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석유공급 장기전망'을 발표했을 때, 세계 석유시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 미래 석유공급에 대해 그동안 낙관적 전망을 해오던 이 기관이 "세계 400개 유전(油田)의 향후 생산 가능량을 조사한 결과, 공급 전망을 낮출 수밖에 없다"면서 기존의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구체적인 전망치는 오는 11월 정식보고서를 통해 발표될 예정이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IEA가 2030년 1일 석유생산량 전망을 작년 예상치인 1억1600만 배럴에서 1억 배럴 수준 이하로 크게 내릴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래 석유공급이 원활치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21일 국제유가는 사상 처음으로 배럴당 130달러를 돌파해, WTI(서부텍사스 중질유)는 배럴당 132달러를 기록했다.

이처럼 최근 석유시장을 흔드는 가장 큰 진원지는 세계 석유생산이 조만간 한계에 직면할 것이라는 '석유 정점론(peak oil)'이다. 그동안 소수 에너지 학자들이 주장해 오던 이 이론이 최근 고유가 시대를 맞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고, 국제 역학관계에도 현실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

◆확산되는 '석유 정점론'

영국의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25일 "세계는 '값싼 석유'(cheap oil)의 시대를 잊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석유정점론을 소개했다. 이유는 다양하다. 지난 수십 년간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 산유국들이 추가적인 유전개발에 소홀히하는 등 석유생산능력을 늘리지 않았음을 지적하는 전문가도 있고, 지구에 묻힌 석유매장량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분석하는 이들도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 인도 등 신흥경제개발도상국의 석유 수요는 계속 늘어날 추세다. 미 투자은행 골드만 삭스는 올 연말까지 배럴당 유가가 150달러 선을 넘고 내년에는 배럴당 200달러까지 이를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CNN 방송은 최근 에너지 위기를 다룬 특집방송을 통해 "현재 개발된 세계 곳곳의 유전에서 뽑아내는 석유생산량은 매년 4%씩 줄어들고 있다"면서 "현재 상황대로라면 세계는 향후 10년 동안 매일 300만 배럴씩 석유가 모자라는 위기에 직면한다"고 보도했다.

◆미·영 선진국과 OPEC 간 갈등

산유국의 석유생산 문제점을 지적하는 석유정점론은 최근 국제정치에서도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에서 "최근 국제유가가 급격히 뛴 이유는 석유생산이 석유수요를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이라면서 석유생산량이 정체된 심각성을 인정했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와 의회는 OPEC(석유수출국기구) 등 산유국에 석유 공급량을 늘릴 것을 요구하면서 각종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 정부는 석유생산을 늘리는 데 주저하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해서는 무기수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검토 중이고, 미 하원은 OPEC 회원국들의 가격담합이 문제가 되는지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미 법무부에 부여하는 법안까지 통과시켰다. 영국 고든 브라운 총리도 최근 "고유가를 유발하는 OPEC의 생산 담합 구조를 고치기 위해 국제적인 공조가 필요하다"면서 미국에 가세한 상태다.

그러나 이에 대해 OPEC은 "최근 글로벌 신용위기 이후 금융시장을 떠난 투기자본에 의해 유가가 올랐을 뿐, 석유생산 구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