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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포타미아 신화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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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선장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댓글 0건 조회 4,512회 작성일 01-03-25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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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포타미아 신화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신화


메소포타미아 신화라 불리우는 것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방 - 근동의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에서 발생한 문명에서 나타나는 신화를 말한다.
근동에서의 문명은 B.C 4000년 경 수메르인들이 이 지역에 정착하여 청동기 문화를 발전시키면서 처음 나타났다. 수메르 인들은 상형 문자를 발명했고, 그것을 발전시켜 쐐기문자를 창조해냈다. 수메르 인들의 신화는 점토판 위에 이 쐐기 문자로 기록된 다른 문서들과 함께 남아있다. 이것이 메소포타미아의 첫 번째 신화다.
이후 B.C 1800년경, 아모리 인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정복하고 수도인 바빌론의 이름을 딴 바빌로니아를 세웠을 때 메소포타미아에는 두 번째 신화가 등장한다. 바빌로니아 신화가 바로 그것. 수메르 신화를 받아들여 계승하면서 자신들의 사상과 세계관을 융합한 탓으로 바빌로니아의 신화는 수메르 신화와 약간은 차이를 가진다.

다들 알다시피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세계 4대 문명 발생지 중 하나이다(4대 문명설에 금이 가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은데다 요즘 교과서에는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전혀 모르긴 하지만, 적어도 필자가 배울 당시에는 저랬다). 이 메소포타미아에서 발생한 수메르 신화는 기록으로 남겨진 가장 오래된 신화이며 바빌로니아 신화는 그를 계승하여 발전시킨 이야기이다.

<< 수메르 신화 >>

대부분의 고대인들이 그러했듯이 수메르 인들 역시 자연을 두려워하여, 자연에 인격을 부여하고 신으로 모셨다. 수메르의 아버지 신은 하늘 신 안(An)으로, 두 명의 부인을 거느렸는데, 하나는 심연, 혹은 지하수를 관장하는 남무(Nammu) 여신이며, 다른 하나는 땅의 여신 키(Ki)였다.
수메르 신 계보에는 남무를 가리켜 '하늘과 땅을 낳은 어머니' 라고 한 표현이 있다. 이것은 남무가 하늘의 안 과 땅의 키를 낳은 모친이 아니었을까 하는 설과, 사람들이 범람하는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이 아닌 지하수 물로 생명을 이어간다 라는 의미라는 설이 있다. 어느 쪽이 옳은 설인지 밝혀내는 것은 학자들의 몫일테니 하찮은 필자는 적당히 넘어가기로 한다. (...)

하늘 신 안은 땅의 여신 키와의 사이에서 엔릴(Enlil)과 닌후르쌍(Ninhursag)을 낳았다. 엔릴은 주인이라는 의미의 en과 바람을 뜻하는 lil 의 합성으로 '바람의 주인' 이라는 의미이며 하늘과 땅 사이의 바람 - 혹은 대기를 의미하는 신이다. 엔릴의 누이인 여신 닌후르쌍은 산기슭 언덕의 여신으로, nin은 여주인 이라는 의미이며 후르쌍(hur-sag)은 산기슭에 위치한 작은 언덕들을 말한다. 그녀는 모든 자식들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가졌으며 모신(母神)이자, 산파 여신인 닌투(Nintu)이기도 하다.
신화 세계에서 늘 그렇듯이 신들은 현대적인 개념에서의 패륜인 근친상간 등은 서슴없이 해치운다. 그들에게 그것은 죄가 아니며, 힘을 합쳐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행위인 것이다. 엔릴과 닌후르쌍 사이에서는 천둥을 의미하는 전쟁신 닌우르타(Ninurta)가 태어났다.
엔릴의 부인은 바람의 여신 닌릴(Ninlil)이었다. 그는 처녀 닌릴을 배에 태워 강에 띄우고, 그곳에서 그녀를 범하여 '밝고 외로운 떠돌이' 달의 신 쑤엔(Suen)을 낳았다. 그 후에 그는 세 사람으로 변장하여 각각 닌릴과 관계를 갖고 기쁨에서 나온 젊은이 네르갈(Nergal), 긴 측량줄의 주인 닌아주(Nin-a-zu), 강의 감독관 엔비루루(Enbilulu)를 낳았다. 이 셋은 아버지의 권능을 받고 지하로 내려가 저승의 신들이 되었다.
엔릴의 아들인 달의 신 난나(Nanna ; 쑤엔의 다른 이름으로, 동일하게 쓰여진다)와 '위대한 여주(女主)' 닌갈(Ningal)의 자식들은 정의와 진리의 신인 태양 우투(Utu)와 사랑과 질투의 여신 금성 인안나(Inanna)였다.

하늘 신 안은 다른 부인인 지하수 여신 남무 와의 사이에서 지하수와 연못의 신 엔키(Enki)를 낳았다. 지하수란 민물과 연못 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 엔키는 지혜의 신이기도 하였다. 엔키는 '왕자의 큰 부인(婦人)'이라는 칭호를 가진 담갈눈나(Damgalnunna)를 부인으로 맞아 마귀쫓는 사제 아쌀루히를 낳았다. 또한 엔키는 양의 수호여신 두투르(Duttur)와도 관계를 가져 포도주의 여신 게쉬틴안나(Gestin-an-na)와, 양치기 두무지(혹은 탐무즈)를 낳았다. 두무지는 달의 신 난나의 딸인 금성의 여신 인안나와 결혼하여 부부가 된다.
이후에 신들의 아버지인 하늘신 안은 하늘로 올라가며, 최고신의 위치는 유지하지만 신들 사회에서의 최고 결정자 역할은 포기하였다. 그후에 최고신격의 지위는 안의 아들 엔릴에게로 돌아갔다.

수메르의 신들 중에서도 고위신인 일곱 신이 있었는데, 그들은 세상의 운명을 결정하는 존재였다. 이 '운명을 결정짓는 일곱 신(dingir-nam-tar-ta 7-bi)'은 서열이 있었다. 안을 제외한 다른 여섯 신들은 각각 수메르의 주요 도시 여섯 곳을 수호하는 도시신 이었다. 가장 상위 신은 하늘로 올라간 하늘 신 안 이며, 다른 여섯 신은 서열순 대로 다음과 같다.

수메르 중앙 지역의 도시인 니푸르(Nippur)의 수호신인 바람 신 엔릴,
북쪽 키쉬(Kish)의 수호신인 산기슭 언덕의 신 닌후르쌍,
유프라테스 강 하류 언덕위의 도시 에리두(Eridu)의 수호신인 지하수 신 엔키,
에리두의 위쪽에 위치한 도시 우르(Ur)의 수호신 달 신 난나,
우르와 우루크 사이에 위치한 라르싸(Larsa)의 수호신인 정의와 진리의 신 우투(Utu),
우루크의 수호신인 사랑과 질투의 여신 인안나(Inanna).
이들 일곱 신은 일곱 큰 신들의 모임이라는 회의에서 세상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이제 이들 신들이 활약하는 이야기들을 가볍게 훑어보도록 하자.

* 인간 창조 *

신화의 진행은 대개 신들의 탄생을 처음 설명하고 다음으로는 인간의 탄생을 이야기한다. 수메르 신화에서의 인간은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을까? 수메르 신들에게 있어 인간은 어떠한 존재였을까?
슬프게도 인간은 신들의 노역을 대신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였다. 태초에 작은 신들은 먹고 살기 위해 직접 일을 해야 했고, 아눈나키 라 불리우는 50명의 큰 신들은 그들의 감시인으로서 지켜보는 존재였다. 작은 신들은 매년 범람하는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의 침적토를 파내고 농사를 지어야 했다.
고된 노역에 지쳐버린 작은 신들은 지혜의 신 엔키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가 이 고통을 만들었다> 라고 비난하는 장면으로 보아, 작은 신들을 부리는 제도를 구상한 것이 지혜의 신 엔키가 아니었을까 싶다. 결국 작은 신들은 호미와 흙을 나르는 바구니 따위의 연장들을 부수며 데모에 돌입한다.
엔키는 그의 어머니인 남무의 조언으로 인해 신들의 노역을 대신할 존재를 만들기로 했다. 그는 우선 점토를 빚어 출산의 모신들을 창조하고, 그녀들과 의논한 끝에 인간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진흙을 빚어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신의 능력이 서려있는 '이름있는 피' 가 필요했다. 엔키는 반란을 일으킨 작은 신들의 우두머리 웨일라(We-ila)를 잡아 죽인 후, 그 피를 점토와 섞어 인간을 만들었다. 인간(awila ; 아윌라)이라는 단어는 웨일라의 이름에서 나왔다고 한다.
엔키는 일곱 명의 출산 여신들의 도움을 받아 인간을 창조한 후, 인간들에게 대신 노역을 맡겼다. 이따위 이유로 창조되었을지라도 인간들은 열심히 노동하고 성과물을 신에게 바쳐야 했던 것이다. 투덜투덜-. 현재의 인간들이 생각하면 기가 막힐 이유였겠지만, 어쨌거나 엔키가 해낸 업적은 신들에게는 대단히 기쁜 일이었을 것. 신들은 그를 칭찬하고 엔키에게 창조자라는 의미의 누딤무드(nu-dim-mud)라는 칭호를 내려주었다.

* 대홍수 *

세계 어느 나라의 신화를 보아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대홍수 이야기. 대홍수 신화의 기본 구조는 신들이 인간을 징계하기 위해 대홍수를 일으키고, 그중 현명하고 선한 인간이 미리 그 일을 알고 대비해 살아남는다 라는 스토리가 많다. 수메르의 대홍수 이야기 역시 골조는 같다.
도시들이 세워지고 난 후, 신들을 위해 노역을 하던 인간들은 노역의 대가로 곡식을 배급받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어딘가 공산주의 국가 체제 같다. 노동은 과하고 배급은 적었던 것인지, 인간들은 이전에 작은 신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불만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들의 불평이 얼마나 요란했던지 신들은 쉴 수가 없었다. 결국 최고신인 엔릴은 인간들을 쓸어 없애자고 신들의 회의에서 제안하게 된다.
상당히 제멋대로인 최고신 엔릴에 비해, 훨씬 침착하고 냉정한 지혜의 신 엔키는 인간을 구원하기로 마음먹었다. 실은 자신의 창조물들이 일거에 사라지는 것이 싫었을지도 모르겠다. 안과 엔릴의 명령은 절대적이었으므로 직접 반대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엔키는 올바르게 사는 왕이자 제사장인 지우쑤드라의 꿈에 나타나 신들의 결정을 알려주고 배를 만들어 온갖 생명의 씨앗과 동물들을 싣도록 지시하였다.
이윽고 거센 바람이 불고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한다. 일곱 날 일곱 밤 동안 홍수가 땅 위를 휩쓸었다. 드디어 물이 빠지며 태양이 떠오르고, 태양신 우투는 배 속으로 따뜻하고 밝은 빛을 비추어 주었다. 쓸어 없애자고 할 때는 언제고 나중에는 잘해준단 말인가. 뒤늦게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까? 신들에게도 양심은 있는가? 필자가 신성모독 발언을 남발하고 있는 동안에도 이야기는 흐른다.
엔키는 안와 엔릴에게 지우쑤드라 왕을 변호해주었다. 안과 엔릴은 그를 받아들이고, 인간 종자가 다시 세상을 채우는 것을 허용한다. 그리고 지우쑤드라 왕은 신들과 같은 영원한 목숨이 상으로 주어지고, 거룩한 도시 딜문에서 살게 되었다.


신화에서 보여지는 신들의 변덕은,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인지? 고대 신화에서 인간의 위치는 신 앞에서 노예나 다름없는 벌레와 같은 존재여서 일지도 모른다. 그런 관계를 당연히 받아들였던 고대 인간들의 사고방식은 현대의 우리로서는 미스테리일 뿐.

* 저승신들의 탄생 *

바람 신 엔릴과 그의 아내인 바람 여신 닌릴은 저승 신이 된 세 명의 아들을 낳았다. 엔릴은 세 번이나 모습을 바꾸어 아내를 안았고, 그 결과로 태어난 아들이 세명의 저승 신이었다. 저승 신 탄생 신화의 테마는 엔릴의 세력이 확장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먼저 달의 신을 낳아 하늘을 그의 영역에 포함시켰고, 저승 신 셋을 낳아 저승도 그의 세력 아래에 두게 된다.
엔릴은 자신의 수호도시인 니푸르의 강에서 젊은 처녀 닌릴을 보게 되었다. 엔릴은 아름다운 그녀를 탐하고자 하지만, 어머니에게 몸조심하라는 주의를 받은 닌릴은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결국 엔릴은 시종 누스쿠의 도움을 얻어 강에 배를 띄우고, 닌릴을 유혹하여 배에 태운 뒤 그녀와 관계를 맺는다. 그때 잉태된 것이 달의 신 난나였다.
50명의 큰 신들은 엔릴의 엔릴의 성범죄를 알고, 그를 도시에서 추방하였다. 최고 신이 성범죄를 일으킨 죄로 도시에서 추방된다. 멋진 이야기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의 난잡하기 그지없는 생활에 아무런 처벌도 주어지지 않는 것에 비하면, 수메르 인들은 훨씬 더 도덕적인 듯 하다.
엔릴은 도시에서 쫓겨났지만 닌릴은 그의 뒤를 쫓는다. 성문을 빠져나가면서 엔릴은 성문지기에게 닌릴이 와서 자신이 간 곳을 물어도 대답하지 말라고 일러두었다. 쫓아온 닌릴은 성문지기가 엔릴이 간 곳을 알려주지 않자, 엔릴 대신 그와 잠자리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엔릴은 성문 문지기로 변장하고 성문지기의 방에서 닌릴을 안아 저승의 대표신인 네르갈을 낳게 하였다. 엔릴이 출발하자, 닌릴은 다시금 그의 뒤를 쫓는다.
엔릴은 산을 지키는 사람과 나룻배 사공에게 같은 부탁을 했고, 닌릴 역시 엔릴 대신 그를 안겠다는 대답을 하여, 엔릴은 산을 지키는 이와 나룻배 사공으로 변장하여 두 번 더 닌릴을 안았고, 그리하여 닌릴은 닌아주와 엔비루루를 낳는다.
이렇게 태어난 세명의 신 네르갈, 닌아주, 엔비루루는 아버지 엔릴의 권능을 받아 저승으로 내려가 그곳의 신이 되었다. 엔릴이 지배하는 영역은 지상 뿐만 아니라 지하에 있는 망자들의 땅까지 확장된 것이다.

* 인안나의 저승여행과 두무지의 죽음 *

금성의 여신인 사랑과 질투의 닌안나는 그리스 신화에서의 헤라와 아프로디테를 합쳐놓은 듯한(실은 그녀들의 원형이 된) 여신이다.
닌안나는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영웅 길가메쉬를 유혹하려다 모욕을 당하자 하늘의 큰 황소 구갈안나를 보내어 길가메쉬를 죽이려 했다. 그러나 죽임을 당한 쪽은 구갈안나 쪽이었다. 닌안나는 그녀의 언니 가샨키갈라 의 남편이기도 한 구갈안나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저승으로 찾아간다. 이 이야기는 핑계이고, 무엇이든 탐내는 욕심많은 여신 닌안나가 저승의 힘마저 탐내고 그것을 찾아 내려간 것이다 라는 설도 있다.
닌안나는 자신이 혹여 돌아오지 못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여 시종 닌슈부르에게 미리 지시를 내려놓았다. 자신이 돌아오지 못하거든 엔릴, 난나, 엔키를 차례로 찾아가 닌안나를 구해달라고 부탁을 드리도록 하라는 지시였다.
인안나가 죽지 않은 채로, 그리고 화려한 치장을 한 채로 저승으로 내려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저승의 여주인 에레쉬키갈라는 분노했다. 수메르인의 사고로, 저승에서는 누구나 검소해야 했다. 그러나 닌안나는 그녀의 권위를 상징하는 장식물을 모조리 휘감고 나타난 것이다. 게다가 인안나는 저승의 여주인 에레쉬키갈라의 의자에 멋대로 앉는 결례마저 범했다. 결국 일곱 재판관인 아눈나키 신들은 그녀를 나무라고 심판했다. 닌안나는 그들에게도 분노를 토하고 소리를 지르는 죄까지 저질렀다. 그리하여 그녀는 두들겨 맞고 고깃덩이처럼 되어 벽에 걸린다.
사흘 낮 사흘 밤이 지나도 닌안나의 몸이 깨어나지 않자, 그녀의 충실한 시종인 닌슈부르는 지시받은 대로 엔릴과 난나에게 찾아가지만 냉정하게 거절당했다. 닌슈부르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엔키는 닌안나를 걱정하여 두 명의 곡(哭)하는 이를 만들어 내었다. 두 명의 곡하는 이는 엔키가 일러준 대로 저승으로 내려가 저승의 여신 에레쉬키갈라를 달래어 닌안나의 혼을 받아내는데 성공하였다. 이들이 닌안나의 영혼이었던 고깃덩이에 생명초와 생명수를 뿌려 되살리는 장면은 우리나라의 버들도령 설화와 상당히 비슷한 이미지이다.
아눈나키 신들은 닌안나가 저승에서 무사히 살아나가는 대신, 그녀를 대신할 자를 저승으로 보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인안나는 그녀를 대신할 자를 잡아가려는 저승사자들을 뒤따르게 한 채로 도시로 돌아가게 된다. 저승사자들은 인안나의 충실한 시종 닌슈부르나, 닌안나의 몸치장을 돕는 가수(歌手) 샤라, 닌안나의 사제 루랄 등을 데려가려고 하지만, 닌안나는 그들의 말을 물리쳤다.
이윽고 닌안나와 저승사자들은 닌안나의 남편인 양치기 두무지를 보게 된다. 아내가 험한 꼴을 당하고 있는 것도 모르고, 두무지는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화려한 의자에 앉아있었다. 화가 난 인안나는 저승사자들에게 두무지를 데려가도록 내주었다. 겁에 질린 두무지는 자신을 총애하는 처남, 인안나의 오빠인 태양신 우투에게 기원하여 달아났다. 저승사자들을 피해 달아난 두무지를 그의 누이인 포도주의 여신 게쉬틴안나가 숨겨주나, 결국은 들켜 두무지와 게쉬틴안나는 각각 반년씩 저승에서 살게 된다.
이 이야기가 의미하는 것은 이렇다. 근동지역에서는 비가 전혀 오지 않는 여름이 되면 양치기들은 양떼를 몰고 들판을 돌아다닐 수가 없다. 그래서 여름의 들판에서는 양치기들의 모습을 볼수 없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양치기들은 다시 들판으로 나서지만, 여름 동안 포도를 따 통에 저장하는 포도 양조장의 일은 끝나버린다. 이것을 양치기 신 두무지와 포도주 여신 게쉬틴안나가 반 년씩 저승으로 끌려가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로 구성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누군가가 저승으로 불려가기 때문에 계절이 바뀐다는, 혹은 계절이 바뀌면 누군가가 저승으로 끌려간다는 식의 이야기는 신화에 제법 많이 보여진다. 그런 이야기들의 원전은 아마도 이 이야기일 것이다.

인안나와 두무지의 저승 이야기는 다른 버전도 있다.
두무지가 죽어 저승으로 가자, 그를 사랑하는 닌안나가 그의 뒤를 따랐고, 사랑의 여신이 사라지자 모든 지상의 동물들이 사랑하고 번식하는 일을 그쳐 멸종할 위기가 벌어졌다. 그리하여 아눈나키 신들은 저승으로 사신을 보내어 인안나와 두무지의 몸에 생명수를 뿌려 살아나도록 하여 데리고 나왔다. 그러자 지상의 모든 것이 다시 번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무지는 완전히 살아날 수가 없어서 일 년의 일정 기간 동안은 저승에 머물러야 했고, 그 기간에는 세상의 모든 풀들이 죽는다 라는 이야기다. 이 버전은 겨울이 생겨난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위의 이야기와 테마와 소재들은 같지만, 이야기의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과연 인안나와 두무지의 관계는 어느 쪽이 진실일까? 역시 학자 분들에게 맡겨 보기로 하자.(웃음)

<< 바빌로니아의 신화 >>

바빌로니아는 수메르의 신화를 계승하였다. 이들의 계승은 그리스의 신화를 그대로 물려받아 이름만 바꾸어 넣은 로마 신화와는 달랐다. 바빌로니아 인들은 수메르 신화를 물려받되, 자신들의 세계관과 자신들의 사상을 접목시켜 유사하면서도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일단 수메르 신화와 바빌로니아 신화는 그 기저 자체가 다르다. 하늘을 시작으로 보았던 수메르 신화와는 달리, 바빌로니아는 최초의 원리를 물로 보았다. 물을 기초 원리로 두는 사상은 원시적인 우주 발생 신화에서 흔한 것이나, 바빌로니아의 초기 도시들이 늪 위에 세워졌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들에게 이 사상은 각별한 의미가 있었을 듯 싶다.

바빌로니아의 신들은 수메르의 신과 많이 일치하지만, 신화 자체가 바빌로니아 인들의 세계관에 맞게 수정된 만큼, 신들의 서열도 수메르 신화에서와는 달라졌고, 아예 담당 분야와 이름도 바뀐 신들도 있다.

최초의 신은 민물의 신 압수(Apsu)와 소금물의 여신인 티아마트(Tiamat)였다. 압수는 물 자체의 인격화된 신으로서 샘은 모두 압수에서 생겨난 것이다. 티아마트는 바다를 인격화한 것으로 세계를 낳은 여성적인 원소를 의미한다. 압수와 티아마트는 용(龍)이었다고도 하며, 이들은 신의 대열에는 끼지 못하는 존재였다고도 한다. 이들 부부는 서로 녹아 섞여 - 결혼하여 - 거대한 두 자식을 낳는다. 이들이 라무와 라하무 였다.
사악한 뱀이었다는 라무와 라하무는 남성의 근원인 안샤르(Anshar)와 여성의 근원인 키샤르(Kishar)를 낳았다. 이들이 나타내는 남성성과 여성성은 각각 하늘과 땅의 세계를 상징했다. 이것은 후에 그리스에서의 우라노스와 가이아의 원형이 된다.
안샤르와 키샤르는 하늘 아누를 낳는다. 아누는 이름에서 볼수 있듯이 수메르의 하늘 신 안의 변형이었다. 그는 하늘 높은 곳에서 거주하며, 모든 신들의 수장(首長) 역할을 했다. 바빌로니아의 신화에서 에아나 마르둑 등의 업적에 밀리고 있지만, 그는 부동의 왕이며 법관으로서 권력과 정의의 상징이기도 했다.
아누의 아들인 에아는 이전의 누구보다도 빼어난 신이었다. 에아는 수메르 신화에서 엔키의 변형으로서, 물의 신이었다. 에아가 관장하고 있는 물은 샘과 강-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민물이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총명했으며, 예지의 신이기도 했다. 지혜의 신 엔키는 침착하고 좋은 용도로 그 지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던데 비해, 에아는 북구 신화의 로키를 연상시키는 비열한 꾀를 짜내는 음모가에 가까웠다.
에아가 담키나를 신부로 맞이하여 낳은 아들은 마르둑(Marduk)으로 그는 물의 풍요함을 인격화 한 신이며 농경의 신이라고 한다. 태어난 첫날에 이미 성인이 된 그는, 후에 티아마트를 쓰러뜨림으로서 신들중 최고 위에 올랐다. 마르둑은 우주를 조직하고 운행케 했으며 인간의 창조주 이기도 했다.
그의 모습은 풍요함의 상징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 엔키는 자신의 맏아들이 너무나도 자랑스러운 나머지 그에게 인간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당당한 형상을 부여하였다. 마르둑은 눈과 귀를 각각 4개씩 가지고 있었으며, 그가 말을 하면 입술에서는 불이 쏟아져 나왔다. 그의 키는 어마어마하게 컸으며, 다른 신들의 열 배에 달하는 후광을 발하는 신이었다. 현대인들에게는 거대 괴수 쯤으로나 보일 법한 모습이지만, 고대 바빌로니아 인들에게는 상당히 두려운 위용이었을 것이다. 무엇이든 해내는 만능 신. 그것이 바로 마르둑의 이미지였다.
벨은 수메르의 엔릴이 변형된 모습이었다. 수메르 신화에서는 막강한 힘을 자랑했던 그이지만, 바빌로니아 신화에서는 그 모습이 상당히 위축되었다. 그는 여전히 바람과 대기의 신이었지만, 이제는 대지의 주인으로만 머물러야 했다. 벨은 무기로 홍수와 폭풍을 부렸다고 하는데, 이 이미지는 점차 확장되어 후에는 자연의 여러 파괴력을 상징하는 신이 되었다. 벨이 제우스의 원형이 된 신이 아닐까 싶다. 벨은 마르둑과 동일한 신이라는 설도 있다.
신(Sin)은 수메르의 달 신 난나의 변형으로, 위대한 마님 닌가르와의 사이에서 태양신 사마쉬와 금성 여신 이슈타르를 낳았다. 초생달은 그의 관(冠)이라고 전해진다. 그는 최초로 시간을 나눈 신이라고 한다. 그가 나눈 시간개념은 월력이 되었다.
이륜전차를 타고 하늘을 일주하는 태양신 샤마쉬는 그리스 신화에서의 아폴론의 원형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는 용기의 신이었으며 예언의 신이었다. 또한 어둠의 세력인 악을 물리치는 그의 광채는 그에게 정의의 신이라는 칭호를 주었다.
이슈타르는 금성의 여신으로 샤마쉬의 여동생이다. 그녀는 수메르의 금성 여신 인안나의 모습을 그대로 이어받은 여신이었다. 바빌로니아에서 발음이 바뀐 두무지는 탐무즈라는 이름이 되어, 여전히 그녀의 남편 역할을 하고 있다. 이슈타르는 후에 전쟁의 여신으로 바뀌어 앗시리아에서도 특별히 존경받는 여신이 된다.

이제 수메르 신화 파트에서 그러했듯이 몇가지 바빌로니아 신화를 가볍게 살펴보도록 하자.

* 세계와 인간의 창조 *

아직 하늘도 땅도 존재하지 않았던 태초의 세상에는, 물과 물을 지배하는 두 존재 밖에 없었다. 민물은 압수(Apsu)의 것이었으며, 소금물은 압수의 아내 티아마트(Tiamat)의 소유였다. 초기에 이 둘은 함께 뒤섞여 있었다. 이들은 용이었다고 전해지며, 신의 대열에는 속하지 못했다.
이 둘이 처음으로 몸을 합하여 낳은 두 자식이 남자인 라무와 여자인 라하무였다. 라무와 라하무는 다시 결합하여 안샤르와 키샤르를 낳았다. 이 둘은 최초의 신이며 큰 비중은 없으나 다른 신들의 조언자 역할을 했다.
안샤르와 키샤르는 하늘 아누를 낳았고, 아누는 다시 땅 에아를 낳았다.
이렇게 신들이 차츰 늘어나면서 세계는 그들의 소음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태초로부터 조용히 살아오던 압수와 티아마트 로서는 고역이었다. 그러나 묵묵히 참아내는 티아마트에 비해, 압수는 "해가 있는 한 나는 쉴 수도 없고, 밤이 계속되는 한 나는 잠잘 수도 없다." 라며, 이제껏 태어난 신들을 모두 없애버리기로 결심했다. 아이들이란 모두 어른을 귀찮게 하는 법이다- 라며 만류하는 티아마트의 말도 소용없이 압수는 신들을 모두 죽이기로 결심했다. 그에는 압수의 시종인 난쟁이 뭄무의 속삭임이 큰 효과를 발휘했다. 간신이라는 존재가 이 시기부터 있었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다. 아니, 인류 역사상 간신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일까?
총명하고 지략이 뛰어난 신 에아는 압수의 생각을 눈치채고 물에 주문을 걸어 압수와 난쟁이 뭄무가 마시도록 권했다. 주문이 걸린 물을 마신 압수와 뭄무는 곯아떨어져 잠들어 버렸다. 에아는 재빨리 압수의 왕관과 후광, 옷을 벗겨내어 자신이 걸쳤다. 이것은 압수의 권능을 그가 빼앗아 차지했음을 말해준다. 그 후에 에아는 압수를 죽이고, 뭄무를 지하감옥에 가두어버린다.
지략만으로 적을 해치워버린 에아는 기쁨에 젖어 담키나를 신부로 맞이하여 신방을 차렸다. 이때 태어난 것이 신들 중 가장 강력한 자, 왕 중의 왕 마르둑 이었다. 마르둑은 여신들의 젖을 먹으며 그녀들의 위엄과 권력을 같이 흡수했다. 태어난 날, 다 자라난 맏아들 마르둑을 본 에아는 너무나도 기뻐 자신의 장남에게 신성을 두 배로 주었다.
원래가 지나치게 사랑받으며 자라난 아이는 성격이 비뚤어지는 법. 신인 마르둑도 예외는 아니어서 자라나며 엉뚱한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그의 장난은 점점 난폭해지고 심해졌다. 결국 그의 장난에 질려버린 몇몇 신들은 티아마트에게 찾아가 불평을 털어놓았다. 죽어버린 남편을 위해서는 아무 일도 못했을지라도 아이들을 위해서는 무언가 해달라는 이야기에, 결국 압수의 죽음에도 움직이지 않았던 티아마트는 마르둑과 싸울 것을 결심한다. 이리하여 신계에는 사소한 이유로부터 시작되어버린 (대부분의 신화들에 가족개념은 실종되어있지만) 콩가루 가족 전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티아마트는 마르둑이 강력한 힘과 신성을 가진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군대에 힘을 더해줄 거대한 뱀, 용, 맘모스, 전갈, 커다란 사자, 폭풍의 악귀 등의 열한 종의 괴물을 창조해내었다. 그리고나서 티아마트는 킹구라는 신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이번에도 에아는 재빠르게 티아마트의 계획을 눈치채었다. 그는 안샤르에게로 달려가 티아마트가 신들에 대해 반란을 꾀하고 있다며, 그녀가 전쟁준비를 하고 있음을 알렸다. 그의 말에 속아버린 안샤르는 에아와 아누를 차례로 티아마트에게로 보내어 그녀를 달래려 하지만, 두 신은 티아마트의 모습을 보자 겁에 질려 달아나버리고 말았다.
마침내 안샤르는 마르둑을 보내어 티아마트를 달래보고, 그래도 안되면 공격을 하고자 했다. 에아는 아들 마르둑을 은밀히 불러 티아마트의 전쟁준비에 관한 이야기를 모두 말해 주었으나, 여기서도 그녀의 공격이 마르둑을 향한 것이라는 이야기는 쏙 빼놓고 단지 하늘에 대한 모반이라고만 설명하였다.
마르둑은 머리회전이 빨랐으며, 야심도 컸다. 안샤르의 앞으로 나아간 그는 자신이 티아마트를 물리쳤을 경우, 자신을 신의 우두머리로 삼아 달라는 요청을 하였다. 신들의 회의에서 그 요청이 받아들여지자, 마르둑은 활과 번개로 무장하고 군대를 모아 티아마트와 전쟁을 벌였다.
마르둑의 당당한 모습을 보자 총사령관인 킹구는 겁을 먹고 달아나버리고, 결국 티아마트와 마르둑의 한판으로 싸움이 벌어진다. 마르둑은 그물을 던져 티아마트를 사로잡은 후 그녀의 입안을 향해 바람을 불어넣었다. 바람으로 배가 가득차버린 티아마트는 입을 다물 수 조차 없었다. 그때 마르둑은 그녀의 배에 활을 쏘아 티아마트의 목숨을 빼앗았다.
티아마트의 거대한 시체는 마르둑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러내었다. 그는 티아마트의 사체를 반으로 갈라, 한쪽으로는 하늘을 만들었다. 그리고 남은 반 쪽으로는 물을 덮을 덮개를 만들어 그것을 대지로 삼았다. 약속대로 티아마트를 쓰러뜨렸으므로 최고 신이 된 마르둑은 각 신들에게 역할을 나누어주어 아누를 하늘의 신으로, 엔릴을 하늘과 땅 사이 대기의 신으로, 에아를 땅 아래 물의 신으로 삼았다. 마르둑은 다른 모든 신들에게 자리를 정해주었으며 하늘에 별을 새겨 넣고 천체 운행의 규칙을 세웠다. 그리고 그는 티아마트를 쓰러뜨린 큰 활을 하늘에 올려 누구든지 볼수 있도록 걸어놓았다.
이 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많다. 무지개라는 설도 있지만, 별자리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며, 별자리 중에서도 오리온 좌의 사냥꾼이 들고 있는 활이 그것이라는 것이 가장 유명한 이야기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세계는 한동안은 잘 돌아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신들이 마르둑에게로 와 불평을 시작했다. 참으로 불평이 많은 신들이다! 신들이 마르둑에게 간언한 요지는, 자신들이 일을 하는 동안에 누가 자신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자신들에게 봉사하겠느냐는 것이었다. 마르둑은 그들의 말을 받아들여 피와 뼈로 인형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아버지인 에아에게 도움을 청하자, 에아는 새로운 피와 뼈를 만들 것 없이 이미 있는 것을 사용하라는 대답을 해주었다.
마르둑은 티아마트와의 전쟁에서 잡은 포로들을 데려다가 모반의 우두머리가 누구였는지를 물었다. 비록 전장에서 도망은 쳤었으나 명목으로는 총사령관이었던 킹구가 당연히 지목되고, 마르둑과 에아는 킹구의 목을 잘라 죽인 후 그의 피와 뼈를 이용하여 인간을 만들어 내었다.
신들은 마르둑이 인간을 만들어준 것을 기뻐하여 그를 위한 도시인 바빌론을 세우고, 그 중앙에 마르둑의 신전을 세워 그에게 경의를 표하였다.

* 큰 홍수 *

큰 홍수의 이야기는 수메르 신화에서, 그리고 성서에서 보여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수메르의 큰 홍수 이야기는 그대로 바빌로니아에 전해진 모양으로, 구원받은 이가 지우쑤드라 왕이 아니라, 우투나피시팀이라는 선한 사람이라는 것 정도가 차이이다.
수메르의 엔키가 했듯이 신들이 노하여 인간을 모두 없애기로 했으니 대비를 하라는 에아의 조언을 들은 우투나피시팀은 길이 100규빗, 폭 100규빗의 커다란 배를 짓는다. 물이 스미지 않게 역청으로 칠한 배가 완성되자 그는 가족과 식량, 온갖 종류의 짐승들을 한 쌍 씩 짝지어 배에 태웠다.
여섯 날 여섯 밤 동안 비가 내리고 날이 개자, 우투나피시팀의 배는 니시르 산 정상에 걸려 멈추었다. 배가 정상에 멈춘지 7일이 지나자 우투나피시팀은 비둘기 한 마리를 날려보낸다. 내려앉을 땅을 발견하지 못한 비둘기는 다시 배로 돌아온다. 다음날 날려보낸 제비 역시 다시 돌아온다. 세 번째 날 날려보낸 까마귀는 돌아오지 않았다. 배에서 나가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우투나피시팀은 배에서 내려 신들께 감사의 제사를 지낸다.
여기까지는 수메르 신화와 별 다를 바가 없다. 우투나피시팀이 신들의 축복으로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도 수메르 신화와 똑같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석판의 이야기에서 재미있는 후담이 나온다.
수메르의 신화적 영웅이었던 길가메쉬 서사시는 그대로 바빌로니아로 전해져 여전한 영웅으로 받들어지는데, 길가메쉬는 충직한 친구 엔키두가 죽은 후,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불로불사의 방법을 찾아 세계를 배회한다. 드디어 영생을 살고 있다는 우투나피시팀의 소문을 들은 길가메쉬는 죽음의 바다 건너에 있는 섬으로 그를 찾아간다.
길가메쉬의 애원에 우투나피시팀은 대홍수의 이야기를 하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축복을 받아 영생을 얻게 되었다- 가 아니라, 배에서 가축과 가족들을 내리게 하고 있는 동안 배에 그와 그의 아내만 남았을 때,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여 죽음의 바다를 건너 그 섬까지 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신들은 우투나피시팀과 그의 아내를 그 섬에서 영원히 살도록 했다는 것이다.
영생을 가지고 섬에서 아내와 단 둘이 외롭게 살아간다는 것은 현대인의 관점으로 볼 때는 상당히 끔찍한 일일수도 있겠다. 과연 이것이 신들의 축복일지 저주일지.

* 아다파 이야기 *

지혜의 신 에아는 심심풀이로 인간의 형상을 하고 신의 지혜와 힘을 가진 생물을 만들어낸다. 아다파라 이름 붙여진 이 자는 모든 기술에 숙달하여 있었으며,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현명하였고, 순진하며 청결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어느날 아다파는 자신의 주인인 에아에게 바치려고 고기잡이를 나갔다. 그러나 그가 바다로 나가자 거센 파도와 바람이 일었다. 바람의 새가 날개짓을 하여 강한 바람을 일으킨 탓이었다. 배가 뒤집혀 바다에 빠진 아다파는 홧김에 바람의 새를 향해 저주를 퍼붓는다. 그러자 그의 저주대로 바람의 새는 날개가 부러져버리고 만다.
그 후로 칠일동안 바람은 한점도 불지 않고 잠잠했다. 이상하게 여긴 하늘의 신 아누는 조사를 해보고 아다파가 바람의 날개를 부러뜨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화가 난 아누는 당장에 그를 잡아들이도록 명령한다.
정보에 빠른 에아는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미리 이 일을 알아채고는 아다파를 불러 조언을 했다. 아다파는 자신의 주인이 말해준 대로 머리에 재를 뿌리고 찢어진 옷을 입고 - 머리에 재를 뿌리고 옷을 찢는 것은 초상이 났거나, 매우 슬픈 일이 있을 때의 근동 풍습이다 - 하늘의 사자가 오기를 기다렸다. 하늘의 사자에게 붙잡혀 하늘의 법정으로 끌려가던 차에, 아다파는 하늘 문 앞에 서있는 두 신을 만나게 되었다. 두 신은 그의 차림을 이상히 여겨 묻는데, 아다파는 에아의 조언대로 대답했다. 탐무즈 신과 기쉬지다 신이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었기 때문에 애통하여 상복을 입은 것이며, 그들을 조문하고 신께 간언하여 두분을 돌아오게 하려 한다 라는 대답이 그 것.
바로 그 탐무즈 신과 기쉬지다 신 - 이름만 보아도 짐작이 가겠지만, 수메르 신화에서의 양치기 두무지와 그의 누이인 포도주의 여신 게쉬틴안나가 바로 이 둘이다. 이난나의 변형인 이슈타르가 남편과 그의 누이를 저승으로 보내어 자신의 생명을 구하는 이야기는 바빌로니아에도 있는데, 탐무즈와 기쉬지다 신이 지하에 있는 저승이 아니라 하늘에 있다는 것은 어찌된 까닭인지 알 수 없다 - 이었던 두 신은 아다파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게 되었다.
이윽고 재판이 시작되자 탐무즈 신과 기쉬지다 신은 아다파를 적극 변호하고 나섰다. 그에 마음이 풀린 아누는 두 신과 마찬가지로 아다파가 마음에 들었다. 그는 아다파를 신의 대열에 올려주고자 하여 그에게 신의 음식과 신의 물을 내주었다.
그러나 아다파는 에아가 명한대로 아무 것도 먹거나 마시지 않았다. 기실, 신의 음식과 신의 물을 마신 자는 불사의 생명과 신성을 얻어 신과 동급이 되는데, 자신이 만들어낸 종복이 자신과 같은 대열에 서게 되는 것을 두려워 한 에아는 미리 그것을 막고자 아누가 내주는 음식은 죽음의 음식이니 절대로 먹어서는 안된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아누는 아다파가 역시 인간에 지나지 않는 수준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를 지상으로 돌려보낸다. 대신 그에게 선물을 내려주는데, 그것은 아다파가 질병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며(의학 기술을 가르쳐 주었다는 설도 있다), 그는 군주가 될 것이며, 그의 자손은 대대로 왕이 될 것이며, 그가 사는 도시 에리두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입지 않을 것이라는 축복이었다.
이리하여 아다파는 앗시리아의 신화에서는 의술의 시초로 남게 되었고 많은 축복을 얻었지만, 결국 영생과 신성은 놓치고 말았다.
에리두가 실존한 도시인지, 과연 누구에게도 침략이나 피해를 입지 않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고 바빌로니아는 B.C 1600년경 카시트(Kassite)에 의해 멸망했으며, 칼데아 인들에 의해 재건된 신 바빌로니아 왕국은 B.C 550년경에 페르시아 인들에 의해 다시 멸망하였다.

<< 맺음 >>

인류의 역사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되었다. 가장 오래된 신화를 가진 이들 지역의 사람들은 놀랄만큼 명민했다. 지규라트를 세우고 공중정원을 만들었다는 유명한 이야기를 들지 않아도 이들이 이룬 많은 업적은 상당하다. 이들은 문자를 만들어 신화와 이야기와 법을 기록했으며,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죽은 자를 매장하는 풍습을 가졌으며, 바퀴가 달린 수레를 사용하였고, 직업도 상당히 세분화 되어있었다. 기원전 2천년전에 많은 학교를 세워 교육을 실시했고, 백과사전이나, 경제 전문 용어 사전 따위까지 있었다고 하니 대단하지 않은가.
특히나 이들 문명에 연관된 선조들은 교육열이 대단했다는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이들은 학교에서 자신들의 신화를 배웠고, 법을 배웠다. 점토판에 새겨진 상형문자와 쐐기문자로 기록된 신화와 법은 지금까지 남아, 우리들에게 최초의 문명인들의 생활과 사고가 어떠하였는지를 보여준다.

수메르의 신화는 직선적이고 본능적이다. 이야기의 주제는 대개가 누구의 탄생, 무엇의 탄생이다. 세계의 창조와 구성에 대해 어떠한 지식도 가지지 못한 그들은 그런 식으로 세계를 이해할 기본 골조를 세워내었다. 이것을 물려받은 바빌로니아 인들은 좀더 세분화하고 묘사를 추가하여 이야기에 진실성을 부여했다. 또한 그들의 이야기는 수메르에서 건성으로 건너뛴 부분에도 설명을 붙이고 있다.
수메르 신화가 자연에 대한 - 신에 대한 - 두려움 앞에 거의 존재감이 없는 인간의 모습을 그렸던 데 비해, 바빌로니아의 신화는 약간은 정신이 깨어난 인간을 그리고 있다. 물론, 그러한 인간들 조차도 신에게는 당해낼 수 없었지만.

메소포타미아의 신화를 상당히 많이 물려받는 것은 그리스 신화다. 그리스 신화를 메소포타미아의 두 신화들과 비교해서 읽어보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을 것이다. 나라가 바뀌면서 변화해가는 각 신들의 관계만 분석하여도, 인간들의 정신과 사고가 어떠한 방식으로 발전되었는지를 한번쯤 정리해볼 수 있을 듯 하다.

-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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