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왕 ‘주피터(Jupiter·그리스 신화의 제우스)’는 바람둥이로 유명하다. 그가 이오(Io)라는 여신과 사랑을 나눌 땐 짙은 구름으로 주위를 감싸 아내인 주노(Juno·그리스 신화의 헤라)의 눈을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뛰는 자 위에 나는 자 있다고 했던가. 주노는 구름 장막 너머로 주피터의 행각을 꿰뚫어 보고 불륜 현장을 들이닥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이 신화에서 상징을 따와 주피터(목성)의 가스 깊숙한 곳을 엿볼 새 우주탐사선에 ‘주노’라는 이름을 붙였다. 5년 전 목성으로 출발한 주노는 28억 ㎞를 날아간 끝에 5일 낮(한국 시간) 목성 궤도에 진입한다. 주노는 앞으로 1년 8개월간 목성 주위를 37바퀴 돌며 대기 성분, 중력장, 자기장 등을 조사해 목성의 내부 구조를 밝힐 계획이다.
●단단한 핵 찾는 게 핵심
목성은 대부분 수소와 헬륨 같은 가벼운 기체로 이뤄져 있다. 과학자들은 목성 내부에 금속과 바위, 얼음으로 이뤄진 무겁고 단단한 핵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아직 한 번도 확인된 적이 없다.
핵의 존재 여부와 조성 싱태를 알면 목성의 탄생 원리를 밝힐 수 있다. 목성은 태양계 최초의 행성으로 추정되고 있어 목성의 생성 과정을 알면 다른 행성 또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예측할 수 있는 만큼 과학자들은 주노의 탐사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그간 행성의 탄생 과정을 놓고 단단한 핵을 중심으로 가스와 먼지가 뭉쳤는지 그렇지 않은지 논쟁이 있었다. 핵이 먼저 생긴 뒤 중력을 이용해 주변 물질을 끌어당겨 차츰 행성으로 성장했다는 가설과 핵 없이 가스 구름 사이에서 작은 소용돌이가 생겨 한순간 큰 행성이 생겼다는 가설이 팽팽히 맞섰다. 최영준 한국천문연구원 행성과학그룹장은 “주노가 목성의 내부 구조를 확인하면 둘 중 어떤 이론이 옳은지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치과용 X선 1억 번 찍는 수준
주노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극한 환경부터 견뎌야 한다. 가장 큰 위협은 목성의 강한 방사능이다. 목성의 자기장은 지구 자기장보다 10배 이상 강하다. 여기서 전기를 띤 입자들이 빛에 가까운 속도로 뿜어져 나오고, 주노가 이들 고에너지 입자에 부딪히면 고장 나기 쉽다. 최 그룹장은 “목성과 가장 가까운 위성인 이오에서 화산 폭발로 생긴 다량의 입자가 목성 근처로 유입될 때 특히 위험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1995년 목성 궤도에 도착해 탐사를 벌이던 갈릴레오도 이오 주변을 지나면서 탐사선이 손상됐고 2002년 카메라 고장으로 결국 탐사를 중단했다. 주노 프로젝트를 총괄 지휘하는 릭 나이바켄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 박사는 “임무 중 주노가 쪼이게 될 방사선의 양은 치과용 X선을 1억 번 찍었을 때 노출되는 양보다 많다”고 설명했다.
주노에 실린 탑재체에는 강력한 방사선에 버틸 수 있도록 173㎏이나 되는 티타늄 보호벽이 둘러쳐져 있다. 목성이나 이오에서 내뿜는 방사능은 이 보호벽을 지나며 그 세기가 800분의 1로 줄어든다.
주노가 목성 궤도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면 인류의 우주 탐사 역사상 태양전지만을 이용해 가장 멀리 날아간 탐사선이 된다. 지금까지는 2012년 인류 첫 혜성 탐사선 ‘로제타’가 세운 7억9200만 ㎞가 최장거리였는데 올 1월 그 록을 깼다. 주노에는 길이 9m인 거대한 태양전지판이 3개나 달려 있다. 현재 주노는 목성에서 509만 ㎞ 지점을 지나며 목성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