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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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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선장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댓글 1건 조회 1,534회 작성일 01-11-27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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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월간조선 11월호


자유민주민족회의 등 보수단체들이 金正日의 답방 前 6·25 전쟁, KAL 858 기 폭파사건 등에 대한 시인과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월간 내외저널 이 10월호에 「김현희 KAL기 사건 조작 의혹」 기사를 게재했다. MBC도 사 건 발생 14주기에 맞춰 방송할 계획으로 취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KAL 858기 폭파 사건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KAL 858기 폭파사건이란 1987년 11월29일 중동 근로자 등 115명을 태운 KA L 858편 보잉 707기가 버마(現 미얀마) 근해 안다만 해역에서 공중 폭발해 탑승자 전원이 사망한 사건을 말한다.
국가안전기획부(現 국가정보원)는 사건 발생 이듬해인 1988년 1월15일, 이 사건이 88서울 올림픽 방해를 목적으로 金正日이 金勝日(김승일), 金賢姬 (김현희) 두 북한 공작원에게 친필 공작 지령을 내려 대한항공기를 폭파한 사건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金正日이 1987년 10월7일 조선노동당 대외정보 조사부 부장 이용혁을 통해 대한항공 858기 폭파를 지시했으며, 이용혁은 11월10일, 『이것은 김정일 동지가 개인적으로 서명한 지령에 따라 이루어 지고 있다』고 金勝日과 金賢姬에게 강조했다는 것이다.
공작원 金勝日은 KAL 858편 보잉 707기를 폭파한 후 북한으로 돌아가다가 바레인 공항에서 체포된 직후 음독자살했고 金賢姬는 음독자살에 실패, 바 레인 당국에 의해 한국 수사 당국에 넘겨졌다.
대법원은 1990년 3월 金賢姬에 대해 국가보안법상 목적수행 살인, 잠입탈출 죄, 항공법상 항공기 추락, 추락치사, 항공기운항안전법상 항공기에 위험물 건 휴대, 폭발물 탑재죄 등 6개항의 죄목을 적용, 사형 선고를 확정했다.
사건 발생 2년4개월여 만이다.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다음 달인 4월, 정부는 金賢姬를 특별사면하면서 『김현희는 이 사건의 진상을 생생하게 증 언해 줄 유일한 생존자로서 수사와 재판이 허위날조된 것이라는 흑색 정치 선전을 분쇄하고 북한 공산집단의 폭력성과 침략적 근성을 입증할 역사의 산 중인이라는 점 등에 비추어 김현희를 대한민국의 품으로 과감히 수용, 조국의 평화통일대열에 동참시키는 것이 국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의 정부뿐만 아니라 정의 수호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대법원에서도 金正日의 범죄를 인정한 사건인 것이다.

KAL 유족회, 『새로운 사실이 없다』

KAL 유족회, 『새로운 사실이 없다』 내외저널은 정부가 사장 임명 등에 영향을 미치는 사실상의 관영매체인 연 합뉴스(연합뉴스의 지분은 KBS 42.35%, MBC 32.15%) 부설 동북아시아정보문 화센터가 발행하는 것으로 돼 있다. 동북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은 金槿(김 근) 연합뉴스 사장이다. 내외저널은 그동안 발행해오던 동북아21의 제호와 판형을 바꾼 것으로 사실상 새롭게 再창간된 잡지로 볼 수 있다.
내외저널을 통해 「KAL기 폭파사건 조작설」을 제기한 玄俊熙(현준희)씨는 18년 동안 감사원에서 근무하다가 1996년 감사원의 경기도 남양주 효산콘 도 인허가 감사중단 압력을 폭로, 1996년에 강제 해직된 인물이다.
「김현희 KAL기 사건 조작 의혹」 기사는 이 「재창간호」의 머리 기사에 해당된다. 기사는 편집자 注에 해당하는 부분과 玄씨가 제기하는 열두 가지 의혹 부분, 기자와 玄씨와의 인터뷰 등 크게 세 부분으로 돼 있다. 기사의 편집자 注에 해당하는 부분에서는 내외저널이 KAL 858기 폭파사건을 보는 시각을 엿볼 수 있다. 「극우 수구세력들은 김정일 위원장 답방시 즉각 구 속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라는 대목이 있다. 金正日의 답방을 반대하 는 사람은 모두 극우 수구세력이라는 것이다.
내외저널 편집인 鄭南基(정남기) 동북아시아문화센터 소장은 『기사 게재에 특별한 의도는 없었다』면서 『잡지를 만드는 사람들의 속성상 뭔가 주목 을 끌 만한 거리가 없는가를 찾다가 현준희씨와 연결이 된 것』이라고 말했 다.
玄씨가 내외저널을 통해 조작설의 근거로 제시한 열두 가지 의혹은 ▲안기 부가 金賢姬라고 제시한 1972년 남북조절위원회에 참가한 한국측 대표에게 꽃다발을 주는 사진 속의 花童(화동)은 金賢姬가 아니다 ▲金賢姬는 金正日의 친필지령을 받았다는데 물증이 없다 ▲金賢姬의 아버지는 앙골라 주재 외교관이 아니다 ▲金賢姬의 음독자살수법은 북한공작원들만 사용하는 게 아니다 ▲일본 프리랜서들의 추적 결과 金賢姬가 수사당국에서의 진술과 자서전 등을 통해 말한 것 가운데 80여 곳이나 일치하지 않는다 ▲大選을 하루 앞둔 상황에서 金賢姬를 서울로 압송한 점 등이다.
玄씨가 주장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의혹 중에 눈에 띌 만큼 새로운 것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피해자 가족들의 모임인 KAL 858기 희생자 유족회(KAL 유 족회)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우리가 들어왔던 얘기에서 별로 새로운 게 없다』고 말했다.
鄭南基 소장은 『현준희씨에게 제시한 의혹 열두 가지 중 새로운 것이 뭐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기체 잔해 조작 의혹은 새로운 문제 제기」라는 말 을 들었다』고 말했다. 玄씨의 주장과 달리 KAL 유족회 회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사건 발생 2년 반이 지난 1990년 5월에 발견된 KAL 858편 보잉 707기 기체 잔해는 조작된 것』이라는 주장을 해왔다.

북한은 이 사건으로 미국에 의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됐다. 1988년에 지정 된 이래 14년째 테러지원국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1979년에 「反테러법」을 제정, 매년 테러지원국 명단을 발표해오고 있다. 국제적으로 확산되는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테러지원국 명단에 오른 국가는 이른바 불량국가(rogue state)로 불리며 미국에 의해 무역 제 한 등 각종 경제제재 조치를 당한다. 이들 국가에 대해서는 對外 원조법에 의한 원조도 금지된다. IMF나 세계은행 등의 융자나 금융 원조도 사실상 금지된다.
북한으로서는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가 절실한 현안이 되고 있다. 餓死者(아사자)가 속출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외부로부터의 원조가 절박한 상황인 것이다. 클린턴 정부 말기인 작년 10월에는 북한 조명록 차수가 워 싱턴을 방문해 미국과 「국제 테러에 대한 美·北 공동성명」을 발표하는 등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문제의 실마리가 풀리는 듯했다. 그러나 금년 초 출범한 부시 정부는 북한을 여전히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려놓고 있다.
金大中 정부는 이 사건을 민족 내부의 문제로 보고 있다. 정부의 속내를 들 여다보면 민족 내부의 문제니까 이 사건으로 야기된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 정은 해제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무부서인 외교통상부의 관계자도 『과 거 문제에 대한 집착은 남북관계 진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가급 적 빨리 현안이 해결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이 빠지는 게 바람직하다 는 게 우리 입장』이라고 말하고 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의 이 말을 뒤집 어 보면 결국 KAL 858기 폭파사건이 남북간 화해와 협력의 저해요인이 되고 있다는 말인 셈이다.
玄씨는 『북한은 이 사건으로 테러지원국이 됐고 그래서 더 곤경에 처하고 있다』면서 『북한이 테러지원국에서 벗어난다면 외국도 도와 주게 되고 그렇게 되면 우리도 북한에 퍼주기를 안 해도 된다』고 말해 테러지원국 문 제가 KAL 858기 폭파사건 조작 의혹을 본격적으로 제기하게 된 한 이유임을 밝히고 있다.
정부의 영향력 하에 있는 매체라고 해서 의혹을 제기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 문제는 의혹 제기 시점이 주는 의혹이다. 북한은 KAL 858기 폭파사건 발생 초기부터 남한 당국의 자작극이라고 선전 해 왔다. 학생운동권을 중심으로 한 남한 내 在野 세력도 사건 발생 후 조 작 의혹을 제기했다. 조작 의혹 제기는 국민적 공감대를 얻는 데 실패했고 , 이후 조작설과 관련된 「요란스런」 언급은 없었다. 희생자 가족들의 진 상규명 요구가 계속돼 왔지만 언론도 일반 국민도 「이 사건에 조작 의혹이 있다」는 주장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던 이 사건이 다시 주목을 끌게 된 것은 金大中 정부 출범 이후 부터다.
金大中 정부 들어와서 이 사건을 보는 정부 기관, 일부 인사, 일부 매체들 의 시각에서는 일정한 흐름이 감지된다. 金正日이 개입했다는 증거가 없으 므로 시인과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조작설은 여 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사건 당시의 집권측이 再집권을 위해서 사건을 조작 했다는 것이지만, 이 역시 金正日이 직접 개입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의혹을 바탕으로 한 의혹이라는 차원에서 두 주장은 일란성 쌍둥이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대한민국 정부와 대법원이 KAL기 폭탄 테러의 배후로 지목한 金正日이 이 사건으로 인해 안고 있을 부담을 덜어 주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
金大中 정부 들어 이 사건에 대한 의혹을 처음으로 제기한 곳은 아이러니컬 하게도 사건을 담당했던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現 국가정보원)다. 안기부 는 1998년 10월14일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에 대한 안기부 입장」을 발표 했다. 안기부는 이 입장을 발표하면서 「북풍 의혹」 사례를 들었다. KAL 858기 폭파사건도 안기부가 발표한 「의혹」의 하나였다.
사건을 담당했던 주무부서가 대한민국 정부와 대한민국 최고 법원이 정확성 을 인정하고 공표한 사건에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自害행위라고까지 할 수 있는 이 발표에 대해 국가정보원의 한 관계자는 『표현상에서 실무자의 실 수가 있었다』면서, 야당과 언론의 저항 때문에 再조사를 하지 않았다는 일 부의 주장에 대해서는,『再조사를 하지도 않았고 할 계획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金正日이 개입한 증거가 어디 있느냐고?

동국대 黃台淵(황태연) 교수는 지난 2월27일 「21세기 동북아포럼」에서 『 북한 김정일 위원장은 유아 시절 발발한 6·25전쟁에 책임이 없고, KAL기 폭파를 지휘했다는 증거도 없고 조사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취지의 발 언을 함으로써 파문을 일으켰다. 발언 당시 그는 집권당인 민주당 국가경영 전략연구소 부소장이었다. 파문이 일자 다음날인 2월28일 민주당 국가경영 전략연구소 부소장직을 사퇴했다. 金大中 대통령은 지난 5월18일 민주당 국 가경영전략연구소 부소장직을 사퇴했던 그를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 원으로 再위촉했다.
黃台淵 교수 파문 직후인 금년 3월13일, 한겨레신문에는 최근 「8·15 평양 민족통일 대축전」에 참여해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위업 이룩하자』 는 방명록을 남긴 등의 혐의로 구속됐던 동국대 강정구 교수의 「북 사과론 의 반통일성」이라는 제하 논단이 게재됐다. 이 글에서 姜교수는 다음과 같 은 주장을 하고 있다. 부분적으로 발췌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울 답방이 임박하자 일부에서는 김위원장이 「버마」 와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6·25전쟁에 이르기까지 먼저 사과를 해야 한다고 한다. 또 이에 대해 반론을 개진한 황태연 교수에 대한 막무가내식 돌팔매 질이 광기수준이다… 그러면 북한은 미얀마나 대한항공기나 수없이 많지만 남한은 이러한 「극단적」인 짓거리를 하지 않았다고 강변할지 모른다. 이 주장은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아직도 이들 사건에 대한 객관적이고 결정적 인 증거에 의해 북한 책임론으로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인지에 관해 논란의 여지가 있다>

黃교수나 姜교수 공히 KAL 858기 폭파사건이 金正日이 저질렀다는 증거가 현재로서는 없다는 입장에 다름 아닌 것 같다.

조작설 뒤집은 세 장의 사진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KAL 858기 조작설은 어느 정도의 신뢰성을 갖고 있 는가.
조작설의 핵심은 金賢姬가 북한 여인인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내외저널 鄭 편집인도 『(김현희가) 북한 사람이라면(조작 여부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라고 말해, 이 문제가 조작 의혹을 푸는 열쇠임을 인정하고 있다.
玄씨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지만 안기부가 1988년 3월5일에 각 언론사에 배 포한 金賢姬의 사진이 金賢姬와 다른 여인이라는 주장은 사건 발생 직후 재 야 단체는 물론 KAL 가족회 일부 회원들이 지속적으로 해온 내용이다.
안기부가 1972년 11월2일 남북조절위에 참석한 남한측 대표에게 꽃다발을 주기 위해 花童으로 참석한 金賢姬의 사진을 공개한 후 북한은 사진 속의 화동은 金賢姬가 아니라 당시 평양외국어학원 교원인 정희선이라는 여인이 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KAL 사건 조작 의혹을 모아 「도서출판 힘」이 펴낸 「의혹 속의 KAL기 폭파사건」이라는 책자도 정희선이라는 여인의 사진을 게재해가며 이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
이 논란과 관련, 일본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다(赤旗)」에서 20년 간 기자 생활을 한 하기와라 료씨는 金賢姬가 남북조절위 남한측 대표를 환영하는 자리에 화동으로 참석했음을 보여 주는 사진 자료를 공개했다.
赤旗의 평양 특파원으로서 남북조절위 행사를 취재했던 하기와라 기자는 그 때 찍었던 사진 중에 한 장을 1988년 3월6일자 일본 공산당 화보 「그래프 안녕하십니까」에 「김현희인 듯한 소녀」라는 제목으로 공개했다.
이 사진(사진A)이 공개되자 북한은 하기와라 기자가 주장한 「김현희인 듯 한 소녀」는 당시 평양외국어학원 교원인 정희선이라는 여자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하기와라 기자는 사진A의 ④번을 「김현희인 듯한 소녀」로 지목 했고, 북한은 그 ④번 소녀는 정희선이라고 주장했다. 정희선이 조총련 기 관지 「조선신보」와 회견을 갖는 등 공방이 가열되자 하기와라 기자는 다 른 사진(사진B) 한 장을 더 내놓는다. 사진B의 ③이 金賢姬라는 것이었다. 이때 북한이 하기와라 기자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내놓은 것이 사진C다 .
하기와라 기자와 북한이 「사진 속 김현희」를 놓고 공방을 벌이는 과정에 서 북한이 반박하기 위해 내놓은 사진 속에는 공교롭게도 金賢姬의 모습이 등장하고 있다. 사진C의 ③번 소녀가 金賢姬인 것이다. 사진 C의 ④번 소 녀가 북한이 주장하는 정희선 여인이다.
나중에 밝혀진 일이지만 하기와라 기자가 처음 사진을 공개하며 지목한 「金賢姬인 듯한 소녀(사진A의 ④번 소녀)」는 金賢姬가 아니었다. ①번 소녀 에 가려져 있는 ③번 소녀가 金賢姬였던 것이다. 비록 최초 공개 사진에서 金賢姬를 잘못 지적하기는 했지만 하기와라 기자의 사진 공개는 金賢姬가 북한 여자임을 증명하는 후속자료들이 쏟아져 나오게 하는 계기가 됐다.

차관급 대우의 공작원 출신 귀순자:『친필 지령 물증 원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

결정적인 것은 사진 B다. 북한과 하기와라 기자의 공방이 계속되자 역시 남 북조절위 행사를 취재했던 요미우리(讀賣) 신문 三石英昭 기자가 사진 B를 하기와라 기자에게 건네 준 것이다. 이 사진에서는 金賢姬의 모습이 확연 하게 드러난다. 이 사진의 ③번 소녀가 金賢姬로, 누가 봐도 한눈에 金賢姬 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하기와라 기자는 사진 B로 북한과의 지루한 공방을 끝낼 수 있었고, KAL 8 58기 폭파사건 조작설에 쐐기를 박게 된 것이다.
玄씨는 金正日의 친필 지령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金賢姬의 자백만 있지 물증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북한에서 남한으로 치면 「 차관급 대우를 받았던」 공작조 조장으로 있다가 지난 1976년 귀순한 金用珪(김용규)씨는 『나도 친필 지령을 몇 번 받았지만 친필지령을 휴대하는 공작원은 없다』면서 『공작 원칙상 구두로 「수령님의 친필 지령이 있었다 」는 사실이 통보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친필 지령을 물증으로 원하는 것은 북한의 대남 공작 수법을 전혀 모르는 무지의 소치에서 비롯된 일』 이라고 덧붙였다.
金正日이 KAL 858기 폭파를 지시했다는 증언은 金賢姬 외에도 또 있다. 19 97년 2월 탈북한 黃長燁(황장엽) 前 노동당 비서는 그동안 줄기차기 이 사 건이 金正日의 지시로 저질러졌음을 증언해왔다. 지난 9월28일에도 국회 정 보위의 국정원에 대한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 『북한은 고도의 독재국 가로서 그 기본속성은 폭력과 테러이며 아웅산 폭파 사건이나 김현희의 대 한항공기 폭파, 김포 공항 폭발물 사건 등은 金正日이 주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玄씨는 북한이 88올림픽의 공동 개최를 전제로 경기장, 선수촌, 도로 등의 부대시설 건설이 한창이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를 근거로 당국의 북한이 88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폭탄테러를 했다는 발표에도 의문을 던지고 있 다.
북한이 당시 아파트 건설, 도로 건설 등을 한창 벌였던 것은 사실이다. 88 올림픽을 남한과 공동개최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이듬해인 1989년 7월에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준비하기 위해 1986년부터 공사를 벌였던 것이 다. 이때 건설된 게 도로폭 100m에 총연장 6㎞ 규모인 광복거리다. 주변으 로 호텔, 고층아파트, 학생소년궁전, 체육 시설 등이 있다.
玄씨는 金賢姬의 아버지가 앙골라 주재 외교관이 아니라는 사실도 조작 의 혹의 하나로 들고 있다. 당시 수사를 담당한 前 국정원 과장 고모씨는 『김 현희의 아버지 김원석은 사건이 발생한 당시에는 외교관이 아니라 앙골라 주재 북한 무역과 관련된 부서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면서 『당시는 아니었지만 김원석은 전직 외교관이었고 북한 외교관 명단에서 확인한 사실 』이라고 말했다.
콩고 주재 북한대사관 일등서기관으로 근무하다가 1995년 3월 귀순한 고영 환씨는 『당시 김원석씨는 대외경제사업부 앙골라 기술협조단 대표로 있었 다』면서 『당시로서는 외교관은 아니었지만 정부관리였다』고 말했다.
大選을 하루 앞둔 상황에서 金賢姬를 서울로 압송한 것도 조작 의혹 중 하 나로 거론된다. 극적인 상황을 만들어 당시 여권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토 록 했다는 것이다. 前 국정원 고모씨는 이에 대해 『우리의 일정에 맞춘 게 아니라 바레인 당국의 일정에 맞추게 된 것』이라면서 『김현희를 압송하 러 갔을 때 바레인 정부 내 일부 장관의 이견으로 시간이 지연돼 압송이 지 연됐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기내식을 서울에서 준비해 갔는데 일정에 차질을 빚어 음식이 모두 상해 못 먹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고 덧붙였다.
玄씨는 정부 당국의 발표와 金賢姬의 수기, 이 사건을 추적한 일본 프리랜 서들의 주장을 비교해본 결과 서로 틀린 부분이 80여 곳에 이른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金賢姬가 내린 기차역이 다르다든지 金賢姬가 묵었던 곳으 로 진술한 호텔방의 번호가 실제 답사 결과 해당 호텔에는 없는 방 번호라 든지 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 의혹은 오히려 KAL 858기 폭파사건이 조작되지 않았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다. 만약 조작이라면 적어도 그 호텔에 없는 방번호가 수사발표 에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작성된 시나리오대로 움직였을 것이기 때문이 다.

이 사건이 조작되지 않았다는 가능성에 무게를 주는 것 중 하나는 테러국 지정과 관련된 미국의 독자적인 조사다. 미국은 북한을 테러국으로 지정하 기 前 金賢姬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당시 美 정부 요원으로 金賢姬를 직접 조사한 사람의 증언은 다음과 같다.
『美 의회에서는 북한에 대한 테러국 지정에 앞서 독자적인 조사의 필요성 이 지적됐다. 우리는 김현희를 안가에 데려가서 20여 일 동안 조사했다. 먼 저 그녀가 사용하는 용어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용어 사용 등에 있어서 그 녀는 절대 남한 사람일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미국에서는 북한 공작 부서 근무자들의 얼굴 사진을 서울로 보내왔다. 나에 게도 사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려 주지 않았다. 그 사진을 보여 주면서 김현희에게 그 가운데서 누가 KAL 858기 폭파사건에 관여했는지를 지적하 게 했다. 그녀는 두 사람을 찍었다. 내가 그 사진을 본부에 알려 줬다. 두 사진 중 한 명은 김현희가 김승일과 머물렀던 부다페스트 주재 북한 관리 인 한송삼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이용혁이었다. 우리는 김현희와 김승일이 머물렀다는 동유럽의 집 구조를 사전에 정확하게 파악한 후 김현희에게 그 집의 구조 등을 물어보았다. 그녀는 우리가 파악한 대로 집의 구조를 정확 히 진술했다. 우리는 그녀가 북한 공작원임을 확신했다』

이런 직접 조사를 토대로 美 국무성은 1988년 2월4일 美 하원 외무위의 「 아시아 태평양 소위」 주재 KAL 858기 폭파 청문회에서 다음과 같은 조사결 과를 발표했다.
▲북한의 이같은 행위는 하룻밤 사이에 감행된 것이 아니라 치밀한 계획, 집중적인 훈련, 두 공작원에 대한 세뇌작업, 북한 해외공관의 협력과 지원 에 의한 것이다

▲북한 공작원은 과거에 체포됐을 때 자살용 캡슐을 사용했 다. 두 공작원이 소지했던 청산염 캡슐을 분석한 결과 과거에 체포된 북한 공작원들이 소지했던 캡슐과 화학적으로 동일했다

▲일본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김현희가 소지한 위조 일본 여권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서류를 제공 한 인물은 일본이 북한 공작원이라고 판단 추적한 인물이다

▲미국 전문가 들은 김현희가 사용한 위조여권이 매우 정교하기 때문에 한 국가의 정보기 관이 만들었음이 거의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수준의 정교한 위조 를 할 수 있는 테러단체는 아직 없다

▲우리는 미국 이외의 정보 소식통으 로부터 김현희와 김승일이 빈과 베오그라드 주재 북한 대사관의 암호전화번 호를 가지고 여행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청문회에서는 이같이 김현희를 북한 공작원으로 확신하는 내용이 발표됐다 . 미국은 한국 당국의 발표에만 의존한 게 아니라 치밀한 조사를 밑바탕으 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게 된 것이다.
기자는 이 사건을 취재하는 도중에 사건 당시 反美청년회 의장을 맡았던 조 혁씨를 만날 수 있었다. 1987년 당시는 전대협을 중심으로 한 학생운동권이 막강한 힘을 과시하던 때였다. 反美청년회는 전대협 핵심조직을 장악한 명 실상부한 전대협의 배후 조직이고 KAL 858기 폭파사건 조작의혹설의 진원지 였다.

조작설의 진원지 反美청년회 의장 조혁의 고백

고려대 82학번인 조혁씨는 1986년 고대애국학생회 배후 조종으로 수배를 받 는 상태에서 反美청년회를 조직했다. 1994년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될 때까지 조씨는 만 8년 간 지하운동을 했다. 기자를 만난 조씨는 『아직도 대한항공기 폭발사건이 조작됐다고 믿는 사람이 있냐』면서 『나도 그 사 건과 관련해 업보가 있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조씨의 KAL 858기 폭파사건 과 관련된 증언.
『1987년의 분위기는 金泳三, 金大中씨 두 명이 야권 후보로 나서기는 했지 만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정세판단을 하고 있었다. 그러는 과정 에서 선거를 앞두고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이 났다. 군부 정권에 대한 불신이 심했던 그때 우리는 막연히 그와 유사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이 터진 것이다. 범죄구성 이론을 보면 어떤 사건이 났을 때 그 사건을 통해서 누가 이득을 보는가를 따져보는 게 당연한 일이다.
당시 생각으로는 집권 측, 즉 노태우 후보가 이득을 보는 것으로 당연히 분 석됐다. 당시 우리는 주사파로 북한 방송, 정확히 말해 구국의 소리를 항시 듣고 있었다. 의심을 하고 있던 차에 북한 방송에서는 대한항공 폭파사건 이 남한의 자작극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나는 反美청년회 선전기관인 자주 언론팀에 이 사건과 관련된 자료수집을 지시했다. 주로 일본에서 나온 자료 들이었는데 조총련계를 통해서 많은 자료를 수집했다.
그 자료들은 나중에 힘출판사에서 「의혹 속의 KAL기 폭파사건」이라는 단 행본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수집한 자료를 우리는 자주언론특별호라는 이름 으로 인쇄해 돌렸다. 조직원들이나 우리의 협조자들을 통해 대학가를 중심 으로 대자보를 붙였다. 워낙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대자보 역사상 가장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으로 기억된다. 국회의원들에게도 비밀리에 보냈고 몇몇 국회의원은 관심을 표명해오기도 했다. 그러나 더 이상의 진전은 없 었다』

―당시에는 조작설을 확실하게 믿었나.
『그렇다. 우리 조직은 확실하게 믿었고 당시 우리가 판단한 정세분석을 바 탕으로 했을 때에는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다만 외부로 주장할 때는 「이건 조작이다」고 단정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번 내외저널의 제목처럼 「의혹이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우리의 전술이었다.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보다는 의혹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대중적인 관심을 더 불러일으키고 생각을 하게 만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야 의구심이 더 커지는 것 아닌가(웃음)』

―그때는 정세분석에 오류가 있었다는 말인가.
『오류라고까지 하기는 뭣하지만 중대한 판단착오가 있었다. 대한항공기 테 러로 이득을 보는 것이 남한 집권측이라는 판단이 그것이다. 나는 대한항공 기 폭파가 남한 大選에는 막대한 영향을 주지만 북한에는 무슨 이득을 주겠 는가 하고 생각했었다. 올림픽이라는 걸 생각 못했던 것이다. 그만큼 내가 어렸던 것 같다. 올림픽은 남한의 군사 정부에게 상당한 억제력으로 작용 했다고 본다. 계엄령을 선포하고 싶어도 계엄령 아래서 올림픽을 치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올림픽이 남한 사회의 민주화의 큰 진전을 가져다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북한은 남한의 민주화가 싫었을 것이다. 또 올림픽은 국제사회에서 남북의 위상 차를 더 벌리는 계기가 될 수밖에 없었고 실제로 남북간의 위상 차는 더 벌어졌다. 남한 사회의 민주화와 발전이라는 게 북한으로서는 꽤 아픈 일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북한은 이 사건으로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돼 국제 사회에서 경제제재를 받 는 등의 불이익을 받고 있지 않은가.
『사건이 발생한 1987년에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된다고 해서 두려울 일이 뭐가 있었겠나. 당시로서는 북한을 도와 주는 소련과 중 국, 동유럽이 건재하고 있었지 않은가. 북한은 미국이 아쉬울 일이 없었다 고 본다』

―그 당시 KAL 858기 폭파사건에 대해 품었던 의문은 사라졌는가.
『상식의 차원에서 말하겠다. 만약 조작이라면 김영삼, 김대중씨가 대한항 공 폭파사건의 최대 피해자다. 사건의 진실을 가장 알고 싶었던 사람들이 그들일 것이다. 그들은 지금 이 나라에서 가장 힘이 센 대통령을 역임했거 나 현직 대통령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1988년 1월15일 당국이 발표한 이 사 건의 진실은 바뀌지 않고 있다. 의문이 사라지는 것은, 사라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조혁씨에게 『그때 조작설 자료를 수집하고 유포시켰던 反美청년회 회원들 중에 아직도 조작설을 믿는 사람이 있는가』를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 답했다.
『아마 없을 걸요』 조혁씨를 만나고 돌아오면서 기자는 전직 국정원 과장의 말이 떠올랐다.
『북한의 주장대로 김현희가 북한 사람이 아니라면 왜 그녀의 얼굴이 텔레 비전 화면을 타고 全세계에 알려졌는데도 가족은 물론이고 학교를 같이 다 녔다는 사람, 심지어 한 마을에 살았다는 사람조차 단 한 명도 14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는 걸까요』

그는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며 한 마디를 더 했다.
『만약 조작을 했다면 정권이 두 번이나 바뀌는 동안 조작에 참여했던 사람 중에 진작 양심선언자가 나와야 했을 겁니다. 그런 조작이라면 한 두명으 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닐 테니까요』
KAL 858기 폭파사건의 진상은 상식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 게시물은 선장님에 의해 2014-02-02 11:16:08 미스테리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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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지단님의 댓글

선장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p>아직도 대한항공은 영국의 로이드 보험사에 보험을 청구하지 않고 있다.  왜?? </p><p>이 사건은 북한과는 관계없는 자작극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배후에는 미국이 있을 수 밖에...</p><p>이 사건으로 북한은 경제제재를 받는 테러범죄국이라고 미국이 지맘대로 낙인을 찍었는데....</p><p>언젠가 꼭 밝혀질 것이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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