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분야에 업적을 남긴 쿨롱 이 시기에 쿨롱이 한 연구 중에는 전기와 자기에 관한 연구가 가지 중요하지만 그 밖의 분야에 대해서도 연구를 계속했다. 쿨롱은 1781년부터 1806년 사이에 과학아카데미에 35편의 논문을 제출했다. 그는 이 동안에 보다 진자를 발명한 보다(Jean-Charles, chevalier de Borda, 1733 – 1799), 뛰어난 수학자였던 라플라스(Pierre-Simon, marquis de Laplace, 1749 – 1827) 등과 함께 연구했다. 그는 연구 이외의 활동에도 적극적이어서 과학 아카데미의 310개 위원회의 위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쿨롱은 과학 분야와 관계가 없는 분야에서도 많은 일을 했다. 1784년에는 왕실 분수대를 관리하고 파리에 물 공급을 책임지는 일을 맡았으며, 1787년에는 영국을 방문하고 영국 병원 실태에 대한 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하여 병원을 개선하는 일도 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을 때 그는 여러 가지 과학과 관련된 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있었다. 대혁명으로 많은 연구기관이 재조직되었다. 과학 아카데미는 1793년 8월에 폐쇄되었다가 프랑스 연구소라는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공직을 떠나 시골에서 혼자 실험하면서 연구를 하고 있던 쿨롱은 프랑스 연구소의 회원으로 선출되자 1795년 12월에 파리로 돌아왔다. 1802년과 1806년 사이에는 프랑스 공립학교의 감찰관으로 임명되어 교육 제도를 개혁하는 일에도 관여했다.
쿨롱의 법칙 - 전기력의 정량화! 모든 일에 적극적이었던 쿨롱은 많은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기력에 관한 쿨롱 법칙을 발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량적인 법칙의 등장으로 전기에 관한 연구가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자연현상을 이해할 있는 기초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자연에는 네 가지 힘이 존재한다. 중력과 전자기력, 그리고 강한 상호작용(강력)과 약한 상호작용(약력)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강한 상호작용과 약한 상호작용은 원자핵 속과 같이 아주 짧은 거리에서만 작용하는 힘이어서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연현상과 직접적으로는 관계가 없다. 중력은 전기력에 비하면 아주 약한 힘이지만 전기력과는 달리 항상 인력으로만 작용해서 많은 질량이 모이면 큰 힘이 된다. 따라서 우주에서 천체들의 운동을 지배하는 힘은 중력이다. 전기력은 중력과 마찬가지로 거리 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이지만 인력과 척력이 있어 서로 상쇄될 수 있다. 따라서 많은 물질로 이루어진 전기적으로 중성인 천체 사이에는 전기력이 작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원자나 분자로 이루어진 물체는 전자들의 이동으로 쉽게 전하를 띨 수 있기 때문에 전기력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원자핵과 전자의 결합으로 원자가 만들어지는 과정, 원자들이 결합하여 분자를 형성하는 과정, 그리고 분자들이 모여 물체를 형성하는 과정에는 모두 전기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마찰력 역시 전기력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하 사이에 작용하는 전기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아야 한다. 쿨롱은 쿨롱 법칙을 발견하여 그 기초를 만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