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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트릭트 9’의 실존 외계인? 누르 에브라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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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현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댓글 1건 조회 965회 작성일 09-11-18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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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트릭트 9>는 외계인 영화가 아니다. 우리 남아공 사람들 이야기고 바로 내 가족 이야기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 사는 누르 에브라힘 씨는 <시사IN>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서 영화 <디스트릭트 9>가 흥행하고 있다는 소식에 대한 답이었다. “힘없는 외계인 가족이 강제로 집에서 쫓겨난다는 영화 줄거리를 들으며, 35년 전 내가 겪은 일이 떠올랐다.”

남아공 출신 감독이 만든 영화 <디스트릭트 9>는 한국에서 10월 셋째 주 주말 전국 관객동원 1위를 차지했다. 케이프타운에 나타난 외계인 난민을 소재로 한 이 SF영화는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박수를 받는다. 식자는 영화에 담긴 사회 비판의식에 주목했다. 외계인을 친구 혹은 적으로 이분하는 할리우드 UFO 영화와 달리, 여기서 외계인은 힘없는 불법 이주민으로 묘사된다. 지구인은 외계인 거주 지역을 강제 철거하고 외딴 곳에 집단 수용소를 따로 만든다. 이 영화를 본 관객은 ‘용산 철거민 참사가 생각났다’거나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과 탄압이 연상된다’는 식으로 각자 나름으로 공감했다.

디스트릭트6 철거 피해자였던 누르 에브라힘 씨.
영화 줄거리와 비교할 만한 사회적 차별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디스트릭트 9>는 과거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인종차별) 를 배경으로 한 게 분명하다. 이름부터 케이프타운에 실제 존재한 지명 ‘디스트릭트6’을 살짝 바꾼 것이다.

남아공판 뉴타운 피해자 6만명

디스트릭트6은 남아공 사람들에게 마치 한국의 1980년 광주만큼 의미 있는 역사적 장소다. 1970년대 백인 정부가 케이프타운 디스트릭트 6에 사는 유색인종 6만명을 강제 이주시켰다. 이들은 오랫동안 살아온 집을 잃고 25 km 떨어진 유색인종 집단 지구로 쫓겨났다.

디스트릭트6이라는 이름은 1867년 케이프타운 시가 도시 구획을 나누면서 제6행정지구라는 번호를 붙이면서 유래한 것이다. 약 1.5㎢ 되는 곳에 흑인뿐만 아니라 아랍인·말레이시아인·인도인 등 여러 민족이 옹기종기 뒤섞여서 지냈다. 누스 에브라힘씨 가족은 말레이 출신이다. 인근에 항구가 있어서 다양한 이주민이 모여 살았고 자유 노예부터 상인·노동자까지 출신 성분도 다양했다. 디스트릭트6에서 나고 자란 에브라힘 씨는 “모슬렘과 유태인이 이웃에 살았고 종교와 인종과 관계없이 모두가 평등했다”라고 회상했다.

영화 <디스트릭트 9>에서 당국은 군대를 이끌고 외계인이 사는 집을 찾아가 이주를 종용한다.
하지만 인종차별 정책이 강화되자 비극이 찾아왔다. 강제 철거는 1913년부터 조금씩 진행되다 1950년 집단지역법(Group Areas Act)이 생기면서 1964~1969년에 유색인종 1만8천명이 강제로 쫓겨났다. 1966년 2월11일 정부는 디스트릭트6 백인 지구로 선포했고 1968년부터 대대적인 재개발에 들어갔다. 남아프리카공화국판 ‘뉴타운 계획’이었다.

“철거 과정은 폭력적이었다. 불도저가 우리 집을 밀어버리고 있을 때 나는 길 건너편에서 그 광경을 지켜봤다. 아버지는 마치 아이처럼 울부짖었다. 많은 이웃이 화병으로 숨졌다. 나는 울기보다는 분노를 키웠다.” 에브라힘 가족은 1975년에 ‘애슬로(Athlone)’이라고 불리는 유색인종 거주지로 쫓겨났다. 그곳은 풀한포기 없는 사막으로 둘러싸인 게토였다. 케이프 플랫이라고도 불린 이 게토는 여러 군데가 있었다. 각 게토는 흑인 지구·말레이시안 지구·인도인 지구 등 각 인종별로 분리되어 있었다. 서로 다른 인종끼리 결혼한 가정은 부부가 생이별해야 했다.

정부는 케이프타운을 국제 도시로 키우려면 재개발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디스트릭트6이 범죄와 매춘의 소굴이 되어서 ‘대청소’할 수밖에 없다는 명분도 들이댔다. 영화 <디스트릭트 9>에서 나이지리아 갱이 지구인과 외계인 사이에서 밀거래하는 장면이 나온다. 1960년대에 이탈리아 갱이 디스트릭트6에서 암약하는 모습을 패러디한 것이다. 여기에 대해 누스 에브라힘 씨는 이렇게 답했다. “물론 디스트릭트6에서는 유흥 문화가도 있었고 마피아도 살았다. 하지만 거기는 다양한 문화가 꽃을 피우는 곳이었다. 술집에서 사람들은 재즈를 즐겼고 음악가와 작가가 예술을 이야기했다. 무엇보다 그곳에는 아이들이 많았다.”

실제 케이프타운 디스트릭트6 마을(왼쪽)은 불도저가 지나간 뒤 폐허가 됐다(오른쪽).
불도저가 디스트릭트6을 밀어버린 뒤에 백인 정부는 신도시를 건설했다. 1973년 디스트릭트6은 조넨블로엠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백인 학생만을 위한 대학교도 세워졌다. 1985년 조넨블로엠 주민 3500명은 모두 중산층 백인이었고 상당수는 공무원이었다.

모래사막으로 강제 이주

디스트릭트6 사건은 아파르트헤이트가 저지른 가장 악랄한 사례로 기억된다. 디스트릭트6 해체는 흑인 사회에 저항의식을 고취했다. 1970년대 스티브 비코를 중심으로 ‘흑인 각성운동’이 벌어졌다. 재개발 공사 과정에서 폭력?비폭력 저항이 이어졌다. 국제사회도 디스트릭트6 지역에 신도시를 건설하려는 백인 정부에 제동을 걸었다. 애초 추진했던 신도시 뉴타운 계획은 차질을 빚었다. 결국 디스트릭트6 지구 상당 지역은 공터로 내버려졌다.

인종적인 이유든 경제적인 이유든 강제 철거 사태는 세계 어디서나 일어난다. 디스트릭트6 이야기가 특별한 것은 그 이후에 벌어진 일 때문이다. 1990년 2월2일 마침내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합법화되고 2월11일 넬슨 만델라가 석방됐다. 남아공은 1991년 인종차별법을 폐지하고 새 시대를 열었다. 차기 대통령 후보로 떠오른 만델라는 1993년 9월 디스트릭트6 철거민을 만나서 디스트릭트6 신도시 계획을 중단시키겠다고 공약했다. “돌 하나도 건드리지 않겠다”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쫓겨난 주민들이 다시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1994년 4월 첫 번째 민주 선거를 실시한 결과 만델라가 대통령이 됐다. 만델라는 1995년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세우고 ‘과거사 바로잡기’에 나섰다. 1913년 이후 강제로 땅을 뺏긴 사람이 구제 신청을 할 수 있게 됐다. 1996년 디스트릭트6 강제이주 피해 진상조사를 위한 청문회가 열렸다. 국제앰네스티가 주선한 이 청문회에서 많은 희생자와 가족이 증언을 했다.

2004년 만델라 대통령(오른쪽)이 디스트릭트6 피해자에게 새 집 열쇠를 건네는 기념식이 열렸다.
2004년 2월11일 만델라 대통령은 특별한 퍼포먼스를 열었다. 1968년 디스트릭트6에서 추방 당한 에브라힘 무랏과 단 은자벨라 씨가 만델라 대통령 앞에 섰다. 만델라는 그들에게 디스트릭트6에 복원된 집에 들어갈 열쇠를 건네줬다. 그들은 36년 만에 마침내 한을 풀었다.

물론 모든 철거민이 다 보상받고 귀환한 것은 아니다. 흑인 정부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케이프타운에서 아직 영향력을 행사하는 백인 지역 의회는 옛 철거민에게 집을 주는 일을 내켜하지 않는다. 지방 분권화가 된 남아공에서 중앙 정부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현상에 대해 위성방송사 알자지라는 2008년 특집 방송에서 “과거 반민주주의 정치 때문에 쫓겨났던 사람들이 이제는 민주주의 정치 때문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아이러니다”라고 평했다. 지금까지 25가구가 귀환했고, 4000명가량이 귀환 신청을 하고 차례를 기다린다. ‘디스트릭트6 토지 권리자 모임’의 한 회원은 유튜브 동영상에서 이렇게 말한다. “억울하게 빼앗긴 집과 토지 되찾기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오늘날까지도 남아공의 역사 바로잡기 작업은 계속된다. 올해 9월28일 남아공 지역개발 및 토지개혁부 장관은 디스트릭트6 피해자 가운데 300명이 추가로 귀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들이 1996년 청원을 낸 지 13년 만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학생들은 역사 부교재로 디스트릭트6에 관한 책을 읽는다.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한 남아공 인디 밴드 이름은 디스트릭트6이다. 1994년 12월 세워진 ‘디스트릭트6 역사관’은 자녀 역사 교육 장소로 인기 있다. <디스트릭트 9>를 만든 남아공 영화 감독이 이 역사를 몰랐을 리는 없다.

‘디스트릭트6 역사관’에서 일하는 연구원 맨디 상거씨에게 영화 <디스트릭트 9>에 대한 평을 물었다. 그녀는 “어두운 과거를 일깨운 점은 좋았지만, 전체적으로 불만스러운 부분 역시 있었다. 이 영화가 또 다른 편견과 스테레오타입을 만드는 게 아닐까 걱정된다”라고 말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백인·흑인·나이지리아인 모습이 정형화되어 있다는 게 그녀의 비판이다.

디스트릭트6 역사관에서 일하는 직원 가운데는 철거민 출신이 많다. 철거민 2세인 린다 포춘 씨는 "우리 가족은 2010년에 디스트릭트6로 돌아갈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누르 에브라힘 씨도 현재 <디스트릭트6 역사관>에서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친다. 그는 <누르 이야기 : 디스트릭트6에서의 삶>이라는 책도 펴냈다. 에브라힘 씨는 “언제까지나 과거에 대해 분노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이제는 그들을 용서하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물론 그가 과거를 용서할 수 있게 된 데에는 흑인 정부가 한을 풀어주고 있다는 점이 작용했을 것이다. 용서와 화해를 위해서는 정의 실현이 필요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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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카렌스님의 댓글

카렌스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보는 시각에 따라 감상평은 틀린거 같아요~ <br />저야 특수효과를 좋아라 하기에 재밋게 영상만을 놓고 구경을 했는데요~<br />원래 저 영화의 감독은 "Alive in Joburg"라는 6분짜리 단편 영화를 토대로 만들었다고 하더군요.<br />"Alive in Joburg"의 단편 영화 자체가 어떤 의미를 두고 만든 것인지는 끝까지 볼 상황이 안되어<br />모두 보지는 못했지만, 올리신 글의 내용으로 만들어진 듯 보이네요.<br />디스트릭트10을 기대해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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