표적 신이 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점은 불경의 여러 경전에서 "이 법은 과거나 현재나 세상의 모든 부처님들이 인정하고 모두가 지키기로 약속된 법" 임을 곳곳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도 이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석존의 현세 출현이 없었다면, 그들은 여전히 그냥 신으로만 불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석존 또한 과거 7불에 속해 있습니다.

(과거칠불(過去七佛): [명사] [불교] 지난 세상에 나타난 일곱 부처. 비바시불, 시기불, 비사부불, 구류손불, 구나함모니불, 카시아파불, 석가모니불이다. - 국어사전)

그런데 그렇게 높은 신들은 대대로 일맥으로만 내려 오다가 (법화경) 자신들이 직접 나서지 않고 석존의 바로 위의 스승인 연등불 때 부터, 불법(佛法)이라고 하는 새로운 방식을 석존이라는 제자에게 전수하여 법통이라 이르게 하고, 당시 인도에서 힌두교라는 온갖 귀신들이 장악하여 있던 세상에 나오게 하여 근기가 낮거나 탐진치와 욕심으로 인하여 죄를 짓는 중생들과 어린 영혼들을 위하여 특별한 교육을 위한 방편으로 나오게 한 것이며 석존 이후로는 다시 또 석존을 대신하여 계속적으로 현세에서 가르치는 높은 스님들이 법통을 따라 불가(佛家)를 이루어 내려 오고 있습니다.

석존 열반 이후의 시기에, 노자와 장자가 다시 또 나와서 그동안 道에 대한 개념 자체도 별로 없었던 세상에, 각각 도덕경과 장자라는 내용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 시기 이후로 도 또한 많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불교와 도교의 방편을 비교하여 보면,

가. 불교는 석존 당시에 인정하고 승인한 속가제자로의 입문이 있어 쉽게 들어갈 수 있지만 깊이 들어 갈 수록 계율 때문에 힘들어지고 도교는 입문 때 부터 어렵지만 여러가지 구속을 당한 이후로 이겨내면 이겨낼 수록 구속이 풀어지는 경향이 대부분입니다.

이 부분에서 하나의 영혼 개체에 대한 자유의지의 제약이라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불교는 다양한 방편 때문에 자유방임이라는 형식을 취하면서 스스로 계율을 자발적으로 지킬 것을 약속하고 들어가 무아(無我)사상으로 자신의 거짓 에고(ego)의 소멸과 업장이라는 장애를 닦아 더욱 부처님에게 의지하게 되고 계율에 대한 구속을 강하게 느끼면서 공사상까지 도달하면 반야심경의 공포를 경험하다가 완전히 그 공포를 이겨내는 생사관을 넘기게 되면 공사상을 벗어나고 열반이라는 자등명의 경지에서 자성(自性 청정한 자신의 영혼 품성, 본래면목)이라는 대자유를 찾게 됩니다.

도교는 그와 반대의 절차로 처음 부터 무속인이 되게 하거나 산속에 칩거하는 형태를 취하여서 자유의지를 심하게 구속 받다가 道를 어느 정도 알았다고 하는 독각(연각)의 경지에 들어가면 시험을 겪는 과정에서 수 많은 실수와 구속이 절정을 이루다가, (연각을 깨닫게 하는 방편이자 시스템인) 제법실상의 현상에 대한 깨달음이 넓어지고 깊어질 수록 진리추구(상구보리)라고 하는 자신의 자유의지를 더욱 강화 시켜 가면서 마장이라는 구속을 자신이 직접 쳐 부수어 마침내 마왕에게도 굴복 당하지 않는 자유의지가 확립이 되면 드디어 진인이라는 대자유를 찾게 됩니다.

나. 불교는 방편도 많고 설법이나 각종 이론들이 많이 나오는 것에 비하여 도교는 경전 내용이 극히 짧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을 일반인이 보기에는 무슨 내용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게 되어 있거나 그러한 이론서들이 나온다 하여도 모두가 다른 해석들을 하기 때문에 어느 것을 따라야 할지에 대해서 조차 가늠하기 어려우며, 어렵게 도를 어느 정도 익혔다 하여도 "천기누설" 이라는 제약이 있어서 그것을 세상에 알리는 일 조차 어렵게 제약을 걸고 있습니다. 이것은 진인이라는 경지에 올라서도 노자가 세상에 남기거나 행한 것이라고는 5,001 글자의 도덕경이 거의 전부라 해도 좋을 정도인 데다가 그렇게 얼마 되지도 않는 분량의 도덕경 조차 일반인은 도저히 그 본의를 알 수 없게 중중무진의 중첩적인 뜻으로 단어들을 조합해 놓은 것만 보아도 천기누설 이라는 제약이자 특성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 한국 불교는 도교와 밀접하게 융합하여 이러한 특성 때문에 많은 설법을 하지 않고 간단한 화두만을 사용하여 스스로 깨닫게 하는 방편인 "간화선"을 많이 하고 있지만, 한국 이외의 다른 나라들의 불교에서는 대중을 모아 놓고 설법을 하는 단계에 있는데 사실 대중이 많으면 (하화중생) 많을 수록 업장이 두터워져서, 더 높은 상위의 진리추구(상구보리)에 장애가 많이 나타나고 높은 道로 나아가기가 어렵습니다. 하화중생과 상구보리 라는 두 방편 모두 없어져서는 안되는 일로 어떤 것에 더욱 중점을 둘 것인지에 대해서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라. 불교에서는 점을 쳐서 나오는 점사(占辭)를 못하도록 경전과 계율로 정해져 있는 것에 반하여, 도교의 낮은 근기에서는 대부분 점을 치는 것으로 시작을 합니다. 옛 제사장인 무속인들과 요순 시대의 거북이 등껍질이나 짐승의 뼈에 줄(線)을 긋고 불로 가열하여 그 줄이 갈라져 나가는 형태에 따라 길흉화복을 판단하는 일, 산통을 깬다 할 때의 산통((算筒), 육효나 팔괘, 새(鳥)나 동물이 골라 잡은 점괘, 타로 카드, 화투점, 심지어 손바닥에 침을 뱉어 놓고 쳐서 튀는 방향으로 길을 잡아 나가는 방식, 사주팔자학, 명리학, 천문학(서양 별점), 양택음택을 보는 지리학 등등이 모두 발전하여 오늘날의 과학(科學)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데, 이것은 도교에서 시행 해 왔던 과거의 예언이라는 방식에서 확률 계산에 따라 틀릴 수도 있음을 미리 부터 가정하는 예측으로 인정되는 것이 현재의 통례가 되었을 뿐입니다.

만약에 아직까지도, 사물의 이치만을 따지는 경우가 아닌 인간의 길흉화복에 관계된 것을 두고 그 대상자에게 확정적으로 단언을 하거나 예언과 같은 효력을 발휘하고자 애쓴다면 하근기에 해당되는 것이며 이것은 금전적 이익을 추구 하거나 상대를 겁박하여 권위를 세워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 하는 경우에 많습니다. 욕심이 있었거나 없었거나, 도를 도라고 하면 이미 도가 아닌 것이며, 제행무상으로 모든 행하여지는 것은 일정함이 없다 라는 높은 수준의 원칙을 알지 못하거나 알고도 무시한 경우가 되겠습니다.

이것은 분명 하근기에 해당되는 일이지만 나(유전)는 가끔 대대법으로 상대의 낮은 수준에 따라 같이 낮아져서 상대하는 방편을 사용합니다. 나는 낮아진 상태를 쉽게 다시 올릴 수 있지만 일반인들이 이러한 경우를 따라하면 곤란한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 대대법은 인과율에 대한 직접적인 시행으로 원래 부터 있는 도교의 방편이기도 합니다. (예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입니다. 그러나 나의 대대법은 도교의 직접적 방편과 불교의 우회적 방편을 모두 사용하여 비선형적 방식으로 일반인은 물론 당사자 까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뒤 늦게 알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세상 무서운 줄을 모르고 악한 일을 알면서도 행하는 자들에게 우선적으로 적용합니다.

마. 불교는 마음을 중시하는 것에 반하여 도교는 양신(養身) 수행이라는 몸 부터 시작하여 물질적 물체적 사물들에 대한 원리 이해의 추구가 더 강한 편입니다. 서양의학은 인도에 이미 있던 인드라(제석환인)의 道가 브라만 계급 중에서도 상위의 道로 이미 있었고 그곳 옆의 중동 지역 사막으로 가서는 저급의 제사장들로 옮겨가 구약이 되었기 때문에 서양의학은 인간의 몸 자체도 물질화 시켜서 수술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하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서양의 영어에서는 Conscience를 양심이라고 하는데, 나뉘어진 Science(과학. 科 과목 과) 과목을 합(Con)하면 백과사전이 될 수 있겠지만, 나뉘어진 마음이 단순히 모였다고 해서 양심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불교는 대자대비심이라는 전체의 마음을 증득하여야 하지만 설법으로는 방편이 수 없이 나뉘어져 있고 설법이 너무 많아 오히려 혼동을 일으키기 쉬우며, 도교는 道라고 하는 전체를 설명하기 좋아하면서 그에 따른 방편들은 모두 제각각으로 다른데다가 그나마 설명도 별로 없습니다. 어느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면 불교는 공사상과 만나고 도교는 무위사상과 만나는데 그 두가지를 깨 부수고 불교는 대자대비심을 깨달아야 하며 도교는 하나의 생명이라도 더 살려야 한다는 생명존중과 함께 義를 깨달아야 더 높은 도로 올라가게 되며 최소한 물질자연을 벗어나야 합니다.

바. 불교는 거시세계를 지향하고 도교는 미시세계를 지향하는데, 불교의 삼천대천세계관을 설명한 여러 경전들을 보면 높은 지위로 올라가는 각각의 세계에 대한 표현에서 점점 그 규모나 형상이 커져감을 알 수 있습니다. 도교는 도덕경에서 그러한 거대함을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설명하면서 묘(妙)라고 하는 작거(小)나 적은(少) 상태를 지향하는데 장자의 경우 "소요유" 편에서 붕정만리의 이야기 때문에 착각할 수 있겠지만 나비와 같은 작은 움직임으로 "나비 효과(버터플라이 이펙트)"와 같은 방편을 더욱 선호 한다고 하겠습니다.

불교는 본질을 넓게 펴 나가거나 쪼개서 수 많은 자비라는 방패로 포용하거나 "거울 효과(미러 이펙트)"의 환상으로 끝 없는 포위를 연출하는 방편을 위주로 합니다. 도교는 넓었거나 크거나 어떠한 본질이라도 화두와 같이 압축하고 압축하여 힘을 사용하지 않고 축적하여 있다가, 그 축적된 힘으로 튼튼한 실(絲)에 연결된 창과 같이 의(義)라고 하는 하나의 길(道)로 가급적 최대한 멀리 끝없이 보낸 후 그것을 다시 잇거나 엮어서 "천망회회 소이불실 - 하늘의 그물망은 구멍이 많은 듯 엉성 해 보여도 놓치는 경우가 없다" 와 같이 가급적 무위(하지 않음)을 우선으로 하지만, 바둑의 포석과 같이 수 많은 바둑돌을 사전에 깔아 놓은 상태로 상대가 돌을 어디에 내려 놓든 그것에 대한 모든 대응 방식이 준비 되어 있다는 방편을 사용합니다.

사. "기름(油) 부은 자"를 선호하던 땅에 태어난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물로 행하는 도교로 시작하여 (도덕경에서 물은 모든 만물과 생명의 기본 물질로 설명되어 있고, 세상에서 가장 선하다고 하는 상선약수 라는 대표적 사자성어가 있음) 예수님의 행적은 불교의 산상수훈을 비롯하여 그 밖의 여러 언행들이 석존의 독생자 라훌라(밀행제일존자 -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행함)와 비슷하고, 삼신불(법신,보신,화신)사상이 삼위일체 사상과 일치하며, 윤회 사상과 일불승(하나님)을 포함한 내용으로 가르친 것이 거의 불교 세계관과 비슷합니다. 예수님 십자가 사건 바로 전의 약속인 물과 성령이라는 보혜사 성령은 대표적인 보신불에 해당 됩니다.

위 일곱개 항목의 불교와 도교 그리고 최종적으로 기독교의 비교까지 설명 했지만 그러한 방편이 꼭 저러한 방식대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것 저것 섞여서 다양한 형태로 나오고 있고, 현재 그러한 다양한 방편이 인터넷 이라는 빠른 수단을 동반하고 이것이 불교의 천리안이나 천이통에 해당되는 수단으로 다양한 교류와 함께 해당 영혼들에게 작용하는 원력들 또한 수시로 바뀔 수 있는 가능성들이 많아져서 때로는 영적 혼돈, 카오스의 고통이 증가되는 상태로 인식되어 질 수 있으며 그것을 이용하여 말법 말세 종말 등과 같은 용어들을 남용하는 거짓 예언들이 세상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잠시 세상이 혼탁하게 된 것에 지나지 않아서 시기가 지나면 다시 각각의 세계가 분명하게 진리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4. 제법실상 연기법을 포함 한 일불승(一佛乘)

연각을 통하여 어느 정도 깨달음을 증득하면 보살(하화중생 입장)이나 아라한(상구보리 입장)의 지위에 올라가게 되는데, 이 두가지에 대한 결정은 자신의 선택입니다. 어느 것이 더 좋다고 할 수 없습니다. 보살과 아라한 이전에 공사상을 통하여 공성(空性)을 증득하면 남녀라고 하는 성별 또한 중성적 성격을 보이는데, 여자가 아라한이라는 상구보리에만 집착하면 대자대비심을 깨닫기 어렵고 남자가 새로운 경지라는 개척을 두려워 하여 보살행만을 행하면 더 높은 깨달음을 얻기가 어렵습니다.

속세의 출가하지 않은 불교인들 중에서 여자는 남편과 아들에 대한 사랑과 자비심의 원력을 보태는 보살 수행을 열심히 하게 되면 그러한 사랑과 자비의 원력에 감응이 되어 대자대비심 수행을 따로이 닦지 않고 아라한의 상구보리에만 집중하는 중에도 그것이 서로 융합되어 남편이나 아들이 부처의 경지에 먼저 도착할 수 있고, 먼저 도착한 속가제자의 불교인은 인연 중에서 가장 큰 인연이라고 하는 자신의 처(무촌 無寸)를 구원하여 협시 보신불로 삼게 되는데 어머니(一寸)나 딸(一寸)을 보신불로 삼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미 자신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버지의 보신불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며 딸 또한 해당 법신불의 인연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불교의 출가하지 않은 속가제자들에게 해당되는 일로, 출가한 제자인 경우에는 불가(佛家)의 원칙을 따르는 것이 좋으며 그러한 중에서도 "만가지 선행의 근본은 효(孝) - 부모은중경" 라고 하는 석존의 설법을 항상 기억함이 좋겠습니다.

불교의 최고 경지인 부처로 처음 되는 것과 도교의 최고 경지인 진인(眞人)으로 처음 되는 일은 그 방편이나 이름이 다를 뿐, 그 경지는 같습니다. 그러나 거시세계와 미시세계의 다름과 같이 그 세계들의 본류는 거의 대부분 다른 것에서 출발합니다. 거시세계의 미러(거울)효과로 더욱 거대한 세계를 수 없이 만들어 나가거나, 미시세계에서도 더욱 더 작은 수 많은 우주의 생성이 가능한데, 단순히 환상이거나 작다고 하여 무시할 수 없는 것은, 같은 수준의 해당 경지가 아니라면 확인할 방도가 없기 때문에 권능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그러한 권능은 부처의 열가지 지위인 "여래십호"와 같이 같은 부처라도 그 권능이 모두 다르며 창조주로 가는 경지는 또 끝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창조주 또한 끊임 없이 진보할 것이 여러가지 이유로 분명 해 보이고 그렇게 진보된 상황에서 그 자리를 다른 누군가에게 넘겨주게 될 것으로 판단 합니다.

이러한 일불승이나 진인 경지에서의 채널링 형태는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경우에 이미 법계나 시스템을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에 그것을 거스르지 않고도 누군가에게 채널링을 통하여 깨달음을 주거나 자신이 원할 경우에 다른 더 높은 경지의 인연과 닿아 (일불승이나 진인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이미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게 한 인연이 있기 마련임) 교류를 청할 수 있으며 이것은 대자유를 획득하지 못하였거나 억지로 채널링이 되는 것과는 다른 입장이며 언제든 상위의 존재와 교류를 중단하고 싶을 때 중단 하겠다는 의사만 표시하면 그것으로 교류는 되지 않습니다. 상위 자아로 갈 수록 자유의지를 최대한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아래 열반경에 나와 있는 석존의 채널링 형태를 인용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 열반경 인용 ---

그런데 아난다여! 이 세상에는 여덟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곧 왕족(크사트리아), 바라문, 자산자(資産者), 사문, 사천왕천의 사람들,
도리천의 사람들, 악마에 속하는 사람들,
그리고 범천에 속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런데 아난다여! 나는 다음과 같은 사실은 확실하게 깨닫고 있다.
한때 나는 수백 명의 왕족들이 있는 곳에 갔었다.
그곳에서 나는 그들과 자리를 함께 하고 함께 말하며 담론(談論)했다.
그때 나는 그들이 이야기하는 소리나 그들이 이야기하는 억양만으로도
그들과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여러 가지 가르침을 설하여 받들어 지니게 하고,
그들을 격려하고 기쁘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말했다.
"이러한 것을 말하다니, 이 사람은 도대체 인간일까? 아니면 신(神)일까!"라고.
거듭 여러 가지 가르침을 그들에게 설하여 받들어 지니게 하고,
그들을 격려하고 기쁘게 한 다음, 일어나서 떠난 다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말했다.
"방금 일어나서 떠난 저 사람은 도대체 인간일까? 아니면 신일까?"라고.
아난다여! 마찬가지로 다음과 같은 사실이 있음을 나는 확실하게 깨달았다.
한때 나는 수백 명의 바라문, 자산자, 사문, 사천왕천인, 도리천 사람,
악마의 권속, 범천의 권속들이 있는 곳에 갔다.
그곳에서 나는 그들과 자리를 함께하고 함께 말하고 담론했다.
그때 나는 그들이 이야기하는 소리,
그들이 이야기하는 억양만으로도 그들과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여러 가지 가르침을 설하여 받들어 지니게 하고,
그들을 격려하고 기쁘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말했다.


"이러한 것을 말하다니, 이 사람은 도대체 인간일까? 아니면 신(神)일까?"라고,
거듭 여러 가지 가르침을 그들에게 설하여 받들어 지니게 하고,
그들을 격려하고 기쁘게 한 다음, 일어나서 떠난 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말했다.
"방금 일어나서 떠난 저 사람은 도대체 인간일까? 아니면 신일까?"라고.
어쨌든 아난다여! 이 세상에는 이상과 같은 여덟 종류의 사람들이 있느니라.

--- 열반경 인용 끝 ---

출처: http://blog.naver.com/mind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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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야무명인님의 댓글

재야무명인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p>불교에서 말하는 또는 모든 종교에 나타나는 계급제도..<br />너무 너무 싫습니다..<br />왕족/신/노예/귀족/등등...그리스신화에도 계급제도가..에효..</p><p>헌데?? 현실에도 계급제도가 있어염..<br />회사에도..사장.이사.부장.차장.과장.대리.주임 등등<br />군대에도..대장.소대장.분대장.병장.상병.일병.이등병 등등</p><p>마지막으로 가정에서도..(여성부주장)<br />엄마..자녀..강아쥐..아빠. ㅜ.ㅜ<br />에효..계급제도 넘 싫어염..</p><p>참고루 가정에서는 리모콘 지배 순위를 말씀 드린겁니다.<br />(__)(^^)<br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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