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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과 핵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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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우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댓글 31건 조회 1,253회 작성일 04-03-17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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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대통령과 핵개발

▶몇해 전, 박정희 시대의 핵개발 문제를 소재로 한 가상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세간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어모은 바가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 확인이나 역사적인 평가는 오랫동안 금기의 영역으로 자리잡아 왔다.

▶핵개발 문제를 언급한 최초의 공식문서는 지난 98년 비밀해제된 미국측의 기밀 전문이다. 미국 대사관과 본국 사이에 오간 전문의 내용을 보면, 70년대 중반경 한국 정부가 핵무기 개발을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었으며 미국은 동북아 정세를 고려해서 이를 적극적으로 만류했다는 것이다. 이 것은 과연 사실일까..?

▶69년 7월 닉슨 독트린 이후 박정희 정부는 자주국방론을 역설하며 무기 국산화에 박차를 가한다. 일부에서는 이때 이미 핵무기 개발을 구상하고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70년대 한국의 핵 개발 연구는 어느 수준까지 진행되었으며 그 결과는 무엇인가? 그것은 원자력 에너지 공급이라는 평화적 이용을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원폭개발이라는 군사적 목적을 위한 것이었을까?

'박정희와 핵개발'에서는, 당시 이 사업에 참여했던 과학자와 관료들의 증언을 통해 핵개발 사업의 진상을 알아본다. 더불어 박정희 시대의 핵 연구사업을 둘러싸고 당시 국제사회의 시각은 어떤 것이었으며, 미국의 인식처럼 당시 남한 핵개발이 남북관계나 동북아 안정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던 것인지도 짚어봄으로써 핵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관점을 재정립하는 계기로 삼는다.


▲'10·26'과 '박정희 핵개발' 관련설의 진상은?

미국과의 갈등이 첨예하던 시기에 일어난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

이로 인해 10·26과 미국의 관 련설이 세간에 나돌면서 의혹이 증폭됐지만 결국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채 수십년이 흘러왔다.
그러던 중 94년 소설<무궁화꽃이 피었습니 다>가 출간된 후 핵개발 시도로 인해 저격당한 것이고, 그 배후에는 미국이 있었다는 주장으로 다시 한번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과연 10·26사건과 박정희의 핵개발은 어떤 관련이 있는것일까? 그의 소설 속에서와 같이 김진명은 '김재규가 재판에서 '핵개발은 잠꼬대같은 것이다' 라고 말한 것은 미국의 시각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 것이 결국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저격으로 나타났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월간조선의 조갑제 편집장은 다른 주장을 한다.
'10·26사건과 핵개발과의 관계에 대해서 취재를 상당히 많이 했는데 제가 내린 결론은 관계가 없다는 거다. 더구나 핵무기 개발을 시도하기 때문에 박대통령을 저격했다는 것은 소설적인 상상력에 불과하다 는 결론을 내렸다.
핵개발에 관련했던 과학자들은 한결같이 소설<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허구성을 이야기하면서 '이휘소'는 상관없는 인물이라는 말을 한다. 이휘소와 경기고 동창이었던 당시 경제2수석실의 김광모비서관은 '물리학자로 노벨상도 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핵개발과는 상관없고, 박대통령은 만난 적도 없다'고 말한다.

▲'프레이저 보고서'의 진실 확인!

'압록강까지 가는 미사일과 원자탄을 개발하라'

미 하원 <프레이저 보고서>에는 닉슨 독트린 이후 한국은 70년말 국방과학연구소와 함께 비밀리에 무기 개발위원회를 만들었고, 무기개발위원회에서 핵무기 개발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는 증언이 나와있다.
당시 무기 개발위원회의 일원이었던 유재흥 전 국방장관의 증언으로 이것이 사실임이 밝혀졌다.

'그 당시 박대통령께서는 두 가지를 강조하고 계셨다. 하나는 국방부는 속히 압록강까지 갈 수 있는 미사일을 개발해라. 두번째는 우리도 원자탄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이 두 분야에 대해서는 모든 능력을 총동원하고 한번 해보라. 그러고 뒷받침 재정은 내가 책임지고 도와준다. 그렇게해서 대대적으로 시작했다.'

이렇게 설립된 국방과학연구소는 대대적인 인원확충 후 무기 국산화, 한국형 유도탄개발에 착수했고, 과기처 산하의 한국원자력연구소도 핵분야의 권위자였던 주재양 박사를 부소장으로 임명해 해외에서 활약중이던 과학자들을 유치하기 시작했다.
핵무기의 재료인 플루토늄 획득과 그 운반 체인 미사일, 핵개발은 이 두 분야로 나뉘어 은밀히 진행된다.

▲미국의 노골적인 압력 속에서 진행된 기술개발 의지

74년부터 핵개발의 핵심기술 도입을 둘 러싼 미국과 한국의 숨바꼭질이 시작된다.

기술 도입국인 프랑스를 오가며 미국의 눈을 피하기 위해 과학자가 중요 코드가 적힌 릴테입을 은박지로 싸서 직접 배낭에 메고 다니는가 하면, 서 류가 오갈땐 외교행낭을 이용하기도 했다. (당시 원자력연구소 연구실장이었던 김철 박사 증언 )
이러한 한국의 핵개발을 막기 위해 미국은 주한 미 대사관과 미 국무성 사이에 전문을 주고받으면서 대책을 강구, 한국 정부의 요인들을 만나 설득하는 한편 한국의 기술도입선인 프랑스, 캐나다등에 압력을 넣어 계약을 무산시키기까지 했다. (98년 해제된 미국 비밀전문 중에서)
결국 미 교섭단과의 협상에서 승복하게 되고, 그후 미국의 감시는 더욱 심해진다. 미 대사관에 로버트 스텔라라는 과학무관이 상주하면서 수시로 원자력연구소를 드나들며 감시를 하게된다.

'내가 갈테니까 그 시설을 전부다 열어놔라, 이런 통보를 하는거다. 그리고 오는거다. 다음번에 당신이 오면 화장실 안을, 여자 화장실까지 다 보여줄 테니까 그렇게 작심하고 오라고 하도 불쾌해가지고'. (김철 박사 증언)

그러나 이러한 노골적인 감시와 압력에도 불구하고 79년 10·26 직전까지 대체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조금씩 핵개발을 진행시켰다.

▲박정희 핵개발의 참뜻은?

과연 박정희 정권은 왜 핵개발을 하려고 했을까?

일반적으로는 자주국방을 위한 반미 민족주의의 발로라고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러한 의견에 반론도 있었다. 당시 안보에 위협을 가했던 미군 철수에 대비하기 위한 핵개발이었다는 주장에 대해, 당시 주미 한국대사관 공보관이었던 이재현은 '철군이 아니고 감축이었고, 당시 한국 방위상 위협이 안되는 것이었다. 박정희는 영구집권 욕심으로 이를 이용한 것'이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가톨릭대 이삼성 교수는 '박정희 정권의 핵무기 개발은 국민의 의사를 무시한, 남북한 간의 평화라는 민족 적인 가치를 유린하면서 진행된 것이었다.' 라고 말한다.


미국은 76년 1월 박정희 (朴正熙) 의 핵개발을 중지시키기 위해 국무부 관리들을 보냈다. 마이 런 크러처 해양.국제환경.과학담당 차관보서리를 단장으로 한 교섭단 일행은 1월22~23일 주한 미 대사관 에서 최형섭 (崔亨燮.77.포항산업과학연구원 고문) 과기처장관을 대표로 한 우리측 관계자들과 협상을 벌였다.
미국측은 크러처. 대니얼 오다너휴 국무부 한국담당과장.폴 클리블 랜드 미 대사관 정치담당참사관등이, 한국 측에서는 최형섭장관.윤용구 (尹容九.69. 동원공전 학장) 원자력연구소장.이병휘 (李炳暉.67. 신형爐연구 센터 소장) 과기처 원자력국장등이 참석 했다.

말이 협상이지 미국측은 우리를 범죄자 다루 듯했다. '미국측은 재처리의 '재' 자도 꺼내지 못하게 강압적으로 나왔어요. 말을 안들을 경우 고리 원자력발전소 에 대한 핵연료 공급을 중단하고, 심지어 핵우산도 철거하겠다고 거의 협박조로 나왔지요. 尹소장과 李국장 이'너희는 양반 노릇만 하고 우리는 밤낮 너희 밑에서 짐꾼 역할만 하라는 거냐' 고 미국측에 따졌어요. 두 사람은 미국에서 공부한 터라 미국 관리들을 별로 어려워하지 않았습니다. ' (최형섭)

그러나 미국측의 태도는 완강했다. 크러처 일행은 회담에 앞서 朴대통령을 만나 '강행시 군사원조 중단' 방침을 통고한 상태였다. 朴대통령은 崔장관을 불렀다.

'崔박사, 이제 고집 꺾고 재처리 그만둡시다. 미국이 다 책임지겠대요.'

미국의 위협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 프랑스로부터의 재처리시설 도입을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핵개발을 감시하기 위해 주한 미 대사관에 과학관을 파견키로 했다. 캐나다에서 연구용 원자로를 도입하려는 계획도 취소됐다.

그러나 박정희는 핵개발을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군사원조 중단 통고 76년 1월말 미국의 엄중한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재처리사업은 '화학처리 대체사업' (일명 핵연료 국산화사업) 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연구용 원자로는 자체 개발키로 결정됐다. 대체사업 전담기구도 76년 12월 핵연료개발공단으로 탈바꿈했다. 공단의 초대 소장엔 특수사업담당부서 책임자 주재양 (朱載陽.64.재미) 박사가 임명됐다.
원자력 연구소에서 특수사업담당부서만 따로 떼어내 핵연료개발공단을 만든 셈이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대덕(대전시)에 개발공단을 세우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체사 업은 우라늄 정련 (精鍊).전환시설, 핵연료가공시설, 조사 (照射) 후 시험시설, 방사성 폐기물 처리 시설등을 들여와 재처리의 핵심시설을 갖추려는 것이었다. 일종의 짜깁기식으로 재처리시 설을 확보하자는 계획이었다.

당시 핵연료개발공단 개발제2연구부장으로 실무책임을 맡았던 김철 (金哲.59.아주대 대학원장) 박사의 증언.
'무엇을 어떻게 사야 할지 모르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지요. 각 시설에 필요한 품목들을 겨우 알아내 기기(器機)들을 따로 구입, 조립해보니 서로 규격이 맞지 않아 난처했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미국은 특히 재처리의 핵심 부분과 비슷한 조사후 시험시설과 방사성 폐기물 처리시설 도입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일일이 간섭했어요.'
美관리 수시로 공단방문 미국의 감시는 집요했다.
공단 관계자들이 국내에 매장된 우라늄을 캐내 핵연료로 가공하는 것이 대체사업 이라고 둘러댔지만 미국측은 믿지 않았다.
주한 미 대사관에 파견된 로버트 스텔러라는 과학관은 대체사업의 내용을 알아내려고 불시에 개발공단을 찾아오곤 했다.

金박사의 계속되는 증언.
'이 친구는 미중앙정보국 (CIA) 요원으로서 원자력 관계 훈련을 받고 한국에 파견됐어요. 사전에 전화도 없이 불시에 달려오곤 했어요. 승용차에 성조기를 펄럭이며 나타날 때는 정말 위세등등했습니다. 소장방에 들러 인사하는 법도 없었어요. 아무 방이나 문열라고 하고 시설 측정도 제멋대로 했어요.화가나 여자화장실 문을 열어 조사하라고 한적도 있습니다.이게 우리의 위상인가 싶어 서글픈 생각도 들고, 자존심이 상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각종 시설들을 제공하는 프랑스측에도 핵개발 사실을 숨겨야 했다. 그러자니 핵심 기기들에 대한 설계를 요청할 때마다 프랑스측과 자주 실강이를 벌여야 했다.

대체사업의 핵심시설인 조사후 시험시설의 도입 책임을 맡았던 박원구 (朴元玖.65.인하대 금속공학과 교 수) 공단 핵연료개발부장의 증언.
'조사후 시험시설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게 핫셀 (방사능 차폐시설) 이에요. 강도가 센콘크리트로 핫셀의 두 께를 1m로 하면 고준위 방사능을 차폐시킬 수 있어 재처리시설로 쓸 수 있었어요. 프랑스 회사 상고방이 눈치채고 핫셀의 두께를 80㎝ 이하로 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더군요. 그래서 보통 콘크리트 1m로 설계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실제로 건설할 때는 강도가 센 콘크리트를 쓸 작정이었지요. '

한편 연구용 원자로 (NRX) 개발사업은 김동훈 (金東勳.66.전 다목적연구로사업단장) 박사가 이끄는 원자력 연구소 장치개발부가 맡았다.
이 사업 역시 미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사업명칭을 처음엔 'TFTF (열중성 자 시험시설)' 사업으로 위장했다가 나중엔 '기기장치 개발사업' 으로 바꿨다.
그의 증언. '약 30명이 이 사업에 참여했어요. 지원이 필요할 때는 원자력연구소 각 부서에 부문별로 프로젝트를 맡겨 해결하곤 했습니다. 설계.기술자료등은 73년부터 캐나다와 연구용 원자로 도입 교섭을 벌일 때 이미 상당수 확보한 상태였지요. 또 대만 (臺灣)에서 많은 자료들을 얻어오기도 했지요.'

이번에 취재팀이 단독 입수한 '원자력 이용개발 제4차 5개년계획' (과기처.78년2월)과 한국핵연료 개발공단의 '사업계획서 (77~80년)' 등 관련자료들에 따르면
대체사업은 당초 81년 까지 완료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방해와 프랑스로부터의 시설 도입이 늦어지면서 83년으로 목표가 수정됐다.
또 윤용구 원자력연구소장이 77년2월 원자력위원회에 제출한 '원자력연구개발 기본방안'에 따르면 '기기장 치 개발사업' 은 78년까지 설계를 끝내고 79~81년엔 연구용 원자로를 건설하는 것으로 계획이 잡혀 있었다.
김동훈 박사는 '朴대통령이 사망한 79년 10월엔 설계가 모두 끝난 상태였다'며 '연구로 개발사업은 계획보다 약간 늦어지긴 했지만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고 말했다.

78년 10월 핵연료가공시설이 준공됐다. 이날 핵연료개발공단에 이르는 비포장도로에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검은 세단 20여대가 갑자기 나타났다. 朴대통 령 일행이었다.
윤석호 (尹錫昊.68.전 충남대 교수) 개발공단 건설본부장은 '朴대통령이 그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본적이 없었다' 며 '과학자들의 손을 일일이 어루만지며 격려했다'고 말했다.

79년 5월에는 우라늄 정련.전환공장 기공식이 거행됐다. 대체사업이 예정대로 진행되자 미국측은 긴장했다.
윤용구박사는 '이 무렵 미국측은 우리가 대체사업을 통해 핵개발을 계속해온 것을 알아차린 것같다' 고 말했다. 박정희가 살아 있었다면 85년께엔 핵폭탄 제조에 필요한 플루토늄을 확보할 수 있었으며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었다는게 당시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그해 10월 박정희는 핵심 측근 김재규 (金載圭.사형.당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제거됐다. 박정희의 죽음 뒤에 미국이 있었을 것이라는 소문이 끊임없이 나돈 것은 핵개발을 둘러싼 미국과의 갈등 때문이었다.

10·26 美 관련說 꼬리물어 79년 12.12 쿠데타로 등장한 전두환 (全斗煥.66) 정권은 핵개발을 포기했다.
신군부는 81년 1월 핵연료개발 공단을 원자력연구소와 통합,에너지연구소로 이름을 바꾸고 핵개발에 관한 연구는 물론 원자력이란 용어조차 사용치 못하게 했다. 과학 자들은 폐기물처리시설 부지 선정등 '허드렛일' 로 내몰렸고 핵심 관계자들은 쫓겨났다. 미국으로부터 쿠데타의 정당성을 추인받기 위한 조치였다.

91년 11월 노태우(盧泰愚.65)대통령은 '핵연료 재처리시설과 핵농축 시설을 보유하지 않는다' 는 '한반도 비핵화선언' 을 발표함으로써 사실상 핵주권마저 포기했다.

일본이 67년 핵의 제조.보유.반입 금지라는 '비핵 3원칙' 을 선언하는 대가로 농축과 재처리시설, 대량의 플루토늄까지 소유할 수 있게 된 반면 아무 대가도 없는 우리의 핵주권 포기는 허망하기 그지없었다. 핵무기 보유에 대해서는 찬반 양론이 있을 수 있다.
박정희는 핵개발 사실을 미국측에 흘림으로써 주한미군의 완전철수를 막는등 유용한 대미(對美) 협상카드로 활용한 것만은 틀림없다.
아무튼 박정희의 죽음으로 핵무기 보유는 미완의 사업으로 역사 속에 묻혔다.

아~~~~ 아쉽다..^^;;

이 기사는 MBC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출처 : 미스테리 네모 카페


[이 게시물은 선장님에 의해 2014-02-02 11:21:16 미스테리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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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윤식님의 댓글

김윤식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사실 미국이 박정희 죽였다는것은 왠만한 사람들 다압니다. 박정희가 자기나라 무기안사고 자주국방 거기다 핵까지 개발하려고 하자 위험인물로 간주한거죠. 그런데 박정희가 핵개발한다는 사실을 어케알았을까요??? 그당시 청와대에 도청당치 되있던거 아십니까??? 지금도 있을진 모르겟지만 그당시 우리나라 미국에게 엄청 감시당햇죠 아마 도청장치로 핵개발의사를 듣고 김재규를 꼬신거죠 미국인이 죽이면 의심받으니.. 그리고 김재규가 재판당시 내 뒤에는 미국이 있다 라고 말햇죠. 그말에 재판을 미뤄야 햇고요. 사실 김재규가 바보입니까?? 대놓고 죽이고 잡히게 ㅡㅡ;그것도 우리나라의 2인자엿는데... 대놓고 죽인것은 믿는 구석이 있다는 거죠 그리고 이휘소 박사가 암살당햇을때 새벽 2시에 산책하다가 불량배한테 죽엇다 ... 말이되나요 ㅡㅡ; 새벽두시에 어떤 병x가 산책을해 ㅡㅡ; 그리고 불량배가 돈만 빼슴되지 왜죽여 ㅡㅡ; 지금까지 조사 못하고 있는 이런 사실들..... 우리나라는 미국의 동맹국이 아니고 위성국가 나 마찬가지엿고.... 박정희 죽은디 그간 개발하던 핵과 무기등은 전두환이 집권하면서 정당성을 인정받기위해 미국에 넘김니다. 그리고 핵개발 자료등은 사라지고 박정희 암살,이휘소박사 암살등은 조사금지를 내리고 지금도 안하고 있음니다. 이게 울나라 현실입니다. 우리나라가 그때 개발햇으면 인도보다 먼저 개발햇다는 거죠... 쪽팔리게 인도도 핵있는데 우리가 핵업고.... 북한이건 미국이건 일본이건 중국이건 .... 정말 우리주위 나라는 다 강국에 짱나게 하는 국가들 밖에..

서홍룡님의 댓글

김윤식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이휘소 박사는 교통사고로 죽은거 아닌가요?? 옛날에 호기심 천국에 나온것 같은데..... 반대편 차선과 거리가 상당한데 반대쪽으로 가는 트레일러가 박았다는....
그리고 인도가 핵개발한 이유는 파키스탄과의 분쟁 때문입니다... 종교 분쟁과 카슈미르 때문에 분쟁이 많아서..... 후진국 중에 핵을 보유한 나라는 인도,파키스탄 딱 두나라 뿐입니다... 종교분쟁이 정말 무섭죠.....

선장님의 댓글

김윤식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중국무림발견 님...핵무기 개발이 없었던것은 전혀 쪽팔린것이 아니랍니다.
단지 핵때문에...독재자를 드높히는것은 그다지....

서재옥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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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핵 개발했으면 당시 우리보다 잘 살았던 북한도 핵개발 했을테고
휴전상태인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시한폭탄이 대는거죠 당연히 미국이나 일본 중국
은 못마땅할태니 남한의 핵개발을 중지하라고 했을테죠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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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 등 5대 핵무기국은 이미 핵을 엄청나게 보유하고 있었고 그들은 다른나라가 핵을 가지는 것을 두려워 햇죠 힘도 업는나라도 핵이 있으면 건들기가 힘드니까요. 그래서 핵무기를 지내 말고는 못만들게 하는 조약을 체결하죠. 일본 우리나라 등 뜨고있는 나라들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와 파키스탄은 어케만들었는지.... 그리고 브라질도 하나 보유햇다던데..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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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박정희 독재자지만 지금까지 중에 젤 존경스러운 대통령입니다. 그사람없으면 이만큼이나 살것 같습니까>>>???? 북한 경제 역전부터 1만달러까지 박정희가 이룩한 겁니다. 박정희 끝나고 나중에 김영삼놈은 imf까지 터뜨렸잔소... 박정희가 비록 독재자엿지만 정치는 잘햇소. 프랑스의 드골처럼 말이오,, 민주주의운동한 김대중 김영삼 잘한게 업잔소 사실... 독재자라고 욕만하지말고 현실을 보시오. 물론 근로자 문제... 그거 큰문제엿죠.. 하지만 산업화과정에 있는일입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도 다 겪은일입니다. 우리나라는 그나마 그런나라들 보다 빨리 끝낫다는게 의미있소.....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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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우리가 안타까워해야할 것은 독재자든 모든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암살당하고 최고의 과학자가 ㅇㅏㅁ살당햇는데 범인을 잡으수가 없고 짐작이되더라도 어케할수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워야 하오

권난초님의 댓글

김윤식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무림님 만약 박정희 독재 시절 당신의 가족이 이유없는 죽음을 당했다면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겠습니다까
무림님에게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요..?
독재자 였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끌 수 있었던ㄱ것입니다. 반항하면 아무도 모르게 잡아가니까 아무말 없이 그대로 따른것입니다.

김윤식님의 댓글

김윤식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전두환이도 아니고 박정희가 그랬다는말은 들어본적도 업군요. 박정희가 이유업이 사람죽인 사건 무슨사건입니까?? 말해보시죠 전두환처럼 광주사람이라도 죽였답니까?? 그리고 박정희가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이 된것은 나만의 의견이 아니라 여론조사로 나온것입니다. !! 독재자라고 무저껀 후세인이나 전두환 같은지 아십니까./. 샤를드골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좀 알고 말하세요

문선철님의 댓글

김윤식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무림님 전 갠적으로 박 대통령 때문에 우리가 먹고 살만해 졌다는 말에 동의 할수가 업네요.. 만일 그 사람 아니었으면 지금 우리나라가 세계 제일의 국가가 되었을수도 있다고 전제 한다면 무슨 근거로 반론 하시겠읍니까.그 사람때문에 우리나라가 이정도 밖에 못왔다면요...
제가 보기엔 우리나라가 그 당시 그 만큼 경제가 발전할 수 있었던건 많은 주위 여건이 있었지 단지 그사람
때문이다고 보진 않읍니다. 지금 무섭게 발전 하고 있는 중국의 경제를 보면 당시 우리의 상황(정치)과 다를게 업다고 봅니다. 말로만 민주주의 국가지 지금의 중국 공산당과 머가 다릅니까..? 당시 야당은 있으나 마나였져.  우리나라의 박대통령 같은 사람이 없어도 경제가 그만큼 발전할 수있다는 말씀을 드릴려고 글이 길어 졌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많은 인사들이 간첩으로 몰려 사형 당했읍니다. 자세한건 조금만 알아 보시면 됩니다.

김민정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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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발전을 위해서 미국의 강압을 버린 대통령은 박통밖에 없습니다....
미국에서 쓰레기 처분할 무기를 한국에 갖다 팝니다.. 박통이라면 그걸 샀을까요?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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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rodmsc말대로 라면 민주주의 국가의 대표격인 프랑스도 공산주의 국가군요.... 독재와 공산을 같이보시나요??? 박대통령은 우리나의 자주국방을 위해 힘쓴사람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미국꺼 쓰다가 이제야 자주국방할라는데 박통은 전부터 하고있었다. 박정희대통통아니어도 세계 제일국가가 될수있다??? 그당시 우리나라는 인도를 제외하고는 제일 못사는 나라였다. 박정희대통령은 우리나라를 위해서 세계에 돈빌리러 갔는데 빌려주는 나라가 하나도 없었다. 미국 케네디 대통령은 쿠데타정권은 인정못한다는 이유로 박정희대통령을 만나주지도 않았다. 우리나라의 청와대직원들과 박대통령은 울면서 돌아갈수 밖에 없었고 마지막으로 그당시 우리나라와 함께 분단국가였던 독일에 갔다. 거기서 독일이 돈을빌려졌는데 박대통령을 죄인처럼 말하는 사람을 위해서 써주기도 귀찮네 박정희대통령의 눈물이라고 검색어 처보셈 그거 보시고 말하시죠 그분이 얼마나 나라를 위해 일했는지. 박대통령이 전두환따위와 같은줄 아나?? 독재자라도 드골급이 있고 스탈린급이 있는것입을 모르는군...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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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그리고 우리나라가 발전할 요건이라니?? 첨듣네 에티오피아 보다 못살던 우리나라가 무슨여건??? 미국도 원조 중지하고 돈도 안빌려주는 판이었는데 하여간 박정희 대통령의 눈물이라고 쳐보시오 눈시울 뜨거워짐 그리고 그당시 살았던 할아버지 아버지들은 다 그분 칭찬하시는데 겪어보지도 않고서 참... 그분들 말이 지금 통령이 박정희정도만 되도 소원이 없겠담니다.

이승준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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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적인 부분만 짚겠습니다. 경제학 교수님한테 들었던 사실인데...박정희 대통령(이하 박대통령)이 60년대 경제부흥을 일으킨 것은 사실입니다. 가발 팔아서 우리나라 먹고살만해졌죠...60년대만 해도 경공업으로 꽤나 재미를 보았었습다. 이 부분에 대해선 누구도 이의가 없겠죠. 그러나 70년대에 무리한 중공업에 대한 확장으로 70년대 중후반 분명 문제가 많았다고 합니다. 경공업이야 기반없이 할 수 있는 사업이었지만 중공업은 기반산업이 다 이뤄진 후에 발전되는것이니까요. 일단 자본에서도 외채를 많이 끌었고...정경유착도 이때 가장 심했다고 볼 수 있겠죠. 아무튼 암살직전에 박대통령도 문제를 깨닫고 경제정책에 변화를 주려고 했었다고 하더군요. 그 후에 전두환이 집권하면서 경제정책을 180도 바꿔서 안무너지고 계속 유지 할 수 있었다고... 당시 박대통령이 개인적으로 과외받던 경제학 교수님인가 하는 분의 얘기로는요...아무튼 제가 하고 싶은말은 절대적인 영웅은 아니라는 겁니다. 경공업으로 일으킬 수 있는건 꼭 박대통령이 아니라도 가능한 일이고 말년엔 분명 위기도 있었습니다. 오히려 경제학적 관점에선 그 리스크를 넘긴 전두환이 더 대단한 인물이라는 평도 있습니다. 단지 우리나라 이만큼 먹고산건 다 박대통령 덕분이다...라는 말은 좀 어패가 있습니다. 그리고 유신때나...독재정권에 왜 희생자가 없겠습니까...하다못해 실미도도 다 그런것 아닙니까? 생존해 있는 사람에겐 존경받을지 몰라도...그때 희생당한 사람에겐 그 반대겠죠...단점없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무조건적인 존경보다는 인정할건 인정하고 평가하는 자세가 더 중요한것 같네요...

차승현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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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대통령의 자주국방은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서 우선 이야기해야하지 않을까요??
1968.01.21 에 김신조사건과 1968.01.23 에 북한의 미국 푸에블로오호 나포 사건이 일어나죠 ..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과 미국은 북한에 대한 보복을 할려고 하지만 .. 미국은 총공세를 포기하고 2월달에 북한과 비밀리에 협상에 들어가죠..
1969년에 미국이 괌에서 괌독트린을 선포하고..
1970년에 로저스 美 국무장관이 참석한 최규하(崔圭夏) 외무장관에게 "주한미군 2만 명을 철수하겠다"는 정식 통고를 하게되죠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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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이 몰햇다고 대단한사람입니까???? 전두환이 무슨변화를 주엇나요??? 그리고 박정희대통령이 아니오더 경제발전가능한 상황이라고 하셧나요??? 그때가 무슨상황이었는데요?? 에티오피아 보다 못살고 미국도 외면한 나라에서 무슨희망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자주국방한게 잘못이라면 지금 자주국방하는거 못하게 막읍시다. 또 박정희대통령을 가르

선장님의 댓글

김윤식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중국무림발견님
그렇게 감정적으로 나오시지마시고,
우선 박정희가 무엇을 잘했는지부터 말씀해 주시길바랍니다.
이랬다면 이랬을것이다(픽션). 그래서 박정희는 위대하다
이런식의 말이아니라
박정희는 이래서(논픽션) 위대하다
이런식으로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말씀은 길고 강하지만 설득력은 없어요.

선장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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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쓸대없는말 한마디더..

박정희대통령이 경제를 이르켰다
라고.. 치켜세우기전에

부모님들...
특히 여성분들....
어머니
고모님들....
이모님들....
생각먼져 해봅시다...

손이 헐도록...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고...
가발만들고 옷만들고...
서울...평화시장에서 썩어도...그곳에서 죽어도...
남동생하나 오빠하나 라도... 훌륭한사람만들자...
외국으로 나가서...
가족들과 떨어져서....
돈을 벌어온...여성들..

집안을 이르켜세우자...
국가를 이르켜세우자...

60,70년대...그분들의 노력
박정희대통령이 경제를위해 노력했어도...
이분들 아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박정희 대통령이 위대하다면

이분들은
감히 어떻게 표현해야될지 모르겠습니다.


...
누가 돈을벌고
다시 그돈으로 누가성공을해서
국가를 이르켜세웠나요..
여성들의 피입니다....





정치가가 대단하더라고
국민이 썩으면 망합니다.
정치가가 썩더라도
국민이 위대하면
국가는 망하지 않습니다.

이범예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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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살아 보세~~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
이 얼마나 솔직하고 사람들을 고무시키는 단어 입니까...?
박통때 새마을 운동은 그 동안 못 살던 우리들이 일을 할수 잇게 하는 원동력이엇습니다...
그 당시 박통에 맞서서 민주화운동인가 하덩 김 영삼이나 김 대중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 주었습니까..?
우리 민족은 아직까지 완전한 민주화와는 거리가 멀다고 봅니다...국민 의식이 다라가 주질 못해여..
그래서 경제나 정치에는 카리스마가 잇으면서 약간의 독재도 필요 하다고 봅니다..
물론 그 힘을 반대파의 탄합에만 쓰면 안되겟지요....이제 민주화운동이니 노동 운동 하던 사람들이 어떠케 어떠케 해서 정권을 잡앗습니다...
그들이 하는 행동이 그 전하고 뭐가 다릅니까..?
돈이나 받아 먹고...이벤트 정치나 하려 하고...우리나라 참 ~~ㅡ큰일입니다....
나라에 어른이 없어여.....그저 민주화 노동 운동 하던 사람이 최고니....
그러니 집권당 대표라는 사람이 무의식중에 60대 이상은 이제 무대에서 떠날 사람(곡 죽는다는 듯 아닙니까..?)이니 투표할 필요 없이 집에서 쉬어도 된다니... 이걸 말이라고 합니까..?
나이 먹는 것도 서러운데.....유 시민이 같은 위선자가 날뛰고 면 개남이 같은 죽창잡이가 날뛰는 한국에 더 이상 살 생각도 없습니다...
이민 갈려니 나이가 만아 이민도 못가고...
박통.....누가 뭐래도 그분 애국잡니다...이제와서 집권당에서 그분을 친일파니뭐하 하지만 누구보다 나라를 생각 햇다고 생각합니다...(최소한 아누비스님보다는..)
우리나라.....핵 가져야 합니다...그래야 진정한 독립국가로 설수 잇습니다...
진짜 친일파는 김종필 같은 사람이 글타고 할수 잇져....그리고 친일파가 아직은 친북파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잇습니다....

이범예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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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친북 정권이 들어서니 그에 다르는 방송국들이 박 통을 친일파로 몰고 그를 살해한 김재규를 애국열사로 만들 더근요.....
북한노동당원이 송교순가도 안 창호 상을 타질 안나.....(애국열사래요..)
도대체 그러케 해서 김 정일이 헌테 안겨줄 이유가 뭡니까..?
김정일이 팬카페도 생겻다니 .....허~~~참~~(옷도 노동복으로 똑같이 입는다 합니다)
철 모르는 애들 데리구 정치를 하니 그게 이벤트 정치..감성정치 아닙니까..?
이제 옛날 퇴물들 다 떠나 갑니다...
이번 국회에서는 제발 싸우비들 말고 화합의 장치 타협의 정치를 해야 할텐데..
유 시민이 같은 위선자들이 날치니 ...틀렷습니다..내가 보기에는.....

김윤식님의 댓글

김윤식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김재규가 애국지사라니 허허 참... 박정희대통령 그는 미국과 북한 어느 편도 아니고 중립을 추구한 독자적인 분이시죠. 그래서 양쪽이 다 미워한 사람.. 김재규가 미국을 들먹였지만 어쩌면 북한이 시켯을직도 모른다는 생각이 갑자기 드는군요 !!  그런데 친북정권이라면 누구?? 노무현이 친북??? 하는짓보면 친미파 같은데 ㅡㅡ; 선거할때만 이회창은 ㅁㅣ국편 자기는 북한편 햇지 당선되니까 미국으로 바껏잔아요 ㅡ;; 그리고 모 사실 미국이나 북한이나 다 우리에게 암적존재바께 안되는듯...
그리고 아누비스님 박정희 대통령이 위대한점 말해달라고 하셧습니까>>>???  글을 쓰겟지만 감히 한마디 ㅎㅏ는데 아무리 옳은 말도 반발하는 글은 누구나 쓸수 있다는것을 명심하세요
잘한점
1. 에티오피아보다 못사는 우리나라를 위해서 몸서 여러나라들을 돌아다니면서 구걸햇죠. 그래서 전세계 대통령들이 거지대통령이라고 불렀죠. 그리고 미국 케네디에게 엄청난 모욕을 당하고 독일이 우리도와줄려고 할때도 엄청 방해했죠..
2. 알다시피 그당시 우리나라는 농업 북한은 공업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이 아니면 우리나라를 발전시킬수 없다는 생각으로 경공업부터 ㅅㅣ작해서 중공업에 도전했습니다. 중공업은 실패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반도 없는 상태에서 도전을 햇고 그가 기반을 만들어 낫기때문에 중공업 발전이 된거지 생각해보시죠. 누가 감히 도전햇을지.. 그리고 피땀을 흘린 노동자들.... 사실 그건 인정합니다. 당연히 지도자가 잘해도 국민이 안따르면 어쩔수 없죠.. 그때 농민들이 오히려 공업계동에 일하는 사람보다 잘사는 실정 이었죠. 하지만 봅시다 전 세계의 역사를... 영국 산업혁명때 노동자들 다실직하고 노동자들 얼마나 비참햇습니까 안 짤리려고 돈 조금받고 일하고.. 프랑스 미국 ? 다 같았습니다. 그리고 오래갔죠. 산업혁명을 피해없이 이루려는건 욕심이죠.. 성공한나라가 어디가 있습니까??? 아무대도 없습니다. 다 쓰라린 맛을 보앗죠, 그걸 박정희 대통령님 잘못이라고 하면 어의 없음입니다. 감히 말하건데.. 어느누가 대통령이 었어도 산업혁명때 근로자도 잘살고 그렇게 될수 없습니다.
3. 자주국방을 실현한 것이죠.
박정희대통령은 자기가 미국에게 감시당하고 목숨을 위협받으면서도 무기를 ㄱㅐ발했습니다. 무기를 ㅅㅏ는데 비싼돈을 들이느니 차라리 무기를 개발해서 그 무기들을 팔아서 돈벌고 무기살돈으로 경제를 더 살리고 싶었기 때문이죠.알고있습니까??? 청와대에 도청기가 설치되서 감시당하던 그시절을..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자기가 실패하더라도 자기가 이룩한 자료로 어느 누군가는 꼭 성공해서 우리나라가 자주국방이 되기를 바라고 한일입니다. 그리고 믿었던 김재규가 배신할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죠.
더 있겟지만 이정도만 쓸께요..... 반대의견 환영입니다. 하시려면 하세요  존 저의 일방적인 말보다는 진실된 토론을 하고 싶습니다. 제가 아는거와 다른것이 있다면 의견 올려주십쇼. 그리고 제발 박정희대통령의 눈물이라고 인터넷에 쳐서 검색해보요.....    한번쯤은 보셔야 합니다. 우리나라껀 박정희대통령님 추종자들이 많아서 못믿겟다 하시는분 독어하실줄 아시면 독일신문(이름모름) 거기서 쳐보세요 거기도 있습니다.

차승현님의 댓글

김윤식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중국무림발견님 이상한 논리가 있네요 ..
산업혁명때문에 노동자가 피박을 받았다라고요 ... 노동자가 피박을 박은건 근대주의때문입니다...
근대주의란 자유는 천부인권사상이라 국가가 개입을 못하게 법으로 막고 .. 시민(엘리트)들이 횡포가 시작되죠 ....
박대통령도 헌법개정하면서 대통령권한강화, 국회와 법원 권한약화, 기본권 약화를 했죠 ..
그리고 박대통령은 베트남전쟁을 참전하면서 주장한 한가지가 한반도 내 미군을 베트남전쟁에 못가게 막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 미국이 한반도내 미군수를 줄이고 ... 자기는 무시당하고 (베트남전쟁때 우리나라 30만명 파병한거 아시죠 ... 대만과 우리나라만 미국편들어줬습니다.) 하니 자주국방하겠다 미국한테 으름장 놓은거 뿐입니다.

선장님의 댓글

김윤식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중국무림발견님께.
그렇군요.
다시 생각해보니
저는 중국무림발견님보다 정보가
무족합니다.
중국무림발견님이 100의 자료를 가지고 있다면
저는 0.1도 안되는듯한 느낌이군요.
자꾸 제가 글을 올린다면
태클성의 글이 될것같아
빠질랍니다.



그리고 코브라님께
김대중대통령에 대해
제가 한말 하겠는데요.
국내 언론에서 김대중을 너무 씹고 무시했었습니다.
하지만 외국에서 보는 김대중은
정말 훌륭한 대통령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때문에
국가가 잘살게 된것이라면
김대중 대통령때문에
IMF를 극복하고 경제가 어느정도 회복되었다는것 입니다.
그리고 핵을 가져야 하는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까?
저는 반핵주의자라서
자주국방때문에 핵이 필요하다
라는말이 쉽게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군요.

박통.....누가 뭐래도 그분 애국잡니다...이제와서 집권당에서 그분을 친일파니뭐하 하지만 누구보다 나라를 생각 햇다고 생각합니다...(최소한 아누비스님보다는..)

이거 정말 기분나쁜글입니다.

제가 "나는 박통보다 애국자다." 이런말을 했습니까?
"박통은 매국노다." 이런말을 했습니까?
왜 엄한곳에다가 저를 갖다 붙히십니까?

김윤식님의 댓글

김윤식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아누비스님 제송합니다... 님이 글올려주셔서 저도 다시한번 생각해볼수있는 계기가 되었는데..앞으로도 제가 글올린거중 틀린거 있으면 말좀해주세요
그리고 mana님 노동자 핍박은 근대주의가 아니고 자유방임주의 때문이죠.. 정부가 회사일에 껴들지 말라는 그 산업혁명때 성행하던 제도 말입니다. 그리고 박대통령께서 베트남 파병을 한것은 미국으로 부터 무기원조 약속을 받았기

선장님의 댓글

김윤식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전두환은 너무 귀여운 사람이에요. 어떻게 그런 앙칼진 짓을...
이제 재산이 100억29만원으로 늘었다는데...
이런걸 대박인생 이라고 하나?

김윤식님의 댓글

김윤식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크흐흐 맞는말 전두환 넘 귀여움 전재산 3만원이라면서 고물상에서 자동차하나 끌고 오드만 알고보니 미국에 백억있고 친척들한테 100억있고 ㅡㅡ;; 넘 귀여븜

김정근님의 댓글

김윤식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우리나라가 핵을 발견했다면........ 지금 이렇게 미국에게 꿀려살진 않았을꺼 같은데........ 그렇다고 해서 핵이 좋다는건 ㅇㅏ니궁

홍재선님의 댓글

김윤식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박정희 대통령을 폄하하는 발언들은 좀 삼가합시다
누가 뭐래도 그분은 우리 국민들에게 존경 받을만한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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