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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에 기록된 백제 8대 성씨가 왜 중국대륙에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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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댓글 9건 조회 1,218회 작성일 06-11-18 16:32

본문


백제의 8대 성씨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자료가 많지 않아 일부 소개하는 것으로 게시하오니,
단순 참고 바라오며 좋은 자료가 있으신 분들은 꼭 소개해 주시길 바랍니다

소개순서는
(1) 임승국 교수 견해
(2) 남제서의 원문 소개
(3) 한국의 성씨 통계
(4) 대만학자의 연구논문 소개
(5) "국, 진, 연"씨 인구 소개 입니다

(논 점)
(1) 사서에 기록된 백제 8대 성씨가 존재하는 곳은 중국대륙
(2) 사서에 등장하는 백제 장군의 성씨도 중국대륙에는 있어도 반도에는 없다

먼저 소개하는 글은
1981년 11월26일 ~ 27일 양일간 열린 이틀간의 국회 "국사청문회"에서
고 임승국 교수님이 발표하신 국회 속기록 내용중 백제 성씨에 관한 발언 부분입니다

(임승국 교수) “백제 일곱장군의 성씨는 중국에 존재한다”

또 백제 7장군의 성씨만 훑어봐도 사학을 아는 사람은 깜짝 놀랄일이 있어요
왜 그런고 하니 백제에는 본래 8대 성씨가 있는데 중국 25사와 우리 삼국사기는 이렇게 적고 있어요
"백제유 대성팔씨 사씨 해씨 진씨 목씨 국씨 연씨 묘씨(혹 묘씨) 협씨"
"百濟有 大性八氏 沙氏 解氏 眞氏 木氏 國氏 燕氏 (?)씨(或 苗氏) 協氏"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백제 8대성씨가 현재 남북한을 통틀어 단 한 가구도 남지 않았는데
남제서 백제전의 7장군 성씨들은 대부분 유서깊은 8대성씨들이라는 사실이예요
(중략)

다음은 상기한 고임승국 교수님의 발언내용을 뒷받침 하는 사서의 기록인데
중국정사인 남제서 나오는 기록을 일부 인용하여 소개합니다
아래 원문을 보면 백제 장군의 이름이 다음과 같다

(1) 沙法名 (사법명)
(2) 贊首流 (찬수류)
(3) 解禮昆 (해례곤)
(4) 木干那 (목간나)

이 성씨들이 백제의 주류 성씨였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얼마나 남아 있는지요

이 자료를 보시는 네티즌 여러분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안드시는지 궁금합니다
중국대륙에 흔한 성씨들입니다
아래 자료를 계속 보시길 바랍니다

(백제와 위나라의 전투는 대륙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보여짐)
(중국 정사인 25사 중)
『남제서(南齊書)』권58 동남이전(東南夷傳) 동이 백제에 나오는 기록입니다
(원문)
是歲 魏虜又發騎數十萬攻百濟 入其界 (시세 위로우발기수십만공백제 입기계)
牟大遣將 沙法名 贊首流 解禮昆 木干那 率衆襲擊虜軍 大破之(모대견장 사법명 찬수류 해례곤 목간나 솔중습격로군 대파지)

(해 설)
① 이 해에 (490년 동성왕 12년)
위나라 오랑캐가 또다시 기마병 수십만을 동원하여 백제를 공격하여 그 국경에 들어가니,
② 모대(牟大)가(백제 24대 동성왕)
장군 사법명(沙法名)·찬수류(贊首流)·해례곤(解禮昆)·목간나(木干那)를 파견하여
무리를 거느리고 오랑캐군을 기습, 공격하여 그들을 크게 무찔렀다.

① 이 해(是歲):남제(南齊)영명 8년, 490년, 백제동성왕 12년
② 모대:백제 제24대 동성왕(東成王)(479∼501)

(백제 7태수의 위치)
사진#01

(백제 태수의 이름)

- 광양태수 : 고달 → 후에 대방태수가 됨
- 조선태수 : 양무 → 후에 광릉태수가 됨 → 후임 "장색"
- 대방태수 : 고달(前 광양태수)
- 광릉태수 : 양무(前 조선태수)
- 청하태수 : 회매
- 낙랑태수 : 모견
- 성양태수 : 왕무

그런데 이 백제의 성씨 부분을 국내에서 전문적으로 연구한 자료가 없어
(사) 한배달에서 대만대교수인 진첩선씨의 글을 인용하여 “백제 8대 성씨에 대해”라는 자료를 소개하고 있는데
아래와 같습니다

이자료를 참고하시어 백제 8대성씨에 대한 의문을 풀어나가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것을 대륙백제의 흔적이라 한다면 “무어라 하시는 분”들이 많겠지요(^.^)

(한국의 성씨 통계) 한반도에는 백제 성씨가 없다
한국의 성씨 통계를 보면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신구당서나 삼국사기에는 백제의 경우 2백 여개의 성(城)과 76만호(戶)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래자료를 보시면 알겠지만 백제 8대성중 국(國)씨와 진(眞)씨를 제외한 6대 성씨가 한반도에는 없다

무슨이유일까 ?

그나마 남아 있는 국(國)씨와 진(眞)씨 성도 희귀성이다. 몇가구 남아 있지를 않다
왜일까 ?

(성씨관련 순위)
(관련사이트)
http://www.shinjongwoo.co.kr/html/area_name.html

위 자료를 보면 한국의 성씨중 100위 예(芮)씨로 1985년 조사에서는 가구수 2,574가구로 274성 중 제100위에 랭크 되어있다.
백제의 8성중 단하나의 성씨도 100위 이내에 들어있지 못하다.백제의 주류성씨 였는데 말이다
그나마 8개성중 진(眞)씨가 151위, 국(國)씨가 159위로 두개가 남아있다.
산동성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남아있는 백제 8대성은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주)
상기사이트에는 안나타나나 다른 사이트에는 연(燕)씨가 104명 있는 것으로 나온다.
(제일 마지막 자료 참고)

진씨 1,511명
국씨 978명
연씨 104명

“대륙백제의 흔적”은 아닐까 ?

(백제의 8대 성씨에 대해)- 출처 : 한배달 1992년 6월호
(주의사항)

한배달은 동자료를 소개하면서 “이글은 대만학자의 글을 번역한 것으로
국내에 백제 8성에 대한 연구가 없어 게재하는바 특히 아전인수격인 논조임을 염두에 두고 읽기 바람“
이라는 당부사항을 적시 하고 있으므로 감안하시어 보아주시길 당부합니다.

(내용요약)
한배달은 결론적 부분에 백제의 8성이 우리나라엔 많지 않지만 지금의 산동성을 중심으로 대만에 더 많은 성씨가 존재한다는 것은 백제의 위치와 더불어 재삼 숙고하여야 할 문제다 라고 지적하고 있다 .

본문중 특이사항은 다음과 같다

(1) 사(沙)씨는 산동성과 하남성에 나온 2가지가 있다고 소개하고 있으며
(2) 협(協)씨는 음이 려(黎)라고 한 것으로 보아 혹시 치우천자의 “구려(九黎)”와의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3) 해(解)씨는 산서성 지명을 성씨로 만든 것이라 한다
(4) 진(眞)씨는 원래 신(愼)씨에서 바꾼 것이라 한다.

완)
(보충자료)
(성씨 자료에 나타난 국씨, 진씨, 연씨 인구수)
(출처)http://www.anyroot.com/

<진씨(眞氏)>

진씨(眞氏)는 중국(中國) 상곡(上谷)에서 계출(系出)된 성씨이며, 우리나라에서는 백제 8대 성의 하나로 알려졌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백제(百濟)고 이왕(古爾王) 때 내두좌평(內頭佐平)을 지낸 진 가(眞 可)라는 사람과
동성왕(東城王) 때 병관좌평(兵官佐平) 에 오른 진 로(眞 老), 삼근왕(三斤王) 때의 좌평(佐平) 진 남(眞 男),
아신왕(阿莘王) 때의 병관좌평(兵官佐平)에 오른 진 무(眞 武), 근초고왕(近肖古王) 때 조정좌평(朝廷佐平) 을 역임한 진 정(眞 淨)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신라(新羅) 때도 진 공(眞 功) 이 신문왕(神文王) 때 대아찬(大阿 )을 지냈고, 진 복(眞 福)은 상대등(上大等)을 지냈다고 한다.
고려 때 와서는 925년(태조 8) 견훤(甄萱)이 진 호(眞 號)를 고려에 볼모로 보낸 사실이 문헌(文獻)에 나타나 있다.

진씨(眞氏)의 본관(本貫)은 서산(西山) 단본(單本)이며,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南韓)에 총 292 가구, 1,51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人口(1985년 현재)] 1,511명이 있다.

(국씨(國氏))

국씨(國氏)의 본관은 담양(潭陽)·풍천(豊川)·현풍(玄風)·영양(英陽)·김해(金海)·대명(大明) 등이 문헌에 전해지고 있지만 시조와 연원에 대해서는 미상이다. 국씨는 본래 백제의 8대성(八大姓)인 사(沙)·연(燕)·예(예)·해(解)·진(眞)·국(國)·목(木)·백(백) 중의 하나이다.

역사상의 인물로는 백제의 대신으로 611년(무왕 12) 수(隋)나라에 들어가 공물을 바치고 고구려 정벌을 의논한 국지모(國智牟), 고려 태조 때 원외랑(員外郞)인 국현(國 ) 등이 있는데 오늘날의 국씨와의 관계는 확실하지 않다.

1930년 국세조사 당시 평남 강서군에 담양국씨(潭陽國氏) 4가구와 함남 영흥군에 풍천국씨(豊川國氏) 3가구,
함남 단천군에 전주국씨(全州國氏) 1가구가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人口(1985년 현재)] 978명이 있다.

<연씨(燕氏)>

연씨(燕氏)는 원래 중국(中國) 범양(范陽)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로서 주(周)나라 때 공자(孔子)의 제자(弟子)인 연 급(燕 伋)의 후손이 나라 이름을 성(姓)으로 삼은 것이 시초가 되었다.

우리 나라 연씨(燕氏)는 백제(百濟)의 8대성(姓)으로 손꼽혔으며「삼국사기(三國史記)」에 성왕(聖王) 때 병관좌평(兵官佐平)을 지낸 연 실(燕 實) 등 연씨(燕氏)가 나오지만 시조 및 연원(淵源)은 알 수 없다.

본관(本貫)은 정주(定州) 외에 영평(永平)·전주(全州)·평주(平州 : 평산의 별호)·곡산(谷山)·덕원(德原)·
장곡(長谷) 등이 문헌에 나타나 있다.

1930년도 국세조사 당시 정평(定平)·영흥(永興)·이원(利原) 등 이북에 22가구가 있었고 남한에 3가구가 살고 있었으며,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南韓)에 총 26가구, 10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人口(1985년 현재)] 104명이 있다.

->백제의 8대 대성이라 하였는데 200여개의 성터와 76만호의 인구중 대부분을 차지하던 8대 성씨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

어디가 백제 본토인가 ?

http://www.coo2.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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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늘맑은눈망울님의 댓글

늘맑은눈망…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제가 자세히 알지는 못하나 제 주변 사람들의 성씨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8대성씨 중에 목씨 진씨 국씨가 왜 없어? 내 주위 사람중에 목씨 진씨 국씨 성을 가진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대? 라고 했는대 아래로 읽다 보니 그런데 아래자료를 보시면 알겠지만 백제 8대성중 국(國)씨와 진(眞)씨를 제외한 6대 성씨가 한반도에는 없다 라는 글이 있어서 그럼 그렇지 라고 했는대..연씨도 나오고..근대 중요한건 목씨의 대한 발언은 하나도 없네요.

어쨋던 저건 그냥 단순한 질문이고, 아무튼 글 중점에 관한 백제본토는 어디인가라는 부부분에 대한 제 생각을 적자면 성씨에 관한건 제가 알기론  백제, 신라, 고구려의 시대보다 현재 대한민국의 시대가 엄청 오랜 차이가 있는 시간이 지난 현재로썬 당연히, 성씨 를 바껐다거나 전쟁 후폭풍 등 여러가지 요인으로 인해 지금의 대한민국 성씨가 있는걸로 알고 있는대 그시절 성씨를 가지고 지금 대한민국의 성씨와 비교하여 백제의 본토가 어디인가 라고 생각하는건 조금 섣부른 생각이 아닐런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별님의 댓글

늘맑은눈망…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그런 성씨가 중국대륙에서는 아주 흔한 성씨라는 이야기 입니다.
한반도에서는 시간이 지나고 성씨를 바꿔서 흔하지 않게 되었을까요?
그렇다면 그 백제8대성씨가 왜 중국에서는 흔하게 되었을까요.
중국과 백제는 기존의 인식으로는 전혀 상관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8대성씨는 그야말로 백제를 위한,백제를 위주로한 성씨인데 말입니다.
혹시,백제성씨들이 백제가 망하면서 모조리 중국대륙으로 산넘고 강을건너서,
그곳에서 정착하고 이어졌을까요?^^

슈퍼양배추님의 댓글

늘맑은눈망…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저는 대학을 일본에서 공부한사람입니다만. 깊이있게는 듣지마시고(기분상하실까봐..;;)
이런 의견도 있다는것으로 참고하시기바랍니다.

먼저 중국에대한 이해입니다. 다 알고계시리라 생각됩니다만. 중국은 여러 민족이 통패합하여
하나의 국가를 이루고있습니다. 순수 중국을따지자면 현재 중국의 30%정도라는것이 학계의
설명입니다. 말씀하신것처럼 백제의 본토가 지금의 중국안에 있었을수도있고 피난의
결과인지 알수는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로고싶은것은 삼국통일후, 신라가 지배하면서 신라식성씨를 받은 이들이많다는
겁니다. 주변에 족보있는 집안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면 왕에게 하사받은성씨부터 뿌리를 알수없는
예를들자면 김해김씨인데 파를 알수없다거나하는 식의 새로 태어난 성씨들이 많다는것이죠.
(물론 남북전쟁후 부모가 일찍죽어 알수없어 편입돼어진 수도있겠죠.)

일예로 일본에 사야가라는 군인이 임진왜란때 조선으로 귀하하여 김해김씨(우록파)라는
성씨를 하사받고 조선사람으로 살았죠. 우록파임은 사야가(일본인)의 자손임을 알수있지만.
조선시대 새로태어난(왕에게 하사받거나 새로만들어진 성씨)들은 파를 보더라도 본래 뿌리는
알수가없답니다. 예를들어 경주이씨 국당공파 70대손이라는 족보가 있다고 가정했을때 국당공파
1대손이 왕에게 성씨를 하사받았다고하면 성씨를 받기전의 뿌리가 묘연해 진다는겁니다.
물론 기록에 1대손은 어디에서온 누구이다 라고 기록돼 있는경우도 있습니다만. 성씨를
받았다는 내용만있고 이전에 기록은 없는경우가 허다하다는것에 성씨(족보)로 민족을
따지는것에는  문제가있어 보입니다.

이러한것이 신라의 삼국통일후 새로운 성씨가 많아진 이유가 아닌가하는 생각이듭니다.
(서로다른 민족인 조선을 잘 다스리기위함이였는지.... <저의 생각)
일본이 조선반도에 들어오기전에 이러한 신라의성씨 정책을 연구했다는 내용과도 일맥
상통합니다.

이런말 들어보셨는지요? "새끼발톱이 두갈래로 갈라진것은 몽골민족이기 때문이다."
몽고반점처럼 특이한 유전 현상같은겁니다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몽골식 이름을
가지고 사시는분은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고구려와 백제는 명말하였지요.
신라가 통일을 하였으니 신라화? 됐더라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리라 생각됩니다.


PS: 저의 새끼 발톱은 두갈래입니다...

늘맑은눈망울님의 댓글

늘맑은눈망…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슈퍼양배추님의 얘기처럼 제가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제 댓글을 보시면 여러가지 요인이라고 적은 부분이 있습니다. 이것도 슈퍼양배추님이 말한 예에 속하는거지요.

흔한 성씨라는건 미국과 영국을 들을수도 있습니다. 물론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이유도 있지만 미국이 서양의 다국적 나라라고 표현하는거첨 중국도 동양의 다국적 나라라고 볼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그시절 부터 흔한 성씨가 유지됫을수도 있는거고 한반도의 경우 위 슈퍼양배추님의 말과 같은 경우 등 기타요인으로 인해 유지가 안됫을수도 있는겁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별님의 경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역사에 대해서 가설을 세워 글을 남기시는건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를 토대로 삼아서 가설을 세우시는것은 일종의 오류라고 생각듭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역사가 또 숨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역사의 가설이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역사가 있을것이라는 전재하에 가설을 세우심이 적절하실거라는 저의 생각입니다.

뉴로맨서님의 댓글

늘맑은눈망…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새끼 발톱이 갈라진 사람도 있었군요. 몰랐습니다. ^^

신기하네요.

백제는 국사교과서에서 배운대로 얘기하자면 22담로라는 행정구역을 가졌죠.

그 중에 동남아로 출신으로 추정되는 성씨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바로 흑치성입니다.

그 지방의 토속식물을 구강청결제처럼 자주 씹어서 이가 까맣게 변해서 흑치라는 명칭이 붙었다네요.

물론 각 담로에는 백제의 왕족들이 가서 제후의 자격으로 봉건영주가 되곤 하였으니

아마도 흑치라는 성은 이가 까맣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 지역의 특징을 살리기 위한 성씨였다고 보여집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흑치상지 장군이죠. (대대로 달솔 직위를 계승했던 가문입니다. 달솔은 지금의 정무차관급입니다.)

백제가 멸망하고 끝까지 백제 부흥군을 지휘해서 승승장구했으나 부흥군 내부의 분열로 인한 살육에 실망하고 마지막 항쟁의 보루였던 주류성마저 함락을 당하여 백제군의 사기가 크게 저하된데다가 웅진도독부 도독으로 임명된 서융(의자왕의 아들 부여융)의 회유도 있고 하여 당나라로 귀화한 장수입니다.

이 흑치장군의 전과는 지금의 티벳인 토번과 돌궐 정벌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워 당나라에서도 그 위상이 높았습니다.

아쉽게도 그를 시기한 당 조정의 권신 무리들의 모함으로 참형을 당했습니다.

나중에 그의 아들의 노력으로 명예만큼은 복권을 하였고 그의 시신은 한나라 역대 제왕이나 재상들이 묻힌 북망산에 묻혔습니다. (이 곳은 아무나 묻힐 수 있는 곳이 아닌 아주 영예로운 자들만 묻히는 곳입니다.)

하여튼 백제의 22담로는 동남아 지역과 일본, 중국 동부해안 지방에 몰려있었던 걸로 추정됩니다.

백제 본국과 지리적으로도 가까운 산동반도가 대표적인 곳이죠.

초기에 비류와 온조의 어머니인 소서노가 중국대륙에 백제를 건국한 곳도 이 지역으로 보입니다.

주몽과 예씨부인의 소생인 유리와의 태자자리 투쟁에서 밀려나 남하를 하면서

소서노는 중국 동부해안에 터를 잡아 대륙백제의 기틀을 잡았고 그녀의 아들들인 비류와 온조는

각 각 미추홀(지금의 인천)과 위례성(지금의 서울 강동지역과 경기도 하남시 일대)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렇게 생긴 국가가 비류백제와 온조십제입니다.

비류가 터를 잡은 미추홀은 바닷가 근처라 소금기가 많은 토양이라 농사에 불리한 곳이었습니다.

온조가 터를 잡은 위례성은 아리수(지금의 한강)가 인접한 비옥한 토양을 가진 곳이었습니다.

따라서, 국가의 기틀은 십제가 더 잘 잡혀가고 있었고 비류는 온조를 시기하게 됩니다.
(비류와 온조는 어머니는 같지만 아버지가 달랐습니다. 주몽의 아들은 온조입니다.)

둘간의 마찰이 결국은 소규모 접전으로 발전하고 이를 만류하러 온 소서노는

온조가 어머니의 말대로 양보할까봐 은밀하게 모의를 하여 작당한 온조의 신하들에 의해 시해됩니다.

그 이후의 일은 여러가지 설이 분분하나 십제가 백제의 자리를 대신하여 백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혹자는 비류백제가 고구려의 남진정책 이전까지는 건재했다고 하기도 하구요.

하여튼 대륙백제의 기틀은 이미 소서노에 의해서 잡힌 것이고 근초고왕때 그 영역이 절정으로 향합니다.

남제서 백제전에는 북위와 백제 간의 전쟁을 기록하고 있고 북위의 군대가 기병을 거느리고 강을 건너 백제를 침공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백제는 한반도에 있는데 바다를 건넌게 아니라 왠 강이 나오냐 하는데 그 말은 백제가 북위와 인접한 중국 동부해안지대에도 있었다는걸 반증합니다.

바다를 건넜다면 기병을 거느리고가 아니라 수군이라는 말이 나와야 합니다.

게다가 바다가 아니라 강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륙백제의 진위 여부는 가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우리 남한이 백제에 대한 계승권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일본의 입장에서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백제가 망하고 나서 대다수의 백제 유민들이 왜로 건너가 국가명칭을 일본으로 개명까지 하고 경영을 했다는 점입니다.

일본

해가 뜨는 나라

백제라는 본국이 없어지고 드디어 왜가 본국임을 자처한 것입니다.

한.일 역사전쟁은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슈퍼양배추님의 댓글

늘맑은눈망…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To.내칼주오 요원님.

이부분은 중요한 부분이라 서두에 넣습니다. 님의 글 미단에보면 '지나의 역사서'에 보면
새끼 발톱이 갈라진것은 '동의족'이라 하셨는데. 먼저 인용을 하시기전에 '지나'에 대해서

알고계신분일까...라는... 아시면서 이런얘기를 하셨다면 무서울따름입니다. 론건맨에서
까지 동북공정이? 지나 라함은 사회과학원(당정기관ㅡ.ㅡ)에서 고구려,발해의 역사를 지나족으로

만들려는 무서운 집단이죠. 그런 지나에서?  몽골인에 유전적 특징까지 그러게 해놓은줄은
미쳐 몰랐습니다. 몽골반점도 자기네 꺼라는 얘기는 없던가요? 도서명이 지나의 역사서?

인가요? 한번 읽어봐야겠군요.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새끼발톱은 몽골반점과같이
몽골인에 나타나는 유전적 특징입니다. 일본에서 일종의 유전 질병으로 연구를 했지만

결국 병의학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선천적으로 갈라진다는 의견을 내놓았지요.
(일본또한 일부 몽골족으루 이루어진 나라이기때문에 몽골에 대한연구가 진지합니다.)

백제본토 부분은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제가 감히 어느쪽이 먼저라고는 말씀드리기
어려울것같구요. 지명의 경우 서울에도 테헤란로가 있지요. 교류가 많거나 동맹이 있을경우

지역명을 함께썼다는 내용으로 많이들 이해합니다. 또하나는 시대적으로 흥망했던 지역의
이름이란 설도 있지요. 일종에 '명품이름'이라고 할까요? 이유인즉 예를들어 '광주' 라는지명은

우리나라(남한)2곳 중국,일본에도 있는 지명입니다. 어느 특정민족에 입장에서 얘기하지않는
학자들은 이렇게 이해하고 있답니다.

박상수님의 댓글

늘맑은눈망…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백제의 건국은 이런 설이 있죠.
비록 삼국사기만의 해석이긴 하지만요.

소서노와 온조, 비류가 대륙의 대방군 옆에서 국가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낙랑군의 압박이 심해지자 대륙을 건너 온조가 마한땅 한강 북쪽에 위례성을 세웁니다.
참고로 하남위례성은 황하 남쪽의 위례성입니다.
그런데 소서노와 비류가 계속된 낙랑의 압박을 못 이기고 지금의 인천 미추홀로 건너옵니다.
하지만 온조는 이미 백제국 왕이었기에 왕의 자리를 넘겨주기 싫었습니다.
그리하여 둘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고 소서노가 직접 나섰지만 위례성을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결국 소서노는 죽고, 비류도 자살을 선택합니다(이건 삼국사기의 은유적 표현 바탕)
그리고 온조는 북쪽 위례성을 버리고 비로소 남쪽 한성으로 천도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고이왕대가 되어서 백제는 대륙진출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근초고왕대를 거쳐 최고로 융성했었습니다.
하지만 호태왕의 등장 이후 백제의 세력은 급속도로 약화됩니다.
대륙백제와의 연결도 끊기고 말도 아니었죠.
그러나 동성왕대에 다시 백제를 부활시켰고, 문무왕이 화려한 시대를 맞이합니다.
하지만 성왕대에 북위의 기병부대와 고구려의 압박으로 대륙백제는 붕괴됩니다.

참고로 대륙백제의 학설은 성왕대에 북위의 기병부대가 공격했다는 것으로 입증됩니다.
북위는 분명 중원에 위치한 국가입니다. 그런데 백제를 기병으로 공격했다?
그렇다면 고구려가 길을 열어 주었을까요? 말도 안되는 소리죠.
그러므로 백제의 대륙백제는 존재했다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그리고 삼국사기에 나오는 지명들은 모두 대륙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괜히 한반도 내에서 해결하려고 하다보니 조금 어이없는 해석들이 나오는 것이죠.

슈퍼양배추님의 댓글

늘맑은눈망…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To.내칼주오님.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지역의 중국주도 동북공정의 중심에 지나족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십니까? 이들이 동북공정을 만들어내고 이끄는 잣대로 이용하는것이 님께서

예로 드신 지나의 역사서입니다. 그리고 국가와 민족에관한 얘기입니다. 국가를 볼때 주도
민족이 어느쪽이냐에 따라서 결정되는것이죠. 서울에 서울 사람만 있는것이 아니죠.

부산에 부산 사람만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런경우를 생각해보시죠. 서울에 부산사람이 많아지면
부산 분위기가 날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서울이 부산이 될수는 없는것이죠.

다시 지나의 얘기로 돌아가서. 지나의역사서는 그런의미에서 지나족의 특징이나 역사뿐아니라
주변의 모든것을 자족위주로 편해놓은것입니다. 역사서 발취문만봐도 황당한 내용이

많이있습니다. 읽는 사람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말이죠. 간단히 말해서 동이족의언어가
알타이어계입니까? 투르크어계, 몽골어계, 퉁구스어계인지요?

조선반도를 크게 3국으로만 봐도 동이족과 조선반도와 관련이 없다고는 생각하지않습니다.
동이족의 문제는 자족과 관련이 없는 부분까지 자족의 것으로 만드는것에 문제가있습니다.

이것이 동북공정에 대한 우려하는 점이기도 하구요. 동이족 역사서가 마찰을 일으키는 부분도
민족적으로 전혀 관련이 없는 고구려의 역사까지 자족화 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의족을 무시할수없는것이 신라계와의 관계등 통일과 멸망등
여러국과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동의족은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더해지면서

일본의 극우익이하고있는 자국이익,우월주의를 표방하고있다고 밖에는 보여지지않고
있습니다. 

뉴로맨서님의 댓글

늘맑은눈망…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인구 13억의 중국은 과연 순수 한족이 얼마나 될까요?

그 많던 거란족, 여진족, 몽고족 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이들 역시 자신들이 한족이라고 착각하게끔 세뇌 받은것은 아닐까?

청왕조가 멸망한 것이지 만주족 씨를 말린것은 아닐거 같은데....

이것이 인구 13억의 비결이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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