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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제국’ 꿈꾸는 부시家의 세계 패권 전략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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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트루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댓글 0건 조회 1,235회 작성일 03-03-24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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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리포트]‘영원한 제국’ 꿈꾸는 부시家의 세계 패권 전략


“MD로 주변강국 무장해제후 에너지로 지배”

임종태 다큐멘터리스트


9·11 테러를 계기로 아프간을 침공, 중앙아시아의 에너지를 확보하는 데 성공한 부시는 9·11 테러 1주년을 기념해 후세인 제거를 핑계로 이라크 침공에 들어감으로써 중동 지역의 원유 확보를 눈앞에 두고 있다. 또한 9·11 테러 2주년이 되면 김정일 제거를 공언하며 본격적인 대북 압박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 모든 작업이 순탄히 이뤄진다면 2004년 미 대선에서 부시는 무난히 재선에 성공하고 부시家의 ‘영원한 제국’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부시家가 꿈꾸는 세계 패권 전략의 전모를 들어봤다.





“ 부시의 재선을 막기 위해 불출마하겠다.”
한반도 전체가 대선 열기로 후끈 달아오르던 2002년 12월15일, 2004년 미 대선에서 조지 W. 부시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주목받던 앨 고어가 CBS의 대표적 시사 프로그램 ‘60분’에 출연해 내뱉은 말이다. 이날 저녁 그는 “개인적으로는 재도전을 위한 에너지와 추진력, 야망을 갖고 있지만 내가 갈 길은 아닌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현 정부가 취하고 있는 정책은 바뀌어야 하고, 현 정부를 종식시키는 데 기여하고 싶다”며 전격적으로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물론 고어는 이미 언론을 통해 크리스마스 이후에 2004년 대선에 자신이 출마할지 여부를 밝히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2004년 대선에서 정치적 명망가 출신인 그의 출마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던 미국의 언론과 국민들에게 예정을 앞당긴 그의 갑작스러운 불출마 선언은 상당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면 2004년 대선에서 부시의 강력한 라이벌이자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인 고어가 자신의 평생의 꿈인 대통령 출마를 포기하면서까지 부시의 재선을 저지하려는 까닭은 대체 무엇일까.

앨 고어와 조지 W. 부시의 악연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고어의 불출마 선언 당시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고어가 당내 대선 후보 경선에서 사퇴해 새롭고 보다 카리스마가 있는 지도자를 뽑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기를 기대해 왔다”고 한다. 실제로 당내 일각에서는 고어가 지난 2000년 미 대선에서 클린턴 정권의 경제 호황과 8년 간의 민주당 집권이라는 역대 어느 후보보다 좋은 조건 속에서 출마했으면서도 ‘놈팽이’로 알려진 부시에게 패배의 쓴잔을 마셔야만 했던 점을 비판해 왔다. 그것도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테네시주에서조차 패배하면서까지.

하지만 지난 2000년 대선은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부정부패로 얼룩진 선거였다. 부시보다 50만표 가량 앞선 것으로 알려진 고어가 대통령 당선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미 헌정 사상 초유의 재검표 사태를 불러온 플로리다주에서의 선거 패배 때문이었다. 게다가 플로리다주는 고어의 경쟁자인 조지 부시의 동생 젭(Jeb) 부시가 주지사로 있는 지역이었다. 더군다나 플로리다주 재검표 결과는 부시 정권이 들어선 지 벌써 2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상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대선 패배의 충격 으로 근 1년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던 고어가 정치활동을 재개하자 이번에는 9·11 테러가 발생하였다. 여기에 부시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가 이루어지는 2002년, 부시는 9·11 테러 1주년을 기념해 후세인 제거를 천명하며 전쟁 분위기를 조성해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에 완승을 거뒀다. 그 결과 고어의 불출마 선언 당시 부시는 2004년 대선 가상 여론조사에서 60%대의 지지율을 보이며 고어보다 20%포인트 가량 앞섰고, 이것이 고어로 하여금 2004년 대선에 불출마하도록 만든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현재 이라크 침공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부시가 후세인을 축출하고 나면 아마도 9·11 테러 2주년 기념 카니발의 희생양은 김정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 후세인에 이어 김정일마저 권좌에서 물러나게 할 수만 있다면 이를 빌미로 2004년 대선에서 손쉽게 재선돼 지난 2000년 대선에서의 불명예를 말끔히 지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4년 재선을 노리는 부시의 최종 타깃이 단순히 부정투표로 얼룩진 지난 2000년 대선에 대한 면죄부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면 2004년 재선을 통해 부시가 노리는 최종 타깃은 무엇일까.

걸프전에서 승리한 부시의 신세계 패권 전략

지난 1991년 1월16일, UN의 다국적군과 함께 이라크 공습을 감행한 조지 부시는 이라크로부터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작전명 ‘사막의 폭풍’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중동 사막에 거센 ‘팍스 아메리카나’의 폭풍을 일으키며…. 그리고 보무도 당당하게 귀환한 걸프전 참전 미군들은 국민들의 열광적인 환호 속에 카퍼레이드를 펼쳤다. 이로 인해 걸프전 참전 69만명 가운데 7만명이 세균에 감염된 것으로 알려진 ‘걸프전 증후군’ 등 참전 병사들의 후유증은 승리에 도취된 미국민의 환호 속에 파묻혀야만 했다.

실제로 걸프전 참전 미군들의 퍼레이드가 끝난 후, 조지 부시는 91%라는 폭발적 지지율을 기록했다. 이 같은 지지에 힘입어 부시는, 옛소련 연방 붕괴 후 세계 유일의 패권국가로 떠오른 미국의 신세계 패권 전략을 구상하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나온 것이 다름 아닌 ‘폴 월포위츠 독트린’이다. 조지 부시 주니어 정권 이후, 흔히 ‘부시 독트린’으로 불리는 이 정책은 사실은 10여 년 전 그의 부친인 조지 부시 시니어의 요구로 현 미 국방부 부장관인 폴 월포위츠(Paul Wolfwitz)가 작성한 신보수주의 이데올로기다.

당시 월포위츠는 소련 연방이 해체된 상황에서 향후 미국 중심의 세계 패권 구도와 관련해 두 가지 잠재적 위협에 대해 준비해 왔다. 하나는 러시아나 중국·독일·프랑스·일본 등 역사적으로나 혹은 머지 않은 미래에 미국과 라이벌이 될 가능성이 있는 잠재적 경쟁 국가였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향후 5~10년 안에 핵이나 기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함으로써 미국의 패권 전략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있는 국가들, 예컨대 이라크·이란·북한·리비아 등 소위 ‘불량국가’(rogue state)들이었다.

먼저 잠재적 경쟁국가에 대한 해결 방안으로 월포위츠가 내세운 것은 ‘reassurance’ 정책이었다. ‘reassurance’ 정책은 전 세계 분쟁 지역에 배치된 미군의 항구적 주둔을 통해 세계 경찰 국가를 자처함으로써,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의 군사력을 무력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안전 보장을 미끼로 잠재적 경쟁 국가들을 점차 무장해제시켜 나감으로써 미국의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과거 미국의 핵우산 정책이나 조지 W. 부시 정권 들어 새롭게 등장한 미사일방어(MD)는 이 같은 정책의 대표적 사례로, 일본은 그 전형적인 수혜자였다.

둘째, 미국의 일방주의에 저항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새롭게 ‘예방전쟁’(preventive war) 정책을 수립했다. preventive war 정책이란 향후 5~10년 이내에 미국의 패권 전략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있는 국가들을 미리 ‘불량국가’(rogue state)로 지목하고, 예방 차원에서 그 위험성을 사전에 제거하는 것을 말한다. 부시 정권 들어 조만간 핵과 대량상살무기를 보유할 가능성이 높은 이란·이라크·북한을 3대 ‘악의 축’으로 몰아가고, 아프간 침공에 이어 현재 이라크 침공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미국의 행태는 그 전형적인 모습이라 하겠다.

1992 대선에서 명암 엇갈린 부시와 클린턴

하지만 세계 유일의 패권 국가를 꿈꾸던 조지 부시의 꿈은 지난 1992년 대선에서의 실패로 좌절되고 만다. 그와 더불어 미국의 신세계 패권 전략을 담은 ‘폴 월포위츠 독트린’은 폐기되는 듯했다. 걸프전 직후 91%의 지지율을 보이던 부시는 불과 1년 후인 1992년 대선에서 겨우 40대의 애송이였던 클린턴에게 예상치 못한 패배를 당하고 만 것이다. 그것도 미국에서 가장 작은 주인 아칸소 주지사 출신의 ‘풋내기’에게.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부통령, 대통령직을 역임하는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부시로서는 커다란 수치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상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칸소 주지사 출신의 풋내기 클린턴은 세련된 매너와 국제적 감각을 바탕으로 정보통신(IT) 세력을 새롭게 창출하며 정보화 시대를 주도함으로써 1996년 재선에 무난히 성공한 것이다. 조지 부시가 록펠러 계열의 석유산업과 군산복합체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면, 클린턴은 유대인이 장악한 월가 금융 마피아의 지지 속에 새롭게 미국의 주류로 떠오른 IT 세력과 강한 연대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1996년 대선 당시 클린턴의 러닝 메이트인 앨 고어는 ‘정보고속도로’를 주창한 IT 신봉자였다.

클린턴 정권이 들어설 때만 해도 굴뚝산업의 활력소 정도로만 여기던 IT 세력이 1996년 대선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자 부시를 비롯한 공화당의 위기의식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MS의 빌게이츠’로 상징되는 IT 세력은 어느새 굴뚝 산업을 제치고 무서운 속도로 미국 사회의 주류를 형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친 민주당 성향인 이들 IT 세력을 향후 공화당 세력으로 끌어들일 수 없다면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공화당은 자신의 존립 기반 자체를 상실할지 모르는 위기 상황이었다. 더구나 2000년 대선의 민주당 후보는 ‘IT 전도사’로 알려진 앨 고어였다.

지난 2000년 대선이 미 선거 사상 초유의 재검표 사태를 초래할 정도로 부정투표로 얼룩진 이면에는 이처럼 군산복합체와 석유산업을 지지 기반으로 하는 공화당과 부시 일가의 절박한 위기감이 있었다. 클린턴 때문에 자신의 꿈을 접어야만 했던 조지 부시 시니어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자신의 아들을 통해 부활을 노린 것이다. 자신의 핵심 참모인 제임스 베이커와 딕 체니(Dick Cheney)·도널드 럼스펠드(Donald H. Rumsfeldt)에게 아들 선거캠프의 진두지휘를 맡긴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IT 세력을 공화당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부시 캠프가 내놓은 카드는 지난 2000년 미 대선에서 주요 이슈로 부상한 국가미사일방어(NMD) 시스템이었다. 조지 부시는 지난 1998년 북한이 발사한 대포동1호를 핑계로 유권자들에게 NMD의 필요성을 역설함으로써 기존의 군산복합체에 IT 기술을 접목시키려 했던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그것을 현실화시키는 것이었다. 고어보다 50만표 가량 뒤진 것으로 알려진 조지 부시 주니어가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이면에는 이처럼 군산복합체의 지원을 받는 부시 일가와 공화당의 목숨을 건 도박이 있었다.


부시 정권의 등장과 9·11 테러

대통령으로 취임하자마자 부시는 자신의 본업인 NMD 세일즈를 자처하고 나섰다. 물론 그것은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해빙 무드를 맞고 있던 한반도에는 치명적인 위협이었다. 부시의 NMD 세일즈의 첫 외교 무대는 오키나와에서의 G7 정상회담이었다. 하지만 G7 회담은 애송이 부시에게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푸틴은 부시가 NMD를 주장하는 근거를 제거하기 위한 방편으로 G7 회담 직전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로부터 “당분간 장거리 미사일 개발 계획이 없다”는 약속을 받아냄으로써 부시를 웃음거리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G7 회담에서의 쇼크가 채 가시기도 전에 부시는 다시 한번 푸틴으로부터 결정적인 카운터 펀치를 맞게 된다. 2001년 2월말, 한국을 방문한 푸틴이 DJ로부터 NMD의 걸림돌인 ABM 조약 지지 선언을 이끌어낸 것이다. 그런 까닭에 부시는 DJ의 ABM 지지 표명을 단순한 외교적 실수가 아닌 오키나와에서의 G7 정상회담 직전 북한 김정일의 “당분간 장거리 미사일 개발 계획이 없다”는 표명과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했다. 지난 2001년 3월 DJ의 방미 과정에서 발생한 ‘this man’ 논쟁은 바로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2001년 9월11일 오전 8시45분, 뉴욕의 청명한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아메리칸 에어라인(AAL) 소속 보잉 767기가 세계무역센터(WTC)의 북쪽 타워를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하지만 그 충격도 잠시. 그로부터 불과 18분 뒤인 9시3분, 이번에는 유나이티드 에어라인(UAL) 소속 보잉 767기가 날개를 대각선 방향으로 꺾으며 WTC 남쪽 타워를 향해 무섭게 돌진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40분이 지난 9시43분, 세계의 철옹성이라고 불리던 펜타곤마저 AAL 보잉 767기에 의해 피습당해 불타올랐다.

하지만 그것은 세계 자본주의의 상징인 뉴욕에서 펼쳐질 세기의 드라마의 시작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22분이 지난 10시5분, 마치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듯 대각선 방향으로 날개를 꺾으며 돌진한 보잉 767기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WTC 남쪽 타워가 일순간 무너져내린 것이다. 그것도 폭파 공법의 진수를 보여주듯 순식간에 ‘와르르’. 그리고 그로부터 불과 25분이 지난 10시30분,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먼저 피격당한 WTC 북쪽 타워마저 가공할 연무를 내뿜으며 남쪽 타워보다 훨씬 더 정교한 모습으로 수직붕괴했다.

9·11 테러는 이처럼 몇 가지 점에서 전 세계인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먼저 독립전쟁 이후 단 한 번의 침공도 당하지 않은 미국 본토, 그것도 세계 자본주의의 상징인 WTC와 팍스 아메리카의 상징인 펜타곤이 공격당했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둘째, 폭파 수단으로 폭탄이 아닌 대형 여객기가 사용됐다는 점에서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했다. 셋째, 마치 묵시록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한 WTC의 드라마틱한 붕괴였다. 실제로 그것은 9·11 테러의 배후 인물로 알려진 빈 라덴조차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하나의 ‘묵시록적인 사건’이었다.

“부시는 사전에 9·11 테러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는 9·11 테러를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의혹이 있다. 이 같은 의혹은 일선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의 9·11 테러에 대한 사전 경고를 CIA와 FBI 간부진이 고의로 누락시킨 사실이 포착되면서부터 제기됐다. 실제로 미국은 9·11 테러가 발생하기 전 독일·프랑스·이스라엘의 정보기관들로부터 테러 경고를 받았다. 특히 러시아는 “9월9일로 시작되는 주일에 25명의 비행사로 구성된 테러단이 여객기로 매우 중요한 건물을 들이받을 것”이라고 매우 구체적으로 통보해 주었다. 그런데도 부시는 사전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게다가 9·11 테러를 보고받은 후에도 부시는 80분간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ABC 방송에 따르면 9·11 테러 당시 플로리다주 사라소타(Sarasota) 의 한 호텔에 묵고 있던 부시는 부커(Booker) 초등학교를 방문하기 위해 리무진에 오르다 앤드루 카드(Andrew Card) 비서실장으로부터 사건 보고를 받는다. AAL 보잉기가 WTC 북쪽 타워를 들이받은 지 채 10분도 되지 않아서였다. 또한 CNN 브레이킹 뉴스에 따르면, 리무진이 부커초등학교에 막 도착하던 오전 9시, 부시는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인 콘돌리사 라이스로부터 전화 보고를 받았다. 하지만 부시가 9·11 테러 담화를 발표한 시각은 그로부터 무려 30분이나 지난 뒤였다. 그것도 초등학생들과 담소하다 학교 TV 스크린에 나타난 WTC 피격 장면을 시청하고서. 게다가 이 자리에서 부시는 기자들에게 어처구니없게도 WTC 피격 장면을 보고 그것을 단순한 조종사의 실수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헌데 부시가 TV를 통해 본 WTC 피격 장면은 첫번째가 아니라 두번째였다. 첫번째 피격 보고를 이미 두 차례나 받은 미국 최고통수권자가 두번째 피격 장면을 보고 그것을 단순한 조종사의 실수로 생각했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부통령 딕 체니는 9·11 테러가 발생한 지 5일이 지난 9월16일, ‘기자와의 면담’(Meet the Press) 시간에 실수로, 테러 상황을 알고 있었음을 폭로하고 말았다. 그는 기자들에게 “백악관 비밀경비대(The Secret Service)는 연방항공통제국(FAA)과 특별 통신망으로 연결되어 있다. 경비대는 WTC 빌딩이 피격당하면서부터 연락망을 열어 놓았다…”고 얘기하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황급히 말을 끊어버린 것이다. 적어도 백악관 비밀경비대는 WTC가 첫번째 피격을 당했을 때 이미 FAA와 연결된 통신망을 통해 전체적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얘기다.

의혹은 또 있다. 9·11 테러가 발생하기 직전 시카고 증권거래소에서는 9·11 테러와 관련된 UAL과 AAL, 모건스탠리와 메릴린치 주식이 풋옵션(put option) 방식으로 대량거래됐다. 주가가 떨어져도 매입 당시 가격으로 매각하는 put option은 흔히 주가 폭락이 예상될 때 사용되는 방식으로, 이를 통해 천문학적 이익을 남긴 기업은 세계 최대 금융회사인 도이체방크-A. B. 브라운이었다. 그런데 도이체방크-A. B. 브라운은 전 세계 금융시장의 감시 기능을 맡고 있는 CIA의 전문이사(Executive Directo r)인 크론가드(Krongard)가 1998년까지 책임자로 있던 회사였다. 게다가 CIA 서열 3위인 이 자리에 크론가드를 천거한 인물은 다름 아닌 부시였다.

실제로 CIA에서는 9·11 테러 전부터 ‘프로미스’(Promise)의 방계 프로그램을 이용해 전 세계 금융 시장을 감시해 왔다. 프로미스는 CIA의 정보용 특수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당시 미국뿐만 아니라 캐나다와 이스라엘 등이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Fox 뉴스에 따르면 빈 라덴은 최소한 2001년 6월 프로미스 프로그램을 확보하고 있었으며 FBI와 법무부 역시 적어도 2001년 여름까지는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9·11 테러 직전 CIA는 프로미스를 통해 알 카에다의 움직임을 사전에 면밀히 파악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 같은 의혹이 사실이라면 9·11 테러를 사전에 알고도 방치한 부시의 의도는 무엇일까.

‘테러와의 전쟁’ 그 기묘한 수사학의 의미

WTC 건물이 피격당할 때까지만 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보이던 부시는 불과 몇 시간만에 갑자기 전지전능한 신으로 돌변한다. 9·11 테러가 발생한 지 불과 몇 시간만에 테러의 배후 인물로 빈 라덴을 지목하며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그러자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은 빈 라덴이라는 인물과 그의 근거지에 쏠리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부시는 빈 라덴이 아프간에 은거하고 있다며 느닷없이 탈레반 정권을 향해 빈 라덴 인도를 요구했고, 탈레반 지도자 오마르(Mullah Muhammad Omar)가 불응하자 거침없이 아프간을 침공했다.

그런데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을 앞세운 미군의 아프간 침공은 점차 이상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제2의 베트남전이 되지 않을까 우려한 미군은 아프간 북부동맹군의 도움으로 개전 2개월만에 탈레반 정권을 항복시켰지만, 어찌된 일인지 정작 부시가 침공 구실로 내세운 빈 라덴과 오마르의 행방은 묘연했기 때문이다. 미군의 침공 이후 아프간에 변화가 있었다면, 만신창이가 된 탈레반 정권이 부시가 원하는 하미드 카르자이(Hamid Karzai) 정권으로 교체됐다는 점에 불과했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석유 재벌 출신인 부시가 아프간을 침공한 실질적인 이유였다.

하미드 카르자이는 아프간의 총리가 되기 전까지 세계 굴지의 석유회사인 유노칼(Unocal)의 직원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노칼을 비롯한 미국의 메이저 석유 회사는 오래전부터 페르시아만의 매장량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한 중앙 아시아의 석유와 천연가스에 눈독을 들여왔다. 그런 까닭에 이 지역을 하나의 이슬람 공동체로 묶어 풍부한 지하 자원을 통해 전 세계에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탈레반 정권은 반드시 제거해야 할 ‘악’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 하에 부시가 아프간을 침공한 실질적인 이유인 것이다.

하지만 부시가 아프간을 침공한 이유가 단지 탈레반 정권의 붕괴를 통한 중앙 아시아에서의 에너지 확보뿐이었을까. 개인적으로 필자는 그보다 오히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기묘한 수사학을 전 세계인의 뇌리에 각인시켜며 은연중에 그것을 정당화했다는 점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국가간 전쟁은 유엔의 룰에 따라야 하는데, ‘테러와의 전쟁’은 국가 vs 국가간 전쟁을 국가 vs 테러국가로 변질시킴으로써 유엔의 사전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 ‘근거’로 작동하게 만든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기묘한 수사학에 담긴 의미는 바로 이 관점에서 조명되어야 한다. 9·11 테러를 계기로 ‘테러와의 전쟁’은 앞서 언급한 폴 월포위츠의 prevent war 정책의 불법성을 정당화시키는 레토릭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공식을 미국에 저항하는 불량국가들을 상대로 정당화시키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바로 이 점이야말로 아프간 침공에 이어 9·11 테러 1주년을 기념해 자신이 ‘악의 축’이라고 규정한 후세인 제거를 공언하며 이라크 침공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부시의 숨은 의도라고 생각한다.

부시 정권의 이라크 침공 시나리오

이라크 침공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상황에서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은 부시의 이라크 침공 시나리오에 쏠려 있다. 아마도 미 공군의 첫 공습 대상은 이라크 방공망과 더불어 후세인의 대통령궁과 후세인 체제의 상징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미군은 공격 개시 48시간 내에 3,000여 발의 정밀유도탄과 미사일을 이라크 방공·통신 및 생화학무기와 군사령부 시설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작전은 이라크 국민들에게 미국의 목표가 후세인 제거에 있음을 천명하는 한편 이라크 군에는 가공할 타격으로 처음부터 전의를 상실케 함으로써 단기간에 후세인 정권을 전복시키겠다는 치밀한 전략의 일환이다.

그렇다면 미군의 지상군 전략은 어떻게 될까. 베트남전에서 5만명이 넘는 사상자를 기록한 이후 미국은 자국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용병 정책을 추진해 왔다. 베트남전에서의 한국군처럼, 아프간 침공 과정에서 그 기능을 수행한 것은 탈레반 정권에 쫓겨난 아프간 북부동맹군이었다. 실제로 미국의 아프간 공습이 있기 10일 전, 아프간 북부동맹군은 CIA가 운영하는 준 군사조직인 특수작전그룹(SOG)과 사전 정지작업을 벌임으로써, 아프간에서 미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만일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할 경우 아프간에서의 북부동맹군 역할은 이라크 북부에 근거지를 둔 5만명의 쿠르드 반군이 맡을 가능성이 높다. 대략 500만 명으로 추정되는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족은 독립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무려 18만명이나 학살되면서 후세인에 대한 반감이 어느 누구보다 높기 때문이다. 타임지(2월3일자)에 따르면 실제로 쿠르드 반군은 이미 이라크 북부 지역에 침투한 SOG와 연대해 예상 진격로를 탐색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등 치밀한 사전 정지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미군 특수부대는 이라크 침공이 현실화될 경우 예상되는 후세인의 노림수를 사전에 차단하는 특수임무를 수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예컨대 미군의 대규모 공습이 시작될 경우 후세인이 폭파하거나 무기로 삼을 가능성이 높은 이라크 유전과 화학무기 저장소, 스커드 미사일 기지 등이 그것이다. 실제로 영국의 데일리 텔레그래프지는 지난 2월4일자에서 이미 미국과 영국의 특수부대가 이라크 서부 스커드 미사일 기지에서 비밀 작전을 수행중이라고 보도했다. 이곳은 전쟁이 일어날 경우 이스라엘에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도록 후세인이 만들어 놓은 기지다.

또한 이라크전은 군산복합체에 재래식 무기를 정리하는 기회와 더불어 고성능 정밀무기와 최신 정보 수집 시스템, 새로운 정보전파 시스템 등 첨단 무기를 선보이는 전시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지금까지 베일에 가려진 고성능 마이크로파(HPM)다. 순항미사일에 내장되어 목표물에 접근하면 순식간에 20억w 이상의 가공할 전자파를 쏟아내는 HPM은 주변 300m 이내의 모든 컴퓨터와 전자장비를 파괴시킴으로써 주변의 모든 시스템을 무력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원격조종을 받는 무인항공기 RQ-1 프레데터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에 의해 유도되는 개량형 정밀유도탄 등도 전 세계 무기상들의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후세인 제거후 부시의 중동 패권 전략

그렇다면 후세인 제거후 부시가 구상하는 중동 패권 전략은 무엇일까. 그것은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킨 후 부시가 아프간에서 보여준 일련의 행보를 살펴보면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석유 재벌 출신인 부시는 탈레반의 오마르를 몰아낸 후 아프간을 이끌 새로운 지도자로 전 미국 메이저 석유회사 간부인 아미드 카르자이를 임명했다. 유노칼 직원이었던 그를 아프간의 새로운 국가 수반으로 내세움으로써 페르시아만의 매장량보다 풍부한 것으로 알려진 중앙 아시아의 천연가스와 석유를 확실하게 장악하고 싶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후세인 제거를 통해 부시가 바라는 것은 세계 2위의 매장량을 자랑하는 이라크 지역의 원유 확보다. 그런 의미에서 부시 행정부내 매파 인사인 리처드 펄 국방정책위원회 위원장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알-아스와트 신문과의 회견(2월2일자)에서 “이라크에 민주 정권이 들어서면 프랑스의 석유 합작사인 토탈피나엘프는 석유 문제를 놓고 이라크와 재협상을 벌여야만 할 것”이라고 지적한 것은 의미심장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이것이 미국과 영국의 지속적인 설득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가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는 실질적인 이유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은 이라크로부터 매년 600억 달러 상당의 석유를 최소한 5년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시 말해 이라크 전비로 추정되는 600억 달러는 1년만 지나면 회수할 수 있고, 남은 4년 동안 얻게 될 수천억 달러의 원유는 전리품으로 챙기겠다는 말이다. 부시가 이라크 점령후 상당 기간의 군정을 계획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실제로 부시는 이미 후세인의 후계자로 이라크국민회의(INC)를 이끌어온 아흐메드 찰라비(58) 의장을 내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라크의 분할통치를 구상하는 부시에게 친미 성향이면서도 이라크내 지지 기반이 취약한 그보다 적당한 인물은 없기 때문이다.

이라크가 정리되고 나면 부시는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의 원유를 노릴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족에게 독립 의지를 고무시켜온 부시 정권의 행태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걸프전 이후 미국의 보호 하에 자체 의회를 구성하는 등 후세인의 통제에서 벗어난 쿠르드족은 공식적으로는 자치와 석유 자원의 공유만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후세인이 축출되고 나면 그들은 자체 군대의 창설과 쿠르드어 방송국 설립, 석유산업 중심지인 키르쿠크에 수도 건설 등을 요구하며 사실상의 독립을 꿈꾸고 있다. 이라크 침공 과정에서 쿠르드족이 미군의 용병을 자처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터키와 이란·시리아에 흩어져 있는 2,000만명의 쿠르드족의 독립투쟁을 촉발시킴으로써 중동을 거대한 내전의 소용돌이로 몰아갈 가능성이 높다. 분쟁 조정을 핑계로 중동의 원유를 차지하려는 미국에 이보다 좋은 조건은 없을 것이다. 이라크 침공에 협력하는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수백억 달러의 경제 지원를 보장받은 터키가 미군의 이라크 침공시, 터키군 8만 명을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자치지역으로 파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자칫 쿠르드족 독립 문제를 방치했다가 이라크 북부와 인접한 자국내 쿠르드족의 독립 운동을 촉발시켜 사실상 터키가 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부시 정권이 에너지 확보에 혈안이 된 이유

그렇다면 부시는 에너지 확보에 왜 그렇게 매달리는 것일까. 그것은 부시 행정부의 면면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먼저 부통령 딕 체니는 세계 2위의 에너지회사인 핼리버튼의 대표 출신이다. 여기에 콘돌리사 라이스 보좌관 역시 쉐브론사의 중역으로 아프간 침공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카자흐스탄의 석유를 다뤄온 인물이다. 게다가 도널드 에반스 상무부장관 역시 톰 브라운사를 경영하며 석유사업 분야에서 상당한 실력을 쌓은 인물이고, 상무부 차관인 캐서린 쿠퍼는 엑손 모빌의 중역이었다. 게다가 텍사스 주지사 출신인 부시는 지난 대선에서 이 지역 석유 회사들로부터 공식 후원금만 무려 300만 달러를 받았다.

하지만 미국민들에게 에너지 확보의 필요성을 각인시킨 사건은 따로 있다.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조지 부시의 취임을 불과 3일 앞둔 2001년 1월27일, 캘리포니아주의 샌프란시스코와 새크라멘토 지역에서는 갑작스러운 전력 중단으로 인한 대혼란이 발생했다. 도산 위기에 처한 캘리포니아주의 전력회사가 90분 가량 전력 공급을 중단하면서 발생한 이 사건으로 학교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정지하면서 학생들이 갇히는 등 정전 사태로 50여 만명이 피해를 본 것이다. 이 사건은 결국 카터 정권 시절의 2차 오일파동으로 인한 정전 사태를 떠올리면서 중서부 지역에서의 가솔린 가격 폭등 사태로 비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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