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세 요절 이소룡 - 의문의 죽음 > 미스테리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미스테리

32세 요절 이소룡 - 의문의 죽음

페이지 정보

작성자 선장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댓글 4건 조회 672회 작성일 15-06-15 23:09

본문

올해는 이소룡의 사망 40주기가 되는 해다. 1973년 7월 20일, 이소룡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나이였고 대적할 적수가 없었던 배우이자 무술인이었던 이소룡. 그가 불과 서른두 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날 거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놀라운 건 그가 실제로 세상을 떠나기 전부터 홍콩 지역엔 끊임없이 이소룡 사망설이 돌았다는 사실이다. 불멸할 듯한 육체를 지닌 그에게서 사람들은 일찍이 죽음의 조짐을 읽어냈던 걸까? 사망 후 검시 결과가 나왔을 때도 의혹은 계속 이어졌으며, 한편에선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세상을 떠난 지 한 세대가 지났지만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이소룡, 혹은 브루스 리. 하지만 엘비스 프레슬리, 마릴린 먼로와 함께 그의 죽음은 20세기 엔터테인먼트 역사의 가장 미스터리한 지대로 남아 있다.

그는 평생 ‘몸’을 단련한 사람이었다. 단 1그램의 군살도 없는 듯 마른 체형이었지만 힘을 주면 툭툭 튀어나오는 근육은, 만져 본 사람들이 “따뜻한 대리석 같다”고 말할 정도로 탄탄했다. 그는 스턴트는 물론 카메라 앞에서 트릭을 사용하는 것 자체를 허용하지 않았다. ‘절권도’의 창시자인 그는 배우 이전에 무술인이었으며, 중국 무예의 전통 속에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 강한 남자도 쇼 비즈니스 세계의 압박을 견디긴 쉽지 않았다. 성공을 위해 달려왔던 그의 삶은 점점 쫓기기 시작했고, 특유의 완벽주의는 더욱 그를 옥죄었다. 그러면서 그의 육체는 점점 안으로 붕괴되었다. 마치 갑옷을 입은 듯 단단한 외면에 비해 이소룡은 말 그대로 ‘골병’이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영화적 파트너였던 골든하베스트의 레이먼드 초우 사장에 의하면 이소룡은 액션 신 촬영 중에 상대방으로부터 시나리오에도 없었던 일격을 종종 받았다고 한다. 액션 장면을 찍다 보면 이런 일은 종종 발생하지만, 몇몇 충격은 그에게 분명히 큰 데미지를 입혔다.

이소룡이 자신의 몸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된 건 <맹룡과강>(1972)을 찍을 즈음이었다. 촬영 중에 이소룡은 자주 고통을 호소했고 머리를 싸안고 뒹굴 때도 있었다. 진통제를 상습적으로 복용했으며 마리화나도 접했다. 스태프들과 마찰을 일으키기 일쑤였고 화를 내다가 혼절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시기 대만 배우인 베티 팅 페이와의 부적절한 관계는 점점 깊어졌다.

<용쟁호투>(1973) 때 그는 촬영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신경안정제와 스테로이드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너무나 쉽게 지쳤다. (한편 이런 설도 있다. 사실 그는 1972년 말에 정밀 검사를 받았을 때 삶이 몇 달밖에 안 남은 절망적인 상태였다고 한다. 하지만 의사는 그 사실을 숨겼고, 이소룡에겐 과거 거칠던 시절 누군가에게 맞은 상처가 뇌에 손상을 준 것으로 같으며, 너무 무리한 촬영 스케줄로 인해 그 상처가 악화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소룡의 미완성 유작 <사망유희>.
첫 번째 쇼크는 1973년 5월 10일에 왔다. 이때 그는 골든하베스트 녹음실에서 <용쟁호투> 녹음 작업 중이었다. 그는 완벽한 더빙을 위해 극도로 예민한 상태였고, 에어컨을 꺼놓은 녹음실은 찜통이었다. 잠시 바람을 쐬고 오겠다며 녹음실을 나간 그는 화장실에서 세수를 한 후 쓰러졌다. 그가 돌아오지 않자 찾으러 나간 녹음실 직원은 화장실에 널브러져 있는 이소룡을 발견했고 의식이 돌아오게 하려고 흔들어 깨웠다. 겨우 일어난 그는 구토 증세를 느낀 후에 다시 쓰러졌고 호흡 곤란 증세를 겪었다.

급히 홍콩의 뱁티스트 병원으로 옮겨졌고 그를 진찰한 닥터 찰스 랭포드는 당시의 이소룡을 “열이 40℃가 넘었고, 어떤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랭포드는 급하게 신경외과의 닥터 피터 우를 불렀고, 그는 간혹 눈은 떴지만 초점은 없었으며 죽어가는 사람처럼 거칠게 호흡했고 땀으로 범벅된 상태의 이소룡을 발견했다.

탈진, 신장 장애, 간질 등에 대한 다양한 검사가 이뤄졌다. 원인은 뇌부종. 뇌수가 팽창한 것이 발견되었다. 이소룡은 다시 무의식 상태에 빠졌고 의사들은 뇌부종을 완화시키기 위해 탈수제인 마니톨을 주입했다. 소변이 늘어나자 관을 꽂아 빼냈다. 거의 혼수 상태였던 이소룡은 거의 발작에 가까울 정도로 몸을 심하게 떨었고, 의사와 간호사들은 간신히 팔과 다리를 병상에 묶어 놓았다. 그는 거의 가망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회복 후 기적적으로 다시 일어났고, 며칠 후엔 여행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이소룡은 아내인 린다 에머리와 함께 캘리포니아대학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했다. 역시 1차 원인은 뇌부종이었고, 경련의 원인은 알 수 없었다. 간질 치료제인 다일랜틴을 처방받았다. 하지만 이소룡은 점점 몸이 안 좋아졌고 그는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이후 <사망유희> 촬영을 위해 홍콩으로 돌아온 이소룡은 자신이 죽었다는 루머가 돌고 있는 걸 알게 됐다. 무술 대회에서 대련 중에 사망했다는 식이었다. 사실 홍콩 언론들은 잡지와 신문을 팔아먹기 위해 그의 죽음에 대한 수많은 루머를 만들어내곤 했고, 그때마다 이소룡은 해명해야 했다. 그런데 이번엔 단지 소문으로 치부할 수 없었다. 정말 그는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건망증은 점점 심해졌다.

1973년 7월 20일 그는 <사망유희>에서 공연할 조지 라젠비(2대 제임스 본드로 유명한 배우)를 맞이하기 위해 레이먼드 초우와 함께 공항으로 나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라젠비는 초우 사장 혼자서 만나야 했다. 몸이 좋지 않았던 이소룡은 약을 먹은 후 잠이 들었던 것. 하지만 그는 그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이소룡의 최후는 비참했다. 불과 30대 초반밖에 되지 않은 액션 스타는 유언도 없이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했다. 게다가 생의 마지막 순간, 그의 곁에 있었던 사람은 가족이 아니었다. 대만 출신의 여배우인 베티 팅 페이가 그의 임종을 지켰고, 그 과정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제기됐다. 심지어 팅 페이가 죽음의 원인이라는 주장마저 있었다. 어쨌든 아시아의 용은 승천했고, 수많은 팬들과 영화인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사망유희>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2대 제임스 본드’였던 조지 라젠비가 홍콩에 도착한 건 1973년 7월 20일. 골든하베스트의 레이먼드 초우 사장과 이소룡이 공항에 맞이하러 나갈 예정이었으나 이소룡은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지는 걸 느꼈고, 정부인 베티 팅 페이의 아파트에 누워 있었다. 이소룡은 전날인 7월 19일에 그 아파트로 들어갔고, 동행했던 레이먼드 초우는 일이 있어 아파트를 떠났다. 그날 밤 아파트엔 이소룡과 팅 페이 단 둘이 있었다.

다음 날 오전부터 이소룡은 몸이 좋지 않았고 두통을 호소하는 이소룡에게 팅 페이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진통제인 이쿠아제식(Equagesic)을 주었다. 이쿠아제식엔 아스피린 성분과 함께 근육을 이완시켜주는 메프로바메이트가 들어 있었다. 약을 먹은 이소룡은 오후 7시 30분쯤에 잠이 들었다. 이후 팅 페이는 저녁 식사를 위해 이소룡을 깨웠지만 그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급해진 팅 페이는 레이먼트 초우에게 오후 9시 정도에 전화를 걸었다. 초우 사장은 조지 라젠비와 함께 골든하베스트 스튜디오에 있었다. 전화를 받은 초우는 팅 페이의 아파트로 급하게 차를 몰았지만, 차가 막혀 40분 뒤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

초우는 구급차를 불렀다. 응급요원은 이소룡을 잠에서 깨우기 위해 10분가량 응급처치를 했지만 허사였다. 퀸엘리자베스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의식이 없었다. 흉부압박, 흥분제 주입, 전기충격, 심폐소생술…. 이소룡을 살리기 위한 수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소용없었다. 그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검시가 이뤄졌고, 닥터 리세트는 이쿠아제식에 들어 있는 성분들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으며, 뇌부종이 사인이라고 밝혔다. 사망 당시 이소룡의 뇌는 1400그램에서 1575그램으로 10퍼센트 이상 부풀어 오른 상태였다. 좀 더 정확한 검시를 위해 런던대학교 법의학과의 로널드 테이 교수가 가세했고, 그도 악성 부종이 이쿠아제식의 성분과 반응하면서 이소룡의 생명을 앗아갔다는 소견을 냈다. 1973년 7월 20일이었다.


이소룡과 그의 정부로 드러난 여배우 팅 페이.
골든하베스트의 레이먼드 초우 사장은 이소룡이 가족과 함께 있다가 사망했다고 거짓말로 발표했다. 팅 페이와 이소룡의 부적절한 관계가 드러나는 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몇몇 대중 매체들은 이소룡이 아내인 린다 에머리와 정원을 거닐다가 죽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꾸며내기도 했다. 하지만 <차이나스타>의 기자 헨리 파와니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참고로 그는 당시 팅 페이와 관련된 기사로 이소룡과 소송 중이었다. 그는 앰뷸런스의 기록을 조사했고, 그 결과 이소룡이 팅 페이의 품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걸 알게 됐다. 궁지에 몰린 팅 페이는 이소룡이 죽던 날 자신은 어머니와 함께 외출을 했으며, 이소룡을 본 지 몇 달이 된다는 식으로 거짓말을 했지만 곧 탄로 났다.

이소룡의 장례식은 두 번 치러졌다. 7월 25일 홍콩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장례식이 있었고 3만 명이 넘는 추모객이 거리를 메웠다. 그럼에도 팅 페이는 장례식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중화권이 낳은 최고의 스타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고, 그가 소림사로 은둔했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그리고 시신은 태평양을 건너 그가 말년을 보내고 싶어 했던 도시인 시애틀로 옮겨졌다. 두 번째 장례식이 치러지는 동안 그가 가장 좋아했던 노래인 ‘When I Die’가 연주되었다. 레이크 뷰 공동묘지였고, 제임스 코번, 스티브 맥퀸 등이 그의 관을 들었다. 코번은 “친구였으며 스승이었던 이소룡은 나의 육체와 정신과 영혼을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당신에게 감사합니다. 당신과 함께 있어 평안했습니다”라는 추모사를 남겼다. 묘비명에는 ‘브루스 리, 절권도의 창시자’(1940.11.27.~1973.7.20)이라고 새겨졌다.

워낙 위대한 영웅의 죽음이기도 했지만, 사실 그의 최후엔 석연찮은 점들이 꽤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끊임없는 의혹이 제기되자 홍콩 정부는 전면적인 조사를 시작했고 9월 3일에 검시관인 에그버트 텅의 심리가 있었다. 팅 페이도 법원에 소환되었고 그제야 그녀는 이소룡이 죽던 날 자신의 아파트에 있었다는 걸 시인했다. 여론은 조금씩 들끓었다. <이소룡 : 쿵푸의 제왕>이라는 책을 쓴 펠릭스 데니스 같은 사람은 이소룡이 팅 페이 때문에 죽었다고 단정 내렸다. 7월 20일 이소룡이 실신했을 때 서둘러 구급차를 불렀다면 이소룡은 죽지 않았을 거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팅 페이는 겁을 먹었고 그냥 자연스레 회복되기를 바라며 이쿠아제식을 건넸다. 이것은 치명적이었고 약물에 대한 알레르기로 이소룡은 급속히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다. 팅 페이는 병원 대신 레이먼드 초우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차가 막혀 그가 늦게 도착한 것도 사인 중 하나였다. 이후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소룡은 아직 숨을 쉬고 있었는데 분초를 다투는 상황에서 조금만 더 빨랐다면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수많은 루머들이 돌기 시작했다. 마리화나에 대한 부분은 중국인들의 정서상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얻었고, 범죄 조직과의 관련설도 있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수군거림이었다. 하지만 절대 있어선 안 될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이소룡에게 찾아온 요절의 비극이 그의 아들에게도 유전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저주였다.

이소룡의 죽음 이후 수많은 루머들이 돌기 시작했다. 이소룡은 죽지 않았고, 속세에 염증을 느껴 죽은 걸로 가장한 후 어디선가 은둔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꽤 설득력 있게 유포되었다. 그리고 언젠가 이소룡은 구세주처럼 세상에 다시 돌아올 거라는 얘기마저 있었다. 하지만 이소룡이 세상을 떠난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고, 대신 그의 죽음을 둘러싼 수많은 음모론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가장 신빙성 있는 음모론은 마리화나에 관련된 것이었다. 스테로이드나 최음제가 사망 원인이라는 설도 있었지만 근거 없는 이야기였던 것에 반해, 이소룡이 마리화나에 어느 정도 중독되어 있었던 건 사실이었다. 성공에 대한 강한 갈망을 지녔던 그는 쇼 비즈니스의 세계 속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긴장 해소를 위해 가끔씩 마리화나를 넣은 쿠키를 먹곤 했다. 하지만 이 문제는 홍콩에선 매우 심각하게 여겨졌다. 미국과 달리 홍콩에서 마리화나는 매우 심각한 문화적 거부감을 지닌 대상이었다(차라리 이소룡이 아편을 했다면 별 문제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소룡이 마리화나를 접했다는 사실은 사람들 사이에서 쉬쉬하는 대상이 되었고, 그만큼 오히려 실제보다 부풀려져 루머로 돌기도 했다.

전통 무술인들과의 갈등도 사망의 ‘진짜’ 이유로 제기됐다. 중국 무술 사범들은 이소룡이 전통 무술을 돈 벌이에 이용하는 것이 탐탁지 않았고, 은밀히 점혈법(급소를 제압하여 상대방을 마비시키거나 기절 혹은 사망에 이르게 하는 무술)을 이용해 이소룡을 죽였다는 것이다. 점혈법은 모르겠지만, 이소룡이 전통 무술인들과 갈등을 일으켰다는 건 사실이었다. 이소룡은 전통을 고수하는 걸 반대했고 외국인들에게도 기꺼이 무술을 가르쳤다. 이소룡의 제자 중 한 명인 제임스 드밀은 영춘권 유파를 의심하기도 했다. 그는 스승인 엽문에게 영춘권을 배웠는데 이소룡이 영춘권을 서구화하는 것에 불만을 품었다는 것이다.

쇼브라더스의 런런쇼나 골든하베스트의 레이먼드 초우 같은 영화계의 거물이 죽였다는 설도 있었다. 이소룡은 홍콩 영화계에서 최초로 배우이자 제작자의 위치에 섰던 스타였고 수익 배분에도 간여했는데, 기존의 산업적 질서에 도전했던 그의 행보가 거슬렸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이소룡이 가라테를 업신여겨 일본 무술인들이 죽였다는 설, 길에서 우연히 시비가 붙어 삼합회가 죽였다는 설, 화면을 잘 받기 위해 했던 땀샘 제거 수술의 부작용이라는 설 등 수많은 이야기가 돌았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소룡이 항상 죽음에 대한 강박 속에서 살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항상 자신이 일찍 죽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더욱 성공을 향해 매진했다. 인터뷰에서도 “늙기 전에 죽고 싶다”는 말을 종종 했고, 자신의 가문에 어떤 저주가 있다며 1965년에 아들 브랜든 리가 태어났을 땐 주술 행위로 악귀를 내쫓기도 했다. 그런데 이소룡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브랜든 리도 요절했는데 아버지보다 젊은 나이인 28세에 세상을 떠났다. 8세에 아버지를 잃고 반항적인 성격으로 성장한 브랜든 리는 1980년대 중반에 배우로 데뷔했지만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그가 얼굴을 알린 건 1990년대 초. 조금씩 액션 스타로 부상하던 그는 1993년에 <크로우>라는 영화의 주연으로 발탁되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죽음의 불길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원작자인 그린 제임스 오바르는 연인이 음주운전 차량에 치어 세상을 떠나자 그 슬픔을 치료하기 위해 <크로우>라는 원작 만화를 만들었고, 그 내용은 죽은 사람이 되돌아와 악당을 처치한다는 것이었다. 1993년 2월 1일에 시작된 촬영은 문제가 많았다. 촬영 첫 날 세트를 제작하던 목수가 감전되는 사고가 있었고, 이후 폭풍으로 세트 일부가 물에 잠겼다. 불만을 품은 스태프 중 한 명은 자동차를 몰고 세트로 돌진하기도 했다. 어두운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대부분 밤에 촬영된 영화는 사고의 연속이었다. 브랜든 리의 매니저는 열악한 환경에 항의하며 “이러다 주인공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기도 했다.

그래도 촬영은 이어졌고 크랭크업을 8일 앞둔 3월 31일.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에 브랜든 리는 4번 스튜디오에서 과거 회상 장면을 찍고 있었다. 바로 그가 죽는 장면이었고, 마약 딜러가 44구경 매그넘 권총을 그에게 쏘는 설정이었다. 약 4.5미터 앞에서 상대 배우는 총구를 당겼고 브랜든은 세트에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는 진짜 총알에 맞았고, 복부 오른쪽 아래에 큰 상처를 입었다. 급하게 병원으로 옮겨져 5시간에 걸친 수술을 받았지만 그는 3월 31일 오후 1시 4분에 사망했다.

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총알 발사 장면 때 썼던 총알의 탄자 부분이 분리되어 총 안에 끼어 있었고, 이후 브랜든 리에게 공포탄을 발사하는 장면에서 함께 밀려나와 맞은 것이다.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지만 경찰은 ‘사고사’로 단정 내렸고, 결국 제대로 피지도 못한 스타는 20대의 삶을 마감한 채 아버지와 함께 비극적 전설의 주인공이 됐다. 한편 <크로우>는 미처 완성되지 못한 부분을 대역 촬영과 컴퓨터그래픽을 통해 보충했고, 그렇게 완성된 영화는 전세계적으로 1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두며 흥행에 성공했다. 한편 유족들은 브랜든 리가 총에 맞는 장면을 담은 필름을 영구 파기하기를 제작사에 요구했다.

이소룡과 브랜든 리 부자의 죽음은 호사가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그들의 우연한 요절은 ‘저주’라는 표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고, 특히 두 사람이 지녔던 많은 공통점들을 비교하며 ‘비극적 유전’을 이야기했다. 1970년대 초에 이소룡이 홍콩의 구룡 지역에 고급 저택을 구입했는데, ‘소룡’(小龍)이 ‘구룡’(九龍) 지역으로 들어와 그 지역의 혼령들이 노한 결과라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는 기괴한 죽음 이후에 떠돌기 마련인 이야기들일 뿐이었다. 그리고 2013년. 올해는 이소룡의 40주기이자 브랜든 리의 20주기가 되는 해다.

출처: 일요신문
추천4 비추천0
Loading...

댓글목록

Total 1,459건 4 페이지
미스테리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비추천 날짜
1399 떨궈진외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86 7 0 01-19
1398 떨궈진외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82 6 0 01-19
1397 미나미가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631 6 0 12-27
1396 마법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44 5 0 12-09
1395 남춘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067 6 0 11-21
1394 우식아범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424 7 0 11-19
1393 부도지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54 2 0 11-09
1392 샷터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972 5 0 10-14
1391
다빈치코드 댓글+ 4
선장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163 3 0 10-08
1390
삼국지 괴담 댓글+ 10
자전거탄풍…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083 4 0 10-08
1389 자전거탄풍…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03 6 0 10-07
1388 두개의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719 6 0 10-02
1387 자전거탄풍…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118 3 0 09-26
1386 예수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56 5 0 09-25
1385 광석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74 5 0 09-24
1384 나미군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92 6 0 09-20
1383 페페로가이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58 2 0 09-20
1382 선장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46 9 0 09-19
1381
베니싱 현상 댓글+ 10
리빙라이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59 7 0 09-17
1380 봉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88 6 0 09-14
게시물 검색

회원로그인

구글 OTP 인증 코드 입력

디바이스에 앱에서 OTP 코드를 아래에 입력합니다.

OTP 를 잃어버렸다면 회원정보 찾기시 해지 되거나,
아래 링크를 클릭하여 이메일 인증으로 해지 할수 있습니다.

OTP 해지하기

론건맨 상위 순위 10

  • 1 사라랜스396,171
  • 2 선상반란302,220
  • 3 eggmoney117,517
  • 4 샤논115,847
  • 5 nabool99,530
  • 6 바야바93,946
  • 7 차카누기92,773
  • 8 기루루87,387
  • 9 뾰족이85,855
  • 10 guderian008384,295

설문조사

론건맨 싸이트가 열리는 체감 속도는 어떤가요.?

설문조사

론건맨이 부활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접속자집계

오늘
1,316
어제
1,480
최대
2,420
전체
14,214,603
론건맨 요원은 31,001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