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러 회사가 에어컨을 만들고, 스키장비 전문업체가 반바지 운동복 사업에 나선다. 또 겨울철 스키 리조트가 4계절 종합리조트장으로 변신한다….

겨울시장을 사업영역으로 삼았던 기업들이 주 타깃을 여름시장으로 180도 바꾸고 있다. 변신의 흐름은 보기보다 강하고, 거세다. 어느새 소비자 입까지 치고 들어와따뜻한 겨울차(茶)를 만들던 기업이 이제는 차가운 여름음료를 전략상품으로 출시 중이다. 이유는 뭘까? 지구온난화와 짧아진 겨울 때문이다.

◆보일러 회사가 에어컨까지

귀뚜라미보일러 아산공장에선 요즘 희한한 작업이 진행 중이다. 보일러 라인을 줄이고, 그 자리에 에어컨 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같은 공장에서 보일러·에어컨을 동시 생산한다는 전략이다. 45년째 ‘보일러 전문기업’ 명성을 누려온 귀뚜라미보일러는 2003년 센추리 아산공장을 인수, 가정용 에어컨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작년엔 범양냉방공업을 인수했다. 조순재 홍보팀장은 “겨울이 짧아지고, 또 더워지면서 보일러 기업은 겨울철마다 전전긍긍하기 마련”이라면서 “고심 끝에 수익원을 정반대 사업군인 냉방기기에서 찾았고, 이제 무더위·강추위 등 이상(異常)기후에 상관없이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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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사인 경동보일러. 작년 9월 아예 회사이름을 경동나비엔으로 바꿨다. 작년 3월부터 주문자생산방식(OEM)으로 가정용 에어컨을 판매하면서 사명에서 ‘보일러’ 단어를 걷어내 전천후 기업임을 선언한 것. 이 회사는 기존 보일러 판매 유통망을 활용, 보일러·에어컨을 패키지로 묶은 상품으로 소비자를 공략하고 있다.

◆차 회사의 여름 음료시장 진출

커피·녹차로 유명한 동서식품은 지난해 여름을 앞두고 ‘보리수’라는 제품을 내놓았다. 보리차를 페트병에 담아 시원하게 마실 수 있게 한 것. 여름 시장을 겨냥해 처음 내놓은 상품이지만, 4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며 음료시장에 대한 가능성을 엿봤다. 시원한 정수기 물에도 잘 녹는 녹차 티백 ‘십지차’도 지난해 선보였다. 안경호 홍보실장은 “여름 음료수를 내놓으며 차 전문회사 이미지가 희석되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부쩍 커진 여름시장을 공략하는 게 더 중요했다”고 말했다.

◆겨울 리조트는 4계절 리조트로

짧아진 겨울에 스키장들은 초비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단위 4계절 물놀이 시설로 정면 돌파 중이다. 최근 짓는 물놀이 시설은 수만 평 이상의 대규모다. 스키타기에 지친 이들을 위한 구색맞추기용 기존 수영장과는 차원이 다르다. 겨울이 아예 사라진다 해도 염려 없을 만큼 단단히 대비하고 있다.

비발디파크는 지난해 7월 3만여 평 규모의 ‘오션월드’를 개장했다. 올해에는 110m 규모의 야외 파도풀을 추가 오픈한다. 보광휘닉스파크도 내년 6월 7000평 규모의 물놀이 시설인 ‘워터파크’를 개장한다. 휘닉스파크 측은 “스키인구가 계속 늘고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여름 레저·관광 시장이 더 커질 것에 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 기업들도 초비상이다. 로시뇰과 헤드·살로몬 등 유럽의 유명 스키장비 제조업체들은 적설량 부족으로 스키 시즌이 짧아지자, 몇 해 전부터 골프나 마라톤·인라인스케이트 등 다른 종목의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 스위스 베른대 연구팀은 최근 지구 온난화로 스위스 내 230개 스키 리조트의 수입이 앞으로 30%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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