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밟았던 우주인들, 지구의 삶은 '하늘과 땅 차이' > 달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달 밟았던 우주인들, 지구의 삶은 '하늘과 땅 차이'

페이지 정보

작성자 지식탐험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댓글 9건 조회 2,602회 작성일 09-07-25 09:18

본문

달을 한번 밟았던 사람은 달의 신비한 영향력 때문에 지구의 삶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이른바 '달 증후군(lunar syndrome)'이 사실일까.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의 닐 암스트롱(Armstrong)과 버즈 올드린(Aldrin)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달 표면을 밟은 후 이들을 포함해 1972년까지 12명이 달 위를 걸었다. 모두 미국인이다. 1972년 이후엔 달을 거닌 사람이 없다.

'달 증후군'을 증명해줄 만큼 삶이 순탄치 않았던 이들 중 대표주자는 올드린이다. 올드린은 지구에 돌아오자마자 이혼했고, 곧바로 재혼했으나 2년을 넘기지 못해 또다시 이혼했다. 이후 그는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에 빠져 살았다. 아폴로 11호 우주인이라는 '찬란한'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재정난에 허덕였던 올드린은 1970년대 후반에는 자동차판매소 세일즈맨까지 전락하기도 했다.

최초의 '문워커(Moonwalker)'인 암스트롱도 그리 행복한 삶은 살진 못했다. 그는 달 탐사 이후 굉장히 폐쇄적인 삶을 살았다. 농장을 사들인 후 그곳에 틀어박혀 거의 사회적 접촉을 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달 여행에 대해서는 거의 말을 꺼내지 않았다. 이런 암스트롱은 자신의 서명을 받고 나서 이를 팔아먹는 사람들에 질린 나머지 1994년 이후부터는 팬들에게 자필 서명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달에 갔다 온 후 영적(靈的)인 세계를 탐구하는 이들도 있었다. 아폴로 15호의 짐 어윈(Irwin)은 침례교 목사가 됐고, 아폴로 14호의 에드거 미첼(Mitchell)은 외계 생명의 존재를 탐구했다. 미첼은 최근 미 정부가 외계인의 존재를 감추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달 탐사 이후의 삶이 꽤 성공적이었던 우주인들도 있다. 아폴로 14호의 앨런 셰퍼드(Shepard)는 백만장자 사업가가 됐고, 아폴로 17호의 해리슨 슈미트(Schmitt)는 뉴멕시코주 상원 의원이 되기도 했다.

우주역사학자 앤드류 체이컨(Chaiken)은 달을 거닐었던 12명의 우주인을 인터뷰한 '달로부터의 목소리'라는 저서에서 "달 증후군 같은 것은 없다. 달에 갔다 온 효과가 과장됐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체이컨은 거의 모두가 달 탐사 경험에 대해 말하기를 꺼리는 공통점은 있었다며 "그들은 대략 38~39세 때 (달 탐사라는) 인생에서 가장 강렬한 경험을 했다. 일부는 그 이후의 삶에서 그런 강렬함을 재연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미 CNN방송에 말했다.

조선일보 / 원정환 기자 won@chosun.com"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won@chosun.com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7/20/2009072000092.html?Dep0=chosunmain&Dep1=news&Dep2=headline1&Dep3=h1_07



PYH2009072102710034000_P2.jpg
아폴로 달 착륙 40주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우)이 2009년 7월 20일 워싱턴 DC의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아폴로 11호 달 착륙 40주년을 맞아 월면(月面)의 첫 인간 닐 암스트롱(우 2번째)과 동료 우주인들인 에드윈 "버즈" 올드린(좌), 마이클 콜린즈(좌 2번째)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AFP=연합뉴스).(hcs). (paulohan@naver.com). US President Barack Obama stands alongside the first man on the moon Neil Armstrong (2nd R), and fellow Apollo 11 crewmembers Edwin "Buzz" Aldrin (L) and Michael Collins (2nd L) during a meeting on the 40th anniversary of NASA's first human landing on the moon in the Oval Office of the White House in Washington, DC, July 20, 2009. AFP PHOTO / Saul LOEB

오바마 "우주 개발프로그램 계속 지원"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인류의 달착륙 40주년을 맞은 20일 미국 정부는 앞으로도 항공우주항공우주국(NASA)의 우주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을 예방한 닐 암스트롱, 버즈 올등린, 마이클 콜린스 등 아폴로 11호 승무원들을 접견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고 미 언론이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 모두는 인류가 처음으로 지구를 벗어나 마침내 다른 별나라를 탐험할 수 있게 됐던 순간과, 달에 첫발을 내디뎌 지금까지도 족적을 남긴 것을 기억한다"면서 NASA 가족들의 용기와 영웅적 행동이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시야를 넓혀줬다고 말했다.

또 오바마 대통령은 암스트롱 등이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공학도와 과학자가 되도록 영감을 준데 대해 감사하다는 뜻을 전했다.

아폴로의 달착륙 당시 7살이었던 오바마 대통령은 하와이에서 할아버지의 무등을 탄 채로 아폴로의 사령선이 태평양으로 착수하던 모습을 지켜봤다고 회고했다.

암스트롱 일행은 옛 소련과의 냉전과 우주경쟁이 한창이던 40년전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해 달표면 위를 걸은 것은 물론 미국의 성조기를 꽂아 미국의 자긍심을 높였던 인물들이다.

워싱턴=연합뉴스/ 고승일 특파원 ksi@yna.co.kr"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ksi@yna.co.kr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09/07/21/0200000000AKR20090721007000071.HTML?did=1195r



<달에 갔던 그들..어떻게 지낼까>

C0A8CA3C0000012084272E5D00025A9E_P2.jpeg
닐 암스트롱(자료사진)

인류 역사상 달 표면에 발을 디뎠던 사람은 모두 12명.

이들은 모두 아폴로 계획에 참여했던 미국인으로 이 가운데 9명만 생존해 있다.

1969년 7월20일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선 이글호를 타고 인류 최초로 달에 첫발을 내디딘 38세의 닐 암스트롱은 이제 팔순을 바라보고 있다.
그가 달에서 걸어다니는 장면은 흑백 TV로 방송돼 전 세계에서 5억명이 시청했다.

'우주 영웅'으로 떠오른 암스트롱은 2년 뒤인 1971년 미 항공우주국(NASA)의 현역 우주비행사에서 은퇴하고 10년 가까이 신시내티 대학에서 우주공학을 가르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이후 유나이티드 항공(UA)과 마라톤오일, 리어제트 등의 회사에서 이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줍은 성격 탓에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꺼렸으며, 인터뷰에도 거의 응하지 않아왔다.

비교적 최근인 2005년 미국 CBS 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 암스트롱은 "나는 원래 달에 첫발을 내딛는 임무를 맡지는 않았었다. 나는 단지 우주선 선장이었을 뿐이며 상황이 내게 특별한 역할을 맡겼다"고 말한 바 있다.

암스트롱이 이글호에서 내리고 15분 뒤 '간발의 차이'로 두 번째가 된 버드 올드린도 올해 79살이 됐다.

그는 20일 달 착륙 40주년을 앞두고 12일 보도된 AFP통신과 인터뷰에서 달에 발을 디딜 당시 "장대한 쓸쓸함"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올드린은 달 표면을 걸었던 경험을 통해 자신의 정신이 "훨씬 넓은 보편성"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올드린은 그러나 자신에게 쏠린 주변의 시선에 시달리다 달에 다녀온 지 3년 만에 NASA를 그만두고 알코올 중독에 빠졌으며, 한때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지금은 비교적 사생활을 보장받으며 살고 있다는 올드린은 그 이유로 "지금까지는 내 얼굴이 많은 곳에서 알려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인 이유로 NASA를 떠났지만 여전히 "다른 행성에 발을 디디는 것은 인류의 숙명"이라면서 NASA의 우주 비행 프로그램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는 "우리는 이를 달성할 수 있겠지만, 적절한 행성부터 찾아내야 한다"는 조언을 남기기도 했다.

해리슨 슈미트는 달에 갔던 유일한 과학자이자 마지막으로 달을 밟은 인물이다 .

올해 74살인 그는 하지만 1972년 달 착륙 경험이 별다를 것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AFP통신과의 회견에서 "솔직히 말하면 그 일이 나를 바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아폴로 17호를 탄 이후 유일하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이며, 지구와 태양계, 우주에 대한 내 견해가 바뀌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슈미트는 NASA에서 나온 이후 뉴멕시코 주(州) 상원의원으로 변신했으며, 우주 탐사 활동도 국제 정치의 흐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달 착륙인은 공식 행사가 있을 때만 모이며, 개인적인 연락은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슈미트는 "아폴로 우주인들은 혈액형으로 A형에 해당하는 성격의 소유자이며, 매우 자주 모이지는 않는다"면서 "그들은 매우 독립적"이라고 전했다.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newglass@yna.co.kr"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newglass@yna.co.kr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09/07/13/0200000000AKR20090713071300009.HTML?did=1195r

<우주비행사를 괴롭히는 신비한 달 체험>

▲ 1969년 7월 20일 인류 최초 달 착륙(AFP)

달 착륙에 성공했던 미국 우주비행사 12명, 이들은 지구귀환 후에 어떤 삶을 살았을까?

최근 영국「가디언」보도를 보면, 영국 작가 앤드류 스미스는 달 착륙에 성공한 우주비행사 9명을 취재해 『달의 기억-아폴로 우주비행사들의 그 후』라는 책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밝혔다.

스미스는 달 표면을 탐험한 우주비행사 9명을 취재해 이중 상당수가 귀환 후 급작스럽게 얻은 명성과 초자연적 체험 탓에 정신적 혼란이나 우울증, 알코올중독 등에 시달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들은 대부분 1950년대 미 공군 시험조종사로 근무한 뒤 1969년 여름부터 3년 남짓 기간에 아폴로 우주선에 탑승했던 사람이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겠다던 완벽한 육체와 정신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 왼쪽에서부터 아폴로17호 우주비행사 빌 셰퍼드, 아폴로11호 버즈 앨드린, 아폴로13호 제임스 러벨, 아폴로17호 유진 서넌 (getty images)

우주비행사 9명 중 5명이 귀환 후 갑자기 얻은 명성과 달에서 체험한 초감각적인 일들에 대처하지 못해, 정신적 혼란을 겪거나 알코올중독, 우울증에 걸려 부인과 이혼했다.

우주비행사들 대부분은 1950년대 미 공군 시험조종사로 근무했고 스스로 인류의 미래를 위해 모험하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1969년 여름부터 1972년 12월까지 아폴로 우주선을 타고 현대의 휴대폰 기술보다 더 원시적인 기술을 이용해 달 표면을 탐험했다.

인류 최초로 달 표면을 밟은 닐 암스트롱(아폴로 11호)은 귀환 후 염세적 성격으로 돌변했다.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그레이트 스텝’을 남겼지만 정작 자신에게 돌아온 건 비정상적인 삶. 미디어 기피증에 시달린 암스트롱은 1994년 부인과 이혼한 뒤 “자녀들이 커가는데도 함께 있을 시간이 없었다”고 술회했다. 신시내티의 항공대 교수를 거쳐 현재 오하이오의 한 농장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

암스트롱과 함께 달을 밟았던 버즈 앨드린은 달 표면을 걸을 때, 마치 영혼이 육체를 이탈하는 기이한 체험을 하고 이로 인해 평생 고통을 받다 알코올중독자가 되어 역시 부인과 이혼했다. 부인과 이혼한 후 그는 최근 영국의 한 우주여행사 고문으로 취직했다.

아폴로 12호 조종사 알란 빈은 귀환 뒤 휴스턴에서 우주에 관한 만 그리는 화가로 활동했다.

아폴로 14호 조종사 에드가 미첼 역시 달에서 우주선으로 돌아올 때, 무언가가 계속 자신을 주시하는 듯한 기괴한 느낌을 기억한다. 그는 우주 중에 지혜가 있는 어떤 생명체와 영적으로 접촉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 이후 그는 신비한 초자연적 현상 연구에 심취해, 인간의 의식과 초자연적 현상을 연구하는 캘리포니아 추상과학협회를 만들었다.

아폴로 15호 조종사 제임스 어윈은 달에서 45억년의 역사가 있는 ‘제니시스 록(genesis rock)’ 이라고 불리는 수정을 발견했다. 그는 이 수정이 마치 그가 오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그는 지구 귀환 후 종교를 믿게 되었고 탐험대를 인솔해 두 번이나 노아의 방주 흔적을 찾으러 갔다. 그는 1991년 심장마비로 61세에 사망했다.

어윈과 동승했던 찰스 듀크(69)는 달 착륙 시 발생했던 큰 충격을 잊지 못해 평생 괴로워했다. 나중에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고 심지어 자녀를 학대하기도 했다. 그는 생존해 있는 우주비행사 중 가장 젊은 사람이다. 후에 종교에 귀의했고 달 탐험에 대해 “내 인생의 오점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후회하였다.

결과적으로 아폴로 에 따라 달을 탐사했던 14명 중 찰스 콘래드(12호·1999년 사망) 등 10명이 사고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주공간에서 노출된 방사능의 영향인지 우주여행 뒤 느낀 극심한 무기력증의 결과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들의 불행한 삶을 단순한 우연의 일치로 귀결하기엔 많은 여운이 남는다.

이들은 달 탐험이라는 거대한 업적을 달성하고는 그 어떤 것도 시시해 보여 무기력증에 걸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이 겪었던 이상한 체험들과 불행한 삶을 살펴볼 때, 단순히 심리적인 효과로 무시하기에는 무언가 있는 것 같다.


“지구 미래 위해 우주개발은 피할 수 없는 길”

SPECIAL REPORT 달을 밟은 12인 | 마지막 문워커 해리슨 슈미트 인터뷰

김환영"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 | 제124호 | 20090726 입력 블로그 바로가기
다음 달 대한민국이 우주발사체 나로호를 우주 공간으로 쏘아 올린다. 지난 20일은 아폴로 11호가 달에 도착한 지 40년이 되는 날이었다. 역사적인 두 사건을 기념해 중앙SUNDAY는 ‘문워커(Moonwalker)’ 특집을 준비했다. 문워커는 달에 착륙해 걸어 다닌 우주인을 지칭하는 말이다. 문워커는 현재 12명밖에 없다. 1972년 12월 이후로 달에 가 본 사람은 없다. 차기 초강대국 자리를 노리는 중국과 인도가 자국민 문워커 탄생을 꿈꾸고 있다. 미국도 달을 넘어 화성으로 가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우주 강국에 도전하는 대한민국이 우주 개발의 중요 요소인 문워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26004345.jpg 해리슨 슈미트가 1972년 12월 12일 달에서 샘플을 채취하고 있다. 그가 달에서 찍은 지구 사진의 제목은 ‘블루 마블(Blue Marble)’이다. [NASA 제공]
12명의 문워커 중 마지막으로 달에 도착한 우주인은 해리슨 슈미트(73사진)다. 하버드대 지질학 박사 출신인 슈미트는 문워커 중에서 유일한 과학자 출신이다. 슈미트는 72년 12월 아폴로 17호를 타고 달에 다녀온 뒤 77년부터 6년간 미국 상원의원(뉴멕시코·공화당)을 지내기도 했다. 슈미트 박사는 인터뷰에서 “달은 매우 편안했다. 마치 장대한 산속의 계곡에 있는 거대한 트램펄린 위에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위스콘신대(매디슨) 겸임 교수인 슈미트 박사를 22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20세기 미·소 간 우주 개발 경쟁에 이어 이제는 미국과 중국·인도 사이에 새로운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견해가 있다.
“미국이 의식하건 의식하지 못하건 새로운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주요 경쟁 상대는 야심적인 중국이다. 미·중 경쟁이 활성화되면 전 세계 우주산업이 영향을 받을 것이다. 미국은 한국·대만·일본을 포함, 국제 파트너들과 우주산업에서 협력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은 독자적으로 움직인다.”

-우주 경쟁이 격화되면 미국 내 여론은 우주 개발의 필요성에 대해 호의적이 될 것인가.
“여론의 향방은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미 행정부가 우주 개발의 전략적 측면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국가들이 우주 개발에서 활발하고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주 개발 주도권 확보에 민주주의의 미래가 달려 있다.”

26004352.jpg
-우주 개발에서 전략적 고려가 산업적 고려보다 중요한가.
“우주 개발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의 목록은 길다. 전략적 고려가 꼭대기를 차지한다. 그래서 미국은 다시 달로 가야 하며 화성으로 가야 한다. 한편 달에는 지구에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에너지 자원이 있다. 경제성이 확인된 헬륨3이다.”

-한국은 우주산업 분야에서 중견 국가(middle power)가 될 수 있을까.
“한국이 과학·기술 분야에서 수십 년간 이룩한 성과로 판단하건대 만약 한국이 마음만 먹는다면 그렇게 될 수 있다.”

-달에 착륙한 우주인 중에서 유일한 과학자로 아는데 앞으로 보다 많은 과학자들이 우주인이 될 필요가 있는가.
“이미 많은 과학자들이 우주 셔틀 프로젝트에서 우주인으로 참가했다. 특히 지질학자들이 달과 화성 탐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인류가 화성으로 가려면 단계를 거쳐야 하는가.
“우선 달에 가서 우주에서 작업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에 대한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달에서 화성으로 갈 우주선에 필요한 원료를 조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운영상의 실험도 필요하다. 특히 화성에서는 지구와 교신할 수 없기에 독자적으로 기지를 운영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주 개발보다는 빈곤 퇴치나 기후변화 대처에 투자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기후변화에 대해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빈곤 퇴치를 위해서라도 달에 가야 한다. 빈곤 퇴치에는 에너지 공급이 필요한데 달에는 에너지 자원이 있다. 우주 개발은 지구의 모든 다른 문제들과 연결돼 있어 우주 개발은 피할 수 없다. 인류에게는 탐험을 희구하는 유전자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우주 개발을 한다고 해서 다른 문제를 다루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달 착륙 경험이 신념 체제에 영향을 줬는가.
“인류에 대한 내 관점, 인류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영향이 있었지만 내 신념 체제는 영향을 받지 않았다. 다른 우주인의 신념 체제도 영향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주인이 되려는 한국의 학생들은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
“최대한 폭넓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 수학이 특히 중요하다.”

< 달을 밟은 12인, 지구 위의 삶 40년 >

김환영"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 | 제124호 | 20090726 입력 블로그 바로가기
우주 정책은 국가가 수립하지만 실행하는 것은 우주인을 비롯한 사람이다. 아폴로 계획에는 40만 명이 참가했다. 현재 35개국 508명이 우주에 다녀왔다. 그중 미국인이 321명으로 64.3%를 차지한다. 321명 중에서 달을 밟아 본 문워커(moonwalker)는 12명에 불과하다. 어떤 사람들일까. 문워커인 찰스 콘래드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으면 색깔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경구를 남긴 바 있다. 문워커들의 삶과 달 체험의 연결고리에서 발견되는 업적과 색깔을 들여다본다.
26010357.jpg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다. 우주인들은 24일에 무사히 지구로 돌아왔다.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이들이 생환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담화문을 준비했다. 이처럼 우주인이 된다는 것은 민간인보다는 군인에게 어울리는 위험한 일이었다. 미국 최초의 우주인 선발이 59년에 있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 군에 의뢰해 후보를 추천받았다.

26010404.jpg
문워커 12명은 미국이 자랑하는 인재들이다. 이들이 있었기에 “60년대가 끝나기 전에 미국인이 달을 밟는다”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비전이 성취됐다. 대부분 항공공학 혹은 우주항공공학을 공부했으며 모두 전투기 조종 경력이 있었다. 에드윈 올드린은 한국전 당시 F-86기를 몰고 78회 출격해 MIG-15기를 두 대 격추시키기도 했다.

물론 이들이 문워커가 되기 전 순탄하기만 한 삶을 산 것은 아니다. 찰스 콘래드는 결국 프린스턴대에 입학했지만 당시로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난독증 때문에 다니던 고등학교의 오해로 퇴학을 당하기도 했다. 61년 미국 최초의 우주인이 된 앨런 셰퍼드는 메니에르병을 앓아 한때 문워커 선발 대상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26010413.jpg
건강한 정신과 신체가 우주인 선발 기준이었기에 문워커들은 대부분 장수하고 있다. 제임스 어윈(91년 심장마비), 찰스 콘래드(99년 오토바이 사고), 앨런 셰퍼드(98년 백혈병)를 제외한 9명의 문워커가 생존해 있다. 이들은 달에서 ‘최초’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한 사람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라는 불멸의 말을 남기며 달에 처음 발을 내디딘 것은 닐 암스트롱이지만 달에서 처음 춤을 춘 것은 찰스 콘래드였다.

달에서 처음으로 골프공을 날린 것은 앨런 셰퍼드, 처음 투창을 던진 것은 에드거 미첼이었다. 데이비드 스콧은 망치와 새털을 떨어트려 갈릴레오의 실험을 달에서 처음으로 재현했다. 암스트롱은 달나라 최초의 성찬식을 거행했다. 목사가 준비해 준 밀떡과 포도주를 가져갔던 것이다. 암스트롱의 성찬식은 사적인 것이었다. 당시 NASA 등 공공기관의 종교행사가 위헌이라는 소송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달에 착륙했던 문워커들이 평생 ‘시달린’ 게 있다. “달에서 받은 느낌이 어떠했느냐”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이들은 NASA에서 각종 훈련을 받았지만 이 질문에 답하는 훈련은 받지 못했다. 게다가 우주 여행에서 필요한 자질 중 하나는 위기에도 침착할 수 있는 정신적 안정성이기 때문에 이들은 비교적 무덤덤한 사람들이었다.

에드윈 올드린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문워커 중에서는 달에서 강한 종교적 체험을 한 이들도 있었다. “그전에도 그렇지만 달에서 보다 더 강력하게 신(神)의 힘을 느꼈다”고 말한 제임스 어윈은 NASA에서 은퇴한 뒤 비영리 종교재단을 세웠다. 성지순례단을 조직하는가 하면 노아의 방주를 찾아 수차례 터키에 있는 아라라트 산에 오르기도 했다. 아라라트 산은 노아의 방주가 홍수가 끝나고 닿았다는 산이다. 어윈은 82년 하산 중 부상하기까지 했다. 찰스 듀크는 “달 착륙 경험에서 어떤 철학적인 의미는 찾지 못했다”고 술회했지만 훗날 크리스천이 돼 선교재단을 설립해 교도소 목회를 했다.

신비 체험이 반드시 기독교 신앙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달에서 마지막으로 떠나온 문워커인 유진 서넌은 “우연히 생겼다고 보기엔 우주는 너무나 아름답다”며 “우리의 삶을 꾸려 가기 위해 인간이 만든 모든 종교 위에는 우주의 창조주가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문워커들의 삶은 그들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달 착륙 이후 달라졌다. 암스트롱은 “친구들과 동료들이 갑자기 약간씩 나를 예전과 다르게 대하기 시작한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앨런 빈은 의도적으로 삶을 바꾼 경우다. 그는 “지구로 돌아가면 내가 바라는 삶을 살겠다”고 달의 궤도에서 결심했다. 빈은 “달 체험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를 드러낸다”고도 말했다. 달이 드러낸 것은 빈이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81년 49세에 NASA에서 은퇴하고 휴스턴에 있는 화실에서 작업을 했다. 그는 달만 그린다. 달에 색상을 입히는 것과 달에서 묻어 온 먼지를 그림에 사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문워커들은 NASA에서 은퇴한 뒤 다양한 분야에 진출했다. 암스트롱은 신시내티대 교수, 크라이슬러 대변인, 비행 소프트웨어 회사 회장 등으로 활약했다. 데이비드 스콧과 유진 서넌은 회사를 창립했다. 해리슨 슈미트는 뉴멕시코주에서 공화당으로 출마해 미 연방 상원의원이 됐다.

암스트롱도 모든 정파로부터 정계 진출 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5년마다 한 번씩 백악관에서 열리는 달 착륙 기념행사에 참석하지만 여간해선 인터뷰나 강연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암스트롱 또한 유명세를 피할 수 없었다. 그는 94년부터 사인해 주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그의 사인이 1000달러에 팔리고 있는 데다 가짜 사인까지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뒤부터다. 2005년에는 20년 단골인 이발사와 법적 분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암스트롱의 머리카락을 이발사가 수집가에게 3000달러에 몰래 팔았던 것이다. 암스트롱은 머리카락을 그에게 돌려주거나 자신이 지정하는 자선단체에 3000달러를 기부할 것을 요구했다.

문워커들은 자서전 저술로 달 체험을 일반인에게 알리는 작업도 했다. 앨런 빈의 『아폴로』(98년), 암스트롱의 『첫 번째 인간』(2005년), 올드린의 『지구 귀환』(73년)과 『거대한 황량함』(2009년) 등의 자서전이 나왔다. 데이비드 스콧은 알렉세이 레오노프와 공저로 『달의 양면』(2004년)을 내놨다. 레오노프는 65년 세계 최초로 우주 유영(游泳)에 성공한 옛소련 우주비행사다. 특히 달 체험 후 15년간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올드린은 『지구 귀환』에서 우주인은 수퍼맨도 성인도 아니라는 것을 역설했다. 두 번 이혼하고 세 번째 결혼한 올드린은 강연마다 3만~5만 달러를 받으며 우주 개발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전도자 역할을 하고 있다.

특이한 활동을 하는 문워커도 있다. 에드거 미첼은 유엔에 ‘세계 의회’를 설립해야 한다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미첼은 또한 “우주는 우연히 작동하는 게 아니다”고 주장하며 73년 ‘지력(知力) 과학연구원’을 설립해 마음과 의식에 대한 연구를 후원하고 있다. 그는 2008년 미국 등 각국 정부가 60년 동안 외계인이 지구를 방문했다는 것을 숨겨 왔다고 주장했다. 올드린도 2005년 한 인터뷰에서 아폴로 11호에서 미확인비행물체(UFO)를 봤다고 주장했는데, 나중에는 언론이 자신의 발언의 진의를 왜곡했다며 UFO를 봤다는 주장을 번복했다.

12명밖에 안 되는 문워커들이기에 이들은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최근 해리슨 슈미트와 에드윈 올드린은 지구온난화에 대한 앨 고어 전 부통령의 주장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에 참가했다. 문워커들은 무엇보다 미국이 다시 달로 가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 위해 그들의 영향력을 활용하고 있다. 존 영은 “우주 비행도 위험하지만 지구에 남아 있는 것도 위험하다”고 말한다. 슈미트는 “다시 달로 가는 것은 우리가 후세 인류에게 지고 있는 빚”이라고 말한다.

바야흐로 21세기 문워커, 마스워커(marswalker)의 시대가 오고 있다. 20세기 문워커의 탄생은 미·소 냉전의 연장인 미·소 우주 경쟁의 산물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폴로 11호 문워커들은 67년 비행 중 희생된 최초의 우주비행사인 블라디미르 코마로프와 68년 훈련 도중 사망한 유리 가가린을 기념하는 메달을 달에 남기고 왔다. 21세기는 다국적 문워커의 협력시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NASA는 올해 3500명의 지원자 중에서 18명의 우주인 후보생을 선발했다. 그들의 직업은 교사·의사·과학자·엔지니어 등 보다 다양해졌다.

< 옛 소련선 이름 없는 유령 우주인... 미국선 우주왕복선 폭발 >

달의 뒤편 우주 개발의 희생자들

박혜민"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 | 제124호 | 20090726 입력 블로그 바로가기
인류의 달 착륙은 기적이었다. 한계에 도전하는 불굴의 정신은 새 역사를 만들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이 따랐다. 많은 우주비행사가 예측 못한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아무의 기억에도 남지 못하고 무대 뒤편에서 이름 없이 스러져간 희생자들도 있었다. 그들의 희생과 노력을 딛고 인류는 이제 화성을 향한 꿈을 가꾸고 있다.
26005808.jpg 1986년 1월 28일 미국 케이프케네디우주센터를 출발한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이륙 73초 만에 폭발했다. 이 사고로 탑승 중이던 승무원 7명 전원이 목숨을 잃었다. [중앙포토]
그는 달을 밟는 우주인으로 선택되지 못했다. 닐 암스트롱과 에드윈 올드린이 달 표면에 인류 최초의 발자국을 남기는 동안 마이클 콜린스는 달의 궤도를 돌고 또 돌았다. 28시간 동안 사령선에 홀로 남아 컴퓨터에 850개가 넘는 명령을 내려야 했다. 자동차 운전석보다 좁은 사령선 벽면은 700개가 넘는 스위치, 경고 버튼, 계측기, 키보드로 가득했다. 달 뒤편을 지나는 동안 콜린스의 눈앞에는 어둠뿐이었다. 달이 햇빛도 별빛도 가렸기 때문이다.

26010024.jpg
암스트롱과 올드린은 달 표면에서 미국 대통령과 교신했다. “닐과 에드윈, 여러분이 해낸 일 덕분에 천국도 인간 세상의 일부가 됐군요.” 하지만 콜린스와 교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달 뒤편을 지날 때는 지구와 교신하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47개 나라 6억 명의 사람이 지직거리는 텔레비전으로 달 착륙 장면을 봤지만 단 한 사람, 콜린스만은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나는 지금 혼자다. 정말로 혼자다. 이곳에서 생명체는 나뿐이다. 달의 저편에는 30억하고도 두 명이 있겠지만 이쪽에 무엇이 있는지는 신과 나만 안다. 내가 가진 이 강렬한 느낌은 두려움이나 외로움이 아니라 깨달음, 기대감, 만족감, 자신감 그리고 환희에 가깝다. 나는 이 느낌이 좋다(콜린스가 달의 뒤편을 비행하며 쓴 메모)’.

사람들이 그에게 “아쉽지 않으냐”고 물을 때 콜린스는 “아폴로 계획의 99%를 함께하며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것이 가장 좋은 역할이 아니라는 점은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베아 우스마 수페르트, 『달의 뒤편으로 간 사람』).
1969년의 달 착륙은 인류의 우주 개발 역사상 최고 하이라이트였고, 최상의 역할은 암스트롱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인류는 무수한 희생을 치러야 했고 수많은 우주비행사가 이름 없이 스러져야 했다.

첫 우주인 가가린도 훈련 중 숨져
당시 우주는 미국과 소련의 대결장이었다. 초반엔 소련의 압도적인 우세였다. 57년 10월 소련이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렸고, 61년 4월에는 유리 가가린을 태운 보스토크 1호가 지구 궤도를 한 바퀴 도는 데 성공했다. 미국은 그해 5월 유인 궤도 비행이 아닌 탄도 비행을 한 번 성공한 게 다였다. 지구 주위를 도는 게 아니라 상공 480㎞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것이었다. 그해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미국은 60년대가 끝나기 전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고 지구로 안전하게 귀환시키는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후 미국은 연간 예산의 4%를 우주 개발에 쏟아 부으며 달을 향한 행진을 했다. 1인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머큐리 계획, 2인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제미니 계획을 차근차근 진행했다. 하지만 ‘방 하나 크기만 한 컴퓨터가 지금의 소형 컴퓨터만 못 하고, 웬만한 것은 연필로 계산하고, 우주선은 수동 조작하던’ 당시, 모든 게 예측대로 이뤄지는 건 불가능했다. 많은 시도가 실패로 끝났고 여러 우주비행사가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미국인들에게 가장 큰 충격은 아폴로 1호 승무원들의 사망이었다. 발사를 앞두고 모의 카운트다운을 하던 67년 1월 27일 화재가 발생해 선실에 있던 3명 모두 사망했다. 아폴로 11·12호에 이어 발사된 아폴로 13호도 실패의 역사로 기록됐다. 이륙 56시간 뒤 산소탱크 폭발로 13호는 달을 코앞에 두고 지구로 귀환해야 했다.

귀환 못한 개·원숭이도 많아
옛소련은 우주 개발 계획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성공했을 때만 공개했다. ‘유령 우주비행사’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이탈리아 무선인들은 60년 11월 “러시아와 영어 코드로 보내진 ‘전 세계에 SOS’라는 신호를 세 번이나 포착했다”고 주장했다. 61년 5월엔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왜 대답이 없지…. 세상은 우리를 모를 것”이라고 러시아어로 말하는 우주비행사의 목소리를 수신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유령 우주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유령이 된 소련 우주인은 10여 명이 넘는다.

가가린이 우주 비행에 성공하기 6일 전 소련 우주비행사 블라디미르 일루신은 달 궤도 비행에 성공했지만 중국에 비상 착륙한 탓에 공식 기록에서 지워지고 말았다는 설도 있다. 61년 우주선 화재 사고로 발렌틴 본도렌토가 사망한 사실은 86년에야 밝혀졌다. 조종사 레도브스키크, 샤도린, 미츠코프가 57~59년 준궤도 비행 중 사망했던 것도 소련 붕괴 뒤 러시아 우주기술진에 의해 폭로됐다.

우주 개발의 희생자로 동물 우주비행사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 최초의 동물 우주비행사는 벵골원숭이 앨버트. 탄도 로켓 V-2에 실려 48년 발사됐다가 로켓 내 선실에서 죽었다. 58년부터 10년 동안 미국에선 동물 우주비행 시도가 일곱 차례 있었지만 살아 돌아온 동물은 없었다. 가장 널리 알려진 비운의 동물 우주비행사로는 라이카 종의 개 쿠드랴프카가 있다. 스푸트니크 2호에 실려 궤도 비행을 시도했지만 기내 과열과 산소 부족으로 죽고 말았다. 실패를 거듭하던 동물비행사의 귀환은 59년 겨우 성공했다.

실수와 조바심이 빚은 챌린저호 폭발
미국이 달 탐험에 앞장서자 소련은 지구 궤도에 우주정거장을 건설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70년 소련은 세계 최초의 우주정거장 살류트 1호를 발사했고, 86년에는 좀 더 발전된 우주정거장 미르를 발사했다. 미국도 아폴로 계획이 끝난 뒤 우주정거장(스카이랩)과 우주왕복선(컬럼이바호·챌린저호) 개발에 나섰다. 우주왕복선은 한 번 쓰고 버리는 달 탐사 로켓보다 비용이 적게 들고 위험성도 덜했다.

이 가운데 86년 1월 28일 발생한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 사건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7명의 승무원은 챌린저호가 이륙 73초 만에 공중 폭발하는 바람에 전원 사망했다. 챌린저호 참사는 사소한 실수와 인간의 조바심에서 비롯된 인재였다. 당시 강추위로 네 차례나 발사가 미뤄지자 미국 언론들은 ‘챌린저호가 오늘도 발사되지 못했다’는 식으로 연일 ‘비꼬는’ 보도를 했다. 여론에 못 이겨 무리하게 발사된 챌린저호는 추위로 손상된 이음매 부속 하나 때문에 폭발했다. 당시 챌린저에는 민간인으로는 처음으로 초등학교 과학교사 크리스타 매컬리프(37)도 타고 있었다. 우주에서 무중력에 관한 강의를 할 예정이었던 그가 가장 좋아했던 말은 ‘불가능에의 도전’. 하지만 도전은 비극으로 끝났다. 2003년 2월 1일에도 컬럼비아호가 우주 비행을 마치고 귀환하던 중 폭발해 승무원 7명 전원이 사망했다.

매컬리프가 꿈꿨던 우주 강의는 21년 뒤 바버라 모건이 이뤄 냈다. 매컬리프가 사망한 챌린저호의 탑승자 후보였던 그는 2007년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머물며 사상 첫 우주 원격 수업을 했다. 동료의 비극과 고통을 딛고 인류의 또 다른 꿈을 이룬 셈이다. 무명의 수많은 우주인의 도움과 희생을 딛고 이뤄진 우주 개발의 업적처럼 말이다.

미국도 달 유인 탐사 재개 계획
우주 개발 경쟁은 냉전 종식과 함께 시들해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다시 불붙는 양상이다. 앞서는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은 2007년 달 탐사위성 ‘창어 1호’ 발사에 성공한 데 이어 창어 2·3호를 달에 착륙시킬 계획이다. 일본과 인도도 각각 2007년과 2008년 달 탐사위성을 쏘아 올렸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도 ‘이대로 있으면 뒤진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은 적어도 2010년엔 달 유인 탐사를 재개한다는 의지를 밝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현재 전문가들로 위원회를 구성, 유인 우주 비행 계획을 재검토 중이며 위원회는 8월 말까지 관련 권고안을 낼 예정이다. 이와 함께 인간을 화성에 보내는 계획도 무르익고 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2020년까지 달에 유인기지를 세우고 유인 화성 탐사에도 나선다는 ‘콘스털레이션’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자료출전 :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lyk3390&folder=46&list_id=10922504
추천1 비추천0
Loading...

댓글목록

벤님의 댓글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p>잘 읽었습니다 지식탐험자님.</p><p>달관련 코너에 제일 선두주자로 자료를 올리신 탐험자님이 서버 이전후에도 제일 먼저 자료를 올리네요. 대단한 열정입니다. ^^</p>

드래곤라이더님의 댓글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p>본문과는 관련이 없지만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글에 의하면....<br />서기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우주선 을 타고 달에 최초로 발을 디딘‘암스트롱’<br />은 달에서 지구를 보니 한국의 강화도 마리산에 유난히 푸른 서기가 오르고 있었다.<br />이 말은 빌리그래엄 목사가 여의도광장에서 부흥회를 할 때에 수백만의 기독교인들에게<br />전했다.</p><p>라는 이야기가 있던데...사실인가요?</p>

블랙테트라님의 댓글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진실을 알고도 말못하는 노인과 같은 심정?<img src="http://www.sunjang.com/alditor/emoticons/29.gif" align=absMiddle border=0 />

인류보완계획님의 댓글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저도 별로 잘난거 없지만.. 개념없는 제가 봐도 요즘 기독교 너무 혹세무민 한다. 생각 됩니다. 회개 해야 합니다. 그들이야 말로.. 아니신 분들도 많으셔서 그나마 지속되는듯.. 합니다.. 정말 몇몇 개쓰레기들 청소 되야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지식탐험자님의 댓글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p>달에 갔다 온 우주비행사들의 인생역정이 얼핏 봐도 상당히 정상적이지 못합니다.  물론 미국사회가 이혼률과 알콜중독자들이 많이 존재하지만....</p><p>일국의 최고 파일롯트 들이었고 인류사에 몇명 존재하지도 않는 귀한 경험을 한 인간들이 그렇게 인생을 함부로 산다는 것은 이해가 안가는 사항입니다.</p><p>미국정부에서도 이들의 존재와 의미를 알기에 특별관리를 했을 것이고 자신들이 원하면 얼마든지 험한 사회에서 살지 않고 미국정부가 제공하는 직업 - 대중과 접촉이 적은 - 을 가지고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img src="http://www.sunjang.com/alditor/emoticons/39.gif" align=absMiddle border=0 /><br />이들 12명의 인생담을 계속 추가하는 이유는 이들이 과연 달탐사 과정에서 무슨 정신적인 충격과 심리적 변화를 겼었나를 추론해 보기 위함입니다.    물론..  심리학자가 아닌 제가 인생의 거대한 심리를 추론한다는 그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  </p><p>그래도 상식적인 선과 그간의 제가 보고 들은 지식과 덧붙여 본다면 우리 론건맨에서 심리적인 분야에 조금의 관심을 가지신 분들이 도와주신다면 적어도 어느 일정한 선까지는 그들의 심리적. 정신적 변화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도 있어서 자료를 텃붙이고 있습니다.</p><p>분명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이들이 달탐사에서 왜 이런 느낌과 경험담을 얘기하며 스스로 파멸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에 대한 깊은 사고를 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p><p>단지 달이란 곳이 나사가 밝히듯 허허벌판의 바위와 모래뿐이 없는 곳이라면 굳이 달이란 지구를 벗어난 신세계에 다녀왔다고 이들이 이렇게 까지 인생유전이 요동치면서 살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란 생각을 해봅니다.</p><p>역사를 너무 의심하는 것도 문제지만 100% 순진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역사는 분명 보이고 싶은 것만 기록되는 속성이 있지요.  예들 들어 우리가 알고 있는 케네디 미국대통령은 마릴린 몬로의 숨겨진 정부(情夫)였지요.  또한 마릴린 몬로의 사인은 약물과다 지만 검시관은 그녀의 항문에 어떤 약이 투여된 흔적을 봤다고 합니다.  당시 미국 정보국 FBI는 얼마든지 탈법적인 행위도 했었지요.  </p><p>케네디와 마릴린 몬로의 애정사는 공식적으로는 역사의 정사에 기록되지 않습니다.  야사를 살펴야만 그 둘의 관계를 알 수 있지요.    두 사람 다 객관적으로는 다른 위인들이지만 파고들면 둘이 엮여 있는 것입니다.    </p><p>이렇듯 역사란 기록되어진 것이지만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한 대상이지요.  우리는 단순하게 눈에 보이는 역사를 한꺼풀 벗겨보는 지혜가 필요할 것입니다.</p>

독설가님의 댓글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p>달은 역학적으로 불행 , 절대악 , 고통 , 범죄 , 병 , 죽음 등등의 <br /><b>인간세상의 어두운 면을 의미합니다</b>,,,</p><p>의심스러운 분은 여러분 주변에 달과 관련한 이미지나 글 ,영상 등등 <br />이러한 달과 관련한 모든 것을 없애버리시거나 멀리하시고 </p><p><b>특히 여러분의  컴퓨터 하드 드라이브 속에 있는 달 관련 파일들은 모두 삭제 하십시요<br />얼마안가 바로 효과가 드러날것입니다</b></p><p>물론 달의 역학적 이미지의 반대적 상황들이 더 많이 나타날것입니다...<br /><b>행운 , 절대선 ,행복,치유 등등</b> </p><p>참고로 달의 반대 이미지인 태양을 가까이 하시면 좋은 일들이 많이 나타날것입니다</p><p><b>당장 여러분의 바탕화면을 태양으로 바꾸어 보시길 바랍니다<br />눈이 부실지도 모르니 은은하게 비추어 오는 동이 트는 아침의 바다나 산의 이미지를 <br />찾으시길 바랍니다<br /><br />여러분의 컴에 태양 이미지 파일 폴더를 만드시길 바랍니다</b></p><p> </p>

Total 337건 4 페이지
달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비추천 날짜
277 지식탐험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609 2 0 11-12
276 지식탐험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25 2 0 11-05
275 지식탐험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81 1 0 10-24
274 지식탐험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29 0 0 10-11
273 지식탐험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19 1 0 10-09
272 지식탐험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65 1 0 10-09
271 지식탐험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8 0 0 10-02
270 지식탐험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118 0 0 09-24
269 지식탐험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07 0 0 09-19
268 지식탐험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61 0 0 09-15
267 지식탐험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676 0 0 08-26
266 지식탐험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72 0 0 08-07
265 지식탐험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481 0 0 08-02
264 지식탐험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206 0 0 08-01
263 지식탐험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95 1 0 07-30
지식탐험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03 1 0 07-25
261 지식탐험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97 0 0 07-25
260 지식탐험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3 1 0 07-25
259 지식탐험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75 0 0 07-20
258 지식탐험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183 0 0 07-19
게시물 검색

회원로그인

구글 OTP 인증 코드 입력

디바이스에 앱에서 OTP 코드를 아래에 입력합니다.

OTP 를 잃어버렸다면 회원정보 찾기시 해지 되거나,
아래 링크를 클릭하여 이메일 인증으로 해지 할수 있습니다.

OTP 해지하기

론건맨 상위 순위 10

  • 1 사라랜스399,671
  • 2 선상반란302,220
  • 3 eggmoney118,497
  • 4 샤논115,847
  • 5 nabool100,070
  • 6 바야바94,906
  • 7 차카누기93,313
  • 8 기루루88,057
  • 9 뾰족이86,795
  • 10 guderian008385,235

설문조사

론건맨 싸이트가 열리는 체감 속도는 어떤가요.?

설문조사

론건맨이 부활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접속자집계

오늘
1,129
어제
2,172
최대
2,420
전체
14,253,181
론건맨 요원은 31,003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