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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 암살 음모론 또 다시 '모락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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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식탐험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1,711회 작성일 07-05-20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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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2월 19일 공개된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총탄에 맞기 직전의 순간을 담은 영상 사진. 아마추어 사진 작가인 조지 제프리스와 그의 사위 웨인 그레이엄이 댈러스 소재 `6층 박물관'에 기증한 이 8mm 무성 컬러 영상은 총격 90초전에 촬영한 것으로 재클린 여사가 군중을 향해 손을 흔드는 장면은 물로 당시 케네디 대통령이 입고 있던 코트의 등 부분에 잡힌 주름까지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음모론 신봉자들은 시체와 재킷에서 발견된 총상의 위치가 서로 다르다는 점을 음모의 증거로 내세우고 있어 이 영상이 이러한 의혹을 어느 정도 풀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AP=연합뉴스)


- 케네디 암살 음모론 또 다시 '모락모락' -


케네디 암살은 오스왈드의 단독범행이 아니라는 주장이 또 다시 수면 위로 떠올라 케네디 암살과 관련한 의혹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전(前) 미 연방수사국(FBI) 소속 금속 전문연구원 윌리엄 토빈을 비롯한 탄환 전문가들은 '존 F 케네디 전(前) 대통령이 리 하비 오스왈드가 쏜 2발의 총탄을 맞고 암살됐다'는 미 정부의 결론을 반박, 당시 현장에서 발견된 총탄 파편 성분을 화학적·통계적으로 새롭게 분석한 결과 2발 이상의 총탄이 대통령을 관통한 것으로 보인다며 제2의 암살범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이어 탄환 전문가들은 이제껏 잘못된 증거에 근거해 케네디 전 대통령 암살이 단독범행에 의한 것이라 정당화해 왔다며 미 정부는 지난 1963년 대통령이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암살됐을 당시 몇 발의 총알을 맞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총알 파편들을 재수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워렌위원회로 알려진 케네디 암살 진상조사위원회는 지난 1964년 오스왈드의 총기에서는 3발의 탄환이 발사됐으며 이 가운데 1발은 빗나가고 2발만이 대통령을 관통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하지만 이 같은 결론에 의혹이 계속해서 제기되자 미 의회 하원은 오스왈드 이외에도 제2의 암살범이 존재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제2의 암살범이 쏜 총탄은 케네디 대통령을 맞추는 데 실패했다는 결론을 발표했다.

하원의 근거는 총탄 파편을 분석한 결과 파편들의 성분이 2개 이상의 총탄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유사했다는 것.

하지만 토빈을 비롯한 탄환 전문가들은 오스왈드의 총에서 나온 다른 탄환들도 모두 유사한 성분으로 이뤄졌으며, 더 나아가 탄환 30개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암살 현장에서 발견된 파편 가운데 1개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이어 "이는 암살에 사용된 탄환이 3개 혹은 4개였음을 의미한다"며 "만약 암살에 사용된 총탄 파편들이 3개 혹은 4개에서 나온 것이라면, 제2의 암살범이 존재한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뉴시스 배혜림기자 beh@newsis.com
입력 : 2007.05.20 06:00





<추가합니다>


[우태영의 글로벌 라운지] ‘케네디 암살’ 음모론이 살아나고 있다


사진#02
마피아 두목 지앙카나의 딸 "아버지의 지시" 주장한 책 출간··· 극우파 음모론도 확산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암살을 둘러싼 의혹이 요즘에도 끊이지 않고 있다. 케네디는 1963년 11월 22일 텍사스주 댈러스시에서 카퍼레이드를 벌이던 중 암살당했다. 범인은 오스왈드로 발표됐다. 오스왈드는 수사를 받던 도중 잭 루비라는 나이트클럽 지배인에 의해 살해됐다. 그리고 잭 루비는 수감 중에 사망했다. 이처럼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대통령을 암살한 범인과 그를 살해한 범인이 허탈하게 죽음을 당하게 되자 당연히 사람들은 뭔가 숨겨진 음모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케네디 암살사건 당시 시카고 암흑세계의 지배자로 군림했던 마피아 두목 샘 지앙카나의 딸 앙투아네트(70)가 ‘JFK와 샘:지앙카나와 케네디 암살 커넥션’이라는 책을 통해 “케네디 암살은 지앙카나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케네디가 마피아의 지원으로 대통령에 당선됐음에도 불구하고 마피아를 단속했기 때문에 암살 음모를 꾸몄다는 것이다.

케네디 암살을 둘러싼 음모설은 이것만이 아니다. 미국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은 1991년 ‘케네디 암살은 미국 군산복합체 등 극우세력의 음모’라는 내용의 영화 ‘JFK’를 제작해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처럼 케네디 암살을 음모론적인 시각에서 보는 출판물이나 영상물이 미국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는 미국인의 상당수가 ‘케네디 암살은 오스왈드의 단독범행’이라는 정부의 발표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2003년 ABC방송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도 미국인의 70%는 음모론을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응답자의 51%는 ‘오스왈드말고도 제2의 암살범이 있다’고 답했다. 오스왈드의 단독범행을 믿는 사람은 32%에 불과했다. 특히 음모론의 신봉자는 1960년대의 40%에서 세월이 흐를수록 증가하고 있다.

음모론이 나오는 정황

젊고 잘 생긴 영웅적인 인물이 뜻을 다 펴지못하고 죽으면 사람들은 못내 아쉬워하며 전설과 소문을 만들어내는 법이다. 그런 것말고도 케네디 암살의 경우는 음모론이 들어설 정황이 충분하다.

첫째, 당시는 미·소 냉전의 절정기였다. 많은 미국 사람은 ‘미국 대통령을 죽인 것은 소련의 공작원’이라는 생각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소련이 본격적인 핵공격을 하기 전에 미국 대통령을 살해해 미국 전체를 무력화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했다. 때문에 미국의 정치 지도부는 대중에 ‘소련이나 쿠바의 공격은 없다’는 점을 확인시켜야 했다. 미국의 정치 지도부가 공산주의자들의 음모에 대한 공포를 걷어내기 위해 먼저 한 일은 ‘대통령 암살은 오스왈드의 단독범행’이라는 점을 믿도록 하는 것이었다.

사진#03

그러나 미국 정부는 이같은 사실을 확인시키기 위해서 그 이전에 CIA가 시도했던 쿠바 지도자 카스트로 암살계획 등을 은폐했다. 카스트로 암살계획이 드러날 경우 케네디 암살과 관련, 모종의 음모가 있지 않았는가 하는 의심을 살 것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나중에 카스트로 암살 계획이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진짜 정부가 뭔가를 숨겼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음모론을 갖게 됐다.

둘째, ‘CIA가 자료를 지나치게 은폐함으로써 음모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992년부터 1998년까지 케네디 암살을 조사한 암살기록검토국(Assasination Records Review Board)이 수천 쪽의 민감한 기록들을 공개했지만 CIA에는 아직도 미공개 문서가 쌓여있다. 1970년대에 CIA는 오스왈드가 암살을 행하기 이전에 멕시코시티에서 활동한 것에 관한 도청기록 등을 끊임없이 파괴했다는 사실이 미 하원조사위원회에 의해 드러났던 적이 있다. 이런 은폐 사례들이 끊임 없이 음모론을 유발하는 것이다.

암살사건 발생 당시의 정황도 의문투성이다. 하원 암살조사특별위원회를 자문했던 로버트 블레이키(Robert Blakey)는 “오스왈드를 포함해 2명의 암살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마피아 음모설

케네디는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마피아의 결정적인 도움을 받았다. 특히 루이지애나주에서는 카를로스 마르첼로, 일리노이주에서는 샘 지앙카나 등의 마피아 보스들이 유권자에 대한 협박과 매수를 통해 케네디의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케네디는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마피아들과 관계를 유지했다.

‘피그만(Bay of Pigs) 사건’으로 불리는 쿠바침공 작전이 실패로 돌아간 뒤에는 CIA에 대한 케네디의 불신은 극에 달했다. ‘피그만 사건’이란 CIA의 주도하에 쿠바 난민 등을 동원해 쿠바에 무력공격을 가한 사건이다. 이 사건 이후 케네디는 지앙카나의 마피아 조직을 이용해 카스트로를 제거하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앙카나로서는 케네디의 대통령 당선에 공헌한 데 이어 카스트로 제거에도 협력함으로써 권력의 편의를 얻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대통령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은 지앙카나 등 마피아 조직에 대한 단속을 강화해 나갔다.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는 그 순간에도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은 조직범죄 소탕에 대한 회의를 하고 있었다. 실제로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은 ‘대통령 암살이 행정부의 조직범죄 소탕과 쿠바 카스트로의 암살 시도에 대한 보복이 아닌가’ 하고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사진#04

지앙카나로서는 당연히 케네디에 배신당했다고 생각하게 됐다. 마피아들의 배신에 대한 징벌은 죽음뿐이다. 마피아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암살범 오스왈드가 잭 루비라는 조직범죄와 관련된 인물에게 살해당한 것은 조직범죄의 전형적인 일처리 방식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살인자를 살해해서 조직의 범죄 간여 사실을 은폐하는 것이 조직범죄 활동의 기본원칙이라는 것이다.

극우파 음모설

뉴올리언스의 지방검사인 짐 개리슨은 극우파 음모설을 제기하며 실제로 수사를 벌였던 인물이다. 개리슨 검사의 이야기는 영화 ‘JFK’의 바탕이 됐다. 그는 “케네디 대통령이 사망한 이유는 단 하나다. 소련 및 쿠바의 카스트로와 화해를 꾀했기 때문이다. 그를 암살한 사람들은 케네디가 공산주의 세계와 평화적인 관계를 달성하는 것을 방해하려던 광적인 반공주의자들이다”라고 주장했다.

개리슨에 따르면 음모의 하위 실행 레벨에는 반(反)카스트로 성향의 쿠바 난민사회가 있다. 이들은 케네디를 절대 용서못한다. 피그만 침공 당시 케네디가 쿠바 공산군에 대한 공중폭격을 거부해 자신들을 엄호하지 않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들은 1962년 10월의 쿠바 미사일 위기가 해소된 이후 미국이 쿠바와 화해하는 것을 매우 우려했다. 이들은 케네디가 자신들을 공산주의자에게 팔아넘겼다고 믿었다.

음모의 상위 통제 레벨에는 극우파들이 있다. 이들은 케네디의 평화적인 외교정책에 반대했다. 이들은 케네디가 소련과의 핵무기금지 조약에 서명하자 일을 벌였다. CIA는 1963년 늦여름까지 데탕트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CIA 자체가 반카스트로 공작을 지도하고 지원했기 때문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 해소 이후 케네디는 쿠바를 겨냥한 CIA의 공작을 축소시키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63년 7월 31일 FBI는 쿠바 난민과 극우 민병대의 훈련소를 급습해 무기와 탄약을 몰수했다.

1963년 초가을에 이르러 케네디와 쿠바와의 화해무드는 급진전됐다.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과 카스트로의 대리인인 체 게바라가 만나 협상을 벌일 계획이 추진됐다. 미국의 아들라이 스티븐슨 유엔대사는 양국간 적대관계의 청산 가능성에 대해 연설했다. 케네디의 안보보좌관인 맥조지 번디는 “대통령이 댈러스 방문 직후 양국 관계의 정상화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케네디 암살 이후 번디 보좌관은 “쿠바계획은 동결됐다”고 말했다.

카스트로도 그 해 11월 23일 케네디 암살을 “미국 내에서 평화에 반대하는 세력이 꾸민 일”이라고 말했다. 쿠바 외무부는 “케네디 저격은 세계평화에 반대하는 미국 내 가장 반동적인 부문에 의해 완벽하게 계획된 도발”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케네디와 카스트로 간의 화해 시도는 2003년 사실로 확인됐다. 케네디가 암살되기 불과 17일 전 카스트로와의 비밀특사 교환을 승인한 사실이 2003년 11월 24일 비밀해제된 녹음테이프에서 드러난 것. 테이프에 따르면 케네디는 당시 미국 특사를 아바나로 보내 카스트로와 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에 대해 번디 안보보좌관과 논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테이프에는 카스트로가 양국간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기 위해 미국 외교관을 아바나로 초청해 비밀회담을 갖자고 제의한 것을 번디 보좌관이 케네디에게 설명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케네디는 “이 회담에 대한 미국의 공식개입을 그럴 듯하게 부인할 수 있을 경우 비밀회담을 추진해도 좋다”고 승인했다. 미 문서국의 한 분석관은 AF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는 케네디가 적대적인 미·쿠바 간의 관계 변화를 원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런 구상이 결실을 얻으려는 순간 일어난 암살은 양국간의 끊임없는 반목의 역사에 ‘만일’이라는 큰 가정으로 남는다”고 평가했다.

극우파 음모론에 따르면 케네디의 암살범은 오스왈드가 아니다. 오스왈드의 역할은 암살범이 좌익이라는 점만 드러내는 한편 실제로 대통령을 살해한 사람들이 경찰의 주목을 받지 않고 댈러스를 빠져나가게 하는 것이었다. 케네디를 쏜 것은 7명으로 구성된 게릴라팀이었다는 것. 여기에는 반카스트로 모험주의자, 극우민병대 등이 포함돼 있다. 케네디를 향해서는 5~6발이 앞과 뒤에서 최소한 4명의 저격범에 의해 발사됐다. 그리고 증거인멸을 도운 자들이 있다. 두 사람은 탄피를 주웠으며 암살범들 주위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일을 했다. 오스왈드는 암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케네디 암살을 조사한 워런위원회는 ‘오스왈드가 순간적으로 미쳐서 대통령을 쏘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또 그가 체포되기 직전 경찰관을 살해한 것도 순간적인 광기에 의한 짓이고, 마지막으로 잭 루비가 오스왈드를 쏴죽인 것도 순간적인 충동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 사실 3건의 살인이 모두 우발적인 광기에 의한 충동으로 결론지어졌다는 점은 쉽게 수긍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오스왈드 암살범 잭 루비

잭 루비가 오스왈드를 살해하자 당시 언론들은 환호했다. 루비의 변호인은 “루비가 의회메달을 받아야 한다”고 할 정도였다. 뉴욕데일리뉴스는 ‘좋은 살인범은 사망한 살인범뿐이고 좋은 공산주의자는 죽은 공산주의자일 뿐’이라고 썼다. 루비는 국가적으로 증오받는 인물을 죽이면 무죄로 나올 것으로 생각했지만 감옥에서 썩게 됐다. 1년쯤 지나자 그는 댈러스 감옥에서 워런위원회에 증언을 할 수 있도록 불러달라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내가 왜 범행을 저질렀는지를 말하고 싶지만 여기서는 할 수 없다. 나는 지금 위험에 처해있다”고 했다.

잭 루비는 감옥에서 암으로 사망했다. 이에 대해 그의 동료인 데이비드 페리가 암세포를 주입했다는 설도 있다. 페리는 암에 관심이 많아서 한때 집에서 쥐를 2000마리나 키웠으며 쥐에 암세포를 주입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논문을 쓴 적도 있다. 그런데 잭 루비는 ‘댈러스 이외의 지역에서 재판하라’는 판결이 난 지 몇 주일 후, 즉 그가 바라던 대로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된 판결을 받고 나서 암으로 사망했다.

사진#05

루비의 동료인 페리는 CIA에 충원돼 반카스트로 운동에 가담했던 인물이었다. 케네디 암살 직후 페리는 CIA로부터 돈을 받지도 않았으며 반카스트로 운동에서도 떨어져 나갔다. 그는 다량의 진정제 등 약물을 복용하며 살았다. 그가 암살에 죄책감을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생의 마지막 몇 달 동안 그는 고문당하는 사람 같았다. 페리는 공식적으로는 자연사했다고 발표됐지만 당일 작성한 유서가 있다. 유서에는 “고통스런 삶을 끝내는 일이 얼마나 달콤한가”라고 써 있었다. 유서를 쓴 그날 자연사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을까.

사진#06
<잭 루비에게 암살당하기 직전의 오스왈드>

사진#07
<잭 루비에게 암살당하는 오스왈드>


[주간조선 2005-10-25 13:50]
우태영 조선일보 출판국 기획위원 (tywo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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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세이야님의 댓글

세이야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케네디 전 대통령은 원래부터 대통령되는 순간부터 적을 만들어버린 겁니다.
한나라의 지도자이기는 하지만, 믿던 사람들을 적으로 돌리면서 죽음의 길로 들어섰다고 봅니다.
물론, 음로론에 숨어있는 사람들이겠지만요..

갈림길님의 댓글

세이야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제 견해론, 오스왈드는 그저 시나리오의 한 역할구성원이었고- 즉 정보부의 검은 팀에 놀아난 거였으며-.암살(저격)자는 여러명이었던 걸로..
그리고, 만일 저 당일날 살았다러라도 훗날 곧 죽을 운명이었을 것으로..
그는 좀 더 (반보수적)민주적이게 진취적 특성을 지녔고 (프로젝트들에 관한등등)욕심이 많이 있었던 자 같다..
그리고 자신이 보기에 불의를 행하는 권력자(악당)들과 타협하기를 싫어하는 것 같다..

미국은 겉으론 민주적 절차에 의해 대통령이 당선된 듯 보여도, 사실은 거의 꼭두각시에 불과하거나 그들(?)과 내통해야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너무 빠른 변화의 추구는 자신의 힘이 보다 우월하게 강하지 않는 이상,
실패하거나 반감 및 반란을 맞기 쉽다. 그게 인간사의 대체적 통계이다.
아뭏든 미국을 더욱 해킹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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