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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론 문제의 세계관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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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선장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댓글 1건 조회 1,846회 작성일 01-02-1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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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론 문제의 세계관적 고찰

김영식


이 글은 제1회 청년 창조 학술 모임 자료집에 실렸습니다.


서론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많은 생물들이 존재한다. 생물학자들은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종의 총 수가 아직 제대로 연구되지 못한 미생물의 영역까지 다 포함한다면 수천만 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1) 이처럼 생물의 다양성이 우리의 경험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매우 다양하게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생물 종들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을까? 이것에 대한 답변은 크게 두 가지가 있고, 흔히들 창조론과 진화론으로 알고 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은 앞으로 과학이 보다 많이 발전하게 되면 결국에는 이 논쟁도 끝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우선 단순히 창조론와 진화론 사이의 대립으로 여기는 것은 문제가 있다. 보다 근본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때 기원론에 대한 문제는 '세계관의 대립'의 문제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오늘날 기원론에 관련된 논쟁의 본질은 유신론적 세계관---특히 기독교적 유신론---과 무신론적인 자연주의와의 대립이라고 볼 수 있다.2) 그러므로 세계관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단순히 과학적인 사실의 축적만으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이 글에서는 기원론에 관련된 두 가지 세계관에 대해서 살펴보고 이것이 미친 영향에 대해서 고찰해 보고자 한다.

본론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대립되는 각각의 세계관들에 대해서 간단하게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1. 기독교 세계관


기독교 세계관이 무엇인지를 정의하고자 할 때의 문제점은 '이것이 바로 기독교 세계관이다'라고 제시해 줄 수 없을 정도로 기독교 내에서도 많은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많은 기독교인들이 존재하지만 아마도 각자가 조금씩은 서로 다른 기독교 세계관을 갖고 있을 것이다. 기독교 세계관이 이처럼 다양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다원주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기독교 내부에서 과거와 같은 절대적인 기준을 상실해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3) 여기에서 기독교 세계관이 무엇인지를 전반적으로 다루는 것은 무리가 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제한적인 의미에서의 기독교인들4)이 가지고 있는 기독교 세계관의 가장 기본적인 틀에 대해서만 논하고자 한다. 이 틀은 바로 개혁주의적 기독교 세계관의 틀로서 제시되고 있는 '창조-타락-구속'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모든 죄를 사하셨음을---자신을 구속하셨음을---믿는다. 이것은 자신이 그 이전에는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이었으며 그 상태를 스스로는 극복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시인을 바탕으로 성립한다. 그런데 성경에서 그러한 구속이전의 전적인 타락5)의 기원을 찾다보면, 창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창세기의 중요성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말하는 타락'이 없었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구속' 역시 의미가 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한편, 세상이 타락했다면 타락하지 않았던 그 이전의 상태도 존재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창조 직후의 상태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상태가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창조의 상태에서 인간으로 인해 창조세계가 전적으로(totally) 타락하게 되었으며 이런 타락의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신 것이다.

정리하자면 창조가 없으면 타락도 없으며 타락이 없다면 구속도 없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구속하셨음을 믿는 기독교인들은 창조와 타락도 기독교 세계관의 기본 틀로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개인적으로 창세기에 기록된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것은 하나님께서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를 구속하셔야 하는 이유를 창세기가 제시해 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창세기에는 현대의 지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창세기의 역사성(특히 1장에서 11장까지의)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문자 그대로의 사건은 아니더라도 그 내용과 유사한 사건이 역사적으로 일어났을 가능성을 무시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 본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자신이 구속되었음을 믿는 기독교인들은 창세기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비역사적이라는 의미로서의 신화6)를 기록한 책으로 창세기를 다루는 것에 대해서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결코 쓸 데 없는 일이 아니다.7)

정리하자면 기독교 세계관의 가장 큰 특징은 인간 이전에 존재하신 절대자로서의 하나님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절대자이신 하나님께서 인간과 지구와 우주를 포함하는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고 인간의 죄로 인해 전적으로 타락된 세상을 구속하신다는 것이다.

2. 자연주의 세계관


다음으로 오늘날 과학을 비롯한 많은 학문의 기본적인 바탕이 되는 자연주의 세계관에 대해서도 고찰해 보자. 자연주의 세계관에 대한 자세한 논의들은 다른 책들을 참고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대략적인 이야기만 다루도록 하겠다.8)

첫째, 자연주의 세계관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물질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모든 현상들은 물질들과 물질들간의 상호작용의 결과이다.

둘째, 자연주의 세계관에서는 우주는 닫혀 있고 그 닫혀진 우주 속에서는 모든 것이 인과율을 따라 원인과 결과가 분명하게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우주가 닫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주를 초월하는 존재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닫힌 우주 밖에 존재하는 어떤 존재는 정의상 닫힌 우주 내부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주는 닫혀 있고, 그 속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들은 자연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이것이 우리가 보고 접하는 세상이다. 서로 사랑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며, 생각하고 토론하는 우리 자신 역시 이러한 물질과 상호작용의 결과일 뿐이다.

자연주의 세계관에 의하면 지구를 포함한 모든 천체들 모두 다른 물질들과 여러 가지 상호작용을 하고 있고 이런 작용을 통해서 새로운 별들이 탄생하기도 하고 수명이 다한 별들은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9) 현재 존재하는 모든 무거운 원소들은 별속에서 핵융합을 통해 만들어졌으며 초신성 폭발을 통해서 우주로 방출되었다. 이렇게 방출된 물질들은 우주를 떠돌다가 다시 여러 가지 상호작용을 하면서 새로운 별을 형성한다. 우리의 태양도 그런 과정 속에서 약 50억년 전에 형성되었고, 이 때 함께 형성된 지구는 자연적인 과정을 통해서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변해왔다. 그 과정중에서 물질들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원시 생물이 탄생했고, 그 원시 생물을 기반으로 해서 많은 생물들이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풍부한 생물의 다양성을 이루게 되었다. 이것이 자연주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과학이 말하는 우주의 기원, 인간의 기원, 생명의 기원, 생물의 다양성의 기원이다.10)

이처럼 자연주의 세계관의 특징은 모든 것을 물질과 그 물질들간의 상호작용만으로 설명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은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다. 특히 초월적인 존재인 하나님을 개입시키는 것을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다.

3. 자연주의 세계관의 영향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자연주의 세계관을 학문, 특히 자연과학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으로 여긴다. 자연을 논함에 있어서 하나님을 포함시키는 것 자체를 비과학적인 태도로 간주하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이론물리학자이자 신학자인 존 폴킹혼(John Polkinghorne)은 그의 책 『과학시대의 신론』(Belief in God in an age of Science)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재 생물학계 내에는 특별히 유기체가 아닌 분자생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 종교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감이 편만해 있으며, 특히나 일반 교양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출판물들을 통해 그러한 적대감이 자주 표현되고 있다(신앙심 깊은 과학자가 일반 교양인들을 대상으로 과학을 진술하면서, 자신의 신앙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일은 올바른 일로 간주하지 않으면서 --- 아울러, 종교와 과학에 관한 이야기를 당당하게 책으로 펴내는 것도 지지되지 않는데 --- 반면, 무신론자가 그와 동일한 과학적 이야기를 저술할 때 자신의 무신앙을 드러내는 것을, 정당하게 인정받는 것은 정녕 우리 사회의 문화가 지닌 기묘한 현상이다.11)

그러나 생명과 우주의 기원과 같은 문제는 단순히 과학적인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과학이 논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분명히 과학의 한계로 인해 다룰 수 없는 영역도 존재한다. 그렇지만 오늘날은 대부분의 경우 과학이 말하는 것만이 전부인 것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리고 기원론에 있어서 과학으로 말할 수 있는 문제 역시 자연주의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것만 옳은 것으로 여겨진다. 창조론은 과학의 영역에서는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오늘날의 과학 영역은 자연주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자연주의 세계관에서는 하나님과 같은 초월적인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자연주의적인 방법론을 사용하는 과학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연계에 간섭하지 않으신다'---표현을 바꾸자면 '하나님이 없다'---는 전제하에 이론을 전개하고 있지만, 그러한 전제는 결코 검증된 것도 아니고 검증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날에는 그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한 이론만을 진리로 여길 것을 강요하고 있다.12)

구체적으로 이것은 미국의 경우를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1980년대에 미국의 창조론 단체들이 공립학교에서 진화론 교육과 함께 동등한 시간동안 창조론 교육을 시키도록 하는 법률안을 주 의회에서 통과시킨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법안은 곧바로 위헌성13)이 제기되었고 법정 논란 끝에 대법원에 가서는 결국 패소하였다. 패소한 이유를 보면, 진화론은 과학이지만 창조론은 종교이기 때문에 공립학교에서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인데, 이런 판결의 배후에는 과학은 우리 모두가 사실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지만, 종교는 일부 사람들만이 믿는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리고 이런 전제에는 누구나가 보편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사실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신념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것을 사실로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어떠한 믿음이 있어야만 한다.14) 뒤에서 다시 논하겠지만 자연주의 세계관 역시 기본적으로 믿음을 필요로 한다.

오늘날 학문에 있어서의 자연주의 세계관의 영향은 절대적이다. 오늘날의 학문은 어떠한 대안적인 세계관의 수용도 거부한다. 자연주의 세계관이 이렇게 주도권을 갖고 있는 이유는 첫째로 자연주의는 객관적이라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15)

그러나 오늘날의 과학철학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가장 객관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과학활동 조차도 인간의 주관이 필연적으로 개입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객관적으로 보이는 자연주의를 바탕으로 한다고 할지라도 결국에는 인간이 하는 일이기에 100%의 객관성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두 번째 이유는 위에서 간단하게 얘기했던 것처럼 자연주의는 사람들이 보기에 인간과 우주의 기원에 대한 나름대로의 설명 체계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관된 세계관인 것처럼 보인다.16)

그러나 자연주의 세계관만으로는 모든 것을 다 설명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자연주의 세계관은 인간이 인간을 귀중하게 여길만한 어떠한 근거를 제공했는가? 자연주의 세계관에 의하면 인간이 독특하다면 개도 독특하고, 고양이도 독특하다.

실제로 자연주의에서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를만한 이유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에 와서는 아예 인간이 동물과 전혀 다르지 않은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단지 "털 없는 원숭이"일 뿐이다.17) 이런 논리는 인간 역시 자연적인 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에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전혀 특이하지 않은 일이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바꿔 말하면 인간이 존재하는 것이 특이하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도 특이하다. 핵전쟁이 일어나 인류가 멸망을 하더라도 자연과정의 일부일 뿐 특이한 사건이 되지 못한다. 이처럼 자연주의 세계관에서는 인간이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를 제공해 주지 않는다. 인간이 존재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 더 가치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게다가 자연주의 세계관에서는 인간을 단지 분자들의 집합이며, 복잡한 화학공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긴다. 그러나 인간이 정말로 단지 물질들로만 이루어져 있고,18) 그 물질들에 작용하는 법칙들의 작용의 결과라면, 인간의 이성이나 인격 역시 어떤 화학반응에 의해서 진행되는 어떤 한 과정을 지칭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이성이 단지 어떤 특정한 화학반응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러한 화학반응에 의해서 알게된 사실들을 우리가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는가? 즉, '인간은 기계이다'라는 것이 과학이라는 수단을 사용한 인간의 이성---두뇌속에서 일어난 어떤 화학반응---이 내린 결론이라면 그것은 기계가 내린 결론이고, 그러한 결론이 옳은지 여부를 그 기계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조차 의심스럽게 된다. 우리는 자신이 안다고 생각한 것이 진실인지 아니면 환상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인간이 기계인지 아닌지 조차 불확실하게 된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깊은 신뢰에서 출발했던 자연주의가 결국은 인간의 이성을 불신하게 만들었고, 이런 결과가 허무주의로 가는 하나의 촉진제 역할을 하게 되었다.19)

인간을 출발점으로 삼게 되면 결국에는 그 모든 것들이 불확실하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이 확실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인간외의 또 다른 어떤 기준이 필요하다. 실존주의자였던 사르트르는 "만일 하나의 유한점(有限點)이 하나의 무한한 준거점(reference point)을 가지지 않으면 그것은 무의미하고 부조리한 것이다"라고 말했다.20)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기독교적 세계관처럼 아예 처음부터 초월자로서의 하나님을 전제로 하는 것이 학문을 함에 있어서 오히려 더 적절할 수도 있다.

끝으로 자연주의 세계관에서 말하는 것처럼 인간이 단지 우연의 산물일 뿐이라면, 우리는 선과 악을 구분할 수조차 없게 된다. 일부 자연주의자들은 "존재하는 것이 선한 것이다"라고 말한다.21) 그러나 악 역시 존재하는 것이기에 선이라는 이야기가 되므로, 이것은 궁극적으로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주의적인 세계관만을 기반으로한 기원론을 받아들이다 보면 윤리적·도덕적인 기준을 찾을 수가 없다.

4. 근대과학과 기독교 세계관


오늘날처럼 자연주의 세계관만을 기반으로 해서는 과학 활동을 통해서 얻은 지식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과학이 존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에 대해서 프란시스 쉐퍼는 "화이트헤드(Whitehead)와 오펜하이머(Oppenhimer) 역시 근대 과학이 기독교의 세계가 아니면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22) 계속해서 그는 "화이트헤드가 매우 훌륭하게 지적했듯이, 초기 과학자들은 모두가 우주는 이성적인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으므로 우주는 이성에 의하여 탐구될 수 있다고 믿었다"23)고 말한다.

실제로 근대 과학혁명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오, 뉴턴 등은 모두 기독교인들이었다. 물론 이들 네 사람의 구체적인 신앙 배경은 모두 달랐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는 로마 카톨릭이었고, 케플러는 루터교, 그리고 뉴턴은 성공회였다. 게다가 뉴턴의 경우는 삼위일체를 비공식적으로는 믿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들 모두 '기독교적인 문화'에 강하게 영향을 받았으며, 그들 스스로는 죽을 때까지 자신들을 기독교인으로 알고 있었다.24)

물론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도 오늘날 과학자들이 생각하는 여러 가지 개념들을 비슷하게 생각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들의 유산으로는 자연철학의 한계를 넘어 근대과학으로 도약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에 등장한 이 네 명의 사람들은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질서있게 만드신 세상을 하나님께서 주신 이성으로 탐구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이성을 통해서 얻은 지식이 확실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고민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법칙을 만드시고 그 법칙을 붙들고 계셨다고 믿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자연의 균일성25)이라는 과학의 전제를 아무런 문제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런 확신 속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업적으로 케플러와 갈릴레오가 이어받고 그것을 다시 뉴턴이 깨끗하게 정리함으로써 그들은 실제로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질서의 일부분을 찾아 낼 수 있었다.

뉴턴이 과학에 있어서 해 놓은 일은 업적의 양으로만 볼 때는 굉장히 작은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룬 일련의 성공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뉴턴처럼만 하면 우리도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뉴턴이 했던 방법론은 수용했지만 그런 뉴턴의 방법론의 근거를 제공해 주었던 뉴턴의 신앙적인 배경을 수용하는 것은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프랑스에 뉴턴의 『프린키피아』(Principia)를 가지고 온 볼테르(Voltaire)는 뉴턴식의 방법을 선전하고 다녔으면서도 기독교 대해서는 비우호적이었다.

그 이후로 근대과학의 성립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기독교 세계관은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자연주의 세계관으로 완전하게 교체되었다.

5. 학문과 믿음


과학은 여러 가지 전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과학적인 방법론으로는 그런 전제를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전제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과학 그 자체의 방법론적인 한계를 넘어서 주변의 다른 세계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앞절에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자연 과학은 자연이 균일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자연이 균일하다는 것은 자연 법칙이 시간이나 공간에 따라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서 오늘 성립하는 법칙은 어제도 성립했고 미래에도 성립한다는 것이며, 지구에서 성립하는 법칙은 수천 광년 떨어진 우주 저편에서도 성립한다는 것이다.26) 이러한 과학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오늘날 모든 과학자들이 아무런 의심 없이 수용하고 있는 것이지만, 자연주의나 그 어떤 과학도 이런 전제가 옳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없다.

앞에서 살펴 본 것처럼 근대 과학이 성립하는데 중대한 기여를 한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이었으며,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기독교적인 문화에 강하게 영향을 받고 있었다. 따라서 당시에는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근대 과학의 전제들을 수용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자연주의 세계관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자연주의 세계관에서는 그러한 전제들이 옳다는 것을 지지하는가? 답은 당연히 '그렇다'이다. 자연주의 세계관은 모든 자연현상이 외부의 간섭이 아닌 닫힌 체계안에서 서로간의 인과율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말하고 있다. 자연주의 세계관이 바라보는 자연은 질서있고 합리적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어떤 근거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 역시 근본적으로 믿음을 요구한다. 즉, 자연주의 세계관도 결국은 믿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 세계관이 신에 대한 믿음을 요구하기 때문에 학문 영역에 있어서는 자연주의 세계관보다 더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명백하게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주의 세계관 역시 결국은 믿음이 필요하다. 인간이 하는 모든 학문들은 기본적인 믿음이 없이는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따라서 기독교적인 과학, 더 나아가 기독교적인 학문은 결코 주관이 개입된 이상한 것이 아니다. 모든 학문과 과학에는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연주의적인 주관과는 달리 기독교적인 주관은 학문의 여러 전제에 대한 근거를 제공하며, 인간의 이성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를 제공해 준다는 장점이 있다.

결론


"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

(전도서 12장 1절)


지금까지 이 글에서 짧게나마 기독교 세계관과 자연주의 세계관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그 두 가지 세계관이 과학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그리고 오늘날은 자연주의 세계관이 과학의 전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과, 이러한 자연주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했을 때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특히 인간의 기원에 대해서 자연주의적인 접근을 했을 때는 결국은 허무주의적인 사고를 불러오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위의 전도서 12장 1절 말씀은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27)라는 극단적인 허무주의적 선언으로 시작했던 전도서가 마지막 결론부에 이르러서는 사람들, 특히 허무주의에 빠지기 쉬운 젊은이들에게 늦기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충고하고 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기독 청년들에게, 특히 자연주의적인 세계관으로 둘러싸여 있는 학문의 영역에 관련된 달란트를 받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말씀이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생명의 기원 문제는 결코 과학적인 지식의 축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유신론적 세계관과 무신론적 자연주의 세계관 사이의 대립이다. 그러나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학문의 영역에 있어서 결코 자연주의 세계관이 기독교적 세계관보다 우월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근대과학의 초창기에 기독교적인 세계관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근대과학 역시 성립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학문이 오늘날에도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기독교적 세계관에서는 우리의 이성으로 탐구한 결과들에 대한 믿음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게다가 과학의 전제에 대해서 믿을만한 근거를 제시해 주기도 한다.

그동안 기독교적 학문의 가능성에 대한 여러 가지 시도가 있었지만, 구체적인 결과는 아직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이는 기독교인으로서, 특히 학문을 배우는 기독 학생으로서 계속해서 고민해야만 하는 문제이며, 우리 모임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 앞으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논의해 보았으면 한다.

Notes

1.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논의는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의 「생명의 다양성(The Diversity of life)」(까치) 제8장 "탐험되지 않은 생물권"을 참고하라.

2.물론 여기에서 말한 기독교적 유신론도 오늘날 매우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3.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은 그의 책에서 계몽주의 이전의 사회에서는 이단이라는 단어가 절대적인 기준에 반대하는 소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지만, 후기 계몽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이단이 될 것을 요청받는다고 말하고 있다.(「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The Gospel in a Pluralist Society)」, IVP, p.76.)

4.여기에서 말한 제한적인 의미에서의 기독교인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살아계신 하나님으로서 믿고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주의할 것은 이런 정의에 해당하는 사람들만을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한정하는 이유는 '제한적인 의미에서의 기독교인'들은 앞으로 논할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전제를 이미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5.타락은 인간이 했지만, 그로 인해 모든 피조물들이 고통받게 되었다(롬 8:22)는 의미에서 '전적인 타락'이다.

6.이러한 주장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신화가 반드시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의미하는 단어로서의 '신화'를 사용하는 일은 별로 없는 것 같다.

7.프란시스 쉐퍼(Francis A. Schaeffer)의 책 「창세기의 시공간성(Genesis in Space and Time)」(생명의 말씀사)에서는 창세기 1장에서 11장의 의미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논하고 있다.

8.이 부분은 특히 제임스 사이어(James W. Sire)의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 사상(The Universe Next Door)」(IVP) 제4장 "유한한 우주의 침묵 : 자연주의"를 참고했다.

9.별의 죽음이라는 말은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여기서는 별이 더 이상 스스로 빛을 낼 수 없는 상태에 이른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했다.

10.지구에 현재 존재하고 있는 생명체의 기원에 대한 자연주의자들의 입장도 현재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져 있다.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와 같은 inevitabilist들과 프레드 호일(Fred Hoyle)이나 프란시스 크릭(Francis Crick)과 같은 improbablist들의 대립이 존재한다. 이에 대해 대략적으로 소개한 기사가 Scientific American 지(誌)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으며 주소는 아래와 같다. 전자의 경우는 생명이 지구상에서 어떻게 해서든 출현하 수 있었을 것으로 믿지만, 후자의 경우는 그것이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Scientific American 에 실린 소개의 글에서는 두 가지 입장 모두 아직은 '순수한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 순수한 추측밖에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창조론'은 처음부터 그 가능성조차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 http://www.sciam.com/explorations/112596explorations.html

11.존 폴킹혼(John Polkinghorne), 「과학시대의 신론(Belief in God in an Age of Science)」, 동명사(이정배 역), 1998, p. 90.

12.특히 '과학적인 이론'이 '종교적인 믿음'과 상충될 때에는 종교적인 믿음이 진리의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것으로 여긴다. 물론 우리가 현재 기독교의 가르침으로서 주장하고 있는 것들 중에서 어떤 것들은 우리가 기독교의 가르침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을 수도 있다. 프란시스 쉐퍼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제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교양있는 사람으로서 여유를 갖고 특별 계시와 일반 계시를 차근차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시간을 두고 이 문제를 꼼꼼히 생각해야 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과학적 진리가 언제나 더 진실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이런 경향을 반대해야 한다. 우리는 충분한 시간을 두어서, 우리가 보기에 과학과 계시 사이에 모순 같아 보이는 점이 과연 과학이 제시하는 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성경의 가르침이라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우리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함을 의미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며 이 일은 오랜 시간이 걸릴 때도 있을 것이다."(프란시스 쉐퍼, 「궁극적 모순은 없다(No Final Conflict)」, 생명의 말씀사, 1995, pp. 23∼24.).

13.미국 헌법에서는 공립학교에서 어느 특정 종교에 대한 교육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한다. 진화론자들은 여기서 '창조론 교육'이 곧 '종교 교육'이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14.이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논의는 레슬리 뉴비긴의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IVP) 제3장 "아는 것과 믿는 것"을 참고하라.

15.제임스 사이어,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 사상」, IVP, 1995, p. 103.

16.Ibid, p. 103.

17.실제로 데즈먼드 모리스(Desmond Morris) 라는 영국의 동물학자는 인간 역시 '동물'이기 때문에 '버드 워처(Bird-watcher)'가 새를 관찰하듯이 '맨 워처(Man-watcher)'가 사람을 관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그의 책 「맨워칭(Manwatching)」(까치, 과학세대 역)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특히 강조해 두고 싶은 점은 사람을 동물로 간주하는 것이 결코 사람에 대한 모욕이 아니라는 점이다. 누가 무어라고 해도 우리는 동물이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영장류에 속하는 하나의 종이며, 다른 모든 종과 마찬가지로 생물학의 법칙의 지배를 받는 생물일 뿐인 것이다. 인간성은 동물성의 하나이며, 그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분명히 사람이란 종은 특별한 동물이다. 그러나 다른 어느 동물들도 각자의 독자성이라는 점에서는 특이하다고 말할 수 있다."(맨워칭, p. 11.) 그러나 인간을 '모욕' 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가치에 대한 논의 자체를 제거 시켜버렸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18.칼 세이건은 보다 구체적으로 "진화를 믿으면 영혼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Carl Sagan·Ann Druyan, 「잃어버린 조상의 그림자(Shadows of forgotten ancestors)」, 고려원 미디어(김동광·과학세대 역), 1995, p. 88.

19.제임스 사이어,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 사상」, IVP, 1995, pp. 118∼124.

20.프란시스 쉐퍼, 「거기 계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He is there and He is not silent)」, 생명의 말씀사(허긴 역), 1995, p. 33.에서 재인용.

21.프란시스 쉐퍼, 「다시 자유와 존엄으로(Back to Freedom and Dignity)」, 생명의 말씀사(김원주 역), 1995, pp. 38∼44.

22.프란시스 쉐퍼, 「거기 계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 생명의 말씀사, 1995, p. 56.

23.Ibid., p. 56.

24.예를 들어 오늘날 종교가 과학을 탄압한 것으로 잘못 알려진 대표적인 사건의 주인공인 갈릴레오 역시 종교재판을 받으면서 가장 두려워 했던 것이 교회로부터 파문당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찰스 험멜Charles E. Hummel)의 「과학과 성경 : 갈등인가 화해인가(The Galileo Connection : Resolving Conflicts between Science & the Bible)」(IVP)를 참고하라.

25.이것은 5절에서 다시 다루겠다.

26.실제로 천체물리학자들이 하고 있는 일이 지구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법칙들을 모든 우주에 적용시키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27.전도서 1장 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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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그미님의 댓글

선장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많은 종교인들은  신의 존재를 강요하기 이전에 신을 닮고 사는  자신의 삶을 본보여야 할것이다.<br />그러면 강요하지 않아도 비 종교인들도 신을 확신하게 될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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