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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오스트레일리아인은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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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썰렁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댓글 3건 조회 983회 작성일 05-09-26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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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오스트레일리아인은 누구였을까?

오스트레일리아 토착민들의 전통적인 믿음에 따르면 그들의 조상은 세계와 인간이 만들어지던 꿈의 시대(아랫글 참조)에 생겨났다고 한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기원에 관한 미스터리가 없다. 그들은 언제나 그곳에 살고 있었다. 또한 기원이 언제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꿈은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합하므로 연대기는 사소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과학자에게는 오스트레일리아에 사람이 처음 온 시기가 200년 동안이나 중요한 문제였다. 최초의 오스트레일리아인은 누구였을까? 언제 어떻게 왔을까? 전지구적인 인류 진화 과정에서 그들의 위치는 무엇일까? 이 문제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새 모델이 제기되면 새 이론, 증거, 연대측정법으로 그것을 검증하는 과정이 되풀이되고 있다.

사진#01


최초의 오스트레일리아인은 어디서 왔을까?
오스트레일리아는 현재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 해당하는 동남아시아인들이 이주하면서 북쪽에서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19세기에 외젠 뒤부아가 자바에서 발견한 호모 에렉주스의 화석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조상에 해당한다고 추정된다. 연구 결과 호모 에렉투스는 174면 년 전에 자바에 살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동남아시아 유골처럼 10만 년이 채 못 되는 것은 드물다. 자바에서 나온 와자크, 사라와크의 니아, 팔라완의 타본은 모두 1만 년 전의 유골이다.

빙하 작용으로 수천 년에 걸쳐 해수면이 달라지면서 오스트레일리아는 사훌 대륙붕을 통해 태즈메이니아, 뉴기니와 연결되기도 했다. 그러나 해수면이 가장 낮을 때 사훌은 동남아시아와 분리되었다. 따라서 오스트레일리아로 가려면 배를 이용해야 했는데, 신체와 사고 능력이 우리와 같았던 현생인류가 대나무 뗏목에 나뭇잎으로 짠 돛을 달고 항해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이 지역의 해류와 바람은 상륙을 용이하게 해주며, 수평선 바로 너머에 육지가 있다는 사실은 철새의 이동로나 건기에 난 화재의 연기로 확인할 수있다.

초기 오스트레일리아로의 이주는 집단의 조직적인 원정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바닷가의 어촌들이 티모르 해의 남쪽 연안에 항구적인 근거지를 마련했을 것이다. 해안의 길이가 충분한 것으로 미루어 수십 개의 집단이 서로 다투지 않고 공존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만약 그랬다면 최초의 오스트레일리아인은 수천 명 단위였을 것이다. 1만 년 전에 마지막으로 해수면이 상승했으나 그 초기 이주민들은 완전히 고립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유럽인들이 처음 접한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은 어부들이 아니었다. 지난 수백 년 동안 마카사르인들의 고기잡이에 관해서는 많은 기록이 있고, 4천 년 전 개들이 도입되어 들개가 된 것도 교류가 지속적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사진#02
원주민의 역사는 고립된 역사가 아니다. 제임스 바리팡이 인도네시아의 프라우(배)에 그려진 그림을 가리키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에 처음 사람들이 간 것은 언제일까?
20세기 중반까지 고고학자들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첫 이주가 2만 5천~1만 3천 년 전 마지막 결빙기를 맞아 해수면이 가장 낮을 대 이루어졌다고 추산했다. 하지만 1970년대 초에는 그보다 훨씬 이른 시기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이주에 관한 연구는 연대측정법이 개선되면서 한층 정밀해졌다. 방사성탄소 연대로 측정된 첫 이주 시기는 1961년에는 9천 년 전으로 추측되었다가 1981년에는 3만 8천 년 전으로 점점 소급되었다. 말라쿠난자, 진미움, 뭉고 등의 지역을 연대측정한 결과 많은 고고학자들은 이주 시기가 최소한 6만 년 전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연대측정 결과의 해석을 놓고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4만~4만 5천 년 전에 이주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의견도 있는가 하면 6만 년 전도 적게 잡은 연대라는 의견도 있다. 발굴 계획, 표본 추출, 연대측정법에 의문이 제기되면 논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 있다. 게다가 지난 1만 년 동안 해수면이 상승한 것을 감안한다면 태고적의 많은 증거는 해변의 바다 속 100미터 깊이에 묻혀 있을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4만 년 전에 사람들이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태즈메이니아의 위린, 널러버 평원의 앨런의 동굴, 오스트레일리아 남서부의 어퍼스완, 머리 강과 달링강 부근의 윌랜드라 호수, 케이프요크의 은가라불간, 뉴기니의 후온 반도, 뉴아일랜드의 마텐쿱쿰 등지를 조사해보면 그 연대는 최소한 3만 5천 년 전이다. 원주민들은 적어도 2만 2천 년 전에 사막 한가운데까지 자신들의 터전으로 만들었다.

이 최초의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은 기후의 변화와 이질적인 환경을 접했을 것이다. 해수면이 낮아진 기간에 태즈메이니아와 뉴기니는 오스트레일리아와 연결되어 있었고 태즈메이니아의 남부 산맥과 높은 봉우리들의 꼭대기에는 눈이 덮여 있었다. 눈 녹은 물이 만들어내는 강의 수량은 지금의 아홉 배에 달했다. 윌랜드라 강을 비롯한 이 고대의 강들은 아직 건조하고 추운 땅을 관류했다. 뭉고3이라는 인간이 매장된 시기는 바로 그 무렵이다. 당시의 관습대로 그는 발을 동쪽에 두고 뭉고 호수를 향한 채로 묻혔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정확한 매장 연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그는 6만 년 전 인간으로 현재까지 가장 오래 된 오스트레일리아인이다.

사진#03
동남아시아의 호모 에렉투스는 초기 오스트레일리안과 닮은 모습이다.


사진#04
이 와자크의 유골은 커다란 육괴 두 곳의 접경 지점, 농경이 시작된 곳 부근에서 발견되었다. 남족의 원주민과 북쪽의 아시아인의 연관을 보여주는 사례다.


사진#05
오스트레일리아 남동부의 뭉고 호숫가에 매장된 6만 년 전의 사람인 뭉고3. 미토콘드리아 DNA를 조사한 결과 그는 오스트레일리아인이면서 아프리카 혈통을 지니고 있음이 드러났다.


최초의 오스트레일리아인은 누구였을까?
유럽인이나 기타 사람들도 그렇듯이 현대의 오스트레일리아 토착민들도 지역에 따라 신체적으로 차이가 있다. 이에 관해서는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이주 모델은 복합적 기원과 이질적인 조상 집단으로 설명하는 반면, 진화 모델은 이질적 환경에적응하는 선택 과정과 사회적, 지리적 경계를 넘어선 통혼으로써 생물학적 차이를 설명한다. 그렇다면 그 신체적 편차는 사람들이 새로운 땅의 다양한 생태에 적응하면서 생긴걸까, 아니면 이주가 이루어진 뒤 다양한 이주민들 간의 통혼을 통해 생겨난 걸까?

20세기에는 주로 이주 모델로써 신체적 차이를 설명했다.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이 개발되지 않았던 1941년에 조셉 버드셀은 이주민들이 세 부류였기 때문에 그 차이가 생겼다고 주장했다. 1970년대 초에 앨런 손은 이중의 이주 모델을 제안했다. 코 늪지에서 그는 오스트레일리아 남동부 머리 강변에 살던 사람들은 골격이 두툼하고 강건했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코늪지보다 훨씬 오래된 뭉고 호수의 유골은 그보다 골격이 약했다. 앨런 손은 이 차이를 북쪽의 고대 화석들과 연결시켜 설명했다. 몸집이 크고 강건한 집단의 조상은 자바의 호모 에렉투스이며, 약한 집단은 더 먼 중국출신이라는 것이다.

초기 이주의 연대가 소급됨에 따라 진화론적 설명이 더 큰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수만 년 동안 사막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체격이 날씬해지고, 사지가 비교적 길어지는 경향이 있다. 윌랜드라 호수의 사람들은 빙하시대에 사막 거주자였다. 자원이 풍부한 머리 강변에 살던 사람들의 튼튼한 골격도 그와 마찬가지로 적응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1만 년 이상 된 것으로 여겨지는 유골이 약 90개가 발견되었다. 그 대부분은 파편들이고, 발견 지역은 윌랜드라 호수, 쿠볼 강, 코 늪지다. 뒤의 두 지역은 머리 강을 경계로 약 50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며, 역사적으로 바라파라파 부족의 영토에 속한다.

1만 년 이상 된 유골들은 대개 골격이 크고 두툼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가장 잘 알려진 발견 장소들 - 코후나, 나쿠리, 코 늪지, 쿠졸 강 - 은 모두 머리 강변에 속한다. 이 유골들은 어느 인간 집단보다도 치열이 크고 이마가 넓고 눈두덩이 발달했다. 케일러나 윌랜드라 유골 같은 다른 유골들은 그보다 윤곽선이 매끄러우며 신체적으로 현대 원주민에 더 가깝다.

사진#06
나쿠리에서 발견된 유골. 높고 넓은 이마와 두툼한 골격으로 볼 때 머리 강변의 코 늪지와 쿠볼 강의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은 매우 강건했으리라고 생각된다.



최초의 오스트레일리아인의 조상은 누구였을까?
현생인류의 신체적 기원과 그들이 전세계로 확산된 것에 관한 최근의 연구는 지역연속설과 아프리카 기원설이라는 두 가지 모델로 양극화된다. 전자의 입장에 따르면 호모 에렉투스는 아프리카에서 유라시아 전역으로 퍼져 174만 년 전에 자바에 이르렀다. 통혼으로 연결된 구세계 모든 인구는 호모 에렉투스로부터 진화했다. 현대의 호모 사피엔스는 약 13만 년 전에 탄생했다. 이 모델에서는 솔로와 은간동에서 발견된 호모 에렉투스의 화석이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조상이 된다. 학자들은 1만 년 전의 오스트레일리아인과 자바화석이 서로 유사하며 혈통적으로 이어져 있다고 본다.

아프리카 기원설에 다르면 현생인류는 13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생겨나 짧은 지질학적 기간에 아시아로 이동했고, 6만 년 전에 인도와 동남아시아 해안에서 배를 타고 오스트레일리아로 왔다. 도중에 그들은 잔존하는 호모 에렉투스들을 모두 죽인 뒤, 150만 년 동안이나 가까이 있는 대륙이면서도 사람들이 살지 않았던 오스트레일리아에 정착했다. 이것은 급진적인 진화 모델이다.

그러므로 아프리카 기원설에 의하면 자바 - 솔로와 은간동 - 의 호모 에렉투스 화석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곁가지이며, 최초의 오스트레일리아인은 13만 넌 전 아프리카에서 탄생한 조상의 후손이다. 지역연속설에서는 여전히 호모 에렉투스가 최초의 오스트레일리아인의 조상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중요한 의문이 생긴다. 왜 호모 에렉투스는 조금만 더 이동하여 오스트레일리아까지 건너오지 않았을가? 아니면, 그들은 건너왔던 걸까? 지역연속설은 장차 오스트래ㅔ일리아에서 10만 년 이상 된 유골을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기반으로 세워진 가설이다. 확률은 적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출처 : 고대 세계의 70가지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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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탐험자님의 댓글

까룩이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현재 중국학자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남방쪽으로 진출하여 말레이 반도를 지나 호주까지 뻗어 나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폴리네시안들도 뿌리는 죄 중국인이란 생각이지요.    그들 생각대로 라면 이 아시안이나 태평양국가는 죄 자신들의 후손들이란 등식이 성립합니다.    중국이 큰 나라고 인구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논리의 비약이 너무 지나쳐서 큰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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