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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소년"은 국면전환 위해 6공이 정치차원에서 저지른 살인이다... (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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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형모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댓글 1건 조회 3,168회 작성일 02-10-12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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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소년'은 국면전환 위해 6공이 정권차원서 저지른 살인"

<11년전 9월 30일 오후 3시> "6공 정권이 정국 전환위해 정권차원서 살 해한 것"
경찰, "개구리 소년 총살됐다" 제보받고 수사중


11년만에 유골로 발견된 이른바 '개구리소년'들이 총살됐다는 언론보도가 잇따라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9월 30일자 석간 <문화일보> 는 지난 9월 25일 문화일보 편집국에 "대구 와룡산에 개구리 소년들이 한꺼번에 묻혀 있다"며 첫 제보한 정모(40)씨를 단독으로 만나 정씨의 진술내용을 보도했다.


<문화일보> 보도에 따르면, 정씨는 "개구리소년들은 6공 정권 당시 강경대 김기설 사건 등 어수선한 사회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정권차원에서 살해한 것"이라며 "'범인들에 대해 들은 얘기를 진술하겠다'며 경찰에 자진출두했다"고 보도했다.


만약 제보자 정씨의 진술대로 이들이 타살됐음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개구리소년 사건의 수사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전망이다. 또 사태의 진전에 따라서는 노태우 정권의 책임자들이 증언대에 서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어 그 파장을 종잡기 어렵다.


한편 30일 <연합뉴스>는 "(성서초등생 실종사건) 수사본부에 따르면 구두닦이 일을 했던 한모(43. 무직. 대구 달서구 월암동)씨가 '지난 7월 30-35세의 남자 1명이 구두를 닦으면서 `군 생활 당시에 어린이 5명을 총으로 쏴 죽였다'는 말을 했다'고 제보,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이 제보 내용과 관련해서는 "한씨는 이 남자가 `사격중 5명의 소년이 갑자기 나타나 2명이 총에 맞아 이중 1명이 숨지고 1명은 다쳤으며, 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5명을 다른 곳으로 옮겨 목을 조르고 총으로 난사해 죽인 뒤 매장했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러한 보도에 대해 수사본부는 불만을 나타냈다. <연합뉴스>의 보도 진위여부에 대해 묻자 수사본부 조선호 본부장은 "<연합뉴스>를 보고서야 내용을 알았다"라면서 수사 자체를 극구 부인하고, "언론이 오히려 경찰 수사에 방해가 된다"면서 불만을 토로했다.


한편 경찰은 유골발굴 초기 '자연사'를 추정했으나 발굴 도중에 여러가지 타살의 정황이 나타나면서 유족들로부터 거친 항의를 받고 수사본부를 확대하는 한편 전면 재조사에 돌입했다.


특히 경찰은 발견된 유골 5구 가운데 1구의 두개골 정수리 왼쪽 뒷부분이 함몰되고 얼굴 부분에 2개의 구멍이 나타난 점, 소년들의 유골이 발견될 당시 사체 위에 장방형 돌이 눌려져 있던 점 등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이고 있다.




<12신:29일 오후 6시 20분> 경찰, 사건 관련 7대의혹 밝혀


유골 발견 4일째인 29일,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을 맡고 있는 수사본부(본부장 조선호 대구시경 차장)은 향후 수사방향과 관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사인규명에 나설 것"이라고 재차 강조하고 "앞으로 7대 의혹을 중점적으로 수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이 발표한 7대 의혹은 다음과 같다.


1)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벌였음에도 사체가 발견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2) 아이들이 지형에 익숙하고 다섯명이나 되는 인원이 왜 길을 잃어버렸나.

3) 유골 발견 현장까지 아이들이 온 이유는 무엇인가.

4) 600m 거리에 고속도로가 있어 밤에도 불빛을 감지할 수 있었다는 주장.

5) 마지막 발굴된 유골(김영규 추정)에서 나타난 옷소매 등이 묶여진 이유는.

6) 발견 현장 주변으로 탄두 등이 다량 발견돼 유탄에 맞았을 가능성은 없나.

7) 왜 무거운 돌 밑에 유골 등이 깔려 있었나.


한편, 경찰은 이날 지금까지 의문을 낳고 있던 현장 발견 당시 사진을 언론과 유족에 공개했다. 현장에 출동한 파출소 직원이 촬영한 것으로 알려진 이 사진에는 유골 한점, 의류로 보이는 물체, 그리고 바로 옆과 위쪽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네모난 돌 등이 찍혀 있었다.


또 이날 오후 2시 30분에는 아시안게임 참석차 부산에 내려가던 이근식 행정자치부 장관과 조순용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이 발굴 현장을 찾았다. 이 장관 등은 이날 현장을 찾기에 앞서 수사본부(성서파출소)에 들러 수사 진행상황을 들었다.


이날 이 장관 등이 현장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유족 대표인 김현도(김영규 아버지)씨가 "제가 말씀한 마디 올리겠다"고 운을 뗀 뒤 "처음에는 가출로 몰아 수색을 제대로 안하더니 이제는 자연사로 몰아붙이고 있다"면서 지금까지 수사과정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사인규명을 위해 열심히 애써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 장관 일행은 "사인규명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바쁜 일정 탓인지 만남을 가진지 약 3분만에 자리를 뜨고 말았다.


한편 이날 현장 발굴팀은 탄두 20여점과 함께 발굴 지점에서 근접한 거리에 비닐 재질의 빵봉투(콘티빵-단팥빵/ 30원 표시) 한 점을 발견해 정밀 감식에 들어갔다.


<11신:29일 오후 1시 00분>

발굴 두개골 일부 상처 의심부분 보여

91년 수색미비 이어 '자연사 추정' 구설수

- 28일 발굴 중 현장 주변 54개 탄두 등 추가 발견


28일 오후 7시, 발굴 유골이 옮겨져 있는 대구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중구 동인동)에서는 사인규명을 맡고 있는 법의학팀(단장 곽정식 교수)과 경찰이 수집된 유골과 유품 등을 유족과 언론에 공개했다.


50평 남짓한 실습실 중앙으로 5개의 테이블에는 각 소년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과 옷 등 유품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다. 대부분의 유골 및 유품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옷가지의 비닐 재질의 부분은 전반적으로 벗겨져 있거나 색이 바래있어 11년 세월의 깊이를 보여줬다.


법의학팀 한 관계자에 따르면 “지금까지 중요한 단서가 될만한 유골 등은 거의 발굴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날 실습실을 찾은 유족들은 진열된 유골을 보자 가슴이 북받치는 듯 눈물을 흘려 아직도 가시지 않는 아픔을 내비쳤다. 한 유족은 알 수 없는 말을 되풀이하며 한숨만 내쉬는가 하면, 또 다른 유족은 붉은 줄무늬 T셔츠를 보자 “이건 아들 옷이 맞다”고 말하기도 했다.


법의학팀 채종민 교수는 “발굴시 옷에 붙어 있던 유골을 분리하고, 착용했던 옷과 뼈의 크기 등 특징적인 것을 나눠 따로 정리해 둔 것”이라면서 “육안으로 살펴봤을 때는 아직까지 유골 등에서 특별한 상처 흔적이 발견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또 타살여부, 사인규명 가능성에 대해서는 “검사중”, “알 수 없다”고 간단히 답했다.


그러나 이날 공개된 유골 중 총알 관통이 의심되는 상처 등이 발견돼 이것이 타살로 인한 상처인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발굴된 5점의 두개골 중 한 개가 좌우 양측(약 1cm, 4cm정도)에 구멍이 나 있었던 것. 이에 대해 법의학팀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총알을 맞은 두개골의 관통 부위에서 골절현상이 나타나고 탄알이 지나간 안쪽과 바깥쪽의 모양이 틀려지기 때문에 이 두개골에 나타난 구멍은 탄알에 의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왜 구멍이 생긴 것인지에 대해선 즉답을 피했다.


또 같은 두개골에서 좌측상단 부분에서 발견된 약 2cm크기의 움푹 파이고 갈라진 흔적도 발견이 됐다.


이에 앞서 발굴 첫날 발견된 4개의 두개골 중 하나는 갈라지거나 떨어져나간 흔적도 있었다. 이에 대해 법의학팀은 "두개골도 관절로 연결돼 있는데 세월이 지남에 따라 관절이 약해지면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 두개골의 훼손된 상처 흔적이 사망 전에 입은 상처로 밝혀질 경우 타살 증명에 결정적인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처로 의심되는 부분에 대해 법의학팀 관계자는 "(돌 등 부딪혀) 유골이 훼손됐을 수도 있기 때문에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어 정밀 검사를 진행해 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법의학팀은 법치 의학적 검사 등을 완료한 상태로 현재는 사체가 옮겨졌을 가능성을 추정할 수 있는 곤충학 검사를 진행하고 있고, 방사선 촬영을 추가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의학팀은 최종 신원확인을 위한 종합판정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약 3-4주가 더 소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편 91년 '개구리 소년들'의 실종 직후 수색작업 미비 등 당시 경찰의 수사에 문제점이 지적된 가운데 이번에는 유골 발굴 당시 자연사로 추정한 경찰 당국의 ‘섣부른’ 발표가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지난 26일 유골이 처음 발견된 직후부터 다음날 2차 발굴이 있을 때까지 경찰은 ‘저체온’ 현상에 의한 자연사에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이는 1차 발굴이 끝난 달서경찰서에서 작성한 수사상황 보고서에서도 나타난다.


이 보고서에서 경찰은 “실종 당시 두 끼를 거른 상태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비를 피하기 위해 유골이 발견된 지점에 모여 있다, 기온이 급히 떨어지므로 저체온 현상으로 사망 또는 암벽이 무너져 매몰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물론 당시 경찰은 ‘단정적인’ 언급은 피하고 “국과수 등의 합동 감식이 있어야 정확한 사인이 판단될 것”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하지만 유골의 발굴이 모두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내린 사건추정이 ‘화근’이었다. 다음날 유족들은 “경찰이 사건 수사를 빨리 매듭짓기 위해 자연사로 추정하고 있다”면서 발끈했다.


유족들의 반발은 지난 91년 실종 직후 수사 초기에 경찰이 ‘가출’로 가닥을 잡아갔던 과정을 상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와룡산 일대에 대한 대대적인 수색작업은 사건 발생 7개월만인 같은 해 10월 중순경에야 이뤄졌다.


결국 장기 미제사건에 대한 해결에 급급한 나머지 자연사로 결론지으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야했다. 유족들은 “최초 발견자가 유골이 큰 돌에 눌려져 있었다고 증언하고, 발견 지점에 대해 과거에 유족들이 찾아본 적이 있었던 점 등 의혹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면서 “그런데도 경찰이 저체온으로 인한 자연사로 추정하고 언론에 흘리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자연사 추정이 유족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킨 데다, 2차 유골 발굴 과정에서 실종자의 옷이 묶여진 채 발견되고 탄두 · 탄환이 다량 발견되자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사인규명에 나설 것”이라는 의지를 표명했다.


28일 대구지방경찰청 조두원 수사과장은 “이번 사건이 국민적 관심사이기 때문에 11년 전 수사기록을 면밀히 재검토하고, 다양한 가정을 두고 전문가들의 세밀한 판단을 바탕으로 사인 규명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조 과장은 “당시 제보 중 허위 제보인 부분도 있고, 애매한 부분도 많다”면서 “허위라는게 확실치 않으면 면밀히 재수사 할 것”이라고 밝혀 경찰의 전면적인 재수사 의지가 어떻게 구체화될지 궁금증을 더하고 있다.


28일 하루에만 탄두 54개 추가 발견 유족들, 초기 현장보존 · 1차 발굴 과정 의혹 제기 ◐... 28일 대부분의 유골이 발굴된 상태이지만 대구 와룡산 현장에서는 3일째 발굴 작업이 진행됐다. 특히 이날 발굴에서 또 다시 다량의 탄두 등이 발견돼 눈길을 끌었다.


경찰은 “유골 발견 지점으로부터 반경 150m 이내에서 모두 54개의 탄두 등이 추가로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날 추가 발견된 탄두 등은 일부 찌그러져 있거나 원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또 이 중에는 지금까지 발견된 것보다 다소 큰 길이 약 10cm가량의 박격포용 탄피로 보이는 금속체도 포함돼 있었다.


탄두 등이 추가 발견됨에 따라 지난 27일 발견된 12개(유골 근접 2개 포함)와 함께 지금까지 유골 발견 현장 주변에서 발견된 탄두 등은 모두 66개로 늘어났다. 이는 이 주변에 다량의 탄두가 흩어져 있을 가능성을 높이는가 하면, 군 당국 측에서 주장하는 “현장에서 발견된 탄두와 군은 무관하다”는 주장에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결과이다.


◐... 발견 3일째로 접어들면서 경찰의 현장 보존과 초기 유골 발굴이 이 제대로 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고 있다.


이러한 의문은 최초 목격자의 신고 이후 경찰의 유골 수습과정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은데다 경찰 관계자들의 말도 엇갈리는 부분이 있기 때문. 또 유족들은 "연락을 받고 현장에 도착했을 무렵 이미 1차 유골 발굴이 마무리된 상태였다"면서 “왜 발견 초기부터 원상태 그대로의 현장을 보여주지 않았느냐”고 원성을 높이고 있다.


이에 따라 28일 경찰 관계자는 “현장 보존과 초기 유골 발굴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상황을 확인한 후 곧 설명하겠다”며 “아직 공개되지 않은 발굴 전 현장 상태를 담은 사진을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게시물은 선장님에 의해 2014-02-02 11:17:54 미스테리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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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순님의 댓글

임용순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만약에 군의 오발로 사고가 난 것이라면 정부는 이것을 숨길까요?
경북대 법의학팀은 이사실을 모르고 조사할까요?
머리에난 상처는 왜 1달이 지난후에 발견이 되었을까요?
정부가 알고 있었다면 시신을 그렇게 허술하게 둘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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