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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백두산 중국령 표기 지도 제작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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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식탐험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3건 조회 974회 작성일 07-11-28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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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백두산 중국령 표기 지도 제작 파문



정부가 백두산을 중국령으로 표시한 지도를 외국인을 위한 영문판으로까지 제작·배포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파문이 일 것으로 보인다.

건설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원장 손봉균)이 2005년 한글과 영문 각 500부씩 총 1천부를 제작ㆍ배포한 ‘대한민국주변도’(Korea and Vicinity)에서 백두산은 한반도의 경계 위쪽에 위치한 것으로 표시돼 있다.

사진#01
▶건설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이 2005년 국문 500부, 영문 500부 등 총 1000부를 제작, 배포한 <대한민국주변도>. 지도는 백두산을 중국의 린장, 창바이와 같이 국경선 바깥에 표기해 중국에 속하는 것으로 표기하고 있다.

지도에는 ‘백두산 2744m’와 '천지'라는 표기는 물론 파란색 점을 그려 넣어 천지 호수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하지만 백두산을 의미하는 삼각형 기호와 천지를 의미하는 파란색 점 모두 한반도의 경계선 바깥, 즉 중국에 속하는 것으로 돼 있다.

북한과 중국의 천지 분할설을 감안하더라도 지도에 표시된 백두산의 최고봉 2744m는 한국 쪽에 위치해 있음에도 문제의 지도는 이 마저도 경계 바깥에 그려 넣어 백두산 전부가 중국령인 것으로 돼있다. 이에 반해 정부가 제작한 ‘대한민국 지도’에는 천지가 모두 한반도의 경계 안에 들어와 있는 것으로 표기돼 있다.

문제의 지도는 국토지리의 표준을 정하는 정부 기관이 작성했다는 점에서 정부가 왜곡된 정보를 유포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도 오른쪽 하단에는 “대한민국 건설교통부 국토지리연구원 발행”라고 명시돼 있다. 이 지도는 이미 국내 각급 기관에 배포됐으며 해외정보원에도 배포돼 국가 차원의 해외 홍보자료로도 활용됐다.

국토지리정보원은 이 지도를 누구나 내려받아 볼 수 있도록 홈페이지(www.ngi.go.kr)에도 이미지 파일 형식으로 만들어 올려 놓기까지 했다.

지리정보원은 건설교통부 산하 기관으로 측량 및 지도제작과 관련된 정책ㆍ제도의 수립ㆍ운영, 국가측량기준점ㆍ 국토기본지형도 등 각종 국토지리정보를 생산ㆍ관리ㆍ보급하고 있다. 당시 지도 제작에 참여했던 국토지리정보원 관계자는 “지도 제작 때 내부 감수를 했는데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 기사입력 2007-11-28 14:42 | 최종수정 2007-11-28 17:29
김용범 기자


[이 게시물은 선장님에 의해 2014-02-02 11:29:24 미스테리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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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지식탐험자님의 댓글

지식탐험자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기억하실련지 모르지만.. 

제가 음모론 자료에서 구굴지도를 가지고 백두산이 이미 중국땅이라고 주장했던 것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음모론 884번 장백산문제 )  아마도 백두산이 우리민족의 땅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은 처음이라 생각합니다.    구굴을 즐겨보다가 백두산의 경계선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경계선보다 훨씬 밑으로 쳐져 있어서 의문을 가진 것이 그 동기였죠.

또한 음모론 725번에서는 이미 중국인들이 쓰는 지도에서 백두산이란 고유명칭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려드려서 제가 주장한 백두산 경계선의 남하로 인해 백두산 전체의 소유권이 중국에 있음을 확인해 드렸습니다.

이제 그 확정판으로 우리나라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백두산이 중국땅이라고 확인한 자료입니다.  이미 국제법상 백두산은 한민족의 산이 아닌 중국의 창바이산이 되었습니다.   

백두산..  북한의 김일성주석이 한국동란시 중국참전의 댓가로 중국에 양도한 것입니다.  이제 확실히 아셨죠?    이번에 한국정부가 확실하게 인정하고 확인해 준 것입니다.   

독도갈매기님의 댓글

지식탐험자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지식탐험자 님의 말씀이 맞다면... 우리나라가 매우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런데 지금 백두산이 우리나라 땅이건 중국땅이건 소유권을 주장할 상황도 아닌듯 하네요..
중국한테 간도처럼 백두산도 먹혀갔다고 봅니다..

정말 이런 기사를 볼때마다 우리나라정부의 무능력과 중국의 세력이 막강해졌다는것을 느끼게 되는군요.. 우리나라 정치인들 제발 국사책좀 보고 살았으면 합니다.. 맨날 비리나 먹고 땅 떼주고... 뭐하는 짓인지...

양쪽 위아래에 있는 빵이 너무 커서 안에 있는 햄들이 파뭍버리는 샌드위치가 되버렸네요..

지식탐험자님의 댓글

지식탐험자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언제나 중국의 위세에 눌려 기를 못펴고 사는 불쌍한 한민족... 만주리아의 인구구성상 70%가 한민족이고 역사상도 충분히 영토권을 주장할 수 있어 국력만 강하고 영민한 지도자만 있으면 충분히 실지회복권을 강구할 수 있으나 비굴한 북한과 무능한 남한의 지도자들 덕에 400년 영토가 곧 중국관할로 넘어가겠네요.

왜그런지 이 한반도에서는 참으로 영민한 지도자가 못나오는 비운의 땅인가 봅니다. 역사상으로 봐도 중국이란 나라가 이 한반도에 많은 영향을 끼졌지만 그 중국의 국력이 항상 100%인 적이 드물었기에 이 땅에 영민한 지도자만 있었으면 백두산 뿐이 아니라 만주리아의 회복도 생각해 볼만한데 그 영민한 지도자 한 사람을 만나기가 너무 힘드네요. 중국이 아무리 큰 나라지만 이 한반도에서 고슴도치 마냥 사납게 군다면 그 큰땅덩어리를 가진 중국도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좋은 예로 이스라엘을 들을 수 있죠.

하지만 아쉽게도 이 땅의 지도자들은 비굴하게도 사대근성과 패배의식에 쩌들은 거지소굴의 왕초정도의 능력과 소신만을 가진 인물들이 집권하여 세계가 요동칠 때 숨어버리는 소인배근성으로 항상 타국의 침략만 당하고 그 덕에 애꿋은 국민들만 고생하고 국민들의 힘으로 난을 극복하면 또 다시 옛자리를 차고 앉아서 고마움도 없이 백성들의 등골을 빼먹으며 호의호식하며 살곤 합니다. 이순신과 선조가 그 좋은 예입니다.

과거 일본이 우리를 침략하여 우리 선조들이 고생했다고 무조건 일본을 멀리하고 거부감을 갖기전에 우리 조상이 얼마나 무능하게 정치를 하고 백성들을 못살게 굴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고종과 대원군 그의 졸부 민비.. 그들은 세상이 요동칠때 정권싸움으로 치새우며 일본이 개방하고 명치유신으로 신문물을 들어와 국가를 발전시킬 때 나라를 개방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라 외치며 나라문을 닫아걸고 쇄국정치를 하면서 권력싸움질만 하던 못난 인간들이 었습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나라가 무너지고 을사5적이란 기회주의자 매국노들의 손에 의해 나라가 일본에 넘어간 것 입니다. 일본을 탓하기 전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가 뭘 잘못했는지 부터 반성하는 것이 도리 아닐까요?

대원군과 민비.. 무능한 고종... 특히 민비가 시대적 상황에서 여걸로 부각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생각합니다. 무능한 고종을 그렇다 치러라도 자칭 똑똑하다고 자부하던 민비는 시아버지가 권세를 휘들르는 것을 참지못하고 그 권력을 갖기 위해 시아버지 대원군과 권력다툼으로 우리나라에 외세를 끌어오는 결정적인 행위를 한 여인입니다. 마치 돈만 아는 스쿠루지 처럼 권력맛을 봐서인지 남편을 도와 나라를 바로 세울 생각은 없고 청에 붙었다 러에 붙었다 하면서 조선제국에서 청일전쟁을 나게하는 원인을 제공하는 여인이죠. 누군가는 민비가 일본 사무라이에게 잔혹하게 죽어서 안됐다고 생각하지만 본인의 생각은 그런 짓을 하니까 그렇게 죽어도 마땅하다란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권력싸움의 댓가는 무엇입니까?

결국 나라는 망하고 일본의 속국이 되어 36년이란 세월을 어떻게 살았습니까? 참으로 말로 표현하지 못할 댓가가 백성에게 가해지지 않았습니까? 백성이 못나서 그렇게 되었지 않는가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그 결정적인 동기나 원인은 그시대 그정치인들이 서로 뜯어먹기하다가 난 결과가 아닐까요? 못난 정치인과 품질이하의 정치인은 국가와 민족에게 정말로 쓰디쓴 결과를 주는 것을 우린 알아야 합니다.

말나온 김에 비근한 예를 하나 더 들겠습니다. 박정희와 김영삼을 예로 들겠습니다. 한사람은 한민족 오천년동안의 가난과 배고픔을 극복하고자 죽어라 일을 하며 "잘살아 보세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라는 구호를 외치며 밤낮으로 일을 해 세종대왕도 못 해결하고 광개토대왕도 못해결한 한민족의 배고픔인 보릿고개를 없앴습니다.  또 한인간은 아직도 잘 살지 못하는 나라를 OECD라는 선진국클럽에 가입시켜 모든 규제를 풀어 선진국수준으로 경쟁을 시킴으로써 이 나라에 IMF 라는 국가부도를 냈습니다.    한 사람은 비록 독재를 했고 장기집권을 했지만 국민에게 삶의 가장 기본적인 바탕을 제공했고 한 인물은 허구헌날 독재타도.  민주.자유를 외치며 집권했지만 경제적 무지와 무능으로 온 국민에게 가져다 준 것은 고통뿐이었습니다.   

현재 이 나라가 그나마 원할하게 돌아가는 것도 박정희란 인물이 워낙 경제와 군사라는 국가발전의 두 바퀴를 세게 돌려놓아 그 원심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김영삼시절은 그 국가발전의 두 축인 경제란 바퀴가 서 버렸던 것이구요.    하지만 아직도 최초의 추진력이 살아 있어서 삐거덕 삐거덕 거리며 나라가 발전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민족이나 한 국가의 발전에 있어 지도자의 역활은 정말로 중요합니다.  우리 대한민국 더 나아가 한민족에게도 민족이 웅비하고 뻣어나갈 수 있는 정말로 좋은 지도자가 나타나길 진심으로 바람니다.   

별님의 댓글

지식탐험자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지식탐험자님의 좋은말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한 가지..지식탐험자님은 박정희가 비록 독재를 했지만..이라고 하셨는데요^^;; 박정희는 독재를 하지않았다고 말씀을 드립니다. 박정희가 독재를 했다고 여러 사람들이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만...박정희가 독재를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는 국민들이 체험하고 판단했고 그 결과로 모든것이 증명되고 나왔습니다. 박정희는 독재를 한것이 아니라...국민들의 지지를 받아서 집권이 장기화 되었던 것입니다. 독재라고 하는것은 국가와 국민들이 어떠한 위치에 놓여있는지는 상관없이 독재자 자신과 그 수족들의 유지를 위해 모든것이 집중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즉, 그것이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어떠한 집단이 자신들의 집단유지를 위해서 국민들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는 이기적 집단유지에만 골몰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독재입니다. 세계 어떤 국가형태나 체제중에 국민들 100%를 만족시키는 그러한 곳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불만세력은 어디든 존재합니다.
그런점에도 불구하고 박정희시대가 의미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셨다시피 박정희가 돌려놓은 경제와 군사바퀴는 아주 적절한 표현이라 동감합니다.

박정희시대는 20년 30년 이상을 바라본 미래지향적 시대였습니다. 단순히 그 순간을 모면하려는 얄팍한 경제군사 정책이 아니라...박정희시대에 태어나지 않았던 미래세대에게 돌아가는 막대한 풍요로움을 미리 계산하고 거기에 맞추어 골격을 만들고 준비를 시켰던...그런 시대였습니다.
박정희시대에 어디 국민들을 못살게 했으며...국민을 탄압하고 죽어라죽어라 했습니까?
역대 대통령중에 국민들을 가장 위하고 관심을 기울이고 국민을 위해서 무엇을 하나라도 더해줄 것인가를 고심고민했던 사람은 박정희입니다. 영부인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박정희가 독재를 했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집권이 장기화되었던 것은 국민들의 지지에 힘입은 것입니다. 박정희시대에 일어나고 가지게 된 자신감과 배고픔해결을 넘어선 비약적인 발전과 더불어 학생들의 학구열 세계에 대한 진출과 자신감들이 학생들과 국민들의 정신을 업그레이드 시키고 또한 민주주의의 발전과 열망을 자각하는 성숙한 국민의식을 만들어 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박정희가 만들어낸 이러한 것들이 박정희의 장기집권을 끝내는 단초가 될줄이야...
독재자는 국민들이 똑똑해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박정희는 국민들과 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똑똑해지고 자신감가지며 세계와 경쟁할수 있는가로 고민했습니다.
이런 박정희가 과연 독재자일까요?

천장지구님의 댓글

지식탐험자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박정희는 가증스럽죠.
했던 일의 결과는 그렇게 나쁘지 않아 그나마 다행입니다.
절대로 대통령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해 놓고 번복했고, 그 밑에 약아빠진 놈 하나 만나서
이미지 메이킹하고 장기 집권했죠.
일본군 장교였었다가 신분을 숨기고 해방후 임시정부에 들어가서,
일본식으로 부하들 훈련시키다 장준하 선생님에게 꾸중을 많이 들었었죠.
대통령할때도 기분이 아주 좋을때는 일본말로 중얼 중얼 했다던데...
나중에 박통의 민중에 라이벌이었던 장준하 선생님이 등산중 의문의 실족사???
장선생님이 한 말씀중에 우리나라 사람 누구나 대통령을 해도 좋지만,
박정희 만은 안된다.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 우리를 괴롭히던 놈이 어떻게 우리나라의 대통령을 할수 있겠는가 라고 하셨다죠.

별님의 댓글

지식탐험자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청년 장준하의 친일행적(수정본)


장준하는 일제시대인 1918년에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1930년대 초반 평안북도에서 일제의 판임관교원 즉 일본제국의 충복인 황국교원를 한 사람이었다.
욱일의 기세를 보이며 승승장구하던 일본제국은 조선을 강점한데 이어 1932년에는 만주를 점령하는 등 대륙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해 나갔다.
윤봉길의사의 상해 홍코우공원 폭탄투척이 바로 이때 1932년 발생한 일이다.

장준하의 아버지는 우리민족의 절망기인 이 시기에 일본제국의 황국교원를 다년간 역임한다.
우리민족을 배반한 민족반역자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장준하는 이러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서인지 일본제국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친일의 피가 농후하게 흐르던 젊은 황국신민 장준하...

젊은 장준하는 1938년 신성중학교를 졸업한후 평안북도 정주에서 신안소학교 판임관 교원, 즉 일본제국 황국교원(훈도)을 3년간이나 하였다.
1938년 조선총독부는 중등교육에서 조선어학과를 폐지하는 등 내선일체,황국신민화 정책을 적극 추진하여 조선의 전통,풍습,언어 등을 말살한다.
일제는 조선에 대한 식민지수탈을 더욱 강화하였고 이즈음 일본제국의 교원들은 일본 천황폐하의 충복으로서 견마지로를 다하는 자리였다고 볼수 있다.
일제말기의 훈도는 일본천황 즉 덴노헤이까의 교육칙어를 받들어 식민지조선인을 일제에 동화시키는 첨병이었다고 볼수 있다.

신사참배,조선말 사용금지,일본말 사용권장,곡물 공출 강요,놋그릇 수탈 등은 훈도의 기본업무였으며 일제의 훈도는 대 일본제국의 영광을 위해 뛰는 제1선의 자리였던 것이다.
그는 이때 제1급 악질친일 민족반역자 생활을 한 셈이다.이때 장준하는 조선인이 아니라 일본인 그 자체였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후 장준하의 친일행적은 더욱 고도화되기 시작한다. 즉 일본 본토로 유학을 가는 것이다.장준하는 1941년 일본 동양대학 철학과에 입학한다.
일제시대 말기 즉 우리민족의 절망기에 자기만 살겠다고 일본 본토로 유학까지 간 청년 장준하...

그는 이때 과연 무슨생각을 한 것일까?
일본 본토에서 공부를 더 해서 황국 즉, 대 일본제국의 학부대신이라도 되고 싶었던 것일까? 이완용처럼...
우리의 독립투사들이 중국 내륙에서 피흘리며 싸우던 일제말기 그 시절,그는 무엇을 생각하고 일본 본토로 유학까지 갔던 것일까?
그는 1942년에는 다른 일본신학교로 전학까지 한다. 신학은 그에게 불안 도피처였을 것이다.

전쟁이 세계를 흔들던 풍운의 시절에 신변을 보호하는 방법은 그 방법이 제일 좋았을 것이다.이때의 장준하는 요즈음의 징병기피자들을 연상케 한다.
이후 일본 본토에서 무려 2년간이나 빈둥거리며 일본놈팽이들과 어울리던 장준하는 드디어 일제에 의해 1944년1월 징집을 당한다.
일본제국이 진주만을 폭격하고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말기 2차대전기 전쟁풍운의 시절에 자기 신변의 안전과 안일을 위해 여우같이 굴던 장준하는 드디어 일제에 의해 징집을 당하는 것이다.
1년만 더 버텼으면 조선광복이 되어 조국으로 안전하게 돌아왔을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장준하는 징집을 당하는 것이다.

일제말기는 전쟁의 막바지시기로 일제는 병력이 계속 모자랐고 따라서 신학대학생인 장준하도 예외가 될수 없었을 것이다.
장준하는 1944년 봄 평양에서 대 일본제국 군인이되는 훈련을 잘받고 중국 중부 지역인 서주 쓰가다부대에 명예로운 대 일본제국 군인으로 배속된다.
난생처음 전쟁터에 끌려간 학삐리 장준하는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드디어 부대 탈영을 결심한다.
그곳은 우리의 임시정부가 있던 중경에서 보면, 만주보다는 훨씬 가까운 곳이었으므로 장준하가 중경으로 탈출하기 좋았을 것이다.

장준하 본인 말에 의하면 일본제국이 미워서 탈출했다고 하지만 그 말을 믿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일제말기 그의 친일행적과 여우같은 처신으로 볼때 그 말은 신빙성이 없다.
장준하는 탈출후 운좋게 김준엽을 만나 동행한다. 1944년 8월 중국 중앙군 소속 한국인 훈련반에 입소한 장준하는 훈련을 받은후 그해 11월 중국 중앙군 준위로 임관된다.
그후 친구들과 함께 임시정부가 있는 중경으로 가서 1945년 2월 광복군 소위로 임명된다.이것이 광복군이 되기까지의 장준하의 행적이다.

해방전 장준하의 광복군 경력은 6개월에 불과하다. 그런 그가 어떻게 광복군 중위의 명함을 자랑하는지 궁금할 뿐이다.
그 알량한 광복군 경력 6개월도 실은 3개월은 OSS훈련 기간이었고 그외 이렇다할 전투경력도 없다.
그러한 그가 어떻게 독립투사처럼 인식되고 있는 것일까?.과대포장도 이만저만한 과대포장이 아니다.
실제 그는 해방전 인생 대부분을 일본제국을 위해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38년 일본제국 교원으로 시작한 그의 친일 인생은 1944년까지 계속되는 것이다.무려 6년이다.
그의 광복군 경력은 6개월뿐이다.그것도 자발적으로 광복군을 찾아간 것이 아니고 일제에 의해 징집당하여 운좋게 중국대륙 중남부에 배치되자 거기서 탈영하여 이루어진 우연한 것이었다.
그가 만일 필리핀주둔 일본군에 배치되었더라면 탈출이 가능했을까? 탈출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장준하는 일제 강점기 우리의 민족암흑기 시절에 일제의 황국교사로서 일본천황의 충견역할을 하다가 1941년 일본 본토로 유학가서 무려 3년간이나 빈둥거리며 쪽바리 놈팽이들과 어울려 지낸다.
장준하는 1943년에는 결혼까지 하며 희희락락한 태도를 보인다.일제에 의해 징용되기 몇달전 일이다. 그가 독립군이 되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때 결혼을 했을까?
신채호 선생이 가정을 버리고 떠나 독립운동을 하신 것과 대조되는 대목이다.이때까지 장준하는 민족정신이라곤 털끝만큼도 없는 양아치였다고 볼수 있다.

뒷걸음질 치던 소가 우연히 쥐 잡듯이 장준하는 졸지에 광복군으로 변신한다.즉 그의 광복군 변신은 당시 조선인의 수치스런 뒷모습일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해방은 1945년 이루어졌다.그러나 장준하는 1944년 초까지 전형적인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삶을 산 사람이었다.

장준하는 기회주의자의 전형일 뿐이다.그의 광복군 경력은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다.그가 후에 김구선생의 비서직을 했다는 것은 김구선생 자체에 대한 모독일 뿐이다.
장준하는 인생 대부분을 악질 친일파로 살다가 막판에 우연히 광복군으로 기어들어가 광복군의 명예를 더럽힌 위선자일 뿐이다.
그의 인생 대부분은 민족반역자의 그것이었으니 그를 독립투사로 과대포장하는 자들은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지식탐험자님의 댓글

지식탐험자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박정희가 가증스럽다고 말할 정도는 분명 아니라고 봅니다.  천장지구님..  역사를 보는 시각은 분명 다양하지만 무슨 박대통령이 천장지구님께 직접적인 피해를 끼친 것도 아니고 가증스럽다고 말할 정도는 분명 도를 지나친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천장지구님은 그가 친일파라고 그러는데...  일제가 이 땅을 강탈한 기간이 36년입니다.    말이 36년이지 36년은 한세대가 넘어가는 시간입니다.    일제가 이 땅을 강점한 해는 1910년입니다.  박정희는 1917년 생입니다.    이미 나라가 일제에 넘어간지 7년이 지난 시기에 태어난 인물입니다.  그가 태어났을 때는 이미 조선이나 대한제국은 이 세상에 없는 나라였습니다.  단지 일본제국만이 있던 시기였죠.  박대통령 10대 시절도 나라는 독립못했고 20대 시절도 독립을 못했습니다.    그가 독립을 맞이한 나이는 그의 나이가 30대로 접어드는 시절이었습니다.  정확히는 우리나라 나이로 29살 되던 해입니다.
 
남자의 나이가 30살이 다 되어가도록 남의 나라의 통치를 받는 나라였습니다.    태어나기 전에 강점 된 것도 아니고 태어나면서 이미 나라가 없던 나라였습니다.  그 긴세월을 그가 무슨 의미에서 대한제국과 한민족이란 의식으로 살아왔겠습니까?    천장지구님은 과연 이런 경우라면 어릴적의 기억도 없는 나라에 대한 양심과 애국심을 가지고 죽어라 독립운동을 했을까요?    박정희..  어찌보면 그는 몸은 비록 이 땅에서 태어났지만 일본인의 의식을 가진 반은 일본인이라 생각해도 과언이 아니라 봅니다.

그가 어린시절부터 배운 문자는 일본어였을 것이고 학교에서 쓴 말은 일본어였겠지요.  그리고 학생무렵부터 익숙한 것은 일본의 "천황페하 만세" 였을 것입니다.  학교에 등교하자 마자 신사참배를 빼놓치 않고 했을 것입니다.    보통사람이면 그 사람의 전체의식이 100% 일본인화 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하지만 천장지구님.    그 가증스러운 박정희에 대한 얘기를 얼마나 알고 계신지요?

그런 점령지 2등국민속에서 그의 맘속에 일본이란 의식은 없었습니다.  비록 그가 일본학교를 졸업하고 일정 통치하에서 교사를 했고 나중에 만주국과 일본육사를 졸업했지만(그것도 일본육사 수석졸업) 그의 맘속에는 자신이 일본인이라는 의식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의 전기나 삶의 애피소드속에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공부를 상당히 잘했습니다.  머리가 상당히 뛰어난 인물이었기에 일본어는 잘했지만 시험에서 일부러 일본어 시험지를 백지를 내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문경소학교 선생이 되었을때 제자들에게 비밀리에 한글을 가리켰고 애국가를 가리켰습니다.  또한 문경소학교 일본선생들과 회식자리에서는 그저 묵묵히 술만 먹다가 헤어졌다하며 문경소학교 교장선생의 전횡이 너무 심하자 마지막 회식자리에서는 상을 뒤업고 일본인 교장의 멱살을 잡았다고 합니다.  2등국민 주제에..  그리고는 만주국 육사로 갔지요. 
( http://www.freenk.net/top/broadpop.php?addr=bbs_fcolumn&id=58 )


그의 일생 어디 한구석에 일본을 찬양하고 천황을 숭배했다는 부분을 볼 수 없습니다.  그가 일본육사를 졸업했을때 천황폐하 만세를 외쳤다고 혹자는 그가 친일분자라고 하지만 일본육사에서 수석졸업생이 형식적인 자리에서 과연 일본천황을 부정하기에 천황만세를 외칠 수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더구나 당시는 조국의 독립은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었는데... 천장지구님은 남의 인생이고 자신이 격지 않은 시대라고 그렇게 말을 쉽게 하는 것이 아님니다.

보통사람이 그렇게 살아왔다면 그는 분명 일본인이지 한국인이 아님니다.  외모는 같은 동포일지 몰라도 의식이나 동류의식은 일본국 사람에게 느낄 것입니다.    박정희의 해방이후의 모든 생애 - 암살당하는 1979년까지 - 그가 일본인과 일본국에 어떠한 동류의식을 느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암살당하는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회식자리에서 당시 초대가수였던 심수봉씨가 엔카를 부르자 불같이 성질을 냈다 합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1459004 )  박정희가 일본 수상이나 일본인을 만나서 한마디의 일본어 대화를 했다는 것을 들어보셨는지요?  아마도 한번도 못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누구같이 일본수상을 만나서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하는 지조없는 통치자와는 절대로 격(格)이 다른 인물입니다. 

천장지구님..  말이 길어지고 글도 길어졌지만 한번이라도 그의 전기나 인터넷에 흔하게 떠도는 정보에 관심을 한번이라도 가져 보신다면 절대로 박정희란 인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못 하실 것입니다.

천장지구님은 박정희란 인물에 대해 겨우 표피적인 정보밖에는 모르고 그를 비난하고 폄하하고 싶지만 저 지식탐험자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박정희란 인물을 가졌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왜냐면 그가 우리나라 오천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국민의 배고픔을 없앤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 혹시라도 제글에 반박을 하고 싶다면 글로써 써 주시기 바람니다.  얼마든지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이미 박정희에 대한 평가나 자료는 충분하니까요.-

아찌님의 댓글

지식탐험자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나라가 거꾸로 가고있는 이 현시점 뭤같은 대통령 잘못뽑아서 나라가 곤두박질 치고있는 이시점에서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무지 몽매하게 고 박정희 대통령을 욕하는사람들  정신이 있는 사람인지 없는사람인지 구분이 안되는군요 이런사람들이 뭣같은 대통령 뽑아서 나라를 이지경으로 만들고 있는데도--- 등따시고 배부른 모양-- 뭘알고 떠들기 바랍니다 얄팍한 지식으로 --- 난 박통과 30년을 한나라에서 살았는데 아직까지 박통만한 인물 못보았고  그뒤의 소위 대통령이란사람들과는  비교를 할수도 없는 영웅이란것만 알아두쇼 돈으로 노벨상, IMF, 비자금챙기기,노후에잘살려고 동네를 관광지로 만들고,북한에 퍼주기만하고, 주위의나라에 꼴값도 못하고 맨날당하고,바다이야기나만들어 도박공화국만들고, 필요없는공무원수나 늘리고,돈주고 김정일 만나고,성형과 보톡스나맞고,김대협이나 김경준같은 희대의 사기꾼들이나 만들고,해외출산원정,수시로바꾸는 대입시험,세계제일의 성형미인국가,이과는 쭈그러들고 문과가 득세하고,방위나와도 큰소리처대는 나라,---- 더 있어도  이만줄입니다만 박대통령이후의 대통령들이 일구어 놓은 현상---  박대통령이 일구어놓았던 밑바탕이 있어서 현재 우리나라가 가고있는겁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만약 없었더라면 우리나라 --- 생각만해도 아찔하군요  박대통령 욕하는 사람들 정신차리고 공부 더하쇼 투표도 똑바로하고(정신차리고)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아직 아닙니다  흥청망청 할때가 아니란 말이요

겨울의달님의 댓글

지식탐험자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개인적으로 박정희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남한은 없었을거라는...

아찌님 말씀처럼 저희나라는 선진국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국민 개개인은 먹고 살만하지만 나라의 복지시설과 정치하는 틀을 살펴보았을땐

참으로 신기한 나라지요. ㅋ

도대체 어떻게 굴러가는 나라인지 원..;

그나마 박정희가 만들어놓은 기본틀에 의하여서 아직까지는 굴러가고 있는것같지만..

그 틀은 점점 무너져가고 있는 추세같습니다;

정치한다고 나서는 국회의원들 중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나라를 위해서 힘쓰려고 하는 정치인들은 결국은 다 돈에 이끌려가는 모습이구요..

밥그릇 챙기려다가 사건터지면 누구보다 정치에 앞서고...

사건을 옳바른 쪽으로 처리할 생각은 안하고 묻어버리기에만 급급하고...

민주주의나라에서 국민들 속이고 정치하는 모습하며..

대통령 선거 기간에 수많은 비리들이 난무하는 가운데서도 선거에는 별 다른 지장은 없고....

대한민국... 제가 태어나고 자라온 나라지만 정말 재미있는 나라 같습니다...ㅋ

언제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는 정치인들이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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