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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에 우리나라 최초의 (애국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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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흑나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댓글 1건 조회 1,214회 작성일 05-03-01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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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칼럼/國歌 작사자도 모르는 나라]

우리나라 국가 제정은 대한제국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은 국가 상징물로 애국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901년 의정대신 윤용선에게 국가(國歌) 제정을 명령한다.

이때 윤용선은 조선 왕립군악대 지도자로 초빙된 독일인 프란츠 에케르트(1852~1916)에게 부탁, 이듬해인 1902년 7월1일 작곡을 완료했다.

이때 작곡된 국가의 정식명칭은 ‘대한제국 애국가’다. 기독교의 찬송가풍으로 작곡된 이 애국가는 처음 독일에서 한국어·중국어·프랑스어·독일어·영어 등 5개 언어로 출간되면서 우리나라 최초로 공식 국가로 인정을 받았다. 이후 1902년 9월9일 고종탄신일 기념식장에서 초연됐으며 관립학교, 군악대 등에서 연주됐다.


그러나 한일합방으로 한국 최초의 국가는 더 이상 불리지 못했다. 1910년 조선총독부가 국가에 대한 가창 금지 조치를 취하면서 ‘대한제국 애국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다. 공식 국가가 불리지 못하면서 민간에서는 윤치호가 지었다는 노랫말을 영국의 민요 ‘올드랭 사인’에 붙여 애국가 대신으로 사용했다.


현재 부르는 애국가는 1935년 안익태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학 중 작곡한 것을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께 국가로 제정했다. 하지만 애국가 작사자는 분명치 않다. 윤치호설·안창호설·김인식설·최병헌설·민영환설·윤치호·최병헌 합작설 등이 제기됐으나 크게 윤치호설과 안창호설이 대립해 있다.


윤치호가 애국가의 작사가라고 주장하는 쪽은 윤치호 자신이 설립한 한영서원 교재로 찬미가를 편찬해 보급하고 1945년 10월 자결하기 전 애국가 가사를 옮겨 쓴 ‘가사지’를 남겼다는 것을 주요 증거자료로 삼는다.


안창호가 애국가의 작사자라고 하는 쪽은 그가 세운 대성학교 학생들에게 애국가를 매일 부르게 한 배경과 안익태가 미국 유학시절 애국가의 작사자가 안창호라고 들었다는 점, 그리고 주요한과 이광수가 각각 자신의 글에서 “애국가 끝구절 중 ‘임군을 섬기며’를 ‘충성을 다하여’로 도산이 분명히 수정하였다”며 “도산이 상하이 임시정부 내무총장 시절 정청(政廳)에서 매일 이 애국가를 부르게 했다”고 주요 근거로 주장한다.


1950년대 당시 정부가 애국가 작사자를 안창호라고 결정한 바 있으나 윤치호의 후손들이 반발해 시작된 이 논란은 반백년이 넘었다. 그런데 지난 8월13일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 이동국 큐레이터가 1910년대에 하와이에서 발간된 애국가 악보를 최근 서울 인사동 고서점가에서 입수, 언론에 공개했다. 해외에서 불린 애국가가 악보와 함께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KOREAN OLD NATIONALHYMNC(조선의 옛국가)’이라는 붉은 영문 제목과 함께 ‘죠션국가’라고 이를 붙인 이 자료는 악보와 함께 한글가사를 담았다.


“상뎨는 우리나 - 라를 도으 - 소셔! 영원 무궁토 - 록 / 나라 태평 ㅎ고 인민은 안락 ㅎ야 / 위권이 셰상에 덜 치 - 여 / 독립 자유 부강을 일신케 ?소서 / 상뎨는 우리나 - 라를 도으 - 소 - 셔”라고 돼 있다. ‘샹데(上帝)는 하느님이란 뜻이다. 또 악보 아래에는 붉은색 글씨로 ‘하와이 호놀룰루의 코리안 아메리칸 클럽에서 간행됐다’고 인쇄처가 명기돼 있으며 25센트라고 악보의 가격도 표시돼 있다.


애국가 작사자를 연구해온 국가상징연구회 김연갑 대표간사도 애국가 가사를 영문으로 싣고 작사자를 윤치호(Chiho Yun)로 명기한 ‘National Anthems-And How They came to be written’을 미국에서 입수해 같은 날 공개했다. 이 책자는 미국적십자사가 1951년 초판에 이어 1952년 찍어낸 수정판이다. 애국가의 윤치호 작사설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자료는 기독교 서지학자 신인수씨가 2003년 12월 공개한 미국 LA종우서관이 1931년 펴낸 ‘윤치호 쟉(작) 애국가’의 악보를 수록한 책 ‘셰(새) 계명쟉(작) 가곡집-무궁화’이다.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가 윤치호 단독 작사설을 심의했으나 ‘찬성 11, 반대 2’로 만장일치를 끌어내지 못해 결정을 유보, 애국가는 작사자 미상으로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 나라 국가의 작사자를 아직 모르는 것은 기구한 역사만큼이나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작사자가 윤치호인 지 안창호인 지 빨리 정부가 나서서 규명해야 한다. 이러다간 국가의 가사를 새로 만들자는 주장이 나올지도 모른다. /임병호 논설위원 경기일보 2004-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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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와이에 우리나라 최초의 (애국가)가 있다. (★★★★☆)


◈ KBS 프로그램 '스펀지'[2005.2.5.土]

우리나라 애국가 제정은 대한제국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은 국가 상징물로 애국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901년 의정대신 윤용선에게 국가(國歌) 제정을 명령한다.

이때 윤용선은 조선 왕립군악대 지도자로 초 독일인 프란츠 에케르트(Franz Eckert 1852~1916)에게 부탁, 이듬해인 1902년 7월1일 작곡을 완료한다.

이때 작곡된 국가의 정식 명칭은 '대한제국 애국가'. 기독교의 찬송가풍으로 작곡된 이 애국가는 처음 독일에서 한국어·중국어·프랑스어·독일어·영어 등 5개 국어로 출간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공식 국가로 인정을 받았다.

이후 1902년 9월9일 고종 탄신일 기념식장에서 초연됐으며 관립학교, 군악대 등에서 연주되었다. 그러나 한일합방으로 한국 최초의 국가는 더 이상 불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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