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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단고기 (KBS 역사스페셜 방영분,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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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호루스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댓글 6건 조회 1,425회 작성일 04-09-23 12:49

본문

5년전(1999년 10월 2일)에 KBS 역사스페셜에서 방영한 한단고기에 대한 내용입니다.
오래된 내용이지만 안 보신분들을 위해 올렸습니다.

KBS 보관분은 저화질 리얼플레이 클립이라서 너무 화면이 안좋군요. (http://cgi.kbs.co.kr/cgi/ram/hisspecial/991002.rm)

그래서 책소개부분만 따로 편집한 고화질 동영상을 안원전님 홈페이지에 링크합니다.
http동://www.scjnet.co.kr/INT/chan/fla/hwan4_800k.wmv

아래는 전체적인 내용이 어땠는지 알기위하여 KBS 대본을 퍼왔습니다.
최대한 중립적인 입장에서 방송을 만들려고 했던 노력이 보입니다.

내용중에 환국의 영토가 남북 5만리, 동서 2만리 라는 소개를 하면서 지도에 색칠하는 장면이 있는데..
알고있던 내용이지만 막상 화면으로 보면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게 되는군요.



역사스페셜 <추적-환단고기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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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세 사람 모니터 보고있고
-인터넷 홈페이지 역사스페셜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빗발친
환단고기 방영요구!
-종이 넘기고, 자막
-모니터 화면 환단고기가 어떤 책이기에
네티즌들은 이렇게 열광하는가.
이 열풍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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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1 <오프닝>

#. 배경으로 거대한 컴퓨터 모니터
-(MC 모니터 보다가 돌아서면서)
역사스페셜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우리의 상고사에 대해서 방송해 달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환단고기'라는 책에 대한 관심이
가장 뜨거운데요.
환단고기야말로 우리 상고사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책이라면서, 이 책이 어떤 책인지 반드시 밝혀달라는
요구가 많습니다.

#. 모니터에 환단고기 책 나타나고
그래서 이번 역사스페셜에서는 환단고기가 어떤 책인지,
어떤 과정으로 세상에 전해졌는지,
그리고 왜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 팩스 들고 그런데 환단고기에 대한 취재가 시작되자마자
놀라운 일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바로 이 팩스를 받은 것인데요.
그 동안 역사스페셜에 도움을 주었던 한 전문가에게
온 팩스였습니다.
여기에는 뜻밖에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습니다.

(팩스내용) '역사스페셜에서 환단고기를 방송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환단고기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다룰 경우
그 여파도 엄청날 뿐 아니라,
과연 어느 사학자가 이 문제에 총대를 맬지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환단고기를 프로그램으로 이미 만들겠다고 선언한
역사스페셜 팀에 그 프로그램을 포기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

역사스페셜에서 환단고기를 방영하는 것에 대해서
심각하게 우려하고, 만류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팩스는 이번 취재의 어려움을 알리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실제로 학계에서 취재를 거부하는 정도는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완강했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한쪽에서는 열광적으로 방송되기를 바라고,
또 한쪽에서는 심각하게 방송을 만류하는 책.

도대체 환단고기가 어떤 책이기에
이런 열광과 우려가 동시에 쏟아지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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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1. 환단고기는 어떤 책인가
#. 환단고기 책이 펼쳐지면서
환단고기는 네 권의 책으로 이루어져있다.

환인과 환웅의 역사를 기록한 삼성기,

단군조선의 역사가 담겨있는 단군세기,

고구려의 전신인 북부여의 역사를 기록한 북부여기,

마지막으로 태백일사에는 상고시대부터 고려까지의
역사가 담겨있다.

#. 이미지 / 구름 19" 그런데 이 책 속에는 놀라운 역사가 펼쳐진다.
우리 민족의 역사는 반만년이 아니라
일만년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단군조선 있기 이전에
5천 년의 역사가 더 있었다는 것이다.

#. CG / 나라 이름 하나씩 지나가고
최초에 환국이 있었고,
환국의 뒤를 이어 신시라고 불리는 배달국이 있었다.
그리고 단군조선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 후 고구려의 전신인 북부여,
북부여의 뒤를 이은 고구려,
대진국이라고 하는 발해,
고려의 역사로 펼쳐진다.

#. CG / 책에서 글자 발생 특히 상고시대가 찬란하다.
일만년 전 탄생한 최초의 국가 환국.
환국은 3300년 동안 일곱 명의 환인이 통치했다 한다.

그 후 신시 배달국은 열 여덟 명의 환웅이
천 오백년 이상 다스렸다고 한다.

환국과 신시 배달국이 오천년 정도 이어진 후,
마침내 단군조선이 탄생하는데,
마흔 일곱 명의 단군이 통치했다고 한다.

-윤명철 교수 인터뷰 "환단고기의 특징은 우리 민족의 위대성을 강조,
광활한 영토를 기술, 민족의 정체성을 자극한다.."

#. 환단고기 책 펼쳐지고 환단고기에 담겨있는 우리 민족의 활동무대는
상상을 초월한다.

-삼성기 하편 기록 삼성기에는 이런한 기록이 있다.
'파내류산 아래 환인의 나라가 있는데 천해 동쪽 땅이다.
그 땅의 넓이가 남북 5만리 동서 2만 여리에 이른다.'

#. 파내류, 천해 표시 파내류산은 지금의 시베리아 중앙고원에 해당하고,
천해는 바이칼 호수를 나타낸다고 한다.

#. 세계지도에서 영역표시 그렇다면 일만년 전에 탄생한 환국의 영토는
아시아를 넘어선다.

-지도에 12연방국 표시 당시 환국은 남북 5만리, 동서 2만리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을 자랑하던 나라였고,
이 땅에서 열 두 개의 나라를 거느리고 있었다.

-지도에서 수밀이국 위치 표시 이 나라들 중에서 수밀이국라는 나라가 있다.
일부에서는 이 수밀이국을
고대 수메르로 해석하기도 한다.


#. 수메르 유적 그런 주장에 따르면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일으켰던
수메르 민족이 우리 민족이었다는 것이다.

#. 귀면와 유물 팬 광활한 영토 뿐만 아니라
환단고기에는 눈부신 영웅들이 등장한다.

-귀면와 타이트 가장 대표적인 영웅은 치우천황,
신라시대의 이 도깨비 기와는
치우천황의 얼굴이라고 전해진다.

-다른 귀면와로 팬 배달국의 14대 환웅인 치우천황은
5천 년 전에, 이미 철제무기를 사용했던 인물로
전쟁의 신으로 전해지고 있다.

-삼성기 하편 기록 발생 '머리는 구리로 두르고 이마를 쇠로 가린 모습이었으며
쇠로 무기를 만들어내니 온 천하가 두려워하여
치우천황이라고 불렀다.'

#. CG / 귀면와 + 전투 이미지 중국의 헌원황제가 치우천황과 수십 번을 싸웠으나
단 한 번도 승리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환단고기는 이런 치우와 싸웠던 중국의 역사도
우리 민족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태백일사 신시본기 '5대 환웅의 막내아들은 태호복희라고 한다.
태호복희는 삼황오제 중 첫 번째 인물로
우사라는 관직에 있다가 진으로 갔다'

#. 태호복희 그림 14" 태호복희는 중국의 시조로 전해지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가 바로 환웅의 아들이라면
중국의 역사도 우리 민족에서 시작된 것이 된다.

#. 구름 15" 이렇게 환단고기에는 하늘의 백성인 우리 민족이
광활한 대륙을 무대로 찬란한 문명을 꽃피우며
활약했던 이야기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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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2
#. 서재 분위기
-(MC 의자에 앉아서 책보다가 고개를 들고, 놀랍다는 표정으로)
어떻습니까.

환단고기엔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와는
전혀 다른 역사가 기록되어있지요.

일만년 전까지 거슬러가는 역사,
아시아 대륙을 넘어서는 광활한 영토,
전설적인 영웅의 이야기까지.
환단고기에 담겨있는 우리의 상고사는 눈부십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엔
우리가 전혀 들어보지 못한 놀라운 일들이 담겨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 (MC가 들고있던 책에서 가림토 문자 빠져나오고)
바로 이 문자입니다. 왠지 낯이 익은 문자지요.
이것은 환단고기에만 나타나는 문자인데,
이 책에서는 가림토 문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환단고기에는 한글과 꼭 닮은 이 문자가
이미 4천 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가림토 문자를 쓰기 전에는
태고의 문자인 녹도문자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녹도문자의 구체적인 형태는 환단고기에
적혀있지 않습니다.

이런 내용이 실려있는 환단고기에 따르면
우리 민족은 문자를 만든 최초의 민족이 됩니다.
더 크게는 최초로 문명국가를 세운 민족이자,
중국과 아시아 각국에 문명을 전파한
하늘의 민족이라고 합니다.

#. MC 책들고 일어서서 지금의 상식으로는 믿기 어려운 내용이지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솔직히 믿고 싶은 내용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상반된 마음은 환단고기를 접하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환단고기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고,
그 열기 또한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른바 '한단고기 열풍'의 현주소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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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2 한단고기 열풍

#. 컴퓨터 통신난 15" 최근 PC 통신의 한국사 동호회 난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상고사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그 중에서도 단연 최대 관심은 환단고기다.
#. 도서관 외경
-문열고 들어가고 한국사 동호회 중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되고,
회원수가 가장 많은 하이텔의 한국사 동호회.
한달에 한 번씩 있는 정기모임에서는
환단고기와 관련된 상고사에 대해서 토론하는 일이 많다.

-단군유물지도 책자 회원들이 자비를 들여 교재를 준비하고
강사에서부터 회원들까지 열띠게 토론에 참여한다.
이날은 환단고기에 담겨있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중국에서 발견되는 관련 유물에 대해서 토론을 벌였다.

-강의하고 듣고 16" 최근 이렇게 우리 상고사에 대해 관심을 갖는 모임이
부쩍 늘어났다.
대학마다 상고사 동아리가 생기고 있을 정도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환단고기에 열광하는가.

-회원들의 인터뷰 "환단고기에 열광하는 이유.. 다양한 의견.."

#. 한배달 문열고 들어가면 회원들 강의듣고 16"
동호회의 수준을 넘어서 본격적으로
환단고기의 내용을 연구하는 모임들도 나타나고 있다.
한배달의 역사천문학회도 그 중에 하나다.

. 이 모임에는 대학교수를 비롯해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가하고 있다.

-한단고기 / 회원들 듣고 8" 이곳에서는 환단고기에 기록된 천문현상을 통해서
그 시대의 역사를 새롭게 밝혀내려고 하고 있다.

-박희준 인터뷰 "우리의 선조들은 하늘의 천문학에 아주 밝았다..
그런 기록은 삼국사기나 유사보다 환단고기에 더 많다.. 환단고기에 감성이란 직책이 나온다..별자리를 관측하는 독특한 관직.. 고구려 시대 천문관측이 있기 전에
우리 조상은 이미 하늘에 주목..
그런 기록들이 환단고기를 중심으로 나타난다."

#. 서점가/ 책보는 사람들 13" 이렇게 상고사와 고대사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사람들에게 환단고기는 가장 중요한 텍스트로 등장했다.

이 책의 대중적인 인기는 서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단군책에서 틸다운하면 환단고기 번역서 10"
환단고기를 번역한 책만 해도 열 종류가 넘고.
지금까지 100만 권 이상 팔린 것을 추정된다.

-서점 직원 인터뷰 "하루 판매량은 10부 이상..
비소설에서 이 정도 팔리면 꾸준한 스테디셀러다.."

-상고사, 고대사 관련 책들 17" 환단고기뿐만 아니라 몇 년 전부터
상고사, 고대사 관련서적이 활발하게 출판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책 중에서는
'삼국이 대륙에 있었다' '고려도 대륙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책들까지 등장했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한반도에 없었다> 책 10"

이러한 주장은 환단고기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환단고기의 주장을 훨씬 넘어서는 것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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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3
#. MC 옆으로 거대한 환단고기 책
이러한 환단고기 열풍은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습니다.
환단고기가 일반인에게도 알려지게 된 것이
1980년대 초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책의 내용만큼이나
환단고기가 세상에 공개되기까지
미스테리한 부분이 많습니다.

-(책이 줄어들면서 한 권의 책이 네 권으로 펼쳐지고)
환단고기는 네 권의 책을 묶어서
한 권의 단행본으로 만든 책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삼성기와 단군세기, 그리고 북부여기, 태백일사

-(삼성기전이 상, 하권으로 나뉘고)
그 중에서 삼성기는 상,하권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5권 각각 저자이름 발생 이 다섯 권의 저자는 각각 다르고,
저자들이 살았던 시대도 신라와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틀립니다.

이 저자들 중에는 이암과 이맥, 범장처럼
다른 사료에서 행적이 확인되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실제로 단군세기와 북부여기, 태백일사를 썼는 지 다른 사료에서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자들 중에는 다른 사료에서
그 행적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도 있어서,
실존 인물인지 확실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저자들이 썼다는 책들은 남아있지 않고,
1911년에, 네 권의 책을 한 권으로 묶여서
환단고기라는 단행본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 MC 옆으로 거대한 환단고기 책
네 권의 책을 묶어서 단행본으로 펴낸 인물에 대해서
이 책의 서문에 해당하는 범례에는
이런 내용이 실려있습니다.

-책 속에서 관련부분 빠져나오고 '신시개천 5808년 곧 광무 15년 신해 5월 광개절날에
태백 유도 선천 인경 계연수가 묘향산 단굴암에서 쓰다'

범례에 의하면 1911년 네 권의 책을 묶은 사람은
계연수라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계연수가 환단고기를 필사한 장소는
묘향산 단굴암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1911년, 계연수가 펴냈다는
환단고기의 원본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환단고기는
어떻게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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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3. 세상에 알려지까지 미스테리

#. 송호수씨 방으로 찾아가고 13"
계연수가 펴낸 환단고기 원본은 전하지 않는다.
그리고 환단고기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79년이다.


-송호수 얼굴 13" 재야사학자 송호수씨는 줄곧
환단고기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데,
1979년에 인쇄된 환단고기 영인본을 가지고 있다.

-최초의 환단고기 영인본 12" 최초의 영인본을 가지고 있고
20년 가까이 환단고기를 연구해온 그도
환단고기 원본을 본 적이 없다.
환단고기를 펴냈다는 계연수에 대해서도
소문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송호수 인터뷰 "계연수는 애국투사.. 감시 심하니까 채약꾼으로 위장..
주로 묘향산 단군굴에 있었다. 천부경을 탁본해서
보냈다. 일설에 의하면 왜놈들이 압록강에 시체를
던졌다는 설이 있다.."

#. 수안계씨 종친회 찾아가고 16" 전설처럼 내려오는 계연수에 대한 이야기.
계연수의 행적을 찾아보기 위해서
수안계씨 종친회를 찾았다.

-수안계씨 족보 12" 족보를 샅샅이 뒤져서 계연수의 이름을 찾아보았지만
끝내 확인할 수 없었다.

-종친회 회장 "선대가 일찍 해외로 나갔거나 족보를 만들어서 소장한 사람과 연락이 못되는 경우 족보에 오르지 못한다.."

#. 환단고기 범례 15" 현재로서 계연수의 행적을
더 이상 추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계연수가 펴냈다는
환단고기 서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서
계연수가 어떤 사람인지 추정해보기로 했다.

'한단고기는 모두 해학 이기 선생의 감수를 거치고
또 내가 정성을 다하여 옮겨 적었다.
또 홍범도, 오동진 두 벗이 자금을 마련하여
인쇄에 부쳤다'

#. 세 사람 사진 2"

-이기의 사진 8" 먼저 환단고기를 감수했다는 이기.
이기는 한말의 대표적인 학자이자 애국계몽운동가였다.
.
-홍범도의 사진 9" 책을 인쇄하는데 자금을 댔다는 홍범도.
홍범도는 간도를 중심으로 무장투쟁을 했던
독립운동가였다.

-오동진 사진 8" 홍범도와 함께 자금을 댔다는 오동진.
오동진 역시 간도에서 활약한 독립투사였다.

-세 사람 사진 나란히 16" 이기와 홍범도, 오동진은 모두 독립운동가들이자,
대종교와 관련있는 인물들이다.
그렇다면 계연수도 대종교도이자 독립운동가였을
가능성이 높다.

-최홍규 교수 인터뷰 "1910년대 민족운동사적인 측면에서
환단고기, 단기고사 등이 발행..
망실된 우리나라를 회복하는 중심에 단군을 두고
역사관을 표출하고 대종교도가 중심이 돼서
민족주의 지도자들이 대종교에 입교해서 민족운동에
투신.."

#. 마니산 트랙킹 18" 그러나 환단고기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그로부터 70년 후. 이유립이란 인물이 공개한다.
원본이 전하지 않는 점,
그리고 70년 후에야 책이 나타난 점 때문에
환단고기의 편자는 계연수가 아닌 이유립이라는 의심이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

#. 마니산 개천각 외경 25" 그러나 이유립은 이미 사망한 상태다.
그는 어떻게 환단고기를 세상에 공개한 것일까.

이유립은 단군사상을 연구하는
단단학회의 회장을 지냈다.
단단학회에서는 계연수도 전임 회장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런 인연 때문에 계연수의 환단고기를
제자인 이유립이 펴냈다는 것이다.


#. 부인과 함께 자료 보고 10" 지금은 이유립의 부인이 단단학회를 지키고 있다.
부인은 이유립이
평생 책을 읽고 글을 썼던 학자였다고 증언했다.

-부인 증언 "우리 뿌리와 역사를 찾자.. 우리나라를 찾아서
우리 세상을 찾자는 뜻으로 살았다.."

-이유립 사진 7" 이처럼 우리의 뿌리, 역사찾기를 평생 소원했던 이유립은
생전에 많은 책을 썼다.

-이유립의 저서 9" 그리고 그런 이유립의 글 중에는
환단고기와 비슷하거나 같은 내용이 많이 발견된다.

#. 딸과 자료 보고 5"

-환단고기 평주 (이유립의 환단고기 번역본) 20"
실제로 이유립은 생전에 환단고기를 번역해서
자기 나름대로 책을 내려고 했다고 한다.

이 환단고기 평주는 이유립이
환단고기를 풀이해 놓은 것으로,
이유립은 이것을 책으로 펴내기 직전에 사망했다고 한다.

#. 책에서 정오표 꺼내고 10" 취재 중에 또 한가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이유립이 환단고기 원문을 직접 수정한 흔적이다.

-정오표 타이트 22" 1979년에 펴낸 환단고기 중에는
정오표가 달린 책이 있다.

정오표란 책에서 틀린 글자나 잘못된 내용을 고쳐서
추가한 것이다.
이 정오표의 글씨는 이유립의 글씨가 분명했다.
이것은 이유립이 환단고기의 내용을
어느 정도 수정했을 가능성을 짐작하게 한다.

#. 1979년 인쇄한 환단고기 17" 그러나 1979년, 이유립이 세상에 공개한 환단고기는
당시엔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환단고기가 주목받게 된 계기는 따로 있었다.

#. 일본 동경 / 특파원 건물로 들어가고 7"
그것은 1982년에 일본에서
일본어 번역본이 나오면서부터였다.


-간판, 책 등 10" 일본어 번역본은 신국민사라는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가지마 노보루가 펴낸 것이다.
이것이 국내에 역수입되면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이야기하는 가지마 9" 가지마 노보루는 본래 변호사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환단고기를 번역하게 되었을까.

-환단고기 영인본 꺼내 보여주고 23"
평소 한국과 중국에서 고서적을 수집해온 그는
1979년, 한국에서 환단고기 영인본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는 영인본을 입수한 경위나
그것을 번역한 이유에 대해서
확실하게 대답하지 않다가, 잠깐 이런 대답을 했다.

-가지마 노보루 인터뷰 "나는 환단고기를 이해할 수 있다.
거짓이 아니고 진짜 책이기 때문이다. 진실의 역사를
아는 혼이 생기면 이 책을 이해할 수 있다."

#. 일본판 책 (천황가, 왜국 신도의 뿌리) 17"
그러나 가지마 노보루가 이해한 진실은
환단고기가 일본 천황가의 뿌리를 밝히는
책이라는 점이었다.
"
#. 나무 그림 16 그는 환단고기를 통해서 동양 역사의 근원을 파악했는데,
일본의 신도가 본류이고 단군은 지류로 해석하고 있다.

#. 일본판 책 10" 이러한 책이 국내에 들어와서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그 후 한국에서는 가지마 노보루의 해석과는 다른
독자적인 번역본이 출간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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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4

#. 환단고기 책 이처럼 환단고기가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수수께끼가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1911년 계연수가 처음 필사한 원본이 사라진 점,
그 후 70년이 지나서야
이유립에 의해서 세상에 공개되는 점,
그리고 1979년 이유립이 펴낼 당시는 주목받지 못하다가
일본인 가지마 노보루가 일본어로 출판하면서
국내에서 주목받게 된 점 등.

이런 미스테리한 부분 때문에
환단고기를 사료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렇게 세상에 나오기까지 과정이 모호하기 때문에
책의 가치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지만,
환단고기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 책에 사료로서 검토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 (환단고기 책 옆에 삼국유사) 대표적인 것이 단군과 고조선에 대한 기록입니다.
환단고기에는 단군과 고조선에 대한 기록이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실려있습니다.

-삼국유사 기록 발생 단군에 대한 기록이 최초로 실려있는 책은
삼국유사로 알려져있습니다.
그런데 삼국유사에 실려있는 단군에 대한 기록은
아주 짧고 압축적입니다.
단군이 고조선을 통치한 기간이 1500년이며
수명은 1908세라고 나옵니다.

-(환단고기 책에서 관련부분 한자로 빠져나오고)
그런데 환단고기에는 2천 년이 넘게 지속된 고조선을
한 사람이 통치한 것이 아니라
47명의 단군이 통치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47대 단군의 이름과 재위기간, 치적을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구체적인 것까지 확인하기 어렵지만
단군을 한 사람으로 보지 않고
왕을 나타내는 호칭으로 바라본 점,
그리고 고조선을 수십 명의 단군들이 통치했다고 본 점은
눈여겨볼 만한 주장입니다.

이렇게 환단고기에는
무시할 수 없는 근거가 발견된다고 하는데,
과연 어떤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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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4 <사료로서의 가치>
#. CG/ 책 펼쳐지고 오성취루 기록 나타나고 20"
환단고기의 단군조선에 관한 기록에는
다양한 천문현상이 나타난다.
그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이 오성취루 현상이다.

#. 오성취루 현상 재연 15" 오성취루란 목성과 화성, 토성, 금성, 수성이
나란히 늘어선 것이다.
환단고기에는 이러한 장관이
단군조선 때 나타났다고 구체적으로 기록되어있다.

#. 코스모피아 천문대 외경 5"
#. 컴퓨터 작동하는 두 사람 53"
최초로 이 기록에 주목한 사람은
서울대 천문학과의 박창범 교수.
그는 단군조선 시대의 천문현상을 과학적으로 검증한
논문을 발표했다.

천문현상을 추적해가면 그 현상이 나타나는 시기는 물론
관측자의 위치도 알 수 있기 때문에
연대를 규명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환단고기에 따르면 오성취루 현상은
서기전 1733년에 나타난다.
천문관측 프로그램에 입력해본 결과,
일 년 전인 서기전 1734년 7월 13일 초저녁에
다섯 개의 별이 모이는 것을 볼 수 있다.
1년의 오차가 나지만 천문학계에서는
거의 정확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동훈 인터뷰 "천문현상은 과학이다.. 연도, 날짜를 입력하면
행성의 위치가 표시된다. 기록과 오차가 거의 안난다..
천문현상은 잘 짜여서 움직이는 시스템..
그 당시 기록이 맞는다."

#. 환단고기 책 넘어가고 3" 또 한가지 주목할만한 것은 고조선의 영역이다.
#. 고조선의 지도 16"
환단고기의 기록을 토대로 고조선의 영역을 추정해보면.
지금의 북경에서부터 만주의 전지역과 한반도 전체를
포함한다.

#. 국립중앙박물관 / 비파형동검 34"
한 시대의 영토를 추정하는 방법 중에는
문헌에 나타나는 기록과 함께
그 시대의 유물이 출토되는 지역을 참고로 추정하는
방법이 있다.

이 비파형 동검은 고조선의 대표적인 무기로,
비파형동검이 출토된 지역을 살펴보면
고조선의 영역도 좀 더 확실하게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 CG/ 비파형동검 출토지역 현재까지 이 비파형동검은 만주와 한반도 전역에서
출토됐다.

-윤내현 인터뷰 "고조선의 대표적인 청동무기인 비파형동검이
지금의 북경근처에서부터 만주 전지역,
한반도 남부해안까지 출토.. 청동기 시대 청동 무기는
당시 지배층의 독점물이다.. 그래서 중앙에서 만들어서
공급했기 때문에 같은 청동기가 통치되는 지역은
한 통치집단에 의해서 통치됐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런 자료를 보면 고조선의 영토는 지금의 북경에서
만주 전지역과 한반도 전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 두 지도가 겹쳐지고 15" 비파형 동검의 출토지역과
환단고기의 고조선 기록을 비교해보면,
지금의 북경에서부터 만주, 한반도 전체를 포함하고 있어
상당부분이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 조선왕조실록 8" 환단고기의 사료적인 가치를 알려주는
또 하나의 근거는 조선왕조실록에서 발견할 수 있다.

-실록 중에서 '수서령' 관련부분 22"
그 단서는 바로 수서령이다.
수서령이란 조선시대 세조와 예종, 성종 때
8도 관찰사에게 명령해서 옛부터 전해져온 희귀서적을
전국에서 거두어들인 일이다.
지금 이 서적들은 전하지 않지만,
우리 역사의 자부심을 담고있는 책들로 추정된다.



-대변설, 조대기, 표훈, 삼성밀기 보이고 4"
그런데 이러한 수서령이 내려진 책들 중에서
환단고기에 실려있는 책과
제목이 일치하는 것이 발견된다.
-안함로, 원동중 삼성기 발생 9"
삼성기가 바로 그것이다.
조선시대, 당시 이러한 책들은 왜 거두어들였을까.

-박성수 교수 인터뷰 "그대로 두면 역사관이 문제가 되고 중국에서
의의를 제기할 우려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를 생각해서 이런 책을 비밀리에 가두어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

#. 규장각 내부 17" 수서령의 대상이었던 책들 중에서
환단고기에 실려있는 책 제목이 나타나는 것은
1911년, 계연수가 환단고기를 펴낼 당시,
옛부터 전해지는 책들을 있었고
그것을 참고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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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5

#. 환단고기 책 이런 것을 볼 때 환단고기는
그냥 무시하거나 버려둘 수 없는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학계에서는 대부분
환단고기를 사료로서 가치가 없다고 평가합니다.
왜 그럴까요.

-(환단고기가 다섯권으로 펼쳐지고 다시 한 권으로 합쳐지고)
그 결정적인 이유는 앞에서 지적한 대로
책의 출처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먼저 환단고기를 이루는 다섯 권의 책의 저자들이
확실하지 않다는 것인데요.
다른 사료에서 이름이나 행적이 발견되는 저자들이
있긴 하지만, 실제로 환단고기 말고는 그 책을 썼다는
기록은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1911년에 다섯 권의 책을 묶어서
환단고기라는 단행본으로 펴냈다는 계연수에 대해서도
그가 펴낸 원본이 전하지 않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확인할 수 없다는 지적입니다.
마지막으로 70년 후에 계연수의 제자인 이유립이
환단고기를 공개한 것도 납득할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이렇게 기본적으로 책의 출처가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사료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책 안에서 두 가지 기록 발생 또 다른 근거는 환단고기 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음 두 문장을 살펴보겠습니다.

'백성들과 더불어 산업을 다스리니
한 사람도 굶주림과 추위에 떠는 이가 없었다'

'학교를 세워 학문을 일으키니 문화가 크게 진보하여
명성이 날로 드러났다.'

이 두 문장은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에 나오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단군세기는 고려시대 사람인 행촌 이암이 썼다고
서문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군세기에 나오는
'산업'이나 '문화'와 같은 용어는 근대에 등장한 것으로,
고려시대에 쓰였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환단고기 곳곳에는
'국가'와 '인류', '전세계', '남녀평등'이란 말이 등장합니다.
이런 기본적인 용어가 네 명의 저자들이 살았던
신라와 고려, 조선시대와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용어의 문제 말고도,
여러가지 측면에서 환단고기를 사료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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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5. 사료로 인정할 수 없는 근거

#. 환단고기 책 펼쳐지고 7" 그 근거는 먼저 다른 책을 베낀 흔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단군세기 서문 발생 5" '나라가 형이라면 역사는 혼이다.'

#. 한국통사 5" 환단고기에 나오는 이 문장은
박은식의 <한국통사>에서 나오는 대목과 일치한다.
'나라는 형체요 역사는 정신이다.'

#. 두 가지 기록 비교 6" 이것은 환단고기가 네 권의 책을 그대로 묶은 것이
아니고 편찬자가 가필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 한가람 역사문화 연구소 / 박찬규 박사 17"
고구려 연구회의 박찬규 박사는
환단고기에 나타나는 고구려 관련기록을
다른 사서의 기록과 비교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환단고기의 기록 중에서 많은 부분이
다른 사서와는 일치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태백일사 고구려국 본기 기록 12"
'고리군의 왕 고진은 해모수의 둘째 아들이다.'

-박찬규 박사 인터뷰 "해모수의 둘째 아들이라면 성이 해씨여야..
고씨성은 후대인 고주몽 이후부터 쓴다.."

#. 단군세기 중 14세 단군 고불단군 기록 16"
또한 환단고기에서는 찬란한 역사를 강조하다보니
지금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기록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단군조선 시대의 인구.

'호구를 조사해보니 모두 1억 8천만 구였다. '

-서영수 교수 인터뷰 "환단고기에는 단군조선시대 호구가 1억 8천만구,
인구는 약 9억이라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3세기에 편찬된 삼국지동이전에는
만주부터 한반도 남쪽까지 당시 인구가 140만 명이라는
통계가 있다.. 고구려, 백제 두 나라 인구가 725만명..
조선시대 각종 인구통계를 보면 천만을 넘지 못한다.."

#. 환단고기 책 넘어가고 7" 환단고기가 사료적인 가치가 없다고 보는
또 하나의 근거는,
이 책이 역사책보다는 경전에 가깝다는 것이다.

-목차에서 두 가지 제목 나오고 7"
특히 태백일사의 <삼신오제본기>와 <소도경전본훈>
에서는 종교적인 경전의 색채가 강한 대목이 많다.

-구름 속에서 글자 올라가고 소도경전본훈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천제님이 가라사대 너희 5가와 중생들아!
저 푸른 것이 하늘이 아니며
저 까마득한 것이 하늘이 아니니라.
하늘은 얼굴도 바탕도 없고 처음도 끝도 없으며
위아래 사방도 없고 겉도 비고 속도 비어서
어디나 있지 않은 데가 없으며 무엇 하나 싸지 않은 데가 없느니라.'

-천부경 7" 이 태백일사의 소도경전본훈에는 천부경과
-삼일신고 7" 삼일신고가 실려있다.
이러한 천부경는 대종교의 핵심교리이고
삼일신고는 대종교의 경전이다.

#. 대종교 경전들 13" 그렇기 때문에 환단고기를 역사책으로 보기에는
종교적인 색채가 너무 강하다는 것이다.

#. 환단고기 책 21" 아직까지 환단고기는 내용 하나하나까지
검토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편찬자가 가필한 흔적이 나타나는 점,
다른 문헌과 기록이 일치하지 않는 점,
책의 성격이 불분명하다는 점 등 때문에
사료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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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6
#. 서재에서 MC 이렇게 환단고기를 둘러싸고
진위논쟁, 가치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최근 상고사에 대해서 서로 다른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 상고사의 화두는 단연, 단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이 단군을 둘러싸고
신화로 볼 것인가, 역사로 볼 것인가라는 논란이
새롭게 일고 있습니다.

이렇게 단군에 대해 두 가지 주장이 대립하는 것은
환단고기를 둘러싼 논쟁과도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이러한 환단고기 논쟁의 바탕에도,
상고사 열풍의 핵심에도 단군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런 단군에 대해서
서로 다른 인식이 나타나게 된 배경, 그리고
최근에 나타난 현상을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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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6. 단군논쟁-신화인가, 역사인가

#. 단군상 훼손 뉴스 (현장음)
#. 신문기사 12" 올 여름 몇 몇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교정에 세워진 단군상의 목이 잘리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표면적으로 이 사건은 종교계의 갈등으로 비쳐졌다.

#. 도로 트랙킹 7" 그러나 이 사건이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은
단군에 대한 혼란된 인식때문이다.

#. 여주 여흥초등학교 / 세사람 이야기하고 4"
-단군상 받침대 12" 경기도 여주의 한 초등학교. 이곳에서는 지난 7월 4일,
교정에 세워둔 단군상의 목이 감쪽같이 잘린 일이
벌어졌다.

-교사에게 사건개요 듣고 "아이들 보고 무척 놀랐다.. 너무 끔찍해서..
저도 놀랐는데 아이들은 더했을 것이다.."

-다른 학교에 있는 훼손된 단군상 찾아가고 34"
사건이 발생한 당일, 여주에서는 이 학교 말고도
두 학교에서 똑같은 사건이 발생했다.
이 학교에서는 파손된 단군상을 철거해서
창고 옆에 보관하고 있다.

이 단군상을 세운 단체는 한문화운동연합.
이 단체에서는지난 4월부터 민족정신을 회복하고
통일을 기원하는 목표로 전국의 학교에
단군상을 건립하는 운동을 펼쳐왔다.

-한문화운동연합 관계자 "한문화운동연합에서는 전국 368곳에 단군상을 설립..
지난 7월 4일 여주 세 군데 학교에서 단군상 훼손사건
발생.. 그 뒤로 마산, 창원, 삼천포, 울등도 등
7건 이상 사건 발생.. 우리의 역사를 바로 알고
뿌리 바로 알자는 취지에서 세운 것인데 안타까워.."

#. 단군상 12" 그러나 단군상을 건립하는 것에 대해서
우려하는 목소리도 컸다.

단군이 역사적인 인물로 정립되지 못한 상황에서
단군상을 건립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김경재 교수 인터뷰 (한신대 종교학과)
"이것이 문제가 된 것은 종파를 떠나서
단군신화를 역사적인 국조로 전제해서
공공건물이나 장소에 단군상을 세우는 것은
사회 구성원 전체의 합의가 안된 것이다.."

#. 훼손된 단군사진 15" 현재 단군에 대해서 이렇게 신화와 역사라는
두 가지 시각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단군을 바라보는 시각이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

#. 1907년 순종 1년의 동국사략 10"
금세기 초만 해도
단군에 대한 인식은 비교적 통일되어 있었다.

-펼쳐진 동국사략 25" 그것은 1900년대 초반에 발행된 역사 교과서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교과서에는 고조선을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로,
단군을 국조로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고조선 역사를 상세하게 설명하는 이 교과서에는
단군의 초상화는 비롯해서,
고조선과 삼한의 지도가 실려있다.

#. 마니산 참성단 부감 18" 1900년대 초까지 단군에 대해
뚜렷한 역사의식이 나타나는 것은,
조선시대까지 단군은
역사적인 실존인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조선의 역대 왕들이 단군을 국조로 모시고
제사를 올렸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박성수 교수 인터뷰 "단군을 모신 성전은 평양 숭령전이 있었다..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단군을 모시고..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 강화도 마니산 제천.. 태백산에서도 제사.
조선왕조는 명백하게 단군조선의 후신이라서
단군을 모시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조선총독부시정연보 여러 권 꽂혀있고 16"
조선까지만 해도 역사적인 존재였던 단군이
신화로 바뀌는 결정적인 계기는
일제의 상고사 말살 정책 때문이다.
일제가 가장 먼저 착수한 일은
우리의 역사를 축소하는 일이었다.

-양태진 인터뷰 "일본의 역사가 기원 2600년으로 되어있는데
우리는 5-6천년.. 반도 안되는 역사로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무리.. 후대에 역사교육을 시키기 위해서 자기 역사 의 우수성을 확보해서 교육해야.. 그를 위해선 우리 역사 의 우수성을 말살해야.. 그에 관련된 기록을 다 없앰.."

-조선구관제도조사사업개요 펼치고 3"
-양태진 현장음 "일본에서는 우리 역사, 단군조선 생략하고 바로
상고삼한으로 들어간다.. 그 뒤를 삼국시대, 고려,
조선시대, 그리고 일본의 식민정책사로 역사를
꿰어맞춘다.."

#. 조선사편수회 자료 10" 이렇게 우리의 역사를 말살하기 위해서 일제는
조선사편수회 사업이란 이름으로 서적을 색출한다

-일본기록 20" 1910년 11월부터 14개월 동안 전국에서 거두어들인 책이
무려 51종 20만권이 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때 거두어들인 책은 모두 사라졌다.
그 후 단군과 고조선에 대한 인식은 신화로 축소됐고
아직까지 완전하게 역사로 인정받고 있지 못한 상태다.

#. 민예총 외경 5"
-사람들과 이야기 중인 김지하 14"
최근 잃어버린 상고사를 회복하고
신화로 머물러 있는 단군을 역사로 받아들이려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운동의 중심에 시인 김지하씨가 있다.
.
-김지하 인터뷰 "기초적인 상고사, 고조선사를 열어야 그 안에 들어있는 문화적인 자산, 신시, 화백, 풍류, 유목문화의
첫 고대국가.. 상고사에 대한 비젼, 꿈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초입에 단군조선을 막아버리니까 상상력을 자극할 수 없다. 그것을 열자는 것이다.."

#. 율려네트워크 세미나 27" 이런 상고사회복 운동에 대해
한쪽에서는 시대에 뒤떨어진
민족주의, 국수주의라는 비판이 일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도 사실이다.

단군과 고조선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그리고 학문적인 비판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단군은 역사와 신화 사이에서 끊임없이 표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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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7

#. 마니산 참성단 배경으로 내일은 개천절입니다.
이곳은 개천절 때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마니산 참성단입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이렇게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단군을 모셨던 곳은 여러 곳이 있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단군은 실재했던 역사로
살아있었던 것입니다.

최근 일고 있는 환단고기 열풍의 이면에는
이처럼 단군과 고조선을 역사로 받아들이려는
사람들의 열망이 잠재해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980년대 환단고기가 알려진 이후,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며
끊임없이 화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의 이런 관심과는 달리
학계에서 환단고기를 대하는 반응은 냉담합니다.
사실 환단고기에 대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학자들의 의견을 듣기가 어려웠습니다.
학문적인 접근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접근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이렇게 환호와 비난이 엇갈리는 책,
환단고기를 둘러싼 이런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지 생각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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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7 환단고기 열풍 어떻게 볼 것인가

#. 팩스 받는 모습 12" 환단고기를 취재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학계의 도움을 받기가 힘들었다.
그동안 도움을 주었던 학자에게서
제작을 우려하는 팩스가 날라들기도 했다.

-팩스에 줄 긋고 11" 학계에서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팩스 중에서 중요한 부분 발생 13"
많은 학자들이 환단고기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였다.

#. 송호수 14" 환단고기를 신봉하는 재야사학계에서는
이 책에 대해서 침묵하거나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기존 학계에 대해서 불만을 감추지 않는다.

-송호수 인터뷰 "환단고기를 부정하려면 육하원칙을 제시해야지
자기 종교성이나 학파와 안맞는다고 부정하는 것은
학자다운 자세가 아니다.."

#. 국사찾기 행정소송 중간보고서 25"
이런 학계와 재야사학계 간의 대립은
이미 1970년대 상고사 파동에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재야사학계에서는 단군을 역사상의 인물로 규정하고 기존의 국사학계를 일제 식민주의 사관파로 비난한다.
일명 단군파동이라고 하는 이 사건은
1978년에 법정으로까지 비화된다.

#. 한단고기 책 16" 그리고 1980년대 환단고기가 등장하면서
양쪽의 갈등의 골은 더 깊어졌다.

#. 전화걸고 12" 환단고기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학자들에게
몇차례나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번번히 거절당했고
전화상으로 간단하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전화녹취 내용 "환단고기를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인사들의 태도, 이런 것도 하나의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주장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비판하지 않고
식민사관에 물들었다고 매도하고
심지어는 인신공격까지 서슴치 않았습니다."

#. 복도 15" 그리고 학계에서 환단고기를 본격적으로
연구하지 못하는 것은, 이 책에 대해서
실증적이고 객관적인 연구와 학문적인 접근이
어렵다고 대답했다.

-정영훈 교수 인터뷰 "환단고기는 성립되고 공개되기까지 과정이
매우 문제가 많은 책이다.. 국사연구와 국사교육이
우리사회성원에게 민족적인 정체성과 자긍심을
심어주어야한다는 논리는 옳을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인 가치가 검증되지 않은 자료를 가지고
그런 목적에 접근하는 것은 기초공사없이 고층빌딩을
세우는 것처럼 위험하고 무모한 태도다.."

-노태돈 교수 인터뷰 "환단고기는 한마디로 우리 상고사를 복원하는데는
자료적인 의미가 없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이후에
쓰여진 책이기에.. 그런 만큼 이 책을 통해서
우리의 상고사를 복원할 수 없다. 단 이 책이 19세기 말,
20세기 초 이후에 우리 선인들이 우리 역사를 어떻게
인식하려고 했는가라는 당시인들의 역사인식을
파악하는데는 유효한 자료가 될 수 있다."

#. 서점가 등 몽타쥬 35" 환단고기에 대해 학계에서는 학문적으로 접근하는데
어려움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환단고기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그들이 열광하는 것은 실증적인 역사가 아니라
믿고 싶은 역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상고사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상황에서
나타난 갈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환단고기 열풍은 학계와 재야사학계 양쪽에
상고사 연구라는 과제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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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8 <클로징>

#. 거대한 비파형동검을 배경으로
환단고기.
지금 이 책의 의미는 많은 사람들에게
상고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입니다.

지금 바로 환단고기를 사료로서 채택하는 것은
어려울 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이 책은 우리의 상고사와 고대사를 연구하는데
참고가 되거나,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해보는 것은, 지금 우리에게는
아직까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상고사를 연구하고,
역사의 지평을 넓히는 적극적인 자세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중국이나 일본만 해도,
신화로 알려진 그들의 상고사를 연구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학계나 재야 구별없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서
끊임없이 역사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상고사는 민족의 보고입니다.
어쩌면 미래의 씨앗이 될 값진 자신이
아직 완전하게 개척하지 못한 그 영역에 숨어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단고기가 촉발시킨
상고사에 대한 뜨거운 관심만큼은
되새겨 봐야 하겠습니다.
그런 관심이야말로 상고사에 대한
대장정의 출발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추적! 환단고기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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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윤식님의 댓글

김윤식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그런데요 여기서 궁금한게 있는데요.. 태호복희가 진으로 건너갔다고 나오자나요??? 그런데 그 진이란 고조선 시대때 한반도에 있던 진국을 말하는 것인가요???

이창현님의 댓글

김윤식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상고사에 대한 교육이 없었던 학자들이 설령 상고사의 완벽한 자료를 발굴했다 하더라도 자기들 손에서 발굴이 되지 않았다면 쉽게 인정하려 들지 않을것이다.
자신들이 주도가 되지 않으면 학계를 이끌수 없다는 자기 중심적인 사고 방식들이 어렵게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의 업적이 수포로 돌아가게 만든다.
중국, 일본은 재야가 동북 아시아의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하기 위해서 엄청난 비용과 노력과 자료를 동원한다.
어쩌면 오늘날 중국의 고구려 역사왜곡도 '한반도의 역사를 제대로 파헤쳐보니 결과는 중국의 참패다.'라는걸 재빨리 인식했을지도 모른다.
우리 학자들은 고집스러울만큼 자신들의 생각에 극단적으로 매달린다. 굳이 역사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교단에서의 학자들의 자세는 경직된게 사실이다. 자신들의 논문 외에 다른이들의 논문은 연구의 대상이 되지않는것이다.
정신 차리자. 나라가 커 나간다는건 정신이 깨끗하게 정화 된다는 의미일 수 있다. 중국, 일본은 더러운 정신으로 망국을 자초하게 되어 있으니, 우리 국민들은 더더욱 도덕적으로 완성된 자아를 성립시켜 전세계를 이끄는 도덕 국가의 완성을 만방에 보여 주어야겠다.

김윤식님의 댓글

김윤식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네 진국이라는 국가가 있었고요. 전라도와 경상도 서울 충청도를 포함한 지역으로 예상되는 곳인데
삼국유사에 '준왕이 그를 따르는 사람들과 도망하여 지금의 경기도 근처에 진국을 세웠다' 라고 나와있고요..
요즘은 다른 설이 인기를 끄는데 고조선이전에 배달국에서 갈라져 나왓다는 설이 있죠..
진국에 대해서 우리가 모르는 것은 당연할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서중에서 기록이라곤 삼국유사에 단 한줄 기록된것 뿐이니까요... 중 고등학교 국사선생들도 거의 모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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