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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배달의 무용담 - 공수와 프로레슬링의 결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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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댓글 3건 조회 3,444회 작성일 04-04-1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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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 유니텔 무예동호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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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공/일화/철학 최영의(崔永宜) 선생님의 무용담. 번호: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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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시 자 : nineeven(이상영)
게 시 일 : 97/12/28 15:53:35
수 정 일 :
크 기 : 7.1K
조회횟수 : 261

이 글은 서림문화사에서 나온 최영의(崔永宜) 선생님의 '실전 공수도 교범'에서 옮
긴 것 입니다. 일본원서를 번역 출판한 것이어서 조금 이상하게 번역된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공수와 프로레슬링의 결투.

1952년 3월에 있었던 일이다. 나는 유도 6단인 엔토우 고오기찌와 가랑비가 내리는
하네다 공항을 출발했다. 이것이 나의 미국 원정여행의 시작이었다. 평소 생각했던
일이 실현된다는 기쁨과 처음으로 타는 여객기에 어린애처럼 마음이 들떠 있었다. 지
금처럼 제트 엔진이 아니라 프로펠라로 하와이에 도착하는데 10시간 가까이 걸렸다.
호놀룰루에서 로스엔젤레스까지 8시간. 로스엔젤레스는 을씨년스럽게 가랑비 내리는
하네다와는 달리 맑은 날씨였고 태평양의 태양이 빛나 있었다.

마중나온 일본인 마에시마씨의 집에 여장을 푼 다음, 여기에서 일본 옷을 받아 기모
노 차림으로 시카고로 떠났다. 엔도우 고오찌씨는 알다시피 당당한 체격이므로 기모노
를 입어도 위풍 당당했다. 당시의 나는 과연 근육은 강철처럼 강했으나 지금처럼 체
중도 나가지 않았고 그와 함께 걸으면 어딘지 빈약하게 보였다. 이래서야 모처럼 미
지의 토지에서 일본의 무예가라는 것을 인상주기 위해서 입은 기모노였는데 과연 효과가
있는지 나는 자신이 없었다.

시카고까지 7일가량 걸렸다고 생각된다. 그 동안 연일 강행군을 했다. 나는 음식이
바뀐 점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엔도우는 반대로 어떤 것이던 좋아했고 몸의 컨디션이
매우 좋은 것 같았다. 엔도우는 그레이트 토오고우와 프로레스 순연으로 나는 그들이
개최하는 링에서 일본공수를 미국인의 소개, 보급한다. 간단히 말하면 이런 것인데 한
마디로 소개보급이라고 하지만 많은 어려움을 각오해야만 했다.

일본 무도에 대해선 전혀 예비지식도 소양도 없는 이 나라에서 어떻게 하면 공수의
기라던가 정신을 이해시킬 수 있는지, 말은 통하지 않으며 소개하는 사람도 없는 악조
건에서, 더구나 살벌한 프로레스 회장에서 공수를 공개하는 것이므로 어떤 인간이 내
게 도전해 올런지 모른다. 바로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내가 건
곤일척 버틴다는 것은 나 자신은 물론 크게는 일본 공수를 세계에 도약시키는 기틀이 된
다. 심약하게 되거나 주저할 때는 아니다. 나는 이미 사지에 몸을 던지는 각오로 도미
한 처지였다.

시카고는 눈이 내려서 차가웠으며 밝고 따뜻한 시카고가 그립기만 했다. 시카고에서
나를 맞은 그레이트 토오고우는 미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일종 기묘한 풍모를 한 사
나이였으며 그 수염난 얼굴은 유모러스하기조차 했다. 그와 통역에 안내되어 우리는
시카고의 큰 호텔인 프라잔 호텔의 12층에 여장을 풀기로 했다. 먼저 그들과 마을에
일본인 식당으로 가서 식사를 했는데 호텔로 돌아와 나는 먹은 것을 모두 전부 토했다
. 서투른 비행기 강행군과 기후의 격변으로 몸의 컨디션이 아주 흐뜨러졌다. 가까스
로 오렌지 주스를 마실 수 있었다.

그러고 있을때 그날 저녁에 공수의 시범공연에 나오라는 프로레스 협회의 조리오 지
배인의 말이 전해졌다. 나는 참으로 당황했다. 게다가 완될려니까 그때 도전자가 나타
나서 내가 지면 앞이 없으니까 귀국하라는 것이었다. 웬만한 일엔 실망하지 않는 나였
지만 절식으로 배에 힘이 들어있지 않은 현재의 체조(體調)로는 진퇴유곡이었다. 그러
나 지금에 와선 물러설 수 없었다. 그렇다면 기력으로 맞서겠다고 각오했다.

회장인 시카고 홀은 1만 5천명의 관객을 수용했다. 어두워지기를 기다려서 나는 엔
도우, 토오고우의 대기실에 들어갔다. 그 순간 나는 압도당했다. 그 방에 있는 프로레
슬러들의 거구에 비하면 나는 마치 어른사이의 아이와 같았다 그러나 나는 비록 말랐
지만 강철 같은 자기의 팔에 희망을 걸었다. 군중의 고함소리가 여러 번 들리더니 마
침내 내 차례가 되었다.

어쨌던 공수를 처음 보는 것이므로 먼저 그 위력을 보여서 간담을 서늘케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쪼개기를 하기로 작정했다. 처음 6인치가 되는 판자를 쪼
개고 끝으로 도저히 깨지지 않는다고 청중이 믿은 벽돌을 몇 번 실패한 다음에 깼다.
그들은 자기들도 모르는 새 감탄성을 올렸다. 절식한 몸이었기에 단번에 깨지 못했
다. 그런데 다음에 내가 공수의 형을 시연해 보이자 청중은 그치라고 외치거나 또는
무슨 춤으로 착각하고 레코드를 틀어주라고 놀렸다.

그랬으므로 손님끌기로 처음에 쪼개기로 한 것이 잘 되었었다. 그 중에도 돌을 깼더
니 정말 감격했던 모양이어서 홀안은 박수소리로 떠나갈 지경이었다. 그와 동시에
내 손을 해머로 두드려 보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서 그 두드리는 장면을 관중에게 보였을때
는 정말 감격한 모양이어서 홀안은 박수소리로 떠나갈 듯 했다. 아무튼 호평중에 링
을 내렸더니 그레이트 도오고우가 달려와서 최초의 실시치고는 대성공이라고 기뻐했다.
그리고 텔레비전이 촬영해 갔다고 전했다. 다음날의 텔레비전엔 간밤의 비디오가, 신
문엔 사진과 함께 보도되었다. 그날 밤, 시카고홀에서 실제로 내 수를 본 사람조차 자
신의 눈을 의심했을 정도였으니 이 신문이나 텔레비전 보도에 접한 미국 대중은 정말
일까 반신반의였다. 그러나 우선 미국인의 이목을 보았다는 당초의 목적은 뜻하지 않
게 달성했다고 볼 것이었다.

시카고를 시발로 자동차로 각지를 순회하고 아이오아주의 데모한스의 거리에 왔을
때 처음으로 내게 도전자가 나타났다. 그날 밤, 늘상 하는대로 내가 쪼개기를 해보
이자 관중들은 어디에서나 그랬지만 어떤 장치가 있었는가, 라고 의심했다. 그래서
토오고우가 링위로 올라가서 "절대로 사기가 아니다 그 증거로 누구든 자신있는 자는
이것을 쪼개 보도록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하면 장치가 있는지 얇든지를 알 것이다.
만일 깨면 그 사람에게 1000달러를 주겠다."라고 고함을 쳤다. 그러자 링 곁에서 보고
있던 거구인 프로레슬러 딕이 "1000달러야 좋아. 내가 하겠어."라고 링으로 거드름을
피면서 올라왔다. 그는 유도 3단으로 지구 챔피언이라는 간판을 가진 거치른 수를
쓰는 프로 레슬러 였으며 203 파운드 되는 거한이었다.

그는 아주 작은 벽돌도 공연히 손가죽을 깔 뿐이어서 깨지 못했다. 허튼 소리를 한
주제에 깨지 못했다는 것과, 그 같은 벽돌을 내가 여보라는 듯이 깼다는 것으로 그는
억지로라도 링에서 내려갈 수 없었다. 그래서 내게 싸움을 걸어왔다. 그리고 이 승부
에서 10000달러를 걸라고 말했다. 도저히 물러설 수 없었다. 끝까지 싸워서 공수의 힘
을 충분히 보여야 했다. 그는 벌써 다 이긴 셈으로 여기고 유유히 거체를 흔들면서
코너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거체에 비하면 흰 연습복을 입은 170 파운드인 나
는 고양이에게 쫓긴 쥐와 마찬가지로 미덥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소나무 뿌리처럼 근육이 울퉁불퉁한 팔을 펴면서 위로부터 붙잡으려고 나를 덮
쳤다. 참으로 방약무인한 자세였다. 갑자기 눈에 찌르기를 넣는 나의 손은 재빠르게
번뜩였다.그는 놀라서 눈을 비볐다. 눈을 정말로 찔러서 멀게 할 생각은 없다. 다음으
로 그의 급소를 노려서 금적(고환)을 찼다. 눈에서 금적으로 연속된 빠른 움직임이
그의 수비는 전혀 비게 되었다. 눈과 금적을 동시에 공격한 것은 양동작전이며 그의
자세를 허물려는 것이 목적이다. 그의 동체는 완전히 비었다. 나의 정권찌르기가
그의 가슴단에서 4번 눈깜짝할 틈으로 울렸다. 그가 코너에서 내쪽으로 온지 30초도
지나지 않은 짧은 시간이었다.

후에 들었더니 갈비뼈가 3개 부러졌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는 나도 지나쳤다
고 생각한다. 아무리 상대가 무법자라고 하지만 갈비뼈를 3개나 부러뜨릴 필요는 없
었다. 역시 정신없이 행동했던 모양이다. 이 사건으로서 내 실력을 실컷 본 사람들
은 내 실력을 인정한다기 보다 오히려 쨉(jap)같으니 라는 반감을 품었다. "금적을
차다니 비겁하다. 토오조를 잡아라." 그들 새에서 이런 외침이 일어나 순식간에 퍼졌다.
진주만 공격의 토오조와 내 링의 이름이 같았다는 것이 또 나빴다. 폭도화한 군중은 나
를 죽이라고 호텔로 몰려왔다. 다행이 경관의 처치가 적당했으므로 큰 일은 벌어지지 않
았다. 잘못했으면 린치를 당할 뻔 했다. 우리는 걸음아 나 살려라고 시카고로 돌아갔
다.

이런 사건도 있었지만 링에서 한 번도 지는 일이 없었다. 11개월간에 대소 합해서
250회에 걸쳐서 시합을 하고 다녔으며 시카고를 시발로 32주에 걸쳤었다. 이렇게 해
서 미국의 공수가 상륙했다. 미국 동부에서 나는 '미국에서의 공수의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것은 최초에 내 고생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말을 퍼뜨린데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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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박상준님의 댓글

박상준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요원 작성일

      최배달 선생의 다큐를 본적이 있습니다.. 한 가지의 무예를 그 정도까지 끌어올리시다니 존경스럽습니다. 큰 아드님은 한국..일산 명지병원에(화정역근처) 의사로 근무 하고 있더군요..다큐에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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