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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공대 사건…음모냐, 권총 기술의 진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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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타는필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8건 조회 1,738회 작성일 07-05-02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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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공대 사건…음모냐, 권총 기술의 진화냐

[서울경제 2007-05-02 10:03]


9mm와 22구경 권총으로 50명 이상 사상 불가능하다는 시각 많아
외형은 과거와 비슷하지만 성능이 급속 발전해 가능하다는 분석도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버지니아 공대 사건은 한손으로 쏘기에는 무리라는 9mm 권총과 호신용 정도인 22구경 두 자루로 50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거나 다치게 했다는 점에서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권총의 외형은 과거와 비슷하지만 성능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한 것이 이유일 것이라는 시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장면 1>

지난 1902년 필리핀의 민다나오 섬. 미군이 고민에 빠졌다. 원주민의 저항이 완강했기 때문이다. 미국-스페인 전쟁 승리(1898년)로 필리핀을 넘겨받았지만 스페인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던 모로족 원주민은 복종을 거부하고 나섰다.
전투의 주요 무대는 밀림. 모로족 전사들은 울창한 밀림에 숨어 칼과 창, 활로 미군을 공격했다. 미군은 자연스럽게 권총을 주요 무기로 삼았다. 근접전 또는 백병전이 많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권총의 위력이 통하지 않았다는 점. 당시 미군의 제식 권총이던 38구경 롱 콜트 리볼버가 발사한 탄알을 복부나 대퇴부에 3~4발씩 맞고도 원주민들은 도끼를 들고 달려들었다.

원주민과의 전투에서 간신히 승리한 후 미군은 보다 강력한 권총을 찾았다. 마침 오스트리아의 루거가 회전식 리볼버가 아닌 탄창식 반자동 권총을 개발했던 터. 반자동에 강력한 위력이 있어야 한다는 미군의 요구는 콜트 45구경 반자동 권총을 탄생시켰다.

‘손 대포’로 불리는 콜트 45구경은 요즘도 한국군 일부에서 사용되고 있다. 미군도 80년대 초반까지 이 권총을 사용했다.
콜트 45구경을 대체한 총기는 이탈리아 베레타사의 M92F. 미군이 M-9이란 제식 명으로 베레타를 채용한 이후 세계 권총의 대세는 45구경에서 9mm로 바뀌었다.

45구경 탄환보다는 위력이 약하지만 9mm는 탄창의 장탄 수가 많고 총의 반동도 상대적으로 작다는 점이 장점. 버지니아 공대 총기 사건에서 사용된 두 자루 권총 중의 하나인 글록 19가 바로 9mm급 권총이다.

<장면 2>

1979년 10월 25일 밤 서울 궁정동. 박정희 대통령을 모시고 저녁 겸 술자리를 갖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미리 감춰둔 권총을 뽑아 배석한 차지철 경호실장에서 제1발을 발사했다.

제2발이 향한 곳은 박 대통령. 김재규가 총을 겨눴을 때 손바닥으로 제지했던 차지철은 이 순간 화장실로 도망쳤다. 김재규가 박 대통령에게 제3발을 발사한 순간, 총알이 나가지 않았다. 격발 불량.

당황한 김재규는 방 바깥으로 나가 부하의 38구경 리볼버 권총을 받아 만찬장으로 들어와 차지철과 박 대통령에게 총알을 안겼다. 이 대목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최초의 총격을 받았던 차지철 경호실장의 부상이 '손 바닥 관통상'이었다는 점.

저녁상을 마주한 거리에서 발사했지만 치명상을 주지 못한 김재규의 권총은 독일제 발터 32구경 반자동 권총. 영화 007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가 사용한 바로 그 총이다. 버지니아 공대 사건에서 사용된 두 자루 권총 중 하나인 발터 22구경 권총과 제작사가 같다. 차이는 김재규의 32구경이 22구경보다 위력이 강하다는 정도다.

<장면 3>

1998년 1월 11일 충청남도 천안 목천면 태화산 기슭. 사복 형사 두 명이 신창원을 덮쳤다. 신창원은 이미 두 차례나 경찰에 걸려 가스총을 맞고도 격투 끝에 도주해 경찰이 검거에 총력을 다했던 탈옥수. 형사들에게 실탄이 장전된 권총이 지급된 것도 검거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신창원에 대한 3차 검거 시도에서 권총이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는 점. 형사 한 명과 신창원이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는 동안 최 모 경장이 신창원에게 총을 발사했지만 총알이 나가지 않았다. 격발 불량 탓이다.

이번에는 김 모 경사가 자신의 권총을 뽑아 신창원의 다리를 노려 4발을 쐈지만 단 한발도 맞추지 못했다. 신창원은 결국 또 다시 도망치고 두 형사는 정직 3개월씩을 먹었다. 권총 두 자루가 범인 하나를 잡지 못한 것이다.

형사 두 명이 사용했던 권총은 국산 22구경 권총. 최대 장탄 수가 10발인 권총의 탄창에 두 형사들은 4발만 끼어 넣었다. 10발을 모두 삽탄하면 스프링이 탄알을 약실에 밀어주지 못하는 현상이 자주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 총은 버지니아 공대 사건에서 사용된 총의 하나와 구경과 위력이 똑 같다.

버지니아 공대 사건을 둘러싼 음모설

권총이 사용된 위의 세 가지 장면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권총의 위력이 생각보다 강하지 않다는 점. ‘여성용 액세서리’로도 불리는 22구경보다 강한 32구경 권총에서 발사된 총알을 상 건너 거리에서 맞고도 손바닥 관통상을 입은 게 바로 그것이다.

두 번째는 반자동 권총의 격발 불량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탄창에 총알을 많이 넣으면 넣을수록 송탄 불량의 확률도 높아진다.

군에서도 소총을 사격할 때 봤♣?최대 용량인 30발을 다 채우는 경우가 드문 것과 같은 이치다. 여기에 격투중이라고는 해도 바로 앞에서 발사한 4발이 다 빗나갈 만큼 명중률이 낮다는 것.
역시 권총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버지니아 공대 총격 사건을 둘러싸고 음모론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45구경보다는 반동이 적지만 한 손으로 쏘기에는 무리라는 9mm 권총과 간신히 호신용 정도인 22구경 권총 두 자루로 50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거나 다치게 하려면 고도로 훈련 받은 킬러나 가능하다는 의문이 음모론의 골자다.
음모론과 관계없이 한정된 시간에 한 사람이 수많은 사람들을 살상했다는 자체가 신기록에 해당된다. 버지니아 공대 총격 사건 이전까지 최악의 학원 내 총기 사고라는 1999년의 콜롬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에서도 2명이 900여발의 총탄을 발사했는데, 사망자는 13명이었다. 월남전에서는 탄환 10만발 당 사망자 1인이라는 추정도 있다.

어떻게 전문 킬러도, 첩보원도 아닌 용의자 조승희씨가 그토록 많은 사람을 살상할 수 있었을까. 가능성은 두 가지다.
첫째는 음모론의 연장선이다. 조씨가 자살한 사람으로는 보기 어렵게 복부와 두부 등에 3발의 총상을 입었으며, 특히 두부 총상의 위치가 머리 뒤쪽이라는 점 등 음모론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정황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두 번째 가능성은 권총의 성능이 상상 이상으로 발전했다는 가설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메커니즘이 달라진 게 없지만 성능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달했다는 것이다.
두 가지 상반된 견해 중 어느 게 맞을까. 시간이 규명해 줄 문제지만 후자가 보다 ‘과학적’이다. 추측의 수준을 떠나 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글록 19 권총과 발터 22구경

조씨의 주 무장인 글록 19 권총은 오스트리아 슈타이어사가 생산하는 글록 시리즈의 일종. 단순한 외형과 함께 ‘프라스틱 총’으로 유명하다. 글록은 유명 메이커가 즐비한 총기 시장에서 신생업체가 성공한 대표적 사례로도 손꼽힌다.
글록의 창립은 1963년. 가스톤 글록이라는 엔지니어가 회사를 만들어 1980년까지 대검과 삽, 훈련용 수류탄 등 간단한 군용 소모품을 제작하다 오스트리아군의 신형 권총 채용 공모에 응해 권총 개발에 나섰다. 당시 오스트리아군의 요구 사항은 간단하고 단순하며 확실한 안전장치, 장탄 수 증가와 경량화.

총기 제작 경험이라고는 전혀 없던 글록사는 이런 기준을 모조리 충족시키는 명품을 선보였다. 모래와 진흙탕, 고온과 저온 등 극한 환경에서의 사격을 포함한 1982년 오스트리아군의 혹독한 평가시험에서 글록은 다른 출품작보다 뛰어난 성능을 발휘해 군용 권총으로 채용됐다.

글록의 성공은 오스트리아군과 경찰에 대한 납품으로 끝나지 않았다. 저렴하고 뛰어난 성능, 콜트 45구경의 두 배를 넘는 17발의 장탄 수 등 장점이 알려지면서 서방국가 경찰들은 글록을 ‘끝내주는 9mm(wonder-nine)’라고 부르며 찾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외부로 돌출된 공이치기가 없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혔다. 주머니나 홀스터(권총 집)에서 총을 꺼낼 때 거추장스러운 부위를 없애버린 단순함으로 글록은 미국 경찰의 60%가 사용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조씨의 범행에 사용된 글록 19는 경량화 모델. 콜트 45구경보다 절반 이상 가벼워졌다. 장탄 수가 15발로 줄어들었을 뿐이지만 30발들이 연장형 탄창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범용성과 호환성도 갖춘 모델이다.

시리즈의 생산량 누계는 250만정 이상으로 알려지고 있다. 글록을 인수한 슈타이어사는 망하기 직전의 대우가 인수할 뻔 했던 업체이니 만큼 한국과 이래저래 악연이 많은 셈이다.

부 무장인 발터 22구경은 독일 발터사의 최신형 모델이지만 장탄 수(10발)가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총탄의 위력도 ‘맞아야 찰과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약한 편이다.

원래 가벼운 모델인데다 글록 시리즈를 본 따 프레임을 프라스틱으로 만들어 더욱 가벼워졌다. 글록 19와 달리 한 손으로도 사격이 가능하다. 조씨가 50여발을 구입했다는 발터 22구경의 탄알이 얼마나 많이 사용됐는지도 사건의 전모를 가릴 열쇠로 보인다.

글록 19권총에서 발사된 탄알보다 훨씬 적은 분량이 사용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논란이 예상된다.

사건이 오히려 총기 판매 증가 유인

총기가 부른 사고임에도 이번 사건은 총기 판매 증가라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 특히 범행에 사용된 글록과 발터 시리즈의 인기까지 높아지고 있다. 걸핏하면 격발 불량에 명중률도 떨어진다는 권총에 대한 일반적 인식을 뛰어넘을 만큼 신뢰성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과학과 기술 발전의 그림자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확해지고 고장도 나지 않는 권총을 만들기 위한 기술 개발과 개량의 결과가 인간에게 해악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사고로 다시금 확인됐다.

무기 자체가 인간성을 파괴하는 것이지만 사용되지 않는 한 안전을 담보하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오늘날도 무기 개발에는 무수한 인력이 매달리고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간다.

권총의 성능은 1902년 미군이 보다 위력이 강한 권총을 원했을 당시와 비교해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 이번 사고로 증명됐다.

현대 무기의 위력은 치명적이다. 버지니아 공대 사건은 인간의 통제와 제어 범위를 벗어난 무기와 기술이 몰고 올 미래 재앙에 대한 경고장일지도 모른다.


권홍우 서울경제신문 편집위원 hongw@sed.co.kr


[이 게시물은 선장님에 의해 2014-02-02 11:30:29 미스테리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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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아미가님의 댓글

세이야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제가 봐도 참으로 수상한 사건인것 같습니다.

확실한 수사 진척상황이나 발표도 없고.. 특히나 개인적인 궁금증이긴 하지만
사망한 인질들에 박혀 있는 탄환이 과연 글록 9mm탄환인지 22구경 탄환인지
그것만 좀 알고 싶습니다.

일반 언론에서는 두정을 한손에 하나씩 들고 쐈다 하는데 제가 보기엔 절대 아니거든요...

권총 명중률이라는게 참 어이없는 탄도들이 많아서 대게 두손으로 잡고 쏴야만
제대로된 탄도가 나오는데다가 두정을 각 한손에 하나씩 들고 쏜게 아니라
글록을 주무장으로 쓰고 부무장으로 p22를 사용하는게 일반적인 정석입니다.

글록을 두손으로 잡고 주력으로 사용하다가 탄이 떨어지면 바로 탄창을 갈아끼우고
(탄창 갈아끼우는데 조금만 연습하면 2~3초정도 밖에 안걸립니다...ㅡ,.ㅡ;;; 이 문제 때문에
한국 언론에서 들썩들썩 하는것 보면 우스워요...ㅜㅜ 굳이 특수훈련을 받지 않아도 가능합니다...)
사격하되, 탄창교체시 틈을 보여 상대방에게 공격을 당하면 그때 부무장을 사용하게 됩니다.

어디까지나 몸 지키기용이지 사람죽이기용 권총이 아니지요...

(음모론쪽의 동시에 탄창 두개를 어떻게 갈아끼웠냐는 물음은 아무런 무기 배경지식없이 그냥
자신의 생각대로 올린 글인것 같아요....)

그리고 9mm를 정확히 어디를 겨누고 쐈는지... 알길이 없지만
일반적인 특수부대에서는 무조건 상대방에게 2~3발을 심장쪽에 적중시키는 훈련을 받습니다.

한발만 쏴서 쓰러드려야지... 아니면... 머리를 조준사격해야지 같은건 실전에서는 말도 안되는
발상이구요.... 거의 무조건 한곳에 두세발 쏘는게 일반적인 상식이거든요.

사람이 의외로 튼튼해서? 9mm두세발 몸에 맞는다고 쉽게 죽지는 않습니다.
관자놀이나 심장부근같은 치사율이 높은 급소에 맞으면 죽기도 하지만
대게 팔이나 다리.... 배에 맞는다고 해서 죽지는 않습니다.

기사처럼 거의 인질들마다 2~3발에 사망했다면 분명 근거리에서 심장이나 머리를 노리고 쐈을겁니다.
그것도 인질들이 처형을 기다리듯 가만히 서 있다는 배경조건 하에서지요....
공포에 질려 이리저리 도망치는 인질들을 정확히 급소만 노려서 두세방에 사망시켰다면
솔직히 말이 안되거든요.... 라이플같은 소총류도 아니고.... 45구경보다 약한 9mm인데...

제가 볼때는 p22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이 총이.... 정말 미국내에서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총으로의 범주에 넣어주지도 않는 약한
권총입니다. 미국에서 머리에 22구경 6발을 맞고도 살아난 사람도 있구요....
사거리조차 6~7미터 이내라고 보시면 됩니다.

22구경.. 사람 죽이기 무척 힘든 권총입니다.
근데 이 총을 사용했다는 기사도 없고 대충 두리뭉실한 추측성 기사들만 있다보니....
예측하기도 힘들겠더군요...

아마도 이런식으로 이 사건은 묻혀 사라질듯 합니다....
그냥 묻혀 사라진다면 음모가 확실한듯.....@,.@;;;;
(뭔지 모를 세력의 음모가 성공했다는 뜻이기도 하겠네요...)

갈림길님의 댓글

세이야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클라호마 폭탄사건과 유나바머의 주장을 간과히 여겨선 안된다..
미국정부는 그들을 매도할 순 있어도 그들은 이미 뭔가를 깨달았기에 그런 것이다.

우주연방군님의 댓글

세이야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버지니아 총격 당일 폭탄공격 메모
 
[YTN 2007-05-06 14:01] 
 
 
[신웅진 기자]

버지니아공대 총격사건의 범인 조승희가 공학부 건물인 노리스 홀에서 총기를 난사하기 몇 분 전 2층 계단 부근에서 폭탄공격을 경고하는 메모가 발견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버지니아주 경찰은 그러나 이 메모와 조승희를 연관짓지는 않았습니다.

이 대학 잡역부 파멜라 티클은 총격사건이 벌어진 지난달 16일 아침 바닥의 먼지를 닦고 있을 때 밤색 모자와 헐렁한 바지를 입은 한 아시아계 남성이 급히 자신의 곁을 지나쳤다고 말했습니다.

파멜라 티클은 이 남자를 본 직후 공대 부교수로부터 문제의 메모를 건네받았다며 전단지 뒷장에 '이 문을 열면 폭탄이 터질 것'이라는 글이 빨간색 잉크로 쓰여 있어다고 밝혔습니다.

티클은 이 사실을 대학 관리인에게 전화로 보고하려고 비품실로 걸어갈 때 총성이 울렸으며, 자신은 학생 2명과 함께 2층 라운지에 숨어 화를 면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저작권자(c) YTN & Digital YTN.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푸른무지개님의 댓글

세이야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총의 진화라구요?
저 군대 있을때 권총을 소아본 경험이있는데 불과 5미터앞의 표적도 안 맞더군요...
연습을 하여도 10발중에 3~4발 정도 명중하구요
그마나 두손으로 정조준(한참 조준 했던 기억이 납니다)해서 그랬구요
제 상식으로는 저 정도의 살인을 할 정도라면 프로페셔널이 아닌다음에야 불가능 한걸로 보입니다
말그대로 10년이상 권총을 다루어서 그방면에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가 아니라면...
사실, 제경험상으로는 그렇다하더라도(프로페셔널 이라도)불가능 하지 않을까?......
한달 연습해서 그정도라면....천재의 수준을 넘지않았을까요?

이동버스님의 댓글

세이야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비디오는 이미 오래전에 조승희가 범인이라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하여 면밀하게 준비되어 있읍니다. 그 스스로가 했다면 모르지만, 비디오가 흔들리는 것을 보면 그 비디오를 찍은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무슨 의도로 이러한 비디오를 만들어 놓았는지, 그 사람이 밝혀져야 하는데 전혀 밝혀지지 않았읍니다. 다만 그 의도는 모든 사람에게 조승희가 범인이라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전에 만들어졌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권총의 일련번호가 지워진 것과 관련시키면 자기의 범행 흔적을 조승희와 연관시키지 않으려고 한 사람이 있는 거 같읍니다.

 권총에 대해서 너저분하게 지식은 자랑해 놓았는데, 정작 조승희는 다른 희생자들이 3발씩 맞고 사망한 것과 같이 머리에 1발 가슴에 2발, 3발의 총탄을 맞고 희생자와 함께 발견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권총이 성능이 엄청 좋아졌다면서, 머리에 한발 가슴에 두발 쏠 정도로 형편이 없다는 소리는 안했네요.

 한명이 살아남아 그 범인은 복면을 했고 사람들을 쏜 다음에 밖으로 도망갔다고 했는데, 어떻게 조승희가 희생자들 있는 곳에서 3발을 맞은 채로 발견이 되었는지?

단지 한명이 살아남았는데, 결국은 그 사람도 죽었읍니다. 증인이 없어진 것이지요? 그것은 자연사인지?

조승희처럼 별로 뛰어날 것 없는 대학생이 혼자 권총을 사서, 몇달간 200발을 발사 연습했다고, 30여명을 이리저리 도망치는 사람들을 향해 정확히 3발씩 조준 사격했다는 것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면 그 사람은 아마 실제로 권총을 다루는 다른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는 것과 비교해보면 어처구니없는 비전문가의 머리 굴리는 입에 발린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읍니다.

환도장님의 댓글

세이야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사실... 음모론까지야 잘 모르겠지만, 자신의 몸에 3발을 쏴가면서 자살했다는 것만은 도무지 이해가 안가더군요.  머리에 총을 쏜 후에 다시 자신의 가슴에 두발을 쐈다는 것도 말이 안돼고, 가슴에 두발을 쏜후에 다시 자신의 머리에 총을 쐈다는 것도 이해가 불가하고.  진실은 과연 무었인지.  멀더가 말한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는 말이 참 실감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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