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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행되는 윤봉길 의사… "진짜다" "아니다" 10년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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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현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5건 조회 1,157회 작성일 08-09-13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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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5월 1일자 일본 아사히신문 호외에 실린 사진(사진 ①). 가운데 끌려가는 사람이 윤봉길 의사인가를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사진 ②는 윤봉길 의사가 거사 3일 전인 1932년 4월 26일 가슴에 자필 선서문을 달고 폭탄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 ③은 총살형으로 순국하던 1932년 12월 19일 일본 기타쿠니 신문에 게재됐다. /조선일보DB

진짜다… 광대뼈·코·올라간 눈 등 유사한 점 많아

아니다… 당시 수십명 연행돼… 골상 완전히 달라

국과수 "신문에 인쇄된 사진이라 감정 불가능"


윤봉길(尹奉吉·1908~1932) 의사가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훙커우(虹口)공원에서 열린 천장절 기념행사장에서 폭탄을 투척한 직후 체포돼 연행되는 사진이 있다. 그 사진을 두고 가짜다, 진짜다라는 논란이 1999년 시작돼 10년째 결론을 맺지 못하고 있다.

올해는 윤 의사 탄생 100주년을 맞는 해다. 윤 의사의 조카 윤주(61)씨는 최근 국가보훈처를 통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연행 사진의 감정을 의뢰했다. 10년 논란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의도였지만 답은 "원본(原本)이 아니어서 감정 불가능"(국과수)이라는 것이었다.

국과수는 "인쇄사진은 복사 과정에서 왜곡될 수 있어 원본이 있어야 감정할 수 있다"고 답했다. 진위 논란을 빚은 사진과 대조하기 위해 비교용 사진이 제출됐지만 이에 대해서도 "그 사진들은 촬영한 각도가 달라 감정이 어렵다"고 했다.

"귀도 비슷" VS. "귀만 달라"

논란이 된 사진(사진①)은 1932년 5월 1일자 일본 아사히(朝日)신문 호외에 실린 것이다. 이후 이 사진은 윤 의사의 독립투쟁을 상징하는 증거로 교과서에 실렸으며 1976년에는 다른 유품들과 함께 보물(제 568호)로도 지정됐다.

이 사진에 의문을 처음 제기한 사람은 경희대 강효백(국제법무대학원) 교수다. 중국 상하이 주재 한국총영사관 영사로 근무하던 그는 "사진 속 인물의 골상(骨相)이 윤 의사와 완전히 다르고, 윤 의사(거사 당시 만 24세)치고는 지나치게 나이 들어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후에도 의혹이 제기되자 작년 2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펴내는 금성출판사는 문제의 사진을 교과서에서 뺐다. 출판사는 "이론(異論)이 없는 사진을 싣기로 했다"고 밝혔다. 작년 4월 문화재청은 문제의 사진에 대한 보물 지정을 해제했다. "신문 복제본으로 문화재 가치가 없다"는 이유였다.

이에 윤주씨는 최근 '연행사진, 윤봉길 의사 맞다'는 반박 책자를 냈다. 윤씨는 통화에서 "사진 속 인물이 윤 의사가 아니라는 증거는 아무 것도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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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②와 사진 ③

전문가들의 분석은 어떨까. 몽타주 전문가인 명지대 정보공학과 최창석 교수는 "윤 의사가 아니라기에는 유사한 점이 너무 많다"고 했다. 최 교수는 연행 사진과 거사 3일 전 사진(사진②), 사형 집행 직전 사진(사진③)을 비교해 분석한 후 이런 결론을 내렸다.

최 교수가 꼽는 유사점은 밑으로 처진 광대뼈, 코 길이, 미소선, 귓불, 올라간 눈이다. 최 교수는 "다만 두상이 조금 다른데 머리가 헝클어져서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 확인하기 어렵다"고 했다. 얼굴연구소를 운영하는 조용진 한남대 교수도 "골격과 이목구비를 보면 윤 의사가 맞다"고 했다.

그러나 두 전문가 사이에도 이견이 있다. 최 교수는 귓불을 두 사진이 일치하는 이유로 들었지만 조 교수는 "윤 의사는 귓불이 큰데 사진 속 인물은 칼 귀"라며 일치하지 않는 예로 귓불을 들었다.

윤주씨의 요청으로 국과수에 사진 감정을 의뢰했던 국가보훈처 공훈심사과는 "윤 의사를 독립유공자로 인정하는 자료 중에 논란이 된 사진도 포함돼 있다"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는 것은 사진 속의 인물을 윤 의사로 본 것"이라고 했다.

"오른쪽 얼굴에만 상처" VS. "피투성이"

구체적인 사실을 두고도 양측 주장은 엇갈린다.

먼저 '나이 들어 보인다'는 주장에 윤주씨 측은 "급박한 상황에서 찍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윤 의사가 아니다'는 강 교수는 "중국 정론지 신보(申報)가 1932년 4월 30일자 1면 기사에서 '양복을 입은 한국 소년'이라고 묘사했을 정도로 윤 의사는 어려 보였다"고 반박했다.

강 교수는 "몰매를 맞고 피를 흘리며 끌려갔다"는 보도와 사진 인물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상하이타임스 4월 30일자는 "주먹·군화·몽둥이가 그 조선인의 몸을 난타했다. 회색 양복은 갈기갈기 찢겨 땅에 떨어졌다. 머리와 다리가 들려 짐짝처럼 차 뒷좌석에 구겨 넣어졌다"고 보도했다.

노스차이나헤럴드도 5월 3일자 기사에서 "머리에서 허리 부근까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윤씨 측은 "피가 나는 것은 오른쪽 얼굴인데, 왼쪽 얼굴이 촬영돼 상처가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윤씨는 "현장에서 연행된 것은 윤 의사 한 명뿐이기 때문에 윤 의사가 확실하다"고 한 반면, 강 교수는 "당시 모든 신문이 현장에서 25~40명이 연행됐다고 보도했다"고 반박했다.

윤 의사 동생 고(故) 윤남이씨는 생전에 "형이 맞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이에 대해 "윤씨는 거사 2년 전인 16세에 윤 의사를 마지막으로 봤으며 아사히신문이 국내에 들어온 것은 1970년대"라며 "40년 전 기억을 진위의 증거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했다.

[이 게시물은 선장님에 의해 2014-02-02 11:28:24 미스테리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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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혼땅님의 댓글

회갈색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사진 속 주인공이 겁에 질린 모습입니다.  당연히 죽음을 각오하고 시작한 거사일진데, 체포된다고 저리 겁을 내고 있을까요? 이거만 봐도 윤봉길 의사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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