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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 날아간 소비에트의 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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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순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71회 작성일 15-06-02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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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dog
소비에트 스페이스 독스

처음으로 가본 런던의 테이트 모던 뮤지엄은 근사했다. 구내 서점도 근사했다. 좋아하는 독일 사진작가 볼프강 틸만스의 전집을 하나 샀다. 그러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소비에트 스페이스 독스'라는 제목을 보고도 그냥 지나칠 순 없었다. 계산을 하러 매대에 가니 직원이 반색했다. "나도 정말 좋아하는 책이야. 특히 디자인이 정말 멋지지 않니?". 나는 답했다. "맞아. 그런데 슬퍼. 그래서 사는 거야". 점원은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여전히 이 책의 근사한 디자인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쏟아냈다.

'소비에트 스페이스 독스'는 제목 그대로, 소련 시절 우주개발 경쟁에 활용된 거리의 개들에 대한 책이다. 그들의 활약을 담은 당시의 선전 엽서 등이 가득하다. 1950년대 소련(소비에트 연방)과 미국은 우주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로켓과 위성이 매년 우주로 쏘아 올려졌다. 문제는 인간이 과연 우주 공간으로 나갈 수 있느냐였다. 인간으로 실험을 할 수는 없다. 만약 당신이 우주 개발을 하는 과학자고, 인간 대신 우주 공간으로 쏘아 올릴 수 있는 동물을 찾는다면? 냉정하고 과학적이고 생물학적으로 따지자면 그건 역시, 개일 수밖에 없었다.

1957년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린 소련은 2호에는 개를 태우기로 결정했다. 과학자들은 모스크바 거리를 떠돌던 개 중에서 '라이카'를 선택했다. 가장 똑똑하고 적응력이 좋고, 사람을 잘 따른다는 이유에서였다. 라이카는 거의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좁은 공간에서 맥박과 체온 등을 잴 수 있는 전극이 주렁주렁 달린 채 우주로 쏘아 올려졌다. 발사는 성공적이었다. 소련은 환호했고 전 세계는 놀라워했다.

laika dog

인류 최초의 '스페이스 독' 라이카

라이카는 돌아오지 못했다. 사실, 돌아오지 못할 운명이었다. 스푸트니크 2호에는 지구로 귀환하는 장치 따위는 원래 없었다. 소련의 발표에 따르면 라이카는 일주일을 생존한 뒤 미리 준비된 독극물 주사를 맞고 평온하게 숨을 거뒀다. 라이카는 소련의 우주과학을 전 세계에 알리고 인도적으로 목숨을 잃은 영웅이 됐다. 라이카를 기리는 포스터, 노래, 엽서는 당대 소련의 아이들에게 가장 고귀한 선물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건 허상의 신화였다. 지난 2002년, 라이카가 위성 발사 5시간여 만에 고온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는 자료가 반세기 만에 공개됐다. 인도적인 죽음도, 영웅적인 죽음도 아니었다.

라이카만이 유일한 '소비에트 스페이스 독'이었던 것은 아니다. 1960년 8월에는 '벨카'와 '스트렐카'라는 이름의 개 두 마리가 스푸트니크 5호를 타고 우주로 날아갔다. 두 개는 살아남았고, 하루만에 지구로 귀환했다. 스트렐카는 지구로 돌아온 뒤 새끼도 낳았다. 그 중 한 마리는 미국 케네디 대통령에게 선물로 보내졌다. 1960년 12월에는 개 '프첼카'와 '무슈카'가 우주로 쏘아 올려졌다. 두 개는 지구로 귀환 중 불에 타서 죽었다. 소련이 우주로 보낸 개 중 죽은 개는 모두 다섯 마리다. 그들은 모두 아름다운 선전용 엽서에 담겼다.

space dog

무사히 귀환한 벨카와 스트렐카

'소비에트 스페이스 독'에 담긴 엽서들은 아름답다. 만약 당신이 빈티지 엽서 애호가라면 이 책이 소개하는 모든 프로파간다 엽서들을 수집하고 싶어 안달이 날 것이다. 나도 구하고 싶다. 아름답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그 엽서들을 방에 붙여놓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아름다운 엽서 속 개들은 고통스럽고 외롭게 우주에서 홀로 죽었다. 당대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개들은 소련의 위대한 우주적 업적을 수행한 영웅이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물론, 반세기 전 사람들이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못했던 건 아니다. 지난 1998년, 스푸트니크 2호의 발사에 참여했던 과학자는 "아직도 라이카의 죽음을 정당화할 방법을 도저히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또 다른 과학자는 "죽어서 라이카를 만난다면 미안하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인류의 과학적 목표와 순수한 양심의 충돌은 라이카를 쏘아 올린 그 날부터 수많은 비글을 실험실에 가둬둔 지금까지 계속된다.

나는 라이카가 우주 어딘가에 살아있다는 상상을 종종 한다. 우주는 외로운 곳이지만 라이카는 프첼카와 무슈카를 만나서 함께 우주를 떠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뻔할 정도로 동화 같아서 웃음이 나오는 소리라고?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라이카'라는 한 마리 개의 이름이 지탱하고 있는 거대한 우주적 슬픔을 극복할 가장 현실적인 방법을 아직도 찾지 못했다.


http://www.huffingtonpost.kr/dohoon-kim/story_b_6156624.html?utm_hp_ref=kr-anim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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