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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 문명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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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보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댓글 11건 조회 984회 작성일 07-07-16 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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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의 원본은 http://cafe.daum.net/bgtopia 여기에 있습니다.




- 수메르 문명에 대하여






(( 시간이 없는 분들은 아래 결론이라도 읽어 보세요 ))


◎ 서 론

◎ 본 론

* 수메르, 수메르 사람들

* 수메르 민족의 기원

* 수메르 문화 관련 신화

* 인류 최초의 문자와 도시 발명

* 교착어를 사용한 검은 머리의 사람들

* 고대 중동세계의 보편문화가 된 수메르 문화

* 수메르 문학과 기독교 성서

◎ 결 론

* 느낀점 정리







Ⅰ. 서론


고대문명의 대표적인 것들로는 중국의 황하강에서 일어난 “황하문명”, 이집트의 나일강에서 일어난 “이집트문명”, 이라크의 유프라스, 티그리스 강에서 일어난 “메소포타미아문명”, 파키스탄의 인더스 강에서 일어난 “인더스문명”이 있다. 이들이 문명을 대표 한다 하여 “4대 고대 문명”이라 한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중에서도 “그 문명의 시작”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속해 있는 “수메르 문명”에 관한 설들이다. 오늘날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이유는, 바로 우리 조상들과의 관계 여부에 있다. 이러한 사실을 알 때, 우리는 “과연 그러한가?”, “그러한 근거는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질 수밖에 없다. 수메르 문명이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이며, 나아가 세계적으로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 알아봐야 할 필요를 느낀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창시자는 중앙아시아고원에서 이주한 것으로 알려진 수메르족으로 B.C 3000년경 두 강 하류지역에 들어와 우르, 라가쉬 등 도시를 만들고 살았다. 그러나 B.C 2400년경 수메르족은 셈족 지배자 사르곤에 의해 정복당하였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두 번째 단계를 장식한 사람들은 아라비아사막에 이주한 아무르인으로 알려진 셈족이었다. 그들은 바빌론을 수도로 정복하고 바빌로니아 왕국을 세웠다. 고바빌로니아는 주변의 여러 나라들은 차례로 지배한 다음 특히 6대 함무라비에 의해 강력한 중앙집권적 바빌로니아제국을 이룩하였다. 이 시기는 영토의 확장은 물론 고대 바빌로니아문명의 융성기로서 수메르문명의 진수를 계승한 위에 그들 독자의 문화적 요소를 발전시켰다. 그의 유명한 함무라비법전은 성문법으로 수메르인의 관습법을 기초로 한 것이다. 앗사리아족은 메소포타미아문명의 세 번째 단계를 이룩한 사람들로 B.C 1300년경 북부 전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메소포타미아문명의 바탕은 기본적으로 수메르문명이었으며 이것이 계속 이어 내려간 것이다. 메소포타미아 인들의 신은 천신, 바람신 등의 다신교적 신들이었으며 함무라비 때는 마르두크와 같은 최고의 신도 있었으나 이집트와는 달리 인간적이며 마술적인 성격이 다분하였다. 그들은 이집트의 내세적인 종교 대신 별을 보고 점을 치는 현세적인 점성술을 일으켰으며 변화무쌍한 사회질서를 위하여 둔기법전이나 함무라비법전을 만들었다. 그들의 문자는 진흙판에 남아 있는 설형문자였으며, 문자해독은 전적으로 서기나 승려의 업무였다. 메소포타미아에는 석질이 좋지 않았으므로 구운 벽돌이 사용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수메르의 계단식 성탑으로 구약의 바벨탑을 모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일주일을 7일로, 하루를 24시간으로 분류하는 것이나 원의 360도, 12, 60 진법 등이 모두 그들로부터 창안되어 졌다. 더욱이 고대 문학으로는 길가메시의 서사시가 매우 유명하다.

이에 대해, 좀 더 세부적으로, ‘수메르’에 관한 백과사전에서의 정의를 먼저 알아보고, 수메르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려 한다. 그리고 수메르 민족의 기원과, 수메르 문화 관련 신화도 알아보고자 한다. ‘신화’라는 것은 그 민족의 뿌리 깊은 문화적 역량이 있음을 보여 줄 것인데,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보는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류 최초의 문자와 도시 발명’은 어디에서부터 인가. 그리고 ‘교착어를 사용한 검은 머리의 사람들’이란 수식어를 가진 수메르 문명의 사람들이 정말 그러한 문화를 가졌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다. 또한, 수메르 문화가 고대 중동 세계의 보편 문화가 되었다고 하는데, 어떠한 과정이 있었는지,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기독교 성서에 ‘수메르 문화’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있다고 한다. 과연, 성서와 수메르의 관련설의 근거는 무엇인지, 오늘날 그에 대한 해석은 어떠한지 알아보고자 한다 .


Ⅱ . 본론

◎ 수메르 (백과사전에 설명된 수메르)

지금의 이라크 지방에 해당한다. 수메르는 티그리스·유프라테스 두 강으로 형성된 지방으로 BC 5000년경부터 농경민이 정주하여 BC 3000년경에는 오리엔트 세계 최고의 문명을 창조하였다. 이들은 두 강의 중·상류 지역 또는 엘람지방에서 이주하여 온 것으로 보인다. 이 지방에는 소택지가 많고 두 강에서 연유한 홍수나 페르시아만의 높은 조수로 인하여 일찍부터 간척·배수·관개·축제 등의 토목공사가 필요하여 촌락 간 협동 작업이 행해졌고 이를 통해 유력한 씨족은 강력한 발언권을 행사하였다.

이들의 문명은 시기에 따라 알 우바이드기, 우루크기, 젬데트나스르기의 3기로 구분된다.

① 우바이드기는 BC 3300∼BC 3100년경에 해당하는 문명으로 채색토기를 수반한 펴묻기와 니그로풍의 여자 토우가 있었으며, 기단 위에 만들어진 신전을 중심으로 한 작은 규모의 도시도 나타났다. 그러나 이것은 비(非)수메르적인 서아시아 고(古)민족의 문명이라고 하는 설도 있다.

② 우루크기는 BC 3100~BC 2900년경의 문명으로 금속의 사용이나 수메르 문명의 특징인 신전(지구라트)의 건축이 시작되었고 원통인장도 발명되었다. 또 여러 가지 기술이 발달하여 도시국가가 성립되고, 고형(古型)의 설형문자가 사용되는 등 수메르문명이 형성되었다.

③ 젬데트나스르기는 BC 2900∼BC 2600년경으로 전기(前期)문명이 발전하여 역사시대로 이행하는 시기이다.

그러나 수메르인의 민족이나 언어의 귀속, 원주지에 관해서는 분명하지 않은 점이 많다. 이 무렵의 정치는 촌락 공동체시대의 평등한 원리가 남아 있어 일반 시민의 성년남자로 구성되는 민회와 씨족장들의 장로회가 민주적으로 운영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쟁과 같은 도시의 사활에 직결되는 상황에서는 일시적으로 도시의 전권이 위임되는 왕이 선출되었다. 초기 왕조시대에 들어서면 우루크·우르·키시·니푸르 등의 유력한 도시국가가 패권을 다투었다. 이 중 니푸르의 엔릴신(神)은 각 도시의 왕들이 선망하여 수메르의 종교상의 중심적인 신으로 되었다. 초기 왕조시대에는 500년 간 각 도시국가가 병립·항쟁하였고, 각 도시는 신의 소유라고 생각되어 성벽으로 둘러싸인 신전을 중심으로 한 시역과 주위의 농경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도시에서는 정치·경제·군사·생활 등이 모두 신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므로 신전공동체 또는 신전국가라고 할 정도였다.

도시간의 항쟁이 자주 있자 점차 왕권이 신장되는 한편 세습화되었다. 또한 도시신(都市神)을 제사하는 신전은 방대한 수입이 있었으므로 사제계급은 세속적으로도 큰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도시국가는 수리권(水利權)이나 농경지·교역로의 확보를 둘러싼 인접 도시와의 항쟁과 내부의 왕과 사제계급의 대립으로 약체화되었다. 초기 왕조시대 말기에는 라가시왕 우르카기나의 사회개혁이 있었으나 실패하여 움마의 왕 루갈자기시에게 통합되었다. 그러나 움마도 BC 2300년경에 셈계인 아카드의 사르곤 왕에게 멸망되어 수메르의 도시국가시대는 끝났다. 180년 간의 사르곤왕조 후 수메르는 한때 다시 번영하여 우르 제3왕조를 일으켰으나 5대만에 동방의 엘람에게 멸망됨으로써 수메르는 셈족에게 동화되고, 이후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수메르의 문화는 세계 최고의 문명으로서 오리엔트 역사상 많은 공적을 남겼다. 그들은 그림문자로부터 독특한 설형문자를 발명하여 고대 오리엔트에서 널리 사용하였다. 또한 12진법과 태음력을 사용하였고 수메르법이라는 법전도 만들었다. 우르 제3왕조시대의 《우르 남무 법전》이나 《슐기 법전》은 단편적이지만 오늘날까지 남아 있으며 문학·신화·종교에 관한 책도 전해진다. 노아의 방주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홍수전설을 담고 있는 《길가메시서사시》도 잘 알려져 있다. 수메르는 자신들의 역사기록은 남기지 못하였으나 《왕명표(王名表)》에는 많은 왕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우르 제1왕조 이전은 전설적인 부분이 많다. 건축·미술·공예에도 뛰어나 신전의 기단에서 발전하였다고 생각되는 지구라트[聖塔]는 평면의 직사각형 기단을 계단상으로 쌓아 올린 바빌로니아 특유의 것으로 바벨탑의 원형이 되었다.

우르 및 에리두·우루크·라가시·키시·납푸르·움마·알 우바이드 등의 발굴은 고도의 도시생활의 자취를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우르의 왕묘에서 발견된 많은 유품은 이들의 높은 기술적 수준과 예술적 재능을 나타내고 있다. 두리새김[丸彫]으로 된 조각으로 우루크의 《여성 두상(頭像)》, 텔 아스마르·마리에서 발견된 《사제상(司祭像)》 《예배자상》이 있고, 부조에는 《와르카의 큰 잔》 《독수리의 비(碑)》가 대표적이다. 수메르에서는 점토 이외의 원료가 산출되지 않아 석재나 광석·귀금속은 모두 무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일찍부터 원격지무역이 행해져 동쪽은 인더스 유역, 서쪽은 아나톨리아·시리아·이집트까지 미쳤으며, 그 무역을 통하여 수메르문명은 오리엔트 각지로 전파되었다.



◎ 수메르 민족의 기원

수메르 사람들은 분명하지는 않으나 대략 기원전 4500년에서 4000년 사이에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이 흐르는 메소포타미아의 평야에 나타나 살기 시작하였다. 인간이 사용한 도구로 시대를 구분하는 통상적인 시대구분법에 따른다면 이때는 목축과 농경생활이 막 시작된 신석기시대였다. 메소포타미아 평야지대에는 수메르인들이 들어오기 이전에 셈어족과 인도유럽어족 계통의 여러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수메르인들은 이들 보다 우월한 문화를 지니고 이주하여 이내 이들을 압도하고 이 지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 수메르 문헌의 제시된 증거에 기초해 볼 때, 기자의 피라미드는 시나이 사막에 위치한 우주 기지에서 끝나는, 우주 관제센터의 착륙복도의 일부로서 외계인들에 의해 유도 장치로 쓰일 목적으로 건설된 듯 하다"

이 글의 저자에 따르면 고대 수메르인들은 태양계의 일곱 번째 행성인 지구를 일종의 행성간 버스 정거장으로 사용했던 우주 여행자들의 자손으로서 이들이 바로 이집트의 기자에 있는 대피라밋을 건설했다는 것이다. 수메르인의 기원에 관한 이 저자의 추리는 바로 다음과 같은 의문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 어떻게 '모든 것의 이전'이었던 문화가 갑자기 등장하여 복잡한 문자, 경제체제, 그리고 잘 구성된 사회구조를 완벽하게 갖출 수 있었을까?"

이 저자에 따르면 수메르인들의 문화적 유산은 너무나 엄청난 것이어서 당시 겨우 석기를 사용하던 원시시대 인간들의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고도의 첨단문명을 가지고 외계에서 이주해온 우주인들의 것이라고 생각해야만 합리적으로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수메르인들의 업적이 매우 뛰어난 것은 분명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된 형태로 나타난 것이 아니다. 수메르인들의 역사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알게 되겠지만, 그것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부단한 실험과 개량을 통해 단계적으로 발전되어 온 것이다.







◎ 수메르 문화 관련 신화 - 길가메쉬(Gilgamesh)의 전설

길가메쉬는 전설속의 인물이다. 반인반신의 영웅. 여신과 인간의 결합으로 태어났으므로 2/3는 신, 1/3은 인간이라고 한다. 아카드 인의 서사시에서 길가메시는 위압적인 폭군이었다. 사람들은 신들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아루루는 점토를 침으로 이겨서 엔키두라는 야성의 사나이를 대초원에서 만들었다. 그 소식을 듣자 길가메쉬는 엔키두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그에게 신전의 매춘부를 보냈다. 그 매춘부는 엔키두를 다른 동물무리들과 분리시키고 길가메시를 타도하려는 그의 야망을 자극했다.

그러나 싸움은 엔키두의 패배로 끝나고, 두 영웅 사이에서는 일생에 걸친 우정이 시작되었다. 그 두 사람은 함께 일련의 모험을 시작했다. 불을 뿜는 거인 훔바바를 샤마시의 도움으로 죽였다. 이슈타르가 길가메쉬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길가메쉬는 이슈타르의 변덕과 바람기를 지적하면서 그 유혹을 거부했다. 격노한 이슈타르는 아누에게 하늘의 수소가 지상을 파괴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그 수소는 두 영웅이 죽였다. 그러나 신들의 분노가 거세어져 엔릴은 그들의 오만에 대한 처벌로 엔키두를 병에 걸려 죽게 만들었다.

친구를 잃은 슬픔과 죽어야 하는 인간의 운명에 상처받은 길가메쉬는 대초원을 방황했다. 길가메쉬는 영원한 생명을 찾아 우트나피슈팀을 찾아갔다. 찾아가는 도중, 세계를 둘러싼 바다의 가장자리에서 이슈타르의 변신인 시두리가 말을 걸었다. 시두리는 인간은 어차피 죽을 운명이니 포도주나 마시자고 길가메쉬를 유혹했지만 길가메쉬는 엔키두가 매장되도록 좌시하지만은 않겠다고 하며 엔키두의 시체의 코에서 벌레가 기어나올 때까지 이레 낮 이레 밤을 애도하기만 했다. 시두리는 길가메쉬에게 '신들은 인간에게 죽음을 점지하고, 자신들은 영원히 산다'고 말했다.

그러나 불굴의 영웅은 마침내 '천상의 술집 주모'로부터 우트나피슈팀이 죽음의 바다 건너편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러나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나루터의 사공인 우르사나피의 도움을 얻어야만 했다. 길가메쉬는 사공을 찾아냈고 특별한 나룻배를 만들어 죽음의 바다를 건너, 신들이 우트나피슈팀 부부에게 영원한 거처로 준 "만강의 입구"로 갔다. 우트나피슈팀은 길가메쉬에게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임을 말한다. 그는 마지막 희망을 "불사의 풀"에 걸고 우여곡절 끝에 심해에서 그 풀을 구한다.

우르크로 돌아오는 도중, 샘가에서 자고 있는 동안에 한 마리의 뱀이 그 풀을 먹어버렸다. 뱀은 즉시 허물을 벗을 수 있게 되었다. 길가메쉬는 잠에서 깨어나자 자기가 죽을 운명임을 깨닫고 비탄의 눈물을 흘렸다. 다른 문헌에는 길가메쉬는 이난나를 도와 뱀, 바람, 독수리가 보호하고 있던 나무를 잘라 넘어뜨리는 얘기가 나온다. 이난나와 길가메쉬는 그 신성한 나무로 마법의 북과 북채를 만들었는데, 훗날 길가메쉬는 우연히 그것을 지하세계로 떨어뜨리게 된다.

엔키두가 그 북과 북채를 되찾아오려고 노력했지만 그는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받은 특별한 가르침을 잊는 바람에 영원히 지하세계의 포로가 되었다. 이 죽은 영웅의 영혼은 에아가 대지에 열어놓은 구멍 밖으로 한 줄기 바람처럼 나타나 왕자들이 하인이 되고 지상에서의 신분은 아무 쓸모도 없는 것이 되어버리는 "먼지의 집", 곧 저승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모험이 끝난 후, 지하세계에서 왕궁을 부여 받아 죽은자들의 하위신(lessor god)으로 숭배되었다.




◎ 길가메쉬 서사시 중 홍수 이야기

길가메쉬는 우트나피쉬팀이 어떻게 영생을 얻었는가를 알아내기 위해 길고 힘든 여정을 걸어왔다. 우트나피쉬팀은 그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먼 옛날에 신들이 슈루파라는 고대도시를 대홍수로 멸망시켰다. 그러나 '에아'신에게서 미리 경고를 받은 우트나피쉬팀은 거대한 방주를 만들어서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인류를 멸망시킨 것을 후회하고 있던 신들은 다시 희생제물을 바친 우트나피쉬팀의 신실함과 정성을 인정하여 그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었다.

슈루파 -- 당신이 알고 있는, 유프라테스 강둑 위에 세워진 그 도시는 그 안에 신들이 살던 오래된 도시였다네 그들의 마음이 위대한 신들이 홍수를 만들도록 이끌었을 때 그들의 아버지인 아누가 있었고 그들의 조언자인 용감한 엔릴, 그들의 전령인 니누르타, 관개시설로 경작하는 엔누게, 그리고 니니기쿠가 있었지 -- 에아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그는 신들의 말씀을 갈대로 만든 에게 반복해 말해주었다.

갈대 오두막아, 갈대 오두막아, 벽아, 벽아! 갈대 오두막아, 경청할지어다! 벽아! 잘 생각해보아라! 수루팍 사람, 집을 허물어라, 방주를 만들어라! 가진 것들을 포기하고 생명을 찾아라. 재산에 집착하지 말고 영혼이 살아 있도록 하라. 방주에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종자를 같이 실어라. 네가 만들 방주는 다음과 같은 크기로 만들어라. 너비와 폭은 똑 같을지어다. 천장벽을 칠하라.

나는 그 말을 알아듣고 에아에게 말했다.

나의 주님 보소서, 나의 주님, 당신이 내게 주신 명을 저는 영광으로 여기며 따르겠나이다. 그러나 제가 도시의 사람들과 장로들에게 뭐라고 답해야 합니까? 에아가 입을 열어 그의 종인 나에게 말했다. 그러면 너는 그들에게 말할지어다.

“나는 엔릴이 내게 적의를 품고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당신들의 도시에서 살 수가 없으며 엔릴의 영토에 발을 들여 놓을 수도 없다. 그러므로 나의 주님 에아와 같이 살기 위해 저 깊은 곳으로 나는 내려가리라. 그러나 여러분에게는 풍부한 물질을 소나기처럼 쏟아부으리라 선택된 새들과 희귀한 물고기들이 떨어질 것이며 땅은 풍성한 수확물을 내리라. 그는 황혼녁에 조용한 초원에 명령을 내려 여러분에게 빗줄기처럼 밀을 쏟아 부을 것이다"

새벽의 빛이 반짝이기 시작할 때 땅은 내 주위에 모여들었다. 어린 아이들은 역청을 날랐고 어른들은 그 밖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가져 왔다. 다섯째 날 나는 방주의 골격을 만들었다. 방주의 바닥면적은 1 에이커였고 각각 벽의 높이는 120 큐빗이었으며 사각형 갑판의 각 변들은 120 큐빗이었다.

나는 배의 옆면들의 모양을 내었고 그것들을 조립했다. 나는 여섯개의 갑판을 넣었고 따라서 배를 일곱 부분으로 나누었다. 바닥은 아홉 부분으로 나누어 사용할 계획이었다. 나는 배에 물마개들을 망치로 두드려 넣었다. 나는 삿대를 톱질했으며 필요한 물품들을 실었다. 나는 용광로에 여섯의 역청을 부어넣었고 아스팔트 세 사르도 내부에 부어 넣었다. 짐꾼이 나른 세 사르의 기름 바구니, 누수방지 작업에 소모된 한 사르를 제외하고 두 사르의 기름은 사공이 차곡차곡 챙겨두었다. 람들을 위해 수송아지들을 도축했으며 매일 양을 잡았다. 과즙액, 붉은 포도주, 기름 그리고 백포도주들을 일꾼들에게 마치 강물이나 되는 것처럼 퍼주었다. 그들이 마치 새해 첫날을 맞은 것처럼 향연을 즐기도록 ... 일곱째 날 배가 완성되었다.

출항은 매우 힘든 작업이어서 그들은 바닥의 판자를 위와 아래에서 배의 삼분의 이가 물에 들어갈 때까지 들어올렸다. 내가 가진 것은 모두 배에 실었다. 내가 가진 모든 은을 배에 실었다. 내가 가진 모든 금을 배에 실었다. 내가 가진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배에 실었다. 내 식구 모두와 일가친척들을 배에 오르게 했다. 들판의 짐승들과 야생 동식물들을 배에 실었다. 기술자들도 모두 배에 실었다. 샤마쉬가 나를 위해 예정된 시간을 정해주었다. "밤의 공포를 지시하신 그분이 파멸의 비를 쏟아 부으실 때 너는 배에 타서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라."

예정된 시간이 왔다. 나는 그 날씨의 모양을 지켜보았다. 날씨는 바라보기가 두려울 정도였다. 나는 배에 올라타서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었다. 배를 단단히 단속하기 위해 나는 뱃사공인 푸자르-아무리에게 배와 그 안의 모든 것들을 넘겼다. 새벽에 먼동이 틀 무렵 시커먼 구름이 수평선에서 피어올랐다. 그 속에 가 머무르며 그 동안 샬라트와 하니쉬가 전령으로서 산과 평야를 휘저으며 다녔다. (지옥의 신) 에르라갈이 세상의 댐들을 무너뜨렸으며 네번째로 니누르타가 와서 제방들을 잇달아 부쉈다. 아눈나키는 횃불을 치켜 들어 온 세상이 화염에 휩싸이도록 불을 질렀다. 아다드에 의한 경악이 하늘에 닿아서 모든 빛나던 것들이 암흑으로 바뀌었다. 그 넓은 토지가 항아리처럼 산산조각이 났다.

단 하루만에 남쪽에서 폭풍이 불어서 갈수록 바람이 거세어지더니 모든 산들을 잠수시키고 사람들을 전쟁터에서처럼 휩쓸어 날려보냈으니 사람들은 아무도 자기 동료들을 찾을 수 없었으며 하늘인지 사람들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였다. 신들은 대홍수에 놀라 겁을 집어먹고 천상의 아누에게 올라갔다. 신들은 개처럼 떨었고 외벽에 웅크리고 달라붙었다. 이쉬타르는 진통을 겪는 여자처럼 울부짖었다. 달콤한 목소리를 냈던 신들의 여왕은 큰소리로 곡했다.

"옛 시절들은 흙으로 변했네. 이는 내가 신들의 집회에서 (인간들) 욕을 했기 때문이라. 어떻게 내가 신들의 집회에서 욕을 하며 나의 인간들을 파멸하는 전쟁을 요구할 수 있었을까 내 인간들을 낳은 자는 바로 나인데 그들은 물고기떼처럼 바다를 가득 메웠구나"


아눈나키신도 그녀와 같이 울었다. 모든 신들이 풀이 죽어서 앉아서 울었다. 그들의 입술은 모두 하나같이 굳게 닫혀졌다. 여섯의 낮과 여섯의 밤 동안 남쪽의 폭풍이 토지를 휩쓸고 가자 바람이 홍수를 밀어냈다. 일곱째 날 남쪽의 폭풍이 전투를 마친 군대처럼 사그러들자 홍수는 전장에서 가라앉았다. 바다는 조용해졌으며 폭우도 잠잠해지고 범람도 멈추었다. 내가 날씨를 보았다. 평온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모든 인류는 흙으로 돌아갔다. 주위 경치를 보니 마치 평평한 지붕처럼 평평하게 되어있었다. 나는 갑판 문을 열었고 빛이 나의 얼굴에 쏟아졌다. 고개를 깊이 숙이고 앉아서 울었다. 눈물이 나의 얼굴을 타고 흘러 내렸다. 나는 바다의 광활한 수면에서 해안선을 바라 보았다. 열 네개의 각 지역에서 산이 솟아 올랐다. 니쉬르 산에 이르러서 배가 꼼짝도 않고 멈추었다. 여섯날 동안 배는 니쉬르 산에 붙잡혀 있었다. 일곱째 날이 오자, 나는 비둘기 한 마리를 날려보냈다. 쉴만한 곳이 없었기 때문에 비둘기는 다시 돌아왔다. 그 다음으로 나는 제비 한 마리를 날려보냈다. 제비는 앞으로 날아갔으나 다시 돌아왔다. 쉴만한 곳이 없었기 때문에 다시 돌아왔다. 그 다음으로 나는 갈가마귀 한 마리를 날려보냈다. 갈가마귀는 앞으로 날아가서 물이 빠진 것을 보고 먹고, 빙글빙글 돌고 까악까악 우짖고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에야 나는 네 개의 문을 모두 열어젖혔다. 그리고 희생제물을 바쳤다. 나는 산의 꼭대기에서 신에게 바치는 술을 따랐다. 일곱개와 일곱개의 제사용 잔을 차려놓고 그 받침대위에 (종려)나무줄기와 삼나무와 도금양(나무이름)을 쌓아올렸다. 신들이 그 향기를 맡았다. 신들은 그 향기를 맡고서 희생제물 주위로 파리떼처럼 우르르 몰려들었다. 도착하자 그녀는 아누가 그녀가 좋아하는 것에 맞추어 준 거대한 보석을 높이 들어올렸다.


"그대 여기 있는 신들이여, 나는 내 목에 걸린 청금석처럼 결단코 잊지 않으리라. 이 날들을 항상 염두에 두며 결코 잊지 않겠노라. 신들이 공물에 오게 하라. 그러나 엔릴은 오지 말게 할지어다. 분별없는 그가 내 백성들에게 대홍수를 일으켜 파멸로 넘겼기 때문이다."

엔릴이 도착하자마자 그 방주를 보고 엔릴은 격노했다. 그는 신들에 관한 분노로 가득 차있었다.

"어떤 살아있는 영혼이 도망쳤단 말인가? 그 누구도 파멸에서 살아 남아서는 안되었는데!"

니누트라가 입을 열어 용맹스러운 엔릴에게 말했다.

"에아 말고 누가 그런 꾀를 내었겠소? 모든 일을 알고 있는 자는 에아 혼자뿐입니다."

에아가 입을 열어 용맹스러운 엔릴에게 말했다.

"그대 신들중에 가장 현명한 자, 영웅이시여, 당신은 어찌하여 분별없이 대홍수를 일으키셨소? 죄수에게는 그의 죄를 씌우고 무단침입자에게는 무단침입의 죄를 씌워야 하는 것이지만 그가 잘려나가지 않도록 너그러워야하며, 그가 쫓겨나지 않도록 참아야 하오. 당신이 홍수를 일으키는 대신에 (차라리) 사자가 일어나서 사람의 수를 감소시켰더라면 좋았을 걸! 당신이 홍수를 일으키는 대신에 늑대가 일어나서 사람의 수를 줄였더라면 좋았을 걸! 당신이 홍수를 일으키는 대신에 극심한 기아상태가 발생하여 인류를 쓰러뜨렸더라면! 당신이 홍수를 일으키는 대신에 전염병이 돌아서 인류를 휩쓸었더라면! 위대한 신들의 비밀을 폭로한 것은 내가 아니요. 난 에게 꿈을 보게 했소. 그러자 그는 신들의 비밀을 알아차렸소. 이제 그럼 그에 관하여 상의하기로 합시다."


그리하여 엔릴은 방주에 올라갔다. 나의 손을 잡고 그는 나를 배 위로 데리고 갔다. 그는 나의 아내를 데리고 가서 내 옆에 무릎을 꿇게 하였다. 우리 사이에 서서 그는 우리의 이마를 만지며 우리를 축복하였다.


"지금까지 우트나피쉬팀은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앞으로 우트나피쉬팀과 그의 아내는 우리 신들과 같이 되리라. 우트나피쉬팀은 저 멀리 강 입구에서 살게 되리라."

그래서 그들은 나를 데려가서 저 멀리에서 살게 하였다. 강의 입구에서.




◎ 인류 최초의 문자와 도시 발명

수메르 사람들이 인류의 문명사에 남긴 족적은 모든 분야에서 뚜렷하지만, 그 중에 가장 중요하고 큰 의미를 지닌 것으로는 문자의 발명과 도시건설을 들 수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 인류가 사용한 최초의 문자는 기원전 3500년경 메소포타미아 남부 지방의 우루크(Uruk)에서 수메르인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처음에는 사물의 모양을 본뜬 기호로 뜻을 나타낸 상형문자였으나, 이것이 점차 간결화 되고 개량되어서 나중에는 쐐기 모양의 부호로 뜻을 나타내는 이른 바 설형(楔形)문자가 되었다. 수메르인들은 진흙을 빚어서 말린 점토판을 굵은 갈대 펜(stylus)으로 긁어서 문자를 기록했다.

문자의 발명은 인류사를 선사(先史)시대와 역사(歷史)시대로 구분 짓게 하는 획기적인 사건이다. 이 사건과 더불어 인류는 역사시대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며, 이점에서 본다면 수메르인들은 인간에게 처음으로 역사라는 것을 가져다 준 민족이라 할 수 있다.

도시의 발명이 지닌 의의 역시 매우 크다. 인간들이 모여서 집결된 주거지를 건설하고 조직이라는 것을 만들어 서로간의 삶을 규율하게 된 사건은 오늘날까지 인간 삶의 기본 패턴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의의를 지닌 도시 건설이 기원전 3천년대의 후반기에 역시 수메르 사람들에 의해 최초로 시작되었던 것이다.


◎ 교착어를 사용한 검은 머리의 사람들

수메르인들은 자신들을 "검은 머리의 사람들"(black-headed people)이라고 불렀으며, 자신들이 사는 땅을 수메르(Sumer)라고 불렀다. 수메르인이라는 말은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지만, 이 말의 원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는 설이 없다. 분명한 것은 이들의 생김새가 주위에 있던 셈어족이나 인도유럽어족의 여러 민족들하고는 매우 달랐으며, 수메르인들 자신은 이러한 생김새를 강조하는 표현으로 자기 민족을 주위 민족들과 구분해 불렀다는 것이다. 이들의 언어 역시 주위의 민족들이 사용하던 것하고는 매우 달랐다. 그들의 언어는 명사에다 토씨를 바꿔서 주어나 목적어로 표현하는 교착어(agglutinative)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것은 지금 우리말이 속해있는 우랄 알타이언어의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수메르인들이 검은 머리칼을 지니고 있었고, 교착어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동양의 일부 사학자들은 이들을 동아시아의 민족들과 연관시키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학설들을 제시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른 바 "재야사학자"들 중에 수메르인을 우리 한민족과 연관시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환단고기(桓檀古記)라는 우리나라의 고대 역사서에 따르면 단군 이전에 한민족이 세운 12개의 나라가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로 수밀이(須密爾)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다고 한다. 재야 사학자들은 바로 이 수밀이국이 메소포타미아에 있었던 그 수메르국이라고 단정한다.

그러나 수메르 역사를 정통으로 연구해 온 서양학자들은 수메르민족의 기원을 오늘날의 동아시아 민족들과 연계시키는데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사무엘 크레이머는 수메르인들 자신들은 처음부터 메소포타미아에 태어나 그 곳에서 살아온 것으로 믿었다고 말한다. 저명한 아랍사학자인 히티(Philip K. Hitti)는 수메르어가 터키어, 헝가리어, 핀란드어 등에서 발견되는 교착어적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이러한 점을 제외한 다른 어떤 특성도 이들 언어 또는 기타의 우랄 알타이어나 몽고어와 비슷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는 각종 부조물에 나타난 수메르인들의 생김새를 보아서는 그들이 긴 머리의 지중해 인종과 넓은 이마의 북동부 산악지대인인 아르메니아족과의 혼혈로 보여진다고 말하고 있다.

수메르 유적 발굴에 지대한 공을 세운 고고학자 레오나드 울리(Leonard Woolley)와 역시 고고학자인 독일인 세람(C. W. Ceram) 등은 수메르인들이 계단 모양의 신전을 만들어 그 곳에 신을 모신 것을 본다면 산악지대가 그들의 고향으로서 신들은 높은 언덕 위에 산다고 생각한 것 같으며, 수메르 축조물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 목조건물 양식에 따라 지어져 있는 점으로 보아 나무가 무성한 고지대가 그들의 발원지였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인류학자인 영국인 아더 케이트(Arthur Kate)는 인더스강 계곡이 수메르인들의 발원지라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주장들은 아직까지 어느 것이 맞다고 분명히 말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 어쨌거나 인류 최고(最古)의 문명을 이룩한 수메르민족이 지금의 중동 민족들과 같은 뿌리를 가진 민족이 아니고 어찌 보면 우리 민족과 관련이 깊을 수도 있다고 하는 점은 우리에게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다.



◎ 고대 중동세계의 보편문화가 된 수메르 문화

수메르인들이 남긴 문화 유산은 그후 인류사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수메르인들의 기술과 생활양식, 종교, 문학 등은 그들 주변의 많은 민족들에게 하나의 전형이 되었고, 수메르의 뒤를 이은 바빌론, 앗시리아, 히타이트제국, 그리고 멀리 이집트 등에도 큰 영향을 남겼다. 마치 오늘날 청바지와 햄버거, 코카콜라로 상징되는 미국문화가 세계를 지배하듯이 인류 역사의 초기 단계에서 수메르 문화는 고대 중동세계의 보편 문화로서의 역할을 했다.

수메르인들이 발전시킨 농경기술은 점차 유목과 수렵생활을 대체해 나가면서 원시 상태에 있던 인류의 생활을 풍족하게 해주었다. 최초로 맥주를 빚어서 마신 민족이 수메르 민족이라는 사실은 이 점을 단적으로 반영하는 흥미로운 이야기거리라고 할 수 있다. 최초로 도시를 건설한 수메르인들의 건축 기술은 후대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우르(Ur)의 수메르 신전 "지구라트"(Ziggurat)는 지금도 그 웅대한 자태를 보존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 후 중동 각지에 세워진 신전 양식의 전형이 되었으며, 성서에 나오는 바벨탑의 모델이 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수메르인들이 만든 사회제도와 관료제도, 법률 등도 후대의 제국들에 그대로 차용되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왕정(王政)을 이룩한 민족이 수메르 민족인데, 이것이 주위의 민족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는 훨씬 후대에 이르러 유태인들이 사울을 최초의 왕으로 추대하는 성서 속의 이야기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왕이 있어야 강력한 민족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유태인들이 갖게 된 것은 수메르인들이 이미 소멸하고 난 이후에도 천년 이상이나 지난 시기였던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 기록된 인류 최초의 법률 역시 수메르인들이 만든 것이다. 우르남무라는 수메르왕이 반포한 이 법률은 유명한 바빌론의 함무라비법전에 큰 영향을 남겼으며, 먼 훗날 모세의 법률을 특징짓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유명한 표현이 이 함무라비 법전에 정확히 들어있는 말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이밖에 수메르인들의 종교적 관념과 의식 등도 주위 민족들에게 큰 영향을 남겼다. 마치 로마가 그리스의 신들을 수입해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듯이 바빌론과 아시리아제국의 신들은 수메르 신들이 그대로 들어와 이름만 바꾼 것들이 많았다. 수메르인들의 종교 의식이나 기도문, 찬송 등도 후대의 제국들에 차용되었고 먼 훗날 유태인들의 종교에도 분명히 반영되었다.

수메르인들의 문학작품들은 여러 민족의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혔다. 유명한 수메르의 영웅 길가메쉬(Gilgamesh)를 노래한 서사시는 바빌론과 앗시리아인들이 각색하여 더욱 발전시켰고, 기독교의 성경에도 뚜렷하게 그 자취를 남기고 있다. 더 나아가 이것이 그리스의 헤라클레스 신화와 일리아드, 오딧세이 등 영웅을 소재로 한 서사문학에까지 영감을 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 수메르 문학과 기독교 성서

우리나라에서는 우리의 조상들과 직접적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는 수메르인들에 대해 지금까지 변변한 책 하나 발간된 적도 없지만, 이와 달리 수메르 역사가 재발견된 지난 한 세기 동안 전세계적으로 수메르인에 대한 연구는 비상한 관심을 모아 왔다.

그 주된 이유는 수메르인들이 이처럼 인류사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 나날이 새롭게 발견되고 있는 점에 있다. 특히 수메르인들의 종교문학과 의식이 오늘날 서양 문명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기독교에 상당한 영향을 남겼다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학계는 물론 일반인들의 관심도 더욱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수메르 문명의 발굴은 성서의 무대였던 이 지역에서 성서에 기록된 사실들을 역사적으로 입증하고자 한 기독교 단체들의 후원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발굴이 진전되면서 성서의 기록보다 훨씬 앞서는 수메르인들의 기록들이 나타나 성서의 독창성과 신비성을 위협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이것이 오히려 일반인들의 관심을 자극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오늘날에는 수메르문명에 대한 연구가 기독교의 뿌리를 지키려는 사람들이나 기독교를 비판하려는 사람들 모두에게 지대한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여 이것이 연구의 동인(動因)이 되고 있기도 하다.

사무엘 크레이머의 책에서도 여러 군데 소개되고 있듯이 성서의 천지창조, 에덴 동산, 노아의 홍수, 바벨탑 이야기 등은 뚜렷하게 수메르인들에게서 영감을 얻었거나 차용한 것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이 뿐만 아니라 성서의 가장 독창적인 요소들로 꼽히는 시편이나 잠언, 전도서, 아가, 욥기 등의 지혜 문학도 이미 수메르인들에게서 그 원형이 발견되고 있다. 크레이머가 소개한 최초의 욥(Job)이야기는 성서의 욥기와 거의 완벽하게 동일한 주제, 동일한 구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욥기가 기록된 후 천년 이상의 시간이 지나 이것에서 영감을 얻은 독일의 괴테가 파우스트를 썼지만, 성서의 욥이야기는 그보다 천여년 이상 전에 나온 수메르인들의 이야기에서 그 소재와 구성을 따왔다고 보아도 틀림없을 것이다.

성서와의 관련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은 "길가메쉬 서사시"에 나오는 홍수 이야기이다. 수메르의 영웅 길가메쉬가 삶의 무상함을 느끼고 영생을 얻는 방법을 찾아 헤매다가 대홍수에서 살아 남은 지우수드라(Ziusudra)라는 노인을 만나 영생의 비결을 듣게 되는데, 이 때 이 노인이 들려주는 홍수 이야기가 바로 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 이야기의 원전이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당시에 이미 여러 민족의 언어로 번역되어 그 사본들이 최근 발견되었고, 바빌론인들이 지우수드라를 우트나피슈팀(Utnapishutim)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더욱 발전시킨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이 우트나피슈팀의 이야기를 거의 그대로 번역했다고 볼 정도로 유사한 것이다.

수메르인들과 유태인들은 어떤 관계에 있었을까? 구약성서의 기록에 따르면 유태인들이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는 아브라함은 그 아버지 데라를 따라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왔다고 되어 있다 (창세기 11:31). 그런데 이 갈대아땅은 수메르인들이 활약하던 메소포타미아지역을 의미하며, 우르는 유명한 수메르의 왕조가 건설되었던 바로 그 도시의 이름이다.

이 기록으로 미루어 추정한다면 유태인들의 조상은 수메르 지역에서 유목 생활을 하며 떠돌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수메르인들이 도시를 만들고 문명생활을 누리고 있을 때 그 주위에는 유목 생활을 하는 다수의 야만적인 민족들이 있었다. 그 중에는 셈족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이들은 수메르인들과 공존하면서 훗날 아카드와 바빌론 등의 대제국을 건설하기도 했는데, 이 셈족이 바로 오늘날의 유태인과 아랍인들의 원형인 것이다.

정리하면 수메르문화가 고대 중동세계에서 보편 문화의 역할을 하고 있을 때 이들 주위에서 떠돌던 유목민족의 일파였던 유태인들이 수메르 문화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은 충분히 높고, 이에 따라 유태인들이 만든 성서에서 수메르적 요소가 발견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성서의 신적 영감성과 독창성에 대한 신앙을 견지하려는 기독교계의 논자들은 이에 대해 다양한 관점으로 반박을 시도하고 있는데, 그들의 논지는 매우 옹색하게 보인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소재와 구성이 동일하지 않다거나 신관(神觀)이 다르다는 등의 논리는 유태인들이 그것들을 자신들의 환경에 맞게 재구성하고 각색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너무도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수메르인들의 이야기에서 자신들 이야기의 착상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여전히 남는 것이다.







Ⅲ 결론


수메르인들은 한국인들 이다. <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History Begins at Sumer)>의 저자로 유명한 사뮤엘 크레머 교수는 최초의 창조설화를 비롯한 교육제도, 사법제도 등 인류 최초의 39개 사건이 모두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수메르인들이 살던 지역은 지금의 이라크 지역을 의미한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부터 배우는 인류문명의 4대 발상지 가운데 하나인 메소포타문명은 말 그대로

'meso-potamia'로 양강(兩江) 사이란 뜻이다. 양강이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성서에 나오는 '에덴'동산으로 불리는 딜문동산도 바로 이 양강 사이에 있는 지역이며, 이 동산마저 이번 폭격으로 폐허가 되고 말았다고 한다.

부시가 '악의 축'으로 부른 나라, 즉 이라크 이란 북한은 모두 인류 초 고대 문명의 발상지란 점에서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지금 북한 학자들은 '대동강문명'이라고 하여 검은 머루 유적지 발견 이후 메소포타미아 문명보다 더 오래 된 문명이 대동강 유역에 있었다고 한다. 부시는 지금 이런 세 나라만 골라 '악의 축' 운운하면서 공격 표적으로 삼고 있다. 이를 미국의 '역사 콤플렉스'라고 할수 있다.

기원전 35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한 무리의 인간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거기에 정착하기 시작한다. 이 한 무리의 인간들을 '수메르인 Sumerian'이라고 하며 그 뜻은 '검은 머리'라는 뜻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양강 지역에 올 때 문자와 학교제도와 법제도 등 고급문화를 이미 가지고 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도대체 어디서 있다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이주해 왔느냐이다.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문명도 수메르보다 무려 1000년 이후의 것이며,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 문명도 그와 비슷한 후기 문명이다. 수메르인들이 가지고 온 문명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급문명으로, 그 당시 지금의 히브리인들은 말 그대로 'Habiru'로 그 말의 의미는 '떠돌이' 혹은 '산적'의 의미 등을 갖는다. 수메르인들이 설형문자라는 것을 사용할 당시 히브리인들은 문자도 없었으며 옷이란 동물 가죽을 벗겨 입고 다닐 정도였다. 그러나 수메르인들은 직조기술을 발견하여 이미 옷을 물들여 입고 다녔다. 건축술도 발달하여 2층 가옥을 지을 정도였다. 한국의 강신택 교수는 예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 분야의 연구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1830 년대 처음으로 이라크에서 수메르 문자가 발견되면서 가장 충격을 받은 곳은 기독교였다. 왜냐하면 가장 최초의 사건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생겼을 것이라 여겨져 왔고 에덴동산도 그 지역 어딜 것이라 믿어 오던 터에 창세기의 창조설화와 홍수 설화 등이 수메르의 토판 속에 그대로 그 원형이 기록돼 있었기 때문이다. 에덴동산에 남자와 여자가 있었고, 동산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금기, 그런데 수메르에서는 여자가 아닌 남자가 먼저 따먹는 다는 둥, 그리고 홍수가 사람들이 다 죽는 데 지아슈드라는 의인이 있어서 배를 만들어 사람들은 구제한다는 둥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기록들이 쏟아져 나왔다. 고급문화 수메르에 대하여 히브리 문화를 저급문화로 분류한다.

서양문명은 그리스의 합리적 이성과 히브리의 감성적 신앙이라는 두 물줄기로 이루어진다. 이 두 물줄기는 고대 수메르 문명에서 만난다. 기원전 2000년경 수메르 우르 남무 왕국이 멸망하면서 수메르 문명은 두 갈래로 갈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그리스의 올림푸스 신전의 원형이 수메르의 딜문 동산의 그것이라고 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히브리인들의 정신적 유산은 그대로 수메르의 것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수메르인들은 과연 어디서 왔는가? 이것이 수메르 문제의 화두이다. 그들의 유래를 알 수 있는 단서가 있다. 그것은 그들이 남긴 문자이다. 어느 두 언어가 같은 계통이라면 먼저 언어의 특징이 같아야 하고, 문법 구조가 같아야 하며, 유사한 언어 특히 수사가 같아야 한다. 우리가 인도와 유럽의 언어가 같다고 하는 것은 영어, 독어, 프랑스어, 인도 샨스크리트어가 모두 이 세 가지 점에서 같기 때문이다. 물론 수메르어와의 비교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생각키로는 이 세가지 점에서 거의 완벽하게 같은 언어는 우리 한국어가 아닌가 한다.

먼저 언어의 특징이란 수메르어가 교착언어인데 교착언어란 우리말의 주어나 목적어 다음에 '은, 는, 이, 가' 등이 붇는 언어를 의미한다. 이는 우랄 알타이언어의 공통된 현상이다. 그런데 중국어와 인도어는 일단 교착언어가 아니다. 그래서 수메르어와는 그 특징에 있어서 같지 않다. 다음으로 문법 구조에 있어서 수메르어는 '주어+목적어+동사'이다. 이는 영어 혹은 중국어와는 다르고 우리말과는 같은 구조이다. 마지막으로 수사에 있어서 같아야 하는 데 <삼국사기>에는 고대 우리말의 수사가 남아 있다. 수메르 수사와 우리 고대 수사를 비교 한 바 있으며, 최근 히브리대학에서 수메르어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 온 조철수 교수가 더욱 심화연구 하여 발표 한 바 있다. 언어 이외에 수메르 유래의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 '지구라트'이다. 지구라트는 벽돌로 쌓은 인조 탑이다. 물론 피라밋의 유래이며, 구약성서의 바벨탑의 전신이 다름 아닌 지구라트이다. 다행히 고고학자들은 지금 터키 그리고 몽고 지역까지 수메르의 유적을 찾아내고 있는 실정이다. 기원전 3500년경 과연 그 찬란한 고급 문명을 가지고 있던 지역은 과연 어딘가?

그밖에 수메르와 한국은 묘장제도, 순장제도, 60진법, 최고지도자의 상징을 봉황으로 삼고 있는 점 등에 있어서 앞으로 두고두고 그 유사성이 연구의 대상으로 남겨져 있다.




◎ 느낀점


‘고대 문명’ 하면, 사람들은 4가지의 대표적 문명을 떠올린다. 고대에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문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4대 고대 문명’이라 칭하는 것은 무언인가 획기적인 특징이 있었을 것이라 하여 호기심을 가졌다. 서론에서도 거론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호기심이 가는 부분은 ‘수메르 문명’이다. 그 유래와, 지금의 문화 관련에 대한 문제가 상당히 구미당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과연, 조사하면서 그러함을 생각 할 수 있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조사자가 파란색으로 표했다) 먼저, 수메르 문화는 타 문화와는 뚜렷한 구분이 있었다. 타 민족과는 달리 일찍이 그들의 문화를 가지기 시작했고, 스스로 자신들을 다른 민족들과 구분하기까지 했다. 자신들의 문화적 만족감과 자신감이 있었기에 그러했던것이 아닐까. 조사하면서, ‘그러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세간에서 말하고 있는 문명, 문화의 시초가 바로 그들이라는 사실에 흥미를 느꼈다. 피라미드와 바벨탑의 원형인 지구라트, 9년 홍수설 이전의 길가메쉬 전설 등 그 역사성이 얼마나 깊은지를 알수 있었으며, 그의 우수함에 감탄스러움을 느꼈다.

수메르 민족의 유래에 대한 설은 많지만, 나는, ‘수메르 인은 한국인’이라는 설에 찬성한다. 「환단고기」에서 환국이 다스린 나라, 12 환국이 있는데, 지금의 나라들과 비슷한 이름을 가진 나라가 몇 있다. 그 중에 ‘수밀이 국’이란 곳이 있었다. 바로 지금의 ‘수메르’로, 검은 머리의 교착어를 사용하는 동방의 한국인이 건너간 곳이라는 것이다. 또한 ‘지구라트’는 단군이 ‘제’를 올렸다는 ‘첨성단’을 본뜸이다. 결론에서도 묘장제도, 순장제도, 60진법, 최고지도자의 상징을 봉황으로 삼고 있는 점 등에 있어 유사점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음을 언급했다. ‘수메르 문명이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이며, 나아가 세계적으로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 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한 나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고 볼 수 있다.

이상으로, 서론에서 알아보고자 했던 내용을 모두 살펴보았다. ‘수메르 문명’이란 단지 그들만의 문화에서 끝나는 것이 아님을 느꼈다. 각 문화권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현재에도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도 말이다. 기회가 된다면 ‘수메르 문명’에 대하여 조금 더 깊이 알아보고 싶다. 개인적으로, 그 만큼 애정이 더 가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 참고



☆ 사전 ; 「세계신화사전」

☆ 네이버 백과 사전 ; http://100.naver.com/100.php?id=96510

☆ 서적 ; 「서양사의 이해」인희완 저 / 박영사 //「수메르신화에서 알타이신화까지 지중해 문명과 단군 조선」 박용숙 저 / 집문당


☆ 오마이뉴스 기사 - 김상일 기자

☆ 인터넷 사이트 ; http://djjoo.cafe24.com/Old/sumer/sumerians.htm

☆ 네이버 블로그 ; http://blog.naver.com/vndqordn/400133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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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 문명이 옛 우리 민족이 다스리던 환국 12국 중에 하나라고 주장하는 한국 역사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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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메르 문명의 뿌리가 사실은 우리 민족이였다고 주장하는 우리 역사학자들...관련 유물과 유적 ))




그러면 수메르인들은 과연 어디서 왔는가? 이것이 수메르 문제의 화두이다. 그들의 유래를 알 수 있는 단서가 있다. 그것은 그들이 남긴 문자이다. 어느 두 언어가 같은 계통이라면 먼저 언어의 특징이 같아야 하고, 문법 구조가 같아야 하고, 유사한 언어 특히 수사가 같아야 한다.

우리가 인도와 유럽의 언어가 같다고 하는 것은 영어, 독어, 프랑스어, 인도 샨스크리트어가 모두 이 세 가지 점에서 같기 때문이다. 물론 수메르어와의 비교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생각키로는 이 세가지 점에서 거의 완벽하게 같은 언어는 우리 한국어가 아닌가 한다.


먼저 언어의 특징이란 수메르어가 교착언어인데 교착언어란 우리말의 주어나 목적어 다음에 '은, 는, 이, 가' 등이 붇는 언어를 의미한다. 이는 우랄 알타이언어의 공통된 현상이다. 그런데 중국와 인도어는 일단 교착언어가 아니다. 그래서 수메르어와는 그 특징에 있어서 같지 않다.


다음으로 문법 구조에 있어서 수메르어는 '주어+목적어+동사'이다. 이는 영어 혹은 중국어와는 다르고 우리말과는 같은 구조이다.

수메르어와 한국어 발음과 뜻 비교

슈메르어 발음과 과 뜻
한국어 발음과 뜻

아누(Annu) 최고신
하느님 上帝

안(An) 하늘, 天
하늘, 天

기르(Gir)
길 (Gil) 路

라 (Ra) ...에서
로 (Ro) 조사 (助辭)

아비 (Abi) 아버지
아비, 父, 지아비 (夫)

움마 (Uhma) 엄마
엄마 (Uhma) 母

니므 (Nim) 님, 任
님 (Nim) 사람

바드 (Bad) 밭 田
밭 (Bat)밭, 田

나 (Na) 나, 일인칭
나 (我) 일인칭

그 (Ge) 3인칭
그 (Ge) 3인칭

이. 1일칭
이. 지시대명사




영국학자 '크래머'등의 발굴에 의하여 '머리가 검은 (Black Headed People) 동아시아 인들'이 문명을 다 가지고 들어와 수메르문명 세웠다는 것이 밝혀졌다.


BC 2500년 전
수메르의 씨름모양의 향로
고구려 각저총(角抵塚) 벽화


언어 이외에 수메르 유래의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 '지구라트'이다. 수메르의 문화 속에는 Ziggurat 이라는 인조산을 만들어 신에게 제사를 올리고,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를 동일하게 받드는 군사부 일체 제도가 있었는데 동방 한민족의 문화와 거의 유사하다.


초가잠빌의 지구라트, 에람,
[BC.3000년경]

만주에 있는 배달문명 피라미드 들의 일부
독일인 고고학자인 하우스돌프가 찍은 것. 사진 보낸 직후 중국당국에 ?i겨남.


지구라트는 벽돌로 쌓은 인조 탑이다. 물론 피라밋의 유래이며, 구약성서의 바벨탑의 전신이 다름 아닌 지구라트이다. 다행히 고고학자들은 지금 터키 그리고 몽고 지역까지 수메르의 유적을 찾아내고 있는 실정이다.


-정교일치: 왕은 신의 대리자로서 최고의 사제가 되었으며, 신권 정치가 실시되었다.


-제천의식: 지구라트라는 큰 탑을 가진 신전이 국가의 중심이 되었다.


-천문학: 인간의 운명이 천체 운행에 의해 결정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태음력: 1년을 12달로 하는 태음력을 만들고, 다시 하루를 24시간으로 만들었다.


-60진법: 한 시간을 60분, 1분을 60초로 하는 60진법을 만들었다.





그밖에 수메르와 한국은 묘장제도, 순장제도, 최고지도자의 상징을 봉황으로 삼고 있는 점 등에 있어서 앞으로 두고두고 그 유사성이 연구의 대상으로 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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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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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가 세계의 중심이 되는 듯한, 그래서 기분이 좋아지는 글이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관심이 있는 분야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몇자 적어봅니다~~

고고학적인 물증으로 종족들의 이동 역사를 밝히는 데는 발굴된 화석의 제한성때문에 그 한계가 있고,
그래서 선사시대에 이루어졌던 종족들의 이동 역사를 밝히기 위해서는
언어학적으로 역사성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선사시대에 중앙 아시아 아랄해 부근에서 거대한 집단으로 성장했던
아리아 인과 수메르 인이 전세계로 이동하여 여러 나라의 고대 문명을 창건했다는게
지금의 정설이기때문에 "수메르 문명의 뿌리가 사실은 우리 민족이였다고 주장하는 우리 역사학자"
들의 연구에는 우리같은 일반인들이 좀더 수긍할 수 있는 심층자료가 필요하다고 보여지네요~~

수메르인의 순수성을 현재까지 그대로 간직한 민족이 우리민족이다라고 표현하면 무리가 없지않을까요?
물론 그말이 그말이지만은요~~^^

암튼 연구하신 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어쨌든 기분 좋은 일입니다~

한국어와 영어의 어휘들 중에서 소리와 뜻이 서로 비슷한 단어들의 일부는
한반도 북부로 이동하여 고조선을 건국한 아리아 인의 언어에서 기원했다고 볼 수 있고,
일부는 한반도로 이동한 수메르인들이 남긴 것들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어휘들 중에는 아리아어에서 기원한 것이 아니고, 정보님의 글내용처럼
수메르어에서 기원한 것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 비슷한 어휘들을 인터넷상에서도 찾아보시면 생각보다 많이 올려져있는데
보신 분들도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음이나 어휘가 아주 흡사한 단어들을 구분해서 정리해보았습니다~
저역시 언어학엔 지식이 아주 미천한지라 억지성도 있어보이지만
여러분도 한번 서로 비교해보시지요~~^^


갈피 : calf(송아지)와 어원이 같다. '갈피를 못 잡다' = '송아지도 못 잡고 어찌할 줄을 모르다'
갓 : God(신)과 어원이 같다.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사람이 쓰던 모자에서 유래. 갓의 고어는 '갇'이다
개구쟁이 : 개구는 gag(익살, 농단, 속임수)와 어원이 같다.
거룩하다 : great look과 어원이 같다.
고리 : coil(돌돌 감다)와 어원이 같다.
고맙다 : comate(동료,친구)라는 뜻이다
고비 : corvee(강제 노역)는 봉건 시대에 영주가 공익 사업을 위해 백성들에게 부과한 강제 노역.
 "죽을 고비를 넘겼다."라는 말은 "강제 노역의 어려운 시련을 넘겼다."는 뜻이다
고삐 : curb(재갈,고삐,구속)와 어원이 같다.
고을 : '우리 고을'의 '고을'은 서유럽 켈트 족의 거주지였던 골(Gaul)과 어원이 같다.
곳 : court와 어원이 같다. '곳'은 '아메리카'·'아스카[飛鳥]', '오스카' 등의 '카'와 어원이 같다.
구부리다 : curve(곡선, 구부러지다)와 어원이 같다.
구수하다 : good show(훌륭하다)
국 : cook(요리하다)과 어원이 같다.
굿 : God과 어원이 같다.
그릇 : glut(실컷 먹이다), glutton(대식가)과 어원이 같다.
기부하다 : give(주다)와 어원이 같다.
김치 : 독일어의 Gemisch와 어원이 같다.
깍다 : cut(자르다)와 어원이 같다.
깨트리다 : cut
노 : row(배를 젓다)
노래 : lore(전승된 지식)와 어원이 같다. 문자의 기록이 없었던 시절에는 종족의 역사를 전문적으로 외
워서 전승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 사람들이 국가적인 제사나 행사 때 역사를 노래하듯이 불렀기
때문에, 한국어에 노래라는 말이 생겼다.
느슨하다 : loosen(느슨하게 하다, 느슨해지다)
닭 : duck(오리)과 어원이 같다. 아랄 해에는 오리가 많았지만 닭은 없었기 때문에,
 한반도로 이동한 초기아리아 인들은 닭을 duck으로 불렀다.
덤블 : 가시덤블의 덤블은 tumble(혼란)
덩실덩실 : dancing(춤추다)과 어원이 같다.
동그라미 : 돈 크로니(crony, 친한 친구, 엣친구) 친구를 반갑게 두 팔로 끌어앉던 데서 유래
둘소 : '둘소'(새끼를 못 낳는 암소)의 '둘'은 dull(우둔한)과 어원이 같습니다.
땅 : 'Pakistan'·'Kazakhstan'의 '탄(tan)'과 어원이 같다.
떨어트리다 : drop
또 : too
똑똑하다 : doctor(박사. 박식하다)와 어원이 같다.
똥 : dung(동물의 배설물)
마치 : match(동등한 사람, ..과 대등하다)와 어원이 같다.
많이 : many와 어원이 같다.
말 : mare는 암말이지만 초기에는 암수를 총칭하는 말이었다.
망그러트리다 : mangle(짓이기다, 망그러트리다)
매달다 : medal과 어원이 같다.
맷돌 : '맷돌'의 '맷'은 mash(갈아 으깨다)와 어원이 같다.
머리얹다 : marriage(결혼하다)와 어원이 같다.
멀겋다·묽다 : merge(..을 혼합하다)와 어원이 같다.
멍하니 : '멍'은 mourn(슬퍼하다, 한탄하다)와 어원이 같다.
메스껍다 : mess(불결, 더러워진 것)와 어원이 같다.
무엇 : what(무엇), which(어찌), who(누구), when(언제), why(왜) 등의 소리와 뜻은 한국와과 친근성이 있습니다.
미안하다 : mean(비천한, 부끄러운)과 어원이 같다.
바구니 : bag(가방)
바꾸다 : back(뒤)과 어원이 같다.
바래다 : bare(낡은)과 어원이 같다.
바보 : baboon(원숭이의 일종)과 어원이 같다.
바탕 : bottom(기초)와 어원이 같다.
반갑다 : vanguard(지도자)와 어원이 같다. 지도자를 반갑게 대하다.
발 : '창문에 발을 치다'의 '발'은 bar(빗장, 창문 따위의 살, ..을 방해하다)과 어원이 같다.
발가벗다 : '발가'는 vulgar(상스러운)과 어원이 같다.
발칵 : balk(말 따위가 갑자기 멈추어 안 가려고 용쓰다. 장해)와 어원이 같다.
발랄하다 : ball(무도회), ballad(민요), ballet(발레)와 어원이 같다.
방 : barn(헛간, 곡식 창고)
밭 : 독일어의 Beet(못자리. 화단)와 어원이 같다.
배 : pear(먹는 배)
배 : boat, vessel(타는 배)
배다 : bear(아이를 낳다)와 어원이 같다.
배부르게 : beverage(음료, 마실 것) 배부르게 마실 것
밸 . 배알 : '밸이 꼴리다'·'배알이 뒤틀리다'의 '밸'과 '배알'은 belly(복부)·bowel(창자)과 어윈이 같다.
뱉다 : bitter(쓰다)와 어원이 같다.
벗다 : bath(목욕, 목욕하다) bathe(목욕시키다, 목욕하다)
아주흡사->별꼴이야 : peculiar(이상한)과 어원이 같다.
보리 : barley
아주흡사->부지런하다 : busy run(빨리 달리다)과 어원이 같다.
불다 : blow(불다)와 어원이 같다.
비꼬다 : be coil(돌돌감다)
비롯되다 : 비롯은 be root(뿌리를 내리다)와 어원이 같다.
비키다 : be quit(물러나다)
비틀다 : be twist(꼬이다)와 어원이 같다.
빌려주다·빌리다 : borrow(차용하다), bill(청구서)와 어원이 같다.
뿔 : bull(황소)와 어원이 같다.
사랑 : '사랑방'의 '사랑'은 'salon,' 'saloon'과 어원이 같다. '사랑하다' 의 '사랑'과 'salon'의 어원이
같다면, salon은 밀회의 장소였다.
살짝 : 독일어의 Salz(소금)와 어원이 같다. 소금 그릇을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취급하라는 뜻이다
살피다 : survey(조사하다)와 어원이 같다.
상투 : saint(성인)와 어원이 같다. 상투는 결혼한 남자의 상징이었지만, 아주 먼 옛날에는 지배 계급의
남자들만이 상투를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색시 : sexy(성적인)는 '색시 같이 예쁜'의 '색시'와 어원이 같다.
아주흡사->생각하다 : think(생각하다)
서방 : servant(하인, 고용인)과 어원이 같다.
선하다 : '모습이 선하다.'는 'sun', 'sunny'와 어원이 같다. 해와 같이 밝다는 뜻이다 '선하다'는 뜻에
'장난이 심하고 극성스럽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것은 'son'과 어원이 같다. 즉, 사내 아이
같다는 뜻이다
셈하다 : sum(합계)와 어원이 같다.
소금 : salt(소금)와 어원이 같다.
소쿠리 : sack(부대)와 어원이 같다.
수다를 떨다 : soothe(달래다, 비위를 맞추다)
수월하다 : swell(팽창하다)와 어원이 같다. 바위돌을 쪼갤 때 나무의 팽창력을 이용했던 데서 유래
되었다.
숯 : soot(검댕, 매연)
슬슬 : slow slow와 어원이 같다.
시샘 . 샘 : shame(부끄러움, 창피를 주다)과 어원이 같다.
썰렁하다 : sullen(음산한, 음울한)과 어원이 같다.
쏘다 : shot, shoot
쓰러트리다 : slaughter(도살하다)와 어원이 같다.
쓰레기 : slag(녹은 쇠찌끼), slaggy와 어원이 같다.
씨 : Sir
씨 : seed(종자)
아귀다툼 : agitate(..을 뒤흔들다, 선동하다)와 어원이 같다.
아주흡사->아기 : egg(계란)와 어원이 같다.
아름 : arm(팔)은 양팔을 펼쳐 껴안은 둘레라는 말인 아름과 어원이 같습니다.
아리송하다 : 아리송(Ary Song)은 먼 옛날 아랄 시절의 노래, 또는 아리아 인의 노래이어서 내용을
분명히 알 수가 없다는 뜻이다
안 : 부정을 나타내는 접두어 un과 어원이 같다.
앓다 : ail(앓다)와 어원이 같다.
어럽쇼 : all up(엉망이 되어) show
억세다 : axe(도끼)와 어원이 같다. 도끼 같이 세다는 뜻이다
업신여기다 : obscene(외설한, 음란한)은 '업신여기다'와 어원이 같다. '업신여기다'의 뜻은, '젠체하며
남을 보잘 것 없게 여기다'이다.
엉터리 : untrue(거짓의)와 어원이 같다.
에비 : evil(나쁜, 사악)과 어원이 같다.
여보 : 'neighbour(이웃사람)'와 어원이 같다. '여보'는 'near(가까이) 봐'가 원뜻이었다고 볼 수 있다.
예 : yes
올바르다 : 올은 all(모두)과 어원이 같다.
옳다 : all right(훌륭히, 좋아)와 어원이 같다.
왜이러지 : weird, weirdie, weirdy(기묘한)
우리 : we(우리)
울 : wall(벽으로 둘러싸인 곳)
원대 : 원대하다는 wonder(놀라운, 경이로운)와 어원이 같다.
위대하다 : wide(넓은, 광대한)와 어원이 같다.
위태하다 : wither(시들다, 말라죽다)와 어원이 같다.
유난스럽다 : 유난은 unique(유일한, 독특한, 유별난)와 어원이 같다.
유약하다 : weak(약하다)와 어원이 같다.
이른 : early
입·입술 : 'lip'의 'p'가 '입'의 'ㅂ'받침으로 살아 있다.
잎 : 'leaf'의 'f'가 '잎'의 'ㅍ'받침으로 살아 있다.
자랑스럽다 : 자랑은 giant(거인)과 어원이 같다.
아주흡사->자빠뜨리다 : jeopardize(위험에 빠트리다), jeopardy(위헙)
저택 : chateau(대저택)
젠체 : 가문이 좋은이라는 말인 gentle과 어원이 같다.
좋다 : joy
줄 : 독일어의 Seil과 어원이 같다.
진저리 : gingerly(조심스럽게)와 어원이 같다. 생강(ginger)의 자극적인 맛에 놀랬던 데서 '진저리나다',
'진저리치다'라는 말이 생겼다.
쩨쩨하다 : jaw jaw(길게 이야기하다)와 어원이 같다.
쫄딱 : jolt(예기치 못한 충격)와 어원이 같다.
참 : chum(친한친구, 밑밥을 주어 물고기를 낚다) 신참 고참 새참의 참,
천둥 : thunder(천둥)과 어원이 같다.
춤 : charm(매력)과 어원이 같다.
콩 : corn(그 지방의 주요 곡물)과 어원이 같다. 콩은 동쪽으로 이동한 아리아 인의 주곡이었다.
크낙새 : '크낙새'의 '크낙'은 knock(두드리다)와 어원이 같다.
타다 : tan(햇볕에 타다)
탄탄하다 : tan(가죽을 무드질하다)과 어원이 같다.
파래지다 : pale(창백한)과 어원이 같다.
파리 : fly(날다)와 어원이 같다.
퍼지다 : fuse(녹이다)와 어원이 같다.
펄쩍 : '펄쩍 뛰다'의 '펄쩍'은 'vault(도약하다)'와 어원이 같다.
푸줏간 : butcher(정육점)
피리 : flute
피하세 : peace
함부로 : humble(천하게, 지위가 낮은)과 어원이 같다.
허드렛물 : 허드레는 huddle(아무렇게나.....)과 어원이 같다.
허름하다 : harm(손해, 손상)과 어원이 같다. 흠(harm)이 있는 물건이어서, 흠이 있는 물건처럼 싼
가격이라는 뜻이다
허수아비 : 허수는 hush(조용히하다)와 어원이 같다.
홀랑 : whole all과 어원이 같다.
후레자식 : 후레는 whore(창녀)와 어원이 같다. 창녀자식...
훌륭하다 : whole royal(모두 왕다운, 모두 고귀한)과 어원이 같다.
희다 : white(흰)와 어원이 같다.

세이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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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개인적으로 수메르 신화를 더 신뢰합니다.
성경이 아니라고 우겨도 분명한 것은 수메르 신화를 원용한 흔적이 더 큰 것으로 보입니다만..

소행성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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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메르 창조신화와 구약 창세기 내용이 비슷하죠? 수메르 신화가 먼저이니...성경이 뒤에 표절?ㅋ 했다는 소리를 많이 듣죠!

시더블루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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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본 다큐멘터리에서는 인더스 문명을 기원을 기원전 7000년 이전으로 보더군요.
2001년에 인도북서부바다 해저 32m정도에서 기원전 7000년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두개의 거대한 유적지가 발견됩니다. 그 크기는 멘하턴의 약 2배정도라더군요.
그 유적에서는 문자비슷한 것도 인양되었습니다.
기원전 7000년전이라면 아틀란티스가 물속에 잠긴 시기와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아마 세계사적으로 마지막 빙하기의 끝자락에 발생한 거대한 지진과 홍수로 인해 물속에 잠긴 것이 아닐까요?

만약 수메르문명이 고유한 문명을 만든 것이 아니라 어디선가 그 문명의 기초를 전수받았다면 마지막 빙하기시대의 문명이 아닐까요?

ps: 이 다큐의 진행자는 그레이엄 핸콕이었습니다.

헬레네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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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머리를 가진 사람은 극동아시아인뿐 아니라 중동에 있는 코카서스 인종에서도 간혹나타납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수메르 인종이 어디에서 왔느냐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가 정설입니다.
현재까지 오래된 문명이 수메르문명이지만, 학자들의 이야기 특히 크레이머 교수의 말을 본다면
이미 수메르 이전에도 여러 문명이 존재한 흔적이 보인다고 합니다. 다만 이를 받쳐줄 결정적인 근거(언어나 유물등..)이 아직은 없기 때문에 수메르 문명이 아직까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명으로 군림하고 있죠.

세이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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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역사를 지금 우리가 원전으로 여기는 역사서 죄다 뒤진다면 8000년에 달하는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뭐, 우리역사에서는 천손이 와서 나라를 건국한 것으로 나오니, 아마 수메르도 거의 같으 ㄴ시기일 것이라고생각합니다..
인정하던 안하던 간을 떠나서 말이죠..

챌린저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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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메르 신화를 성경이 인용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 반대되는 주장도 있죠. 왜냐면 최초에 수메르인이 어디서 발원했고, 정착했는지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어요.

단지 성경에만 노아의 홍수 이후 이동하던 인간들이 최초로 시날( 수메르) 평지에 자리를 잡고 바벨탑(지구라트?)을 건설했다고 나오거든요.
그래서, 정통 연구자들은 수메르인이 소아시아, 혹은 아르메니아의 삱지에서 발원한 것이라고 봅니다.
수메르인은 자신들은 원래부터 수메르에 살았다고 믿었다는 말도 있죠.

여하튼 수메르인에 대한 자료는 극히 부족해서 거의 상상을 했다는 것이 사실이죠.

그대에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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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챌린저님 말씀대로
수메르 인과 아리아 인의 원주지 문제는 세계사가 해결해야 할 고대사의 숙제라고 합니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언어학적인 추리(?)로 그 기원을 밝힐려는 연구가 진행되고 한다네요.

그런데 전해지는 우리나라 구전노래중에 간접적이지만 수메르인이 어디서 발원했는지
추정할 수 있는 노래가 있다는데 그게 바로  우리 어르신들이 많이 부르셨던
 "아리랑"이란 노래내용속에 숨어있었다는 얘깁니다~!^^ㅋ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그 동안 우리들은 이 노래가 그냥 노래의 운율정도로 여겼지,
어떤 뜻인지 언제부터 불리워졌는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의 의미가 나름대로 밝혀졌다 이겁니다.

  이 노래의 뜻은 소리 그대로
"아리랑,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이고
"아리랑과 쓰리랑은 아라리에서 태어났네."로 해석됩니다.
 이것을 고대사에 연결시켜 해석하면
"아리안과 수메리안은 아랄에서 시작되었네"로 되며
"아리아인(Aryan)과 수메르인(Sumerian)은 중앙아시아의 아랄 해(Aral Sea) 에서 태어났네"
로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중의 일부는 인류 대이동의 역사(수메르, 아리아, 슬라브족 )한부분을 장식하며
한반도로 이주해 한국인의 선조가 되었다라는 역사도 밝혀집니다.
좀 믿기 어려운 해석이지만 일리가 있지 않습니까?

참고로 우리나라 고유어중에 "돌멩이(경상도 사투리는요? 돌메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거랑 유사한 단어가 있는데요.

조장(鳥葬)풍습을 갖고 있었던 수메르 인들이 세계로 이동하면서 만든 제단이자 무덤이
바로 고인돌입니다

<img src="http://i.blog.empas.com/dwban22/1231245_499x284.jpg " border=0 name=zb_target_resize>

그들이 만들어 놓은 이 고인돌은 유럽에서 동남아시아 및 우리나라까지 거의 전 세계적입니다.
이 고인돌의 영어단어가 dolmen입니다~ 음 그대로 읽으면? 돌멘!!

돌로된 제단 고인돌 돌멘, 우리나라말 그대로 돌멩이....유사성이 있어보이지 않나요?

아무튼, 세계 4대 고대문명이 남긴 국명, 지명, 인명 속에 있는 고대어휘들을
우리말과 서로 연결시켜 해석해 보면 뜻이 상통하는 것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이것은 이 문명들을 세운 종족들과 한반도에 이주한 종족은 기원이 같다는 의미 아닐까요?

<img src="http://onimg.empas.com/orgImg/hi/2003/07/31/msjang200307311709380.jpg " border=0 name=zb_target_resize>

유목지대인 아랄해 주변을 농경지로 바꾸기위해
60년대, 소련이 아랄해의 수원(水源)인 사르다리야강과 아무다리야강의 물길을 돌리는
대대적인 관개공사로 지구촌 최대 규모의 환경문제가 일어난 아랄해.
덕분에 광대한 경작지를 조성하는 데 성공했으나 호수로 흘러드는 물이 격감하면서
수량이 감소하자 아랄해의 소금농도는 중동의 사해보다 높아져 대부분의어류가 죽게 되었습니다.
또 말라버린 호수 바닥의 소금먼지가 대량으로 주변지역에로 날아들어 토지가 급속히 사막화되었고
대기로 치솟아 오른 미세소금입자는 눈처럼 떨어져 내리거나 빗물에 섞여 들면서
빈혈이나 폐질환을 유발하는 등 주민 건강도 심각한 위험에 처했다는군요.

환경문제는 이처럼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아주 대조적으로 일어납니다...

우리나라의 경부대운하건설문제도 그렇습니다.
운하건설로 일자리를 구하고 물동량 늘어나고 경제적이고....
이거 뭐 다좋습니다.
운하 완성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재앙이 전 국민을 괴롭힌다면 운하만든다고 벌어놓은 돈,
고스란히 뱉어놓아야 할 일이 없으란 법 있습니까?

경제적으로 회생하고 발전하는 방법이 과연 대운하건설밖에 없을까요?
3년만에 완성시킨 세계초유의 기간 초단축 완성도로인 경부고속도로와는 차원적으로
다르지 않습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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