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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이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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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용순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65회 작성일 02-07-31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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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물활론(物活論)을 믿었다. 땅에서 나오는 돌멩이들은 생물처럼 스스로 자란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광산에서 금을 캐다가 더 이상 나오지 않으면 다시 자랄 때까지 기다리곤 했다. 그들에게 화석은 자연이 동식물을 만들려다가 실패한 것쯤으로 보였다. 게다가 기독교인들은 악마가 사람들을 혼란시키기 위해 화석을 만들었다고 믿었다.

18세기에 들어서자 화석이 과거에 살았던 생물의 잔해라는 설명은 점차 설득력을 갖게 됐다. 이를 바탕으로 지구의 역사와 생물의 진화에 대한 이론들이 나왔다. 1749년 프랑스 왕립식물원 원장이었던 콩트 드 뷔퐁(1707-1788)은 화석을 기초로 지구의 나이를 8만년으로 추정했다. 이는 성경에 따라 천지창조가 기원전 4004년 10월 23일에 일어났다는 제임스 어셔(1581-1656) 대주교의 계산을 뒤집는 혁명적인 주장이었다. 뷔퐁으로부터 1백10년 후인 1859년, 다윈은 화석을 기초로 생물진화론을 확정한 ‘종의 기원’을 발표했다.

화석은 이처럼 지구의 역사와 생물의 진화를 동시에 설명해낸 귀중한 자료였다. 그런데 화석에는 또 하나의 비밀이 감춰져 있었다.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에서 비슷한 화석이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물론 멀리 떨어진 두 곳에 사는 생물이 비슷한 진화과정을 거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북아메리카와 아시아를 연결했다고 믿었던 ‘베링기아’와 같은 육지다리가 대서양에도 있었다고 가정해 이를 설명해왔다. 이러한 설명에 의문을 품은 사람은 독일의 지구물리학자인 알프레트 베게너(1880-1930)였다.

베게너는 1904년 베를린대학에서 천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천문학자였지만, 기상학과 지질학에 더 관심이 컸다. 26살 때인 1906년, 그는 동생과 함께 최초로 기구를 이용해 북극 대기를 관측함으로써 이름을 떨쳤다. 당시 그의 52시간 기구비행은 세계 최고기록이었다. 같은 해 그린란드를 탐험했고, 1909년 독일로 돌아와 마르부르크대학에서 천문학과 기상학을 가르쳤다.

1911년 가을 마르부르크대학 도서관에서 책을 보던 베게너는 매우 흥미로운 논문을 발견했다. 대서양 양쪽에서 발견된 동식물 화석이 비슷하다는 논문이었다. 왜 그럴까. 혹시 아프리카대륙과 남아메리카대륙이 붙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는 찢어진 신문을 다시 짜맞추듯, 두 대륙의 지도를 찢어 맞춰보며 이같은 생각을 했다. 두 대륙의 해안선이 너무나 잘 일치했기 때문이다.

베게너는 곧바로 자신의 생각을 밑받침할 증거를 찾아나섰다. 그런데 북아메리카 대륙의 애팔래치아산맥과 스코틀랜드 지방의 지층이 일치하고, 남아프리카 고원과 남아메리카 브라질의 지층이 일치하는 것이 아닌가. 또 오늘날 기후조건과 다른 곳에서 살았던 엉뚱한 화석들도 나타났다. 양치류나 소철처럼 열대지방에서 사는 식물의 화석이 북극에서 발견되는 예다. 이를 근거로 베게너는 1912년 대륙이동설(대륙표이설)을 발표하고, 이를 정리해 1915년 ‘대륙과 대양의 기원’이란 책을 출판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3억년 전 지구는 판게아(그리스어로 ‘모든 지구’라는 뜻)라고 하는 거대한 하나의 대륙이었으나, 점차 균열을 일으켜 이동함으로써 오늘날의 대륙들이 만들어졌다는 것. 물론 그와 같은 이론은 17세기 영국의 경험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을 비롯해 많은 과학자들이 제기한 바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질학적인 증거를 수집해 과학적으로 설명한 과학자로는 그가 처음이었다.

베게너의 이론은 나오자마자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 어떻게 대륙이 움직이는지를 설명하지 못했던 것이다. 베게너는 마치 쇄빙선이 얼음판을 쟁기질하면서 뚫고 움직이듯이 대륙지각이 해양지각을 뚫고 떠다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힘은 지구의 자전에서 비롯된 원심력과 달과 태양의 조석력에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의 설명은 이치에 맞지 않는 구석이 너무 많았다. 대륙이 움직이기엔 원심력과 조석력은 너무 작았고, 대륙지각이 해양지각을 쟁기질했다면 대륙 자체는 뒤틀리고 말았을 것이다. 또 대륙을 움직일 정도의 조석력이 있었다면 지구는 1년도 못돼 멈추고 말았을 것이라는 계산결과도 나왔다. 결국 베게너의 이론은 학자들의 논의에서 멀어져갔다.

그런데 잠깐 베게너의 이론이 언급된 바 있다. 1928년 영국의 지질학자 아서 홈스(1890-1965)가 방사성 물질이 붕괴할 때 나오는 열이라면 지구 내부에서 대류계를 형성시킬 수 있다고 발표하면서 대륙이동의 가능성을 시사했던 것이다. 그는 지각 아래에 맨틀 물질이 있어 상승하고 확장함에 따라 대륙지각이 수평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맨틀대류설 역시 증거불충분으로 묻혀버렸다.

베게너의 대륙이동설에 대한 증거들이 발견된 것은 2차대전 이후 해양저 탐사가 본격화되면서부터다. 대표적인 것이 1953년 중앙해령 사이에서 발견된 열극(해저산맥 사이로 길다랗게 벌어진 틈새)이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 프린스턴대학 교수인 해리 헤스(1906-1969)는 1960년 대륙이동설과 맨틀대류설을 어두운 창고 속에서 다시 끄집어냈다. 그는 해저산맥은 맨틀물질이 상승해서 생긴다고 주장했다. 이어 1963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바인 교수과 메튜스 교수는 해저산맥의 고지자기를 측정해 헤스의 연구결과를 뒷받침하고, 1967년에는 대륙이 여러 개의 판으로 구성돼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로써 베게너의 대륙이동설은 50여년 만에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대륙이동설은 그 부산물로 산맥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화산과 지진이 왜 발생하는지를 밝혀주었다. 그러기에 대륙이동설을 코페르니크스의 지동설에 비유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베게너는 자신의 위대한 이론이 빛을 보기 전에 사망했다. 그는 1912년 대륙이동설을 제기한 후, 다시 그린란드 탐험과 기상학 연구에 매진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에는 독일군에게 기상정보를 제공하는 일을 맡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자 오스트리아 그란츠대학에 자리를 잡고 기상학과 지구물리학 등을 가르쳤다. 그리고 1930년 50세의 나이로 그린란드 탐험에 나섰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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