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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9.11의 진상중 일부가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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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ewwo…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843회 작성일 04-03-23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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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알려졌던 9.11의 `진실'>
(뉴욕=연합뉴스) 추왕훈 특파원=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9.11 직후 전군에 경계강화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지만 사실 73년 중동전 이후 처음으로 군 경계태세를 `데프콘 3'로 강화 발령한 사람은 리처드 마이어스 당시 합참의장 대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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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직후 백악관 벙커에서 상황을 파악하면서, 플로리다를 방문 중이던 부시대통령과 연락을 취했던 딕 체니 부통령은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공군 1호기)'에 대한 위협이 보고돼 워싱턴으로 복귀하려던 부시 대통령을 설득해 안전한 곳으로 피신토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실은 당시 백악관 벙커에 있던 그 누구에게서도 `에어포스 원'의 위협에 관한 보고는 없었다.

월 스트리트 저널(WSJ)은 22일 9.11 진상조사위원회가 수많은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벌인 인터뷰를 통해 그 동안 잘못 알려졌던 일들의 진상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10명의 9.11 진상조사위원 가운데 야당인 민주당 소속 위원들은 이와같은 오류가 단순히 실수라기보다는 현정부가 기민하게 대응했다는 점을 강조하고실책을 은폐하기 위해 의도된 것일 가능성이 있다면서 이 부분을 중점 조사하겠다고밝혀 왔다.

다음은 월 스트리트 저널이 9.11 조사위의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잘못 알려졌거나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 사항들이다.

▲부시의 초등학교 방문=부시 대통령은 피랍 여객기가 처음 뉴욕 세계무역센터(WTC)에 충돌한 직후 자신이 제안한 교육개혁안 홍보를 위해 플로리다주의 초등학교를 방문 중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그후 "이 초등학교의 대기실에서 TV를 통해 비행기가 WTC에 충돌했다는 보도를 봤다"고 말했으나 첫 충돌 장면이 TV에 보도된 것은 이날 오후 늦게였으며 당시 대기실의 TV는 전원조차 연결돼 있지 않았다고 관계자들이 증언했다.백악관측은 이에 대해 "단순한 착각이었다"고 해명했다.

앤드루 카드 백악관 비서실장은 두번째 피랍 여객기가 WTC에 부딪친 직후 부시대통령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보고하고 "몇초 지나지 않아" 부시 대통령이 수업을 참관하던 초등학교 교실에서 나왔다고 훗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사실 부시 대통령은카드 실장의 보고를 받고서도 최소한 7분 이상 이 교실에 더 머물렀던 것으로 밝혀졌다. 백악관측은 "아이들이 겁을 먹을 것을 우려해 교실에서 즉시 나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에어포스 원'에 대한 위협=체니 부통령은 9.11 직후 백악관 상황실에서 대통령 경호를 담당하는 비밀경호국 요원들한테서 `에어포스 원'에 대한 위협 보고를 받고 워싱턴으로 향하던 부시 대통령의 진로를 네브래스카주의 지하 벙커로 변경토록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당시 비밀경호국의 백악관 당직 요원들은 이런 보고를 한 일이 없다고증언했다. 백악관측은 "당시 백악관 벙커에서는 부시 대통령의 텍사스 목장과 국무부 청사도 공격을 받았다는 등 루머가 난무하는 상황이었다"고 실수 가능성을 인정했다.

반면에 부통령실 관계자는 "체니 부통령이 비밀경호국이 아니라 제복을 입은 군인에게서 `에어포스 원'의 위협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고 말을 바꿨으나 "경황이 없어 이 보고를 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른다"고 밝혔다.

칼 로브 백악관 정치고문도 2001년 10월1일자 뉴요커와 한 인터뷰에서 "9.11 당일 오후 4시까지 행방이 규명되지 않은 항공기가 3-4대 있었다"고 `에어포스 원'의진로 변경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당시 연방항공청(FAA) 담당자는 이날 낮 12시16분까지는 미국 상공의 모든 항공기들이 착륙하거나 다른 나라로 항로를 변경했으며 이사실은 백악관이나 국방부에도 보고됐다고 상반한 진술을 했다.

▲공군의 대응=첫번째 WTC 공격 직후 신속하게 공군 전투기들이 출격해 나머지피랍 여객기들을 저지했다면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북미항공우주사령부(NORAD) 관계자들은 그 이전까지 항공 전력의 배치는 주로 외부 공격을염두에 뒀기 때문에 9.11 당시 뉴욕이나 워싱턴 근처에 출동 태세를 갖춘 전투기가없었다고 밝혔다.

그렇다 하더라도 버지니아주 랭글리 공군기지에 배치돼 있던 NORAD 소속 전투기들이 재빨리 대응했다면 국방부 청사에 충돌한 피랍 여객기를 막을 시간의 여유가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WTC에 두번째 피랍 여객기가 충돌한 지 27분 만에 NORAD는 다른 여객기가 납치됐다는 FAA의 통보를 받고서도 50분간이나 버지니아의 전투기3대를 출동시키지 않았다.

당시 NORAD의 전투기 운용책임자였던 래리 아널드 예비역 공군 소장은 "미국이실제로 공격을 받고 있는 지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고 추가 여객기 피랍에 관한 FAA의 통보가 늦었을 뿐만 아니라 대응 태세를 갖춘 전투기 수도 절대 부족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FAA는 "피랍 여객기가 더 있다는 사실을 즉각 군에 통보해줬다"고반박했다.

공군기들이 제때 출동했다 하더라도 국방부 청사로 향하던 피랍기를 격추할 수있었는 지에 대한 증언은 엇갈린다. 부시 대통령은 테러범들에 납치된 여객기를 격추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밝혔지만 아널드 예비역 소장은 이를 부인했다.

▲비상조치 발령자=부시 대통령은 9.11 당일 밤 자신이 "첫번째 공격 직후 정부의 비상대응 계획들을 이행했다"고 밝혔지만 `정부합동 국내테러 작전계획 개념(콘플랜)'에 의해 비상령을 발동한 주체는 연방수사국(FBI)이었다. FBI 관계자는 9.11테러 발생 즉시 콘플랜의 규정에 따라 백악관의 지시 없이 비상령을 발동했으며 당시 상황이 방송을 통해 보도됐기 때문에 관계 부처들은 FBI의 통보를 기다리지 않고독자적인 대응을 이미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전직 백악관 직원은 부시 대통령이 국가적 재난을 선포한 시기는 9.11이 발생한지 3일 후인 9월14일이었고 그 이전에는 그가 비상계획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9.11 조사위의 민주당측 위원들은 9.11 당시 `콘플랜'과는 별도로 백악관이 자체적인 비상대응 계획을 마련해뒀어야 하는 지도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cwhyna@yna.co.kr



연합뉴스 2004-03-23 07: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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